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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늘은 뭘 배웠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작가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은 뭘 배웠지?’라고 스스로 물어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세상이 곧 학교’라는 믿음과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잠드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신념으로 갖고 있던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저녁 식탁에서 항상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 네가 배운 건 뭐지?”아버지의 질문에 가족들은 한 가지 이상씩 꼭 대답해야 했습니다. 만약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할 때는 식사를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대신 아버지는 가족들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고, 날마다 가족들이 말한 지식을 서로 연결하며 5∼6개의 새로운 사실과 경험들을 함께 배우고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레오버스카글리아는 아버지가 늘 들려주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단다. 인간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배움이란 무엇일까요? 호모에루디티오(Homo Eruditio), 즉 배우는 인간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연세대 한준상 명예교수는 ‘배우다’라는 의미를 이렇게 풀어 설명합니다. ‘배우다’라는 말은 ‘배다(임신하다)’에 하게 하다는 의미의 ‘우’가 들어가 ‘임신하게 하다’ 즉 속에서 자라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스스로 지식의 어미가 되어 우리 내면에서 피와 살을 붙이고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스며들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스며드는 것은 조금씩 배어들어 큰 부분을 적시는 과정입니다.오늘도 배우는 삶의 현장으로 나갑니다. 무엇을 잉태하고 무엇을 스며들게 할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10

느티나무 아래에서… 달성 도성암(道成庵)

햇살을 동무삼아 도성암까지 걷기로 했다. 굽이굽이 비슬산을 감고 오르는 콘크리트길을 한 시간 가량 걸으면 비슬산 최고의 참선도량, ‘천인득도지(千人得道地)’로 불리는 도성암이 나온다. 저마다 다른 수피의 나목들이 인사를 건네 오는데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사진을 찍고 눈을 맞춘다.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행복한 산행이다.남편은 목적지를 향해 성큼성큼 앞서 걷고 나는 겨울 산의 매력에 빠져 엉뚱한 짓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한다. 그런 나를 재촉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남편은 한 번씩 뒤돌아보고 기다려 준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다른 생각에 잠겨 같은 길을 걷고 있다.잡목 숲이 끝나자 잘 생긴 소나무 숲이 한참 이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확 트인 골짜기 건너편, 해발 700미터 고지에 청기와가 보인다. 도성암은 선산 도리사, 팔공산 성전암과 함께 경북 3대 참선수도처 중 하나로 신라 혜공왕 때 도성(道成) 스님이 창건하였다.삼국유사에는 도성과 관기의 득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라 때 포산(비슬산)에 도성과 관기라는 두 성사가 있었다. 도성은 북쪽 굴, 관기는 남쪽 고개 암자에서 살며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10여 리 거리를 서로 왕래하였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려고 하면 산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으로 굽어 영접하는 것처럼 보여 이를 보고 관기는 도성에게 달려갔으며, 관기가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나무가 북쪽으로 구부러져 도성이 관기에게로 달려갔다.어느 날, 도성이 굴 뒤 큰 바위에서 좌선을 하던 중 바위를 뚫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간 곳을 알 수가 없다. 얼마 뒤 관기도 도성을 따라 세상을 떠났는데 그 역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두 성사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살던 곳에 도성암과 관기봉이라 이름 붙였다. 도성이 도를 통하여 바위를 뚫고 사라진 바위를 도성암(道成巖) 혹은 도통바위(道通巖)라 부르고 그 아래에 도성암(道成庵)을 지은 것이다.대나무로 만든 소박한 정낭이 암자의 산문을 대신한다. 활짝 열려 있지만 수행도량이라 발소리를 낮춘다. 스님의 털신 하나가 단정히 놓여 있는 도성선원, 유리문에는 오후의 햇살이 그려놓은 나뭇가지들이 황홀하게 일렁인다. 청기와로 치장한 대웅전이나 푸른 소나무 숲, 예사롭지 않게 솟아 있는 도통바위조차 잊은 채 홀린 듯 커다란 느티나무를 바라본다.느티나무 아래에는 부부인지 연인인지 모를 남녀가 서 있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 때문에 얼마만큼의 거리를 둔 그들의 풍경은 검은 실루엣이 되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당 한 가운데 서 있는 삼층 석탑이 무색하리만치 다가가도 미동을 않는다. 간절한 몸짓이나 우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옹이진 싸늘함이 감도는 그들의 침묵을 나무는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을 피해 남편과 나는 조용히 대웅전 법당으로 향한다.뜰아래에는 잔설이 남아 있지만 비닐 방한복으로 무장을 한 법당 안은 아늑하다. 최고의 기도처에서 특별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난감하다. 적당한 기도가 떠오르질 않는다. 마당 끝에 서 있는 느티나무만 아른거리다 얼떨결에 조금 전에 본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말았다. 행여 서로의 무게가 버겁고 힘겹더라도 모진 말로 상처주지 않기를,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는 말로 부디 위안 삼기를.법당을 나오자 그들은 떠나고 없다. 대신 중년 남자 하나 나무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고독은 둘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보다 더 무겁고 안쓰럽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몸짓과도 같은 아픔이 느껴진다. 그것이 비록 잠깐의 휴식이라 할지라도. 곁에 있는 느티나무의 자태는 정령이 깃든 것처럼 신령스럽다.아무도 없는 느티나무 아래 남편과 나란히 선다. 미세먼지로 산 아래는 뿌연 허공에 잠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도성대사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250살의 느티나무가 벼랑 끝을 지킨다.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본다. 섬세한 가지들이 참선하듯 허공을 향해 저마다 길을 내고 있다. 맑고 청아한 기운들이 뻗어가는 길을 따라 아름다운 생명의 언어들이 물결친다.조낭희 수필가시름에 젖어 홀로 찾아와 머물다 가도 좋을 자리, 눈길이 향하지 않아도 무언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조용히 서쪽을 응시하는 남편, 문득 그의 쳐진 어깨를 보고 말았다. 허무함으로 구멍 난 내 시간에 집착하느라 상대를 살피지 못했다. 언제나 햇살처럼 은은하고 든든한 존재로만 여겨왔다.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는 느티나무 같은 존재여야만 했다. 지치고 쓰러져서는 안 될 무게로 버티는 나무. 그가 가진 긍정성이 아픔과 시름 속에서도 사랑하며 살도록 이끌었으리라. 가끔은 모든 것 내려놓고 고독 속에 남겨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숙연하다. 눈먼 나를 위해 기도한다. 나보다 남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삶을 채색하고 싶다. 평온한 저녁 인사처럼. 암자를 나서는데 비슬산 정상에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잔설 같은 낮달 하나 멀찌감치 서성인다. 낮달을 처음 본다는 남편의 말이 애잔하게 따라 걷는다.

2020-02-10

올바른 내용이 구축한 형식의 아름다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이미 영화 속 결과를 알고 있고, 결과의 진행형 속에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과 교회가 오랜 세월 속에서 구축한 내용을 담는 그릇(형식)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로 전 세계의 추기경이 바티칸으로 소환된다. ‘콘클라베’를 통해 라칭거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로 교황에 즉위하고 종신직에 임한다. 하지만 그가 즉위한 뒤 교회는 보수화되고 가톨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각종 추문들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엄숙하고 경직된 교리의 해석은 뒤쳐지고, 과거에 발목을 잡혀 진행되는 느린 행보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바티칸의 깊고 높은 곳으로 전달되고 있었다.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다시 ‘콘클라베’를 통해 남미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선출된다. 영화의 시작을 전임 교황의 서거와 선출의 과정인 ‘콘클라베’로 시작해 교황의 사직과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로 끝을 맺는다.‘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시스템이다. 라틴어에서 온 단어로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의미한다. 일체 외부의 간섭을 방지하고 선출되는 과정과 풍경을 사전에 차단해 비밀을 유지하는 엄격하고 장엄한 행사이기도 하다.영화에서 두 번의 ‘콘클라베’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선출된 2005년의 교황과 2013년의 교황, 두 교황의 대중을 향한 첫 발걸음을 준비하는 장면이 뒤따르고 같은듯 다른 모습이 흘러간다. 내용을 담는 형식이 달라진 것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가 구축해 온 의식(형식)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되고 다듬어진 것으로 정통을 당대의 요구에 맞게 유지하고 변형시켜 온 결과물이다. 시대의 요구가 바뀔 때 종교는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가. 오랜 세월동안 쌓아왔던 찬란한 형식, 그 속에 담겼을 종교의 숭고했던 정신과 시대정신이 충돌하여 또 다른 해답을 요구할 때 지도자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과정을 영화 ‘두 교황’은 보여준다.교회에 실망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 추기경은 수차례 바티칸에 사직서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한다. 바티칸이 각종 문제로 당대요구를 원만히 수용하지 못하던 시점,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를 바티칸으로 호출하고 며칠을 함께 보낸다. 스스로가 적임자가 아님을 알고 퇴임을 마음먹은 베네딕토 교황과 현 바티칸의 행보에 사직서를 준비한 추기경의 며칠은 부드럽고 날카롭게 다가와 아름답고 유쾌하게 전개된다. ‘내용’과 그 내용을 담고 있는 ‘형식’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풀어지는 긴장과 이완의 과정이 바티칸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올바른 내용이 구축한 형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랜 역사를 통해 다듬어진 형식에 대한 논쟁은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들고 상대의 급소를 향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세상이 변화된 내용을 요구할 때,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절대적 존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앞서 무릎꿇고 고해하는 스스로의 과오는 얼마나 숭고한가.‘신’은 이미 교황의 팔목에 채워진 만보계를 통해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나아가라’고 계시를 내리지만 인간은 다른 곳에서 ‘신’의 응답을 찾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변화된 내용이 담겨질 새로운 형식을 찾아 만보를 지나 이만보 십만보.…. 끊임없이 행하라고 하셨으니, 스스로가 쌓은 형식을 허무러뜨리고 다시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아름다운 일인가./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서울과 부산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20-02-10

5%룰

5%룰은 상장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된 경우와 보유한 자의 지분이 해당 법인 주식 총수의 1% 이상 변동된 경우, 그 내용을 5일 이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를 말한다.이는 상장기업의 경영권 안정과 공정성을 위해 2005년 개정된 증권거래법 제200조 2항에 명시된 제도다. 이 제도의 목적은 자본 시장의 개방으로 투기적 펀드에 의한 기업 사냥이나 기업 간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다.국민연금은 이같은 5%룰에 막혀 주주권 행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해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해 1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바꿔 주식 등의 보유목적 ‘경영권 영향 목적’활동이 아닌 ‘단순투자 목적’일 경우 보고기한 연장 및 약식보고가 허용되도록 했다. 이달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배당관련 주주활동이나 단순한 의견표명, 회사및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는 해임청구 등은 ‘경영권 영향 목적’활동에서 제외되고, 새로 신설된 ‘일반 투자 목적’으로 분류됐다.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국내 상장사 56곳에 대한 주식보유목적을 단순투자 목적에서 일반투자 목적으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즉 국민연금이 이들 기업에 대해 배당확대를 요구하거나 위법행위를 한 이사에 대한 해임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쌈지돈인 국민연금으로 확보한 주식으로 기업들의 경영권에 개입하는 것은 ‘연금사회주의’란 비판도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잊지말아야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10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국민의 기대가 너무 컸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정말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배신감 때문이다.대통령이 약속했던 진정한 국민통합은 허언(虛言)이었고, 나라는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분열되면서 서로를 부정하고 있다. 나라가 이처럼 두 동강 난 적이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공화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편 가르기’이다. 내 편만 바라보는 대통령의 ‘외눈박이 사고’는 정치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베버(M. Weber)가 지적했듯이 정치인은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와 자신의 신념윤리가 충돌할 때 당연히 책임윤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청와대와 검찰의 정면충돌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청와대가 전쟁 중이다.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당부해 놓고서는 검찰의 칼날이 청와대를 향하자 ‘윤석열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조국 사건의 수사팀을 교체하여 수사를 방해하면서도 대통령은 인사권의 정당한 행사라고 강변했다. 또한 검찰이 조국 사건의 공범으로 청와대의 최강욱 비서관을 기소하자, 그는 “검찰의 기소는 쿠테타이며, 윤석열 총장은 향후 출범하는 공수처의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범죄피의자가 검찰총장을 겁박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이다. 대통령이 역설했던 ‘정의로운 나라’가 이제 보니 ‘내로남불 나라’였다.청와대의 선거개입 및 하명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정무수석·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울산시장·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이 무더기로 기소되었다.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하여 청와대가 총동원되었다는 혐의이다. 국회가 검찰의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자 추미애 법무장관은 무엇이 무서운지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이를 거부하였다. 이게 정의부(正義部)의 책임자인 법무장관의 행태인가?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두려움을 모른다. 동아일보의 특종보도로 공개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가 총괄 지휘하여 7개의 비서관실이 조직적으로 선거범죄를 저질렀다. 참으로 놀랍다. 청와대가 마치 범죄소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게 나라인가?대통령의 언행은 일치되지 않고, 비서들은 내 편 챙기기에 바쁘다. 통합을 말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합리화한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선거부정도 서슴지 않는 권력, 범죄피의자가 권력의 힘을 믿고 수사검찰을 겁박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말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인가?

2020-02-10

타조의 밀명(密命)

안재휘 논설위원꿩은 다급하면 머리를 풀숲에 처박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세상이 안 보이면, 세상도 자기를 못 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타조 역시 맹수를 만나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17세기 아프리카에 당도한 탐험가들은 타조가 위협을 느꼈을 때 머리를 감추는 반응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조류와 포유류처럼 태생부터 환경 인지력을 가진 개체의 경우 유체시절에는 자기중심적으로 환경을 인식하기 때문에 ‘내가 못 보는 건 상대도 못 본다’는 방식의 지각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어에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아둔한 짓을 일러 ‘타조 행세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대략 ‘꿩은 머리만 풀 속에 감춘다’는 우리 속담과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무더기로 기소된 청와대의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계자들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정치권 논란의 파장이 심각하다. ‘잘못된 관행’이라며 하필이면 청와대 관련 공소장부터 제출을 막은 추 장관의 행태를 놓고 호사가들은 ‘다급해서 머리를 풀숲에 처박은 어리석은 꿩’에 빗댄다.결국 추 장관의 결정은 오히려 공소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언론에 의해 전문(全文)이 공개됐다. 비장한 문투로 작성 제출된 72쪽 분량의 공소장을 읽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박근혜 정부를 ‘국정농단’의 죄목으로 잔인하게 단죄해온 이 정부가 저지른 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범죄혐의 내용이 험악하다.사람들 복장을 더욱 터지게 하는 대목은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추 장관의 거듭된 변명이다. 실정법을 장관의 훈령으로 뒤집은 것부터가 명백한 하자인데,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공소장 공개 자체가 ‘위헌’이란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헌법재판소장도 아닌 법무장관이 ‘위헌’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됐나. 사건을 담당해온 수사팀들을 공중 분해하다시피 해놓은 횡포도 그렇거니와, 추 장관이 욱대기는 ‘사법 정의’는 도무지 합법적이지도 양심적이지도 않다.여당에서마저 ‘긁어 부스럼’이라는 비판이 대두되면서, 추 장관의 정치 행보가 주목거리다. 과거 추미애 의원이 국회에서 공소장을 흔들며 핏대를 세우던 여러 편의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자꾸만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을 사법처리할 적에는 입도 벙긋 안 하던 ‘피의자 인권’을 자기들 범죄 수사에만 적용하는 극단적인 후안무치는 멀쩡한 정신으로 견뎌주기가 참으로 벅차다.하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의 행동을 놓고 ‘진동을 느껴 도망칠 방향을 찾는 지혜’라는 다른 주장도 있으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고작 이런 수준의 어설픈 권력 농단으로 점수를 따서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나라였던가 싶다. 필경 타조가 은밀히 받아들었을 밀지(密旨)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2020-02-09

흔들리는 중국몽

중국몽(中國夢)은 시진핑의 대표적 통치이념이다. 위대한 중화민국의 부흥을 뜻한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봉건왕조 시대 조공질서를 통해 세계의 중심역할을 했던 전통 중국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이 정통이다.중국의 G-2 부상으로 서방국가는 중국을 경계의 눈으로 살피고 있다. 특히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경계의 선봉장에 서있는 인물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달 17일 발행될 주간지 표지에 마스크를 쓴 시진핑 주석의 일러스트를 게재한다고 밝혔다. 커버스토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은 ‘중국의 세기’를 만들고 싶어한 시진핑의 꿈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 중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량 확산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중국 공산당의 치밀한 통제에도 소셜미디어에선 교묘히 시주석을 비난하는 글들까지 나돈다. 뉴욕타임스는 기고가 글을 통해 “중국 소셜미디어는 강력한 검열에도 온갖 화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중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3만명이 넘는 신종 코로나 감염환자가 발생했으며 사망자는 700명을 넘었다.중국내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최근 우한 폐렴의 내부 고발자였던 젊은 의사 리원량의 죽음으로 중국인의 분노가 점차 시진핑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 공산당의 불투명하고 권위적인 통치가 신종 코로나 사태를 키웠다는 것에 대한 원성이다.시진핑 주석은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의 반정부 시위에 이어 또 한번의 시련에 봉착했다. 신종 코로나는 사태 수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것보다 불안한 정치적 변수다. 신종 코로나가 올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가까이 떨어뜨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온전치 않아 보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09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2)

앞선 글에서, 우리는 수우족의 관대함, 유록족의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이한 미덕의 저변에는 각기 다른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것이었다. 가령 버팔로 떼나 적이 나타나면 그들은 서둘러 이동해야 했고, 그 때 마침 누군가가 산통 중이었다면 그 여성은 홀로 남아 아이를 출산하고는 서둘러 부족을 뒤따라가야 했다. 반면, 연어잡이 유록족에게 있어 가장 큰 불안은 연어 떼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연어가 회귀하기까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던 유록족은 그들의 일상을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다.이 두 부족의 사례가 반드시 각각의 맥락 내에서 이해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불안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한정하여 비교와 유형화라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자. 의외의 시사점들이 발견된다. 먼저 우리 사회가 수우족과 유록족 중 어느 쪽과 더 닮아 있는지 질문해 보자.에릭슨이 수우족을 방문했을 때, 근대식 학교의 교사들은 아이들이 걸핏하면 결석하거나 일이 생기면 그냥 집으로 가버린다며 불평하였다. 수우족 아이들이 근대식 교육의 경쟁에 적응하지 못했던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유록족은 이미 소유와 근대적 화폐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서부로 밀려드는 백인과 소유권 소송을 하고 있었다. 에릭슨의 기술 내에 유록족 아이들의 근대식 학교 적응에 대한 설명은 부재하지만, 그들의 양육에서 강조되었던 강박적 자기 절제 훈련이 근대 학교에서의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리라는 추측은 합리적일 것이다.유록족의 강박적 절제는 연어 떼의 회귀에 대한 불안을 견디기 위해 환상과 환각을 일상화시키고, 이 환상을 통해 내면과 신체를 통제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환각에서 연어를 보는 일은 연어가 현실에서 오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기다림의 시간에서 현실을 그들의 내면에 종속시켰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연어는 열흘 동안만 현실일 뿐, 나머지는 모두 내면화된 연어였다. 그들은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연어와 관계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부족이란 매우 느슨한 개념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자들이었고, 이들이 서구적 개인주의와 친화성을 가지리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환상과 내면화된 연어가 우리에게 비범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연어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대식 학교와 경쟁에 적응할 수 없었던 수우족에게서 우리와의 기묘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유록족의 불안이 개인과 개인의 내부에서 개별화된 세계와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면, 수우족의 불안은 개인과 자신을 두고 떠나는 부족과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결코 내면으로만 향하도록 통제되지 않았다. 이는 유록족이 연어 떼를 기다려야만 하는 수동적인 행위자였던 반면, 수우족은 버팔로를 쫓아 사냥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라는 점에서도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능동적 행위자였던 수우족은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외부의 적을 향해 전환의 형태로 완화시킬 수 있었던 반면, 유록족은 그들의 불안을 내면으로 체화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했기에 에릭슨은 짧은 관찰에서도 수우족이 어떻게 그들의 공격성을 분출시켰는지에 대해 기술할 수 있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3년에 달하는 긴 수유기간 동안 아이의 이가 나면서 발생하는 최초의 공격성은 어머니의 젖을 무는 행위가 처음 나타났을 때 아이의 이마를 세게 가격하는 것으로 억제되었고, 이 때 아이의 우렁찬 울음은 용맹한 전사와 사냥꾼의 자질로 격려되었다. 즉 아이들의 공격성은 유예되었고, 이후 사냥감과 외부의 적을 향한 용맹함으로 전환 분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은 형제들을 지켜봄으로써 배뇨와 배변훈련을 익혔고, 놀림과 수치심을 의식하면서 사회성을 습득하였다. 에릭슨은 이러한 방식으로 습득된 사회성이 버팔로 사냥에 필수적이었던 협력과 형제애의 토대와 맞물려 있었다고 추론한다. 다시 말해, 수우족은 그들의 확대가족과 무리로부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우리가 가진 교육열의 중심에는 타자와 이웃,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는 우리의 모습이 공존한다. ‘대세’라는 용어만큼 오늘의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언어는 드물지도 모른다. 주위와 대세에 예민한 오늘의 모습은 우리가 겪어온 근대적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화와 식민지 지배라는 험난한 시기를 거쳐 급격한 산업화의 역사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 행위자로 적응해야 했고, 시간적, 역사적 연속성(historical continuity)의 감각에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능동적 행위자로서 변화에 적응했는가 혹은 대세를 놓치지 않았는가는 실제 현실에서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맨 손으로 시작한 사업이 어떠한 선택들을 통해 재벌로 성장하였는지의 성공신화에서부터, 당시 강남에 땅 한 귀퉁이라도 사놓았는지, 그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는지, 학군을 잘 골라 이사를 갔었는지, 우리 아이를 그 학원에 보냈는지 등등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노력에 대한 보상의 꿈이라면, 우리의 성공 신화는 급변하는 대세와 시류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해왔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류에 대한 민감성과 현실적 부의 창출 사이에서 개인이 경험한 인과성은 능동적 행동주의를 더욱 부추기며 효능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의태(mimicry)는 유기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주변에 맞춰 자신의 모양, 색깔, 자세 등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의태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우리 사회와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한 적응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대세, 경쟁으로부터의 이탈과 낙오는 우리가 안고 있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기체에게 있어, 내면의 초점은 스스로가 아닌 주변과 타자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고, 타자와의 끊임없는 비교는 개인의 내면을 고갈시키는 관성일 수 있다. 종일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오늘날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승자가 없어 보이는 이 끝없는 경쟁에서 쉽사리 내려설 수 없는 것은 의태가 가진 관성 그리고 낙오에 대한 불안일지도 모르겠다.안동 하회마을의 강 너머에는 높은 절벽이 있다. 절벽의 정상에 오르면, 하회 마을과 굽이치는 낙동강 상류의 절경을 보게 된다. 절경을 보고 내려오면, 중턱 즈음 나무들로 가려진 곳에서 유성룡 선생과 그의 형님이 거주했던 곳들을 발견한다. 왜 이들은 절벽의 정상에 떡하니 스카이캐슬을 짓지 않고, 중턱에 집을 지었던 것일까? 하회탈을 꼼꼼히 살펴보면, 당시에도 대세와 시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카이캐슬을 택하지 않았고, 그 미덕은 우리의 내면 어느 깊은 곳에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덕은 앞으로 우리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불러일으킬 희망의 한 자락이 될 것이다. /경북대 교수

2020-02-09

헬렌 니어링의 삶

김현욱 시인책은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어떤 책은 항상 가까이 두고 자주 보고 싶지만 또 어떤 책은 몇 장 넘기다 이내 멀리 던져둔다. 이사를 다녀도 꼭 챙기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때다 싶어 분리수거장으로 내다버리는 책도 있다. 첫사랑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꺼내 읽으며 위안을 받는 오랜 친구 같은 책도 있다. 내 돈 들여 사는 꼭 사야하는 책이 있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이 있다. 모서리를 접거나 삼색 볼펜으로 정성스레 밑줄을 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잡지책처럼 설렁설렁 훑어보고 덮어버리는 책이 있다. 책과 인간은 참 많이 닮았다. 인간을 통해 다른 인간으로 나아가듯 책을 통해 다른 책으로 나아간다. 최근에 읽은 헬렌 니어링(1904∼1995)의 자서전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그러하다.헬렌의 삶을 이해하려면 인도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경제학자 스코트 니어링을 알아야 한다. 헬렌은 한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다가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한다. 스코트는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나 많았다. 1928년 스코트가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헬렌은 스코트의 든든한 반려자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은 1932년 버몬트 숲으로 들어가 농장을 일구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원칙을 지키며 스무 해를 살았다. 그 보석 같은 삶의 기록이 바로 ‘조화로운 삶’이다. 소로우의 ‘월든’(1854)과 함께 인간 문명의 위선과 인간다운 삶,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고전이다.‘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의 지속’을 읽으며 꼿꼿한(?) 스코트 보다는 유연한 헬렌에게 더 큰 호감을 느꼈다. 헬렌이 없었다면 스코트는 백 살 생일 때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라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 살이 된 스코트 니어링은 스스로 음식을 끊고 죽음으로 삶을 완성했다. 스코트가 죽고 8년 뒤에 헬렌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을 펴냈다. 헬렌의 삶은 ‘친절과 배려, 사랑’으로 압축할 수 있다.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얻은 다소 당혹스러운 결론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 하라는 것이다.”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말에 헬렌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헬렌은 스코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며 아메리카 토착민의 노래를 조용히 읊조렸다고 한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스코트는 “좋…아. 하….”하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마흔 중반을 겨우 넘기는 와중에 뒤늦게 스코트와 헬렌은 만났다.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삶을 당장 어찌할 도리는 없다. 바꿀 수 있는 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뿐이라고 헬렌과 수많은 성자들이 말했다. 삶의 나침반을 ‘소박한 삶’으로 맞춰본다.

2020-02-09

위성(衛星)정당과 우당(友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정당정치는 자유민주주의 꽃이다.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정치에 투영되어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우리나라의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34개이지만 등록 준비 중인 정당이 16개에 이른다. 지난번 국회를 통과한 준 연동제 선거법은 3%이상의 지지 정당에 비례대표의원을 할당 받는다. 21대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이지만 등록정당은 늘어날 전망이다. 비례 대표를 의식한 신당이 창당되기 때문이다. 개정 선거법이 초래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용 미래한국당을 창당하였다. 황교안 대표는 이 당을 자유한국당의 ‘자매정당’이라고 했지만 언론에서는 이미 ‘위성 정당’으로 지칭하고 있다. 미래한국당 창당식에는 자유한국당 대표와 사무총장까지 참여하였다. 4선의 한선교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고, 자유한국당 출마 포기 의원 3명이 미래한국당에 입당하고 앞으로 의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제1야당이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을 급조한 것은 정당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 의원을 얼마나 당선시킬지는 유권자들의 표심에 달려 있다.더불어민주당은 위성 정당을 창당한 자유한국당의 정치 행태를 꼼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사실 위성 정당 탄생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측은 정의당이다. 이들의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의당은 비례 득표용 정당의 창당은 헌법과 정당법에도 위반된다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떴다방 식’ 정당의 급조는 민주 정치의 도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치 개혁의 본질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패스트 트랙을 통한 준연동제선거법에 대한 불가피한 자구책이라 강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미래한국당을 통해 비례대표의원만을 확보한다는 것이다.북한에는 위성 정당에 비견되는 우당(友黨)이 있다. 북한노동당이 친구 정당으로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을 두고 있다. 북한노동당은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을 조직하여 정치 선전에 이용한지 오래다. 천도교청우당은 월북한 남한의 전 외무장관 최덕신과 부인 류미영이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최근 남한의 그의 아들이 월북하여 뒤를 잇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 당국은 사회민주당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석시키고 천도교청우당은 민족 종교를 통해 인민들의 충성을 강요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우당을 통해 북한체제가 일당독재가 아님을 선전하려는 의도이다. 모두 그들의 위장된 통일 전선 조직일 뿐이다. 북한의 우당은 노동당 일당의 외곽 단체이며 선전 수단이다. 그러나 미래한국당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맹점을 교묘히 활용한 급조정당이다. 정치적으로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재로서는 불법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집권 여당이 위성 정당 창당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집권 여당인 더불 민주당까지 위성 정당을 모방 창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집권 여당의 고민과 딜레마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위성 정당 문제는 선거의 쟁점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4·15 총선의 결과를 기다려 보자.

2020-02-09

당신은 ‘린치핀’인가요?

명지휘자로 알려진 미겔 코스타 경이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중요한 연주회를 위해 최종 리허설을 할 때 있었던 실화입니다. 연주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트럼펫이 울리고 팀파니가 퉁탕거리고 모든 악기가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지요. 그때 피콜로 연주자에게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명이 훨씬 넘은 연주자들이 온갖 악기로 이렇게 크게 연주하고 있는데 나처럼 작은 피콜로라는 악기 소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며 슬그머니 자기 연주를 멈춥니다.그 순간 미겔 코스타 경은 모든 연주를 중단시키고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피콜로는 어디로 갔어!”피콜로 연주자는 자기 소리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 음악을 알고 완벽하게 해석해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하고자 했던 지휘자에게 그 작은 피콜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전체 음악이 엉망으로 변했던 거지요.혹시 ‘린치핀(linchpin)’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린치핀은 바퀴와 다른 부품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핀의 일종입니다. 이 핀이 없으면 거대한 기계가 즉시 동작을 멈추고 마는 핵심 부품인 셈입니다. 마치 피콜로 연주자처럼. 최근에는 이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불가한 작은 존재’라는 의미가 린치핀에 붙기 시작합니다.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마케팅 그루, 세스고딘이 묻습니다. “당신은 린치핀인가?” 작아도 자신만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 인공지능이 넘 볼 수 없는 사람, 자신을 둘러싼 주변 모든 이들에게 공헌할 수 있는 사람, 바로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시대가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역량으로 세상을 빛나게 하는 삶을 꿈꾸는 그대가 눈부신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9

이 시대에도 필요한 새마을정신

이승율 청도군수‘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 가꾸세’ 지금은 듣기가 쉽지 않은 새마을노래의 도입부 가사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새마을운동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청정지역이며 대다수 군민이 농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청도의 자치단체장으로 새마을운동 50주년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1969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남지역 수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고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에 철로 주변에 있는 청도읍 신도마을의 슬레이트 지붕을 보고 기차를 멈추게 했다.잘 단장된 지붕, 우마차가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닦여진 마을 안길, 정비된 우물과 넓어진 농로를 보며 신도리 주민들의 협동심과 자조심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勤勉)·자조(自助)·자립(自立)’이 정착되며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이 새마을운동과 정신을 본받고자 청도를 찾거나 교육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새마을운동의 가치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청도군은 새마을개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새마을 세계화 사업,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 등으로 새마을정신을 계승하고 세계화 등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에 노력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시행하고 있는 새마을개발 국제학술대회는 지난해 ‘지구촌 환경의 변화와 글로벌 새마을개발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친 것처럼 매년 30여 개 국가 250여 명이 참석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평을 받았다.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는 폐자원을 모아 환경을 보호하고 판매 수익을 창출해 내는 일석이조의 사업 효과로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 불리고 있다. 청도군은 올해 국가 성장의 밑바탕이 된 새마을운동 가치를 재조명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엠블럼 제작, 생명살림 환경대축제 개최, 새마을대학 개설 및 운영, 새마을운동기록물 자료전시관 설치사업 등이다. 엠블럼은 청도출신 미술작가와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손복수씨가 재능 기부한 것으로 적극적인 활용으로 새마을운동 50주년을 홍보한다. 3월에는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 21주년을 기념해 생명살림운동을 환경대축제로 격상시키며 새마을운동 사진전과 전시회도 함께 열어 새마을지도자, 지역민에게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할 예정이다.6개월 과정으로 개설될 청도새마을대학은 새마을운동정신 기본이해와 공동체 의식교육, 인문학, 자산운용 등 다양하고 심도 있는 프로그램으로 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인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내에 새마을운동기록물 자료전시관을 설치해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유물을 쉽게 이해하게 할 것이다.베트남 타이응웬성 딩화현 프엉띠엔 토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새마을 세계화 사업은 푸닌마을을 제2의 토마을로 육성한다. 토마을은 2018년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의 신농촌프로그램 최우수마을로 선정돼 견학과 방문 명소가 됐다. 새마을국제학술대회도 상반기에 열려 다양한 국가와의 새마을운동 공감대를 형성한다.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자조·자립’은 이 시대에도 필요한 정신이다.자조·자립에는 ‘나’만이 아닌 ‘우리’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잘살게 되어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얼마의 재산이 있는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타인을 위해 나누었는가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하는 봉사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으며 근검절약은 말할 필요가 없다.청도군은 지금까지 추진해온 새마을 관련 다양한 사업을 더욱 확대 추진해 새마을운동발상지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것이고 반세기 역사를 군민과 함께 기념하며 새마을 정신으로 지역이 부농의 고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0-02-09

철갑을 두른 소나무를 지키자

김영체 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며칠 전,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던 중 서포항 나들목 근처를 지나다가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경험을 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눈에는 제일 먼저 산(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지(林地)다. 운전 중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다. 벌겋게 죽은 소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병든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했다. 소나무숲이 주는 푸르름은 간데없고 벌겋게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소나무가 벌겋게 변했다. 산이 일터인 필자는 이런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 더 가슴이 아프다.벌겋게 서 있는 소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이다. 재선충(材線蟲)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서 있는 채로 말라버린다.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고사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간다. 인위적으로 소나무에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재선충에게 소나무의 영양분을 대부분 뺏겨 말라 죽는 것이다. 재선충은 스스로 다른 나무로 이동하지 못한다. 솔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을 통해 이동한다. 솔수염하늘소는 2~3cm 크기의 작은 벌레다. 산림청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하여 매년 예산을 배정한다. 솔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서식처를 없애는 일이다. 매개충의 서식처가 되는 고사목에 대해서 훈증 및 매몰 파쇄 작업을 하는 것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이다.필자는 2014년도에 포항 나들목 인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의 설계용역을 한 적이 있었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많았었다. 그 이후 매년 꾸준히 산림청과 포항시에서 방제작업을 해왔다. 다행히 죽어가는 소나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 초, 6년 전 못지않게 다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익숙한 노랫말이다. 애국가이다. 식전행사로 국민의례를 할 때 주로 듣는다. 70~80년대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거의 매일 들었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국민적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국기 강하식이라는 행사도 매일 거행했는데 관공서와 학교에 게양한 태극기를 내릴 때 애국가가 전국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민은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쉽게 듣지 못하는 애국가다. 그래도 애국가 1절은 많이 들어 볼 기회를 접하지만 4절까지 전부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소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하여 성장이 느린 편이지만 수명이 길다. 자연히 장수의 상징이다. 불로장수라는 꽃말이 붙였다. 소나무 모양은 다양하다. 곧게 자라기도 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쭉 곧게 자란 소나무는 전통 건축물 목재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백 년 이상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성장한 소나무가 불타버린 남대문 축조에 쓰였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조경수로 으뜸이다. 척박한 토질에서도 자란다. 바위산에도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쓸모없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곧게 자라면 건축 자재로, 못생겨도 그 나름대로 조경수로,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땔감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든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일어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2100년에는 백두산 같은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임업인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의 작은 관심만 가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 다시 반만년 역사를 이어가도록 온 국민의 작은 관심이 절실한 시기다.

2020-02-09

가난한 사람들

춥다. 서울의 겨울이 추워졌다. 요즘 겨울은 겨울도 아니라더니 어디 한 번 겨울맛을 보라 한다.겨울을 좋아하던 나인데 디스크를 앓으면서 몇 년씩 겨울이 무섭다가 최근 들어 겨우 겨울이 좋아졌다. 몸이야 아프든 말든 손가락 관절이 쑤시든 말든 겨울은 역시 상쾌한 계절이다.그래도 연로하신 부모님은 걱정이 아니될 수 없다.서울, 대전 사이를 돌아온 탕자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니 끼니를 제 때 찾아 먹기 어려운 때가 많다.가만 있자, 뭐 먹을 만한 게 없나? 대전역사 안에 성심당 분점이 있지만 맛있다는 튀김소보로도 하루 이틀이지 오늘은 다른 게 먹고 싶어진다.광장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막 꺾어 들면 옥수수며 가래떡이며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그중 어느 한 분에게 흰 가래떡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여쭙는다. 헉. 천원이라 한다. 가래떡 하나에 천 원이 아니라 두 개가 천 원이라는 것이다.옥수수는 두 개 한 묶음에 이천 원 이라 하신다. 서울에서는 삼천 원였다.서울이냐 대전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는 돈을 세는 단위가 다른 사회들이 있다.아파트를 사고파는 곳에서는 10억, 20억이 예사인 경우도 많다.공부하는 사람들이 회의라는 곳엘 가면 십 만원도, 이십 만원도 쉽게 받는다. 택시 운전사들은 미터기에 몇백 원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작지 않은 문제다. 역 앞의 행상들은 다들 한 묶음에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을 매긴다.대전 중앙로역 성심당 본점 앞에 가면 행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닭꼬치도 팔고 오뎅도 판다. 빨간 오뎅이든 그냥 오뎅이든 한 개에 칠백 원인데, 세 개를 사면 이천 원이다. 백 원을 깎아 주는 셈이다.서울 지하철 6호선 불광역 앞에 가면 날이면 날마다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는데 1인분에 삼천 오백 원이다. 언젠가 오백 원짜리 동전이 없어 제발 삼천 원어치만 주십사 했다. 그랬더니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다가 나중에 지나가는 길에 오백 원을 더 내라고 했다.세상에는 확실히 ‘등급’이 다른 사회들이 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 높은’ 사회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백 원짜리 천 원짜리를 세는 사회에 무슨 거짓이 있겠으며 설혹 있다한들 그 크기가 얼마나 되겠는가.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성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성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럴 것이다.좋은 옷, 고상한 취미를 가지면 성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성스러운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 외투 안에 숨어있는 거짓을 우리는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2-06

달집태우기와 바이러스

8일은 정월대보름날이다. 우리 조상은 이날을 설명절만큼 큰 비중을 둔다.‘한국의 세시풍속’자료에는 12달 동안 한국의 세시풍속은 모두 189건에 달한다고 했다. 그중 정월 한달 이뤄지는 세배, 설빔 등과 같은 세시풍속이 78건으로 한해의 절반 가깝다.그러나 정월 78건 가운데서도 대보름날 하루와 관련되는 세시풍속이 무려 40여 건이 된다고 했다. 세시풍속만 본다면 정월 대보름은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는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농경사회에서 우리의 조상은 그 어떤 날 보다도 정월 대보름날을 가장 소중한 날로 삼았다는 반증이다. 중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하고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했다. 중국 역시 정월 대보름을 중요 날로 섬겼다.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는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그 사정을 더 잘 짐작할 수 있다. 오곡밥, 약밥, 묵은 나물, 부럼, 귀밝이 술 등 먹는 것부터 지신밟기, 별신굿, 쥐불놀이,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등 온갖 행사가 이날 축제로 벌어진다.한해가 시작되는 달에 첫 번째 뜨는 보름달은 우리 조상에게는 풍요와 모든 부정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날은 지신 밟고 달집 태우며 가능한 많은 정성을 들여 한해 농사의 풍요로움과 가족의 안녕을 달에게 빈다.특히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 노는 달집태우기는 질병도 태우고 근심도 태워 한해의 밝음을 소망하는 행사다. 지금도 그 전통이 매년 대보름날 이어진다.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로 대보름 행사 일체가 중단됐다. 질병을 막아보자는 염원의 민족 전통이 공교롭게도 바이러스에 의해 중단됐다. 서운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2-06

황교안 일병구하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의 수도권 공성전략이 초장부터 꼬이고 있다. 통상 총선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국회의원 당락이 걸린 수도권 공략을 위해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대표주자끼리 건곤일척의 승부와 천번지복의 한판대결을 벌이는 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4·15총선에서는 ‘서울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지역구가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런데 이같은 대결구도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제1야당 대표가 오히려 여당 후보로 나설 이낙연 전 총리와의 대결을 피하는 모양새로 비쳐 지역 정치권에서도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망신살이 뻗치려나. 황 대표가 우물쭈물 결단을 미루는 동안 호남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돼 ‘지역정서 타파의 선두주자’란 명예로 당 대표까지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전격적으로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이왕 호남지역에서 힘을 잃은 이 전 대표야 격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해도 밑질 일없다는 계산이니, 그의 정치적 순발력은 상당하다 평가할 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주자로 뛸 황교안 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총선 출마 지역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이리 와라’ 그러면 이리 가고,‘인재 발표해라’ 그러면 발표하고, 그렇게 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면서 자신의 행보는 자신의 판단, 자신의 스케줄로 해야하고, 이번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큰 전략 하에 자신의 스케줄을 짜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종로 출마는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란 말이 나온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황 대표의 행보는 이같은 공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중진의원들의 험지출마론을 설파해온 황 대표가 수도권에서 여권의 대권후보로 가장 유력한 이낙연 전 총리가 출마한 종로지역을 피해 다른 수도권의 험지에 출마하겠다면 어떤 의원들이 납득할까 싶다. 자신의 출마지역을 결정하기 위해 서울 용산, 양천구, 마포 등지에서 지지도 여론조사를 통해 승산을 점치느라 북새통을 벌이고도 공천신청이 끝난 오늘까지도 출마지역을 결정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는 모습은 당 안팎의 비판을 자초한다.이런 마당에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대표나 총리 물망에 올랐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각각 자신의 고향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한들 무슨 염치로 험지출마를 강권할 수 있을까. 무릇 지도자는 타인의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원외 당대표로서 겪어온 불편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대권가도에 진력하기 위해서 이같은 무리수를 서슴치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짐작은 되지만 총사령관이어야 할 당 대표의 구차한 행보는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전체 사기에도 나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감행하고 있는 ‘황교안 일병 구하기’작전은 실속없고, 볼품없는 최악의 작전으로 기록될 듯 하다.

2020-02-06

사막에 채소밭을 만들기까지

레바논 출신의 무사 알라미는 전쟁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요르단 강 유역 황량한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 지방은 수천 년 동안 뜨거운 태양빛만이 내리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사막에서 지하수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에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는 이 타는 듯한 뜨거운 모래라도 밑으로 계속 파고들면 반드시 물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사막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막 한가운데로 갔습니다.함께 한 사람 중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도 있었습니다. 일행은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 들어갔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들은 삽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수개월 후, 드디어 습기에 찬 촉촉한 모래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시원한 물이 차오르자 그들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울먹였습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네. 이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이 눈으로 보았으니….”수백 년 버려졌던 사막에 지금은 온갖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서른, 기본을 탐하라’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환경이 나쁘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보다는 스스로 한계라고 느끼고 포기했을 때 찾아온다.또한, 자주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실패자’ 혹은 ‘패배자’라고 느낀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해지면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 수 없다.”무사 알라미와 우리가 처한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사막에 곡괭이 질을 했고, 우리 역시 무언가 결과를 바라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내 한계”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물러서는 나약한 정신이 아니라, “끝까지 간다!” 스스로 다짐하는 정신 승리가 인생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6

양비론의 오류

김병래시조시인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을 모두 틀렸다고 하는 이론을 양비론(兩非論)이라 하고, 그 반대말은 양시론(兩是論)이다. 상당한 경우 대립하는 주장들이 나름의 근거와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복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또 한편, 대부분의 논쟁이나 토론에서 대립하는 양측의 주장은 모두 한계나 모순, 단점, 불합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한쪽 주장에만 모순이나 단점, 불합리성, 한계가 있고 다른 쪽 주장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애초에 문제가 없는 주장이 당연히 정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니 논란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양시론이나 양비론이 나올 여지도 있는 것이다.얼핏 보면 양비론이나 양시론이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중도(中道)인 것처럼 보인다. 불가의 팔정도(八正道)가 그러하듯 중도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이 아니라 엄정한 정도(正道)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양비론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천착과 성찰의 부족이거나, 쟁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때가 많다. 아니면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거나 세상사의 시비나 논쟁을 초월해 홀로 고고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자기우월감의 표출 수단으로 양비론을 펴기도 한다.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평계(水平計)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이면 유리관 속의 물방울은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수평계의 물방울이 가운데를 가리킨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분명히 기울어졌는데도 물방울이 가운데 있다면 그 수평계는 고장이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위의 배가 한 쪽으로 기울면 중심축은 반대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때 배에 실은 물건이나 사람들이 그 기울어진 쪽으로 몰리게 되면 배는 전복하고 만다. 전복을 막으려면 오히려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무게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올바른 지성(知性)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현상에 대해 수평계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가 한쪽으로 기울면 금방 알아채는 직감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요트를 타는 사람이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반사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이동해 중심을 잡는 것처럼, 양식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가 한 쪽으로 기울면 반발과 저항의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지금의 정권은 지나치게 좌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언론과 사법부, 교육계, 노동계, 문화계 전반을 걸쳐 좌파성향의 코드 인사들이 장악하여 전복의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이런 판국에도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들 중에는 점잖게 양비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국이 분명 심하게 좌측으로 기울었는데도 위기의식을 못 느낀다면 고장 난 수평계처럼 상황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거라면 이권이나 보신을 위해서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이다.

2020-02-06

대학을 강타한 중국발 바이러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가에서 졸업식, 입학식이 사라졌다.30년이 넘는 교직 생활 중 졸업식, 입학식이 없는 해는 처음 겪는 것 같다. 사스, 메르스, IMF 등 시련 속에서도 대학이 졸업식, 입학식을 취소한 적은 없었다. 물론 시기가 다르긴 하지만 대학의 모든 행사가 취소 되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졸업식은 영어로 Commencement라고 하여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 있다. 그동안 배운 공부를 마무리하고 축하를 받으며 새로 시작하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이다. 졸업식에서 유명 인사들이 강연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이다.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수월하여 졸업앨범을 잘 안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나중에 졸업앨범을 뒤지면서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건 아주 값진 인생의 추억이다.입학식도 부푼 꿈을 안고 새로이 추가된다는 라틴어 matricula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제 새로운 대학생으로 추가된 자신의 모습을 축하하는 뜻이다. 캠퍼스의 새내기들의 모습은 입학식에서부터 시작된다.그런데 이 두 개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금년엔 한국의 대학가에서 사라졌다.꽃집들이 울상이다. 평소대로라면 2월은 초·중·고·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이 잇달아 꽃을 파는 업계가 가장 바쁠 시기지만 올해에는 90% 매출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업계는 최대 절반까지 가격을 내렸는데도 잘 팔리지 않아 손해가 막심하다고 한다.대학들의 2월 사람이 모이는 행사는 모두 취소되고 있다.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감염 확진 자가 1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한국에서도 확진 자가 23명, 이들이 접촉한 잠재적 감염자는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마스크는 동이 났고, 마스크 제작 벤처기업을 하는 동료 교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상황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에서 수십억의 돈을 들고 와서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선다고 한다. 교무회의에 들어가 보니 총장 이하 모든 학처장들이 마스크를 쓰고 회의에 임하고 있다. 마치 서로가 전염이 안 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다.개강도 연기하는 대학이 많아졌다.중국 유학생 수만 명이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2월말을 늦추어 보겠다는 정부 당국의 권고 때문이다.캠퍼스마다 중국을 다녀온 유학생들을 조사하여 격리 조치하고 있다. 아예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해 유학을 포기하는 중국 학생들도 늘고 있다.외국유학생, 특히 중국유학생이 중요한 자원인 많은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의가 시작되어도 중국학생들 회피현상이라든가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강의 거부 현상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전파속도가 2002년의 사스, 2012년의 메르스 보다 빠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마나 국내에 퍼질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대학을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행사가 취소된 대학은 썰렁하다.빨리 이 사태가 지나가고 생기 넘치는 대학가의 모습을 다시 기대해 보지만 언제가 될지 막연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봄은 오고 있건만.

2020-02-06

정치는 내가 아닌 국가·국민 위한 것

심한식 경북부4·15 총선 관련 선거구마다 수 명에서 십수 명에 이르는 예비후보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경산시선거구에도 십수 명의 예비후보가 등록을 하고 인지도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다.이들 대부분이 자기 이름을 알리기에 열심이다. 심지어 자신이 속한 정당을 홍보하기 위해 예비 후보로 등록한 이도 있다.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이라고 배워왔다. 즉 자신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고 타인과 국가가 우선되는 것이 정치인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예부터 정치인에게 요구됐던 덕목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齋家治國平天下)’였다.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면 정치입문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치를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인사들이 판을 치고 있다. 예비 정치인이나 기성 정치인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국민과 자신의 선거구 주민을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을 가져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바라는 인사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더기로 얼굴을 내민다.심지어 사회적인 통념에 반하는 행위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거에 뛰어들어 자신의 얼굴로 선거사무실 외벽을 도배한다.선거로 자신의 영달을 취하려는 인사들도 문제지만 투표권을 가진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인정에 끌리고 돈에 팔리고 자신이 챙길 이익을 앞세워 왜곡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 국민성이 아닌가 싶다.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세상.사면·복권을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휘둘러도 되는 정치세상을 허락한 것이 우리 국민이다.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늦은 감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뀌어야 한다. 출발이 반이라 하지 않았는가.깨끗하고 투명한 정치, 국가와 국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아야 한다.정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후보자를 내세워도 선거권을 가진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4·15 총선이 되길 기대해 본다. /shs1127@kbmaeil.com

2020-02-06

안전지대에서 학습지대로

우리가 안전지대를 벗어나 이르러야 하는 곳은 학습지대입니다. ‘먼데이 모닝’의 저자 데이비드 코트렐은 학습지대를 구성하는 세 가지 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첫 번째 방은 독서방이다. 읽지 않는다면 학습지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시간은 더 줄어든다. 만일 회사로부터 ‘직급이 높아진다면 그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시간이나 돈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책 읽을 시간을 챙길 수 있느냐는 의미이다.두 번째 방은 경청방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면 어느새 오만함에 빠지고 자기통제를 상실하게 되며 감각이 둔해진다. 그런 상태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세 번째 방은 나눔방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려 할 때 제대로 학습할 수 있다. 학습지대에 머무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최근 한국의 독서 인구가 급격히 양분화되고 있습니다. 스마트 기기 발달과 온갖 자극적인 컨텐츠의 범람으로 책에서 이탈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출판계가 반성해야 할 일도 무수히 많겠습니다만, 시대적 흐름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한번은 어떤 대기 장소에 모인 사람들 전원이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스크롤 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폰 대신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잠깐 상상해 본 적도 있습니다.하지만, 고급 독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토론하는 모임을 찾아다니고, 자기 책을 쓰려고 애쓰며 학습지대에 자신을 노출하려 애쓰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모쪼록 학습지대를 잘 선별해 독서방, 경청방, 나눔방 이 세 가지를 튼실하게 잘 가꾸어야 하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5

교육 백신 2 - 폐교 탈출론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계절을 잃은 1월이 어영부영 다 갔다. 겨울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바이러스들은 파죽지세로 인간 공격에 나섰다. 그 기세에 눌려 전 세계는 허겁지겁 대응책을 발표하지만, 두 글자로 요약하면‘예방’뿐이다. 인간이 바이러스와 싸울 방법이 예방뿐이라니 슬플 따름이다. 아무리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지만 괴(怪) 바이러스의 출몰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인류는 아직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뻔뻔한 인류는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전 세계 과학자들이 전하는 인류 멸망 시나리오라는 글에는 인류 멸망의 10가지 원인이 나온다. “(10위) 핵전쟁, (9위) 감마선 폭발, (8위) 인공지능의 발달, (7위) 이산화탄소의 배출, (6위) 기후변화, (5위) 환경오염, (4위) 소행성 충돌, (3위) 꿀벌의 멸종, (2위) 전염병과 바이러스, (1위) 아무도 모르는 시나리오”.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가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인류 멸망의 시간은 인류가 놀랄 만큼 앞당겨져 있는지도 모른다.그런데 필자는 위에 든 10가지 원인보다 인류 멸망을 앞당길 더 강력한 원인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인구절벽이 만든 ‘폐교 쓰나미’ 이제 서울까지 덮친다”. 지난주 신문 기사 제목이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 한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통계청은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2025년에는 올해보다 10만9천633명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폐교 도미노 게임의 시작이며, 게임의 끝은 국가 소멸이다.정부에서는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붓고 있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4B 운동 등이 더 활성화되고 있다. 4B(비·非)란 ‘비연애, 비성관계, 비혼, 비출산’을 뜻하는 신조어이다.출산 억제 정책까지 펼쳤던 우리나라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출산 포기 원인 중 가장 핵심은 자녀 교육이다. 정부만 인정하지 않을 뿐 이 나라 교육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안다.다시 학교 교육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자유학년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유학년제를 중학교와 고등학교 3년 전 과정에 걸쳐서 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자유학년제는 독이 될 뿐이다.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학교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대안학교를 원하는 학생들은 대안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그런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생이 없다고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모를 뿐 대안학교를 부정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주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 “저희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교육 공모전에 참가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교육청에서 돌아온 답이다. “대안학교라서 안 됩니다.” 이게 교육 관료들의 교육 의식 정도이니, 교육 붕괴를 막을 답 역시 없다.

2020-02-05

광주를 떠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끝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과 낮의 교체, 사계절의 운항,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같은 궤적을 가진다. 생로병사로 점철되는 인생도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만남과 작별에는 과정의 필연성이 내재해 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필연 혹은 인과율의 거대한 손길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2019년 2월 18일 시작된 광주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경북대와 전남대의 교수 교환제도에 기초하여 1년 가까이 진행된 나의 광주 삶이 바야흐로 끝나가고 있다. 날마다 점심이나 저녁자리에서 그동안 신세진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쉬움을 함께 하고 있다.기나긴 인생살이에서 1년 시간은 짧은 기간이다. 더욱이 나이 들면 시간의 흐름이 신속하게 느껴지는 법이어서 광주에서 체류한 1년은 그야말로 순간의 일처럼 느껴진다.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언젠가 광주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과 폭력이 절정에 달했던 80년 5월 광주에 진 마음의 빚이 오랜 부채(負債)처럼 떠나지 않았던 때문이다. 광주와 전남대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그것이었다. “왜 광주에 왔는가?” 하지만 정작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관념적 사치 혹은 철지난 바닷가 같은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책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보고 들었던 광주와 살면서 실감한 광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것을 제한된 지면(紙面)에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불과 한 해를 살아보고 광주의 전모를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기에 무탈하게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동고송 (冬孤松)’ 여러분이 보여준 우의와 관심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작년 4월 19일 개관한 사단법인 동고송. 광주의 가난하고 어려운 문인들을 도와주고자 창립한 동고송. 나는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창립 기념일에 동고송을 찾은 일이 있다.훗날 동고송 관계자들이 내게 연락을 하고, 나의 대중강연에 몸소 찾아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나를 불러 ‘서향재’에서 유라시아와 격동의 20세기 강연을 청하고, 지난주에는 축령산을 함께 산보하며 재회를 기약한 것이다.나와 비슷한 연배의 가난한 식자들이 십시일반 추렴하여 후학들을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고, 함께 모여 인문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논한다.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런 작업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가난한 문인이 어디 광주에만 있으랴! 하지만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곳은 광주가 유일한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면면이 항쟁 4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의 든든한 자산이라 생각한다.헤어지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대구에서도 실천해보리라 다짐한다. 고맙고 정다운 광주여, 이제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2020-02-05

따뜻한 혁신

지난 1월 23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별세하였다. 미국의 CNN은 “크리스텐슨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경전을 집필한 인물”이라 평가하며 아쉬움을 담은 부음 기사를 타전하였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그의 ‘파괴적 혁신’이라는 경영 혁신 이론은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거대 기업이 어떻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기업의 등장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그가 말하는 파괴적 혁신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PC의 등장이다. 처음 PC가 등장하였을 때 PC는 컴퓨터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PC를 만든 IBM의 엔지니어들 중에는“도대체 개개인 모두 각자의 컴퓨터를 가질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PC는 그저 장난감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결국 IBM은 스스로 독점할 수도 있었던 PC 기술을 무료로 공개하여 누구나 PC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오늘날 윈도우 운영체계로 변모한 PC의 운영체계인 도스(DOS)를 빌게이츠에게 양도하여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생시켰다. 이후 전개된 인터넷 혁명과 PC의 놀라운 성장,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을 생각하면 PC를 포기했던 것은 IBM에게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이렇듯 당대의 첨단 기술을 이끌어 가던 IBM 같은 기업에게 장차 중요해질 PC와 같은 기술이 눈에 띄지 않거나, 혹 보게 되더라도 그저 무시해야 될지 말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가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 딜레마에 빠져, 그 기술을 이용한 ‘싸구려’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등장을 방관하며 지나치게 되고,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당시의 첨단 기술을 이끌어 가던 기업의 기술마저 모두 앞지르는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이라 부른다.그런데 ‘파괴적’이라 번역된 크리스텐슨 교수가 활용한 원어는 ‘Disruptive’로, 파괴한다는 개념이기 보다는 ‘단속적’이라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그는 “대부분의 혁신은 한번 일어나면 마치 관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같은 혁신의 방향으로 지속되는 속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지속된다는 뜻의 ‘Sustaining’이라는 단어의 반대말로 선택된 단어가 ‘파괴적’으로 번역된 ‘Disruptive’라는 단어이다.예를 들어, 집적도가 높은 메모리 반도체가 만들어지면, 그 다음은 더욱 집적된 메모리 반도체의 개발이 목표가 되어 계속적인 집적도의 고도화가 이루어 진다. 또한, 속도, 강도, 혹은 효율 등에서 이루어진 모든 다른 혁신들도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라는 방향을 향해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런 혁신을 크리스텐슨 교수는 ‘지속적(Sustaining) 혁신’이라 부른다.이런 가운데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목한 흥미로운 점은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은 이런 지속적 혁신과는 반대의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이는 ‘단속적(Disruptive)’인 혁신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단속적인 혁신은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속히 발전하여 지속적 혁신을 따라잡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는 것이 크리스텐슨 교수의 주장이다.파괴적 혁신 이론은 PC 산업의 성장을 잘 설명해줄 뿐 아니라,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 산업이 미국의 자동차와 전자 산업을 앞지르던 사례,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 산업이 다시 일본의 전자와 자동차 산업을, 그리고 중국의 산업이 거의 모든 서구의 산업을 앞질러가게 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이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그런데 바로 그 크리스텐슨 교수가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춘천에서 수년간 선교사 생활을 한 바 있으며, 그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구창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만들었다는 따뜻한 이야기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한 한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지구 반대편의 나라 한국에 대해 이런 각별한 애정을 가질 만큼 따뜻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성품과 파괴적 혁신 이론의 ‘파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들리는데, 사실 그의 이론을 좀더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따뜻한 성품은 그의 파괴적 혁신 이론의 기반에도 잘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사실,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의 배경에는 크리스텐슨 교수 만의 매우 독특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숨겨져 있는데, 그의 이런 시각은 섬김을 받지 못한 이를 섬기기 (Serving the unserved)가 파괴적 혁신의 출발점이라는 그의 분석에 매우 잘 나타난다.크리스텐슨 교수는 ‘섬김을 받지 못한 이를 섬기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광석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처음 들었던 때를 이야기 한다. “비록 소리는 작았고, 수신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그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과 노래 소리는 나에게는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자기 처지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던 광석 라디오를 갖게 되었던 때를 돌아보며 “그 기술은 조잡한 기술이었지만, 내게는 어떤 첨단 통신 기구보다도 소중했다”라 회고한다.미국이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절대강자였던 시절에 미국 시장에 출현한 일본 차는 미국 자동차 기업이 보기에는 깡통 같은 저급한 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본 자동차들의 출현은 그동안 가난하여 자신만의 차를 소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여 이동의 ‘자유’를 얻게 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에 힘입어 크게 발전한 일본 자동차 산업은 급기야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심각한 위기에 몰아 넣었다. PC도 처음에는 초라하게 등장했지만 PC의 저렴한 가격 덕에 자신만의 컴퓨터를 소유하게 된 사람들의 정열이 PC 산업을 꾸준히 발전시켜 결국에는 IBM을 비롯한 모든 중대형 컴퓨터 기업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오늘날의 인터넷도 PC에 의해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결국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이론을 통해 “지금 섬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어 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들을 섬기게 되는 것(Serving the unserved)”이 다음에 있을 ‘파괴적 혁신’의 단서가 되어 지금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해 보이는 기업들의 종말을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기술의 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여 그 기술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생각하는 기술 혁신을 모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기술 혁신은 늘 가던 길을 지속하려는(Sustaining)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장 경제 하에서 더 빠른, 더 강한, 더 고성능의 제품의 개발만이 더 큰 이익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현실 속에서 “누가 기술의 섬김을 받고 있지 못하는가?”라 묻는 것은 우매하고 번거롭기 그지없는 질문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그럼에도 크리스텐슨 교수는 우리에게 좀더 참신한 질문을 던지라고 도전하고 있다. “누가 이 기술의 섬김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그들을 위해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할까? 어떤 제품으로 그들이 섬김을 받게 할까?”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이런 질문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이색적인 주장이 그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전해들은 우리들 마음에 오랫동안 깊은 울림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장수영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2020-02-05

어른도 춤추게 하려면

장규열 한동대 교수사회의 모습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바뀌어 간다. 다문화사회로 변화해 간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어른들이야 본인의 결정에 따라 삶의 터전을 바꾼 것이지만 어린이들은 다르다. 영문도 모르고 부모를 따라왔거나 한국문화에 충분히 동화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다. 두 문화가 어린이들의 삶에서 충돌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제3문화 아동(Third Culture Kids)’. 완전한 한국문화도 아니고 분명한 다른 문화도 아닌 또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필자의 아이들이 바로 그런 아이들이었다. 태어나 자란 미국에서 아빠를 따라 한국으로 옮겨와 지냈던 한동안의 시간은 쉽지 않았을 터. 이들이 기억하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미국 학교에서는 무엇을 해도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더 잘해 보자’를 늘 듣고 자랐는데, 한국 학교에서는 무엇을 해도 ‘그게 뭐야. 틀렸잖아, 처음부터 다시 해봐.’를 듣는 게 일쑤였다는 고백. 늘 칭찬을 듣고 자라다가 이제는 손가락질만 겪으며 지냈다는 기억.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느 선생님 눈에 학생의 서툰 솜씨가 눈에 찰 까닭은 없다. 하지만 어린이 쪽에서 생각해 보면, 학생은 지금 애쓰는 중이 아니었을까. 선생님 눈에 들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가 오늘 그 모습인데, 칭찬과 격려가 아니라 핀잔과 질책이 쏟아진다면. 최근 미국의 한 연구진은 학교에서 칭찬이 질책보다 집중력을 30%나 높여준다고 했다.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격려와 응원은 학습과 학교생활에 동기를 불어넣고 추진력을 더해줄 것이므로.중국발 감염병 사태로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다. 돌아오는 우리 교민들을 맞이하는 지역주민의 태도에 이념과 진영논리에 물든 혐오와 차별 메시지가 걷힌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민주정치에 견제와 균형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에 트집부터 일삼는 태도는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절망하게 할 것인가. 정말로 중요한 일에는 이념의 좌우가 힘을 잃는다.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앞에 모두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아프지 말아야 하고 얼른 나아야 하며 번지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진보니 보수가 끼어들 틈이 없다. 문제해결을 위해 똘똘 뭉쳐야 한다.소통은 문제를 극복하려 함이 아닌가. 최선을 다하려는 이들의 노력에 이왕이면 격려와 칭찬이 쏟아져야 한다. 숙제를 풀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는 손길에 마음을 보태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 오늘 그 모습으로 최선을 던지는 아이들에게 칭찬이 필요했듯이, 처음 겪는 건강안보 과제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집중력을 높여 해결하도록 밀어줘야 한다. 결산과 평가는 반듯하게 하기로 하고, 과정에 들이는 수고에는 격려로 도와야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더 잘하게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미움으로 탓할 것인가 격려로 보듬을 것인가.

2020-02-05

디지털 보험사

보험업계에도 디지털 바람이 불고있다. 우리나라 1호 디지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에 이어 카카오페이와 삼성화재가 2호 디지털 손보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보험업체와 ICT기업의 합작인 ‘디지털 보험사’는 보험 데이터와 ICT를 결합해 고객이 합리적이고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신개념 손해보험사다. 현재 세계적인 4차산업 및 핀테크 혁신 추세에 따라 보험업계의 디지털 혁신 기술 활용은 세계적인 금융산업 트렌드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한화손해보험, SKT, 현대자동차 등이 손잡고 설립한 국내 최초 디지털 손보사인 캐롯손보가 최근 영업을 개시했다. 캐롯손보는 고객 라이프 스타일에 따른 생활밀착형 보험상품을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첫 상품으로 ‘스마트온(ON) 펫산책보험’과 ‘스마트온 해외여행보험’ 2종을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에는 월 보험료가 990원인 ‘캐롯 990 운전자보험’을 출시했다. 1분기 내로는 실제로 운행한 거리만큼만 보험료를 내는 자동차보험 상품도 선보일 계획이다.또 카카오의 금융플랫폼 계열사인 카카오페이와 삼성화재가 이르면 3월 초 금융위원회에 합작사 예비인가를 신청한다. 본인가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면 합작사는 내년 상반기 국내 두 번째 디지털 손보사로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손보사들이 디지털 손보사 설립에 나선 데는 지속적인 실적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다.시장 포화로 인해 대면 채널을 통한 보험 가입은 정체된 반면, 온라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영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시대변화를 반영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05

노숙인과 비둘기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인과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했던 날입니다. 식사 후 식당주변 커피 집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골목 어귀에 앉아 컵라면을 먹던 노숙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뒤섞인 차가운 공기에 온기가 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았습니다. 노숙인의 초라한 행색과 비린 체취에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던 행인들을 피해 비둘기 한 마리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노숙인은 물끄러미 비둘기를 바라보더니 라면 몇 가락을 던져주었습니다. “이거 먹어”라며 비둘기에게 채근하였습니다. 경계심으로 머뭇거리던 비둘기는 던져진 라면 몇 가락을 쪼아 먹고 슬그머니 그의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길바닥 식탁과 바람을 반찬삼아 노숙인과 비둘기는 거나한 오찬(?)을 즐겼습니다.돌아오는 차안에서 둘의 식사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지난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몇 년을 해오던 구호단체 기부금을 끊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적은 액수였지만 퇴직 후 씀씀이를 줄인다는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몇 권의 책을 내면서 인세를 기부하며 으쓱해 했던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남을 도우는 일은 결코 풍족할 때 하거나 폼을 잡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숙인은 컵라면 한 개를 쉽게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의 주린 배가 다가온 비둘기에게 눈길을 돌리게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먹이를 찾아온 비둘기를 외면치 않았습니다.고궁이나 광장에서 한가로이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기념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들이 던지는 모이는 자신들이 꼭 먹어야하는 양식도 아니고 없어도 되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쉽사리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먹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좋아라 합니다. 제가 했던 어쭙잖은 기부행위가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지는 행위나 다름없었던 것 같습니다.매월 일정액 기부나 책 인세기부 같은 것들이 저 자신을 위한 폼 잡기용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남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내게 남아도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의 사람에겐 더욱 간절하게 필요한 것일지 모릅니다. 노숙인은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에도 부족할지 모를 컵라면을 먹으며 주린 비둘기에게 쾌척(?)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못한 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남을 도울 수 있음에 생의 의미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알량한 소액의 기부금조차 끊어버린 저의 처사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남을 도우는 일은 내가 쓰고 남아서 하는 것은 고궁의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나라 안이 이런저런 일들로 을씨년스럽지만 컵라면 몇 가락을 던져주던 노숙인의 어깨 뒤로 겨울햇살 한줄기가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다시 구호단체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해야 되나?’

2020-02-04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신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이 자기보다 몇 천 만 배 더 큰 인간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친다. 첨단의 21세기에 아직 치료제는커녕 정확한 감염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스스로 이동 능력조차 없는 그들은 인류가 만든 교통수단에 무임승차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팬대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다.2016년 국민 안전체감도 조사 결과, 자연재해, 교통사고, 시설물 붕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신종전염병이 체감위험도 1위를 차지했었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MERS) 등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2~3년에 한번 꼴로 창궐한 직후였으니, 신종전염병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 건 당연했다. 뼈아팠던 메르스의 교훈 이후 의료계는 병원 내 2차 감염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응급의료체계와 병문안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2019년에는 위험도 1위가 환경오염으로 바뀌고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우리 관심이 미세먼지로 옮아간 사이, 바이러스는 조용히 변이를 거듭해 더 독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 패닉이 시작되고 보니, 지난번 소를 잃었을 때 쏠렸던 범국민적 관심에 비해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너무 기본적인 정비에만 그친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무엇보다 역학조사를 개인 기억이나 설문조사, 의료기록, 신용카드 결제 이력 등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지만,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해 뒀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 상업 목적의 스마트 디바이스 데이터가 유사시에 제대로 활용만 되었더라도 지역사회를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의료진과 관련기관으로 개인의 건강·의료 기록, 여행·방문이력 등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즉시 일괄 제공하거나, 접촉자의 수와 소재 파악 등 역학조사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하므로, 개인 데이터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둘 수 있었을 것이다.바이러스의 공격은 호흡기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의 막연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폐쇄적 태도를 유발하여, 마치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정치와 경제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일부 확진 환자가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니 나라 문을 닫아걸자는 여론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혹시 나도?’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과민하다 탓할 수만은 없다. 미세먼지 앱처럼 오늘 내가 다닐 경로는 안전할 거라는 ‘좋음’ 표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었다면 사람들 마음이 좀 놓이지 않았을까.

2020-02-04

백악관 견학기

초등학교 교사인 저스티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백악관을 견학했습니다. 백악관 전체를 볼 수는 없었고 단체 방문객들을 위해 개방된 일부분만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둘러보았습니다. 일행은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길 때마다 국무회의가 열렸다는 회의실도 들어가 보고 초기 미국 대통령들이 좋아했다는 조각상도 구경했습니다. 기자 회견실도 보고 백악관을 장식하고 있는 건축 양식도 살펴보았습니다.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저스티스는 아이들 전체에게 백악관에 다녀온 소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스티스는 아이들이 제출한 기행문 숙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백악관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거나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을 직접 보게 돼서 매우 기뻤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는지 몰랐다거나, 백악관에도 자기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가구를 보고 반가웠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중간쯤에 엉뚱한 기행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맨 위에 달랑 한 줄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을 다녀왔다.” 정해진 분량을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저스티스는 도저히 그 아이를 야단칠 수 없었습니다.“꿈만큼 당신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미국의 유명한 잡지에 실린 광고 제목입니다. 그 광고에는 우주선이 발사하는 모습을 어린이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 아래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정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성장은 따르게 마련입니다.”꿈이 사라져가는 시대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꿈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정신은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다음 세대의 가슴에 불을 지를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4

골든타임

심폐소생술의 골든타임은 4∼5분 정도다. 심정지 상태가 시작되고 4∼5분이 지나면 뇌에 혈액공급이 끊기면서 뇌손상이 급격히 진행된다. 혈액공급이 차단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뇌손상은 심각해지고 급기야 사망에 이른다.골든타임은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긴박한 시간대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시간을 지칭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된다.예컨대 항공기나 선박사고가 났을 때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간대도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대개 생명을 잃게 되거나 사고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모든 일에는 완급이 있는 동시에 사태를 수습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기 마련이다. 골든타임은 놓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절묘한 타이밍을 찾는 일이 문제 해결의 키포인트다. 골든타임을 기적의 시간이라 부르는 이유다.방송계의 골든타임은 의료 등 긴급재난에 사용하는 골든타임과는 의미가 다르게 사용된다. 우리말로 황금시간대를 말한다. 시청률이 가장 치솟는 시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밤 8시∼11시 사이가 골든타임이다. 영어로는 프라임타임, 골든아워라고도 한다. 광고비가 가장 비싼 시간대다.어쨌거나 골든타임은 이를 사용하는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대를 뜻한다. 이것이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면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영향력은 또한 대단한 것이다. 한국의협이 우한 폐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전역을 입국금지 대상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당국에 주문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며 이를 놓치면 메르스와 같은 실패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 거와 같다. 정부 당국이 지금을 골든타임으로 볼 것인지가 주목되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