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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생 책을 만나려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어렵게 사는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책을 좋아했지만, 마음껏 공부할 수 없었던 그는 도서관에서 심부름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습니다.하루는 서가 맨 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 한 권을 뽑았습니다. 에밀 드페브리에가 쓴 ‘동물학’이었지요. 동물에 흥미가 있었던 그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맨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빨간 잉크로 쓴 손 글씨를 발견합니다. “이 책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와 깊은 인연을 맺은 당신에게 성의를 전하고 싶습니다. 법원으로 가서 엘제이(L.J)14의 보관 서류를 수령해주세요.”법원 담당자가 건넨 봉투에는 문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유언장입니다. 나는 평생 동물을 연구하고 한 권의 책을 썼습니다. 당신은 처음으로 내 책을 끝까지 읽어 주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전 재산을 드립니다. 나는 하늘에서나마 기쁠 것입니다.”4백만 달러를 상속한 소년은 곳곳에 도서관을 세워 누구나 책을 읽게 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생 장 포로 라코스트입니다.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금전적 혜택이 생기지는 않지만, 책에는 그보다 더 값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때로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빌 게이츠는 말합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좋은 책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내 지식수준을 뛰어넘어 글을 이해하기 위해 많이 생각하고 곱씹어 사색하고 책을 덮은 후에도 한참 지나서야 울림이 계속 머무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1년 동안 운동을 10번 했다고 건강해지기를 기대하는 일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읽는 습관을 만들 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내 삶을 뒤바꾸는 운명의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8

대구·경북 정치권의 고민거리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총선이라는 큰 일정을 두고 여야 각 당은 인재영입과 각종 공약발표 등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30대 층을 공략하는 차원에서 젊은층 인재영입에 총력을 기울이며 오는 총선을 디딤돌로 삼아 2년 뒤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통합과 인적쇄신 등을 통해 당의 면모를 바꾸는 행보를 통해 오는 총선을 치르려는 의도를 보이며 중산층 공략을 위한 인재영입에도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여야의 이 같은 움직임과 함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세 결집을 통해 여야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만큼 오는 총선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내포한 셈이다.대구·경북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은 대구 수성갑과 북구을 교두보를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경북지역에서 첫 지역구 의원 배출을 노리는 상태다. 본격적인 총선에서 여당 측이 대구·경북지역에 대한 집중포화가 예상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현역 70% 물갈이론 등을 통해 인적쇄신을 거듭 천명하며 당 지지세 부상에 노력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와 달리 대구·경북지역에 정치신인들의 도전이 만만찮다.하지만, 대구·경북지역민들은 한국당의 이런 움직임에 맘이 편치만은 않다. 현역 70%를 물갈이한다는 데 따른 반응으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대구의 경우 12명 중 9명을 친박 인사로 과감하게 교체했다. 이번 총선에도 역시 공천 물갈이의 우선 대상을 대구·경북지역으로 언급하며 강도 높은 인적쇄신을 한다고 했다.대구·경북에서 대폭 물갈이를 하는 것이 강도 높은 것인지는 지난 20대 총선을 봐도 그 근거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심지어 지역 식자층은 대구·경북을 정치 식민지로 다루는 듯한 한국당의 공천룰이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기회가 있을 때마다 각종 말 잔치를 통해 대구·경북을 칭송했던 한국당이 총선에서 또다시 지역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불멘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구 신공항 이전이나 대구 상수원이전, 포항 지진 등 지역의 최대 현안이 발생해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적극적인 모습이 거의 없었던 정치권이 총선만 되면 지역을 거론하느냐고 반문하는 지역민들도 많아졌다. 대구 경북 70% 물갈이론은 한국당의 대구·경북에 대한 이상한 애착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만만한 것이 대구·경북이냐는 내용이다. 4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한국당은 똑같은 공천룰을 제기한다면 과거 중앙당에서 찍어 내리면 무조건 표를 주었던 지역민들도 이제는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2명,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구미시장을 선출하는 모습을 통해 이미 경고를 날린 셈이다.대구·경북지역이 우파성향의 유권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민들도 이제는 학습효과가 충분하다. 부동산에만 풍선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역민들은 이미 표로서 드러냈다. 과거보다 더 똑똑해진 지역민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2020-01-28

‘라테 파파’

1974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부모휴가제를 도입했다. 부모휴가 중에 아빠는 의무적으로 3개월의 휴가를 사용해야 한다. 이 제도로 스웨덴은 여성에게 집중됐던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담이 아빠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복지의 나라 스웨덴에서는 이젠 아빠의 육아 등 돌봄 참여문화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라테 파파는 한 손에는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유모차를 미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라테 파파라 부른다. 그 유래는 당연히 스웨덴이다.직장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벨 문화가 시작되고, 남녀 성평등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도 남성의 육아휴직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 통계로 확인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부문의 남성육아 휴직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 2001년 육아휴직제도가 도입 후 가장 많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한 것이다.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도 21.2%로 사상 처음으로 20%대를 넘었다고 한다. 남성의 가사 참여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남성의 육아 및 가사노동 참여가 늘어나는 현상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남존여비(男尊女卑)를 부르짖던 우리 조상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가히 격세지감이 있는 변화다.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에 좇아야 한다는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의미 역시 무색해지는 요즘이다.대구에서도 지난해 남성의 육아참여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는 뒤지는 12%선에 머물렀으나 큰 폭의 증가세를 드러냈다. 대기업이 없는 대구의 처지를 생각하면 2015년 3.4%와 비교하면 급진적 변화다.남성은 바깥 일, 여성은 집안 일로 구분되는 종전의 성 역할의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28

우리의 삶이 더욱 환해지는… 의성 수정사(水淨寺)

첫눈이 내린다. 잔디밭에도 집 앞 상수리나무 가지에도 하얗게 눈이 내린다. 전원을 적시는 설경을 사진에 담아 친구에게 보냈다. 며칠 간의 해외 연수로 잠은 설쳤다던 그녀가 푸석한 목소리로 절에 가자고 제안한다.방점 찍히듯 남아 있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흔쾌히 집을 나섰다. 생각이 많고 소심한 나와 달리 그녀는 늘 적극적이고 대범하다. 눈은 녹고 하늘은 무심히도 맑지만 모처럼의 수다가 눈꽃처럼 화사하다.“저 산에 묘를 쓰면 후손이 큰 부자가 되지만 마을에는 심한 가뭄이 든다네. 그래도 기어코 밤을 틈타 몰래 묘를 쓰고,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오물을 갖다 뿌리고…. 지금도 산에 가면 오물을 뿌린 구덩이가 남아 있대.”차가 금성산을 끼고 달릴 때, 친구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고단하던 시절의 어두운 탄식들이 들릴 것만 같은데 산은 늠름하고 기품이 넘친다. 잘 생긴 기암괴석이 뿌리를 박고 있는 명산이다. 길은 비봉산과 만나는 지점에서 끝이 났다. 금성산과 비봉산 그 사이 계곡을 끼고 수정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늑하다.고운사 말사로 신라 신문왕 때 의상이 창건한 절, 동국여지승람에는 수량사(修量寺)라고 소개된 절이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머물며 승병의 보급기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 헌종 때 대광전만 남기고 불에 탄 것을 뒤에 중수하였으며, 월산 스님과 탄허 스님 같은 대선사가 머무시기도 했다. 이 지역의 불자들에게는 성지처럼 사랑받는 절이지만, 내게는 친구의 유년을 담고 있는 곳이라 더 특별한 곳이다.수년 전 동짓날, 그날도 눈이 왔다. 불자인 그녀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팥죽을 먹였다. 좋은 곳이면 어디든 나를 데리고 가는 친구가 있어 절집은 더 편안했고 팥죽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눈 쌓인 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환한 미소와 함께 커다란 대접에 팥죽을 떠주던 공양주보살의 후한 마음이 아른거린다.금성산의 기운이 약수로 변하여 사시사철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수정사(水淨寺), 오늘도 절의 입구에는 약수를 받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래 된 벚꽃나무 한 그루와 돌에 새겨진 약사여래불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크기와 높이가 다른 돌들이 어깨를 맞댄 채 운치를 더하고 앙상한 벚나무 그림자와 낮달이 우리를 경내로 이끈다.다행히 절은 변화의 물결을 비켜나 소박한 고졸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향집을 찾아온 듯 포근하다. 대광전을 받치는 돌너덜을 연상케 하는 돌무더기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걸작이다. 새파란 이끼 옷을 입은 돌들이 부처님을 모시는 수미단처럼 주법당과 나무들을 받쳐주고 있다. 이 질박하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은 말더듬이 박 처사의 불심이 담긴 역작이라고 한다.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나는 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잊고 요사채 마루에 걸터앉아 돌무더기를 바라본다. 박 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아는 이가 없다. 분주히 경내를 오가며 궂은 일을 하는 그의 젖은 목덜미와 활짝 열린 법당문 안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한 편의 영상처럼 흐른다.땔나무와 잡일, 절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묵묵히 돌을 쌓아올렸을 박 처사의 불심을 생각한다. 그는 전생에 조금은 게으르고 절밥만 축내는 불목하니였을지도 모른다. 고단한 몸 하나 절집에 얹혀살면서 무슨 소원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돌무더기 옆에 시멘트 옷을 입고 서 있는 수정 같은 샘물은 알고 있으리라. 큰 법회나 예불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는 날마다 염불소리 들으며 업을 씻어 내렸고, 내면에는 종소리 같은 평화로움을 그를 즐겁게 했으리라. 오래된 돌무더기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조낭희 수필가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대광전을 향해 나는 박 처사를 생각하며 가운데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오른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좁고 가파른 계단은 편리하고 정갈한 것을 외면하고 있는 그대로 세월을 다독이고 있다. 살다보면 묵직한 세월의 힘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감동의 눈시울을 젖게도 한다. 시간의 흔적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주지 스님의 지혜로운 안목도 고맙다.비로자나 부처님이 봉안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대광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신다. 불목하니 박 처사의 외로운 불심이 더해져서 일까. 겨울 법당이 따뜻하다. 불목하니 박 처사에게 숙제처럼 따라붙던 업과 그의 길고 외로웠을 기도가 자꾸 내게 말을 건다. 숨 가쁜 세월 나는 어쩌면 빚쟁이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풀어야 할 이승의 업은 많은데 절간의 풍경은 쓸쓸하고 삭막하다. 공양주 보살 없는 절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불목하니는 이미 사라진 말이며, 불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물질에 밀려 외면 받는 세상이 되었다. 법당을 두리번거리는 나와 달리 친구는 다소곳이 절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생각보다 몸이 앞서는 친구다.뒤늦게 나도 오래된 것들을 위해 기도한다. 박 처사의 역작처럼 별 특징없고 평범한 돌도 기도와 정성이 더해지면 아름다워지듯, 우리의 오래도록 이어져온 우정에 감사했다. 사랑 없는 세상에 때때로 우리의 삶이 환해지도록, 수정사 앞뜰에 피는 벚꽃처럼 자비를 베푸시길.

2020-01-27

문학의 ‘인간다움’… 여전히 중요한가

프란츠 카프카인간이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를 가지고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의 ‘인간성’을 규정하는 것은 가장 큰 과제였다. 오래전 그리스 비극의 사례로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이, 우리가 ‘문학’이라는 대상 속에서 느끼는 일말의 휴머니즘의 기운이 그러하고, 최근 문학 불황의 시대에 파편화된 인간성에 대한 이해에 대한 당혹감을 통해서도 역설적으로 증명된다.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단지 생존만을 위해 산다고 한다면, 여타의 동물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인간이 문학을 창작해온 과정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던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부친을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한다는 금기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서구 비극의 모티프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주는 까닭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계된다.여타의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윤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다움인가, 아니면 그것을 지키고자 애쓰지만, 결국 신의 섭리에 압도되는 한계를 만나는 것이 인간다움인가. 이 간단하지만 모두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시대를 통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인간성의 규정이란 한 번의 창작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새롭게 바꾸면서 새롭게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인 까닭이다.한편,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했던 햄릿의 가장 인간다운 고뇌는 어떠한가. 우리가 그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지 생존만이 인간임을 증거하는 유일한 가치가 아닌 까닭이다. 그러니 결국 인간이 세워 올린 문학은 애초부터 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규정의 문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물론, 인간다움에 대한 문학의 규정은 단순히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갖는가 하는 것에 대한 순진한 서술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에서 이뤄지는 인간성에 대한 규정은 언제나 극단적인 비인간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아니고서 인간은 인간다움의 영역을 체감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의 휴머니즘의 문학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또, 어느 날 아침에 벌레가 되어 버린 카프카의 ‘변신’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떠한가. 그가 벌레가 된 것은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은유’ 즉 ‘메타포(metaphor)’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외부 세계를 규정해온 표상의 기술 중 하나였으니,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간화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 같은 은유가 결국 인간성을 표상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단지 비-인간성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진짜 벌레가 된 이 작품 속 주인공을 보고서 독자 모두가 느꼈을 놀람과 충격은 분명히 일종의 부조리에 닿고 있다. 분명 그것은 언어화되지 않는 물질적인 당혹감이다. 메타포의 기술에 익숙한 인간은 어떤 언어를 할애하더라도 규정하기 어려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나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의 파편화된 맥락과 닮아 있다.하지만, 그는 왜 벌레가 되었는가 혹은 카프카는 이 상황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하는 물음에 이르게 되면, 독자의 해석은 다시 ‘인간다움’이라는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순수한 악이나 폭력 같은 비윤리적 신화를 마주하고서 충격을 받은 인간이 다시 어떻게든 그것을 인간다움으로 봉합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그러니, 문학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규정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인가, 묻는다면, 인간이 언어를 세계 표상의 도구로 쓰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답해야 한다. 인류가 가진 어쩌면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비언어적인 작품일 카프카의 ‘변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1-27

국가의 원수인가 진영의 보스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역설하였다.이처럼 철석같이 약속했던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경쟁의 룰을 정하는 선거법개정 협상에서 제1야당은 배제하고 진보진영(4+1)의 정치적 야합으로 공수처법을 끼워서 패키지로 통과시켰다. 또한 신년기자회견에서는 “조국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은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대통령이 수많은 범죄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중에 있는 피의자는 감싸고, 그 피의자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초를 겪었던 국민에게는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가 없다. 이게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란 말인가?더욱이 재판 중에 있는 피의자를 대통령이 감싸는 것은 검찰과 재판부에 대한 압력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했던 발언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모순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과 2017년의 대선에서 두 차례나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고 공약하였고, 현재의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하였다. 그런데 검찰수사의 칼날이 청와대와 진보진영으로 향하자 법대로 수사 중에 있던 ‘수사팀을 교체’하면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국민을 바보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감히 이런 행태를 보일 수가 없다.사람(人)의 말(言)은 믿음(信)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보진영의 장기집권이라는 권력욕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는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한 진영의 보스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의 원수가 진영의 보스로 전락하는 순간 그의 불행은 시작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임을 왜 모르는가? 한국정치사가 증명하고 있는 대통령들의 비극적 종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포부들, 즉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 국민의 자랑으로 남는 대통령’ 등은 이미 코미디가 되어가고 있다. 견제 받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포부는 진영논리에 갇힌 독재정치가 아니라 비판을 경청하는 공화정치에서 이루어진다. 부디 공화국의 원수로서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4월 총선에서 확실하게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2020-01-27

부동산 경찰

부동산 경찰은 내달 21일 출범하는 국토부 산하 부동산 조사팀을 가리키는 말로, 특별사법경찰이다. 부동산 경찰은 시장질서를 해치는 투기꾼에 대한 추적에 나서고, 전국 지방자치단체 특사경의 수사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토부는 15명 내외로 상설 부동산 조사팀을 구성하고, 세종청사 내부에 사무실도 연다. 기존에 지정된 부동산 특사경 6명 외에 추가로 특사경을 증원하고,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감정원 등지에서 직원을 파견받는다. 주요 조사·수사 대상은 불법 전매와 청약통장 거래, 무자격·무등록 중개, 주택 구매 자금 조달 과정의 증여세·상속세 탈루 등이다. 여러 지방을 오가며 불법전매나 청약통장 거래 등 투기를 저지르는 전국구 투기세력에 조사와 수사 역량이 집중될 예정이다. 시장 과열지역에 대해서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정밀 분석하면서 주택 구입 자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는 탈세 등 불법을 찾아내고 부정 대출도 가려내게 된다. 조사팀은 관련 기관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해 받아볼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부동산 신고 요건도 까다로워진다. 우선 내달 21일부터는 실거래 신고 기한이 계약일 60일 이내에서 30일 내로 단축된다. 부동산 거래를 신고한 이후 계약이 취소될 경우에도 이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3월 중순부터는 부동산 구매 자금조달계획서 내용이 대폭 보강되고, 투기과열지구 9억원 초과 주택 매수자는 계획서 내용을 증빙할 서류도 직접 제출해야 한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도 기존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주택에서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3억원 이상 주택과 비규제지역 6억원 이상 주택으로 확대된다. 부동산 경찰이 투기꾼 근절을 위한 최선의 패가 되어주길 바란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27

스물두 번째 일기장

김현욱 시인작년 6월,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은유는 지금까지 스물두 번째 일기장을 쓰고 있다. 권수보다는 은유가 1년 6개월 동안 날마다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는 점을 자주 칭찬하고 격려해주었다. 일기 쓰는 때가 꼭 정해진 건 아니지만 은유는 주로 저녁 8시쯤에 습관적으로 일기를 썼다. 일기를 써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일기를 쓰는 것은 날마다 식사 후에 양치를 꼼꼼히 하는 것처럼 분명 좋은 습관이다. 나쁜 습관은 저절로 자라는 잡초처럼 가만두어도 무성해진다. 좋은 습관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돌보아야만 거둘 수 있는 열매 같은 것이다. 세상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식에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우리 아이 독·토·글(독서, 토론, 글쓰기) 습관 기르기’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학교에서 영재교육원에서 도서관에서 수많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토론하고 글쓰기를 했던 경험들을 담은 것이다. 2011년에 딸, 은유가 태어나면서 부모로서 자녀에게 독·토·글 습관을 길러 주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도 담았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유전도 환경도 부모도 그렇다.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다만, 독·토·글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교사나 부모의 인내와 꾸준함, 모범보이기와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우리 아이에게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다면, 부모도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일기 써라!”는 오래 먹히지 않는다. “같이 쓰자!”가 오래 간다. 우리 아이의 오늘 일기거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맞장구를 쳐주고 거들어주고 꾸준히 칭찬과 격려를 해줘야 한다. 은유가 일기 쓸 때, 나는 옆에 앉아서 시를 필사했다. 시를 필사하니 은유가 시에 관심을 가졌다. 가끔씩 일기장에 시를 쓰기도 한다. 겨울방학 과제로 자작 동시집을 만들어가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도 참 기특한 일이다.1월 7일부터 22일까지 운영한 영일도서관 겨울방학 프로그램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것도 은유와 내게는 참 뿌듯한 일이다. 그림책 읽어주기와 보드게임을 합친 도서관 수업은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했다. 은유는 몇 번이나 도서관 수업 이야기를 일기로 썼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당부했다. “아빠, 올해도 포은도서관 도서관 수업 꼭 신청해줘!” 매년 포항시립도서관(포은, 대잠, 오천, 석곡)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도서관 수업을 운영한다. 선착순으로 모집하는데 웬만한 클릭으로는 어림도 없다. 1분 안에 완료된다. 올해도 그 긴장감을 맛 볼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나 그 긴장감과 과정, 결과는 나만의 비밀 일기장에 기록할 것이다.은유가 열두 살을 넘어서도 꾸준히 일기를 쓸지는 미지수다. 그때는 그냥 은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좋은 습관의 힘을 느꼈다면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2020-01-27

세시(歲時) 풍습은 사라지고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한국사회의 세시(歲時)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 어릴 때 시골 농촌의 섣달 그믐은 새해맞이 준비 기간이었다. 가난하지만 집집마다 쌀강정을 만들고 찹쌀로 유과를 만들기도 했다. 조청을 고아 엿을 만들고 집집마다 밀주를 담가 제주로 썼다. 당시 맷돌에 콩을 갈 때 어머니 곁에서 팔이 아프도록 도운 기억이 난다. 설 며칠을 앞두고는 이웃 동네의 물레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오기도 하였다. 가래떡을 싣고 오던 우리 집 소가 얼음판에 넘어져 일으켜 세우느라 애태운 적도 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섣달 아름다운 풍광이다.다시 2020년 구정(舊正)이다. 어릴 때처럼 기다려지고 설레던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내 고향 어릴 때의 세시풍습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구정 전야 섣달 그믐날, 우리 또래는 모두 친구 집에 모여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배고프던 시절 우리는 어려운 살림에도 쌀을 한 홉씩 추렴하여 밤늦게 밥을 해 먹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목이 쉬도록 노래하고 윷놀이도 하였다. 내일 입을 새 옷을 생각하면 신명나는 그믐날 밤이었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쉰다는 말까지 있었다. 같이 놀던 그 고향 그 동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설날이 되면 더욱 고향 사람들이 그립다.설날 아침 우리 집안은 10촌까지 모여 합동 제례를 지냈다. 당시 우리 집안의 제관은 30명이 넘었고 마루뿐 아니라 댓돌위에서도 제사를 지냈다. 제일 서쪽의 큰집부터 작은집까지 제사 후 명절 음식을 나누다 보면 정오가 넘었다. 합동 제례 후 우리는 모두 동네 어른을 찾아 정성껏 세배를 드렸다. 6살 때 나는 동네의 천민인 고직이 어른께도 세배를 드려 조부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명절 막걸리에 취하여 호기를 부리던 집안의 어른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당시 정월 한 달 동네 이곳저곳에서는 재미있는 윷놀이가 벌어졌다.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나누어 놀기도 하고, 며느리와 딸네들이 편을 지어 윷을 놀았다. 당시 동편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서편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까지 있었다. 정월대보름 뒷산의 달불놀이는 아직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둥그렇게 쌓아 올린 생솔나무 달집에 불을 붙였다. 불이 활 활 타오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마을입구에서는 동서로 나눠 줄 당기기기도 하고 제기차기와 팽이놀이도 하였다. 지금은 고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이러한 세시풍습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며칠 전 고향을 찾아가지만 그 옛날의 그 풍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인정이 넘치던 고향의 풍습은 찾을 수 없다. 옛날의 함께하던 놀이 문화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눈만 뜨면 게임에 빠져 들고, 이제 스마트폰이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버렸다. 공동체가 아닌 혼자 즐기는 개인주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각박한 세상의 ‘고독한 군중’이 되어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으로 빈곤하게 되었다.

2020-01-27

다시 시작하기

명조 말, 청나라 초기 역사학자인 담천은 20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역사서 ‘국각(國69B7)’을 완성했습니다.“드디어 내가 해냈어. 명나라의 역사를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된 거야.”오랜 세월 기울인 노력이 크나큰 결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자 지난 세월 겪었던 수많은 고초가 한꺼번에 떠오르며 그를 감회에 젖게 했습니다.며칠 후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은 담천의 살림이 워낙 궁핍해 변변한 물건이 없자 대나무 상자에 고이 담아 둔 ‘국각’을 값진 물건이라 생각해 가져가 버렸습니다.60세를 훌쩍 넘긴 담천에게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20년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허탈했지만, 그는 곧 훌훌 털고 일어섰습니다.“그래.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나에게는 역사를 전해야 할 사명이 있어!”담천은 이후 10년을 다시 투자해 보다 훨씬 새롭고 완성도가 높은 ‘국각’을 썼습니다. 새로 집필한 ‘국각’은 총 104권에 500만 자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었습니다. 내용도 전에 쓴 ‘국각’보다 현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쳤지요. 그가 만일 그 일로 좌절해 책을 만드는 일을 포기했다면 우리는 역사서 ‘국각’을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플라톤이 그의 대표작 ‘국가(politeia)’에 만족하기까지는 다른 방법으로 이미 아홉번을 써 본 다음이었습니다. 대영박물관에는 토마스 그레이가 쓴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의 각각 다른 초고 75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쓰기 위해 원고를 200번이나 고치고 또 고쳐 썼습니다.설 명절 후 첫날, 2020년 새해 결심이 무너졌다고 실망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우리는 분명히 행복한 사람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포유류와 조류에서 감기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RNA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전자 현미경으로 봤을 때 태양 외곽의 붉고 둥근 띠를 뜻하는 ‘코로나(corona)’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이러스는 1930년대 닭에게서 처음 발견된 후 개·돼지·조류 등의 동물에 이어 사람에게서도 발견됐다.처음에는 소나 돼지와 같은 일부 동물에겐 매우 치명적이지만 사람에게는 대개 가벼운 감기만 일으키고, 어린이들에게선 설사 등의 장 질환을 일으키는 등 위험성이 높지 않은 질병으로 여겨졌다.그러다 다른 형태로 변이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나라를 강타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SARS)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MERS)다. 지난 2003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사스는 약 8천명의 사람이 감염돼 이중 10%가 사망했고, 지난 2005년 우리나라에 상륙한 메르스 역시 전 세계적으로 1천400여명이 감염돼 그중 37%인 557명이 사망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달 초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를 중심으로 발생한 집단폐렴 유발 병원균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새로운 형태의 코로나 바이러스로,‘우한폐렴’이라고도 한다. 중국 우한시 화난 수산시장에서 첫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수산시장 내 상인들이 토끼나 뱀 등 야생동물을 도축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는 치명적 전염병인 만큼 철저한 방역대책이 필요할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22

생각이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힘들고 어렵다. 거친 세상에 버티고 서 있는 일마저 버거울 지경이다. 사람마다 삶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느라 허덕였던 굽이굽이가 보이지만, 앞으로 헤쳐갈 날들도 그게 어디 쉬울까.우리에겐 좁은 땅에 사람이 또 많아 어쩌면 곱절로 힘들었을까. 여유가 없고 위로가 없으며 칭찬이 없고 격려가 없다. 경쟁과 아귀다툼으로 가득한 끝에 혐오와 차별, 질시와 반목이 넘치는 세상. 정치와 종교, 언론과 교육에 화합보다 편가름이 주제가 되고 소통보다 단절이 화두가 된다. 갈라진 편들끼리 모인 집회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환호가 들리고, 생각이 다른 상대를 향해서 ‘얻어맞지 않은 게 다행’이란다.우리는 왜 그럴까. 힘이 없던 시절 남들이 갈라놓은 민족의 운명이 역사의 덫이 되었다. 남과 북이 헤어진 것이 이토록 질긴 질곡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뉜 둘이서 다시 뭉치면 될 줄 알았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다.그런 처지는 마음에도 들어와 박혀 사람들의 생각마저 갈라놓았다. 세상은 이념의 벽을 넘어섰다지만, 한반도는 갈등의 굴레에 맴돌고 있다. 이제는 역사를 놓아줄 방법이 없을까. 겨레가 갈등에서 헤어날 방도가 없을까. ‘이게 나라냐’는 물음이 내 마음대로만 돌아가는 나라를 기다리는 것일까.이긴 편과 진 편이 끝도 없이 험담과 욕설을 날리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싸움에 이겨서 좋은 게 아니라, 정말로 나라가 잘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생각이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방법이 달라도 같은 방향을 겨냥한다. 그래서 만나고 겨루며 토론하고 협상하는 것이 아닌가.나만 언제나 맞고 상대는 항상 틀린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조절하고 수정하며 보완하고 협의하며 나아가야 한다. 완벽한 사상은 있을 수 없으며 다 틀린 생각도 불가능하다.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으며 지혜는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다. 절대선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절대악으로 깔아뭉갤 일도 없어야 한다. 오른쪽도 귀하고 왼쪽도 소중하다. 새는 두 날개로 나르지 않는가. 서로 도와야 하고 함께 보태야 한다.좌우가 첨예하고 맞선 정치판에서 ‘우리는 어차피 한 편이 아니냐’라던 미국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생각이 보이지 않는가. 냉전이 물러간 세상에 우리만 무한경쟁에 시달린다면, 이젠 좀 겸허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같은 산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르고 있었던 그 산이 다른 곳이 아니었음을 깨우쳐야 한다. 대한민국이 잘 되어야 하고 우리 국민이 행복해야 한다. 정치와 종교, 언론과 교육은 나라와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준비해야 한다. 다툼과 경쟁에 몰두하기보다 화합과 소통을 만들어내야 한다.나라 안에 대화가 통하고 격려가 넘쳐야 한다. 한 편이 쓰러지는 경기판보다 모두가 살아나는 한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산’을 새기며 나아가야 한다.

2020-01-22

쥐의 해 ‘쥐’ 대신 ‘미세먼지 잡는 날’ 어떤가요?

금년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힘이 아주 센 ‘흰쥐의 해’라고 한다. 쥐는 생명력이 강한 동물이라 먹을 복과 강한 생활력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어두운 곳에서도 활동력이 뛰어난 습성을 가졌으니 난관을 재치있게 해결하는 행운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거 60~70년대의 쥐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 해를 입히는 존재여서 ‘쥐잡는 날’이 있었다. 당시에는 저녁 6시가 되면 사이렌 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다. “오늘은 쥐약 놓는 날입니다. 동민 여러분은 일제히 쥐약을 놓아 주십시오.” 한달에 한번씩 같은 날에 전 주민이 동시에 쥐약을 놓아 효과적으로 쥐를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당시의 협동 정신과 지혜가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할 것 같다.미세먼지(PM10, PM2.5)는 WHO 지정 1군 발암물질대구경북 초미세먼지 나쁨일 수 많고, 12~3월에 집중국가기후환경회의 거쳐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관계부처 합동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 역대 최강미세먼지 대구시민원탁회의 통해 합리적 대안 도출□ 고농도 미세먼지에 국가적 ‘사회재난’으로 대응작년 2019년 1월과 3월에 유례없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장기간 지속되어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높아졌다. 그래서 미세먼지가 해롭다는 인식은 하게 되었지만 주배출원, 조성성분, 자연과 인간에 영향 그리고 삭감대책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잘 알지 못한다.미세먼지는 대부분 대기오염물질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가 매우 작아서 몸속 깊이 침투하여 호흡기, 심혈관 질환 등을 유발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에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2014년 한 해에 미세먼지로 인해 기대수명보다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무려 70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3월 국회는 재난안전법에 미세먼지를 화재, 폭발, 교통사고 등과 같은 ‘사회재난’에 포함했다.2018년에 관측된 시·도별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를 보면 대구와 경북지역이 각각 22㎍/㎥와 24㎍/㎥로 전국 최대농도를 보인 충북(27㎍/㎥) 보다는 낮았으나 중상위의 농도였다. 국가에서 설정한 환경기준 농도인 15㎍/㎥보다도 매우 높다. 이와 같은 원인으로는 미세먼지 축적이 유리한 분지지형과 적은 강수량에 있고 대구경북 지역내 산업체에서의 높은 배출량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대구경북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초미세먼지 연간 농도변화를 보면 겨울과 봄철 농도가 높으며, 특히 12~3월 중 월평균 농도는 연평균 대비 매우 높은 수준(30~32㎍/㎥) 이다. 고농도일수는 연간 10~18일 발생하였는데 12~3월 중에 50~100% 집중하였다. 이러한 12~3월의 고농도 현상은 작년 1월 14일과 3월 5일에는 서울기준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29㎍/㎥과 135㎍/㎥로 치솟아 2015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가 국가 최우선 해결과제로 부상되었다.□ 12~3월 고농도 미세먼지에 ‘계절관리제’로 강력 대처정부는 근본적인 미세먼지 해법을 도출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 국가기후환경회의(위원장 반기문 전UN사무총장)와 국무총리소속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국무총리·민간 공동위원장)를 조직하였다. 이들 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지난 연말 관계부처 합동의 미세먼지 고농도시기(2019년 12월~2020년 3월) 대응특별대책과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2020~2024)을 수립하였다.두 계획은 지금까지 정부에서 내어놓은 미세먼지 대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대책들을 포함하고 있다. 미세먼지 고농도시기(2019년 12월~2020년 3월) 대응특별대책은 ‘계절관리제’로 약칭되고 있는데, 비상저감조치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고농도 극복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서 수립되었다.비상저감 조치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일정시간 지속될 경우 단기간 국내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된다.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배출가스 5등급 차량(대부분 15년 이상 경과된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사업장·공사장 조업단축 등의 조치를 포함한다.‘계절관리제’ 기간에 고농도 미세먼지 지속 또는 악화 시에는 단계별로 기존 비상저감조치보다 더욱 강화된 추가조치가 시행된다. 추가조치는 산업·발전·수송·생활 배출원별 추가삭감, 한·중협력강화, 위기관리체계구축 등으로 고농도 상황을 최대한 완화한다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2020~2024)은 이전 대책의 체감효과가 매우 미흡하여, 12~3월에 특화된 ‘계절관리제’뿐만 아니라 연중 국내 감축량을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적극적 동참 의지 보인 대구 시민작년 11월 25일 “시민과 함께 ! 잡아라 미세먼지, 숨 쉬는 맑은 대구”를 모토로하여 ‘미세먼지 대구시민원탁회의’가 개최되었다. 대구광역시내 8개 구군에 거주하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약 250여명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다년간 축적된 원탁회의 노하우를 살려 참가자 의견을 효율적으로 취합하여 공유하고 합리적인 토론으로 정책 당국이 참고할 만한 대안이 제시되었다.이번 원탁회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에 대한 참가자의 인식과 석탄발전소(미세먼지 최대배출원) 운행중단과 전기요금인상, 배출가스 5등급차량 운행제한 및 차량 2부제 등 ‘계절관리제’핵심제도의 세부시행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의하였다.집계결과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에 대해 알고 있는 참가자 비율은 64%로 상당히 높았다. 미세먼지를 감축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5등급차량 운행제한(34%), 석탄발전소 운행중단과 전기요금인상(25%), 차량 2부제 시행(24.5%) 순으로 높게 응답하였다. 4인 가구당 전기요금 추가부담 가능 금액으로는 월 1천200원(33%), 월 5천원(30%) 순이었고 부담을 반대하는 응답자는 23% 정도로 낮았다. 5등급 차량 운행제한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전지역 44%, 시내일정지역 22%, 특정시간대 18%의 순으로 높게 응답하였고, 반대는 13% 정도로 낮았다. 차량 2부제 시행방법은 민간부문확대 37%, 민간부문 자율확대 37%, 공공부문만 시행 17%의 순으로 높게 응답하였고 반대는 7% 정도로 낮았다. 이상에서 참가한 시민들은 미세먼지의 획기적 감축을 위해 유례없이 강력한 제도인 ‘계절관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대구형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집중분야에 대해서는 교통수단의 전환(전기차, 대중교통), 시민인식 확산 캠페인(미세먼지 잡는 날), 에너지 생산방식의 전환에 대해 높은 찬성의견이 나왔다. 이상의 원탁회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동참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고 반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의 건강권을 우선시하면서도 자영업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피해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올해 경자년 흰 쥐의 해에 추억의 ‘쥐잡는 날’을 떠올리며 시도민이 힘을 합쳐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를 완전히 몰아내는 계기가 될 ‘미세먼지 잡는 날’의 원년을 만들어 보자./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남광현 고려대 석사, 경북대 토목·환경공학 박사, 일본국립환경연구소 공동연구원, 대한환경공학회 대구경북지회장 역임, 한국환경공단 기술자문위원, 포항시 환경정책위원,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환경문제 해법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환경인으로서 활동중이다.

2020-01-22

올빼미야 도와줘

어느 환한 대낮. 숲 속에 사는 올빼미와 여우, 원숭이가 건넌마을 토끼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올빼미가 나뭇가지에 앉아 여우와 원숭이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앞이 안 보여. 나 좀 도와줘.”“어휴, 이런 멍청이는 대체 왜 태어난 거야!”원숭이와 여우는 올빼미를 비웃으며 원숭이의 머리에 앉혀 토끼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재미있게 놀다가 깜깜한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우와 원숭이는 앞이 안 보여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 야단이었습니다. “올빼미야, 우리 좀 도와줘.” 올빼미의 인도로 원숭이와 여우는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원숭이와 여우는 남의 약점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린다 리처드 에어 부부는 ‘자연에서 배우는 행복의 기술’에서 꽃게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꽃게를 잡아 얕은 양동이에 넣으면 금방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게 두 마리를 같은 양동이에 넣으면 서로 빠져나가겠다고 싸우다 결국 두 마리 모두 나오지 못합니다. 꽃게는 서로 끌어내리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동이를 꽃게로 가득 채워넣으면 게들은 밖으로 나오려고 기를 쓰지만 결국 한 마리도 나오지 못하는 거지요.구룡포 호미곶에는 해마다 새해 첫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그곳 바다에 불쑥 나와 있는 손 조형물을 기억하십니까? 이 조형물에는 ‘상생의 손’이라는 작품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바다 안에는 오른손이, 육지에는 왼손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전시되어 있지요. 우리 각자는 서로 바다와 육지처럼 다른 성격과 외모, 개성을 갖고 있지만, 상생의 정신으로 서로 지지하고 격려할 때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설 명절이 내일부터입니다.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의 기운을 받아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의 2020년을 기대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2

겨울이 교육에게 말하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겨울을 지내보아야 봄 그리운 줄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겨울의 다양한 의미를 잘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이 속담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는 겨울은 성찰과 준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하늘은 성찰과 준비에 집중하라고 기온을 점강적으로 내려 자연의 성장점을 잡는다. 그러면 나무를 비롯한 자연은 겨울로 거울 벽을 만들어 면벽 좌선에 들어간다.면벽에 든 겨울나무의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겨울은 더 엄동(嚴冬)으로 향한다. 무념무상에 든 자연은 겨울을 보낸 힘으로 봄을 그린다. 욕심 없는 자연이 그린 그림은 겨울을 난 모습 그대로이다. 바로 이것이 봄이 아름다운 이유이다.그런데 그런 겨울이 사라졌다. 겨울 실종 소식으로 전국이 야단이다. 겨울 축제를 준비한 지자체와 단체들의 울상은 통곡 수준이다. 이상 기후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 심각성이 위험 수준을 넘었다. 겨울 추억이 바뀔 날도 멀지 않았다.필자는 2020년 1월 7일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그날 필자는 한겨울에 여름 장맛비를 보았다. 이튿날 모든 뉴스의 머리기사는 겨울 홍수 피해 소식이었다. 정말 물 폭탄이 따라 없었다. 더 놀란 건 그날의 기온이었다. 그날 밤은 분명 겨울이 아닌 봄이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기온은 영상 16도를 웃돌았다. 세찬 비와 함께 강한 바람이 불었는데 그 바람은 모든 봄꽃이 만개한 5월 하순의 따뜻한 바람이었다. 1월에 느끼는 5월은 낯섦이 아니라 공포였다. 그런데 우리에겐 실종된 것이 또 있다. 바로 교육이다. 겨울다운 겨울이 없듯이 우리에겐 교육다운 교육이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교육은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었다. 본질을 잃어버린 교육은 흉기로 둔갑하였다. 정부가 휘두르는 교육 흉기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치명상을 입고 있다.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으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된다. 종잡을 수 없는 교육정책은 학생들을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았다. 많은 학원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방학 특수를 누리고 있다.필자는 교육에 상처받은 많은 이들과 지난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든 공교육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수도권에서 산자연중학교를 찾은 한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에게 학교는 무엇인가요?” 학생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작정한 듯 입을 열었다. “학교는 무섭고, 불안하고, 슬프고, 재수 없는 곳이요.” 학생의 눈엔 살기에 가까운 증오가 가득했다.아프지만 필자는 그 눈빛이 낯설지가 않다. 우려되는 것은 눈빛의 강도가 매년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지금의 학생 문제와는 비교될 안 될 끔찍한 사건들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유난히 따뜻해 공포스럽기까지 한 1월 중순, 인간들의 이기심에 본질을 잃어버린 겨울이 정치 편향 교육 관료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학생 없이 지내봐야 학생 그리운지 아는가! 억지 교육 정책들로 학생의 봄을 빼앗지 말라!”

2020-01-22

살처분과 공장축산

김규종 경북대 교수세종은 젊어서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실록 2년 8월 29일 기록이다. 하지만 세종은 상사(喪事)를 당하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넘도록 고기반찬 없는 소찬(素饌)으로 일관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수많은 고기로 넘쳐난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물론 바다에서 잡고 기른 허다한 어류가 밥상에 오른다. 5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이토록 먹을거리가 풍요를 구가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새옹지마(塞翁之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세상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고 불귀의 객이 되어야 하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다. 더욱이 각종 전염병 때문에 살처분된 숱한 생명을 돌이키면 가슴이 먹먹하다.보도에 따르면, 2010년 구제역 발생 이후 2018년까지 여덟 차례 구제역으로 38만 마리의 소와 돼지, 일곱 차례 조류인플루엔자로 6천9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 47만 마리까지 더하면 지난 10년간 7천만 마리의 생명이 가축 전염병 예방이라는 목적으로 죽임을 당해 이 땅에 묻혔다.어디 그뿐인가. 2010년 이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에 소요된 비용만 4조원에 이른다. 농가 피해보상 외에도 가축사체와 오염물을 소각-매립하고, 전염병 발생지역의 소독과 매립지 관리에 거금이 소요된 것이다. 여기에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사체 침출수 유출로 인한 토양과 수질오염이 추가된다.요즘에는 살처분 가축을 묻을 매몰지를 구하는 일도 어렵다고 한다.살처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도 우심하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가축매몰 참여자 트라우마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2011년 충남의 축협 직원이 살처분 작업으로 인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생명을 산 채로 땅에 묻어야 했던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이 눈에 밟힌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안(代案)을 찾아야 한다.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생매장하는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다. 가축 전염병 창궐은 멧돼지나 야생조류뿐 아니라, 공장식 밀집축산에도 있다. 가축 전염병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이유는 공장식 밀집축산에 있기 때문이다. 비좁은 축사 안에 대규모로 가축을 양산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리는 것도 좋겠지만, 인간과 가축이 공존하는 토양은 마련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도살되고 매몰되는 가축이 아니라, 기본적인 동물복지라도 준수하는 환경이 요구된다. 세종이 드신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평온한 환경에서 자란 가축이었을 터다. 우선 거기까지라도 가면 어떨까.

2020-01-22

무엇을 담고 있을까?

1890년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던 아들이 크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당시 자전거 바퀴는 나무와 무쇠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작은 충격에도 심하게 흔들렸고 다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아들의 상처를 치료하던 아버지는 더 안전한 자전거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축구공에 공기를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때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전거 바퀴에 공기 타이어를 사용하면 훨씬 안전하고 안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아들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과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공기타이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공기 타이어는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갔지요. 미국 포드사와 독일의 벤츠사도 이 타이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아버지가 세계 최초로 공기 타이어를 개발한 던롭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위대한 발명품이 나온 셈입니다.마음은 저수지와 같습니다. 안에 담은 것을 내 줍니다. 좋은 것을 나누어 주려면 먼저 마음속에 좋은 것을 채워야 합니다. 과거 독일이 분단 상태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한번은 동베를린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를 서베를린 진영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합니다. 쓰레기를 모아 다시 동베를린 쪽으로 투척해 복수할까 했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오히려 덤프트럭 한 대에 통조림과 또 쉽게 부패하지 않을 식량을 채워 동독으로 가서 멋지게 쌓은 후 그 옆에 표지판을 하나 세웠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준다.”쓰레기를 소유한 사람은 상대에게 쓰레기를 주고, 음식을 소유한 사람은 음식을 줍니다. 선한 말, 진실한 마음을 나누려면 먼저 마음을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1

배려의 각도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설을 준비하는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방앗간 가레떡, 장터 뻥튀기, 설빔 같은 것들이 흑백 영사기가 돌리는 빛바랜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완성된 제수용품을 마트에서 준비하는가 하면 심지어 차례를 대행하는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조상님께서 제대로 적응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설 명절은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즐겁고 행복해야할 명절에 형제간 말다툼, 부모와의 갈등으로 예기치 않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평소 왕래가 뜸한 핵가족 시대에 익숙한 탓인지 모처럼 대가족 행사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혹시 가족, 친지간 잘못된 배려로 생긴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장면1(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월남전에서 돌아온 일가친척 아저씨, “이 놈 많이 컷구나!”라며 당시 5살인 나의 여린 갈비뼈가 짓눌릴 정도로 잡고서 번쩍 들어올렸다. 아저씨의 사랑표현에도 불구하고 빨리 내려놓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갈비뼈 통증 트라우마가 생겼다. 조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이었을 것이다(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를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장면2(기분 좋아 회식하자는 서장님)아침 회의시간, 서장님께서 상부로부터 칭찬 전화를 받고 과장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회의 분위기는 급상승하고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눴다. 서장님께서 자축하는 의미라며 그날 저녁 회식제안을 불쑥 던졌다. 회의실 안은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서장님은 과장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회식을 제안했다(과장들 중 일부가 동창모임, 결혼기념일 등 개인 일정이 있었다).# 장면3(오! 아버지 같은 원사님)어느 신병훈련소, 훈련병 A는 겨울날 찬물로 식기를 세척하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하사는 A에게 “식당에 가면 더운 물이 있으니 가져와서 씻어”라고 했다. A는 감읍하고 식당으로 달려가 더운물을 찾았다. 취사반장으로부터 “쫄병이 군기가…”라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다시 찬물로 식기를 씻던 A를 본 원사님, “손 씻으려는데 식당에 가서 더운 물 좀 가져와” 이후 일사천리로 물공급이 진행돼 원사님 앞에 대령된 더운물 한 바케스, “응 이걸로 식기 씻어”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면 누구나 약자를 향해 마음을 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잘못된 배려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남에게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 보며 베푸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수평적이거나 오히려 위를 보며 이뤄져야 합니다. 남에게 배려함은 상대의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위의 장면 #1, #2처럼 배려받지 않은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배려는 각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명절에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를 위한 배려는 세심하게 해야겠습니다. ‘가족이니까’ 쉽게 생각하며 내 위주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잘못된 배려가 가족관계를 배리게할 수 도 있지 않을까요?“설겆이 다했냐? 수고했다! 가족화목을 위해 즐겁게 윳놀이 한판하자”“…….”

2020-01-21

스마트폰 세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가락 하나로 세상 만물과 지구 곳곳을 더듬어볼 수 있으니, 과연 문명의 총아답게 스마트폰은 생활의 이기(利器)를 넘어 삶의 필수품이 아닌가 여겨진다. 유선에서 무선전화로, 이동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생활양식과 사회문화, 사람들의 세태는 눈부신 변모와 판이한 양상을 띠게 됐다.요즈음의 남녀노소 대부분 하루하루 휴대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눈 뜨고 활동하다가 눈 감고 자기 전까지 항상 옆에 있거나 갖고 다니는 휴대폰.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얻고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게임이나 오락을 즐기며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으니, 휴대폰은 현대인의 지극한(?) 애용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 10명 중 9명이 보유한 휴대폰을 하루에 보는 시간이 평균 3시간 이상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20대는 하루 4시간 이상이나 된다 하니 수면시간을 제외한 하루 활동시간의 1/4을 휴대폰에 얽매여있는 셈이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문자를 주고 받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식사를 하면서까지 틈만 나면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스마트폰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4천만명을 넘어서고 사용 시간도 길어져서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 단 몇 시간만 곁에 없더라도 60% 이상이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보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중독되거나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필요하거나 궁금해서, 심심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보는 횟수가 하루 평균 80여회, 직장인의 경우 150~200회까지 된다 하니, 과연 스마트폰은 시공(時空)의 감초라도 된다는 말인가.‘손 끝의 토닥거림에 별천지가 열리는/문명의 진화는/편리함의 덫이다/갈수록/메말라가는 정(情)/고립을 자처한다//말 수가 줄어들고 생각조차 얕아져/단조롭고 귀찮음/모나게 길들여져/저마다/웅얼거리며/낚는 것은 그 무엇?’ -拙시조 ‘스마트폰 세태’ 전문스마트폰과 인터넷, 첨단 디지털 기기의 등장으로 사회의 비약적인 변혁과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가 이뤄졌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과잉과 편리함의 이면에는 부작용과 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으로 눈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며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며 대화가 줄어들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느리게 변화하는 현실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결국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갇혀 무미건조한 쳇바퀴질을 일삼으며 고독한 군상이 돼가는지도 모른다.문자 대신 엽서나 손편지를 써보고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드는 시간을 늘려보면 어떨까? 풍경을 바라보며 걷기와 사색을 즐기고, 현재 하는 일에 몰입하기, 대화로 마음 챙기기, 주변 환경 인식하기 등의 활동으로 마음 근육을 키워나갈 때 핸드폰을 사용하고픈 충동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2020-01-21

문패, 말과 삶의 결을 새기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문패가 사라졌다.1970~80년대만 하여도 집집마다 철문이나 나무문의 기둥에 문패가 걸려 있었다. 지방은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서울의 주택가 골목골목에는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문패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웃하여 살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말기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편지의 내왕이 빈번해짐에 따라 문패는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고 1897년경에는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하기까지 하였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가끔 문패달기를 사회계몽운동으로 벌이기도 하였다고 한다.골목길을 헤매다 지인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찾아내었을 때, “잘 찾아 오셨네요.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반기는 듯한 문패는 그 자체로 집주인의 대체물이었고, 찾은 이에겐 적잖은 기쁨이었다. 아주 드물게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발견하였을 때는, 그 집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나 혈육의 돈독한 정을 엿보는 듯하여 마음 한 켠이 반짝, 환해지기도 하였다.그런데 동네 골목에서 언제부터인가 문패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 대신 주소만 적힌 작은 양철판이 문기둥을 벗어나 대문 한 귀퉁이에 부착되었다. 그러다가 도시 농어촌을 가릴 것 없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아파트가 솟아올라오면서부터는 주소를 적은 이 작은 판마저 떨어져 나갔고 여러 겹 안전장치로 무장한 아파트 현관문 밖에는 층수와 호수가 덩그마니 적힌 숫자판이 자리를 잡았다.우리는 이제 ‘이 아무개’씨라는 이름이 아닌 ‘190X호 사장님, 60X호 아기엄마’라는 호칭과 지칭으로 살아간다. 앞집, 아래윗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된다. 위층에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정겹다고? 퉁탕거림을 듣는 게 고역이다. 아랫집에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가 산다는데 뿌듯하지 않냐고? 초저녁잠 방해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층간 소음, 담배 연기로 다툴 일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다. 문패가 사라지자 이름이 없어지고, 얼굴이 가려지고, 인정이 증발하였다.‘달골말결’이라는 이름을 새겨 이 글자리 문패를 걸었다. 어렵단다. 뭔 말인지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한자로는 ‘월곡언문’(月谷言紋)이 된다. ‘월곡’은 내가 나가는 대학이 있는 동네 이름이다. ‘글월’과 ‘무늬’라는 뜻을 가진 文을 써서 ‘言文’으로 적을까 하다가 무늬 紋을 써서 ‘言紋’이라 하였다. 이를 풀어쓴 게 ‘달골말결’이다. 내가 가르치는 ‘독서, 글쓰기, 말하기’ 등의 교과목은 인문학의 기초이자 세상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나는 인문학을 사람의 무늬, 사람의 결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긴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배고픈 학문, 위기의 학문이라 하지만 사람의 결을 곱게 하고 가다듬는 학문이라는 사실이 배고픔을 잊게 하고, 위기 상황을 견뎌내게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활의 무늬, 삶의 결을 그려나가고 보여준다. 내 생활의 무늬는 아름다운지, 내 삶의 결은 가지런한지, 내 말과 글을 살펴본다.내 문패를 달고 나니, 결 고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따뜻한 그 얼굴을 보고 싶다. 집집마다 걸려있던 문패가 새삼 그립다.

2020-01-21

중장년의 졸혼관

결혼은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제도다. 그래서 결혼만큼은 매우 성스러운 행위로 여기는 것이 동서양의 일반적 개념이다. 결혼 당사자도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녀가 결합하는데 동의하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벌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백년해로(百年偕老)가 그것이다.졸혼(卒婚)은 2004년 일본의 한 작가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결혼을 졸업하다는 뜻이지만 이혼과는 조금 다르다. 혼인관계를 유지하되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다. 혼인신고만 유지할 뿐 사실상 이혼에 가깝다. 재산과 자녀문제 등을 고려한 결혼 형태라 볼 수 있겠다.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37살에 부인과 해혼(解婚)을 했다. 그의 해혼 제안을 받은 부인은 고민 끝에 동의했고 해혼한 간디는 고행의 길로 갔다고 한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렇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결혼의 굴레에서 풀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자유의 몸이 된 사람은 다수가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고 한다. 인도의 종교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우리도 영화배우 백일섭씨의 졸혼 이야기가 TV에 소개되는 등 졸혼과 관련한 유명인의 사생활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어느 시인은 TV에 출연, “졸혼도 삶의 한 형태”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한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대구 신중년 결혼생활 실태분석’에 따르면 “졸혼을 해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란 물음에 28%가 긍정적 답을 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긍정 동의가 더 높았다. 시대가 바뀌어 결혼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하나 이혼, 해혼, 졸혼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사회규범마저 무너뜨릴까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1-21

청소년 유권자가 온다

“선거는 드러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제도다.”데이비드 트루만은 말했다. 선거는 시민들이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통로다. 이제 18세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최소한의 정치참여로서 선거권이 주어졌다. 2005년 만19세로 내려진 선거 연령이 다시 14년만에 만18세로 낮아져 21대 총선에서 53만명의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1.2%에 불과하지만 청소년 유권자들이 2020년 한국정치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현재 한국사회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부실이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하건만, 극한적인 여야 대립으로 투쟁 일변도의 거리정치가 일상이 되었다. 뒤베르제는 정치는 투쟁과 통합이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대립하는 이면에 구성원들이 안정을 도모하면서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은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기는커녕 소용돌이 정치의 근원이 되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정당의 꼼수도 한몫하고 있다.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그것이다. 지난 해 말 통과된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선거 결과가 가져올 유불리를 계산하여 비례자유한국당, 비례민주당 등 총선용 정당이 거론되고 보수, 진보세력이 헤쳐모이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의 혼란으로 정치적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고 유사명칭 창당을 불허했지만 들은체 만체다. 계속 거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당의 간판을 바꾸는 일은 문제가 아닌듯하다. 선거 때만 되면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과 후보자들로 정치판이 북새통이다. 공당으로서의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에 정치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기반한다. 더 이상 정치를 구경거리나 사각지대에 두어서는 곤란하겠다. 유권자로서 ‘제대로’ 된 정당을 선택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자격을 가진 다수의 시민들의 의지가 투표로 결집되어 그것에 따라 지배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했던 제임스 브라이스의 언급처럼,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힘은 유권자의 수준이다.선거권은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입장권이다. 시민권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투표권 행사는 중요하다. 새로운 유권자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기존에 무력했던 정치의 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선거교육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도록 이끄는 비판적 사고와 토론교육이 요청된다. 민주시민의 탄생을 위한 청소년 유권자교육이 교실 안팎에서 시작되어야 할 때다.

2020-01-20

대전족

대전족은 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 얻어 들어온 사람들을 가리킨다.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명문 학군과 각종 입시학원이 밀집한 이른바‘학세권’으로 불린다. 어느 도시보다 발달된 사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대치동에는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세입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친다. 예를 들면 서울 은평구의 50평(약 165㎡)대 아파트에서 살던 A씨는 지난해 초 이 집을 7억원짜리 전세로 돌린 뒤 대치동의 23평(전용 78.71㎡) 아파트 전세를 약 10억원에 구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12)을 대치동의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라고 털어놨다. 집이 좁아 불편하지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7∼8년 전세살이를 감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대전족’이라 부른다.분당 등 수도권 지역 고교평준화가 시작된 뒤 학부모들이‘강남8학군’으로 몰려들던 2000년대 초반부터 언론 등에 오르내리던 용어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전족은 대치동 주택시장의 한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부터 1년 동안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리는 서초2219강남2219송파구 등 ‘강남3구’로 전입한 초등학생 수는 4천693명으로 이 기간 서울로 전학 온 전체 학생 1만8천321명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 교육열이 빚어낸 증상을 목도할 수 있다.최근에는 대치사거리 등에 즐비한 학원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 빌라나 오피스텔 원룸에 사는‘대원(대치동+원룸)족’도 적지 않다. 재수를 선택했거나 방학을 이용해 지방에서 대치동을 찾는 학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강남부동산 불패의 뿌리는 바로 대전족 또는 대원족을 번성케 하는 교육열에서 찾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20

공인의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

강희룡 서예가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사를 나눈다는 말은 바로 가난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행동이라는 풀이로 해석되며 거둬들인 국민 세금으로 생활하는 모든 공무원을 공인이라 하는 것이다.여씨춘추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고전에 인사 원칙으로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공직을 추천하는데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척을 피하지 않는다. 원수를 배제하지 않았고 아들이라고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다.’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사성어의 내용은 이렇다. 춘추시대 진나라 평공이 기황양에게 ‘남양에 현령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라고 묻자, 기황양은 주저 없이 ‘해호’를 추천했다. 해호는 기황양과 극히 서로 미워하여 원수처럼 여기는 사이였는데 추천하자 평공이 놀라 다시 묻길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이때 기황양은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후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면 누구를 추천하느냐의 물음에 기황양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자신의 아들을 추천함을 의아해 묻자, 기황양은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두 사람은 모든 공적인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된 임명이라고 칭송했다.전국시대 말기의 한비자는 노자의 도론(道論)을 수용하여 법치사상의 세계관은 자연원리의 보편성과 공평무사 객관성을 주장했다. 또한 법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백성들의 귀천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치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사람을 기용하는 용인(用人)의 기술은 국가 통치의 중요한 방면이기에 개인적 감정을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사건을 언급하면서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면서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이제 좀 놓아주자’고 호소했다. 범법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사적으로 마음의 빚을 졌다고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대통령으로서의 행위는 참담하며, 불법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초법적이라며 국민이 준 권한을 이용하여 수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공공조직은 투명성·공정성·객관성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유는 특정 조직체를 넘어 한 사회의 가치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한비자나 우리가 그리는 법치주의 이념이 진정으로 실현된 이상세계는 아직도 달성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2300년 전 한비자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2020-01-20

투명 기차역

마크 트웨인은 쓸모없는 발명품에 투자했다가 돈을 몽땅 날려버린 경험이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처음 보는 물건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내 일생일대의 작품이오. 나는 굳이 당신에게 이 작품에 투자해 커다란 행운을 얻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당신이 5달러만 투자할 수 있다면 곧 합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요.”투자에 실패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던 마크 트웨인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이 발명품 역시 별로 쓸모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낯선 방문객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마크 트웨인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기차역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이 역에 들어오고 떠나는 기차에 실린 것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 보람, 기쁨을 맞아들인 사람은 삶에 탄력이 있습니다. 절망, 권태, 슬픔을 맞아들이는 사람도 많은데 이들에게는 주름이 나타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기쁨은 KTX지만 슬픔은 무궁화 열차라는 사실입니다.기회를 실은 열차는 예고 없이 왔다가 순식간에 떠나갑니다. 실패를 실은 열차는 늘 플랫폼에 머물러 있어 언제든 탈 수 있습니다. 이 투명 역에서는 한 번 탄 기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릴 수도 없습니다.이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행복과 기쁨과 성공을 원하기 때문에 이들을 실은 열차는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슬며시 왔다가 총알처럼 떠나갑니다. 어떤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는 사람, 꽃잠이 오는 새벽녘에도 깨어 있는 사람, 작은 이슬방울 하나에도 환희를 보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투명 역에서 자기가 원하는 열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이 투명 기차역은 수평선 너머나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당신 가슴속에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0

유아교육,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유아교육이 중요함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유아교육의 중요성만큼이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본 지면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유아교육은 때론 조기교육이란 단어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어리면 어릴수록 교육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영·유아기는 마치 물을 흡수하는 스폰지와 같이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이며 습득하는 어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하여 어린 시기부터 한글 철자를 익히거나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앞서 이야기한 대로 영·유아기에는 특정 정보에 민감한 성향이 있어서 이 시기를 민감기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두 돌이 지나기 전에 모국어의 기초적인 문법을 깨우치며 식사나 놀이와 같은 일상경험 관련된 어휘를 배우기 시작한다. 물론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거나 ‘가’와 ‘이’와 같은 조사 사용에서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휘와 문법을 과일반화해 생긴 오류이다. 보다 더 많은 언어 경험이 쌓이면 이 오류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폰지와 같은 영·유아의 특성과 민감기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논의할 때 근거가 된다. 유아교육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어떻게 유아교육을 해야 할 것인지는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최근 뇌 발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유아교육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신체 운동이 뇌 구조 발달과 관련이 있으며, 많이 뛰고 신체 활동이 활발한 아이의 뇌와 신체 움직임이 적어 과체중이나 비만인 아이의 뇌는 다르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신체 움직임이 뇌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또한, 뇌 발달 연구에 의하면 방임이나 학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3세 유아의 뇌 용적은 일반 동년배 유아의 뇌 용적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업으로 인한 좌절이나 스트레스 역시 유아를 위축시켜 뇌 발달에도 영향 미치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건강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시 유추해 볼 수 있다.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 외국어 교육기관은, 놀이를 통해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홍보한다.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아이들이 일상생활 언어와 사설 기관에서 배우는 학습 언어가 다르므로 외국어 동화를 듣고 외국어로 동요를 부른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것을 놀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놀이를 가장한 학습은 유아 입장에서 어른의 지시에 의해 해야 하는 일이고 따분하여 지속할 수 없어서 결국 좌절하게 되는 일이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에서 아이들의 신체 움직임이 억압되고 스트레스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누구를 위한 유아교육인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어른들의 불안을 해소하거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2020-01-20

포효하는 사자처럼… 구미 문수사(文殊寺)

겨울은 문수사를 비켜가고 있었다. 햇살이 죄다 문수사에 몰려와 반짝이고 절은 무언가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젊은 연인이나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오듯 드나드는 가족의 모습도 이채롭다.문수사의 전신인 납석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고종 2년에 폐사되었다. 산 너머 의성으로 가는 열재에 산적과 도둑이 들끓어 그로 인해 폐사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 후 혜봉 선사가 초가삼간을 짓고 수행하다 꿈에 문수보살을 본 후 그 때부터 절 이름을 문수사로 하였다.절은 크지 않지만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보전이 나타나고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문수사의 사계가 담긴 사진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별한 행사가 열린 줄 알았는데 늘 손님이 많다고 어느 처사님이 귀띔해 주신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절의 풍광이 유달리 빼어난 것도 아니기에 그 속살이 궁금하다.주지 스님 뵙기를 청했다. 불자와 차담을 나누시다 흔쾌히 시간을 내 주는 주지 월담(月潭) 스님, 첫인상이 참 좋다. 과하지 않은 미소도 아름답다. 꾸밈없고 편안한 웃음과 농담을 곁들인 화술에는 오랜 수행이나 숙련된 노력이 따랐으리라. 스님은 스승 혜향 스님에 대한 존경심부터 풀어내신다.가난하던 시절, 불자들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손수 농사를 짓고 양봉법을 배워 동네 분들에게 전수해 주며 평생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신념을 지키며 절을 키우셨다고 한다. 유일한 제자인 월담 스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20여 년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에만 전념하다 혜향 스님이 입적하자 어쩔 수 없이 문수사 주지를 맡게 된 것이다.“주지가 되면서 종교를 논하지 않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 싶었어요. 틀을 깨지 않으면 소통이 되질 않고 절도 살아남지 못해요. 절이나 집, 회사도 주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돼요.”문수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남다르다. 편안한 가운데 눈빛은 빛나고 말씀은 흐트러짐이 없다. 할 일 많은 스님이 참 행복해 보인다. 직관적으로 기운이 맑고 성실한 분이란 게 느껴진다. 추임새를 넣듯 울어대는 풍경소리마저 경쾌하다.한때는 고색창연한 사찰의 적막한 고독을 좋아했었다. 고찰만이 풍기는 고즈넉함에 젖어들다 보면 찌든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심란함도 잠든다. 그 하나만의 이유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절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산사에 대한 애정이 깊어갈수록 그토록 좋아하던 고즈넉함은 대책없는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불심이 떠나버린 법당의 썰렁함이나 처량한 풍경소리에 나는 때때로 슬퍼졌다.무작정 변화에 편승하는 사찰을 보면 더 심란하다. 산사 음악회나 비슷비슷한 행사에 치우치는 사찰은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본질만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수사의 변화가 성공적인 것은 주지 스님의 흔들림 없는 목적의식과 성실함 때문이다. 시주를 떠나 진심으로 베푸는 마음에서 존경심과 신뢰감이 묻어난다.“중은 하루에 세 번 자기 머리를 만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결코 중의 신분을 잊지 마라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꾸 게을러져서 편한 것만 찾게 되거든요. 스님도 사람이니까요.”산중 생활은 속세보다 더 나태해지기 쉽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법이다. 두어 시간은 걸어야 도착한다는 스님의 농담 한 자락을 걸치고 사자암으로 향한다.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자라는 솔숲 사이로 ‘솔바람길’이 친절하다. 바람은 장난치듯 소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저 아래 들판으로 달려가다 문수사를 되돌아본다. 나도 잠시 나무 벤치에 앉아 바람소리를 듣는다. 아주 작은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드디어 커다란 암석에 기댄 반쪽자리 전각, 사후전(獅吼殿)이 보인다. 사자의 형상을 한 사자암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산신각, 야외 테라스, 어디에서도 멋진 경관은 함께 한다. 사자의 울음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조낭희 수필가셀프찻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빈자리가 없다. 와불 형상의 큰 암석 앞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 준비된 다과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곳에는 묵언을 강요하는 엄숙한 부처님은 없다. 그저 편안하고 친근한 부처님이 함께 할 뿐이다. 테이블마다 정갈한 다기들과 푸짐한 다과가 손님을 맞고, 찻값은 성의껏 지불하면 된다. 통유리창 너머로 기웃대는 햇살도 오늘은 귀중한 손님이다. 차이와 경계가 없는 곳.내 안에 차향보다 더 깊고 진한 향기가 돈다. 사후전 석가모니 부처님도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보다 책임을 다하는 성직자를 만나면 감동이 배가 된다. 나는 사후전 난간에 서서 빈 몸으로도 하염없이 반짝이는 겨울 들녘을 바라보았다.“늘 깨어 있어라.”그제서야 포효하는 사자 울음이 들린다. 아주 지척에서.

2020-01-20

서양미술사 한 눈에 들여다보기

미술이 순수하게 창작자의 미학적 관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현대적인 발상이다. 미술가의 자율성이라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중세’의 천년을 두고 보자면 미술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형태와 색을 통해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미술의 기능도 달라진다. 이제 미술은 믿고 있는 것을 그리기보다 보고 경험한 것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권력과 권위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적극 이용되었다. 바로크의 색채가 그토록 화려하고, 바로크의 형태가 그토록 왜곡되어 현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바로크 시대에 접어들어 정부가 통제하는 미술학교가 생겨났다. 루이 14세의 명에 의해 왕립미술원(1648)이 설립되었다. 프랑스 왕립미술원은 국가의 통제 하에 국가를 위한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최초의 제도적 교육기관이었다. 프랑스를 모범으로 스페인에 왕립미술원(1744)이 세워졌고, 얼마 후 영국 역시 왕립미술원(1768)을 설립해 미술가들을 길러냈다.미술이 권력의 통제를 받으면서 자율성 보다는 통제하는 주체의 목적에 적합한 이론적 장치들이 규정과 규칙이 되어 이른바 미술의 ‘모범’이 생겨났다. 주어진 규범과 틀을 벗어나서는 미술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가장 경직된 틀로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했던 시대가 ‘신고전주의’였다는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혁명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절대왕정, 귀족문화, 계급주의를 대변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지나 시민사회로의 대변혁이 일어났음에도 신고전주의가 만개한 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신고전주의 미술은 영웅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화면에 서사적으로 담아낸다. 작품의 주제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웅장해야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절제와 논리성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신고전주의 영웅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개인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J.J.빙켈만이 고대 ‘라오콘 군상’에서 발견했듯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지니도록 신고전주의의 영웅들은 그려야 했다.인간의 감정을 발견한 시대는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자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유분방한 미적 세계를 탐구한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대체로 역사가 그렇듯 미술의 역사 또한 권력의 자기 증언과 큰 맥을 함께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에 가까워질수록 미술사의 변혁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고전주의자들이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와 색채를 사용했다면 급진적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롭고 속도감 있게 붓을 움직였다. 작품의 주제도 그렇다. 잘 알려진 신화보다는 잊힌 북방의 신화들을 다시 불러내거나 신비로운 오리엔트의 이국적 여인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또 어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숭고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낭만주의가 발견한 인간의 감정은 미술이 그 자체만으로 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이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실험으로 이어지면서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에게 권력에 충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은 이래야 하는 것이라며 절대적 가치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미술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20-01-20

중진국 함정

중진국에 들어 선 국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현상을 ‘중진국 함정’이라 한다.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경제 발전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처음 제기한 용어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포퓰리즘에 심취한 중남미 나라가 대표적 사례다. 중진국 함정의 원인으로는 짧은 기간 안에 경제성장을 주도한 압축성장 국가의 경제관료의 생각이 경직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로 바뀌면서 시장 경제 도입을 소홀히한 것도 원인이라 한다.14억 인구의 중국이 지난해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었다. 등샤오핑의 선부론을 필두로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40년만이다. 당시 중국의 1인당 GDP는 381 달러,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가난한 나라였다. 중국의 GDP 1만 달러 돌파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외쳤던 시진핑 주석에게는 지지기반을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결과다. 실제로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지금의 환율로 계산하면 3위인 일본보다 2.8배나 높다.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평균이 주는 착시에 빠져 환호하지 말고 심각한 빈부격차 해소와 국민 실질구매력 확대에 정진하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1인당 GDP 1만 달러 돌파로 중국 내 심각한 빈부격차가 시 주석에게 새로운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세계은행은 1인당 GDP 1만2천375 달러 이상인 국가를 고소득국가로 분류한다.중국이 GDP 1만 달러 돌파 후 고소득국가로 진입할 것인지는 또다른 관심사다. 일부학자는 사회주의 체제가 있는 한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19

‘참붕어’ 죽이기

안재휘 논설위원4·15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1호 공약’이네, ‘인재영입’이네 하고 터져 나오는 뉴스가 선거철에 다다랐음을 한결 실감 나게 하고 있다. 총선 시장은 조만간, 나라 곳간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은 온갖 선심 공약들로 폭포를 이룰 것이다. ‘진보’의 기치를 걸고 있는 여당이 먼저 치고 나갈 것이고, ‘보수’ 야당 또한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될 공산이 크다.안철수가 돌아왔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그는 앞서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지 조작에만 능하고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국민 세금으로 자기편 먹여 살리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로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어법을 구사한 바 있다. 정치권 포퓰리즘의 시발점은 대중은 대의(大義)보다는 소리(小利)를 좇는다는 확신이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속설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이다.이미 이 나라의 청년들은 그냥 청년이라는 사실만 같고도 정부로부터 공돈을 받는다. 말하자면, 지지세력이 될 확률이 높은 유권자에게 ‘복지’ 내지는 ‘수당’이라는 나랏돈 봉투를 만들어 퍼주고, 국민은 그 보은으로 부지불식 간에 해당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에서 나라의 미래, 후세들이 짊어져야 할 과도한 조세 부담 따위는 고려요소가 되지 못한다.더불어민주당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사회복지 전문가·전직 소방관·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스타트업 기업대표 등을 차례로 영입했다. 자유한국당은 목발 짚고 탈북했거나 체육계에서 미투 선언을 했던 인사들을 영입 인재로 발표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단골 패션쇼인 만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기자들 앞에서 당 대표와 사진 찍어가며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끝이다. 1회용 광고모델 콘테스트보다도 못한 쇼 정치다.공천 시즌이 지나면서 몇몇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구 선거에 나가거나 전국구 순번을 타게 될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정치권으로 시끌벅적 영입된 인재들이 이 나라 정치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감동적인 증거는 없다. 십중팔구 유권자들의 표심을 현혹하는 데 써먹는 선전용 포장지로 효용을 다하는 존재들이다.정당들은 그런 ’영입 쇼’ 행위를 ‘물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물갈이’가 아니다. 진정 ‘물갈이’를 할 의지가 있다면, 참신한 인재들 데려다가 분 발라 앉히고는 그 지명도와 명성만 발라먹은 뒤 거수기 놀음이나 시키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차고 넘치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의제(議題)와 대안을 공모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중무장해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비전을 밝히는 일부터 먼저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추잡한 가짜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백번 옳다. 비극적 ‘참붕어’ 죽이기 레이스가 안타깝다.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