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승자독식제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어지는 양극화 문제점을 꼬집은 책이다. 0.1초의 차이로 올림픽 금메달과 은메달이 갈라지고 금메달 수상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할까 하는 의문에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진단한 것이다.“세상은 1등만 기억 한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보상구조가 판치고 있다. 승자독식은 능력 차이로 보상을 받는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미한 차이가 엄청난 소득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미국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대선에서 승자독식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일반 유권자가 직접 뽑은 각 주의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선출된 선거인단은 단 1명이라도 더 많이 뽑힌 쪽이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독식하는 제도다.전체 유권자 득표에서 이겨도 선거인단 확보 수에 밀리면 낙선도 한다. 몇 번의 그런 사례도 있었다. 2000년 당선된 부시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 범여권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190명에 달했다. 반면에 통합당의 범보수권은 110석을 얻는데 그쳤다. 거의 더불 스코어 수준이다.그러나 선관위가 집계한 정당 투표수를 보면 더불어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간 득표율 차이는 8.5%다. 8.5%의 표차가 결과적으로 국회의원 80석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소선거구제가 가진 승자독식체제의 결과물이다.21대 총선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을 바로 볼 줄 아는 정치인의 혜안이 아닐까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19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안재휘 논설위원‘보수’는 끝났다. 변질하고 퇴락한 그 낡은 가치는 국민으로부터 드디어 멸종 선고를 받았다. ‘보수’ 본산을 자임한 미래통합당 정치세력은 수술이 급박한 환자의 환부에 분홍색 머큐로크롬 잔뜩 발라놓고 요란스레 굿판만 벌이다가 망신당하고, 드디어 경각에 다다른 중환자 꼴이다.그렇게 망가진 지금 순간마저 서푼 어치도 안 되는 권력 놓고 서로 주도권을 잡겠다고 아우성치는 구제 불능 바보들의 대행진 군상은 참으로 딱하다.4·15총선 성적표는 참혹하다. 썩어 문드러진 ‘꼴보수’ 간판 부여안고 격랑의 바다에 대책 없이 뛰어든 구닥다리들은 이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운 난민 몰골일 따름이다. 초유의 실패작으로 끝난 보수 농사 판은 완전히 갈아엎는 게 정답이다. 수치심 내팽개친 채 추한 권력의 욕망을 널름대는 철면피들은 또 뭔가.민주당의 압승은 민주당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가 결정적 승인이라는 해석도 100% 공감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민주당 승리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하는 게 맞다. 4·15 총선 정당별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불과 8.4% 차이였다. 지역구 의석을 163대 83으로 가른 것은 소선거구제의 맹점 때문이다.김무성·홍준표 등의 공천을 굳이 배제한 황교안의 처사는 졸렬한 패착이었다. 그러나 대구에서 무소속 당선된 다음 황교안을 욕하고 차기대선 출마를 떠들어대는 홍준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엔 또 한 번 경기가 날 지경이다. 홍준표를 당선시킨 대구 민심은 황교안의 공천이 잘못됐다는 경고, 딱 거기까지다. 그게 무슨 홍준표의 대선후보 특허권이라도 되는 양 설치는 것은 망발이다.우리 사회의 이념 패러다임은 확실히 바뀌었다. ‘보수’는 이제 더 이상 기득권층도 지배계층도 아니다. 국민은 이제 ‘자유 우파’니, ‘보수’니 하는 구호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진보세력이 아니라 바로 수십 년 째 ‘보수’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되뇌면서 제대로 된 미래비전 하나 못 내놓은 우매한 보수 지도자들이었다.미래통합당은 기초공사부터 새로 하는 전면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 누누이 강조해온 이야기이지만, 이념좌표부터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건전한 중도실용 이념으로 클릭 이동을 해야 한다. 청년들을 정치 중심에 세워야 한다. ‘방탄소년단’에 코 웃음치고, ‘기생충’을 이념의 눈으로 폄하하는 따위의 가치관으로는 안 된다. 눈속임 리모델링으로는 어림도 없다. 모조리 다 때려 부수고 기초공사부터 새로 해야 한다. 그 기초공사가 바로 이념좌표의 재설정이다. 수구꼴통 민심에 묶인 발목의 족쇄를 미련 없이 풀어헤쳐야 한다.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꼰대 짓’만 거듭하는 일을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

2020-04-19

디자이너가 활약할 때가 왔다

정치, 문화, 경제 등 어떠한 분야라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외부충격이 없는 한 스스로 진화하여 변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간혹 혜안을 지닌 석학들이 사전 경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수의견으로 치부되어 무시되기 쉽다. 때로는 다수파에 의해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다 실제 위기상황이 발생하여 그 여파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온갖 전문가들이 나타나 호들갑을 떨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게 된다. 과거 90년대 초 일본 부동산 버블의 붕괴, 2000년대 초 디지털혁명의 도래,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두 그랬다. 분야마다 충격의 크기나 범위가 어떤지에 따라 해당 분야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폭도 찻잔 속의 태풍처럼 가라앉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는 대변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막연히 늑장을 부리던 기업이나 특정 직업군은 사라졌으며,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적응한 기업이나 특정 직업군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패러다임의 변화다.이번 코로나19사태로 최근 일본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기도 질시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방역대책과 검사 실시,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염자 이동 경로의 확인과 공개로 확산을 차단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마스크의 5부제 판매로 사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사례들이 대상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에 살고있는 일본인이 ‘이 시기에 한국에 있어서 좋았다’라는 인터뷰를 소개하며 한국을 배워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다. 또 다른 일부 언론에서는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개인 모바일 위치정보를 공개하거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감시체제와 수많은 CCTV가 존재하는 통제국가여서 가능한 성과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였다. 외형적인 특정한 사안만으로 쉽사리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전쟁 중 휴전상태에 있는 특수한 상황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나라가 통제국가라 하더라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디지털화되고, 모바일 앱을 개발할 실력자들이 무수히 양성되어 있고, 높은 수준의 인터넷보급망과 모바일보급률이 갖추어져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자정부가 일정 수준에 달하여 있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하였던 일이다. 바로 그러한 성과야말로 우리나라가 갖춘 사회적, 정보통신 기반과 국민의 단합된 행동력 덕분이다. 어떠한 큰 충격이 왔을 때 이것을 극복하거나 타파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위기 극복이나 대책의 효과도 달라진다. 같은 충격을 받고 대응수단을 알고 있더라도 그 기반이 적기에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최근 정부는 비대면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로 하였다. 물론 전혀 새로운 산업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비대면 서비스 시대에 살고 있고, 활용하고 있다. 모바일뱅킹으로 자녀들에게 용돈을 입금하는 행위도 비대면 서비스다. 이번 전염병으로 인해 외출 자제와 재택근무가 늘어나 CATV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홈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한 것도 모두 비대면 서비스다. 하지만 정부가 육성하려는 비대면 서비스는 이미 활성화되어있는 이러한 분야보다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분야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면 서비스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일종의 우회경로를 만드는 기반의 구축일 수도 있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효과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대면 서비스 분야는 물론 소비자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이 대상일 것이다. 다만, 해당 분야의 기업에 기반이 구축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새로운 비대면 서비스에 적응하는 기간과 효과는 달라질 것이다. 기업의 내부 경영에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은 적용될 것이다. 직원들을 물리적인 특정 장소에 모아두고 특정사안을 전달하던 경영자는 자사의 인트라넷을 통해 전국에 산재한 직원들에게 동영상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미 대기업이라면 시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다.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은 이번 코로나19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미 인터넷쇼핑몰을 직접 운영하고 있던 대기업이면 몰라도 중소제조업체와 소상공인들 대부분은 위기에 빠졌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모두 자체 유통망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이라고 하는 소상공인들은 말 그대로 골목이라는 공간 지리적인 제약에 묶여있다. 그 골목으로 찾아오는 유동인구의 움직임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아예 사람들의 출입과 이동이 제한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그야말로 무인도에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하기에 비대면 서비스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위기 탈출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대기업보다 부족한 부분이라면 특히 인력 부족, 자사 제품을 알릴 판촉, 광고수단의 제약일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비대면 서비스를 육성시킨다고 해도 문제다. 중소제조업체들 대부분은 사장과 직원들이 함께 만든 제품을 유통대행업체에 납품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공장 한구석에 비대면 서비스 육성 지원자금을 빌려 새로운 컴퓨터 서버를 들이고 관리직원을 채용하여 직판한다고 해서 들인 비용만큼 수익이 확보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사실 진정한 강소기업, 성공한 소상공인은 이러한 수단과는 큰 상관이 없다. 대량생산체제가 아닌 한 대기업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 자사만의 기술력과 품질을 갖춘 제품군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소상공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력한계, 광고비용 제약으로 유통대행점에 거의 원가로 납품하기 급급하였던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비대면 서비스 분야의 진출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세상에는 저비용으로 활용 가능한 수많은 소셜네트워크가 넘쳐나기 때문에 비교적 저비용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그러나 비대면 서비스에서 정작 유의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디자인이다. 현대 소비자들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싫어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채워진 제품설명서는 아예 뜯지도 않는다. 제품디자인이 예쁘거나, 해당 제품의 장점을 직관적으로 시각화된 한두 줄의 설명만으로 충분하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링크나 동영상 속에 담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진의 축소판인 엄지손톱(Thumbnail)이 선택의 핵심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는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더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한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화면 한 장, 한 줄의 제품 설명은 전혀 차원이 다른 분야다. 아주 특별한 예외를 빼면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 사이에 기술력과 기능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제품가격이 비싼 이유는 제품의 성능보다는 대기업 이름 즉 브랜드의 힘과 편리한 A/S 정도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대기업의 브랜드 힘에 대항할 유일한 수단은 디자인의 힘뿐이다. 앞으로 비대면 서비스산업이 전 분야에서 성장해 나가려면 국가나 지역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모두 디자인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가 활약할 때가 왔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19

야당이 선거에서 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선거의 결과는 제1야당의 처절한 패배로 끝났다. 이번의 여론조사는 총선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 민주당 180명, 미래통합당은 103석 당선으로 나타났다. 범여권 당선자 190명, 범야권 당선자 110명은 야권의 처절한 패배이다. 야당은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 이은 4연속 패배이다. 이번에는 사이 보수도 사이 진보도 없었다. 열성적인 야당 지지자들의 실망은 더욱 컷을 것이다. 6·25 전쟁 중 치른 선거에서도 야당이 이렇게까지 패하지 않았다. 선거의 철칙인 구도, 정책, 인물 면에서 야당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야당은 선거구도 면에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야당의 보수 통합은 진정한 통합이 아닌 급조된 임시 통합이었다. 이는 보수 개혁 통합과는 거리가 먼 각자 생존을 위한 자구적 통합이었다. 또한 이번 선거전에서 야당은 황교안 대표 외에는 잠재적 대권 후보가 보이지 않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낙연 외에도 박원순과 이재명이 지원사격하는 여당의 구도와는 판이하였다. 더욱이 야당은 선거의 사령탑마저 구축하지 못했다. 황교안 대표의 종로구 출마부터 혼선이 있었고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영입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야당은 공약이나 슬로건 등 정책과 이미지전에도 실패하였다. 야당은 코로나 사태가 심각했음에도 ‘문재인 정권의 심판’론에만 매달려 있었다. 문재인 정부를 ‘좌익 독재 ’로 규정한 것도 총선 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여 문재인 정권을 탄핵하자고 주장하였다. 전 세계가 한국의 방역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들만 방역 실패만을 강변하였다. 야당은 정부의 탈 원전,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구태의 선전 선동 이미지는 중도 보수층의 표심을 얻을 수 없었다.야당은 후보의 공천도 실패하였다. 급조된 공관위는 ‘개혁공천’이라는 슬로건은 요란하게 걸어 놓았지만 후보 검증에는 실패하였다. 그들은 물갈이를 강조하면서도 공천 후보의 참신성은 보여 주지 못했다.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초래한 막말 파동에 대한 대응책도 적절치 못했다. 황 대표는 공천확정 후에도 공천취소와 재공천이라는 파동까지 겪었다. 관료 출신 황 대표의 리더십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선된 5명의 무소속은 이를 잘 입증한다. 대선 주자급의 공천 배제는 ‘이기는 선거’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처음부터 따라다녔다.이번 야당의 패배는 결국 구도, 정책, 인물이라는 선거의 3대 고리의 총체적 실패에 기인한다. 근원적으로 보수 야당의 개혁 없이는 선거의 승리는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야당은 식물국회, 동물국회, 대여 강경 투쟁, 삭발과 청와대 앞 시위만으로 변화된 표심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세월은 빠르고 유권자의 표심은 변한지 오래인데 과거에 안주하는 수구 꼴통 정당에 누가 표를 주었겠는가. 결국 야당은 텃밭인 경상도와 강남, 60대 이후의 노령 보수층의 지지만을 얻어 좌초하였다. 그러나 내 후년 2022년은 다시 대선과 지방 선거가 있다. 야당은 이번 총선 패배가 당의 체질 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임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2020-04-19

책 깊이 읽기 좋은 시절

김현욱 시인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최초로 온라인개학이란 걸 했다. 더는 출석을 미룰 수 없어 취한 고육지책이다. 학부모도 학생도 교사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온라인수업이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에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진 사람에게 온라인수업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푸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기가 기회다. 온라인수업을 계기로 교육환경도 개선되고 미래 교육의 토대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5월에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현명한 부모나 교사들은 이 기회를 ‘책 깊이 읽기’로 활용 중이다. 학원도 학교도 자유롭게 못 가는 때라 아이들에게 시간이 많다. 이번 기회에 글밥이 많은 책을 선택해서 가족이 함께 읽으며 좋다. 읽어, 라고 시키면 안 된다. 같이 읽자, 라고 해야 한다. 오빌 프레스콧의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버지’에는 다음과 같이 말이 나온다. “저절로 책을 좋아하게 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누군가는 아이를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끌어들여야 한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그 길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를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책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은 부모나 교사의 책 읽어주기 뿐이다. 우리 아이의 독서지도는 꾸준한 책 읽어주기를 통해 함께 읽기, 혼자 조용히 읽기(SSR) 단계를 거친다. 책 읽어주기를 통해 책 읽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에게 조금씩 혼자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책 읽어주기에서 자연스럽게 혼자 조용히 읽기로 가면 우리 아이의 독서지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독서교육 전문가 맥 크라켄에 따르면 혼자 조용히 읽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첫째, 교실이나 가정에서는 15분 정도가 적당하다. 물론, 아이의 상태나 상황에 따라 교사나 부모가 적절하게 조정한다. 둘째, 아이가 스스로 읽을 책을 선택한다. SSR 시간 전에 읽을거리를 고르고, SSR 시간에는 다른 책으로 바꾸지 못한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의 성향이나 흥미를 파악해 재미있는 책을 권할 수도 있다. 셋째, 아이가 SSR를 할 때 교사나 부모도 반드시 책을 읽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넷째, 일체의 독후감, 독후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SSR을 절차나 결과물, 성적에 연관시키지 않는다. 책 읽어주기의 최종 도착지가 바로 혼자 조용히 읽기(SSR)이다.단, 책 읽어주기를 통해 책에 흥미를 느낀 아이가 혼자 조용히 읽기를 할 수 있다. 독서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혼자 조용히 읽기를 시키는 것은 벌을 주는 것과 같다. 대안은 가족이 함께 읽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위기철의 ‘무기 팔지 마세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 같은 작품들은 부모, 아이 할 것 없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이다. 밥상머리 회의를 통해 읽을 책을 선정하고 1~2주 정도 책 깊이 읽기를 해보자. 그리고 모여서 가정 독서토론을 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슬기로운 배움과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2020-04-19

천 명의 천사와 동행하는 사나이(1)

오솔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숲 속 향긋한 바람이 귀를 스칩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그렇군요. 이 남자는 시를 읊조리며 걷는 중입니다.“저는 마음이 산란할 때면 숲길을 찾습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시를 읊조리지요. 물론 외우고 있는 시입니다. 걷지만, 시를 외우는 동안 가슴엔 바람이 불고 시냇물이 졸졸 흐릅니다. 여름이면 더위를 사라지게 하고 겨울이면 시 한 편이 모닥불을 지펴주지요. 슬플 때는 한없는 위로가 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괴로운 날은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낙원으로 저를 이끌어주는 천사랍니다.”이 남자,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10시간쯤은 꼬박 새우며 시를 외우고 세상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의 곁에는 늘 1천명의 천사가 동행한다지요.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김소월의 ‘초혼’을 단숨에 외우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울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멋질 수 없었지요. 고등학교 때 저수지 둑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친구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을 암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를 들으며 사내의 가슴에도 하늘의 별이 콕콕 박히는 경험을 합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이 남자,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프랑스에서는 초등학생 숙제에 시 한 편 암송하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모두 100편의 시를 외웁니다. 그는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적 힘이라는 것을 직감합니다.자신에게 질문하지요. 나도 시를 외워 보면 어떨까?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외우면 잊어버리고 또 외워도 머리에서 감쪽같이 언어가 사라져버리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9

똘똘 뭉쳐 ‘코로나 19’ 위기 극복

고윤환문경시장코로나19 국내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지 3달이 지났다. 그동안 문경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코로나19에 대응해 사실상 지역사회 감염이 없는 ‘안전 도시’를 지켰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고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완만해지면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현실로 다가오나 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사이 문경과 생활권이 상당히 겹치는 인근 지자체에서 2차, 3차 감염으로 의심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했다.문경시는 즉시 비상사태에 돌입해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전 시민에 대해 발열 등 건강 상태를 13일부터 전수 조사하고, 버스 노선 변경, 전통시장 자율 휴장 등 코로나19 전파 차단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드라이브 스루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도입해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위축된 지역경제 회복도 꾀하고 있다.잠잠해지던 코로나19의 위협이 예기치 못하게 가까이 다가왔다. 우선 문경시청 각 부서에서는 읍면동별 담당 마을을 지정 했다. 이후 비대면 조사를 위해 유선전화로 모든 세대에 개별 연락을 실시해 발열, 인후통, 후·미각 이상 등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유증상자는 곧장 병원에 방문하지 말고 보건소로 전화해 상담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이는 코로나19가 무증상이나 경증으로 인해 개인이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발병 초기에 전염력이 가장 높기에 코로나19 확산에 시민들이 경각심을 가지도록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모니터링 중 감염 의심 대상자들을 조기에 찾아 지역 사회에 확산되기 전 차단하고자 함이다.이번 전수조사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약 29%인 문경지역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코로나19 예방법과 진행사항을 안내하고, 1대 1로 소통하며 건강상태를 확인하여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다.시는 코로나19 전파 차단을 위해 선제적으로 전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문경과 예천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노선을 변경해, 타 지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관외 이동 없이 관내에서 회차 하도록 조치했다. 장날이 되면 타 지역 상인들의 왕래가 많은 문경전통시장, 가은시장, 점촌시장 등 전통 시장도 코로나19 확산이 안정될 때 까지 잠정적으로 자율 휴장에 들어갔으며, 미돈가 등 인근 지자체 주민이 많이 찾는 식당들도 임시 휴업을 실시 중이다.시는 버스터미널, 기차역, 관광지, 공공청사 등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는 대인소독기를 설치하여 소독과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생활시설에는 재해재난예비비 1억8천400만원을 투입해 증상이 발견된 경우 즉시 격리할 수 있도록 이동형 음압기를 보급했다.외부로부터 오염물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의류소독기, 위생복을 지원한 바 있다. 코로나19 환자의 조기발견과 의료기관내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 선별진료소(3곳), 드라이브 스루 진료, 카라반형 이동식 음압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예방이 최고의 치료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지역 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지역 경기는 침체되고 있다. 시는 코로나19 확산방지와 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드라이브 스루 도시락을 추진 중이다.드라이브 스루 도시락은 차에서 주문하고 상품을 받는 승차 판매 방식으로서 받은 도시락은 주변 공원이나 사무실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며 먹을 수 있다. 앞서 시는 ‘택시 드라이브 스루 도시락’ 배달운동을 전개 하여 지역 택시와 식당의 어려움 극복에 동참 중이다. 문경새재에서 시작한 드라이브 스루 도시락은 문경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문경이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이 되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문경은 머물러 있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시민들에게 문경이 위기 대응능력이 뛰어난 도시임을 보이도록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다.

2020-04-19

잠시 멈춤

한효정한동대 4년·ICT창업학부미국의 작은 교차로에는 어디든 붉은색 STOP 표지판이 있다. 잠시 차를 멈추고 1, 2, 3을 세고 오가는 차가 없으면 출발해도 무방하다는 안내판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들은 간혹 이 표지판 앞에서 경찰에게 딱지를 많이 끊긴다고 한다. 주변에 접근하는 차가 없으니 잠깐 속도를 줄였다가 서행하면 괜찮겠지, 방심했다가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적발당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STOP 표지판을 만났다. 일상을 멈추고 우리는 하나둘 셋 숫자를 센다. 자기 몸에 별문제가 없어 보여도 서로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던 여러 일에 머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미국 전역에 자택 대기령이 떨어진 이후 처음에는 밀린 잠도 늘어지게 자고 맘껏 넷플릭스도 보며 지냈다.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지 못하겠고 화면을 멍하니 노려보는 일도 귀찮아진다. 분리 수거하듯 미뤄 놓은 일들을 시작했다. 포항을 떠나 미국에서 인턴을 시작하면서 배운 작은 차이들을 하나, 둘, 셋 쉬어 가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하나, 가족 단위 활동이 많은 미국에 있으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한국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여기는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당연하다. 받아들이기 조금 낯설기도 했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족 얼굴 볼 기회가 찾아왔다. 옛말에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그동안 얼굴 보지 못해, 낯 뜨거워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표현들을 서로 건네는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둘, STOP 표지판에 잠시 멈췄다가 셋까지 센 다음에는 다시 액셀을 밟아야 한다. 이때 우회전을 할지 직진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잠시 멈춰있으니 길을 잘못 들었어도 좌나 우로 방향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얻은 잠깐의 여백은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황금의 기회다. 치열하게 싸우고 죽음을 앞둔 고지전 마지막 순간에 왜 이렇게 열심히 싸웠는가 전쟁의 이유를 까먹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왜(why?)라는 질문을 꺼내 들어야 한다.셋, 이렇게 텅 빈 것 같은 시간을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작년에 쉬려는 마음으로 휴학을 감행했지만, 정작 포항을 떠나 수도권에서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나를 보며 인생에 쉼이란 불가능한 일인가보다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남보다 더 잘해보려고 경쟁하던 내 본연의 모습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그냥 쉬어 보았다. 푹 자고 일어났고, 귀찮으니 대충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던 밥을 건강해 보이는 재료로 해 먹어도 보고, 치우지 않았던 책상 위도 한 번 쓱 훑어내고, 이렇게 방에만 있다가는 죽겠네 싶어 집 앞 산책도 나왔다. 일상에서 터부시하던 모습을 하나씩 지워가니 문득 어느 순간 “나 지금 진짜 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쉼이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숨겨진 보물찾기처럼 일상의 작은 일들을 꼭꼭 씹으며 살아갈 때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를 벌벌 떨게 한다. 돈과 성공을 정신없이 좇던 교만한 인간들에게 채찍처럼 나타난 아주 작은 바이러스. 조용히 다가와 매운맛을 보여준다. 경제를 힘들게 해 부모님 사업과 내 취업을 어렵게 하는 그 바이러스가 밉기도 하지만, 이 사태가 가져온 감사한 면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자의로 쉬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쉼을 선물하기도 하고, 여러 온라인 강의나 원격지원 업무를 통해 기술의 진보를 깨닫기도 한다.20대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는 남은 날 동안 이런 전염병이 과연 한 번뿐일 해프닝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벌써 그 횡포는 시작했고 세상은 바뀔 것이다. 뉴노멀(New Normal)이 찾아올 것이고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격변하는 구름 아래가 아닌, 구름 위로 올라가 잔잔한 나만의 시간을, 방법을, 고민하고 찾을 수 있다. 잠시 후 다시 구름 아래로 내려와 뚝심 있게 남은 날들을 우리는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20-04-19

코로나 이후

마치 전쟁 같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다소 진정 국면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고 그로인해 죽은 자가 13만 명에 다다랐다.20세기 들어 이보다 더 인류를 놀라게 한 사건은 없다. 현대 문명의 인간이 받은 충격은 가히 압도적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상을 코로나를 통해 깨달았다. 문제는 인류의 미래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예측이다. 불안감이 엄습한다.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지 기고를 통해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대부분 살아남을 테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코로나 이후 우리의 가장 기본적 삶의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 말이다. 인류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의 결속이 이에 대한 대응이 된다고도 말했다.코로나 이후 가장 예상되는 변화 중 하나가 비접촉 생활 패턴이다. 서로 만나 얼굴을 맞대고 가까이하는 모든 행동은 지금부터 서서히 자제된다. 꼭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그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대안이 온라인의 활성화다. 모든 것이 디지털 세상으로 바뀐다.온라인이 오프라인 유통을 무너뜨리고 서비스나 공정의 자동화가 인간의 일을 빼앗게 된다. 대량의 실업 사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자제품은 더 많이 팔릴 것이고 드라이브 스루 같은 영업장은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된다. 재택근무, 원격 비대면 진료, 학원 대신 화상영어가 일상화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예측이 안 되는 일상의 진짜 변화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할 지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16

미래통합당의 성공과 실패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성공했지만 전체 판도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에 참패했다. 원내의석 과반수를 넘어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허용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미래통합당은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비니트 데사이 교수팀이 우주왕복선 성공과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틀란티스호와 챌린저호를 비교·조사했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아틀란티스호는 2002년 발사 준비 당시 절연체가 고장 나고 대기권의 저항을 돌파하는데 필요한 증속 로켓의 왼쪽 부분이 손상됐어도 발사에는 성공했다. 그 결과 발사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후속 조사나 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챌린저호는 절연체가 분리돼 고장 나는 바람에 기체가 폭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다. 챌리저호 사건 이후 우주선들은 문제가 생기면 즉각 발사시간을 연기하게 됐으며, 철저한 후속조사로 우주선 발사 시스템에 29가지 보완 조치가 취해졌다. 미국 우주왕복선 개발의 역사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확실한 ‘반면교사’가 됐다는 것이다.미래통합당 역시 이번 총선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이같은 맥락에서 다시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대구·경북지역 25개 선거구에서는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한 대구 수성구을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후보 역시 통합당 복당을 전제로 선거에 나섰으니 사실상 TK지역은 25개 의석 모두 통합당이 차지한 셈이니 부분적으로는 성공이다. 그러나 전체 판도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당과 함께 180석을 확보했으니 통합당 입장에선 너무나 뼈아픈 실패요, 패배다. 더구나 차기 대권경쟁에 나설 대다수의 통합당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흐드러진 벚꽃잎처럼 떨어져 내린 게 너무 아프다. 마땅한 대선주자 하나 제대로 국회에 입성시키지 못한 제1야당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 통합당이 이번 총선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을 만한 체질 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민주당에 빼앗긴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흔히 어떤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나눈다면 6대4 정도로 나뉜다. 그럴 경우 보수당이 대체로 정권을 잡게되지만 큰 실책을 할 경우 실망한 보수표가 진보에 힘을 실으면서 보수와 진보 양진영을 오가는 권력교체가 이뤄진다. 그리 길지않은 민주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바로 이같은 양상으로 정권교체를 해내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이같은 양상의 정권교체와 함께 정치가 발전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욕심일까.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미래통합당에 조언한다. 오늘의 실패를 배울 수 있는 큰 기회로 삼고, 지금의 작은 실패를 통해 큰 실패를 예방하는 데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지친 이 나라에는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필요하다.

2020-04-16

선거도 끝났으니 평화 세상을

드디어 그 ‘무서운’ 선거가 끝났다. 민주주의 국가의 축제라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어지간히도 으르렁들 거렸다.우리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 그렇게 많았단다. 또 일본처럼 평생을 살아도 제 손으로 대통령 한 번 못 뽑아보는 세상도 있다.그래도 선거라면, 지금보다 좀 더 재밌었으면 한다. 싸우는 재미 말고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 현안을 놓고 깊고 넓게 생각하는 재미, 그런 선의의 다툼, 승자와 패자가 함께 웃는 선거 말이다.아직은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참된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 국민이 슬기롭지 못해서? 어느 하나에 정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나는 지금 이 ‘정국’이 어떻게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심중에 있다. 하하, 그런데 그걸 공표하기 어렵다. 함부로 발설하지 말자. 세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유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여기서 유 선생이란 ‘유튜브’를 말하는데, 가짜 보수, 가짜 진보는 가야 한단다. 진짜 보수, 진짜 진보가 나서는 세상이 되어야 한단다.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이 그런 이분법이 싫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민주주의 하나만 있으면 된다.옛날에는 ‘이쪽’이 민주주의고 ‘저쪽’은 독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주 명확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정직하지 못하다. 뭐가 뭔지 알겠는데 말하기 어렵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쉬운 말을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예나 지금이나 나는 균형이 좋고 중간이 좋다. 물론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중심 잡고 살아본 적 없다. 또, 중간을 어중치기나 박쥐 정도로나 여기는 세상이다. 중간을, 중도를 꿈꾸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나 같은 부류는 정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다들 선의에서 저렇게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싶다. ‘나’만 선의가 있는 게 아니요, 저 사람도 선의가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잘 되기를 꿈꾼다고, 그래서 자기 방법을, 노선을 고집하는 것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믿으면, 가정하면, 대화도 타협도 다 가능할 것이다.선거가 끝났으니 그 끝난 나날만큼 조금은 더 평화로워지기 바란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라도 한 뼘이라도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 그 무서운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어려우려나?아무튼 패배한 쪽에 손을 먼저 건네라. 함께 가자고 하라. 뭐라도 먼저 드리라.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4-16

민심이 천심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63 : 84.이번에 치러진 21대 총선의 지역구 선거 결과이다. 미래통합당이 더블 스코어로 참패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참패이다. 미래한국당의 비례 의석을 합하더라도 100석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개헌선은 막았다 해도 받아든 성적표는 참혹하고 비참할 정도이다. 보수는 왜 이렇게 몰락하고 있는가?1987년 민주화 이후 치른 전국 단위 선거에서 주요 정당이 네 번 연속 패배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민심은 한쪽으로 힘이 연속적으로 몰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총선·대선·지방선거에 이어 다시 보수는 패했다.민심이 천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민심일까? 이번 선거는 그동안의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실패로 인한 경기침체, 탈원전, 조국 사태, 울산 선거 공작 사건 등 정권의 행태는 선거로 심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러한 실정 등이 묻힌 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여당의 180석 예상과 20년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적중하는 신호탄일까? 그렇다면 민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이번 통합당의 패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공천 파동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보가 4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대권에 초점이 맞추어진 공천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공천 파동은 개인적 손익 계산에 따른 공천이었다는 인상을 국민들은 깊이 받았을 것이다.혹자는 지금 활동세대인 30∼40대가 성장했던 80∼90년대에 교육이 전교조에 의해 젊은이들을 진보 클릭으로 세뇌했다는 주장도 한다. 어려서 교육은 사상을 좌우한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주장이다. 지난 3년 문재인 정부의 모든 국정 어젠다가 선거에 이기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막판엔 유권자 지갑에 현금 주는 환심정책까지 나왔다. 선거 승리라는 목표에만 집중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략은 성공했다.현 정권으로선 어떻게 국정을 챙기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설픈 우파와의 타협이 더 손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재집권이 지상 과제인 상황에서 이런 기조로 내달리면 대선 승리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사실상 이대로는 2년 뒤 대선에서도 보수와 통합당의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다. 국가의 모든 구석구석이 진보 세력 한 곳으로 장악하게 되면 국민에게서 수권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략이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보수 그리고 통합당이 걸어야 할 길은 정말 험하고 멀다. 한국은 이제 남북 분단에 이어 동서로 분할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동서 분할은 더 뚜렷해졌다. 이 나라는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그리고 진정한 민심은 어디에 있는 것 일까? 선거가 끝나고 맑은 햇빛이 익어가는 봄의 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만, 우리 마음은 그리 맑고 환한 것 같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20-04-16

노련한 사냥꾼 방식(2)

잠자리에 들 때 심심하다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이불에 나란히 누워있는 4남매에게 엄마는 매일 이야기를 지어 들려줍니다. 방귀 공주, 코피 공주 등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갑니다.“자연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터전이다.” 아이가 노트에 적은 글귀입니다.아이의 이름은 전이수. 이미 그림책을 세 권이나 쓴 꼬마 작가입니다. 제주의 자연을 만나면서 이수의 감성은 날마다 꽃피우고 있지요. 철학적인 사고, 뛰어난 감수성, 문학적 구성 능력 등 이수는 끝없는 잠재력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아이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니까 책을 많이 읽혔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우리 집엔 책이 거의 없어요.” 이수 엄마는 말합니다. 아빠가 사 준 중고 전집 한 세트가 전부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부모들과 다른 철학을 가진 부모입니다.“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라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다”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피에르상소의 말입니다. 무엇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애쓰는 보통의 부모에게 낯선 개념이지요. 엄마가 더 잘 해보려는 의욕으로 가득한 두 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껏 성장합니다.텅 빈 공관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야 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책은 몇 권 없지만, 이수 엄마는 텅 빈 캔버스를 마련해 이수가 마음껏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집안이 엉망 되어도 밀가루를 거실 바닥에 뿌려 놓고 물감을 풀어 온 가족이 뒹굴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 주고 아이가 무심히 그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천재성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6

풀 이름 부르기

김병래시조시인어느 시인은 구절초와 쑥부쟁이도 구별하지 못하고 시인행세를 한 것이 부끄럽다고 했지만, 종자식물과 포자식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인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가끔씩 시(詩)에다 ‘민들레 홀씨’란 말을 써먹는 게 그 예다. 이끼나 버섯, 곰팡이처럼 무성생식을 하는 식물의 포자(胞子)를 홀씨라고 한다는 건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우는 상식이다. 그것을 종자식물인 민들레에 갖다 붙이는 건 코끼리를 곤충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림없는 소리다. 남달리 사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는 시인들조차 이 정도니 틈만 나면 휴대폰이나 들여다보는 아이들이야 오죽할까.이제는 어른들 중에도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밭에서 자라는 밀과 보리, 콩과 팥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좁쌀과 기장쌀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러니 한 술의 밥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거름 주고, 김매고, 추수하고, 타작하고, 말리고, 찧어서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들녘에는 음식이 되는 농작물만 있는 게 아니라 잡초라 불리는 온갖 풀들이 있다. 김매는 아낙들에겐 지겨운 일거리기도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듯이 지천인 들풀인들 어찌 소용이 없겠는가. 풀 한 포기 없이 삭막한 사막에 비한다면 잡초 우거진 이 땅은 얼마나 우리의 정서를 생기롭고 풍성하게 하는 낙원인가. 먹고 사는 게 어려울 때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채소나 곡식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잡초에도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곡식이건 잡초건 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요즘은 참 편리하게도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풀꽃의 이름과 정보를 알려준다고 하니 관심이 있으면 손쉽게 풀꽃들과 친해질 수가 있겠다. 우선은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특별하거나 희귀한 것보다는 가장 가까이에 가장 흔하게 있는 것들이 우리 정서의 바탕이 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풀꽃으로는 이른 봄의 봄까치꽃, 냉이꽃에서부터 민들레, 제비꽃, 양지꽃, 여름의 개망초와 엉겅퀴, 클로버, 애기똥풀, 달맞이꽃, 가을의 여뀌와 물옥잠, 고들빼기, 씀바귀, 쑥부쟁이 등이 가장 흔하게 보이는 꽃이다. 그 밖에도 꽃이 보잘 것 없는 뚝새풀, 겨이삭, 메귀리, 포아풀, 수크렁, 강아지풀 같은 벼과식물이나 방동사니, 하늘지기, 괭이사초 같은 사초과 풀들은 종류도 많고 구별도 어려워서 풀이름 공부의 중급과정은 될 것이다.그까짓 풀이름 따위 알아서 무슨 소용이냐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김춘수 시인도 말하지 않던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들녘에 피고 지는 수많은 풀꽃들 그 하나하나에 눈 맞추고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 어찌 쓸데없는 짓이겠는가. 그들이 전해주는 거짓도 왜곡도 의혹도 없는 생명의 메시지가 한갓 부질없는 게 아니라면.

2020-04-16

석가모니 부처님

철산 스님 포항 보경사 주지석가모니의 호칭은 붓다, 부처, 고타마 싯다르타, 여래, 천인사 등 여러 가지이다. 부처라는 말은 인도에서 온 말로 ‘붓다’인데 이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의 불(佛)은 부처, 교(敎)는 가르침으로, 불교를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하면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다.석가모니가 출가를 했던 이유, 6년 간의 고행을 단행했던 이유에 비추어 봤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세상 일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고 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모든 고통의 원인은 ‘무명’(無明)이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바르고 청정한 지혜를 증득하여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불교를 흔히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이해하고, 이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속세를 떠나 산 속에 묻혀 선정을 닦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면을 묘사한 경전 구절에 비추어 보면,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는 결코 세상과 관계없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른 지혜와 청정한 눈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진리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디디고 선 바로 이 현실 자체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석가모니의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緣起)로 대표된다. 연기는 석가모니가 세계와 존재의 구성 원리에 대해 발견한 것이다. 연기란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뜻으로서, 세계나 존재는 조건들의 모임이고, 이 조건이 변해가기 때문에 존재도 끝없이 변함을 설명하는 원리이다. 연기는 존재의 인식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존재의 고통과 혼란의 근본원인을 무명이라고 말하고, 무명이 소멸하면 모든 고통이 해결되어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즉,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며, 열반은 완성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선포한 후에도 평생 동안 팔정도(八正道) 수행을 하고, 그 수행의 방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한 것은 궁극적인 열반을 향한 일체의 자기 수행, 자기 공부였다.세계적 대유행이 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함과 고난, 그리고 두려움을 겪고 있지만 냉정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역대 불문의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한 대응을 잊지 말 것을 모든 분들께 당부드린다. 어떠한 곤란이 있더라도 오직 자비와 지혜로 대응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경보호와 생명보호를 중시해 이 위기를 평안함으로 전환 시킬수 있기를 바란다.

2020-04-15

봄은 왔건만

윤영대 수필가춘삼월도 지나고 목련 꽃이 아름답게 피는 4월, 완연한 봄이다. 벌써 일찍 만개한 창포동 뒷산의 진달래는 꽃잎을 접어가고, 효자 영일대, 환호공원 등 시내 곳곳의 벚꽃길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지나는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한 폐렴-코로나19의 검은 구름이 몰려온 탓이다. 그야말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국내 확진자가 1만 명을 넘고 감염예방수칙도 강화됐다.늘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이 딸꾹거릴 때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알림이 온다. 감염예방을 위해 저녁 시간 밀폐된 장소에 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오기, 행사와 모임 자제하기, 손씻기와 기침 예절 준수하기 등 창살 없는 감옥이리라. 국민이 지켜야 할 사항들이 긴 겨울 동안 따뜻한 봄날을 기다렸던 마음에 어두운 장막을 치게 한다.감염확산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한다. 거리 2m는 코로나 세균의 비말이 미치지 않는 간격이고 거리두기라는 의미는 사람 간 접촉을 줄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적 거리’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씹어 보면 씁쓸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역할을 하는 관계, 감정 등의 의미가 있으리라. 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멀리하라고 하니 무관심 아니면 적대적 관계로 오해될 수 있겠다. 오히려 ‘물리적 거리’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어쨌든 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서 인간적 거리는 배려와 양심적 행동을 통해 더 따뜻하게 가까워져야 하리라.치료와 점검, 방역활동 등을 위해 전국에서 스스로 참여하는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의 봉사 정신, 그리고 자가격리, 거리 두기 등 방역수칙을 묵묵히 따라주는 국민의 공동체 의식 수준이 바로 이 코로나 사태 극복의 힘이 될 것이라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모양이 태양 표면의 불꽃, 즉 홍염(corona)을 닮아 붙인 이름 같은데 그 타오르는 열기를 이제 모두의 정신적 차분함으로 이겨나가야 한다.아직 개학이 불투명한 학교 교정은 노랗게 피어나던 개나리의 합창 속에 재잘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각종 문화시설과 노인학교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노년의 즐거운 일상도 낙을 잃었다.시골 장날이 열리지 않으니 봄나물, 채소들도 밭에서 시들어 버렸고, 재래시장과 소규모 식당들이 개점휴업 상태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들도 그 맛을 잃어간다. 졸업식 입학식을 못하게 됐고 결혼식도 축제도 취소되곤 하였으니 아름다운 꽃들도 겨울 내내 가꾸어왔던 향기를 전할 일이 드물다. 사람의 만남과 자연과의 교감이 없으니 허전한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은 만나야 하고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사회적 격리로 이제 가족과는 더 밀착된 시간이 많아져서 그동안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족의 의미를 되찾고 근심 걱정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이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매일 TV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니 눈도 피로하지만, 다행히 SNS의 세계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답답한 마음에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푸른 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날갯짓에 몸은 가벼워지고, 산골에 있는 친구 만나러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정겨운 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시외의 벚꽃 터널을 자동차를 타고 그야말로 ‘드라이브 스루’로 훑고 지나가며 서로 격리된 모습을 느끼기도 하고, 마스크를 낀 채 시내 철길공원 숲을 거닐어 보면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피하여 지나가지만 그래도 눈빛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좋다. 인간은 서로 보고 웃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고맙다.이제 식목일도 지났다. 산과 들, 마을과 집 안뜰에서 숲의 맑은 숨결을 바라며 나무를 심던 즐거움도 빼앗겼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생명의 꽃나무를 심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는 바이러스가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코로나에 빼앗긴 마음의 들에도 봄은 오리라.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이번 봄은 우리 인간들에게 또 많은 가르침을 준다. 입으로는 어렵더라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자.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2020-04-15

드라이브 스루

봄볕이 따습습니다. 겨우내 갇혀 있던 화분들을 베란다 창턱에다 내놓았었지요. 다육이들 작은 잎새마다 새순이 돋고, 빨갛거나 노란 기왕의 잎들도 선명한 때깔을 자랑합니다. 물리적 거리 두기 캠페인으로 갑갑하지만, 앙증맞은 잎들을 살피노라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됩니다. 몇몇 화분을 더 들여야지 하는 핑계를 앞세워 봄 마중을 나섭니다.봄을 보채는 온갖 물상들이 점멸등처럼 깜박입니다. 차창으로 스며드는 먼빛의 아른거림을 시작으로, 아파트 꾸밈 벽 바위틈을 뚫고 핀 영산홍의 춤사위며, 물기 서린 바닥으로 내려앉는 벚꽃들의 분분함이 차례로 어룽거립니다. 볕이 다사로울수록 쉬엄쉬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길섶, 사과 바구니를 갈무리하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넓디넓은 과수원을 배경 삼아 앉은 품새가 쩨쩨하거나 손이 작아 보일성싶지는 않습니다. 잠깐 실리적인 계산속이 제 머리를 스칩니다. 공판장이나 마트보다는 싸고 맛난 과일을 ‘득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비쌌지만 흥정도 에누리도 없이 한 바구니를 샀습니다. 할머니가 사과를 꾸리는 동안 저는 과수원에 내려앉은 별사탕 같은 봄까치꽃을 앵글에 담았지요.다시 길을 나섭니다. 벚꽃 터널이 시작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상춘객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drive-thru) 안내 현수막이 꽃길 따라 나부낍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나 필요했던 이 첨단의 방식이 행락에도 적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지요.아시다시피 드라이브 스루는 주차하지 않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우리말로 다듬자면 ‘승차 구매’쯤이 될까요. 장소를 가리키는 의미라면 ‘승차 구매점’도 될 수 있겠네요. 순화한 표현도 순우리말이 아니니 굳이 바꿔 부를 필요까지는 없겠지요. 일찌감치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다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비대면 방식으로 서로를 연결한 것은 아니었겠지요.단순하고 스피디한 것을 마다않는 저는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드라이브 스루에 호의적이었답니다. 햄버거 한 세트를 사기 위해 매번 매장 안을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니 이보다 매혹적인 편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미가 좀 없어 보이긴 하지만, 서비스 주체와 손님 간에 신뢰만 있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겠지요. 실제 드라이브 스루로 구매한 햄버거가 잘못 나온 적이 있었는데, 직원의 친절한 전화 응대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경험도 드라이브 스루에 긍정적인 제 마음에 일조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경상도식 발음 영향인지 ‘드라이버’라고 틀리게 인쇄된 현수막 글씨마저 인간적입니다. 드라이브 스루는 원조 격인 미국보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는 동안 우리 의료진이 보여준 창의적이고도 성공적인 이 검진 방식에 전 지구촌이 주목했다니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하염없이 꽃터널만 드라이브 스루하다 화원엔 들르지도 못한 채 귀가합니다. 목이라도 추길 겸 봉지에서 사과를 꺼내는데 썩은 것이 눈에 띕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좋이 삼분의 일은 검은 구멍이 송송 나있습니다. 에누리 없는 장사 없다지만 속임수 없는 이문 또한 불가능한 것일까요. 시골할머니에게 장삿속이 있을 리 만무하다고 믿는 것은 사랑이 로맨스만으로 이뤄진 거라고 착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렸네요. 순박한 꽃을 입은 악덕에 상처 받은, 착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저는 괜히 꿀꿀해집니다.가만 되돌아봅니다. 더 싸고 맛난 과일을 접수할 수 있을 거라고 설레발친 것은 제 마음이었지요. 할머니가 저를 속인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를 속인 셈이지요. 욕심 낀 마음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쉬운 상대니까요.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면 스스로를 속일 때야 가능한 일임을 알겠습니다.눈 마주치고 손 맞잡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사람 모인 곳이 항시 비로드 조각보처럼 포근하거나, 데워진 찻잔처럼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내 한 가슴에서 두 심장이 뛰면, 한 입에서 두 혀가 움직김살로메소설가이는 화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게 사람입니다. 반대로 직접 부딪히지 않더라도 신용이란 끈으로 선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게 관계입니다. 긴가민가하지만 결과적으로 단호한 믿음을 주고, 갸우뚱대지만 결국 정한바대로 얻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같은 것 말입니다. 물리적 대면이 없다고 해서 마음마저 드라이브 스루하는 건 아니니까요.머잖아 식당, 건강검진, 은행 등 도처의 업무에 드라이브 스루가 적용될 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제 아무리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에 동조하는 저 같은 이라도 그 바퀴 굴리고 싶지 않은 분야도 있답니다. 이를테면 꽃 터널에 갇혀 못다 본 봄꽃 거래라면 드라이브 스루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눈으로 느끼고, 손으로 맛보며, 코로 만질 수 없는 방식이라면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것들이 우리 곁엔 있으니까요. 달디 단 꽃잎 옆에는 벌 나비가 바싹 붙을수록 섭리에 가까운 거잖아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0-04-15

선진의 조건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들은 요즘 ‘국뽕’에 취한 상태다. 날마다 외신이 전하는 코로나19 소식 때문이다.세계 전역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유일한 예외가 대한민국이다. 한국산 진단키트를 공급해달라는 국가가 130개가 넘고, 우리의 방역방식을 공유하겠다는 나라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시자 빌 게이츠도 4월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이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다.코로나19가 창궐하던 얼마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극적인 반전에 환호작약하는 것은 이 나라 백성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저명 학자들과 언론들은 앞다투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상을 예견하느라 여념이 없다.우리가 지금까지 떠받든 ‘선진국’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의 상황에서 선진의 조건이 무엇일까, 문득 생각한다.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이라는 말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다. 우리의 사유와 행동과 미래기획과 꿈의 절대적인 기준은 늘 선진국이었다. 우리의 기준인 KS는 그저 그런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숱한 방송사와 기자들은 ‘미국과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 타령을 되풀이하고 있다.그런데 하루아침에 선진국들이 대한민국을 배우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던 기자들은 어안이벙벙한 모양이다. 세계 각국의 수뇌가 한국 대통령에게 경쟁하듯 전화하고 원조와 조언과 협력을 구하는 상황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그래서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나가는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숙고하는 것이다.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보장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생명과 안전에 필수적인 보건의료는 물론이려니와 교육과 계몽, 민주주의, 과학기술, 법과 제도, 문화와 예술, 교양과 문명 같은 요소가 선진의 조건으로 거명 가능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보건의료 부문에서 세계적인 공인을 받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최강 미국마저 허망하게 무너지는 판국에!코로나19의 침공과 미국의 붕괴는 의료 민영화가 주범이다. 오바마케어를 무산시킨 트럼프가 붕괴의 수괴지만,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는 부자를 기준으로 한다.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전생존 무전죽음’이란 등식이 성립한다. 실제로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의 7할이 흑인이다. 빈자는 죽어 나가고 부자만 살아남는 나라를 우리는 선진국 운운하며 천조국으로 모셔왔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이제는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우리가 세계 최강이자 선진이라 자부해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문제는 사회의 여러 부문과 분야에서 선진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리라. 이래저래 유쾌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2020년이다.

2020-04-15

노련한 사냥꾼 방식(1)

노련한 사냥꾼은 사냥감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사냥감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지요. 소리치며 뛰어다닌다고 사냥감이 나타날 일은 없습니다.우리 내면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한 주도적 선택을 할 때 내면의 진정한 보석들이 두 눈에 반짝이기 시작하고 귀에 천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법입니다.한 꼬마가 있습니다. 도시 생활이 아이들에게 금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는 제주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지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칠 수 있게 된 아이. 제주의 오름을 보고 반짝이는 영감을 받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사람들은 원래 발이 있어서 걸어다녀야 하잖아요? 일은 안 하고 대신 로봇한테만 시키니까 점점 힘이 없어지고 살만 쪘어요. 그래서 몸은 커지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사람을 산 (山)이라고 하면 너무 크니깐 이렇게 오름이 되어 버린 거예요.”레미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와 대화를 나눕니다.“엄마, 레미콘은 왜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예요?” “시멘트가 굳지 말라고 돌아가는 거지.” “엄마. 지구도 사람이 굳지 말라고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아이의 철학적인 질문을 엄마는 마음에 간직합니다. 제주 한적한 마을 모퉁이에 자리한 아이 가족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느리고 충만한 삶을 만끽합니다. “도시에 있을 때는 하면 안 되는 것, 차단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아니야. 거긴 안 돼, 그만!’ 소리가 입에 붙어 있었죠. 제주에 온 이후로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상관없어요. 그야말로 마음껏 발산하고 내지르죠.”TV도 없고 놀이터도 없고 덩그러니 집 한 채만 있었지만, 제주는 가족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5

온라인 수업과 PC방 등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여곡절 끝에 일부 학년의 온라인 학교 문이 열렸다. 개학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지만, 온라인 개학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학교가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휴업 기간 동안 학생들은 과제 폭탄에 허덕였다. 수업이라고 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던 학생들의 실망감은 크다. 간혹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도 있지만, 대다수가 인터넷 강의 재생 수준이다.달라진 것도 있다. 출석이 인정된다는 것과 교사 권위가 크게 상승했다는 것! 교사의 권위 상승에 대해 의아해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교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교사들은 온라인 개학 이후 수업 진행자라기보다는 절대 권력의 감시자와 점검자가 되었다. 특히 자신이 낸 과제에 있어서는 확실한 갑이다. 과제를 안 내는 학생에게는 벌점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교사들, 그들은 분명 거역할 수 없는 학기 초 “갑”이다. 속마음이야 학생을 위하는 것이겠지만, 학생들의 마음엔 불신과 분노만 자란다. 과제를 해야 할 이유에 관한 설명도, 또 시스템 점검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교사들의 마음을 학생들은 모른다.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수업이 뭔지?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정말 수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필자는 수업이라는 자리에 “학습”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제 수행 중심 학습! 이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또 설사 이걸 수업이라고 한다면 분명 순서가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과제 수행 전에 과제와 관련된 교사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생략되었다.일부 학생들은 과제 수행을 위해 PC방으로 달려갔다. “PC방 등교”라는 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친정부 언론은 이를 두고 과제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악마의 편집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로그인 후 학생들은 무엇을 했을까? 온라인 개학, 교사들은 당연히 학생들이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교사들을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학생들을 탓해야 할까? 그런데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와 교사가 온라인 개학의 최우선순위를 학생에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교사가 먼저였다. 대표적인 예시가 시간표이다.다음은 “체계적인 원격 수업을 위한 운영 기준안”에 나와 있는 “수업량”에 대한 내용이다.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중략) 적정 수업량을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함. 학교급, 학습내용의 수준, 학생의 학습부담 (중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운영이 가능함”분명 기준안에는 학생의 학습 부담을 고려하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일선 학교의 온라인 수업 시간표에는 학생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학생을 위한 시간표가 아니라 교사의 수업 시수 확보와 NEIS 기록을 위한 순전히 교사 중심의 시간표이다.그러기에 일일 7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표가 나왔다. 과연 교사들은 자신들이 짠 시간표대로 7시간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을까! 온라인 개학에 결단코 학생은 없다!

2020-04-15

오디오북 전성시대

최근 국내 오디오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오디오북은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들을 수 있게 제작한 디지털 콘텐츠를 가리킨다. 테이프, CD 등 물리적 저장 매체뿐만 아니라 다운로드가 가능한 MP3 파일 등 디지털 음원이나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된다.오디오북이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스마트폰 앱 형태의 가입형 오디오북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지난 해부터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B2C(Business-to-Customer) 판매 형태로 신규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가장 앞서 있고, 오디오북 플랫폼인 윌라, 팟빵 등이 뒤쫓고 있다.실제로 지난 4월 현재 국내에 판매 중인 오디오북은 2천429종으로, 전년 대비 418% 폭풍 성장했다. 성장률만 놓고 보면 귀로 읽는 책, 오디오북은 이미 전자책을 넘어섰다.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지난해 12월부터 오디오 클립(audioclip.naver.com)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오디오북 구매 가격은 권당 3천~6천원, 대여료는 1천500~3천원이다. 독서 애플리케이션 ‘밀리의 서재’는 지난해 7월부터 오디오북을 선보였고, 월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첫 달은 무료이고, 이후 월 9천900원이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의 오디오 북클럽 역시 현재 월 9천900원에 이용 가능하며, 첫 달은 무료다. 명강의를 들을 수 있는 윌라 클래스 멤버스 역시 9천900원이고, 윌라 프리미엄 올패스는 월 1만3천500원에 판매 중이다.새로운 독서매체로 등장한 오디오북은 유튜브에 식상한 고전적 책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틈새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15

새 국회에 바란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총선이 지나갔다. 한편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복잡하게 수많은 생각과 느낌이 흐르며 선거를 마쳤다. 코로나19와 함께 다가와 세계의 이목마저 끌어낸 민주주의의 잔치는 이제 한 자락 역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정치의 실체를 분명히 목격하였다. 한 표의 가치가 얼마나 묵중한지도 새삼 절감했으며 정치의 방향을 설정하는 국민의 힘을 다시 보았다. 당선의 영광을 얻었거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어도 국민의 결정 앞에 겸허해야 할 터이다. 지난 국회의 모습이 거울이 되어 새 국회는 나라와 국민에게 희망과 격려가 되는 집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국민은 ‘일하는’ 국회를 기대한다. 진영으로 편갈라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에 국민은 지쳐있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해 가는데 국회가 발맞추어 정책과 제도로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장성세로 세월을 보낼 일이 아니라 실속있는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 의지와 실력이 함께 드러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국민은 ‘하나가 되는’ 국회를 바란다. 생각의 차이와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고 치열하게 다투고 견주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최적의 해결책을 만들길 기대한다. 이념이 다르고 방법이 다를지언정, 의원들은 모두 국민을 위한 ‘한 편’이었음을 확인하여 주시라. 어려움 앞에 하나가 되는 국민에게 더이상 부끄럽지 않을 국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국민은 품위있는 국회를 기대한다. 막말과 선동을 수다히 겪은 국민은 실체가 있는 담론과 결실을 맺을 토론을 기다린다. 속시원한 한마디나 통쾌한 말펀치가 긍정적인 결과까지 이끌어냈던 기억이 없다. 당신을 뽑아준 지역을 부끄럽게 하고 국가의 의정단상을 더럽히는 행태를 더는 안 보았으면 한다. 다음세대에게 본이 되길 바란다.국민도 바뀌어야 한다. 임기 내내 불꽃같은 눈으로 감시와 견제를 게을리 아니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를 우습게 보게 하며 선거 때만 큰절을 받는 구태를 끊어내야 한다.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는 국회의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되 끊임없이 결실과 성과를 기대하는 적극성을 길러야 한다. 국회를 통하여 민의가 구체적으로 반영되도록 아이디어를 만들고 제안에도 나서야 한다. 정치가 긴장하여 열매를 맺으려면 국민이 부지런해야 한다.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구현하려면, 국회의 임기를 국민의 목소리로 채워야 한다.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다른 세상일 터이다. 새 국회가 만나는 나라도 새로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놀라운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던 싱싱한 국회의원이 되어 주시라. 세상을 바꾸어 가는 희망 가득한 길 위에 당신의 노력이 분명히 보이는 국회를 만들어 주시라. 국민의 요청에 국회가 귀를 기울이고 국회의 노력에 국민이 화답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부러워한다는 그 이상으로 우리 스스로 가슴 뿌듯한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2020-04-15

쉘 위 악수?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쉘 위 댄스’ 춤추실래요? 감미롭고 낭만적인 말이다. ‘쉘 위 악수’ 악수 가능하세요? 공생을 위한 몸부림의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변한 생활 패턴 중 하나가 악수하는 것을 주춤거리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역 방법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경각심이 일상화 되고 있다. 신체적 접촉 행위인 악수 관행이 타격(?)을 입고 있다. 평소처럼 손을 내밀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현대인의 악수는 만남의 전위행위이다.악수란 신체적 접촉행위로 친근감과 신뢰감을 표시한다. 더하여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그 유래에 비해 간편하고 좋은 인사 방법이다. 악수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상대방에 대한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행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무기는 오른 손으로 잡으니 악수는 오른 손으로 하는 것이 원칙. 또한 전쟁행위는 주로 남자들이 하니까 악수는 두 남자의 행위였다고 한다. 연장자, 상사, 여성이 먼저 청하는 것이 악수예절이다. 선거철이면 선량 후보자들이 갑자기 친한 척하기 시작한다. 유권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표를 호소한다. 대선주자급이면 너무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하여 손이 퉁퉁 붓고 밤이면 그 통증에 시달린단다.그 통증이 대수랴? 한 표가 중요한데. 선량 후보자들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다가 보면 감이 온단다. 그래서 더욱 악수에 매달리게 된다. 악수와 목례의 반복행위를 하는 선량후보자들의 눈길을 살펴본다. 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량의 마음인지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인지. 악수하는 사람과의 눈맞춤에서 진심어린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터인데 눈길은 다음 악수할 사람에게 미리 옮겨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표를 얻기 위한 쇼를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권위주의 시절 사관학교나 경찰간부 임용식 예행연습이 떠오른다. 정부의 고관들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신임장교나 초임경찰 간부들이 고관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하는 순서가 있다.‘손은 잡는 듯 마는 듯할 것이며, 눈은 상대의 인중을 봐야한다’는 엄격한 악수통제로 예행연습 때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악수가 친근감과 격려의 표시보다는 충성서약을 하는 의식이었던 것 같다.몸에 밴 일상속의 악수가 코로나 바이러스사태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손바닥을 펼쳐서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던 행위가 전염이 두려워 주먹을 쥐고 서로 마주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상황을 서로 의식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주먹을 상대방에게 보인다는 사실이 자칫 전투태세를 연상시킨다.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인사가 전투적으로 변하는 건 아닌가하는 감정비약까지 하게 된다. 상황의 위중함을 감안하면 손을 잡는 악수가 주먹을 치는 인사로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쉘 위 댄스’ 영화 제목처럼 ‘쉘 위 악수’라는 말로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악수하는 불편을 감수하거나 주먹치기하는 어색한 인사를 피하려면 코로나 바이러스 조기종식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접촉을 삼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올인 하는 게 낫겠다. ‘쉘 위 사회적 거리두기’.

2020-04-14

글을 잘 쓰는 방법(3)

할머니 시집은 100만 부가 넘겨 팔립니다.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 문을 열어 주었지 /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 셋이서 수다를 떠네 / 할머니 / 혼자서 외롭지 않아? /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 나는 대답했네 / 그만 고집부리고 / 편히 가자는 말에 / 다 같이 웃었던 오후책은 생각을 깊게 만듭니다. 위대한 책은 생각을 넓게 확장시키지요. 글을 쓸 때는 오히려 생각이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첫 관문은 생각의 검열관 죽이기입니다. 말이 말하게, 글이 글을 불러오게 해야 합니다.라틴어의 유명한 경구가 있습니다. Veritas Veritatum이지요. 베리타스베리타툼, 진실이 진실을 낳는다는 것과 글쓰기는 비슷합니다. 글은 생각으로 불러와지지 않습니다. 글을 오직 글로서만 불러낼 수 있습니다.오직 글로 기록한 것들만 역사로 남습니다. 읽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써야 합니다. 생각은 흔적도 없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쓰기의 결과물은 우리 곁에 남습니다. 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100세 일본 할머니가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봐요. 나는 92세에 시작했다우. 당신은 나보단 젊잖아? 시작해 봐요. 노트에 몇 글자 끼적이면 되는 거예요. 그 몇 글자가 기적을 불러와요. 단어가 단어를 불러오고 문장이 문장을 불러온다니까요. 생각을 멈춰요. 그냥 써봐요.”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누에는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만들고, 사람은 말과 글을 통해 언어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이제 나만의 글쓰기를 통해 내 존재가 한층 더 성장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위를 둘러보면 글쓰기에 도움을 얻을 만한 책과 영상, 강의 등이 널려 있습니다. 선택은 내 몫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4

예술인이 예술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

최미경동화작가“엄마, 엄마 직업은 뭐라고 써야 해?”저녁을 준비하던 내게, 학교에서 보내온 온라인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며 첫째가 불쑥 물었다.“선생님 아니야?”/“아니지 작가지.”/“아니야, 엄만 요리를 잘하니까 요리사야.”내겐 말할 틈도 주질 않고 둘째와 셋째가 서로 내 직업에 대해 옥신각신할 때, 나는 한숨이 절반인 말로 뱉어냈다.“엄마 사실…. 잘 모르겠어.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지.”그렇게 종일 마음을 썼던 일이 아슴아슴 떠올랐다.오전 일찍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A작가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예술활동증명’을 어떻게 하느냐며, 몇 해 전 내게 그 이야길 들었던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 가입과 증빙서류에 대해 이야길하며 걱정이 먼저 앞섰다. 예전에 비해 절차와 서류들은 간소화되었지만 처음 해 보는 이들에게 컴퓨터 서류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예술활동증명’을 꼭 하라고 당부했던 B작가에게 전활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도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결국 나는 B작가에게 그동안 작업했던 전시도록과 리플릿을 챙겨 오라며 약속을 잡았다.사실 나는 내 일 아닌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아이 셋을 키워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고 그 와중에 작가로써의 자존심도 지켜내기 위해 틈틈이 글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내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도 사치라고 여기고 내 앞만 보고 살았다.그런 내가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종일 전화를 돌리고 의견을 묻고 약속을 잡았다. 그러던 중 일부 작가들은 자신이 예술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왜 ‘예술활동증명’을 따로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코로나19로 전시, 공연, 예술수업 일정이 전면 취소되었을 것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도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런데 예술의 가치라는 것이 경제적인 접근으로는 측정되기 어려운 가치이기에 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시장가치평가방법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만 보통 그렇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창조해내는 예술인들은 생산자로써 그들의 예술작업을 공적 차원에서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예술인으로의 공증된 자료, 즉 국가에서 원하는 몇 가지 장치들을 알고 다소 어려워도 당장 쓸모가 없는 것 같아도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한데 그렇게 했던 일들이 뜬금없는 오지랖은 아니었나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것에 대한 푸념으로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뱉어낸 것인데 셋째가 갑자기 두 팔을 크게 벌려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10살 막내의 작은 품에서 하루의 피곤함이 사라락 녹아내리는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나직한 막내의 목소리.“엄마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엄마는 내 엄마야.”

2020-04-14

모사재인 성사재천

사람에게 운(運)이라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지만 영 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의 일은 운이 칠할, 재주나 노력은 삼할이다”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논리도 그래서 생겨났다.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한계적 영역이 있음을 드러낸 표현이다.불과 100여년전 만해도 길흉화복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웬만한 병은 쉽게 고치기도 한다. 그 시절은 맹장염조차 손을 못 써 죽는 일이 허다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 실감나던 때다. 사람이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감동시켜야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도 비슷한 말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를 인간 스스로 인정한 말이다.그러나 이런 표현이 어차피 운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력을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떠한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된다는 것과 동시에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삼국지의 제갈량은 위나라 사마의를 제거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폭발물을 계곡에 설치하고 그를 유인한다. 제갈량의 계략대로 사마의 부대는 곧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계곡에 설치된 폭발물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 모습을 바라본 제갈량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일은 사람이 꾸미고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고 말했다.21대 총선이 결과만 남겨놓았다. 후보들이 발로 뛴 결과가 오늘밤 늦게 쯤 윤곽을 드러낸다. 그들은 얼마나 민심에 대해 최선을 다했을까. 하늘은 어떤 심판을 준비했는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14

이름값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배민’. 어떤 후보자의 이름이기에 선거철인 요즘 이렇게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국회의원 후보자의 이름이 아니라 ‘배달의 민족’을 줄인 말이다.배달의 민족은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가 운영하는 배달 주문 서비스 브랜드 이름이다. 이름 참 잘 지었다. 경영진의 실력과 기술이 한 회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주된 요소인 것은 맞겠지만 회사나 브랜드의 이름도 회사를 키우고 매출을 올리는 데에 큰 몫을 한다.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회사 이름도 잘 지었고,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잘 지었다. 소비자들의 머리에 빠르게, 쉽게 떠올라야 주문을 잘 할 수 있는 게 배달앱 아니던가. 배달의 민족은 이름에서부터 벌써 성공의 토대를 마련하였다.우리 겨레- 나는 ‘민족’이라는 말보다는 ‘겨레’라는 말이 더 좋다-가 어떤 겨레인가? 배달겨레 아니던가. 한자로 ‘倍達’이라고 쓰기도 하지만 배달은 원래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로 어원이 ‘밝다’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배달겨레의 시조 단군(檀君)의 ‘단’은 박달나무를 뜻하는데 박달나무의 박달 또한 ‘밝다’에서 왔다고 한다.2010년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한 배달의 민족은 ‘물건을 가져다가 몫몫으로 나누어 돌림’이라는 뜻을 가진 ‘배달(配達)’과 한소리다른뜻말(동음이의어)인 배달겨레의 ‘배달’을 교묘히 엮어 애국심 마케팅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이 배달의 민족이 2019년 12월에 세계 배달 애플리케이션 1위인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 달러(약 4조7천5백억 원)에 인수합병이 되었다. 10년 만에 15만 배가 넘는 금액으로 회사를 넘김으로써 단군신화 이래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성공신화를 쓴 것이다. 경영권을 보장받았다고는 하지만 배달겨레의 배달앱은 독일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독일 기업이 된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은 4월 1일에 배달 수수료 체계를 개편함으로써 수수료 인상이라는 외식 업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더 나아가 공공배달앱 논란까지도 불러일으킨 배달의 민족은 지난 6일 공식 사과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이름 잘 지어 성공한 회사가 결국에는 그 이름값을 하기는커녕 ‘우아한’ 이름에 먹칠을 하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겠다.오늘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 수는 모두 41개라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하여 미래통합당,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한국경제당, 국민의당, 친박신당, 열린민주당(정당기호순) 등 그 이름들의 면면은 멋지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정당들이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이들 정당이 국민과 시민과 더불어 갈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산시킬지,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고 미래를 밝고 정의롭게 만들어 갈지,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금의 모습들을 보면 기대보다는 의구심이 더 크다.배민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정당들도 제발 이름값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2020-04-14

서양미술사를 통해 보는 원근법의 역사

가치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하고 그 관점은 미술의 형식을 결정한다. 종교적 신념을 작품에서 표현했던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 사람들은 보고 있는 세계를 옮기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를 그대로 작품 속에 옮길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원근법이다.서양미술사 최초로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은 1427년경 화가 마사초가 그린 ‘성 삼위일체’이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신학적 관계성이 묘사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벽면에 소예배당을 만들어 부호들에게 분양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 가족 예배당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지만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을 프레스코로 장식하면서 마사초는 실제 예배당의 공간감을 생생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원근법을 적용했다. 화가는 착시효과를 증가 시기키 위해 실제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원통 모양의 천장을 그려 넣었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실재감과 현장성을 부여하기 위해 당시 피렌체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며 흔히 볼 수 있었던 고전적인 기둥과 둥근 아치와 같은 건축적 요소를 사용하였다. ‘성 삼위일체’에 나타나는 건축물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에 지은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 그리고 건축가 알베르티가 만토바에 지은 산탄드레아 성당(1472) 파사드에서 찾아 볼 수 있다.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활동한 안드레아 만테냐는 독특한 시점으로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장면을 담아낸다. 감상자가 안치된 그리스도의 시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선택된 시점이다. 시각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극도로 단축시켜 묘사했다.원근법을 통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만테냐의 또 다른 대표작은 만토바에 위치한 팔라초 두칼레의 신혼의 방 천정에 그려져 있다. 벽면 전체가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가운데 천정에 그려진 벽화는 하늘로 열려 있는 건축 구조를 모방하고 있으며 그곳을 통해 그림 속 인물들이 방안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르네상스가 발명한 원근법은 수백 년 동안 서양미술사가 지켜온 절대적인 원칙과 같았다. 그런데 원근법을 통해 역으로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서양미술사를 움직여 온 가장 중요한 미학적 원리가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에 대한 모방과 재현이라는 사실이다. 그려진 대상이 얼마나 실재의 것에 닮아 있는가, 얼마나 완벽하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있는가하는 것이 미술의 중요한 원칙으로 작동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원칙과 같았던 원근법의 지배가 느슨해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보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 그 자체를 그리면서부터 미술은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원근법적 공간이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 보았다면 여러 시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심지어 시점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작품까지 나타나게 된다.기계적으로 세계를 완벽하게 모방해 내는 카메라의 발명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고, 미술은 관념화되고 개념화 되었다. 그렇다고 원근법의 역사가 그대로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본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 비록 고전적 원근법은 고리타분한 유물이 되어 버렸을 지라도 미술가들은 원근법과 대결하며 새롭게 보는 방식들과, 존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작품을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0-04-13

가릉빈가의 울음을 찾아서… 경산 환성사(環城寺)

차는 대규모 공사현장 근처에서 길을 잃고 몇 번을 헤매다 쉬엄쉬엄 산길로 접어든다. 끊임없이 개발을 서두르는 도시의 풍경들을 순식간에 따돌리고 고개를 넘어 팔공산 깊은 자락으로 숨어든다. 마치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듯.파스텔톤의 옷을 갑아 입은 분지형의 명당 터에 벚꽃이 부풀어 올라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사위는 조용하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부도밭을 서성이다 키 낮은 벚나무 아래에 서서 천년고찰을 올려다본다. 바람 한 점 없는 햇살 아래 벌들의 비행소리만 요란하다.환성사(環城寺)는 성처럼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흥덕왕 10년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창건했지만 고려 말에 화재가 발생하여 사찰 일부가 소실되었다. 1635년 중건 후 여러 차례 불사를 거듭하여 현재는 대웅전과 심검당을 비롯한 여러 당우들이 아픈 기억을 지우고 좌선하듯 평화롭다.일주문을 지나 수월관으로 향하는 흙길도 좋다. 옛것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는 또 하나의 시간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을 수 있다. 아른거리는 벚꽃잎 그림자를 앞세우고 바람이 잠든 길을 걷는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저만치 계단 위에 서 있는 수월관이나 보물 제 562호 대웅전조차 궁금하지 않다. 계획하지 않은 봄날, 환성사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용연(龍淵)이라는 작은 연못이 기어이 나를 불러 세운다. 연못을 메우면 절이 쇠한다는 설화를 간직한 못이다. 절이 번창하던 시절, 게으른 주지가 손님 많은 것을 귀찮게 여겨 연못을 메우는데 물속에서 금송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 슬피 울면서 날아가 버렸다. 연못을 완전히 메우자 절은 불에 타고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았다고 한다.발길이 뜸한 환성사의 봄은 슬픈 옛 기억은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찬란하다. 초록빛 물 위에는 벚꽃잎이 하얗게 떠돌고 못가에는 백목련 한 그루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빈 벤치가 그림처럼 처연하다. 나는 하나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벤치에 앉는다. 수월관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물가에 비쳤을 그 옛날의 수월관을 그려본다.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한 수월관 안마당에는 연화탑이라 불리는 특이한 석탑이 대웅전을 지킨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절의 배치가 오히려 안정적이다. 서원에 온 듯하여 신발을 벗고 수월관 난간에 기대어 앉는다.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벚꽃 만발한 이곳으로 이끌어 준 이는 누구일까. 일주문 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길은 모든 소리를 삼킨 채 벚꽃에 안겨 나른하게 졸고 있다.적막한 산사에 가면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법구경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오늘은 숨 멎을 듯한 고요가 고마운 날이다. 일주문 쪽에서 벚꽃잎 아래를 걸어오는 노부부가 보인다. 두 손을 꼭 잡은 둘은 잠시 서로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다가 또다시 손을 잡고 걷는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했지만 잔잔히 퍼지는 그윽함만은 감출 수가 없다.봄날의 환성사에 어울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한다.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들은 수월관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긴 담장을 끼고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멀리서 전각을 감상한다. 불자가 아닌 듯한 그들의 조신한 행동에서 부처님의 시선이 느껴진다.나는 뒤늦게 대웅전으로 향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다포양식의 팔작지붕이 막돌로 쌓은 석대 위에 균형감 있게 앉아 있다. 깔끔한 외양과 달리 법당 안은 고색찬연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색이 바랜 단청 사이, 천정에 달려 있는 용 모양의 종이 이색적이다. 파이프 오르간과 비슷한 용도로 종에 줄을 달아 당기면 위에서 신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고 오늘날에는 스님들조차 용도를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한다.통판에 투각을 한 수미단도 목공예 작품을 보듯 훌륭하다. 책에서만 보던 가릉빈가 한 마리가 푸드득 내 눈으로 날아든다. 머리는 사람이지만 새의 몸을 한 인두조신(人頭鳥身)의 기이한 형태, 소리 또한 묘하고 아름답다는 상상의 새다. 가릉빈가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귀를 기울여보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지구상에서 멸종된 도도새만 떠오른다.조낭희 수필가영원히 듣지 못할 울음소리, 무엇으로도 저울질 할 수 없는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가릉빈가는 경전 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리라. 바람 불어 벚꽃이 휘날리는 날, 좋은 사람과 함께 환성사를 찾고 싶다. 젊은 날엔 홀로 드나들 수 있는 찻집 하나 간직하길 원했다면 이제는 좋은 절에 가면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행복은 자주 불러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주변을 맴도는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가릉빈가가 날아와 울지 않을까. 가릉빈가 울음소리가 궁금하다. 어쩌면 아침마다 설중매 가지에 날아들어 배설물을 난사한 뒤 사라지는 참새 떼나 뒷산에서 구슬피 우는 멧비둘기 울음처럼 지극히 평범할지 모른다.우리는 귀한 것일수록 멀리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2020-04-13

춘곤증 주의보

춘곤증은 봄철로의 계절 변화에 따라 피로감, 졸음, 의욕없음 등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한다. 춘곤증의 원인은 신체의 생리적 불균형 상태를 들 수 있다. 봄이 되어 따뜻해지면 추위에 익숙해있던 인체의 신진대사 기능들이 봄의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약 2~3주 정도 필요한데, 이 기간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다. 활동량의 변화도 춘곤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수면 시간은 줄어들고, 저녁 늦게까지 야외 활동량이 많아져 피로를 느낄 수 있다.또한 봄에는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 B1, 비타민 C를 비롯한 무기질 등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한다. 이때 비타민이 결핍되면 춘곤증을 더 느끼게 된다. 스트레스의 증가도 춘곤증의 원인 중 하나다. 학생들에게 봄은 새 학기 학업·교우관계 스트레스가 과중되는 시기다. 직장인들은 인사·승진 발표로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그렇다고 춘곤증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증가한 활동량과 변화한 주변 환경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게 되면 춘곤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건강한 춘곤증 극복법은 운동·규칙적 수면·식단조절 등이다. 평소에 운동량이 적었던 사람은 천천히 걷는 운동부터 시작해 1주 간격으로 걷는 속도·시간을 늘리는 게 좋다. 또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기상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수면 부족을 느낀다면, 점심시간 휴게실에서 잠시 낮잠을 자는 것도 좋다. 아울러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해 비타민을 보충하면 나른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요즘처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야외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지내다보면 춘곤증과 더불어 우울증까지 겹칠 수 있으니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