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금, 토, 일에 걸쳐 48시간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48시간의 중간쯤인 토요일 오후, 집을 나섰다. 이웃 동네에 있는 카페 겸 작은 책방으로 향했다.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책방은 대형 서점에 비해 책 종류는 많지 않지만 대형 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책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에세이였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다. 18세기 중반에 태어난 작가는 법으로 금지한 결투를 했다가 42일간 가택 연금형을 받았는데, 그 기간에 자기 방을 여행하기로 한다. 작가는 내 방 여행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며 그래서 부자들도 환호할 만한 여행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문장도 재치있고 흐름도 경쾌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 몇 년간 수천 권을 처분하고 나니 책 사는 것에 매우 신중해졌는데, 이 책은 덥석 샀다.
내 방 여행은 여행길을 미리 정해놓지 않아도 된다면서 작가는 상념을 좇아간다. 탁자에서 벽에 걸린 그림으로, 문 쪽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가 침대로 간다.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흉상도 관찰 대상이다. 눈길이 가는 그림을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그 물건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기도 한다. 때로는 인간은 영혼과 동물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라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두 요소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노라니 내 방을 여행하고 싶어졌다. 지난주부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작은 책방 나들이마저도 꺼려지는 있는 지금은 절반은 가택 연금 상태다. 넷플릭스라는 흥미진진한 오락거리도 있지만 내 방 여행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내 방을 둘러본다. 내 방에도 그림이 걸려있다. 명화는 아니고 8년 전에 직접 그린 유화다. 책상에는 멋진 조각상 대신 버리려다 고쳐서 쓰는 오래된 노트북이 충전을 기다리고 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한 칸씩 탐색해갈 수도 있겠다. 서가를 여행하는 것은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던 메스트르의 말처럼, 책에는 정말 무수한 사연이 있다.
내친김에 내 마음 여행도 좋겠다. 내 마음 어딘가에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이 엎드려 있을 것이다. 내 몸 여행도 좋겠다.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냄새 맡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나 시간이 드는 일이다.
혼자 있으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흥밋거리를 찾아 밖을 헤맨다. 괜한 상념에 두렵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방도 여행하고, 내 마음도 여행하고, 내 몸도 여행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몰라보게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없다면,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도 좋겠다. 48시간, 24시간이 어려우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아니 하루 15분이라도 내 방과 몸과 마음을 여행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뜻밖의 재미를 발견하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