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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야당 복(福)’

안재휘 논설위원“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한 ‘야당 복(福)’이 있는데, 보통 복이 아니라 천복(天福)이다.”지금은 민생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이 지난해 11월 초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다. 박 의원은 박찬주 전 대장 영입 과정에서 황교안 대표가 보여준 태도와 관련해서는 “양손에 떡을 들고 한쪽만 먹어야 하는데 두 개 다 먹으려고 하니까 두 개 다 놓치는 꼴”이라고 비웃기도 했다.최근 미래통합당의 TK(대구·경북) 공천 후폭풍 소용돌이를 지켜보노라면 새삼 ‘문재인 대통령의 야당 복(福)’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아무리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독자적으로 한 것처럼 해도, 공당의 공천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당 대표의 몫이다. 황교안 대표는 왜 이런 이상한 TK 공천을 추구하거나 방관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섣불리 대권을 염두에 두고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천 결과를 뜯어보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친황(親黃·친황교안)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약진했다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통합당이 TK 지역에서 또다시 ‘공천학살’이니, ‘막장 공천’이니 하는 뒷말을 폭발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당의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도 없고, 절차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낙하산 공천 장난질까지 시도된 것으로 읽힌다. 무엇보다도 한심한 패착은 TK 유권자들의 자존심을 전혀 고려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문재인 비난’과 ‘통합 웅변’만으로 되는 선거판이 아니다. 국민의 관심은 욕설 능력도, 닥치고 통합의 만용도 아니다. 첫 번째가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미래로 나아갈 혁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고, 다음은 도덕성과 실력, 경륜을 갖춘 인재들을 고루 품는 대안 정당으로서의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헐뜯는 일 말고 황교안 대표가 대체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흐드러졌다. 미래통합당의 21대 총선공천이 막바지에 다다른 가운데, 공천 배제(컷오프)된 현역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잇달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TK 선거판세가 오리무중으로 치닫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 전 지역구에서 후보를 냈다. 3분할 구도라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이번 총선은 당연히 집권당에 대한 심판이어야 맞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여당은 자신만만하게 청와대 출신들을 일선에 전진 배치하고, 그토록 꺼리던 비례 정당도 염치 접어놓고 착착 진행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집권당 후보의 선전(善戰) 현장이 수두룩하다.공천에서 감동을 주기는커녕 내분 양상까지 보이는 제1야당의 자충수가 총선 판세에 변수로 떠오를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초 영국의 총선이 그랬듯이 현대인들은 집권당에 대해 맹비판을 퍼부으면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 야당은 또 절대로 안 찍는 실리적 표심이 강하다. ‘하늘이 내린 복’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야당 복(福)’은 또다시 작동할 것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20-03-22

심리방역

심리학은 인간 내면의 과정에 의문을 갖고 답을 구하는 학문이다. 마음의 이치를 깨닫는 다소 애매한 학문영역이라는 점에서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정신과학’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발달한 요즘은 인간의 삶과 관련한 문제들이 다양하게 부각되면서 심리학의 적용분야는 갈수록 느는 추세다.심리학을 이야기하다 보면 ‘피그말리온 효과’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세상의 살아 있는 어떤 여인보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피그말리온의 사랑에 감동한 여신 아프로디테는 갈라테이아에게 결국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말할 때 피그말리온 효과라 한다. 1968년 미국 하버드대학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실험했다. 특정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해 준 뒤 8개월 후 그들의 성적을 측정해보니 성적이 올라 피그말리온 효과가 입증됐다고 한다. 심리가 실제로 병세를 호전시키거나 긍정적 상승작용을 하는 사례는 많다. 플라시보 효과(가짜약 효과)도 그런 케이스다. 의사가 준 가짜 약임에도 환자에게는 치료효과가 드러나는 경우다. 마음의 병이라 일컫는 우울증 등에 이런 효과가 있다. 환자의 심리상태가 영향을 받은 탓이다.코로나19가 한달 째 이어지면서 감염병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로 불안과 공포, 불면증, 무기력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심리 방역까지도 이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코로나19 극복의 길, 넘어야 할 산이 많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22

지역경제의 조기 건강회복과 장수를 위한 행동 강령

지난 3월 16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공식 블로그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대응 방안을 발표하였다. ‘건강한 세계 경제를 위해 필요한 정책 행동(Policy Action for a Healthy Global Economy)’이라는 제목의 이 블로그에서는 코로나19가 공중위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처하려면 검역이나 사회적 거리 전략(자주적인 격리)이 올바른 처방전이긴 하나 세계 경제를 보호하려면 그와 정반대되는 일도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전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단축을 위해 연락상태를 유지하면서 긴밀하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최고이며, 각국 정부에게도 지금까지 이상으로 많은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동안이라도 경기를 개선하고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3대 정책 행동을 제안하였다. 첫째, 장기적인 경제적 손실 예방을 위해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 지출을 주문하였다. 각국 정부가 유급병가 확대, 표적화된 조세 부담 경감조치 등을 계속 확대하여 위기에 빠진 기업에 효과가 파급되도록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선진국 중앙은행은 금융완화와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신용 흐름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수요를 뒷받침하여 경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금융정책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투자가들이 과거 자금 유출 사례 중 최대규모인 약 420억 달러의 자금을 신흥시장국에서 철수하였다는 국제금융협회(IIF)의 조사 결과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은행들이 자본 유동성 버퍼 이용 등 현행 규제에 대한 유연성을 발휘하여 위험에 노출된 차주에게 융자조건을 다시 협정할 것을 장려하는 등 규제 완화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이 3대 정책 행동은 모두 협력적이고도 동시에 추진해야만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결국,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요지는 각국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상호 협조하여 재정금융정책을 총동원하였듯이 이번에도 규제완화조치까지 포함한 세 가지 정책 행동을 모두 동원해야만 코로나19로 손상을 입은 세계 경제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진단인 셈이다. 매우 타당하면서도 당연한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다. 각국 모두 자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해 방역과 진단, 전염병 확산 방지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자국 우선 보호조치 과정에서 상호 협조는커녕 국가 간 불편한 감정마저 생겨나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국가 간 자본 흐름에 관한 정책 공조가 원활해지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크며,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의 혼란도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다.사실, IMF가 권장한 것처럼 세계 경제나 우리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거시적인 정책 대안들이 아무리 유효한 정책이라도 포항과 같이 공간 지리적으로 크지 않은 지역 단위까지 실질적인 효과가 파급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의 정책 행동은 어느 지역이나 균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그 나라의 경제산업구조와 금융 시스템 등을 거치고 지역별 특징이 맞물리면서 조금씩 정책 효과는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에 IMF가 발표한 3대 정책 행동도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추진 중인 정책이기도 하다. 중앙정부와 한국은행이 실시하고 있는 재정 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 등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도 물론 포항 지역경제에 유효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IMF의 제안과 관련한 지역 차원의 별도의 정책 행동은 그리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재정 등 지역 자체의 여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아무리 작은 규모의 단위여도 포항 지역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한 나라의 구성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크기나 종류,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포항을 둘러싸고 있는 대구 경북지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건강에 이상 신호를 나타내고 있는 기업, 상공업자, 서비스 유통업체 등 지역 소재 기업의 건강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 기업보다는 부실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간단히 감기처럼 약이나 주사 한번 맞고 일어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더욱 세심하게 심한 몸살이나 중병에 걸렸다가 회복하는 상태임을 고려한 보다 장기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지병을 지닌 사람이 이번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에 쉽게 노출되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지금 긴급 금융 지원 등 단기 처방에 힘입어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착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위기상황이 다가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어 지속 가능한 경제 체질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장기처방전을 마련하고 이에 충실한 회복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각 기업, 단체 등이 마련하여 시행한 자구책 가운데 의외의 효과를 발휘한 부분도 있었다. 일례로 그동안 의구심을 가졌던 재택근무제도가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 무서운 전염병이라도 개인별 방역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 각자가 방심하지 않고 철저하게 방역프로토콜만 지켜도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도 확인하였기에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 사스, 메르스 등 그동안 수많은 전염병이 있었지만 크게 보건위생에 대한 경각심은 가지지 않았던 시민들에게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앞으로는 철저한 보건위생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확실한 경계감을 모두에게 주었다는 점 등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깨닫고 체화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포항경제가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경제가 건강을 조기에 회복하고 장수할 수 있는 포항지역의 자율적인 행동 강령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첫째,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지금까지 각 경제 주체들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는 감염확산 방지 노력은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 둘째,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아예 영업을 중단한 영업소는 철저한 방역 후 안내문과 함께 영업을 재개하여야 한다. 그리고 매출도 신통치 않았던 차에 이번 기회에 당분간 쉬겠다고 마음먹은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이라면 폐업할 생각이 아닌 한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의식과 행동의 변화는 순식간에 바뀐다. 좀 더 폐업이나 영업을 중단한 시일이 지나게 되면 소비자의 행동 선택이 이루어지는 기억에서 아예 삭제되기 쉬우며, 소비자가 다시 그곳을 떠올려 찾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음식점, 카페 등 요식업소들은 당장 이번 사태가 공식 종료선언을 하더라도 주방은 물론 종업원 모두에게 투명위생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만 한다. 이는 포항 관광산업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넷째, 전통시장 상인회는 지금부터 1~2인용 소형 포장제, 정찰제, 지역산 표시제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인터넷, 모바일 쇼핑과 택배서비스를 마련해야만 한다. 당연히 이 쇼핑몰에서 지역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3-22

사이비 종교에 취약한 한국 사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신천지를 경계하자는 주장은 일찍부터 있었지만 기독교 내부의 흔한 ‘이단’ 논쟁쯤으로 여겼다. 코로나19의 ‘신천지’ 집단 감염이 없었다면 신천지 정체는 묻혀 버릴뻔 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사이비 종교들의 폐해를 여러 번 경험했다. 전용해의 백백교, 박태선의 감람나무, 조희성의 영생교, 근년 유병언의 구원파도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신천지의 정체도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야 할 것이다.차제에 우리는 사이비 종교가 쉽게 착근하는 우리 사회의 토양부터 살펴보자. 우리사회는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되고 희망의 사다리마저 사라진 절망의 구조는 쉽게 사이비 종교의 온상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신뢰는 무너지고 경쟁적 사슬 구조는 더욱 강화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소외되고 불안한 사람들은 정신적 도피처를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식당과 술집, 노래방, 모텔 등 유흥업소가 증가할수록 교회도 증가하는 기이한 구조이다. 사이비 종교는 이러한 취약한 틈새를 파고드는 괴물이다.우리와 같은 다종교 사회도 사이비 종교의 온상이 된다.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다종교의 공존 사회이다. 기독교는 여러 종파로 분열되어 특정 종파는 다른 종파는 구원이 없다고 선전한다. 일본산 신흥종교까지 번창하고, 서울에는 이슬람 사원까지 문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종교는 형식주의로 흘러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기독교 망국론’을 열변하던 어느 철학 교수님 모습이 떠오른다. 세계 종교의 전시장이 된 우리 사회는 사이비 종교가 언제라도 슬쩍 끼일 수 있는 토양이 있는 것이다.한편 사이비 종교가 파고든 것은 우리의 기성 종교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어느 종교나 배금주의와 물신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종교는 이미 사회적으로 상처받은 외로운 사람들의 위로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기성 교회의 세습 문제나 파벌 싸움으로 송사로 번지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는 매너리즘에 빠져 신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여기에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는 생활 밀착형 방식으로 쉽게 접근한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재림 예수가 되고 달콤한 구원 메시지로 신자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신천지집단이 기독교나 천주교의 신자를 포섭대상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사이비 종교의 척결은 아직도 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의 불평등한 불안 구조부터 바로 잡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우리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간극을 메우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중 최상위의 욕구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욕구로 규정했다. 인간이 절대자를 추앙하는 종교심은 고상한 단계의 욕구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성 종교는 자신들의 역할과 사명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이 세상 것만 추구하는 기복 신앙에 흐르지 않았는지 자성해야 할 시점이다.

2020-03-22

자기주도 방역이 ‘코로나19’의 최고 ‘백신’

이강덕 포항시장코로나19 확산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실시한 지 벌써 한 달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종식되기는커녕 팬데믹이 선언될 정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역량을 결집해 코로나19에 맞서왔지만 이제부터는 전체적 대응방향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상생활을 서서히 회복해가는 가운데 감염병 차단과 예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이다.모든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방역, 의료적 방역, 지역공동체를 위한 방역도 스스로를 위한 ‘자기주도방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의료적 방역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시의 경우, 시민의 안전과 지역사회의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인 의료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국민안심병원과 전염병전담병원의 운영을 통해 안전한 병원환경을 유지하는 한편 효율적인 선별진료소 운영으로 숨어있는 감염원을 조기에 발굴해 격리하고,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검사를 확대 실시하고 있다.지역 공동체를 위한 방역은 현재 우리가 실천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당분간 지속되어야 한다. ‘아파도 출근한다’는 사회문화는 ‘아프면 쉰다’로 바꿔야 한다.직장인을 비롯해 모든 사회문화 속 일상생활에 있어 인식의 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음식점과 커피전문점 등 식품접객업소도 자기주도적인 소독방역을 통하여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신뢰를 얻음으로서 스스로 소비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시민들이 각자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을 더욱 철저히 생활화하는 것이 자기방역이다. 자기방역을 통해 감염병 바이러스의 원천적 차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생활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최고의 방역대책인 것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포항시는 매주 수요일을 ‘방역의 날’로 지정해 전 지역의 소독방역을 정례화하고, 공공시설과 취약시설에 대한 전담 책임제를 통해 집중관리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 ‘생활방역단’을 구성해 전통시장 등 읍·면·동 전역에 걸친 집중적인 방역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자기주도방역을 실시한 업소에 대해서는 자기주도방역인증 스티커를 부착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제는 각 분야에서 ‘자기주도방역’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가야 한다.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고, 경제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할 정도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눈에 보이는 감염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원과 싸워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이러한 사회·경제위기의 극복은 확실한 자기주도 방역의 토대 위에서 다시 시작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역할에 달려 있다. 각자의 일상에서 지키는 ‘자기주도방역’은 이번 사태를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2020-03-22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사람들

1957년 11월 19일, 캘리포니아 산 퀜틴 교도소에는 수감자 2천400명이 연극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4년 만에 교도소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일대의 사건이라, 죄수들은 모두 흥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교도소 측이 선택한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자 배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이 작품은 유럽에서 이미 개봉한 상태였는데 평론가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습니다. 파리, 런던, 뉴욕의 지적인 관객들마저 혼란스러워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수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습니다. ‘산 퀜틴 뉴스’ 편집자는 이렇게 썼습니다.“죄수들은 무게가 총 642파운드인 근육질 마차가 무대에 등장하고, 여자들이 나오고 우스갯거리가 진행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자, 죄수들은 심하게 분노하며 폭동을 일으킬지 몰랐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연극에 온통 마음을 뺏겼으며 모두 깊은 감동을 하였다.”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주인공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고도를 기다린다는 내용입니다. 끝내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도 ‘가 누구냐는 질문에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으면 극에 분명히 썼을 거요!”라고 대답했습니다.주인공이 기다렸던 고도는 과연 누구일까요? 죄수들은 석방과 자유라고 즉각 이해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속박을 풀어줄 그 무엇을 고도에 투영합니다. 신(神)일수도 화폐일 수도,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습니다.사람들의 이런 약한 마음을 이용해 얽어매는 사악한 집단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사이비 집단의 실체도 보았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 ‘달콤한 미혹’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물으며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2

코로나19 지원 대책, 서민 생계지원이 먼저다

주낙영경주시장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온 국민이 건강에 대한 불안과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무심하게도 봄은 다시 찾아와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머지않아 경주는 다시 화사한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상춘객이 얼마나 올지 걱정이다. 관광객이 예년의 30% 수준도 채 되지 않아 대부분의 상가가 철시를 했고, 그나마 문을 연 식당들도 개점 휴업상태다.한동안 수그러드는가 싶었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월21일 현재, 한꺼번에 5명이 추가되어 경주에서만 3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인근의 다른 지자체보다는 상황이 다소 나은 편이지만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지난달 20일, 경주시는 코로나19의 지역 확산에 대비해 정부보다 한발 앞서 대응체계를 위기경보단계에서 심각단계로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일 경주지역에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경주시는 곧바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비상체제로 전환하여 총력 대응에 들어갔다.전염병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의 공유가 중요하다. 하루 두 차례 일일대응자료를 배포하고 시장이 직접 언론브리핑과 홈페이지·SNS 채널을 통해 경주시의 대응상황과 확진자 관련 동선, 자가격리자 현황, 검체 의뢰실적·결과 통계는 물론이고 중국인 유학생 입국·관리현황을 상세하게 파악하여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했다. 또한, 경주시에 소재하는 신천지 집회시설 8개소에 대해서 신속하게 방역을 실시하고 관련 시설을 모두 폐쇄했다. 동시에 전담 상황반을 편성하고 신천지 교인 전원에 대한 검사를 완료했다.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어려움 속에서 천년고도 경주시민의 역량은 빛났다. 병상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대구시민들을 위해 국가지정 생활치료센터를 2개소나 수용하여 600명이 넘는 경증환자들을 받아들였다. 동국대 경주병원은 음압격리병상을 갖추고 타지에서 온 중증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처음에는 관광도시인 경주에 이런 기피시설이 들어서는데 대해 적지 않은 반감과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확진자들의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내걸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 우리 경주도 함께 힘을 보태겠다는 넓은 아량과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이뿐 아니다. 마스크 부족 사태를 이겨내고자 ‘사랑의 마스크 나누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면마스크를 만들어 취약계층에 나누어주고 있다. 출향인사와 독지가들의 성금과 격려물품도 줄을 잇고 있다. 일부 건물주가 시작한 임대료 인하운동도 요원(720E原)의 불길처럼 확산되고 있다. 일찍이 나눔과 배려의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천했던 교촌 최부자댁의 ‘DNA’가 재현되고 있는 모습이다.연대와 응원, 격려와 협동의 아름다운 정신이야말로 이 위기를 극복할 원동력이다. 하지만 정신력으로만 극복될 수 없는 게 경제요, 생계의 문제이다. 경주는 관광객 급감으로 많은 시민들이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5일 대구시와 경북의 경산, 청도, 봉화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피해복구비의 상당액을 국비로 지원받게 되었다. 일정한 기준이 있었겠지만 실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고 있는 곳이 이들 지역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있다. 또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어봤자 법상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지난 17일에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11조 7천억 규모의 긴급 추경예산도 편성되었다.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정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나 일용직 근로자, 차상위계층에 대한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하루빨리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생계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가 제대로 못한다면 지방정부라도 나서야한다. 경북도와 시군이 예산을 분담하여서라도 생존 위기에 처한 차상위계층에 대한 긴급 생계지원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0-03-22

내가 희망하는 숫자는?

오지은 공무원희망이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하고 싶은 ‘생각’이 선행해야 하고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마음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반복하는 3대 국민 결심은 금연, 다이어트, 영어공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새롭게 결심하지만 쉽게 이루지 못한다.희망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무언가를 결심하고 야심 차게 시작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성과에 실망하고 좌절한다. 결국 이런저런 합리적 핑계를 만들어 포기하고 만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목표를 잘게 쪼개 우선 임계점까지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잘 설계하면 작은 성취감을 즐기며 희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희망’이라는 것은 태고로부터 인간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고안해낸 일종의 자기 최면 기술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유명한 역사학자가 말했다. 샤먼이 생겨나고, 그것을 구심점으로 사람들은 모여 협업할 수 있었으며, 이런 행동 양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있도록 만들었다. 희망도 그런 맥락에서 인류를 움직인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인생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내게는 욕망의 숫자가 있다. 그 숫자는 95 그리고 800이다. 95는 내가 욕망하는 티셔츠 사이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평균 몸무게였던 적이 없었던 나는 100이라는 숫자 아래의 티셔츠를 입어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95는 번번이 실패하는 다이어트에 대한 내 희망의 숫자다. 올해로 오십에 도달한 나는 800이란 숫자를 갈망한다. 800은 내가 받고 싶은 토익 점수다. 토익 900점이나 만점자도 넘쳐나고, 토익 스피킹, 오픽 같은 말하기 시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토익 800점이 내 욕망의 숫자일까? 필자가 대학생이던 90년대 초반에는 이 점수가 요즘 토익 900에 해당하는 꿈의 점수였기 때문이다. 토익 800점은 열심히 살지 않고 무심히 흘려보낸 내 젊은 날에 대한 후회를 치유해 주고 싶은 숫자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희망을 이룰 수는 없을까? 나는 선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무엇인가 반복하는 행동에 쉽게 싫증을 낸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날씬한 몸으로 바뀌어 있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희망하는 일을 이루려면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희망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희망의 시작은 나 자신이다. 최초의 희망은 내 머리에서 싹이 트고 내 가슴 속 열정이 싹튼 희망을 계속 품을 수 있게 한다. 결국 내 생각이 가장 중요한 희망의 씨앗이다. 훌륭한 생각을 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벤치마킹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았던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지혜로운 옛사람의 길을 따라가고, 내 삶에 녹여내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는 나는 고전을 손에 붙잡고 살아간다.고전은 우리에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난감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사고는 조금씩 넓어지고 유연하게 변한다. 가장 강한 자는 힘 있는 자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자도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유전공학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4차 산업혁명의 벽두에 선 우리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연한 사고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연습을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고전 읽기가 아닐까?

2020-03-22

피장파장의 오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피장파장의 오류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인신공격의 오류’의 일종이다. 상대방의 특정 발언에 대해 ‘발언 자체의 내용에 하자가 없는지’를 안 따지고 갑작스럽게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위선을 논거로 꺼내 상대방의 적격성을 갖고 논점을 흐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의사가 말한다. “음주와 흡연은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할 수 있으니 조절하십시오.” 환자가 반박한다. “에이, 의사선생님도 술, 담배 하시잖아요.”환자는 의사가 주장하는 사실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지적했지만 이는 음주와 흡연이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반박이 아니므로 피장파장의 오류가 된다.정치판이 이같은 피장파장의 오류로 시끄럽다. 여야의 위성정당 창당을 둘러싼 논란이 거대양당을 속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 미래통합당의 경우 위성정당 창당을 옹호한 논리가 바로 ‘위성정당’존재의 정당성이 아니라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배제된 선거법 개정에 대한 비판뿐이었다. 쉽게 말해 ‘다른 당들이 먼저 도의를 어겼으니 자유한국당도 편법을 써도 된다’는 논리였다. 이는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다. 제도나 그 절차 문제는 차치하고 ‘미래한국당’은 선거에서 의석 추가 확보만을 위한 비정상적 위성정당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구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모(母)정당의 뜻과 다른 후보를 공천하는 바람에 더욱 모양이 우스워졌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미래한국당을 향해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작심 발언해야 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곤혹스러웠으리라.황 대표가 그동안 법적으로 엄연히 별개인 미래한국당의 공천에 개입한다는 논란을 피하려 직설적 표현을 피해왔지만, 통합당 영입 인재를 외면한 공천을 접하고선 어떤식이든 제대로 손보지 않고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선 듯하다.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어떻게 둘러대더라도 꼼수정당이라는 도의적, 정치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범여권이 동의할 수 없는 잘못된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법의 허점을 드러내고, 추후 잘못된 선거법을 고치겠다는 게 미래통합당의 입장이다.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4+1협의체 역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을 배제하고 선거법을 뜯어고친 뒤 위성정당을 추진하면서 피장파장의 오류를 정당화의 논리로 차용해 쓰고 있다. 말 그대로‘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만큼 민의의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도 위성정당 창립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재미있는 것은 궁색한 핑계아래 추진되는 위성정당 창당과정이 순탄치 못하다는 것. 친문(친문재인)·친조국 성향의 ‘시민을 위하여’를 비례연합정당 플랫폼으로 선택해 신생 원외정당 등과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출범시켰지만 시민사회계 원로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 쉬운 게 없지만 사람들의 모임인 정당이 마음먹은 대로, 뜻한대로 움직일리 없다는 순리가 눈에 밟힌다.

2020-03-19

오합지졸

로마 바티칸국의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은 충성심과 용맹함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루체른시에는 스위스 용병을 상징하는 ‘빈사의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17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루이앙뚜아네트가 머물고 있던 궁전을 지키다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의 충성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다. 사자가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당시 프랑스 시민이 그냥 도망가라고 권했을 때도 끝까지 스위스 용병의 의무를 다했던 그들의 일화는 스위스 용병의 명예로운 군인정신으로 남아 있다.군기는 군대의 기울이며 생명과 같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군의 질서를 유지하여 전투력을 보존하는 군기는 군인 정신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갑자기 모아 놓은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우리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 부른다. 우리민족은 언제부턴가 오합지졸을 ‘당나라 군사’에 비유해 사용했다. 왜 당나라 군사가 오합지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유래를 대체로 고구려시대에서 찾고 있다. 비록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했지만 그 전까지 고구려는 당나라 군사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던 때문이라 한다.군인은 전쟁에서 승리가 최고의 명예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진 군을 군이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최근 우리 군의 경계가 마치 허수아비 같아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군기지 내 민간인이 무단 침입해 활보하는 사건이 올해만 세 건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걱정이 태산 같은 국민 앞에서 군이 보인 모습은 실망감을 넘어 참담하다. 일벌백계가 있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9

‘호남’의 딜레마

단도직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나가자 호남민들은 깊은 소외감에 사로잡혔다.훌륭한 경세가 DJ의 정신이 응집된 당은 ‘구민주’ 세력과 ‘노통’ 세력으로 분할되었고, 그로부터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오랜 ‘치세’가 이어졌다. 선거가 스물 몇 번 있었는데 분할된 ‘민주’ 세력은 늘 참패를 면치 못했다. 정동영 후보의 ‘어마어마한’ 득표 차 패배는 그 정점을 보여준 것이었다.DJ 민주당의 구민주 세력에게는 버려졌음으로 해서 명분이 있었다. 호남들은 따라서 둘로 나뉘었고 약자에게 기울기 마련인 사람의 ‘통성’은 박지원 의원으로 ‘대표되는’ 세력을 동정하게 했다.이명박, 박근혜 두 전임대통령의 실정은 분할된 ‘민주’ 세력에게 천금의 기회로 작용했다. 현 대통령과 박지원 의원과 새로 등장한 안철수 대표의 불안한 동거는 위태로웠지만 어떤 회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한 번은 세 사람이 합동해서 대통령 선거를 치렀지만 패배했고, 다른 한 번은 중도를 표방한 안, 박 연합과 현 대통령 쪽이 분열된 채 다른 당의 홍준표 대표와 선거를 치렀다.호남민들은 5·18 학살로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보수 세력이 재집권하는 것을 볼 수 없었기에 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열린우리당’이 선사한 소외감과 그로부터 생겨난 동정심에서 안, 박 연합의 ‘국민의 당’을 동시에 떠받쳐 주었다. 그것이 지난 총선거에서의 ‘국민의 당’ 바람이었다.다시 한 번 선거가 치러진다. 코로나19가 중심점이 되면서 다른 모든 접점들은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살아 있다. 이제 호남은 민주당 치세 하에 안철수 대표와 ‘결별한’ 민생당이 생존을 시험하고 있다. 새로운 ‘국민의 당’은 호남을 잃어버렸지만 코로나19 속에서 대구·경북을 새로 얻은 형세다.호남 내부의 심경 세계는, 이 ‘만주 정치 평론가’가 추론해 보건대 아주 착잡할 것 같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꿈은 땅에 떨어지고 결코 패배할 수 없다는 논리만 남은 형국이다.무엇을, 누구를 선택해도 개운치 않다. 시원스럽지 않다. 마음속에 그리던 이상은 실현될 가망 없다. 그래도 투표장에 가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다.이번 선거는 이 분들에게 가장 참담한 선택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기사, 언제 이 호남에 바람 잘 날이 있었느냐만은./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3-19

민심의 향방

김병래시조시인‘지구는 북극점을 중심으로 한 원반이고. 원반의 끝은 남극 대륙으로 45m의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늘은 돔 모양이고 해와 달은 지구 표면에서 5000km 떨어진 지름 50km의 구(球)이며 이들이 공전함으로 낮과 밤이 생긴다. 해와 달을 제외한 행성이나 항성들은 인공조명일 뿐이고 중력도 존재하지 않는다’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그들은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도 날조된 음모라고 하고, 아폴로 우주선이나 달 착륙도 우주로켓과 우주정거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불과 5세기 전이니 지구 평면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나 할까.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은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브루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세계에 산재한 온갖 종교와 전설과 신화가 말해주듯 인류는 곧잘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신념을 가져왔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서사로 엮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찬란한 문명을 낳은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한 살육과 전쟁의 구실이기도 했다. 세상이 하나의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그런 신념들이 비과학적이고 서로 상충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민심이고 이념이다. 오히려 지독한 확증편향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같은 사안을 두고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바로 지금 우리의 정국이다. 단순한 의견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념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 좌우의 진영에선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감정과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진다. 중도충이라고 더 현명하거나 냉철한 것도 아니다. 자기주장이나 신념이 뚜렷한 부동층(不動層)이 아닌 부화뇌동하는 부동층(浮動層)이 대부분이다.‘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정치인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지만, 중우(衆愚)란 말도 있듯이 민심이란 믿을 게 못 되는 것도 현실이다. 포풀리즘이나 선전선동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히틀러에 열광한 것도 민심이고 러시아 볼셰비키를 밀고 간 것도 민심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도 민심이고,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망친 차베스나 마두로 같은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을 한 것도 그 나라 민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26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민심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 편에서는 나라를 망치고 있는 정권의 심판을 부르짖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권의 사수를 위한 결사항전을 외친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보았다. 우리나라 역시도 70여 년 쌓아온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민심의 향방이 과연 천심을 따를지 두고 볼 일이다.

2020-03-19

공천 파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우리말에 “식은죽 먹기, 누워서 떡먹기, 땅짚고 헤엄치기”의 공통점은 “쉽다”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영남지역에서 보수당이, 호남지역에서 진보당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양상도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이 지역에서의 공천 파동은 매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그 당에 공천만 되면 당선이 보장되기에 공천위원회는 그 지역민들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천한다. 지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4·15 총선을 한 달여 남긴 지금. 공천으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공공성이 있는 공천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의한 “사천”이라는 말도 나오고, 막나가는 공천이라는 “막천”이라는 말도 나온다.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든 후보들은 그들 정치생명의 사활을 걸고 있고, 여전히 공정한 공천의 길은 멀고 험하다.야당의 상황은 심각하다. 얼마 전엔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사퇴했다. 친문 논란이 일었던 김미균 후보의 전략공천 철회에 책임을 진다는 이유였지만, 황교안 대표가 공개적으로 공천 번복 등을 요구하며 빚어진 갈등이 시발점이었다. 홍준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공천탈락으로 시끄럽다. 홍 전 지사는 당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역임하였기에 공천에서 탈락하는 순간 퇴로가 차단 당한 상황이다. 퇴로가 없기에 그는 “대구에서 대구 시민들의 시민 공천으로 홍준표의 당부를 묻고, 불꽃선거로 압승해 다시 당으로 돌아가 2022년 정권 탈환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귀순한 태영호 공사를 비판한 것도 화제다. 태 공사의 강남 공천은 매우 획기적이고 신선한 공천임에도 탈북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분들에 동조하는 발언이었기에 파장이 크다. 그는 북한을 잘 알기에 국회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여당도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숭문당 대표가 무소속으로 경기 의정부갑 출마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4·15 총선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 하였다.여당에 많은 공헌을 한 문희상 의장의 입장에서는 다만 그 공헌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역민들의 여론조사에서 앞선 그였기에 경선에라도 참가하도록 배려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해찬 여당 대표는 공천 못 받아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면 영구 제명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야당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도대체 이런 논리가 어디 있을까? 공천에 배제되어 무소속으로 당선된다는 것은 공천이 잘못되었고 지역민들의 뜻에 반하는 공천이었다고 오히려 공천위나 당이 무소속 당선자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공천에 사천, 막천은 배제 되어야 한다. 지역민의 뜻에 맞는 그런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 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아닌 진정 지역민들에 환영받는 사람이 공천 되어야 한다.

2020-03-19

마법사의 폭풍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 나이 든 프로 레슬러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프로 레슬링이 큰 유행이었는데 이번에 은퇴하는 선수를 보며 사람들은 감동과 벅찬 사랑을 느꼈습니다.레슬러는 ‘마법사의 폭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1975년 프로 레슬링에 입문해 항상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기해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화려한 분장 뿐 아니라 현란한 개인기는 관중을 압도했으며, 위기의 순간마다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3년 동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마법사의 폭풍’ 은 오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현역 레슬러로 활동하기에는 체력과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던 거지요. 그는 끝까지 자신을 아껴 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마법사의 폭풍’이 링 위에 오르자 관중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했습니다. 링 한 가운데 선 마법사의 폭풍은 관중의 박수가 잦아들자 놀라운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23년 동안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자신의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한 겁니다. 관중들은 그가 준비한 선물에 충격을 받고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 신부 세르지오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관중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더욱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세르지오는 23년 동안 가난한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레슬링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3천여 명의 고아들을 돌봐 온 것입니다.나는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멈추어 생각해 보는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9

인포데믹이라는 재앙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이제 선택할 때다. 공격적인 방역으로 사망률을 낮춘 한국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많은 확진자와 더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는 이탈리아의 길로 갈 것인지”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인 제롬 애덤스의 말이다. 전 세계가 극찬하는 한국의 의료진들과 방역체계와 함께 칭찬 받아야 할 것은 한국국민의 높은 의식수준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아직도 무분별하게 어깨를 맞대고 모이고, 마스크도 쓰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발 한국 국민들처럼 하시오”라는 호소도 생긴다 한다.그 수준 높은 한국국민의 거의 유일한 예외가 종교집단들이다. 신천지는 기독교 입장에서 보기에 교리적으로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가정을 파괴하고 삶의 기반을 허무는 반사회적 집단이다.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호소해 왔지만, 사회의 여론은 냉담했다. 대형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신천지를 홍보해 주기도 했다.이제 그 부작용의 상당부분을 교회가 떠안아야 하게 되었다. 일부 교회이긴 하지만, 공중보건 차원의 고려 없이 자신들의 종교적 열정만 중요시하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코로나19 전염병 극복을 위한 노력에 모범을 보여야 되려 노력했다. 의료진들을 지원하고, 이 어려운 때에 소외된 계층들을 돌보려 애를 쓴다. 그러나 백 교회, 천 교회가 조심하고 노력해도 한 두 교회가 일탈을 저지르면 교회의 위상이 심하게 흔들리는 형국이다. 수도권의 한 교회에서 감염예방 한다면서 소금물을 분무기로 뿌리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할 만큼 충격이었다.인포데믹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해결책이라고 내 놓는 정보들이 너무 넘쳐나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 온다는 뜻이다. 소금물이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효과가 있다는 정보들이 카톡을 중심으로 한동안 돌아다녔다. 부끄럽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가짜 정보 유통에 한 몫을 했다. 오죽하면, 어떤 이단보다 무서운 종교가 “카톡교”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근거 없는 정보로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마스크를 쓴 김에 내가 평소에 한 말들이 혹 남에게 상처 주지나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와 함께 혹 나도 모르는 사이 부정확한 정보 전달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에 일조하지나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못지 않게 무서운 인포데믹이라는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2020-03-18

어떤 안경을 쓸까?

여기 긴 두 문장이 있습니다. 잘 비교해 보세요.미움의 안경을 쓰고 보면 똑똑한 사람은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착한 사람은 어수룩한 사람으로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활력 있는 사람은 까부는 사람으로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예의 바른 사람은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듬직한 사람은 미련하게 보입니다.반면, 사랑의 안경을 쓰고 보면 잘난 체하는 사람도 참 똑똑해 보이고, 어수룩한 사람도 참 착해 보이고, 소극적인 사람도 참 얌전해 보이고, 까부는 사람도 참 활기 있어 보이고, 실없는 사람도 참 밝아 보이고, 얄미운 사람도 참 싹싹해 보이고, 미련한 사람도 참 든든하게 보인답니다.한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큰 싸움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손자 역시 자신에게도 이 싸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추장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 간의 싸움이지.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연민,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둘이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길까요?” 추장은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기 마련이란다.”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안경과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는 바로 내가 선택하는 법입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통해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가는 멋진 새벽이시길./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8

노트북과 코로나19, 그리고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학교 가고 싶어. 악연이든 인연이든 만나고 싶어. 책가방이 썩는 것 같아.”아이의 매일 같은 성화에 목련이 놀라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때를 아는 자연은 꽃샘추위에도 할 일은 한다.하지만 철을 잃은 인간은 늘 뒷북이다. 교육계가 대표적이다. 가장 분주하고 활기가 넘쳐야 할 3월에 학교는 없다. 학교 부재의 이유는 융통성 없는 교육 관료들 때문이다.전 세계의 화두는 4차 산업이다. 교육계 또한 이를 반영해 2015 개정 교육과정 인재상을 ‘창의융합형 인재’로 정했다.교육계에서는 이를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 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위 문장대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재확인했다.하나는 교육계의 위선과 경직성. 또 하나는 교육 근로자들의 언행 불일치.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치고 교육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월 말부터 필자는 개학 연기에 따른 준비를 했다.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가 대구 경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했다.다른 학교 교사들이 재택근무 계획을 세울 때 산자연중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학습 공백을 최소화할 방법을 연구했다. 첫 번째로 교과서와 학습 도구, 시간표 등이 담긴 학생 개인별 학습 상자를 만들어 2월 27일 전까지 택배로 전국의 가정에 보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들이 학습 결과물을 매일 확인 했다.하지만 오롯이 학생 자율에 맡겨야 하는 온라인 학습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논의 끝에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장비가 문제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도 있지만, 잇몸조차 없을 때의 느낌이란?그래도 해야 했다. 2월 주말을 연구와 회의로 보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노트북이었다. 노트북에 내장된 캠을 생각해냈다. 화질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실시간으로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마음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3월 둘째 주, 낡은 노트북 한 대로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 학부모의 반응이다.“학생의 그 긴 방학의 생활 패턴을 바꾸셨습니다. 시간 되면 스스로 일어나서 씻고 화면 앞에 앉는 모습에 물어봅니다. (중략) 당연히 EBS보다 재밌고 어떻게 수업이 재미가 없냐며 반문하는데 너무 당연시 여겨요. 어떻게 하시길래요?”왜 꼭 수업을 학교에서만 해야 한다고 고집할까? 또 유초중고가 왜 꼭 같은 날 개교를 해야 할까? 화상 수업은 교사들의 열정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누군가에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교육청은 물론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전화를 했지만 역시였다. 어떤 이는 분란이라는 말까지 썼다. 필자는 거기서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낡은 노트북 한 대가 만들어낸 교육 기적을 공유하고 싶지만, 일부 교육 근로자들은 들을 생각이 없다. 그들에게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을 전한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2020-03-18

걷기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경북 성주가 고향인 가수 백년설의 대표곡은 1940년에 발표된 ‘나그네 설움’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요즘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면 80년 세월이 무상하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로 시작하는 ‘나그네 설움’은 고향 떠난 자의 한없는 인생역정을 노래한다. 떠돌이로 10년 넘어 반평생을 살아온 나그네는 해거름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인다.태평양전쟁을 목전에 둔 일제강점기 조선의 나그네는 도보에 의지하여 길을 떠돌았다. 식민지 백성 처지에 승용차나 열차는 언감생심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걸어야 했던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이나, 우리는 내막을 알지 못한다. 나도향의 ‘그믐달’에 나오는 야반도주한 파락호(破落戶)일지도 모르고,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의 주인공 도배장이 나운심의 후예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걷고 걸었고 걸을 것이다. 인간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장정 기준으로 30킬로미터 내외가 고작이라는 게 정설이다. 시간당 3∼4킬로미터를 걷는 것이니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과거 보려고 한양 가는 조선의 선비는 편도 보름치 양식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오늘날처럼 탄탄대로나 신작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길과 가파른 산길과 언덕길을 가야 했던 사람들의 행장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그렇지만 당대 지식인들은 자신의 걸음으로 사유와 인식의 지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모사피엔스의 첫 번째 조건이 직립보행 아닌가! 영장류 가운데 인간처럼 직립보행이 일상화된 종은 없다. 오늘날 스마트폰 때문에 인류가 고릴라나 침팬지 혹은 오랑우탄처럼 등이 구부정해지는 것은 별도로 쳐두자. 똑바로 서서 걸으면서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상념과 기획을 보듬고 걷는다.누구는 건강을 생각하여 일삼아 걷지만, 우리는 걸으면서 과거와 미래, 행과 불행, 관계와 절연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근대 이전의 나그네는 사유 속도와 걷는 속도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별한 예외가 아니면 그들은 일상의 속도에 맞춰서 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사물을 인식하고 관계를 성찰했다. 시속 300킬로미터 가까운 고속철로 이동하는 현대인은 성찰하지도 사유하지도 않는다.걷지 않는 현대인은 똑똑한 전화기를 들여다볼 따름이다. 만물의 창이자 만능소통의 마당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은 사유와 인식, 성찰과 무관하다. 거기서 쏟아지는 숱한 정보와 지식은 이용자를 암담하게 만든다. 급기야 그들은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손쉬운 해결책을 찾아낸다. 정보와 지식의 바다에 일엽편주 돛단배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비판적인 정신과 영혼을 사상한 채 한낱 엄지족으로 전락해 버렸다.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려면 정처(定處)가 있어도 걸어야 한다. 구부정한 영장류가 아니라, 직립보행하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걸으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 거리에 봄꽃 한창이다.

2020-03-18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위기가 멈춰서는가 싶다. 단정하기 어렵긴 해도 지난 한 달 급하게 치닫던 확진자 증가세가 사뭇 안정되었다.에볼라(Ebola)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를 휩쓸던 무렵, 놀랍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Bill Gates)가 ‘앞으로 지구상에 수천만 명이 한꺼번에 죽어 나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핵전쟁 때문이 아니라 감염병의 만연에 따른 일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예견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오늘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놀라울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상황이 앞으로도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세계가 만난 코로나19 광풍은 아직도 거세다. 국내 지역감염의 위험은 여전하다. 신천지교회가 끼친 심대한 어려움이 잦아들면서 이제는 일반 교회들이 집단으로 모여 예배하는 일이 생각 거리가 되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믿음은 소중하고, 신앙의 자유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성경과 교리는 ‘안식일’을 잘 지킬 것도 명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방역을 위하여 다중이 밀집해 모이는 일을 자제하여 줄 것을 권고한다. ‘방역의 필요’와 ‘신앙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일까.학생없는 학교, 손님없는 극장, 불꺼진 무대, 한산한 길거리, 쓸쓸한 음식점, 차없는 도로들, 온라인 강의실…. 모두들 힘들지만 비정상을 견디는 까닭은 오직 한 가지. 코로나19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아닌가. 주일도 지키고 예배도 성심껏 올리시라. 다만, 치명적 감염의 위험을 피하자는 국민의 요청이 그렇게 부담이 되시는가. 누구도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아무도 종교의 진정성을 배척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사람의 목숨과 사회의 안정을 해칠지도 모를 집단적 회합에 어쩌면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전쟁 못지않게 병균이 인류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음을 기술하였던 제러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도 ‘바이러스의 가공할 공격에 적극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대비하여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앞으로도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더욱 거세질 모양이다. 의료진과 연구진의 끊임없는 노력이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대응책 두 가지가 손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가. 학교와 일터가 구체적으로 서로 돕는데, 교회가 오히려 사회적 감염을 만들어 낸다면! 경제적 어려움이 실천에 장애가 된다면, 이를 사회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면 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삶을 위협하고 일상을 어지럽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힘이 되고 격려가 되어 등불을 밝히는 교회가 그립다. 말씀 가운데 칼날이 보여 섬뜩해지는 일은 그만 만나고 싶다. 함께 이기고 일상을 회복하려면, 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위기를 뚫고 일어서는 길에 예외는 없다.

2020-03-18

카톡문화

카카오톡은 2010년 3월 18일 첫 서비스를 시작, 1년 만인 2011년 4월 이용자 수 1천만명을 돌파했고, 이듬해 3월 4천만명을 넘어 10년만에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용하는 SNS서비스가 됐다.이제 하루 평균 송수신 메시지 110억건에 달하는 카카오톡은 소통 방식을 넘어 일상생활 전반을 바꾸는 카톡문화를 이뤄냈다. 카톡문화는 선물, 송금, 공과금 납부 방식변화를 불러왔다.우선 2010년 12월 첫선을 보인 ‘카카오톡 선물하기’서비스는 2017년 1천700만명이 사용해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넘겼고, 지난해 거래액은 3조원으로 추정된다. 2018년 스타벅스는 연간 1천200억원대 매출을 각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5월 친구 생일을 표시해주는 기능이 더해지면서 선물하기 서비스는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카카오톡 송금기능은 2016년 생겼다. 2015년 정부가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을 폐지하는 걸 계기로 내놓은 간편송금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는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카카오톡 아이디만 알면 채팅방에서 바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 가입자 수는 지난해 기준 3천만명을 돌파했고, 상반기 거래액은 22조원에 달한다.이외에도 카카오는 각종 고지서나 티켓, 업체 공지 등을 카톡으로 받을 수 있는 ‘알림톡’, 로밍 없이도 얼마든지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할 수 있는 ‘보이스톡’ ‘페이스톡’, 대화 중 궁금한 게 생겼을 때 곧바로 채팅창에서 검색해볼 수 있는 ‘샵(#) 검색’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카카오톡이 국민들의 삶에 미친 여러가지 변화들이 이른바 ‘카톡문화’로 자리잡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8

우리 안의 불안과 탐색: 신종 바이러스의 위기와 안전망

대구와 경북 일부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3월의 중반이 지나갔다. 우리를 조이던 긴장의 끈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풀 꺾인 확진자 수에 잠시 안도하다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망과 불안은 다시금 우리의 덜미를 잡아챈다. 우울이 과거에 대한 반추와 관련되어 있다면 불안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이 부정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주의적 시각일 수 있다는 역설을 가진 것처럼, 불안은 오늘을 감내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하는 추동력을 준다. 이는 위기 속에서 생존해온 종으로서 우리가 얻은 획득 형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의 감정은 일상이 멈춘 이질감 속에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혼란스러운 일상의 정보를 조직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탐색해 보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집이라는 물리적 테두리에 머물게 한다. 집안에 묶인 가족들은 온라인을 통해 생필품과 기호품을 구매하고, 변화된 일상의 하나는 문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의 뉴스를 발견한다. 12일 새벽, 안산의 한 배송 노동자가 계단에 쓰러진 채 사망한 것이다. 40대의 그는 입사 4주차로 시간에 쫓겨 쉬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승강기도 없는 건물에서 배송 업무를 하던 중 쓰러졌다. 쌀과 물 등의 무거운 생필품 주문이 늘어나면서 폭증한 물량을 아침 7시까지 로켓 배송하려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문 앞에 놓인 물품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접고 들어와 집안을 살펴보자. 변화들이 보인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변화는 더욱 클 것이다. 어린이집도,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는 아이들.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늘 밖으로 나돌던 아이들의 동선이 집안으로 묶여진 것은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양육과 교육의 상당부분을 맡아오던 기관과 장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장시간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가정 내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에 가족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매우 현실적일 것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 묶인 학부모들의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관리하려는 교사들의 바쁜 움직임과 온라인 학습을 독려하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양육과 교육의 책임을 돌려받은 학부모들의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맞벌이, 한 부모 가정을 비롯한 취약가정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발생한 급식지원의 공백,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의 휴관으로 인한 양육 공백과 식사를 제때 공급받기 어려워진 아동들의 현재 상황은 가족에게 재부과된 양육 기능의 기본적 작동에 난관이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는 그간 우리가 간과해온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먼저 폭주하는 배송물량에 쓰러진 그의 죽음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예기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규직, 노멀 비정규직, 라이트 비정규직, 플렉스와 프리맨에 이르기까지 고용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 업무 구조는 그를 사람이 아닌 로켓 경쟁의 수단으로 보아왔고,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내에 90%가 그만둔다는 열악한 노동 조건은 그를 이미 오래 전부터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또한, 전국 30만명을 넘는 결식위험아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조금만 빗나가면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그간 감내하며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셈이다.뒤늦게나마 구멍 난 안전망을 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의 선포와 함께 실시되는 생계지원, 각종 감면 혜택, 그리고 전국의 취약가정을 대상으로 한 가족돌봄비용의 지급 등이 그것이다. 또한 배송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잔인한 새벽 배송을 비판하며 ‘늦게 배송 와도 괜찮다’는 소비자들의 반성과 위로. 결식아동들의 안타까운 사정 앞에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을 챙기는 지역아동센터의 직원들. 성금을 모으고 도시락을 전달하는 이웃들의 진심어린 노력은 안전망이 뚫린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우리의 잠재된 힘일 것이다.코로나19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일부의 변화는 바로 사라지겠지만, 일부의 변화는 흔적을 혹은 장기적 변화를 남길 것이다. 가령, 이제 집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사태가 안정된 후에도 온라인을 통한 구매의 증가와 배송경쟁의 심화는 지속될 것이고, 이윤을 앞세우는 경쟁논리는 인간다운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를 다시금 묵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자로서 물건을 빨리 받고 싶은 욕구와 로켓 배송경쟁에서 희생될 배송 노동자의 노동조건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시금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전염병에 의한 전 세계적 위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원격학습의 확대를 가져올 것임에 분명하다. 이에 학습동기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학습 콘텐츠의 개발과 보급은 교육계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학습의 독려와 모니터링의 책임이 각 가정에게 맡겨지기에 돌봄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간의 차이는 큰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고, 교육계는 이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변화보다 우려되는 흔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급증했던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수입원의 감소, 그리고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가족 내 잠재적 갈등요인들은 폭력적 형태로 분출될 수 있다. 여기에 물리적,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은 무기력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국내 아동학대 신고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이는 국내 아동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교와 상담현장에서 실제 아동학대 사례들은 많은 경우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부담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 신고자에게 가해졌던 공공연한 위협, 아동보호시설의 부족 등이 신고의무자들의 신고율을 높이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온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국내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율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수의 증가와 함께 아동학대 확인사례 건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국내 아동학대실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격리된 집 안이 사적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가족 내로 되돌려진 오늘의 일상에서 가족 내 폭력은 신고 되지 못하고 다시 조용히 묻힐 수 있다. 그러나 가정 내 폭력과 학대의 경험은 학교와 교실에서 아이들의 우울, 잦은 자해와 자살시도, 혹은 학교폭력의 형태로 치환되어 드러난다. 사적 공간의 폭력이 공적 공간에서 보다 파괴적 형태로 파급력을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정부와 사회의 안전망 확보를 위한 지원과 가정 내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 흔적은 내일 우리에게 더욱 큰 비용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김은영 경북대 교수

2020-03-18

‘좋아요’를 누르고 싶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2002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마크 주커버그는 2003년에 재학생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누가 더 매력적인지를 투표하도록 하는 ‘페이스매쉬’(facemash)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생활과 지적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대학 당국은 곧바로 사이트 차단에 나섰고, 주커버그는 근신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이렇게 장난처럼 시작되었다.2004년에 만들어진 페이스북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커버그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고 지금은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자 소셜 미디어가 되었다. 2020년 1월 통계자료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월간 이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2억4천여만 명에 이르고 미국 성인의 71%가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SNS 앱은 페이스북이며 2019년 5월 한 달 간 총 46억분의 시간을 페이스북에 쏟아부었다고 한다.일상의 삶에서 우리말을 잘 가꾸어 쓰자는 생각을 가진 나는 2012년부터 얼굴(사진과 동영상)과 얼(정신과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책장이라는 뜻에서 페이스북을 ‘얼책장’으로, 흔히들 ‘페친’이라고 부르는 페이스북 친구를 ‘얼벗’으로 뒤쳐 부르고 있다.얼책장을 통해 얼벗들의 밝은 얼굴을 보고 생각을 읽고 삶을 엿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얼벗들이 제공하는 자료들을 통해 지식을 쌓기도 하고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하니 이로운 점도 상당하다. 그들이 올려주는 글과 사진 등을 보며 ‘좋아요’를 지긋이 눌러주는 것은 ‘소확행’의 하나이다.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고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면 ‘관종’(관심종자-타인의 관심과 이목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얼책장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마음을 잇는다.하지만 슬프고 힘든 일, 나쁜 소식을 전하는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마뜩잖은 일이었다. 2016년 2월부터 얼책장에는 ‘좋아요’ 외에 ‘최고예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등 여섯 가지 그림기호가 생겼다. 공감 반응의 다양성이 확보되었지만, 가장 많이 누르는 것은 역시 ‘좋아요’이다.그런데 요즈음 ‘슬퍼요’나 ‘화나요’ 기호를 누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삶의 현장에 힘겨워 하는 많은 이들의 글, 사람의 발자취가 사라진 썰렁한 거리를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그 내용이 아무리 공감이 되고 좋아도 ‘좋아요’보다는 ‘슬퍼요’에 손이 멈춘다. 슬픈 이야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가짜 뉴스는 보고 싶지 않다. 이 와중에 거짓된 정보나 가짜 뉴스를 전하는 글을 보면 맨 구석에 있는 ‘화나요’ 기호를 굳이 찾아 누르게 된다.코로나19는 소셜 미디어에서의 감정 표현마저도 이렇게 바꾸어 놓고 있다.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좋아요’를 마음껏 누르고 싶다.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2020-03-17

진풍경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우리사회에는 지금껏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진풍경들이 속출되고 있다.마스크 대란이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부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하고 그나마 한 사람이 두 장만 구매가 가능하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재고가 동나 그것마저 살 수가 없다. 국민소득 3만달러 나라에서 마스크 사려고 줄 설 줄은 아무도 몰랐다. 버스나 지하철은 손님이 없어 한달 째 텅 비었다. 어떠한 자리에도 마스크를 써야 소통이 가능하다. 마스크를 낀 채 행사를 하고 사진도 찍지만 진작 웃는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웃픈 세상이다. 관공서 구매식당에는 난데없는 칸막이가 등장했다. 식사도 일렬로 앉아서 먹는다. 밥맛이 영 아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해야 밥맛도 나는 법인데 코로나19가 동료 간 식사도 밥맛도 갈라놓았다.홍콩에서는 마스크를 사러 1만명이 줄을 섰다. 중국의 한 결혼식은 10분만에 초고속으로 끝냈다는 소식이다. 인기 스포츠 경기나 공연도 줄줄이 연기가 됐다. 세계 최대 부국인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생필품 사재기가 빚어진다고 한다. 진풍경이다.한국은행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0%대로 금리를 인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한다. 효과는 미지수다.온 국민의 신경이 코로나19에 집중되다보니 어느덧 총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코로나19를 눈가림으로 하고 꼼수 정치까지 판을 친다. 여야의 공천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코앞에 다가온 총선을 두고 유권자는 후보도 공약도 모르고 깜깜이 선거를 해야 할 것 같다.이 같은 진풍경들이 국민에겐 코로나19 우울증으로 덮쳐온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가 엄청 늘었다. 이것 또한 진풍경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7

가장 값진 보물은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 틈에 남루한 랍비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배는 순풍에 돛 달고 목적지를 향해 기분 좋게 항해하고 있었지요. 손님들은 모두 자기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내 소유의 토지는 얼마나 넓은가 육안으로는 그 끝을 누구도 볼 수 없지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지지 않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우리 저택에서는 늘 파티가 열리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도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소.”모두 껄껄 웃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 가난한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바로 나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가진 것을 당신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어 안타깝소.”부자들은 랍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비웃습니다. “랍비여, 당신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요.” 모두 그를 보며 비쭉거렸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합니다. “두고 보시오.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거요.”그때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적이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자기 보물들을 간수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그들은 자랑하던 보물을 해적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겨우 목숨만 구한 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가난한 랍비는 마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같은 배에 탔던 부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파산해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요. 그들은 랍비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님의 말이 옳았어요. 빼앗길 염려도 없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값진 보물임이 틀림없어요.”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껏 돌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지식과 교양은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7

청년 일자리, 해법을 부탁해!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2000년 중반 이전은 결혼과 노후 문제에 관해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였다.한편, 2000년 중반 이후는 청년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결혼관, 경제관, 가족관, 사회적 가치관이 주로 제시되었다.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이 점점 더 신중해진다는 연구 분석 결과가 제시되었으며,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일·가정양립 실태조사에 의하면 ‘남녀고용차별개선 및 직장내 성희롱예방’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혀 고용유지와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고용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 낮은 임금은 청년실업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소기업 역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부모와 함께 동거하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문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취업을 하여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일자리가 있는 지역에서 머물면서 경제생활과 여가활동을 할 것이다.청년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먼저, 취업 및 진로 상담이 필요할 것이다.세분화 그리고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인 현재, 청년들의 진로 혹은 취업을 선택하기 이전에 자신의 타고난 성격이나 가치관 등이 어떠한 직무에 적합한지 확인해 보고 구체적인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개인의 실제 적성과 시장에 있는 일자리의 괴리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진로탐색이나 상담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성검사 혹은 심리검사를 통해 적합한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20대 초반 취업준비자, 중고생대상 조기상담 등 대상별 진로설계를 지원한다.진로설계 전문상담 센터를 지정하여 경력관리를 지원하고, 직업역량 강화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취업연계를 위한 직장 체험, 개인 취업관을 반영한 맞춤형 취업정보 제공, 다양한 직종에서서의 기업 연계망을 확대해야 한다.두 번째, 고용환경 개선을 주력하여 일자리 창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취업 시 여성을 기피하는 현상이라든가 직장 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성차별적인 고용환경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때문에 유연근무, 재택·원격 근무 등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유연한 근무 제도를 기업에 도입 및 확산하여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일·가정 양립 고용환경을 조성하여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일하고, 직장과 가정을 원만하게 양립하여 청년이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무엇보다도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재정지원이라든가 조세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아울러 가족친화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과 가정의 균형, 청년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 근로자의 출산 및 육아, 유연한 근로시간 및 방식 등의 모듈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청년에게 많은 지식, 정보보다 구체적 경험 및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2020-03-17

색깔 이야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봄이 성큼 다가왔다. 코로나19도 봄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벚꽃, 개나리 꽃망울들이 봄의 전령사를 자처한 듯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만개하고 있다.연푸른 나뭇잎 사이로 새색시 볼 같이 피어오르는 분홍 빛깔에 쑥스럽게도 중년의 가슴이 살며시 설렌다. 병아리 속 털 같은 노란빛 꽃들을 보노라면 코로나19 시름마저 잊게 해준다. 머지않아 형형색색의 꽃 잔치가 펼쳐질 것 같다.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심리적 고립감을 동네 주변 봄꽃들을 보면서 탈출해봄직하다. 봄가을 꽃이나 낙엽의 색깔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런 고운 색깔을 내는지 궁금해진다.사람이 보고 느끼는 색깔은 물질이 가진 근원에 굴절된 빛이 시신경을 통해 뇌가 인식하는 구조라고 한다. 그렇게 인식되는 색들은 자연에서 내뿜는 본연의 색은 아닐 것이다.어떤 뛰어난 화가도 자연의 천연색을 담지 못한다고 한다.인상파 화가들도 자연의 색을 담지 못한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색과 빛을 창출한 것 아닐까 싶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들게 된다. 하지만 색깔에 이념이 채색되고 있다.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퇴색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색이 원치 않는 편 가르기에 동원되었다. 열정과 사랑의 상징이었던 붉은색은 공산주의자의 피의 혁명을 상징했다. 자유진영에서 거부감을 가진 적이 있다.이를 꼬집고 이야기하면 색깔논쟁으로 비화된다. 희망과 따뜻함을 나타내던 노란색이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던 정당의 상징색이 된 적이 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반감을 갖는 색으로 된 인식의 변질도 있었다.오랫동안 보수성향 정당이 누리던 파란색이 진보성향 정당의 상징색으로 채택되는 아이러니도 경험하고 보니 색에 덧칠해진 이념은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색깔을 통한 소속과 정체성 알리기가 더욱 가열되고 있다.경선에서 탈락하고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후보자는 이전 소속 정당 색의 근사치 색으로 덧칠한다. 정체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색(?)들의 전쟁이다. 그래서 선거철에는 자리에 따라 옷차림조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속칭 ‘깔맞춤’(색깔맞춤)을 해야 한다. 남자들은 넥타이 색깔 고르기까지 신경을 써야한다고 하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색의 상징화가 권력투쟁의 치열한 도구가 되었다. 색으로 이념을 세뇌시킨다.자연이 준 순수한 아름다움에 취할 행복감을 박탈하는 결함을 가진다. 색으로 편 가르기 하는데 휘둘려 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코로나19로 거리의 색이 변하고 있다. 현란한 채색의 도심이든 시골의 한적한 동네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직사각형 작은 흰색이 움직이고 있다.순결과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중환자들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착용하던 마스크를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 온통 중환자들이 거리를 다니는 것 같다. 흰색에 대한 혐오증을 불러일으킬까 걱정된다.우울감이 더해간다. 고생하는 흰색에게 순결과 청결의 고귀함을 빨리 찾아주고 싶다. 마스크 앞면에 스마일 표시라도 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씨익’ 눈웃음이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2020-03-17

수만 번의 헛기도로 이어지는… 충주 석종사(釋宗寺)

충주 금봉산(金鳳山) 자락에 석종사라는 절이 있다. 그리 멀지 않지만 내게는 낯설고 생경스러운 도시를 혜국 스님의 말씀 하나 잡고 찾아 나선다. 휴일이 무색할 정도로 고속도로는 한산한데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석종사에는 뜻밖에 봄기운이 완연하다.일주문을 지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문패처럼 내건 곳에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죽장사라는 절이 있던 폐사지를 봉암사에서 수행하던 혜국 스님이 현몽을 꾼 뒤 찾아와 석종사를 세웠다. 스님은 갈 곳 없는 연로한 스님들과,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대웅전 창건을 시작으로 혜국 스님의 상좌들이 직접 중장비를 운전하고, 신도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대대적인 불사를 이루었으니 불심의 깊이가 제대로 살아 있는 절이다.크고 작은 당우들이 널찍하게 거리를 둔 경내는 인적 없이 고요하다. 천척루를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늙은 어머니와 딸인 듯한 모녀가 봄꽃 같은 미소를 피우며 반긴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두려움 없는 민낯의 온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려 때 만들어진 오층석탑은 멀찍이 서서 홀로 참선 중이다. 결코 쓸쓸하지 않은, 환한 평화가 넘실거리는 경내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석종사는 웅장한 외형만큼 내재된 힘을 자랑한다. 군장병을 위한 템플스테이와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在家者)도 사찰에 머물며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찰은 그리 흔하지 않다. 진지하게 명상에 잠긴 불자들의 모습은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내게 고무적일만큼 서늘하게 다가왔다. 육신의 눈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습은 참으로 경건해 보였다.누하진입식 천척루를 지나 마당보다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감로수에 손을 씻는다. 대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마당, 눈부신 햇살, 잘 생긴 나무들,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참선 중이다. 지독히도 그립고 그립던 봄이 오는 풍경이다. 신선한 설렘과 전율들을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마스크를 벗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나와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햇살의 만남이 어색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계단을 오른다.대웅전 팔작지붕은 툭 트인 산야를 향해 날아오를 듯 힘차고 웅장한데 너른 뜰 위로 수많은 좌복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색적인 사찰의 봄맞이 풍경이다. 풍수에 문외한인 내게도 명당 터라는 게 느껴진다. 가부좌가 아닌 편한 자세로 대웅전 뜰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가지런히 전지를 한 나무들처럼 탐욕과 집착으로 멍든 마음 깨끗이 잘려나가고 고착된 습은 봄볕에 녹아 재가 될 것 같다. 고만고만한 종류의 반성과 다짐이 되풀이 될 때마다 겪어야 했던 자괴감들, 행동은 마음을 따르지 못해 자주 괴로워했다.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천하의 법도로 삼을 만큼 한결 같은 ‘하나’, 그것이 부재인 채로 나는 육신이 끄는 대로 살아왔다.게으름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맞닥뜨려야 했던 순간들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새해 첫날의 다짐처럼 오래지 않아 기도는 무질서 속으로 함몰되었으며, 감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사찰과 말씀들이 든든한 위안처가 되어 주었다.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대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법당에 끌리듯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들도 나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하듯 청소를 하고 열린 어간문 앞을 서성대던 햇살이 나를 안내하고 처마 끝의 풍경도 울지 않았다. 삼배의 예를 갖추자 한결 마음이 정갈해진다.조낭희 수필가큰 절은 무언가로 꽉 차 흐른다. 삼라만상 실개성불(森羅萬象 悉皆成佛).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들이 모두 부처를 이루었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이 어수선한 봄날, 둘러보니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 실눈을 뜨는 나무와 바위, 높다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시선 닿는 곳마다 생명이 숨 쉰다.대웅전 뜰 위에 서서 내 안을 응시한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맬 때마다 어김없이 손 내미는 분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번에는 혜국 스님의 말씀이 봄꽃처럼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모든 건 필연이다. 어둠 속에서 만나는 한 줌의 햇살, 뒤이어 따라오는 수많은 전율들, 인생은 결코 고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혜국 스님의 말씀을 따라 햇살 속을 걷는다. 한 번의 참기도는 수만 번의 헛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나는 언제나 조급했다.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걸 간과했었다.서둘러 피었다가 이내 이울더라도 다시 그렁그렁 눈물 같은 꽃눈을 달고 헛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언젠가 이승을 떠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지지 않도록, 더 이상은 두렵거나 쓸쓸하지 않을 미지의 세계를 위해….삶은 수많은 출발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2020-03-16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대한 공포

주제 사라마구코로나19로 인해 사회에 공포가 만연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균과 바이러스의 영역을 발견해 낸 것이 위생의 영역에 있어서 인류가 이룬 가장 큰 진보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존재하되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속에 공포를 만들어낸다.우리 마음속에 불길과 같이 일어나는 공포는 비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가시화된 상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맺고 있던 인간적인 관계들과 매일 생활하는 공간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을, 위험한 존재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뀐다. 공포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자신이 영위하는 시공간의 형태를 바꾼다.세계 속에는 인간이 공포를 느낄 만한 대상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지만, 비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만큼 본질적인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나 전쟁처럼 명확하게 타자화될 수 있는 공포의 대상과 달리,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 살아가는 전제 조건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 언제나 붙잡고 기대 있던 손잡이의 명확한 감각도, 내가 의지하고 믿고 있던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도, 늘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집이 주는 안온함도,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그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현상이었다.어쩌면,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바깥 세계와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문학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곤 했다. ‘페스트’를 통해 인간 사회에 흘러 넘쳐 있는 비인간성이라는 징후를 파악했던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1947)’가 그렇고, 콜레라를 사랑의 열병에 비유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고통 받는 것에 대해 긴 호흡으로 담아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이 그러하다.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00E9 de Sousa Saramago·1922~2010)의 ‘눈먼자들의 도시(1995)’는 그 중에서도 인간의 시각의존성과 전염되는 질병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직조되는 인간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의사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자신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의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눈이 멀게 되고, 그는 이것이 원인을 알 수 없이 전염되는 백색 질병임을 당국에 알리고, 역시 전염되는 상황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눈이 멀지 않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격리된다.눈이 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격리되면서 그들에게는 전문가의 권위나 윤리, 이성적 판단 같은 인간이 인간됨을 규정해왔던 여러 가지 기준들이 사라지고, 일용품과 식품에 대한 약탈을 넘어 인간에 대한 약탈이 시작된다. 이 ‘눈먼자들의 도시’속 인간들은 시력이 상실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표현할 줄 모르는 채 공포에 자신을 내맡긴 인간들의 세계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역사에 대한 우화이다. 눈이 보이는 자들은 남의 것을 훔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은 길바닥을 기어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한 먹을 것에 매달린다.이 소설에서 함께 하고 있는 무리들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비인간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있던 의사의 아내는 아이와 어른을 씻기고,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며,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 노력이 단지 숭고하다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그는 맹목적 폭력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그것에 대처하면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공포는 종종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가진 인간은 공포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바꾸지 않을 힘을 갖고 있다. 모든 것보다 가장 인간다운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0-03-16

코로나 진단법 논란

세계적으로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국면에 접어든 코로나19 진단법에는 분자진단법(RT PCR), 배양법, 항원 항체 검사법 등 3가지 진단법이 있다. 분자진단법, 배양법은 바이러스 자체를 보는 것이고, 항원 항체 검사법은 바이러스가 아닌 항원이나 항체를 검사하는 방법이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확진 검사법으로 인정한 것은 RT PCR과 배양법 2가지뿐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고, 전 세계적으로 표준이되는 코로나19 진단법은 RT PCR이다. 검체에 있는 바이러스에서 핵산을 추출한 뒤 이를 증폭시켜 진단 장비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빠르면 3시간 정도면 검사 결과가 나오며, 정확도는 99%다. 또 RT PCR은 바이러스를 기본적으로 죽여서 검사하기 때문에 배양법보다 안전하다. 현재 국내 긴급사용 승인된 5개 코로나19 진단시약은 모두 이 방식을 사용하는 제품이다. 또 다른 검사법인 배양법은 주로 연구용으로 쓴다. 검사에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걸린다. 무엇보다 검사 과정이 위험해 일반 병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최근 미국 하원에서 논란이 된 코로나19 검사법은 항원 항체 검사법이다. 이 검사법은 신속진단법, 또는 간이진단법으로 불리며,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의 항체를 검사하거나 바이러스의 부스러기 단백질인 항원을 검사하는 면역학법 검사법이다. 독감검사나 임신진단 키트와 원리가 동일해 키트에 항원이나 항체를 떨어트리면 10~15분에 검사 결과가 나오지만 민감도, 즉 환자를 검출하는 비율이 50~70%정도여서 현재의 코로나 사태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폄하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6

관점에 대하여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직업 상 읽기 쓰기 경험을 많이 하는데, 학생들과 텍스트를 같이 읽거나 그들이 쓴 감상문을 보다 보면, 학생들에게 관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수련을 꿈꾸었다’는 수필을 같이 읽을 때다. 작가 김선우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 소년이 구걸하지 않고 꽃을 파는 모습을 보고 쓴 글이다. 가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면서 그 소년을 더러운 물에서 피는 수련에 비유하는 내용이다.이 글을 보고 어떤 학생은 작가의 감동에 감정 이입하여 캄보디아 소년의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수련이 과연 얼마나 더러운 곳에서 피는지 사실을 확인하려 든다. 어떤 학생은 구걸을 금지한 캄보디아 정책 때문에 소년이 꽃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들며 감동을 거부한다. 어떤 학생은 사실과는 별개로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한다. 이렇게 같은 자료를 보아도 반응이 다른데, 그것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은 오랜 가뭄으로 주인집에서 쫓겨난 하인이 라쇼몽에서 노파를 만난 후 도둑으로 변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내용이다. 이 단편을 읽고 어떤 학생은 가난을 구제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상문을 쓰고, 어떤 학생은 하인의 부도덕함을 심판하는 글을 쓴다. 이것 역시 작품을 보는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런데 학생들의 그런 관점은 평소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련이 얼마나 더러운 물에서 피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은 사물을 볼 때 사실을 중시하는 평소 관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캄보디아의 구걸 금지 정책은 경험하지 않으면 관심 갖기 힘든 정보이니, 작품을 볼 때 자신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어떤 점이 눈에 띄는 것은 그 부분을 일부러 골랐다기보다는 자신의 관심과 경험에 의해서 그것들이 보인 것이다.관점은 자기가 속한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다. 동양인지 서양인지, 한국인지 중국인지, 상위 10%에 속하는지 아닌지, 부모가 엄격한지 개방적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심지어 여러 과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적 관점의 경우 타고난 뇌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도 한다. 그러니 관점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그렇다고 관점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관점을 바꿀거야 해서 바꿀 수는 없지만, 절박한 상황이 되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큰 시련을 겪으면 종교를 갖게 되거나 개종을 하기도 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도 진보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그러나 그런 경험 역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같이 읽기와 글쓰기가 적절한 도구다.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관점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

202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