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반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밖에 못 만나고 있다. 저번에는 태풍 때문에 하루 등교하는 날조차도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했다.
아이들 만나서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망연자실이다. 최초로 학급 선거를 온라인으로 치러야 할 판이다. 글기지개 2권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어 진심으로 격려하고 새 공책을 챙겨줘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학기 초 꿈꿨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시 암송, 시 쓰기, 글기지개, 학급카페, 놀이 활동, 가정독서토론 등등이 코로나19로 물거품이 되는 꼴을 보자니 코로나 블루가 아니더라도 가슴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가장 걱정스러운 모습은 교실에 등교한 아이들 중 몇몇이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존다는 것이다. 물어보면, 십중팔구,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동영상을 봤다고 한다.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뭐든지 귀찮아요, 귀찮아요, 귀찮아 타령을 하는 아이도 늘었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또한 학부모이므로 고충을 모를 리 없다. 눈치를 살살 보면서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는 딸아이를 보자니, 이를 어쩌나, 싶다.
누굴 탓하랴. 원격수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담임과 학부모가 좀 더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도와주는 수밖에. 코로나19 치료제 희소식이 들리니 아무쪼록 내년에는 마스크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어울리며 수업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오은영 교수의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와 부모들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
5학년 담임으로서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시점을 ‘공부’로 잡은 것은 몸소 체험한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말을 안 들어요. 공부를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아이는 없거든요. (중략)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부터 아이와 부모는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하게 돼요.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하는 거죠.”
딸아이의 공부, 특히 수학과 영어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딸에게 화를 많이 냈다. ‘내가 왜 이러지’란 생각을 자주 하면서. 그전에는 늘 “우리 은유 참 열심히 했네.”, “우리 은유 자랑스럽다” 이런 말들을 자주 했는데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가 잘 못 하는 것에만 도끼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그 모든 씨앗들이 심어져 있을 것이기에//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박노해 시인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라는 시를 알아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라는 시구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본다. 경험상, ‘공부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란 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