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야기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됐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면 서로 미소로 인사하던 초등학교 동창이 언제부터인지 내가 인사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 후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자기는 열심히 웃어줬는데, 내가 외면해서 자기도 인사를 안 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엄청 과장되게 인사하게 됐다. 이런 에피소드는 사람마다 차고 넘칠 것이다. 내 딴에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도 엉뚱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이런 어긋남은 아무리 전문적인 수련을 한 상담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다.
실존심리치료 전문가 어빈 얄롬은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라는 책에서 내담자 마리를 치료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백하고 있다. 마리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우울증에 걸려 얄롬을 찾아왔는데 3년이 넘는 치료에도 큰 진전이 없었다. 결국 자문 치료자의 최면 치료 도움을 받기로 하고 마리가 최면 치료를 받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았다. 마리는 최면에 들어있는 동안 미소를 두 번 지었는데, 하나는 자문 치료자가 마리에게 그녀의 턱 통증에 대해 구강외과 의사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을 때이다. 두 번째는 마리에게 금연을 권하면서 개를 키운다고 상상하라고 하면서 그 개에게 독이 든 음식을 주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돌보라고 했을 때이다.
얄롬은 마리와 구강외과 의사의 불편한 관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마리가 이전에 애완견을 안락사시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의 웃음은 자문 치료자의 조언이 마리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였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리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자문 치료자는 마리가 자신의 조언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면에서 깨어난 후 마리의 대답은 얄롬의 확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처음 미소는 구강외과 의사와의 불편한 관계를 그가 몰랐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고, 두 번째 미소는, 얄롬이 자기 개를 안락사시키라고 했기 때문에 얄롬이 불편할까 봐 개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결국 두 심리치료 전문가는 당사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미소의 의미를 해석한 셈이다. 그러니 플로베르가 키우던 앵무새까지 조사해도 플로베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줄리언 반스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네가 나라면 웃을 수 있느냐며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호소하기 위해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상대방에게 내 사정을 다 보여주어도 완전한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모든 교류가 무의미하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만 알아도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를 걱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