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원 은사님께서 시집을 보내오셨다. 세 번째 시집이다. 3년 전 첫 시집을 받았을 때는 참 낯설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한평생을 학술 논문만 쓰신 분이 갑자기 시집이라니, 평소 이미지와 조화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앞뒤 표지를 훑어보고 나서 첫 장을 들추니, ‘매화 한 그루’라는 시가 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매화를 찬양하는 시겠거니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난초 한 촉 간수 못하는 / 손길로야 널 어찌 / 보듬겠냐마는 // 벌 나비 올 때까지만이라도 / 나 네 곁에 있어 주면 / 어떨까’
얼핏 보면 매화 옆에 있고 싶은 것이 매화를 위한 것인 듯하지만, 사실은 매화가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후기를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인과 고독은 동의어처럼 보인다.’
정년 퇴임하신 지 20여 년이 지난 데다 몇 년 전 상처하시고 자제들은 모두 분가하였으니 아무리 철학으로 중무장했다 한들 외로움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셨나 보다.
‘반가사유상’에서 ‘윤회의 굴레 벗고 / 해탈의 경지로 / 비상하기까지 // 밤하늘의 적막 속 / 외로움 삼키고 빛 뿜는 / 샛별만이 단짝일 듯’이라며 부처님조차도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니 말이다.
시를 읽다 보니,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그리움에 힘들어하시다 93세에 생애 처음으로 ‘思婦曲’(아내를 그리는 노래)이라는 시를 쓰셨다.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더라도 /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산 것보다 좋다 // 그것은 / 발로 밟아도 지워지지 않는 공룡 발자국 같은 /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 누군가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며 사는 것도 좋다 // 당신이 떠나기 20일 전 나를 불러 당신이 먼저 죽소 / 그 한 마디는 내 심금을 울렸소.’라시며 어머니를 그리워하셨다.
시와는 인연이 먼 나 역시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저절로 시가 써졌다. 천성이 무뚝뚝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데다 외롭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사랑한다는 말에는 더더욱 오글거리는 성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인간의 조건 앞에서 말문이 터졌나 보다.
그 당시 한시를 배우며 이런 시를 썼다. ‘送君’(당신을 보내고)이다. ‘歲晩愁雲滿江城 (세만수운만강성) 세밑에 구름 같은 근심은 강성에 가득한데 // 送君塵外夢難成 (송군진외몽난성) 당신을 다른 세상에 보낸 후 꿈에서도 만날 수 없네.’
은사님 시집을 읽다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 선배는 현직 교수인데다 워커홀릭 기질이 다분하여 엄청 바쁜 줄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선생님 시집을 받았는데 같이 만날까요? 선배는 흔쾌히 약속을 잡는다. 시집 받은 지 세 시간 만에 세 사람이 몇 년만에 만나게 되었다.
시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니 외로울 땐 시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