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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마조마한 포퓰리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포퓰리즘의 역사는 길다. 정치에서‘포퓰리즘’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890년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인민당(Populist Party)이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정책을 표방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 같은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정권이 대중을 위한 선심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시킨 사건 이후부터다.4·15총선을 며칠 앞두고 포퓰리즘 논란이 거세다. 정부여당이 국민들에게 어떤 방식이든 돈을 나눠준다면 포퓰리즘이 될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상권붕괴 등으로 인한 피해를 다소나마 보전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지급하자는 긴급재난지원금이 바로 논란의 대상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수혜자로 잡은‘소득하위 70%’선별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데 있다. 시민들은 본인의 소득이 어느 정도 순위인지 모른다. 재산은 많지만 소득이 작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에는 지원 규모가 너무 적다. 4인가구 기준 100만원이면 1인 단위로는 25만원에서 40만원 정도다. 이 정도면 천재지변으로 소득을 상실한 가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 결국 지원 대상을 선별하느라고 늦게 줘서 불만을 사기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빨리 지급해주고, 고소득자들로부터는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것이 지원금의 취지에 맞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같은 정부방침에 대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전국민에게 5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즉각 지원하자는 입장을 밝혀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포퓰리즘의 파괴력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반면에 미래통합당 유승민 의원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 의원은“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더니 이번에는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을 비난해왔던 우리 당의 대표가‘전 국민에게 50만원씩 주자’고 나왔다”면서“이건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질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 ‘기득권 양당의 포퓰리즘’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여론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재원을 뚜렷한 기준 없이 전국민에게 나눠주는‘묻지마’지원정책은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앞으로 정부여당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혈세로 마련한 재원을 배분하려면 좀더 신중하게 배분대상과 금액, 배분목적 등을 명확히 규정, 선택과 집중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2020-04-09

코로나19 시대 서울

은평구는 서울에서도 변두리 동네로 취급되는 곳이다. 그렇지 않다고, 이 동네 사람들 아이디어 짜내고 한국문학관 유치하고 정지용 거리 만들고 등등 애들을 쓴다.서울역에서 통일로 문산 가는 길 따라 독립문 지나고 홍제동 지나고 외길로 한참을 나와야 은평구라는 곳인데, 동네 가까운 곳에 이르면 벌써 북한산 남다른 기운이 밀려들어 서울 딴 곳으로 옮겨온 것 같다.그래서 그런지 연서시장이니 대조시장이니 전통시장도 많은 이 동네는 여전히 예스러운 풍취가 느껴진다. 서울 다른 데보다 확실히 정감 넘치고 물가도 싸다.나 잘 가는 연서시장에 ‘똑순이네’가 있다. 이 집 아주머니는 손이 유난히 크다. 밥 한 끼 먹으러 가도, 구운 낱장 김에, 달래 간장에, 간장 게에, 노란 배춧속에, 빨간 김치까지, 여기도 뭐가 남을까 싶게 퍼주시곤 한다. 이 불경기에도 그런대로 버틸 만하다는데 뭣보다 단골손님이 끊어지지 않는다나.그래도 코로나19 시대는 무섭다. 한 번은 자동차 고칠 일이 있어 그 동네 현대카센터를 들렀는데 바로 옆 음식점이 대낮에도 불이 꺼졌다. 손님이 들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두 달 전에 생긴 회 센터는 개업할 때 손님이 꽤 드는가 했는데 왔다 갔다 하며 보면 썰렁하기만 하다. 아홉 시 남짓 하면 벌써 사람들 통행이 줄어들어 버리니 길가 행상들, 순대도 팔고 치킨도 팔고 떡볶이도 파는 분들도 어디 갔는지 모른다.보통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이 은평구 성모병원에도 확진자가 나타나 이틀인가 폐원을 하기도 했다. 벌써 그게 2월 하순쯤이었으니 벌써 한 달도 넘었지만 그 직후 시장에 인적이 드물 정도였으니, 코로나 공포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그나저나 출퇴근 시간이 아주 편해진 것만은 반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울 중심가로 통하는 외줄기 병목길이 차량 통행이 확 줄어들었다. 음식점에 가도 사람들 띄엄띄엄 앉았으니 시끄럽지도 않고 남의 타액이 날아들어 올 걱정도 없다. 모든 게 인기가 없어지니 아파트 값도 내려앉는 분위기라고도 한다.코로나19가 유행처럼 몰려왔다 가면 모든 게 원상회복 되려나? 사람들은 경기가 브이(V) 자를 그리지 않고 엘(L)을 그릴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이 모든 코로나19 ‘평온’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정작 호랑이는 코로나19가 아니라 뒤 따라 오는 경기불황일 것이다.4월이 되자 여기 은평구 불광동 로터리에도 선거운동 차량이 나타났다. 트럭 위에 서서 내 쪽으로 깊은 절 올리는 분들이, 나라 일을 정말로 제대로 해주시기를 바란다. 힘들디 힘든 시절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4-09

믿음의 눈으로

김종기죽전성당 주임신부몇 년전 이맘 때 신자 몇 분과 동해 방면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가는 길에 예쁘게 피어난 봄꽃들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날은 공휴일이라 나들이 가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던 중에 한 분이 “여러분, 보니까 어때요?” 하고 일행들에게 물었습니다. 동시에 두 분이 대답했습니다. 한 분은 “꽃들이 참 곱네요!” 다른 한 분은 “차가 굉장히 많네요!”우리나라 속담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평소에 자기가 마음을 두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것만 본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동일한 사물이지만 평소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똑같은 풍광을 보고도 어떤 이는 ‘아름다운 꽃’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복잡한 도로교통’을 생각하기에 말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마르코복음에서 바르티메오는 비록 소경이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앞을 못 보는 처지에서 어떻게든 ‘볼 수만 있다면!’하는 바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었을 겁니다. 그런데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신다는 “예수”라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무조건 자비를 빌었습니다. 그분만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눈을 뜨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세상을 산다고 믿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 돈이 없어서 남의 돈을 훔치고, 뇌물을 받고 남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돈이 인간다운 삶의 척도라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돈만 보입니다. 명예가 인간다운 삶의 척도라 생각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합니다. 하지만 인간다운 삶의 기준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기준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진정 무엇을 바라고 살아갑니까? 마르코복음에서 바르티메오는 자신의 믿음으로 소경이었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육신의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진정 하느님께서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살도록 해 주시는 분이라 믿는다면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올바로 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분을 보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020-04-08

별꽃

강길수수필가가로수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무보호대 구멍을 비집고 올라오고 있는 덩굴풀 앞이다. 땅에 내려앉아 사는 별을 휴대폰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다.아직 춘분이 한 달은 남은 날, 늦은 오후. 봄이라기엔 이른 겨울 끝자락이다. 하긴 쑥, 클로버, 장미 같은 식물들이 월동도 하니, 봄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마음속 어떤 힘이, 지나려던 나를 나를 앉히고 만 것이다.고개 드는 덩굴풀이 쪼그만 꽃들을 피워냈다. 꽃잎 한 개가 깨알만 할 정도로 작은 하얀 꽃이다. 사람들은 왜, 몸을 바짝 낮추고 아주 작게 피운 이 꽃을 ‘별꽃’으로 불렀을까. 별꽃은 논밭 둑이나 길가, 빈터 같은 곳에 흔히 사는 두해살이풀의 꽃이다. 학명이 ‘스텔라리아 메디아(Stellaria media)’로서 라틴어로 별의 뜻을 가진 ‘스텔라(Stella)’에서 유래하였단다. 원산지가 유럽이지만, 지금은 세계 도처에 자란다. 낮아서 사람은 물론, 땅 위의 뭇 생명과 더 가까운 꽃이다. 가까이 쳐다본다. 내 눈에도 영락없는 별이다.가로수 둥치 곁 메마른 땅에서 이렇게 일찍 별꽃을 피워낸 풀의 생명력도 별같이 반짝인다. 벌써 줄기 길이가 한 뼘을 넘어 보이는 것도 많다. 별꽃은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핀다. 하얀 꽃잎이 실은 다섯 개지만 눈엔 열 장처럼 보이지. 한 개가 둘로 깊게 갈라져서 그리 보인다. 사람들은 별빛을 다섯 갈래로 그리지. 별꽃의 꽃잎도 다섯 개라는 사실이 우연은 아니라 싶어. 그래서 이름이 별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땅에 붙어사는데도 줄기가 꽃이나 잎에 비해 튼실해 보인다. 낮아 당할 위험이 더 큰 때문일까. 튼튼한 줄기에 이어진 앙증스러운 별꽃이기에 사림과 별의 끈끈한 연을 잘 나타낸다 싶다.어느새 벚꽃이 만발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즐겁지가 않다. ‘코로나19’라는 신종 전염병의 위세에 눌려 지구촌이 숨죽이는 봄을 보내기 때문이다. 유명한 벚꽃 길도 ‘드라이브 스루’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구경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앞으로 우리는, 인류는, 지구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여행이나 다른 이유로 헤어졌던 가족·친지나 지인들을, ‘혹시 코로나 감염이나 되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며 언제까지 살아내야 하는 걸까.너도 알듯이 처음엔 ‘우한폐렴’이나 ‘우한코로나’라 했다가, 중국 압력 때문인지 ‘코로나19’라고 부르게 된 신종코로나 전염병…. 어떤 이들이 의심하듯 정말 사람이 만든 생물학 무기가 유출된 것이 ‘코로나19’라면, 유럽 흑사병 창궐같이 유행병에 무방비로 당해야 했던 그 옛날로 지구촌이 되돌아가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물질문명 추구와 향유가 과연 제 길을 걷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인간의 정치, 경제, 문화, 기술, 종교 등 제 분야의 패권 추구는 무엇일까. 정말 성악설이나 원죄론 같은 이론이 제시하는 인간상이 원래의 인간일까.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땅 위에도 가져다 놓은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사람의 무의식이 땅 곧, 지구도 별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함일까.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며 이른 봄, 아니 겨울 끝자락에 별을 땅 위에 피워낸 별꽃을 다시 찾았다. 작고 약해 보이더라도 실은 강한 별꽃이다. ‘별꽃’이란 이름 자체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지. 춥고 음산한 겨울을 사는 사람들이 기댈 언덕은, 산 너머 남촌에서 따사한 바람 불어오는 희망의 봄일 테니까.웬일인지 별꽃에, 하얀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코로나 환자 진단과 치료에 여념 없는 의료진들이 겹쳐 보인다. 처음 입국자 차단을 하지 않은 당국의 방역 실책을 탓하지 않고, 신종 코로나전염의 최전선에서 결사적으로 싸우는 분들 말이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 희생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그들이 낮은 곳에서 봄을 밝히는 밝은 별꽃이란 생각이 물밀듯 든다. ‘우한폐렴’소식에 선제적으로 코로나진단키트를 밤새워 개발한 기업, 그리고 검사와 진단에 전력투구한 의료재단의 역군들 또한 이 봄을 비추는 하얀 별꽃이란 마음도 밀려온다.

2020-04-08

풍경의 마음, 마음의 풍경

이번 주부터 김살로메 작가의 포토 에세이 ‘뜻밖의 시선’을 연재한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풍경과 사람의 순간을, 사진 곁들인 사색의 글로 갈무리하는 코너이다. 작가의 소박한 시선이 독자들과 호흡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심상치 않은 나날입니다. 전 지구촌을 장악한 바이러스 무리에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폭풍처럼 진군하는 저 기세 앞에서 평범한 일상이 꺾인 지 오래입니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유폐의 시간이 친구처럼 따라붙는 날들입니다.갇힌 세상, 여유가 넘쳐납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행간을 살피는 망울은 금세 흐릿해지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길은 기다렸다는 듯 민첩함을 잃어갑니다. 위급은 불안을 낳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시간이 남아돈다 해도 불안한 마음이라면 집중도가 발휘될 리 없습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온통 혼란스럽기만 합니다.고개를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어 봅니다. 오후 봄 햇살이 부엌 구석진 곳까지 길게 와 닿습니다. 햇살에 겨워 블라인드를 내리려다만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한껏 다사로워진 빛살을 흐트러진 마음 깊숙이 끌어당깁니다. 금세 가슴 한 쪽이 따스해집니다. 느꺼웠든 부끄러웠든 우리 삶은 스스로의 도움만으로는 어림없었음을 자각합니다. 수고하고 짐 진 것들이 베푼 선의로 내 하루는 살쪄왔습니다. 이를 테면 저 깊게 퍼지는 봄 햇살 같은 소박한 모든 것들에게 하루를 빚지고 있는 것이지요. 사물일 수도, 생각일 수도, 더러는 사람일 수도 있는 그 모든 것들을 풍경이라 명명하겠습니다. 별 것 아닌 그 풍경들을 불러내 제 식으로 말을 걸고 스스로를 성찰할 참입니다.표출되지 않은 결심이나 계획은 그야말로 미완의 설계일 뿐 완성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꿈만 꾸는 자리에는 진정한 영혼이 깃들 리 없습니다. 머리에 머문 생각들이 가슴으로 내려와 말이나 행동으로 발산될 때 제대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면 장고의 시간보다 어설프나마 행동하는 날들이 값질 때가 많습니다.예를 들면 어느 날부터 한 장의 사진이 많은 말을 품고 있다고 느끼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요. 한 컷 물상으로 앉은 그 품새에 많은 의미들이 녹아 있는 게 보입니다. 오도카니 앉은 그 말들을 진솔하게 번역하고픈 욕망이 생겼답니다. 글 쓰는 이로서 아주 늦은 자각이었지만 그 매혹은 뿌리치거나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되었지요. 어떤 한 컷이 말을 걸어오면 반사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로 정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실제 풍경과 마음의 풍경 즉, 심상이 교집합을 이루는 한 지점에서 스파크가 일듯 새로운 말들이 마구 번져가는 것이지요.저는 사진가는 아닙니다. 사진가가 될 마음도 없습니다. 사진에 관한한 예술적 눈썰미와 이 지면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지요. 미적 완성도에서 자유로운 사진일 때 제 글도 한껏 날개를 달 수 있겠지요. 앞으로 펼쳐질 에세이에 곁들이게 될 한 컷의 장면은 문화역사적 시각이나 사진학적 의미로서 언급될 일은 없을 거예요. 사진이 요구하는 객관적인 약속이나 양식에서 벗어나, 저만의 시각이나 감각으로 포착하고 감지한 것들을 언어로 옮길 테니까요. 하잘 것 없는 장면일지라도 가슴을 찌르는 제 식의 정서가 발동한다면 기꺼이 셔터를 누르고 자판을 두드리겠습니다. 여러 풍경이 선사할 뜻밖의 의미들을 풀어내는 이 작업이 자못 흥미롭습니다.여전히 매체들은 바이러스 전파 소식으로 도배를 합니다. 배경으로 따라 붙는 ‘코로나19’의 로고는 어쩜 그리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에 반하여 영롱한지요. 그토록 강력한 전파력을 숨기고자 신비롭고 아리따운 모습으로 치장한 채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주의 꽃을 가장한 저 바이러스는 어쩌면 인류 보편에게 전하는 서늘한 경고 같습니다. 무해한 타인의 선의를 헤아리지 못하거나, 소중한 것들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곁에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울림의 무늬 같은 것 말입니다.김살로메소설가삶이란 온전히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참담하게 비극적인 것도 아니지요.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비관이나 불운을 곁에 두되, 그보다는 의식적인 낙관이나 희망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갔으면 합니다. 험난한 시간을 어떻게든 견디는 것도 위에서 말한 풍경의 한 예가 될 수 있겠지요.벨 소리에 현관문을 엽니다. 하 수상한 시절인데도 택배 아저씨의 수고로움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울릉도에서 지인이 햇명이 장아찌를 보내왔습니다. 나물향이 포장 박스를 뚫고 온 집안으로 번집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하고 인간적인 봄 내음입니다. 봄이면 새 잎에다 향기라지요. 봄이면 꽃이나 희망이라지요. 첫 사진 전송을 봄 명이나물이나 늦은 명자꽃으로 하려다 멈춥니다. 파문 앓는 여러 날들이 새순이나 꽃망울로 맺기까지, 차분한 기도보다 나을 게 없을 테니까요. 어찌할 줄 모르는 이 사회적 거리의 시간들이 저마다의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기만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글·사진= 소설가 김살로메

2020-04-08

원격의료 허용논란

원격의료는 대면진료 반대 개념으로, 영상·전화·채팅 등을 통해 진료하거나 의료기기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전송해 의사 소견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원격의료는 의료인 간 원격의료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로 구분되며, 의사와 의사 사이 원격의료는 현재도 합법이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원격 모니터링과 원격진료로 나뉜다.원격 모니터링이란 의료인이 환자 질병 상태를 지속 모니터링하고 상담·교육 등 관리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원격진료는 질병 진단과 처방이 포함되는 개념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들은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법 제34조에서는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의 원격 의료만이 허용된다.원격의료는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의료진 부족으로 대구·경북지역에서 감염자 급증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의료진의 집단감염이 속출하자 원격의료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4일 전화로 의사 진단과 처방을 받는 원격진료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병원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전화 상담으로 진료·처방을 할 수 있게 됐다.진료비는 계좌이체 등 송금으로 결제하고, 처방전은 팩스·이메일로 환자가 희망하는 약국에 전송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원격의료 전면허용은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의료계는 화상·음성·문자 등 제한적 정보만으로 진단·처방을 내릴 경우 오진 가능성이 있어 책임소재 문제가 크다고 반대한다.또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심해져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할 거란 우려도 있다. 원격의료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강하는 묘수풀이가 필요한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08

홀로 버텨낼 나라는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워싱턴포스트지가 미국 스스로를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가진 국가’라고 혹평했다. 기업가정신에 투철한 대통령은 나라의 이익을 국가 운영의 중심에 뒀다. 상생과 협력이 필요한 가닥에도 자국의 이익에만 초점을 뒀다. 코로나19의 도전은 글로벌 지평 어느 나라도 예외로 남기지 않는다. 국경의 구분은 의미가 없으며 모든 나라가 같은 숙제를 한다. 외교와 통상뿐 아니라 의료와 과학에도 호혜적 협력이 필요함이 분명해졌다. 나라마다 발전과 번영을 도모하며 경쟁력을 쌓는 일에 집중하였지만, 이제 ‘장벽과 빗장’은 힘을 잃었다. 나만 잘 살면 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 혼자 잘 살기가 힘들게 되었다.‘국가브랜드지표’를 통해 나라들의 경쟁력순위를 발표해 오던 사이먼 앤홀트(Simon Anholt)가 ‘좋은나라지표(Good Country Index)’를 개발했다. 모든 영역에서 전 세계를 품는 인식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다. 나라들이 얼마나 부강한가를 살피기보다 그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나누는가를 분석했다. 과학·기술, 문화·전통, 국제관계, 세계질서, 지구·환경, 번영·평등, 그리고 건강·복지의 일곱 분야에서 나라들이 세상과 인류를 위해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했다. 조사대상 153개국 가운데 한국이 26위, 미국과 러시아가 40위와 41위, 중국은 61위이며 일본이 24위라고 한다. 1위는 핀란드가 차지했으며 호주, 불가리아와 싱가포르 등이 우리보다 앞에 보인다. 코로나19를 지나며 우리가 다른 나라들을 위해 들이는 노력이 지표향상에 반영될 것이다.글로벌환경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나라가 잘돼야 하지만, 우리만 잘살아도 안 되는 것이다. 홀로 버텨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함께 일어서는 일이 보다 시급하다.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우리는 후보가 지역이기주의에 몰두하고 있는지 아니면 너른 글로벌 지평을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해 보아야 한다.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이 있어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 동네가 있어 온 나라가 편안한 지역에 살고싶지 않는가. 국가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내 나라와 우리 지역에만 관심을 가진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그들의 시선이 멀리 가 닿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들에게 밖을 보기보다 우리만 생각하도록 고집하지 않았는가. 시선의 지평이 짧았던 것은 우리들 자신이 아니었을까.섬처럼 버텨낼 나라가 없고, 홀로 성공할 사람이 없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차고 넘친다. 지구온난화, 인권문제, 인구문제, 테러와 폭력, 환경보존, 생태계보호, 무기감축 그리고 이제 감염병확산까지. 어느 한 가지, 힘센 나라가 홀로 풀어낼 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에도 능하지만, 상생에도 든든한 나라가 돼야 한다. 홀로 있어도 불안하지 않으며 함께 있을 때 믿음직한 나라가 돼야 한다. 이왕이면 ‘좋은나라’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2020-04-08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2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이 조금 회복한 사내는 무언가 하고 싶어집니다.어린 시절 주일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눈빛 맑은 청년을 기억합니다.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동화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틉니다.글쓰기라고는 배워 본 적 없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아픈 몸을 달래 가며 한 줄 한 줄 씁니다.작품을 완성하면 신춘문예에 응모합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탈락 후 전달해 주는 심사평을 스승 삼아 자신의 글을 다듬습니다. 그런 숱한 노력 끝에 죽음과 싸워가며 쓴 이 남자의 동화 한 토막, 결말 부분에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 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 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선생 이야기입니다.1973년 1월 권정생의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신춘문예에서 상을 받아 동화작가 반열에 오릅니다. 한 남자가 권정생의 글에 흠뻑 취합니다. 그가 풀어내는 아름다운 우리말에 반해 권정생을 찾아갑니다.이 남자는 권정생이 일본에서 귀국한 후 잠시 머물던 마을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그가 바로 이오덕 선생입니다. 두 사람은 이후 평생을 서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이오덕 선생과의 만남 이후 권정생의 삶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시골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일하는 비천한 신세였지만 글을 쓰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8

과포자에서 공포자까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수업은 EBS 강사가, 월급은 학교 교사가”온라인 개학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다시 숨을 쉬기 위해서는 다른 숨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실한 말의 힘 앞에 다른 숨을 찾을 수가 없었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가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 (T.S 엘리엇 ‘황무지’)시구처럼 2020년 4월은 필자가 지금까지 직접 경험한 4월 중 가장 잔인한 달이다. 멈추기 직전의 세계 경제 소식이 그렇고, 가택 연금 수준의 자택격리 중인 사람들의 소식도 그렇지만, 필자를 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학생 없는 학교에 가득 핀 꽃 소식이다. 그 꽃들은 망부석처럼 색과 향을 잊어버렸다. 벌들도 흥을 잃었는지 빈 교실 앞에서 요란하기만 하다.그런데 필자를 진짜 아프게 하는 것은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와 교사들이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아니 학생들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 학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이라는 미봉책을 내놓으면서부터이다.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런데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큰 부작용과 피해가 뒤따른다.학교에는 이미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교사 간 의견대립과 책임회피와 같은 학교 자율성을 상실한 이 나라 교무실 민낯이 그것이다. 그 결과는 공교육 불신 가중이다. 다음은 EBS 뉴스(‘한 주간 교육현장’ 2020. 01. 24.)다.“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요.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은 교사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으며, 98%에 달하는 학부모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다는 (…)”이것이 바로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권고에도 학원들이 문을 닫을 수 없는 진짜 이유이다.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교육부가 제시한 다음의 원격수업 유형이 과연 모두 같은 수준의 수업이라고 생각하는지? “① 실시간 쌍방향 수업, ②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③ 과제수행 중심 수업, ④ 기타 교육감 또는 학교장이 별도로 인정하는 수업”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 네 가지가 같은 수업으로 인정되는지 정말 모르겠다.“선생님, 저 과포자 됐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는 공포자가 정말 많아요.”졸업생이 전해온 현 교육의 현실을 나타내는 신조어를 듣고 필자는 봄꽃보다 온몸이 더 붉어졌다. 과포자는 과제 포기자, 공포자는 공부 포기자다. 온라인 개학 이야기가 나온 이후에 이런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이 늘었고, 자신은 공포자가 안 되기 위해서 학원을 간다고 했다.얼마나 많은 학생이 과포자와 공포자가 되어야 할까? 더 이상 과제다 뭐다 해서 학생들을 괴롭히지 말자. 교과 진도를 나가지 않을 바에는 괜히 등교 개학 이후에 학생들을 잡도리하지 말고 차라리 온라인 개학 주간을 수행평가 주간으로 운영하자. 그러면 최소한 의미 없는 과제에 가위눌려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까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댓글도 교사들의 노력을 인정해 줄 것이다.

2020-04-08

긴급재난지원금

김규종 경북대 교수누구에게나 남다른 기억이 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져도 기억의 사진첩에서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경험은 삶을 풍성하게 인도한다. 요즘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오래전에 잊힌 사건을 소환한다.러시아 문학을 연구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환경 때문에 서도이칠란트로 유학을 가야 했던 시절의 일이다. 소련과 중국을 적성국(敵性國)으로 분류하여 학문을 위한 최소한도의 자료마저 차단함으로써 반공을 넘어 멸공 공화국을 꿈꾼 박정희-전두환 시대. 그런 이유로 적잖은 연구자가 일본이나 미국, 유럽으로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던 암흑기.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한반도가 세계의 관심을 받았던 무렵의 이야기다.쾰른에서 어학과정을 마칠 무렵 아이가 태어났다. 당시 도이칠란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상태였다. 서도이칠란트에 주둔한 미군이 20만을 헤아리고, 국민 1인당 GDP가 2만 달러 부근이었던 때였다. 그런 나라가 10만이 넘는 외국 유학생들을 무상으로 교육하고 있었다. 피부색과 국가와 언어를 불문하고 서도이칠란트 학생과 외국 유학생을 똑같이 대우한 나라.아이가 태어나자 1년 동안 양육비(Erziehungsgeld)로 다달이 600마르크 (한화 27만원), 어린이수당(Kindergeld)으로 50마르크를 주는 것이었다. 속지주의를 채택한 나라의 법률에 따라 아이는 자동으로 서도이칠란트 국민으로 편입되었다. 노동자 자식이든, 재벌 자식이든, 외국인 아이든 간에 똑같이 양육비와 어린이수당을 준 서도이칠란트. 이런 혜택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더욱 큰 놀라움은 베를린에서 이어진다.지도교수를 찾아 1989년 초에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나는 그해 여름 중소기업 ‘게오르크 렘케’에서 6주 동안 육체노동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루 6-8톤의 물량을 컨베이어 벨트로 처리하는 중노동이었다. 거기서 나는 분단상태의 서베를린 시민에게는 양육비가 2년간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구청의 양육비 담당자에게 에이4 용지 1매 분량의 편지를 쓴다.‘서도이칠란트의 학문발전을 위해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게오르크 렘케’에서 노동한 나에게 양육비를 지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2주 후에 나는 ‘미지급된 양육비를 다달이 나의 계좌로 송금하겠다’는 담당자의 답장을 받는다. 600마르크의 양육비를 아무 조건 없이 추가 지급하겠다는 편지를 받은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참, 대단한 나라로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0만이 넘는 외국 유학생들을 공짜로 교육하고, 각종 혜택을 자국민과 똑같이 베푼 분단의 나라 서도이칠란트. 얼마 전 통일 도이칠란트는 코로나19로 인해 곤경을 겪는 내외국인에게 긴급재난지원금 5천유로(한화 673만원)를 지급했다. 지급에 걸린 시간은 단 사흘. 포퓰리즘 얘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국가다! 예전의 특별한 기억을 소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의 조국에서도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는 봄날이다.

2020-04-08

김항곤 전 성주군수의 이해 못할 행보

전병휴 경북부“정치적 도의는 물론 인간적 의리까지 배신한 김항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지난 6일 미래통합당 고령·성주·칠곡당협위원장까지 지낸 김항곤 전 성주군수가 무소속 김현기 후보를 지지하자 지역 주민들이 격앙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김 전 군수는 이날 “우리지역 발전의 적임자”라며 “미래통합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이에 유권자들 사이에선 ‘미래통합당 경선에서 패한 뒤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건 당에서 중책을 맡아온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은 행보’란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지난 3월 열린 4·15총선 미래통합당 고령·성주·칠곡 경선에서 김 전 군수는 49.4%의 얻어 60.6%(신인청년보좌진가점 10%)의 득표율을 확보한 정희용 후보에 패했다.정 후보는 경북도지사 경제특보 출신이다.김 전 군수의 무소속 지지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2년 전 성주군수 선거에서도 전화식 후보를 지지한 이력이 있다.이를 놓고 미래통합당 내부에선 “당에서 누릴 혜택은 모두 누리고 정작 선거에선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일부 지역주민들도 “군수시절 공무원들에게 생일선물로 황금열쇠를 상납받고, 부적절한 해외골프여행과 여성비난 발언 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이번에도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정치인이 지향해야할 주요한 덕목 중 하나가 ‘시종일관’이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그러니 최소한 침묵이라도 지켜야 할 패장이 적장의 편에 서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상황에 따라 말과 태도를 바꾸는 김 전 군수는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성주/kr5853@kbmaeil.com

2020-04-07

명랑한 문화도시

류영재포항예총 회장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이 감정표출의 기본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감정표현이 서툰 나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기쁨의 표현이야 다소 부족해도 그만이지만 슬픈 일을 당하여 울어야 할 때 눈물이 나지 않으면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니다.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른 봄날, 평소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는데, 문제는 한 번 슬피 울고 난 그 다음부터였다. 외아들인지라 십대의 철부지가 상주가 됐고, 집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곡하라면 ‘애고애고’ 곡을 했고 절하라면 절했다. 조문객이 올 때마다 곡을 하면서 마음의 고민이 조금씩 깊어졌다. 곡을 하면 당연히 눈물이 함께 나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빈소에서 간단없이 곡을 하며 할아버지 별세 때 상주인 아버지께서 상을 치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굴건제복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구슬피 곡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선명히 기억됐다.천성적으로 감정표현이 서툴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보고 느낀 것, 배운 것은 세월이 가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일희일비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배워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 기쁨도 슬픔도 절반만 표현, 나머지 절반은 삼키고 만다. 사나이는 세 번 운다. 세상에 올 때 울면서 태어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울고,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 운다던가? 하여간 함부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사나이답지 못한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정작 울어야 할 자리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 경우는 몹시 난감하다.그런데 언제부턴가 눈물이 많아졌다. 세상사 가슴 아픈 일이 많기도 하지만 이런 현상이 노화의 일부라 한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성화되고 여자는 점차 남성화된다.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조금만 감동하여도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특히 부모님이나 치매에 관한 내용일 경우 더욱 심하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는 펑펑 울었다. 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오버랩 되어서일 것이다. 하여간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당혹스럽다. 감동할 일만 많다면 그까짓 눈물이야 얼마든 쏟을 각오가 되어 있으나, 정치판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이다. 정치는 감동이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며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과정이 정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는 공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문화의 시대에 문화예술에 관한 공약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렵다. 포항 송도해변에 서 있는 ‘평화의 여신상’ 하단에 1968년도 포항시정지표가 새겨져 있다.1. 명랑한 문화도시, 2. 건전한 항만도시, 3. 풍요한 공업도시.배고픔의 해결이 지상과제였던 60년대에도 ‘명랑한 문화도시’가 시정지표의 첫 번째였다. 지금 보아도 얼마나 멋진가!문화가 미래의 성장동력인 시대, 일상이 문화가 되는 포항을 약속한 선량은 누구인가? 두 눈 부릅뜨고 살펴서 그에게 표를 주자.

2020-04-07

여성관리자 비율, 더 중요한 이유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영국 정부는 2018년 현재 2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성별임금격차 공개를 의무화하였다. 세계 25대 금융기업 중 여성임원이 많은 기업의 수익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해 여성임원 비율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정부평등국 자료에 의하면, 영국의 100대 금융기업 중 여성임원은 전체의 29%며, 350대 금융기업 중 여성 CEO는 고작 13명, 의장은 21명에 불과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턴트 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가 2018년 1월 펴낸 ‘Delivering through Diversity’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임원 비율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순수익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체인 여성 비즈니스위원회는 영국 주요 기업 CEO에게 2020년까지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을 최소 33%로 늘리기, 3년 안에 임원이 될 능력이 있는 여성을 1~3명 지원할 것, CEO가 직접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을 위해 조직 내 대화 창구확대 등 요구 사항을 강조했다.한편, 국내 역시 여성정책에서 양성평등정책 전환의 과도기는 ‘제1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2015-2017)’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양성평등정책의 본격적인 패러다임은 ‘제2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2018-2022)’에 반영됐으며, 여성인력 활용정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 변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정치 및 정부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공공부문별 여성 대표성 확대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이행해 왔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 여성 고위공무원 목표제, 공공기관 여성임원 목표제 등 정부·공공기관에서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여성관리자 혹은 임원 비율을 향상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정부가 시행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차별에 의해 왜곡된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로잡아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아울러 소극적인 차별해소를 넘어서서 실질적 양성평등이 이뤄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차별 받은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책을 계획·수립·집행·환류가 단계별로 남녀 비율이 균형 있게 참석해 의견을 개진해 성별 고유특성과 경험, 문화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성별균형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공공 및 민간 여성관리자 비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민간부문 여성임원 20% 할당제 도입, 전문성을 갖춘 여성인재 발굴 및 인재DB 구축을 지속가능하게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문화 구성원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여성인력육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CEO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유연근무제 등 일·생활균형 정책이 조직구성원 모두에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캠페인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내 여성고용 및 여성관리직 비율을 향상시키고, 가족친화문화를 조성해 조직내 양성평등실현에 기여하고 있는 우수기업을 선정해 우대하는 제도 역시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직의 성과는 의사결정시 주요 핵심 역할을 하는 여성 임원의 비율과 많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0-04-07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1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의 기초는 ‘올바름’입니다. 요즘 생각학교 ASK에서는 플라톤의 ‘국가’를 토론 중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올바름’에 대해 설명합니다. ‘국가’를 정치학에 관한 책으로 오해하지만 실은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아 ‘올바름’에 기초해야 한다는 고찰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정체(politeia)를 비유로 설명합니다.1937년 일본 도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습니다. 빈민가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자랍니다. 해방이 되자 먹고살 길을 찾아 귀국합니다.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 머물며 동네 교회에서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인연도 잠시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합니다. 생계를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 팔고, 고구마 장수, 날품팔이 등으로 연명합니다. 다시 안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깁니다.열아홉 나이에 폐결핵이 악화하여 신장 결핵, 방광결핵으로 온몸이 망가집니다. 수술을 해 준 의사는 잘 관리하면 2년쯤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야 했습니다. 나이 서른살이 되도록 누워서 앓는 것이 일과였던 그는 함께 살던 남동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결혼시켜 내보내고 일자리 하나를 구합니다. 경북 안동의 일직면 조탑교회에서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가지요. 월급 한 푼 없고 단지 방 한 칸 얻어 살며 종을 쳐 주는 조건입니다.여름이면 소나기에 뚫린 창호지 문 구멍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방에서 개굴개굴 웁니다. 겨울이면 생쥐들이 들어와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지요. 심지어 추위를 피해 옷 속을 비집고 들어와 겨드랑이까지 파고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생쥐와 친해져 먹이를 준비해 놓고 기다릴 만큼 서로 정이 듭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7

커피에 관한 짧고 얕은 지식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 커피가 우리의 일상을 차지한지 오래다. 손에 커피를 들고 식후 시간을 나누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도시의 한 풍경이 되었다.들녁에서도 막걸리로 축이던 목을 커피로 대신하고 있으니 커피제국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커피의 최초 발견은 에디오피아. 염소가 따먹는 열매에서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모카커피’는 예멘 모카항을 경유하는 커피의 대명사였다고 한다.오스트리아 빈에 가서는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면 모른다고 한다. 아인슈패너라고 해야 한단다.이슬람 음료였던 커피를 기독교인들은 초기에는 ‘악마의 음료’라고 금지령을 내려 못 마시게 하려했으나 오히려 교황이 맛을 보고 세례를 주었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터키에서는 남녀가 선을 보는 자리에 대접하는 커피 맛으로 혼인을 맺을지 의사표시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미국인들의 커피는 남북전쟁 당시 군용품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각성효과와 잠을 쫒아 병사들의 전투력을 높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미국 커피박물관에는 소형 커피드립기를 장착할 수 있는 소총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커피는 중요한 군용품이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커피 이름에는 에스프레소(빠른제조), 카푸치노(머리두건), 마키아토(얼룩진), 아보카도(퐁당 빠진 덩어리) 등등 이탈리아어가 많다.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커피의 원형으로 알고 마신다.미국사람들이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는 것을 보고 아메리카노라 불렀다는데 고증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한 겨울에도 한국 젊은이들의‘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마시기는 또 다른 패기와 발랄함이다.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는 초창기에는 사회적 논쟁과 교류의 장이었다.철학자 사르트르가 카페 드 플뢰르에서 사유하고 볼테르가 하루 40잔씩 마시며 혁명의 이념을 고뇌한 곳도 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 드 프로코프였다.학생들의 공부방이 되어 여유보다는 치열한 삶의 전투장으로 변해가는 오늘날 우리의 카페모습과 대비된다.커피에 대한 느긋한 인문학적 고찰에도 불구하고 아동착취나 문화제국주의와 같은 그늘짐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얼마 전 커피전문점 개업에 대한 규제를 알게 되고부터 마냥 호사를 부리기에는 마음 한 곳에 무거움이 있다.시장점유율이 확장일로에 있는 외국 유명브랜드 커피전문점은 직영체제로 거리제한 없이 개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가맹점 체제인 국내 토종 브랜드 커피전문점은 골목상권 보호차원에서 신규 지점 개점은 기존 점포와 거리제한을 두고 있어 고전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 것이다.선거철이다. 선량후보자들이 ‘손톱밑가시’, ‘전봇대’라며 규제철폐를 외치는 화려한 수사로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 철폐를 위한 진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커피전문점 개업규제처럼 짧은 지식이지만 알고 나면 단순하게 즐기며 마시는 커피라도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토종 커피브랜드는 어떤 게 있는 거지? 다 외국말인데?”

2020-04-07

선승후전(先勝後戰)

천 번을 읽으면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은 빌 게이츠가 극찬한 병법서다. 그는 “오늘날 날 있게 한 책”이라 했다. 난중일기에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이순신 장군도 즐겨 읽었다 한다.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많이 읽힌 병법서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이 처세의 교과서라 해도 무방할 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요량을 잘 정리한 책으로 평가 받는다.손자병법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출신의 손무가 지었다. 군사운용의 기본 원칙부터 실전에 응용될 수 있는 전술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고 싸우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도 이곳에서 나왔다. 세상의 이치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현대사회 어느 분야, 어느상황에 적용시켜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인간사회의 근간을 잘 파악하고 있다.특히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 제시로 2천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생의 지침서가 된다. 처세의 어려움을 알 나이에 들면 손자병법을 한번쯤 읽어 보라 권하는 이유다.그러나 손자병법은 병법이라 하지만 의외로 전쟁을 적극 권장치는 않는다. 손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미리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싸우라는 뜻이다. 불가피하게 싸워야 할 상황이라도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것이 손자의 핵심 가르침이다.총선 열기가 종반전 들면서 뜨겁다. 선거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지는 미지수다. 손자는 선승후전(先勝後戰)이라 가르쳤다. 미리 이겨놓을 만큼 준비해 싸우라 했다. 출마 후보자들은 과연 내가 싸울만큼 준비해 싸우고 있는지 지금쯤은 느낄까./우정구(논설위원)

2020-04-07

청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김승옥 작가그래도, 꽃은 피고 있다.서로 반갑지만 그리 반가워하지 못하는 얼굴들 사이로. 새로 학교를 들어간 아이들의 설렘이나 새롭게 만나게 된 인연에 대한 예감을 쉽사리 표현하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고 있다.생각해보면, 형편이 너무 어려워 죽을 것 같이 힘들던 시기에도, 전쟁을 겪으며 온통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시기에도, 꽃은 어김없이 이맘때가 되면 피었을 것이다. 그 시기 힘들었던 이들은 그 꽃을 보고 잠시나마 위로를 얻었을지, 아니면, 무참한 시간에 오히려 부아가 났을지 가늠하기 어렵다.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에 대해 노래하고 썼던 글들은 그렇게 인간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고됨과 절망에 대비되어, 그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저렇게 ‘저만치’ 놓여 있는 자연의 무심함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의 시간은 그렇게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원리를 따라 흘러가고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보며, 때로는 인생을 그것에 비유하거나, 때로는 훨씬 더 심하게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에 비교해 그 무심함을 탓한다.우리가 마치 청춘의 상징처럼 생각하고 있는 ‘막막함’이나 ‘무분별함’은 어쩌면, 그러한 사고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서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문학이 인간과 사회의 운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소위 ‘성숙한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던 것에 비해, 봄날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처럼, 가볍고 변덕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젊음을 문학의 형식을 통해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를 필요한 일이었다.문학이 ‘청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고 독자들이 그것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지금은 문학의 가장 커다란 주제 중 하나인 ‘젊음’이나 ‘청춘’의 유동성과 덧없음은 실은 근대 이후에 ‘발굴된’ 것이거나 ‘재발견된’ 것이다.어느 시대에나 ‘막나가는’, 그래서 ‘미성숙한’ 젊은이들은 존재해왔지만, 그것을 문학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서사들은 결국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상상해왔다. 무분별했던 아이가 세상의 온갖 쓰디쓴 경험을 하고 나서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서사들은 결국 젊음이 갖는 독자적인 가치보다는 완성된 인간에 대한 미달형의 상태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미숙한 젊음을 예찬한다는 것은 항상 주류 사회의 관점으로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위험한 ‘신드롬’으로 표상되거나 사회의 올바른 기능을 위협하는 반항적 태도로 간주되기 일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은 예찬할 만한 가치를 갖는 중요한 문학의 주제다. 젊음의 미숙함이란 죄악이 아니라 풍요로운 감정과 감각의 산물인 까닭이다. 진중하지 못하고 끓어 넘치는,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젊음이란, 바로 짧은 순간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일회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물론, 이처럼 ‘청춘’의 아이콘이 된 그들의 반항은 오히려 기성 세대들에게는 청춘의 추억을 자극하는 대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막 힘겹게 그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기억은 언제나 보정되고, 청춘의 고됨은 채색된다.오랜만에 모처럼 서가에서 어떤 세대에게는 청춘을 상징했을 김승옥과 최인호의 책을 하나씩 꺼내본다. 김승옥이 고백하는 부끄러운 어린 시절의 자아상은 어떤 시기에는 독자들에게 바로 청춘의 미숙함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아마 지금 시기에 어린 학생들이 읽으며 위안을 얻고 있을 것들 역시 어떤 시기가 되면, 청춘의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채색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시간은 조금씩 흔들리며 변화해가는 것이다.그래도, 꽃이 피고 있다. 미숙하여 아름다울 이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서로를 위로하자. /홍익대 교수

2020-04-06

그곳에 오래된 사랑 있어… 산청 내원사(內院寺)

지리산의 봄은 물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지리산 가는 길은 온통 봄꽃이 피어 열병을 앓는데 깊은 계곡에 몸담고 있는 내원사는 어쩌면 저토록 차분하기도 할까. 내원계곡과 장당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절의 양쪽으로 지리산의 청정 계곡이 흐르는 까닭만은 아니리라.내원사(內院寺)의 옛 이름은 덕산사(德山寺)였으며 통일신라시대 무염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무염국사는 무열왕의 후손으로 중국 마조 문하의 법맥을 이루었으며 동방의 대보살로 일컬어졌던 분이다. 무염의 법은 충남 보령에 소재하는 성주사의 일맥을 이루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이 되었다.덕산사는 이후 천여 년을 면면히 이어오다 조선 광해군 1년(1609년)에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된 채 수백 년 방치되었다가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고 이름을 내원사(內院寺)라 하였다. 내원(內院)은 도량이 느껴지는 불교 용어로 도솔천에 있는 선법당을 말한다. 미륵보살이 살면서 설법을 한다고 하니 절 이름만으로도 깊고 심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찰이다.계곡 건너편 높다란 석축 위에 쌓아올린 담장과 그 위로 고개를 내미는 기와지붕들, 절은 결코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아담하고 고요하다. 물소리가 예불 소리를 대신하는 반야교를 건너는 동안 이미 세속의 때는 벗겨진다. 노선비의 곧은 숨결 같은 경내로 들어서는 발걸음만 조심스럽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들떠 있는 봄조차 내원사의 담장을 넘지 못하고 비켜가는 걸까.절은 봄소식에는 무심한 듯 돌아앉아 묵직하다. 무언가에 끌려 들어서는데 검붉은 색을 띤 삼층석탑이 온몸으로 안겨든다. 보물 제 1113호 삼층석탑은 철분이 많은 석재로 만들어진 것인지 온통 붉은 빛깔로 얼룩져 있다. 1609년 큰불이 났을 때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인지도 모른다. 우주와 탱주가 굵게 모각되어 튼튼해 보이지만 비바람에 버텨온 노쇠함은 감출 수가 없다. 안내문에는 무열왕 때인 657년에 세워졌다고 하지만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되었다는 설도 있고,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사학자가 아닌 내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단한 역사를 안고 서 있는 탑 앞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던 자아도 닻을 내린다. 불법을 수호하며 나라를 지켜온 고대부터 빨치산과 마지막 토벌전을 벌이던 근래의 아픔까지 탑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응축되어 살아 숨 쉬는 위대한 석탑은 지난한 풍파 속에서도 천년의 기품을 잃지 않는다. 훼손이 심하다. 인적이 없는 내원사, 허리 휜 할미꽃들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탑을 지킨다.대웅전도 단청이 벗겨져 나이보다 깊고 쓸쓸해 보인다. 잎 새 뒤에서 수줍게 꽃을 피우는 연륜 깊은 동백나무와 은목서 한 쌍의 깊은 눈빛, 스님의 법복이 걸려 있는 대웅전 법당에서 느껴지는 훈기와 안온함, 게다가 대부분의 전각들이 작고 소박한 것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가. 향냄새에 몰려나오는 한 때의 가난과 아픔조차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이지 않은가.국보 제 233-1호 동양 최초의 비로자나불이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들어선 비로전 법당에는 삼층석탑만큼이나 가슴 뭉클한 비로자나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앞에 서는 순간 전율이 느껴진다.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석불, 얼얼한 울음과도 같은 감동이 온몸을 휘감는가 싶더니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단아한 눈, 단정한 코, 작고 예쁜 입, 볼록한 뺨의 양감이 돋보인다는 안내문과 달리 아무리 찾아보아도 석불의 표정은 잡히질 않는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것도 같고 고통으로 힘겨워 하는 것도 같다. 입자가 거친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마멸이 심하다. 세월은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고 또 여전히 많은 것을 남겨 두었다.조각 솜씨는 거칠지만 오랜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어 감동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표정 없는 불상 앞에서 어쩌자고 내 가슴은 자꾸 아련해지는가. 지리산 골짜기 인적도 드문 절에 숨어 있듯 살아가는 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상의 심한 마멸과 상흔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에 기뻐하며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를.조낭희 수필가석조비로자나불상과 함께 있었던 국보 제 233-2호 납석사리호는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명문을 통해 혜공왕 2년(766년)에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 반야교를 걸어 나오는데 무언가로 가슴이 뿌듯하다. 그런데도 왜 자꾸 뒤가 돌아 보이는 것일까.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으면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내원사로 가라. 물소리 홀로 내원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봄조차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비켜가는 스산한 적요 속에 당신의 모든 것 내려놓고 한 떨기 꽃이 되어보라.그리운 사랑 하나, 그대 가슴에 달처럼 차오를 것이니.

2020-04-06

막장정치와 선거보조금

강희룡 서예가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불법 정치자금 축소 등을 명분으로 지난 1980년부터 시행되어온 제도다. 선거보조금은 정당의 보호와 육성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 의해 공직선거가 있을 때에 지급한다. 따라서 선거가 있는 해마다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을 대상으로 경상보조금 지급기준에 따라 후보 등록 마감일을 기준으로 지급된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제21대 4·15총선에 여야 12개 정당에 선거보조금 440억7천여 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선관위는 정치자금법 제26조에 따라 전국 253개 지역구의 30%(76명) 이상을 여성 후보로 낸 당에게 지급되는 여성추천보조금을 77명의 여성후보를 낸 국가혁명배당금당에게 보조금으로 8억4천 여 만 원도 지급한다고 밝혔다.이번 4·15 총선에서는 20대 국회에서 여당과 범여 군소정당들이 야합한 4+1협의체라는 정치구조로 선거법인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21대 국회에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제1야당을 뺀 채 통과시켰다. 이 꼼수정치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바로 거대 양당의 2중대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230억 원의 선거보조금과 양당의 위성정당까지 포함하면 무려 300억 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지급하는 선거보조금이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꼼수 위성정당에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위성정당 후보들이 총선 후 통합 혹은 모 정당으로 복귀를 공언하고 있어 거대양당은 위성정당 몫인 85억 원에 달하는 선거보조금을 사실상 편취하고 있는 셈이다.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게 정지되고 전 국민이 절박한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양당은 국민혈세인 선거보조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선 벌써부터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바람이 시작됐고 영세소상공인은 당장 임대료조차 낼 여력이 없어 연쇄폐업 우려까지 나오는 등 당장의 생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이 편법적으로 수십억의 선거보조금을 챙기는 것은 전염병과 사투하며 시름하는 민생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선관위가 법의 취지와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법에 명시된 기준만을 적용해 선거보조금을 지급하는 행태도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남성중심의 정치 문화를 바꾸기 위해 규정한 정치자금법을 악용한 ‘허경영당’으로 불리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여성추천 보조금 8억4천만 원을 싹쓸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배분자격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선거보조금을 마구 지급한 것이다.국고보조금은 수 만원을 부당수령해도 고발되거나 환수되는 것이 당연한데, 수십억을 편취해 가는 정치행위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치에는 룰과 시스템이 없고, 국민세금은 감사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결국 그 돈은 당권파의 쌈짓돈이 된다.권한과 권리는 줄이고 싶지 않고, 의무나 책임 그리고 감시는 피하려고 하는 국회의 막장정치에 선관위가 만든 막장선거판이 아수라장을 만든 것이다. 눈 먼 돈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영원한 진리다.

2020-04-06

장수 비결

조선 11대 왕 중종은 몸이 약했습니다. 왕의 건강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던 왕실은 순창 지역에 122세의 장수 노인이 있다는 소식이 궁중까지 올라옵니다. 왕실은 예조에서 똑똑하다고 알려진 김시원을 뽑아 순창으로 내려 보냈지요. 노인의 아들 마행곤(馬行坤)은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면 장수 비결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합니다.첫째 할머니가 아침에 가장 먼저 드시는 것은? 둘째 할머니가 육종(암)에 걸린 적이 있는데 이를 치료한 약은? 셋째 가족들이 매일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는 것은?천재 김시원은 1, 2번 문제를 쉽게 풀어냅니다. 가장 먼저 먹는 것은 맑은 물 한잔. 암 치료제는 지역 발효 식품과 소식(小食)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제가 어렵습니다. 며느리는 떡을, 둘째 아들은 비녀를 갖다 드립니다. 손자는 천자문을 읽어 드리지요.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주는 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김시원은 혼란에 빠집니다.며칠 동안 가족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던 김시원은 어느 날 증손자가 아무것도 갖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방에서 계속 들리는 것을 발견합니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김시원은 마행곤을 찾아갑니다. “세 번째 비밀은 효(孝)입니다.” 마행곤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무리 귀하고 몸에 좋은 선물이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효를 다해 부모가 걱정 없다면 어찌 천수를 못 누리겠습니까!”조씨 할머니 장수 비결은 맑은 물을 마시고 발효 식품으로 소식(小食)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효(孝)를 행하는 것으로 김시원이 밝혀냅니다. 중종은 할머니와 일가족에게 상과 음식을 내렸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유전공학 발달로 점점 수명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늘어난 노년을 더 깊고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6

찬란한 슬픔

조현명 시인봄이 되니 지천에 꽃이다. 벚꽃은 벌써 지고 개나리 철쭉이 산천에 잔치를 벌인다. 꽃이 피니 세상이 밝아지고 아름답다. 바람에 꽃잎이 휘날려 밝은 빛이 내린 듯 열기가 가득하다. 그야말로 신천지다. 헉 여기에 신천지가 나오다니.그러고 보니 세상은 양면성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좋은 뜻을 담고 있는 단어가 온 세상의 지탄이 된 사이비종교의 명칭이었다니….코로나19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우한’과 ‘신천지’ 등이다. 우한의 봄에도 꽃이 필 것이고 신천지의 교단에도 꽃을 장식하고 꾸미는 헌화가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이 꽃 잔치를 슬픔과 죽음의 상가로 바꾸었다. 바깥 세상에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고 기쁨의 빛이 넘쳐흘러도 코로나19로 집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의 덧없는 풍경일 뿐이다.몇 해 전 젊은 조카가 세상을 떠났다. 어찌 되었건 그해 봄날 벚꽃아래에서 웃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누나는 오열하고 만다. 벚꽃아래에서 웃고 떠들던 그 음성조차 잊지 않고 기억나고 지워지지 않는다. 벚꽃만 피면 그 찬란한 슬픔 때문에 꽃구경은커녕 눈물로 적신다고 했다.올해 봄 코로나19로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은 역시 이 꽃 잔치를 슬픔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찬란한 슬픔이라고 이름 지어도 괜찮을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꽃이 아름다워 마음속에 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람 세상의 꽃은 어린이, 젊은이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에 더러워지고 추해지는 것이 꽃이기도 하다.목련이 필 때의 아름다움보다 목련이 지고 난 뒤 그 시체들의 추함을 나는 주목한다.물론 그것도 곧 바람에 쓸려나가고 말테지만 꽃들은 다 죽음을 안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사람들은 추한 것은 가까이하지 않고 밝고 예쁜 것을 가까이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꽃이 진자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사실은 꽃이 진자리가 진면목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확대한 모습을 보면 마치 꽃 같다. 물론 왕관과 같이 생겼기 때문에 코로나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같다. 저들의 사멸과 결국은 똑같을 것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것 말이다.모질지만 사람은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난다.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숙명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꽃들은 다 그 죽음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부터 꽃을 그대로 보지마시길…. 저것들이 저마다의 깊은 슬픔을 안고 아름답게 꾸미고 나와서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저것들이 짐짓 세상의 슬픔은 혼자서 다 감당하겠다고 찬란하게 폭발하고 있음을…. 미당은 시 ‘봄’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복사꽃 픠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 -‘봄’ 전문

2020-04-06

사회적 거리두기

사회적거리는 원래 동물의 행동분석에서 무리에서 떨어진 개체가 다시 무리로 되돌아오는 행동상의 한계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작은 새 무리는 비교적 많이 흩어져 있으면서 어떤 거리 이상 떨어진 개체는 다시 무리 쪽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무리가 흩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어떤 거리 이상 무리에서 떨어지면 불안을 느끼는 거리가 존재하는 데, 이것을 사회적거리라고 한다.사회적 거리는 이런 개념을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인간감정의 친소도에 적용한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R.E.파크가 제창한 개념으로, 공간에서 두 지점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거리의 개념을 친밀감이나 적대감 등의 인간감정에 도입해 친근성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 예를 들면 친구 사이가 통근·통학시 버스·지하철에서의 인간관계보다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심리학에서 쓰이던 사회적 거리 개념은 2020년 2월말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코로나19 전염병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 간의 거리를 유지하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캠페인을 제안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눈이나 비가 오는 날처럼 집에 머무르고,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예배 등의 집단 행사나 모임을 삼가하자는 내용이 골자다.대한의사협회도 2월 28일 대국민권고안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을 제안했고, 권준욱 중앙방역 대책본부 부본부장도 코로나19의 피해와 유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 위생과 함께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사회적 격리(거리 두기)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실천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06

총선, 유권자가 희망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처럼 기막힌 ‘막장 선거판’도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선거 승리만을 위한 꼼수 비례당과 꼼수 공천이 난무한다. 권력밖에 모르는 교활한 정치꾼들은 국민이 고통 받고 있는 코로나사태까지도 선거전략의 하나로 이용하고 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기꾼들이 설치고 있는 한국정치의 현실이다.선거법 협상을 거부했던 미래통합당은 하나의 위성정당을 만들었는데, 선거법 개정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두 개의 위성정당을 거느리고 있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때 ‘표를 훔치는 도둑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통합당은 바늘도둑’이고 ‘민주당은 소도둑’이 아닌가? 민주당은 스스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의겸·최강욱 등 청와대 참모들과 정봉주·손혜원이 또 하나의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2중대와 3중대를 만들어 놓고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총선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사려는 포퓰리즘(populism)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삶의 토대를 잃은 국민을 지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코로나를 빙자하여 지방정부들은 경쟁적으로 현금을 살포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국민의 70%에 가구당 100만원씩 주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더불어시민당은 모든 국민에게 매달 6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중앙선관위에 제출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철회하였다. 재난구호를 명분으로 매표(買票)행위나 다름없는 현금살포가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이처럼 총선을 앞둔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개 눈에는 X만 보이고, 정치꾼 눈에는 표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 그들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다. 때문에 유권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혹자는 정치판 돌아가는 꼴이 보기도 싫고, 마음에 드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 유한한데 완벽한 정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좋은 정당, 좋은 후보자를 찾지 못했다면 덜 나쁜 정당, 덜 나쁜 후보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선택에 있어서 유권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특히 경제정책의 성과는 무엇이며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이 있었는가? 조국 일가의 비리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코로나의 확산 원인은 무엇 때문이며 정부의 방역대책에는 문제가 없는가? 후보자는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는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인가, 권모술수에 능한 ‘교활한 정치꾼(politician)’인가? 선거 때만 머리를 조아리는 말뿐인 사람인가, 언제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인가?4월 15일은 유권자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날이며, 민심이 천심(天心)임을 증명하는 날이다. 오직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죽어가는 한국 민주주의를 회생시킬 수 있다.

2020-04-06

참정권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다. 17∼18세기 유럽의 시민혁명은 절대주의를 붕괴하고 민주주의를 불러왔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정치 참여권 부여는 한참 뒤에 이뤄진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의 참정권을 막았던 것이다.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다. 이후 1902년 호주, 1906년 핀란드 그리고 미국은 1920년 남녀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었다. 참정권은 모든 국민이 직·간접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정신에 기초한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 국민심사권, 공무담임권 등이 해당한다.봉건사회에서 일부 돈 많은 부유층이 누렸던 참정권은 시민혁명이란 고난의 역사를 뚫고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돌아 온 권리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다. 그래서 참정권을 정치적 자유권이라고도 부른다.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소급 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을 제한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참정권 보장을 선언하고 있다.총선을 10여일 앞둔 가운데 코로나 예방을 이유로 확진자 일부의 투표권이 제한된다는 소식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코로나로 치료중이거나 자가격리중인자, 해외에서 들어오는 교민과 유학생 등 선거권 제한에 묶인 사람이 줄잡아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국의 무관용 원칙에 따라 그들의 바깥 활동이 일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솔한 선거권 제한이라며 헌법소원도 냈다. 정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닌가 하는 비판도 쏟아진다.정부의 졸속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국민의 참정권을 짓밟은 것이다. 당장이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05

‘개돼지’ 딱지 떼기

안재휘 논설위원교육부 정책기획관이던 나향욱 씨는 취중 실언으로 극심한 고초를 겪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6년 7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진보언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 99%에 해당하는 민중은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망언한 것으로 보도돼 파면당했다. 재판에서 겨우 승소해 강등 복직했지만, 여전히 참담한 처지에 놓여 있다.‘개돼지’라는 말이 갖는 모욕적 이미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폭풍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촛불집회 현장의 단골 선동 문구의 하나로 등장했었다. 그런데 4·15총선 선거가 시작된 이래 ‘개돼지’라는 말이 정치권에 또다시 등장했다. 각기 동원하는 용도는 다르지만 이제 정치권에서 ‘개돼지’ 용어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논리에 동원되는 일은 흔하다.인천을 방문한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은 코로나19 사태가 블랙홀이 된 선거판을 지적하며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우리 국민은 절대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정치권의 법인세 감면 주장에 대해 “‘개돼지’ 취급당하며 말라버린 낙수에 더 이상 목매지 말자”고 목청을 높였다.정치권이 써먹는 ‘개돼지’는 유권자들을 흥분시키려는 단골 선동언어가 됐으나, 정작 천박한 행태로 보면 정치권의 의식 자체가 더 의심스럽다. 이번 선거전에 나타난 ‘위성 정당’ 논란만 해도 그렇다. 제1야당을 배제하고 만든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1당독재 국가에서나 존재하는 위성 정당들을 양산했다. 급조된 통발 정치는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 추악한 만행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여당의 막강 대권 주자 이낙연 선관위원장의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문득 떠올랐다. 나향욱이 인용했다는,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대사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돼지’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정치꾼들의 진짜 속마음이 대략 이런 수준 아닐까.패거리 의식에 찌들어 자기편이면 무조건 칭찬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상대편의 언행은 비틀고 물어뜯는 극단적인 내로남불 행태야말로 진짜 ‘개돼지 행각’이다. 국민의 시시비비(是是非非) 정신을 모조리 증발시킨다는 측면에서 이 나라의 정치인 팬덤 현상은 비극이다. 그 폐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4·15총선 양상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총선을 앞둔 유권자들의 고통은 모름지기 ‘물고문’ 수준이다.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에 우리는 지혜로운 ‘개돼지 우리’ 탈출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층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 쏟아지는 포퓰리즘의 우박 세례를 이겨내고 이 ‘개돼지’ 굴욕 딱지를 확실하게 떼어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지는’ 하찮은 하등동물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2020-04-05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경쟁력

세계적인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자유로운 이동, 외출의 제한, 대규모 행사의 취소나 연기 등 조치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는 가계, 기업 각자 나름대로 지금의 환경에서 자신의 활동을 지속하려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얼마 전 로이터는 ‘코로나가 만연되면서 온라인화하는 세계의 일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자택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 미국 미시건주에서 온라인원격진료를 시작한 의사, 홍콩에서 실시간 채널로 미사를 주재하는 가톨릭 신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라인으로 댄스 레슨을 시작한 안무가, 베네주엘라 카르카스에서 친구들과 오랫동안 지속했던 아유회를 자택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피크닉으로 대체한 주부 등을 소개하였다. 활동이 제한된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온라인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주주총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기업까지 등장하였다. 각 경제주체는 그저 곤란하다는 것에서 벗어나 각자 나름의 생존을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모든 경제활동에서 이와 같은 디지털화나 온라인화가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아날로그에 맞추어 형성되었던 기존의 법적 제도적 기반이 그 속도를 실시간으로 뒤따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변화가 4차 산업 혁명과 맞물리면서 제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졌다.그렇다면 경북지역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그동안 경북지역의 문제 내지는 한계로 지적되었던 것은 저출산 고령화였다. 23개 시군 모두 농어촌지역에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기력이 쇠약한 고령의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이었다. 심지어 구미, 포항 등 주력 산업도시의 부진으로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지역의 한계나 약점을 가진 상황에서 디지털시대로 변화하는 최근의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헤쳐나가면서 생존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과제는 만만치만은 않다. 하지만 경북의 문제로 지적된 부분들이 어쩌면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는 새로운 장점이자 지역 경쟁력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지역 나름대로 최근의 변화에 차근차근 적응해 나가기 위한 정책을 궁리하고 마음가짐도 다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용이나 노동력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물리적 노동력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근력이 쇠하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고령자는 그저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여왔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당연한 진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로 불리는 지금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암묵지 등의 지적자산을 지닌 고급인재들이 단지 청년들과 같은 기력을 쓰지 못하고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다고 무시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는 앞으로 어르신들이 활약할 시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순수하게 인간의 육체적 능력으로만 판단하던 시각에서 탈피하여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을 갖춘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며 그 영역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체력적 신체적 여건만으로 고령자들의 고용을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론, 로봇, 기타 디지털기기가 인간의 체력적 신체적 분야를 담당하고 어르신들은 이러한 기계나 디지털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을 청년들보다 더욱 유효하게 발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과 굳이 육체적 요구조건만으로 비교되며 소외되었던 장애판정을 받은 분들도 자신의 신체적 약점은 이러한 디지털 도구에 맡기고 자신만의 전문콘텐츠를 온라인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활용하는 경제활동도 확대될 수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좀 더 구체적으로 각 경제활동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야를 상상해보기로 하자. 대부분이 농어촌지역인 경북에서 특히 농림어업분야는 소중한 경제영역이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부진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나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라도 논밭의 상황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저 집안에서 농사용 로봇이나 드론을 띄워 화상으로 살펴본 다음 논에 물을 대려면 온라인 농업통제시스템을 통해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버튼만 클릭하면 되는 디지털 농업을 실현하면 된다. 지금의 고령자는 과거 60세 이상의 어르신과 달리 386세대로 컴퓨터 온라인에 일찍 노출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서비스 분야는 사이버대학원까지 등장하였을 정도로 비교적 빨리 디지털화가 진행되었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특정 재난, 재해로 인해 출석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농어촌의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시스템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초중고에서 원격강의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교사들은 수업을 진행하되 특정 사유로 출석하지 못한 학생들은 본인인증을 거쳐 온라인으로 함께 수업을 받고 이메일로 숙제를 제출하거나 학교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같은 시간대에 시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은 어떠할까.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정부의 공공입찰, 행정복지센터의 주요 민원서류발급 등은 전자화된 지 오래되었다. 이제 좀 더 영역을 넓혀 주요 인허가분야도 필요서류를 전자파일로 접수하고 부족한 부분이나 상세한 질의 사항이 있다면 굳이 생업에 바쁜 민원인이 공무원을 대면하지 않아도 일이 진전될 수 있는 시대가 예상된다. 유통 등의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가게 주변의 주민들은 해당 소상공인의 가게 아이콘을 눌러 필요한 물건을 골라 주문하되 직접 몇 시에 가지러 갈 것인지 아니면 배달을 요청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현관문을 나서 5분 정도만 걸으면 찾을 수 있는 가게라 하더라도 주민 자신은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집 앞의 가게 대신 서울, 대구 등의 지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쇼핑에서 주문하여 택배로 받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결국, 소상공인들도 디지털화에 동참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건설부동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요 건설공사장의 인력충원 담당자는 일일이 사람을 수배할 필요도 없이 그날 필요한 기능공, 인력요건 등을 온라인시스템에 게시하면 되고, 노무자들도 공사판을 찾아다니기거나 인력사무소에서 하염없이 대기할 필요도 없이 시스템에 신청한 후 나중에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공사장소로 찾아가기면 하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토목건설업자라면 비바람이 불건 덥거나 춥건 아랑곳하지 않고 설계대로 프로그램된 건설 로봇에 맡겨 공사 기일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와 함께 찾아왔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경북지역의 영원한 약점은 분명 아니다. 단지 나이 문제만으로 현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전문인력들은 지역에서 충분히 파악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둘 필요가 있다. 전문지식을 지닌 고령자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지역의 미래가 달려있다. 경북지역의 약점이었던 높은 고령화율이 다가오는 디지털 온라인시대에는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05

우리 아이 독해력

김현욱 시인위리안치가 따로 없다.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집과 집,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어른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집콕’했던 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코로나19로 학교도 못 가고 집에 갇혀 시름시름 앓는 중이다. 그런데다 온라인 개학까지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수업을 들어야 한단다. 원격수업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웬만한 동기와 의지가 아니고서는 꾸준히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하물며, 아이들이야!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은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곁에서 추임새를 넣어줄 고수나 페이지를 넘겨줄 페이지 터너가 필요하다. 엄마나 아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곁에서 거들어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담임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초등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독서와 글쓰기다. 초등교육의 핵심은 독서와 글쓰기의 기초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중에 한 가지만 고른다면, 단연코, 독서다. 독서를 통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즉,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아이의 독해력 수준은 어떨까? 지난주에 초등 3학년 딸과 탈무드의 ‘마법의 사과’를 읽고 토론, 글쓰기를 했다. 원문은 ‘탈무드’를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탈무드’는 초등학생 자녀와 읽고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자녀와 함께 다음 글을 읽어 보자.“어떤 왕에게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병에 걸려 위급했다. 왕은 딸의 병을 고쳐주면 딸과 결혼시키고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포했다. 그때 먼 지방에 삼형제가 있었다. 그들 형제는 각자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형은 어느 곳이라도 볼 수 있는 마법의 망원경을, 둘째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의 양탄자를, 막내는 어떠한 병도 고칠 수 있는 마법의 사과를 갖고 있었다. 그들 중 첫째가 그 소식을 알고는 공주의 병을 고쳐주자고 말했다. 삼형제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 마법의 사과를 공주에게 먹였다. 공주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왕은 매우 기뻐 삼형제 중 한 사람을 사위로 맞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를 사위로 삼을지 난감했다.만일 여러분이 왕이라면 누구를 사위로 맞을 것인가?”‘마법의 사과’를 읽고 요약할 수 있는가? 모르는 낱말의 뜻을 짐작할 수 있는가? 육하원칙 질문, 만약에 질문, 왜 질문 등에 답할 수 있는가? 우리 아이의 독해력 수준을 가늠해보려면 책 읽어주기를 통해서 점검해야 한다. 독해력은 꾸준한 독서토론, 글쓰기를 통해 향상된다. 딸은 마법의 망원경을 가진 첫째가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가 아니었으면 공주가 아픈 걸 몰랐을 거라며. 책에는 마법의 사과를 가진 셋째와 결혼해야 한다고 나온다. 셋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토론을 통해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왕이 아니라 공주가 삼형제와 각각 데이트를 해보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누구의 공이 더 큰가보다 누가 공주의 취향이나 성격에 잘 맞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코로나 19로 자녀와 독서토론 할 시간이 늘었다. 그건 고맙다.

2020-04-05

사라진 비둘기처럼

쥐스킨트의 단편 ‘비둘기’는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30년 넘도록 단순한 삶을 반복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매일 정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8시 15분까지 출근하죠. 은행 경비원입니다. 중요한 업무는 출근하는 지점장 뢰델씨에게 인사하는 일입니다. 노엘은 단조로움 그 자체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메마른 삶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며 지속하는 것이 노엘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 루틴이 깨지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조나단 노엘은 어느 날 출근하려 집을 나섰는데 복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도저히 비둘기가 있는 복도를 지나 출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죠.“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우산을 펴서 비둘기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날 하루 그의 삶은 엉망진창입니다. 삶이 궤도를 이탈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안과 공포로 노엘을 이끌지요. 지점장에게 인사하는 일조차 구멍 내고 맙니다. 하루가 송두리째 엎어집니다. 비둘기가 무서워 집을 떠나 호텔 신세를 진 그는 불안 끝에 자살하기로 결론을 내립니다.우여곡절 끝에 노엘은 안정을 찾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비둘기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공포는 착각이었지요. 비둘기는 사라졌습니다. 노엘은 다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코로나19 사태로 무너져내린 우리 일상도 세상을 뒤덮은 공포의 그림자도, 비둘기 사라지듯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비록 우리 일상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엇이라 해도, 그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번에 체험했기에./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5

4·15 총선의 핵심 포인트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코로나19 사태로 힘들지만 총선은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후보 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 선거판은 아직도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300석의 의석을 앞에 놓고 여당과 야당은 과연 몇 석을 확보할 것인가. 여야 모두 130+α라고 승리를 장담하지만 예측은 사실상 어렵다. 현재의 여론 조사만으로도 총선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역대 총선의 여론조사는 결과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총선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몇 개의 포인트를 살펴본다.먼저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중간 평가 등 코로나 외의 이슈 부각 여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로서는 ‘문재인 정부 심판론’도 ‘야당 심판론’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당은 코로나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국민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집중부각하고 있다. 현재는 유권자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이러한 정책 자체가 대립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의 세계적 확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 비판보다는 코로나 수습이 총선 결과에 더욱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후보나 지지 정당을 선택하지 못한 무당층 표심이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보수층과 진보층 지기기반은 여야로 선명히 양분화 되어 있다. 그러기에 아직 20∼30%인 중도층이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1야당이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집권여당이 개혁보다는 안정과 책임을 강조하는 정책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선거 막판 중도층의 선택으로 전체 투표율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 21대 총선 투표율 58%를 넘으면 야당에 유리하고 오히려 낮아지면 여당에 유리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투표율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선거 운동 과정의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 파동이 선거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당시의 진박 감별사의 등장과 김무성 당대표의 잠적은 집권당의 총선 패배로 박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노인 폄훼 발언’은 대선 참패의 요인이 되었다. 지금과 같은 선거 구도에서의 지도부의 ‘말실수’등 돌발 변수는 선거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황교안 대표의 최근 발언을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현재로서 전체 선거 판세는 수도권과 호남에서 여당이, 영남에서는 야당이 앞선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라는 양극화된 구도는 뚜렷이 보이는데 중도나 제3당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선관위 등록 정당이 50여 개이며 비례 후보를 낸 정당이 35개에 이른다 한다. 준 연동제 비례대표의 선거법 취지와는 달리 이들의 입지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간 이번 총선이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가 갈등의 해소보다 갈등의 증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10일간 선거 과정을 잘 지켜보자.

2020-04-05

잊기 쉬운 자동차의 어떤 기능에 대해

박근영 공무원“아! 이거 참…. 강사는 뭐 하는 거야!”도로주행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신호가 짧은 교차로 탓에 바짝 붙어 출발하다 화들짝 놀라 급정지를 했다. 짜증이 일었지만 도로주행 시험을 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겸손 모드로 돌아간다.1999년 가을,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기어 변속 후 차를 출발시켰다. 식은땀이 흘렀다. 첫 신호등에 도착하자 긴장이 거의 풀렸다.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 걸치고 한 손으로 운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코스를 순조롭게 돌고 결승점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무사히 마쳤다. 90점은 가뿐하리라. 천만의 말씀! 감독관은 채점표를 보며 내 실수를 하나하나 짚었다. 출발할 때 형식적으로 차량을 돌아본 것, 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 한 번도 그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평소처럼 탑승 전에 바퀴를 몇 번 톡톡 차고 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알고 보니 차량 주위에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는 없는지, 바퀴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운전석에서는 후방을 살피고 사이드미러로 양옆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거울을 째려보며 카레이서가 정면을 주시하듯 눈을 치켜떴다. 채점표를 보던 감독관에게 내 비장한 눈빛이 보일 리 없었다. 시동 걸고 출발하면 그만인 줄 알았지 이런 절차로 쇳덩이와 내가 세상의 안전을 도모하는 심오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날 내 점수는 70점이었다.저녁 6시, 먼저 집에 가려는 차량들이 무례한 끼어들기를 반복한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따로 없다. 내 퇴근길은 램프 구간을 몇 번 지나 차선을 여러 차례 변경해야 한다. 차선을 바꿀 때는 옆 차 속도를 계산해 동물적 감각으로 끼어들어야 한다. 이때 내가 ‘끼어들겠다’는 의사 표시는 방향지시등으로 한다. 일명 깜박이. 옆 차선에서 누군가 깜박이를 켜고 진입하려 하면 나는 뒤에서 오는 차간 거리와 앞차와의 간격을 가늠해 속력을 살짝 줄여준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도로교통법 제38조1항에 명시된 운전자의 의무다. 차선을 변경할 때나 좌회전, 우회전, 유턴할 때도 반드시 켜야 한다. 깜박이는 여유를 두고 켜는 것이 좋으며 대략 6초면 옆 차선의 차들이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얌전히 가던 옆 차가 깜빡이 없이 칼치기로 들어올 때는 그 운전자의 손가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에 심적 동요는 없다. 대신 화답하는 뜻으로 경적을 기다랗게 울려준다. 상대 운전자는 사과의 뜻으로 비상등을 몇 번 깜박거린다. 비상등을 켜려면 손을 뻗어야 하지만 방향지시등은 손가락만 뻗치면 닿는다. 자동차는 인체공학적으로 효율적이다.그날 도로주행 감독관은 내가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바로 끄고 차선 진입을 했다고 감점의 이유를 말했다(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차선을 바꾼 기억조차 없는데 어찌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끈 기억이 있을까? 두 차례나 그랬으므로 깜빡이 부문에서 내가 대량 실점을 했단다. 그 경험은 각인 효과가 있어 나는 이후로 확실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그 시절은 유난히 초보 운전자에게 가혹했다. 깜박이를 켜면 일부러 끼어들지 못하게 속력을 내는 일이 많다며 절대 깜박이를 쓰지 말라는 말까지 돌았다. 오죽하면 ‘여러분이 몰랐던 차의 기능’이라며 깜박이 켜기에 관한 유튜브 영상까지 나왔을까? ‘깜박이 켜기’ 운동도 있었다.운전자는 차를 흉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깜박이는 남을 배려하고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무례하게 차선을 넘나드는 운전자를 보며 실력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보복 혹은 난폭 운전을 일으킬 수 있다. 깜박이 사용은 주변 차량에 내 차의 방향 정보를 제공해 양보를 유도하고 사고를 예방한다. 나와 이웃을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우리가 잘 모르는) 자동차의 훌륭한 안전장치다. 운전대 왼쪽에 튀어나온 그것을 애용하는 일은 타인을 위한 배려다.

202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