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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K 보수 일당 독점 구도의 회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4·15 선거일 하루 전 대구 수성구 신매광장 유세장, 4선의 김부겸 후보가 ‘새도 양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대구를 경쟁하는 도시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절규했다. 북구 아울렛 광장 네거리에서는 2선의 홍의락 후보가 마지막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모레 아침 언론에 대구의 선거가 온통 핑크 색으로 표시되면 좋겠습니까.’ 국회 예결의원인 자신을 국회로 보내줘야 대구를 살릴 수 있다고 절절히 호소했다. 16일 총선 지도 TK 25석 선거구는 온통 핑크색으로 채색되었다. TK는 다시 보수 일당 독점구도로 회귀하였다.이번 총선의 TK 표심은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의‘비판’을 넘는 ‘분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곳의 표심이 이렇게 기운 심리적 기저는 어디에 있을까. 민주당의 180석이라는 압승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표심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응징으로 집약되었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의 정서에는 TK 정권 기득권에 대한 박탈이 보수정당 지지로 표출되었다. 아직도 이곳 밑바닥 민심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향수가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성론과 비판론도 있지만 이는 소수일 뿐이다. 이곳 보수 주류는 박근혜 탄핵을 용납지 못하고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고 유승민 등 보수개혁파까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다.이러한 심리적 기저가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적극 지지하였다. 전국적으로 거의 먹혀 들지 않는 문재인 정권 심판도 이곳에서는 설득력 있게 확산되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외면당했던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나 ‘좌파 독재 종식’이라는 구호까지 이곳 보수층은 적극 지지하였다. 이곳에서는 야당의‘사회주의 개헌론’에 동조하면서 선거 직전 터진 야당의원들의 엄청난 막말도 선거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유시민의 ‘180석 발언’은 TK 주류에게 위기감을 불러와 보수층의 결집을 촉진하였다.사실 대구 경북의 이러한 선거 표심은 곳곳에서 예감되었다. 이곳 장년층의 친목 모임에는 의례히 문재인 정권의 응징이라는 화두부터 등장하였다. TK의 친목 모임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과 비판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옹호나 지지는 좌파 용공세력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난이나 분노는 카톡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철늦은 ‘친북 좌익 정권’이라는 흑색선전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것이 결국 통합당 공천은 무조건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러한 TK의 분노한 표심은 4선의 김부겸마저 추락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갈량이 와도 이곳에서 민주당 간판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이곳에서는 통합당 공천만 받으면 누구라도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선거 결과에 TK의 보수 주류는 자존심을 살렸다고 위로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번 총선 결과는 정치의 지역주의 회귀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이곳의 보수 독점 일당 정당구도는 이 지역 발전을 기약할 수도 없다. 중앙 정치와 연결되는 작은 숨구멍마저 막아 버리고 자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2020-04-26

눈물의 산악인 (2)

라인홀트메스너는 산을 오르며 사색한 생각들을 정리해 책을 씁니다. 이미 20권 이상의 책을 쓴 문필가입니다.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의 일부입니다.“가파른 암벽을 오른다. 숨이 가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몸이 마비된 듯하다. 싸늘한 텐트 속인 데도 몸에서 땀이 난다. 머리 위로 보이는 엷은 텐트 천에 서리가 엉겨 있다. 혼잣소리를 질러 보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공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무서움 때문에 계속 소리를 지르고 싶다.”저는 한때 히말라야 등반하는 산악인들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굳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그곳에 올라가야 하는가? 좀 더 쉬운 방법은 없을까?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가면 간단할 것을 왜 그리 몸으로 기어올라가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답은 간단하게 나오더군요. 몸이 견디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헬기를 타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은 기상 조건만 허락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상에 내리는 순간 기압 차이 때문에 이내 허파에 물이 차올라 죽는다고 합니다. 자연은 손쉽게 얻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 법입니다. 메스너는 고백하지요.“인간이 살지 않는 지구 위의 별천지! 이 오지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 정상이란 산의 꼭대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종점,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만물이 생성하고 그 모습을 바꾸는 지점.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며 이곳은 자력처럼 나를 끌어당긴다.”“나는 지금 어떤 산을 오르려 하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늘 만만한 동네 뒷산에 만족하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계를 긋는 나에게, 마땅히 올라야 할 미지의 최고봉은 어디일지 캐물어 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6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김영체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단칸방에 살던 신혼부부가 신축 아파트로 입주할 때 큰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곧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편리함은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넓고 편리한 새 아파트를 원하기 마련이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주기적으로 채워 주고 더 좋고 크고 넓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해야 만족감을 느낀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하는 순간 느끼는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말지만 여행을 통한 좋은 경험을 만드는 행위는 행복감을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경험을 통한 행복의 추구도 결국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14세 때 성폭행을 당해 미혼모로 살았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밑바닥 삶을 헤매던 그녀가 그토록 유명한 공인으로 변신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한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감사일기’였다. 그녀는 바쁜 일과 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섯 개씩 감사할 거리를 찾아 일기를 써 온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감사일지를 쓰고 있다. 쓰기 싫은 날에는 단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쓴 감사일지는 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한다. 혼자만 보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감사일지를 써온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 특별한 감사 거리를 찾기 어려운 평범한 날이 내 삶에 더욱 소중하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날은 평소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 오늘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온종일 아파서 누워있는 날도 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내 몸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생명’인지를 일깨워 주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때로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가 나오지 않고 억지로 꾸며 가짜 감사를 쓰는 날도 있다. 비록 가짜 감사일지라도 매일 글로 쓰면 그 가짜 감사가 모여 진짜 감사로 변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은 독신으로 살기로 했으나 자신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애틋하게 바라본 신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진짜 여인으로 변신해 사랑의 결실을 보는 이야기다. 플라시보 효과도 있다. 진짜 약과 똑같이 보이는 가짜 약을 먹게 함으로써 환자가 실제 약을 먹었을 때와 같이 병이 치료되는 경우이다. 억지 감사일지라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진짜 감사보다는 그 효과가 덜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짜 감사에도 다소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 아닐까? 물질적 소유에서 찾으려 하는 행복은 분명 한계가 있다. 욕심이 통제하고 스스로 멈출 힘이 있지 않는 한 품질과 성능이 더 좋은 소유를 얻어야 행복할 테니 누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서민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아무리 갑부라 한들 이런 방식으로 물질만을 추구해 행복을 얻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질에 상관없이 행복을 성취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보다 더 강력한 방법은 단 한 줄이라도 감사일기를 써 보는 것이다. 분명 우리 삶에 행복을 선사해줄 것이다. 미국의 긍정심리센터에서 감사한 일을 찾아 쓰게 한 실험이 있었다. 피실험자에게 감사한 점을 찾아 기록하게 하고 일주일 후 측정해 보니 우울감은 줄어들고 행복감은 증가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 밖에도 감사일기가 행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많다는 연구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필자가 지난 1천658일간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행복을 당신이 가져갈 차례다.

2020-04-26

6037을 아시나요

백선기 칠곡군수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매점매석된 마스크는 온라인을 통해서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판매되거나 주문을 넣어도 취소를 알리는 문자가 날라왔다. 일시적인 품귀현상이 수요 폭증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이에 정부는 지난 2월 26일부터 생산과 유통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3월 6일부터는 수출금지조치와 함께 마스크 구입 및 유통 비중을 전체 생산량의 80%까지 확대하면서 대한민국의 마스크 수급이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마스크 5부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마스크 수급에 숨통이 트이면서 4월 27일부터는 공적 마스크 구매량을 1인당 3매로 확대하기로 했다.이제는 어려운 이웃 국가를 돌아볼 여유까지 생기면서 6.25 전쟁 참전 국가에 총 100만 장의 마스크를 공급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발표까지 나왔다. 국민의 여론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고통을 겪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22개국 참전국 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낸다는 정부 방침에 이의가 없는 듯 하다. 이러한 정부 발표에 앞서 이미 칠곡군은 지난 22일부터 해외 참전국의 하나인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위해 자발적인 마스크 기부운동에 나섰다.에티오피아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했다. 그것도 일반군이 아닌 황실 친위대 ‘강뉴 부대’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육사 1·2기 출신의 최고 엘리트로, 한국을 돕기 위해 두 달 동안이나 배를 타야만 했다. 지구 반대쪽 낯선 나라를 돕겠다며 망망대해를 건너온 이들은 늘 최일선에서 싸웠고, 253전 253승이라는 기적과 같은 승전보를 안겼다. 한국땅을 밟은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은 총 6천37명이었다. 이 가운데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단 한 명의 포로가 없었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는 셀라시아 황제의 명령을 끝까지 지켜낸 것이다.하지만 1974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을 도왔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은 핍박을 받기 시작했고,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꽁꽁 숨어 지내야만 했다. 이에 호국과 보훈을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칠곡군은 2015년부터 경제적 지원은 물론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 운동을 에티오피아에 전파하고 2016·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무훈을 대한민국에 알리는 일에도 적극 노력했다.또 낙동강세계평화문화 대축전에 에티오피아 홍보 부스를 마련해 전통 문화와 참전용사의 헌신을 전파하고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과 ‘문화·관광·보훈 분야 MOU’를 체결해 외교적 차원의 지원 방안도 모색해 왔다.6,25전쟁 70주년을 맞아 6천37명의 참전용사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기 위해 마스크 6천37장 기부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지난 22일 SNS를 통해 ‘6037을 아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을 위한 마스크 기부 동참을 호소했다. 또 스카프, 수건, 목도리 등으로 마스크를 대신한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의 안타까운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올렸다. 70년 전 6천37명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듯이 이제 우리도 정성을 모아 6천37장의 마스크를 보내기 위해서다. SNS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알리고 군청 로비와 8개 읍면 사무소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마스크 기부함’을 설치했다.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거나 가족을 위해서 아껴 두었던 마스크를 들고 수많은 주민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에티오피아로 보낼 마스크를 기부한다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칠곡군이 자랑하는 28개 인문학 마을의 주민들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위해 재봉틀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익명으로 마스크 50장을 총무과로 보내는가 하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체장애인도 330장의 마스크를 들고 군청으로 찾아왔다. 인근 도시인 대구는 물론 서울, 평택, 강화에서도 마스크 기부 동참 의사를 밝히는 분들도 나타났다. 지금 칠곡군민은 70년 전처럼 6천여 명이 함께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6037을 알고 있습니까?

2020-04-26

눈물의 산악인 (1)

평생 산에서 살다시피 한 베테랑이 새로운 등정을 위해 배낭을 꾸릴 때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왜냐고요? 무섭기 때문입니다. 공포감에 장비를 풀고, 다시 눈물 흘리며 장비를 꾸리는 일을 반복합니다.라인홀트메스너. 오스트리아 출신 산악인입니다. 그는 단지 산을 정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며 예술가입니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랑 삼아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산이 좋아서, 산을 오르면서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정상에 올랐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감격이 기뻐서 산을 오르지요.메스너는 최소한의 장비로 셰르파의 도움 없이, 무엇보다 스폰서도 없이 오직 순수한 등반 자체만을 목적으로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며 산에 오릅니다. 게다가 히말라야에서 8천 미터가 넘는 14개의 정상을 모두 등정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혼자 몸으로, 무산소 등정으로 14좌를 완등합니다. 산악인들이 정상을 정복하면 기념 촬영을 하죠. 스폰서 로고와 국기를 펄럭이며 사진 찍습니다. 이때 메스너는 오직 손수건 한 장을 흔들며 사진을 찍지요. “나의 국기는 손수건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산을 오르는 데 무슨 국가 간 경쟁이 필요하냐는 일침입니다.1970년, 메스너는 동생 퀸터와 함께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밟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눈사태로 동생을 잃고 자신도 굶주림과 악천후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이때 얻은 심한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 6개를 절단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동생을 희생시켰다.’라는 비난과 오해를 오랫동안 견뎌야 했습니다. 7년 후 그는 낭가파르바트로 떠나기로 하며 말합니다. “이 고독감을 그곳에 묻어 버리든지 아니면 고독감이 나를 쓰러뜨리든지 둘 중 하나!”/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3

정치공학

김병래시조시인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2018년 현재 75개국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53개국은 권위주의를, 39개국은 혼합된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노르웨이가 10점 만점에 9.87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대한민국은 8.00점으로 21위, 북한은 1.08점으로 꼴찌를 했다. 20세기 말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세계 각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대세이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독재나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이념과 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규모가 커져서 모든 사안에 대해 모든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물을 수는 없는 형편이라 각 지역의 대표를 뽑아서 민의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대의민주제이다. 지역의 대표 말고도 직능별 전문인을 확보하고 사표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비례대표제를 겸하는 나라가 많다. 후보자 개인의 능력이나 인품보다는 소속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당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얼마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정책이나 비전은 실종되고 ‘정치공학’만 난무했다는 느낌이 짙다. 정치공학(政治工學)이란 학문적 뉘앙스와는 달리 권력을 유지하고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론을 말하는 것으로 구소련에서 쓰던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대선을 전후하여 정치권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는데, 주로 ‘유권자들에겐 실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형식적인 문제를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는 행위’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말이다. 비례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과 그것에 대응한 자매정당 만들기 등이 바로 정치공학적 술수에 해당한다.정치공학은 일단 백성을 우민(愚民)으로 보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정책의 진정성이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조삼모사식 꼼수로 진상을 호도하고 위장하는 것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현대의 선거전에서는 정치공학적 역량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계기랄까, 몇 가지 그럴싸한 포장이 될 만한 것을 내세우고 거기다가 금품공세까지 더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넘어가기 마련이라는 걸 실감하는 선거였다. 정부의 무능과 실책, 각종 범법의 피고인 신분인 자들의 후안무치와 적반하장도 정치공학적 포장과 포퓰리즘의 당의(糖衣)에 쉽사리 덮인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방에는 온갖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정치공학의 주요 메뉴다.아무튼 이제 완전히 좌파들의 세상이 되었다. 도처에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자들이 살기를 번뜩이며 설치고 있다. 자신들은 무슨 짓을 하든지 그것이 곧 법이고 정의라는 무소불위와 오만방자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제도권에 밥줄을 대고 있는 사람들은 행여 그 서슬에 베이지 않을까 전전긍긍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국이다.

2020-04-23

김정은 유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김정은이 또 안 보인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지난 11일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것이 마지막으로 거의 2주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그가 안보인 적은 가끔씩 있었고 유고설이 있었지만 유유히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김정일 시절에도 있었던 폐쇄된 북한의 특유한 쇼맨십 정치의 일환이었다.그런데 이번은 좀 느낌이 다르다. 김정은이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 기념식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김정은 통치기간 8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가 태양절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이미지를 닮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온 김 위원장의 설명되지 않은 불참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또한 국내외에서 위중설이 제기되고 김여정 후계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북한 정부 당국과 매체들에서는 반박성명이나 공식 활동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보통 이 정도에서는 반박성명이나 공식 활동 사진이 떠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북한 매체는 최근 태양절 기념 축전을 보내온 시리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답전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답전을 보냈다는 단신일뿐 김정은의 모습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없다.미국의 일부 매체들이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보도를 흘리고 있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태구민 전 북한 런던공사나 국내 탈북단체들도 이번 상황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CNN은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이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미국이 김정은의 유고에 대비한 광범위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갖고 있다고 미국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김정은 사망 시 수백만 명의 기아가 발생하고 주민들이 대거 중국으로 탈북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에 개입해 상황을 관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비상계획을 수립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미 외교안보 당국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비롯해 피살된 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까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후계구도와 관련한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북한이 스탈린 사후 소련처럼 집단 지도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후계자가 나서든, 집단체제가 되든 비상사태가 초래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중요한 건 김정은 유고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비상계획은 항상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과의 평화를 강조하며 휴전선 무장해제 등 해빙무드에 힘을 기울여 왔지만 한미 양국의 전력강화에 의한 철저한 비상사태에 대한 준비와 김정은 유고에 대한 전략적인 준비가 되어 왔는지 의문이다.비정상적인 정권은 언제든 급변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많은 공산정권이 무너졌고 후세인, 카다피 등 독재정권도 결국 무너졌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산독재 정권의 급변사태에 대비하여 우리는 빈틈없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시간은 멀지 않아 보인다.

2020-04-23

홍준표의 선택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4·15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민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에 올랐던 게 바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보였다. 돌이켜보면 대구지역에서는 홍 전 대표의 총선 무소속 출마 자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홍 전 대표가 출마한 대구 수성을 지역구는 지난 대선 때 이인선 후보가 당원협의회장을 맡아 홍 전 대표에게 대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냈던 곳이다. 홍 전 대표가 이 지역에 출마할 결심을 굳힌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자신을 위해 뛰었던 후보가 공천을 받았는데, 당 대표와 대선후보까지 지낸 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니 홍 전 대표와 맞닥뜨린 이인선 후보 입장에선 배신감이 적지않았으리라. 그래서일까.양측의 선거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총선 하루 전날 선거전이 한창이었던 대구 두산오거리에서 양측 선거관계자들을 만났다. 홍 후보 측은 “홍 전 대표를 국회에 보내야 대구·경북도 차기 대통령 선거에 주자를 낼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통합당에서 무소속 출마한 후보의 복당을 절대 받아주지않을 텐데 대선후보로 뛸 수 있겠느냐”며 “전황이 어려운 수도권 등지에서 통합당 후보들을 지원함으로써 당에 기여한 뒤 대선에 출마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당시에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의 ‘탈당자 복당 영구 불허’선언이 나온 상황이었기에 이 후보 측에 무게가 실렸다. 어쨌든 홍 전 대표는 38.5%를 얻어 이인선 통합당 후보(35.7%)를 근소한 차이로 꺾었다.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 180석, 통합당 103석이란 충격적인 성적표가 나왔다. 그는 언론에서 통합당 참패 원인을 묻자 잘못된 공천과 선거메시지 부재 두 가지 때문이라고 신랄한 평가를 내놨다. 우선 당내 통합 공천이 안 되고, 당권 강화 공천을 했다는 것이다. 문 정권과 대적하는 선거인데 마치 당내 무소속하고 싸우는 선거로 변질을 시켰으니까 선거에서 이기기가 어려웠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선거메시지와 관련, “당 지도부가 갈팡질팡했고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된 메시지가 없어 도대체 문재인 정권 심판 선거인지 야당을 거꾸로 심판하는 선거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은 통합당 지도부에게 뼈아픈 질책이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홍준표 당선자의 직설적인 화법에 강골 이미지를 좋아한다. 또 날카로운 정치감각과 상대방의 정곡을 찌르는 혜안, 정세분석능력 등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 많이 따르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의 단점도 명확하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쏟아내는 특유의 막말논평은 자제돼야 한다. 보수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 당선자는 앞으로 포용과 협치의 리더십을 새롭게 가다듬어 선보여야한다. 복당과정에서 당내 반발세력을 설득하고, 새로 구성될 지도체제와 원활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이미지 변신을 꾀해야 한다. 그래야만 홍준표를 지지한 대구·경북민의 염원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2020-04-23

무관중 스포츠

스포츠 경기에서 무관중 경기는 관중석을 폐쇄해 관객 없이 치르는 경기를 말한다. 극히 비정상적이다. 보통은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 구단에 대한 징계로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2018년 10월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의 크로아티아 홈경기 2개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2015년 6월 열린 UEFA 유로 예선 홈경기에서 크로아티아 관객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한 것이 문제가 돼 무관중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2005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북한이 이란에게 패하자 관중이 이란 선수단 차량을 가로막는 소동을 벌였다. 북한은 다음번 일본과의 홈경기 개최권이 박탈당했다. 태국에서는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했다. 2019년 10월 평양서 개최된 2022년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전은 29년 만에 남북 대결이 성사됐으나 생중계는 물론 관중도 없이 치러졌다. 이는 징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무관중 경기였다.선수와 관중은 서비스 산업에서의 판매와 소비 이상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스포츠가 단순한 운동경기를 넘어 문화의 한 영역으로 또는 삶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중 없는 경기는 안하겠다는 어느 유명선수의 말처럼 선수와 관중은 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다.미국의 스포츠 매체 ‘이에스피앤’은 코로나19로 올해 전 세계 스포츠 행사의 47%가 취소됐으며 피해액이 67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우리나라 프로야구가 5월 5일 무관중 개막을 한다. 개막 초반 안전한 리그 운영을 통해 단계적으로 관중 입장을 허용할 거라 한다. 프로축구 K리그도 5월 중 개막이 예상되나 무관중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코로나가 스포츠의 판세를 바꾸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3

코로나 선거 독후감

이렇게 큰 사건도 없다면 없다. 정당별 지역구 의석수, ‘더민’이 163, ‘미통’이 84석이다. 비례대표는 더불어시민당이 17, 열린민주당이 3, 합계 20에, 미래한국당은 19란다.지도를 보면 면적으로 보면 핫핑크도 강원도 인근까지 제법 넓어 보이지만 파랑은 인구밀집 지역인 서울과 경기를 전부 도배하고 충청, 호남, 제주까지 ‘일통’했다.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옛날에 민자당이라는 게 생겨서 DJ 호남만 빼고 나머지 전부를 차지했던 일. 나는 충청도 사람이지만 정말 안 좋아 보였다. 이제 근 20년만에 영남만 빼고 나머지 전부를 ‘더민’이 차지한 형세,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 민심의 크기든 정치적 힘의 크기든 너무 큰 것은 두렵게 느껴지게 마련.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면? 그 하나, TBS 뉴스공장 김어준이 내 생각과 꼭 맞는 부분 있었다. 작년에 일본이 수출 규제 나섰을 때,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 했던 것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일본을 ‘넘어선’ 일에 연결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금의 정부, 그리고 한국의 위상을 재평가 하게 했고, 이것이 표로 연결되었다 본다.또 하나, 역시 코로나19 관련, 경기도 지사를 비롯 현정부가 재난 기본소득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는 판에, 포퓰리즘이다, 근시안이다 하며 반대하고 나선 ‘미통’의 시대착오. 지금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근본적으로 보자, 멀리 보자는 말에 누가 귀를 기울이나? 옛날에 무상급식 파동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물러날 때가 오버랩 되는 상황.이번 선거는 무엇을 의미하나? 너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뭣보다 DJ 구민주당 계보는 ‘정식’ 해체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더민’의 이낙연을 생각하면 너무 노회한 박지원 대신에 ‘열린우리당’과 합친 그를 호남민이 선택한 격이다.또 하나, 중도정치세력이 갈 곳 잃을 지경이라는 것. ‘이성 상실’ 지경의 위성 비례 정당 싸움에 ‘국민의 당’이 겨우 비례대표 3석에 낙착되고 말았다. 지난번 총선의 ‘국민의 당’을 생각하면 호남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말 실감 난다.이제 이 나라 어디로 가나? 북한에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선거 결과를 교묘하게 어떤 형태로든 벌충해 주는 듯한 형국. 코로나에 대응은 이 나라가 제일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닥쳐올 경제위기에 북한의 ‘급변’ 사태는 오리무중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새 이메일 주소를 하나 만들었다. ‘annocovid19’를 넣어서. 원래 서기 몇 년 할 때, 그게 AD, 즉 ‘anno domini’다. 코로나19 ‘이후’는 전과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이 가장 우선이고, 이 기준에 맞추어 모든 것을 새롭게 조정해 나갈 일. 이것이 정치 사회의 기본 되어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4-23

D-day!·V-day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기갑부대를 지휘해 여러 차례 큰 승리를 거둬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얻은 에르빈 롬멜(1891∼1944) 장군이 있었습니다.롬멜은 2차 세계대전 역사상 매우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독일군 장교였지만 연합국 장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나토 총사령관을 지낸 웨슬리 클라크 대장은 훗날 “외국 장군 중에서 롬멜 원수만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장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사관학교를 거쳐 1912년 소위로 임관한 롬멜은 1차대전 전공으로 프로이센 군 최고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erite)’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대위로 진급한 뒤 34년 고슬라 주둔 당시 에른스트 룀 쿠데타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를 만나 충성을 맹세한 뒤 승승장구 해 40년 중장으로, 42년 6월 독일군 최연소 원수 계급장을 달았습니다.롬멜 장군은 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프랑스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지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좋지 않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 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다음 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하지 않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불편함과 수고로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시작은 너무나 참혹한 현실 앞에 모든 국민들이 다 환자 아닌 환자 같은 심정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머물러야할 작은 공간에서 각자 맡은 희생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그런데 그 결과 우리에게도 ‘디데이(D-day)’가 왔고 이제 ‘브이데이(V-day)’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함께 힘을 보태어 그동안 희생의 값으로 경제 회생의 ‘브이데이(V-day)’를 이루어갑시다.

2020-04-22

봄, 홀로나기

이순영 수필가홀로 봄을 즐기는 나날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연일 ‘코로나19’라는 얄궂은 바이러스 확산으로 일터에도 나가지 못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도 손소독제가 놓여졌고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은 항균비닐로 덮였다. 수일 전에는 국가에서 정해주는 날 약국 앞에 줄 서서 기다리다가 마스크도 샀다.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 같다. 이럴 때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 그 가운데 독서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적당한 게으름을 부리며 찻잔을 들고 서재에 든다. 그동안 손길을 기다리던 책을 펼치면 금세 책속으로 빠져든다. 책이 나를 기다렸고, 내가 책을 그리워했으니 그 만남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책은 나에게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되살려주고, 또한 새로움을 선물한다.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통해 지혜의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문자들과 밀어를 나누다보면 하루가 기차처럼 지나간다.봄이다. 언 땅에서 아기손톱 만 한 새순들이 고개를 내밀고, 나목도 푸른 물 머금어 촉촉할 것이다. 바위 틈사이로 흐르는 개울물도 봄소식 전하느라 종종걸음일 게다. 외출이다. 차를 운전해서 집을 나서자 지척에 매화가 벌써 지고 있다. 개나리, 조팝꽃, 유채꽃, 복사꽃, 벚꽃들이 봄이 왔다고 함성이다. 산천은 넓은 도화지에 연둣빛으로 밑그림을 색칠하느라 한창이다. 눈부신 계절이다. 꽃길을 따라 바다로 향한다. 행복은 이런 것이리라. 홀로 다닐 수 있는 자유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 모두 건강하고 편히 쉴 내 집이 있으니 더 바라면 욕심이겠지. 창문을 열자 바다향이 상쾌하다. 그런데 놀랍다. 이런 광경 처음 본다.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해안 길에 자동차 행렬도 길다. 코로나로 인한 낯선 풍광이다. 불안한 미래와 답답한 마음을 떨치고 바다 같은 일상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리라.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서방과 유럽에서도 코로나감염으로 사망자가 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환자를 보살피는 의료진이 감염되어 사망하기도 하니, 공포의 도가니 같다. 뿐만 아니라 국제 항공기들이 멈추었으며, 도서관과 박물관은 폐쇄되었다. 학교와 광장, 길거리에는 인적이 뜸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전쟁’이 연상된다. 해안 길을 돌아 들녘이 이어지는 길로 달린다.찬란한 봄날,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조문은 받지 않는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하던 동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 준비하랴, 식탁 정리하랴, 옷매무새 가다듬으랴….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일상. 일터에서 만나던 다양한 사람들, 퇴근길에 벗들과 차 마시며 길을 걸으며 웃음꽃 피우곤 했던 평범한 시간들에 감사한다.들녘에 부지런한 농부들은 씨앗 뿌릴 채비가 한창이다. 배나무를 매만지며 봄맞이 준비를 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배나무도 베어졌고 아버지도 떠나셨지만 그 흔적은 배 밭에 서성인다. 양지 바른 곳,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버지께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 말 없이 잔디사이에 돋아있는 잡초를 뽑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나의 언행들을 주워 담듯이. 한참을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아버지의 마당이 듬성듬성하다. 원형탈모 앓는 머리 같아 마음이 아리다. 호미를 내려놓고, 크게 숨을 마신다. 산자락 공기가 참 맑다. 무덤가 마른 덤불 속에 돋아나는 쑥이 눈에 띄었다.여린 쑥을 한 움큼 뜯었다. 보드랍다. 향긋하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봄이다. 봄을 한 아름 안고 와 집에 펼쳤다. 봄 동산이 되었다. 쑥국을 끓였다. 숨어있던 연둣빛이 환하다. 빛깔로 향기로 집안이 봄의 궁전이다. 봄을 먹는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허리를 굽힌다. 내 안에 있던 어두움은 사라지고 화사한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 ‘침묵의 봄’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침묵의 늪에서도 새싹이 돋아나고 꽃도 피고 열매 맺힌다. 나는 오늘도 나의 놀이터에서 홀로 희망을 찾는다. 꽃만큼 어여쁜 새순들이 지천이다.

2020-04-22

신발을 돌려놓으며

몸살이 났습니다. 팔다리가 쑤시고 기침도 납니다. 금세 나을 거라며 지인이 한의원을 소개해줍니다. 사흘 치의 약만 쓰면 된다는 선생님의 호언과는 달리 기침이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치료제를 쓰는 건 더 이상 의미 없으니 보약으로 바꿔 보잡니다. 다 낫지도 않았는데 원기 회복제로 몸을 다스린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조심스레 여쭙니다. 염증을 가라앉힌 후에 약재를 쓰면 좋지 않겠느냐고. 순간, 의자에 앉은 선생님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여기서 진료를 끝내겠다는 신호입니다. 떼밀리듯 집을 향하는데 뭔가 서럽습니다.여기까진 제 입장이고 의사선생님에게 감정이입해 봅니다. 남들 다 쉬는 토요일 오후, 피로감을 몰아내며 진료실을 지킵니다. 마지막 환자까지 나름 최선을 다해 상담하고 처방해줬건만 당사자가 그것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살짝 심기가 불편해지며 휴식이 그립습니다. 자제심을 놓치고 환자에게 속내를 비치고 맙니다. 신발을 돌려놓듯 이렇게 바꿔 생각하니 별일도 아닙니다.현관문을 들어섭니다. 정말이지 신발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습니다. 앞코가 까진 보라색 등산화와 뒤축 닳은 에나멜 단화를 지나, 느슨하게 묶은 밑창 말랑한 운동화와 굽 높은 철 지난 갈색 부츠까지 식구들 개성을 말해주는 신발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저린 발바닥을 달래가며 하루를 저벅댄 고단함이 묻어있고, 흔전하게 배었다 서서히 말라가는 땀 같은 연민이 서린 저 신발들. 살아낸 날들의 구차한 추억과 살아갈 날의 막연한 희망이 교차로처럼 엎어지고 포개져 있습니다. 아픈 것 잠시 내려놓고 한 켤레씩 간수합니다. 신발코를 현관문 쪽으로 돌려놓으면 신발정리는 끝이 나겠지요. 한 호흡의 짧은 시간이지만 역지사지하는 순간입니다.신발을 돌려놓는 마음은 한 청년에게서 배웠습니다. 잠시 잠깐 아들의 과외 선생님이었던, 갓 스물을 넘긴 풋풋하고 선한 대학생 말입니다. 방문 첫날,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선생님은 자신의 벗은 신발을 현관문 쪽으로 가지런히 돌려놓는 거예요. 손님을 배려해 집주인이 신발코를 돌려놓는 일은 봤어도 방문객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도 싱긋 웃기만 할 뿐 매번 그렇게 하더라고요. 제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던, 젊디젊은 청년의 역지사지 매무새가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더군요.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이 선생님으로서도 최고였음은 첨언할 필요조차 없지요. 자기관리를 하는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습관화 된 청년 같았습니다. 신발을 단정히 돌려놓던 첫 모습에서 그런 모습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요. 자신을 갈고닦아 예의와 염치를 실행하는 마음. 섬세한 결을 지닌 청년의 역지사지를 보면서 한동안 자기반성 모드가 되곤 했지요.역지사지가 덜 된 제 실수담이 떠오릅니다. 역시 신발에 관한 것이군요. 시각장애인 봉사 모임에 동참한 적이 있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짝을 이뤄 야외 나들이를 갔지요. 제 짝지는 초로의 신사분이셨어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였지요. 초보 봉사자인데다 덜렁이인 저는 짝지의 신발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짝꿍의 신발 정도는 가뿐히 챙기는 다른 봉사자들에 비해 저는 우왕좌왕 헤맸지요. 난감해하는 저를 보고 베테랑 봉사자가 도와줘 신발을 찾긴 했어요.김살로메소설가하지만 부끄러움은 온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짝지가 신발을 벗을 때 도와드리긴 했지만, 그 분의 신발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깨치지 못했어요.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봉사하는 행위에만 제 마음의 방점을 찍었던 거예요. 행위만 앞섰지 그들 입장에 대해 숙지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신발을 돌려놓는 마음의 수련이 있었더라면 짝지의 신발을 기억하는 것쯤이야 유쾌한 과제가 되었을 텐데 말예요.일본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도 구두를 돌려놓는 장면이 두어 번 등장합니다. 현관을 들어설 때면 맏딸 요코는 벗은 자신의 구두를 바깥 방향으로 가지런히 되돌려 놓습니다. 신발을 돌려놓는 작은 일이야말로 세상사 소중한 그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기 훈련이 필요하고, 잘 다져진 그것은 역지사지로 연결되어 좋은 기를 발산한다고 의미 부여하곤 했지요.덧놓이고 흐트러진 신발들을 다시 갈무리합니다. 피로처럼 달라붙은 뒤축의 젖은 흙을 털어내고, 통증처럼 내려앉은 신발 웅덩이 속 먼지도 닦아냅니다. 신발코가 현관 쪽으로 향하도록 한 켤레씩 돌려놓습니다. 신발들 금세 새초롬하니 단정해집니다. 신발을 돌려놓는 작은 행위는 자기수양을 구하는 안으로의 수렴이자 타자이해를 실천하는 외적 발산입니다.분별하려는 마음이 돋을 때마다 신발 돌려놓기를 생각합니다. 포개지고 헝클어진 마음의 코를 바깥쪽으로 향합니다. 결코 표 끊은 적 없지만 역지사지라는 삶의 환승역에 닿은 느낌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덕분일까요. 약으로도 낫지 않던 통증이 점점 잦아드는 기분입니다.

2020-04-22

열쇠는 타협이다

장규열한동대 교수국민은 선택하였다. 나라가 어려운 한 가운데 내려진 결론은 엄중하다. 정부는 심기일전하여 각오를 다지고 목표를 분명히 하여 달려가야 하며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 국정이 정상을 회복하도록 주시하며 지원해야 한다. 국회의 지나온 모습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식물국회, 동물국회, 짐승국회…. 여러 가닥 부끄러운 모습을 국민에게 들켜버린 국회를 향해 국민의 요청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일하는 국회’가 되라.이제는 의정단상이 국민에게 훤히 들여다보인다. 속일 수가 없고 숨길 수도 없다. 밀실에서 비밀스럽게는 불가능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설 자리가 없고 대안없는 발목잡기도 국민이 허락하지 않는다. 국민은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장착하였다. 일하는 국회는 어떻게 만드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채워야 국회가 국회다워질까. 생각만 하고 기대만 걸다가 이번에도 우리는 실망에 이르고 마는 것은 아닐까. 대표를 선출해 국회로 보낸 국민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을 요청해야 할까.미 하원의원을 역임했던 국제정치학자 리 해밀턴(Lee Hamilton)은 ‘민주정치의 열쇠는 타협’이라고 하였다.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과 든든한 입장을 우선 잘 만들어야 하지만 상대가 있는 정치의 장에서 ‘타협과 협상’은 필수가 아닐까. 타협을 잊은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타협을 싫어하는 정치인은 위험하다. 국회는 다투는 곳이지만, 몸으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생각으로 다투어야 하고 논리로 겨루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주장이 부딪히는 곳에 욕심과 고집이 들어서면 이내 협상은 깨지고 토론이 무너진다. 양보가 가능한 부분을 찾아야 하고 타협의 문을 열어야 한다. 타협을 배신이나 배반 또는 변절로 치부하는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 뜻을 굽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탄생이어야 한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끝내 국민을 위한 방향을 함께 찾아내야 한다. 독일의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는 ‘모든 사람이 함께 할 때에야 좋은 타협이 가능하다’고 하였다.민주주의는 타협으로만 가능하다. 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양보하기 어려운 선이 있었다 해도 상대 주장의 진의를 가늠해야 한다. 조절과 절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내 생각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진정성도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이 폭넓게 반영되려면 타협은 필수가 아닐까. 일하는 국회가 타협에 강하길 기대한다. 타협을 주저하지 않으며 협상에 강한 국회가 되어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책의 다툼에 정답이 하나뿐일 리가 있을까. 팽팽한 토론과 건강한 타협이 가득한 국회를 만나고 싶다. 주먹다짐과 막말비난이 타협과 협의로 바뀌는 국회를 기대한다. 그런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은 또 얼마나 안심할 것인가. 타협에 약한 사람을 국회로 보낸 국민은 또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일하는 국회는 타협에 강해야 한다.

2020-04-22

펫코노미(petconomy)

펫코노미는 반려동물과 관련한 시장 또는 산업을 일컫는 신조어로 반려동물을 뜻하는 영단어 펫(Pet)과 경제(Economy)를 결합한 말로, 반려동물 관련 시장을 가리킨다.펫코노미의 성장배경은 저출산의 심화와 1~2인 가구의 급증과 같은 사회적 변화에 따른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자녀에게 투자하듯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않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펫팸족(Pet+Family)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약 1천만명이 반려동물을 키워 관련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펫코노미 시장규모는 2012년 9천억원에서 2015년에는 두 배 증가한 1조8천억원을 기록했으며, 2020년에는 6조원으로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규모 6조원은 2016년 아웃도어시장, 주얼리 시장, 의료기기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가장 시장규모가 큰 펫푸드 분야에서는 CJ제일제당이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오프레시’를, 서울우유 협동조합은 유당분해를 돕는 ‘아이팻밀크’를 내놨고, 풀무원은 반려동물 전용 다이어트 식품까지 선보였다. 유통업계에는 정용진 부회장이 내놓은 애완토털 솔루션 전문점 ‘몰리스펫샵’이 최대 2천500개의 반려동물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롯데는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스토어 ‘집사(ZIPSA)’를, CJ몰은 반려동물 전용관 ‘올펫클럽’을 선보였다. 이밖에 펫 택시, 유치원, 장례서비스, IT 결합상품 등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또 반려동물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펫보험이 각광받고 있으며, 주인이 사후에 홀로 남겨질 반려동물을 위한 신탁상품까지 나왔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22

수업, 양심, 사기(詐欺)!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너는 온다. (….)”과연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 또 무엇일까? 사람마다 마음속에 이런 ‘너’ 한 명, 또는 하나는 꼭 있다. 인용 글은 이성부 시인의 ‘봄’의 일부이다. 시인의 시상처럼 산을 옮겨놓아도 깨지질 않을 정도로 얼음이 꽝꽝 언 강에도 봄은 얼음을 달래어 버드나무를 타고 온다.곡우(穀雨)가 지난 자연과 들판에는 봄이 한창이다. 봄이 지천인 산과 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분주함이다. 철없는 인간 세계와는 달리 자연은 절기(節氣)에 맞는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의 동의어는 균형감이다. 자연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무한한 자연과는 달리 인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개발주의 신화에 도취 된 인간들은 그것을 모른다. 1㎜도 안 되는 바이러스에 숨 쉴 권리조차 빼앗겨 버린 게 인간 현실이지만, 망각이라는 만병통치약을 가진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하겠다며 또 야단법석이다. 인간의 망각은 어제의 기억을 오늘도 아닌 어제에 지워 버리는 힘을 가졌다. 바이러스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유통기한을 앞당기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인간 몸속에서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완전 멸망(종)의 제일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기 멸망(종)이다. 외부에 의한 붕괴는 재건(생)의 여지를 남기지만, 내부에 의한 붕괴는 그런 여지조차 없다. 그러기에 없어져도 흔적도 없이 확실히 사라진다. 자기 멸망(종)의 촉매제는 모든 감각을 자기한테만 집중시키는 자아도취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공감 능력 상실이다.“자기도취적 리더”라는 말을 보고 필자는 선거가 떠올랐다. 필자는 선거 결과에 만취된 이들이 더더욱 자기도취에 빠져 영원히 헤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최대한 빨리 사라져 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그래야 교육을 그들의 편협한 이념의 눈으로 재단하지 않으니까!“EBS 수업만 듣고, 학교 선생한테 배우지도 않은 과제를 하고, 저게 무슨 학교 수업이고. 저렇게 할 거면 나도 선생질하겠다. 저거는 사기다, 수업 사기.”퇴근 무렵 잠시 들른 휴게소 식당에서 “2차 온라인 개학 출석률 99%, 접속 문제 있었지만, 즉각 조치”라는 어느 방송사의 뉴스를 보면서 작업복 차림의 어느 손님이 한 말이다. 수업 사기(詐欺)라는 말이 너무 크게 들렸다. 주문한 음식을 손도 못 대고 필자는 사기라는 말이 양심에 걸려 그 자리를 빨리 떴다. 운전하는 내내 “학교 수업 사기”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수업은 학교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학생은 없고, 교사 편의에 따라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들!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교사들의 말은 변명조차 안 된다. 지금 하는 온라인 수업이 출결을 위한 “수업 사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업 본질에 가까운 수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학생들이 기다리는 학교의 봄이 온라인 수업을 타고 온다.

2020-04-22

지구의 날과 코로나19

김규종 경북대 교수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심각하게 오염된 지구환경을 돌이켜봄으로써 인간과 지구의 공동 운명체를 각성하도록 인도하는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해상원유 유출사고를 계기로 촉발된 지구의 날이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원년은 1990년이라 한다. 그해 150여 나라가 참가하여 지구를 보호해야 인류도 생존해나갈 수 있음을 확인한다.코로나19로 인해 인간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자 지구대기가 맑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4월 10일 CNN에 따르면, 극심한 미세먼지로 악명높은 인도 북부 펀자브주 주민들에게 160㎞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인도 정부는 3월 22일 이동제한령을 발령했다. 차량운행이 대거 줄고,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대기 오염도가 최대 44% 감소함으로써 설산(雪山)이 맨눈으로 보인 것이다.이런 현상이 인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각종 영상은 세계 곳곳의 하늘이 맑아졌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올해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공습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오늘날 일부 식자들은 21세기를 ‘인간세’라 규정한다. 인간으로 인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것을 코로나19가 잠시 멈춰 세운 것이다.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갈파했다. 사단논법은 당연히 사람은 자연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자연은 스스로 그리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지구나 자연환경과 똑같은 의미는 아니겠으나, 인위적인 행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폐해를 강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욕망의 무한대를 긍정하고 성장해온 현대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제어되지 않은 욕망의 정점이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으로 극대화되고, 그것은 쓰레기로 전락할 숱한 물품으로 이어진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는 거대한 쓰레기더미에 포위돼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며 쌓아둔 물건이 얼마나 많이 나뒹굴고 있는가.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주창한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사람도 과식하면 속이 더부룩하고 고통받기 마련이다. 대략 60조 톤으로 측정되는 지구도 인간으로 인해 끝없이 고통받고 있다. 자연계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멸종위기종은 얼마나 많은가?! 누가 그것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는가. 현대판 도도새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생명의 숨통을 옭아매고 있는 인간의 거칠고 우악스러운 탐욕이 이제는 멈추었으면 한다.얼마 전 마당에서 일하다가 슬며시 담장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황구렁이를 보면서 한편으로 놀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하, 아직은 살만한 모양이구나, 생각한다.지구의 날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상상한다. 코로나19가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듯하여 입가에 역설(逆說)의 미소가 감돈다.

2020-04-22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잰더(2)

“20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이란 연주자들에게 내 아이디어와 음악적 해석을 따라오게 강요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에요. 지휘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소리는 연주자들이 만드는 거죠. 그러면 내 뜻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힘과 열정, 사랑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잰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의 실현은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이동할 때 가능합니다.” 측정의 세계란 사람들을 경쟁시키고 등급을 매겨 이긴 자들에게 자원을 제공한다는 논리이죠.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이 틀을 깨부수어야 합니다. 가능성의 세계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족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경쟁이 필요 없고 모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원하는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요.“리더는 구성원들을 측정의 세계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야 합니다.”벤저민 잰더는 대학생들에게 생애 최초로 가능성의 세계를 체험하게 합니다.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줍니다. “모두에게 A 학점을 줄 것입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 나눠 드린 종이에 저에게 편지 한 통을 쓰는 겁니다.”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학기 말에 여러분이 자신의 노력으로 A 학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내가 A를 받은 이유를 저에게 편지로 써 보세요.”경쟁할 필요가 없게 되자 학생들은 서로 협력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대담하게 사고를 확장합니다. 등수를 매기는 방식으로부터 해방을 경험한 학생들은 잠재력을 극대화하지요. 측정의 세계에 길든 우리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리더와 조직들이 하나씩 늘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2

때(時)와 때의 공통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가 어렵다고 한다.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도 잘 늘지 않는 영어도 우리에겐 만만치 않은 언어다.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의 어려움을 생각해본다.‘배’라는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신체부위, 선박, 과일과 같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외국인이 익히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라는 단어도 같은 경우다.한자로 시(時)라는 의미와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찌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한 때 소리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단어들이 썰렁한 아재개그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말(言)과 말(馬)이 말장난 개그의 일반적 소재가 된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한국인이라면 음의 고저장단이나 대화상황을 감안하여 비록 같은 음의 단어라 해도 그 의미에 혼란이 없을 것이다.한국어를 익히는 외국인에게는 대략 난감이겠다.그런데 전혀 다른 의미의 ‘때’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바닷가 작은 포구에는 썰물 때 갯벌에 삐딱이 누워있는 고기잡이배가 있다. 밀물이 밀려와야 뜰 수 있다.‘때(時)를 기다려라’는 말을 실감케 된다.썰물인데 먼 바다로 나가려면 그 배를 갯벌위에서 밀고 나가야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고 꼭 나가야한다면 대단히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공중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 때 탕에서 몸을 불리는 절차가 있다.급한 마음에 바로 때를 밀어달라고 하면 때가 잘 밀리지도 않아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 된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목욕탕의 흐릿한 조명아래 잡티나 검버섯과 같은 것을 때인 줄 알고 밀다가 피부가 따가운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이 역시 때가 아닌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본다면 지나친 갖다붙이기일까?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경우에 이런 저런 폐단이 생긴다.직장에서 승진도 적당한 때에 해야 좋다고 한다.성과와 능력에 과분하게 지나친 승진욕심으로 무리해서 때 아닌 승진을 하면 뒤탈에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 역시 때를 기다리는 삶의 지혜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선거가 끝났다.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는 게임이었다.승자의 축배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 들리며 석패의 분루를 삼키는 후보자와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게임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의 눈길과 남 탓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할 것이다.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있을 수 있는 감정표출이다.하지만 한발치만 물러서서 생각하면 오늘의 패배가 결코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는 자기위로가 가능하다.아직 ‘때(時)가 아니다’, ‘때가 덜 불어서….’라는 말로 재기를 꿈꾸면 된다고 본다.패인을 분석하고 보충하여 나를 위해 기다리는 때(時)를 만들면 될 것이다.사회 초년병 시절, 승진시험에 물을 먹고 풀죽어 고개 떨군 채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한 상사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그리곤 잠시 뒤 “박 반장! 그런데 그거 누가 한 말인지 아는가? 목욕관리사 말이라네.”

2020-04-21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잰더(1)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뒤흔들었고 종래의 시간, 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습니다. 철학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묻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아인슈타인은 생각에 잠기더니 컵에 손가락을 살짝 담갔다가 꺼냅니다. 물 한 방울이 책상 위에 또르르 굴러 떨어집니다. “내 학문은 바로 이 물 한 방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제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셨나요?” 아인슈타인은 칠판으로 걸어가더니 큰 글씨로 공식 하나를 씁니다. A = X + Y + Z“A는 학문적 성과다. X는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것. Y는 생활을 즐겁게 하는 것. Z는 한가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농담처럼 들리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말과 정반대로 행동해야 성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첫째,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화려한 언변이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비록 즐겁지 않더라도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셋째, 한가한 시간이라고요? 24시간도 모자라 잠을 포기하면서 일해야 성공하는 것 아닌가요? 아인슈타인은 누구나 상식으로 여기는 것을 뒤집어버립니다.지휘자 벤저민 잰더(Benjamin Zander)는 지금도 현역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리더십 강연도 활발하게 합니다. TED영상은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조직이 오케스트라입니다. 단원들이 지휘자에게 말을 걸거나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벤저민 젠더는 20년 넘는 지휘자 생활을 하면서 문득 아인슈타인다운 발상을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1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할 시기는 아닐까?

조현명 시인코로나19가 지나가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두 가지 의미다. 먼저 아직 그 때로 돌아가긴 이르다는 경고, 또 하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내다보는 시각이다. 나는 아직도 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정부는 고강도 거리두기에서 ‘고강도’라는 말을 빼면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거리두기를 실천하자고 당부하고 있다.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언제까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학기 중 홍수가 나서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학생과 교사는 학교장의 결정에 기린목이 된다. 한명의 교사가 앞서서 학생들에게 “너희들 곧 집으로 갈 것이다.” 귀띔만 해도 술렁이며 난리가 난다. 학교장은 고민에 빠진다. 현재 상황이 학생들을 하교시켜야 할 정도인가? 고민이다. 하교를 늦추었다가 큰 화를 부른 적도 있다. 반대로 하교를 미리 단행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사립학교는 윗사람의 눈치까지 봐야하니 매우 결정이 어렵다.매뉴얼이 잘 갖추어진 대한민국에서도 여기까지이다. 전염병의 방역에는 최대한 조심해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현재 확진자를 줄이며 안심단계에 접어들게 했다. 그런데 당국은 생활방역으로의 전환 시기 결정을 ‘확진자 50인 이하,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 5%이내’라는 당초의 원칙을 슬그머니 미루었다. 그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후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그 난세의 영웅은 평상시에는 지질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이 말은 시기에 따라 성공적인 대응의 마인드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에는 ‘나는 이런 사태를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마인드의 소심한 관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을 내리는 시기에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용기 있는 마인드가 필요하다.렘데시비르나 혈장치료제 혹은 그것보다 30배의 효과가 있다는 우리나라 제약 회사의 발표가 있기도 하다. 게다가 6시간 이내로 진단하는 진단키트를 가지고 있고 하루 900명이 넘는 확진자를 처리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은 아직 소심한 마인드를 보인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다. 난세의 영웅들이다.지금까지 잘 해온 것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은 한참 후에나 가능하다. 이제 새로운 마인드로 접근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올해 안으로 개학을 못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서 과거 홍수가 났을 때 하교를 늦춘 교장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단계적으로 경제활동을 실시하는 유럽과 미국의 선택이 나중에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자. 치료약은 결국 사망자를 줄이고 집단면역을 만들어내는 효과로 건너가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대응이 항상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제 마인드를 바꿔야할 시기가 된 건 아닐까?

2020-04-21

경제 쓰나미

구조조정은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효율적 구조혁신 과정이다. 말인즉 혁신적 조직개편이라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력감축이나 임금삭감 등이 주요 골자다.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사회는 구조조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업의 구조조정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듯한 분위기다. 현대자동차가 임원의 급여 20%를 회사에 반납키로 결정했다. 현대차 그룹 51개 계열사 1천200여 명은 이달부터 당장 급여를 줄여서 받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데 대한 선제적 대응조치라 했다.IMF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그 당시 우리경제는 대마불사라는 대기업이 여지없이 쓰러지고 금융기업의 부도가 발생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구에 본점을 둔 대동은행의 도산도 이때 빚어진 참사다.총선의 열기는 사라지고 어느덧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쓰나미급 경제위기가 지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감염증 사태로 발이 묶인 항공사와 관련업계는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유급휴직을 시작했다. 대기업마다 희망퇴직, 부동산 자산의 매각, 신규투자 동결 등의 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IMF 때 겪었던 악몽 같은 그림자들이 벌써 우리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정부가 100만 명 공무원의 내년도 임금 동결을 검토하는가하면 대통령과 장차관급 고위공직자의 급여도 4개월치 반납을 결정했다. 이른바 고통분담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공공분야의 구조조정도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서민경제는 사면초가다. 고통분담할 것도 없다. 경제 쓰나미에 대응할 어떤 대책도 없다. 걱정만 커갈 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1

경북도는 전진해야 한다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코로나19는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대구와 경북이 코로나의 진원지가 되면서 지역의 모든 일이 마비됐다.경북도는 올초 대구경북관광의 해인 올해를 기점 삼아 관광 붐을 일으켜 일자리와 경제 살리기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계획했다. 또 숙원사업인 신공항건설과 대구경북 행정통합으로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을 경북에서 출발시키는 프로젝트를 초안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코로나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모든 것을 새로 짜야 하는 형국이 됐다.이제 코로나 판세가 안정곡선을 그리고 있는 만큼 국난극복의 시발점이 된 과거 지역의 역사를 발판삼아 경북도를 재건해야 한다.이철우 도지사는 최근 그동안 침체된 지역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범지역경제살리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고, (가칭)범도민대책위를 발족시켰다. 과거 국난 때 왕성한 의병활동을 비롯 국채보상운동 등 청사에 남을 범국민운동을 전례로 삼아 경제 살리는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범도민대책위는 대구경북 상생 차원을 비롯 당초 이 지사가 구상했던 것과는 약간 차이가 보이지만 이 운동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돼 무너진 지역의 자존심이 제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그동안 중단됐던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신공항추진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 모두가 지역의 향후 지도를 개편하는 대역사로,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시간을 너무 허비해 골든타임이 부족하지만 백년대계의 심오한 프로젝트이니 만큼 한발 한발 전진해야 한다.행정통합의 경우, 그 과정의 지난함으로 인해 반대의 목소리도 상당하고 이 지사가 이를 통해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말들도 많은만큼 진정성으로 이를 불식시켜야 한다.행정통합은 거시적으로 향후 지역의 100년을 내다보고 미래발전을 위한다는 대원칙이 있는만큼 좌고우면 하지말고 진행돼야 한다.신공항문제도 풀어야 한다. 어려운 고비를 몇 번 넘기고 주민투표도 완료됐지만 신공항이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의 보다 큰 미래전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신공항이 필수불가결한 만큼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도내 외부가 어려운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직자들이 분발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몇몇 사건들을 보면 코로나에 진력하는 사이 도 공직자의 기강이 좀 풀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다.최근 도 내부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해 경찰조사를 받는 불미스런 사건도 불거졌고, 한 중간 간부는 사석에서 부하직원들을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험구를 쏟아내기도 했다. 과거 이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한 막말이 흘러나와 공직자들의 대화가 과연 맞는가라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또 조직의 최고수장에 대한 불만이 정제되지 않은 채 공식 언로를 통해 표출되는 것도 자제돼야 한다.수천 명의 공직자가 북적이는 도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작은 구멍이 둑을 허물어뜨리는 만큼 경북도는 조직을 추스르고 다잡아 전진해야 할 것이다.

2020-04-21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진다

김동리의 단편집 ‘무녀도’.인간이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그 대상을 어떤 언어로 포획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때로는 그에게 딱 맞는 그가 자신을 부르고자 하는 이름으로 그를 불러주지만, 때로는 싫어하는 이름을 강압적으로 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붙인 이름은 그의 정신과 신체를 옭아매는 구속이 되고, 혐오의 언어가 된다.제국주의 시대 유럽이 ‘아시아’라는 신비에 싸여 있는 공간을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고(혹은 바라보지 않고) 붙였던 이름은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아를 비롯한 비유럽의 공간들을 탐험과 모험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탐험의 대상으로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의 열망은 그렇게 언어와 매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명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구 문학사의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동방을 향한 모험이나 여행기들 속에 담겨 있는 진귀한 동양의 이야기들의 편린들은 바로 그 명명의 역사를 증언한다.지금은 보편적인 모험 이야기로만 생각되는 대니얼 디포(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1719)’는 당시의 유럽인들이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표상하는가 하는 것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자신과 똑같이 숨 쉬고 움직이고 있는 한 자율적 인간에게 로빈슨 크루소가 붙인 ‘프라이데이(금요일)’라는 이름은 인간의 지식문명이 대상에게 보여주는 인식적 폭력,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대상을 신격화하는 언어나 악마화하는 언어, 모두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김동리(1913~1995)의 ‘무녀도(1939)’, 그리고 나이지리아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1930~2013)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는 식민지를 겪었던 국가의 비슷한 시기,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이 두 편의 작품은 제국주의적 폭력 속에 자기의 이름을 잃은 ‘프라이데이’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패배해갔는가 하는 것에 대해 기록한다.‘무녀도’의 무당 모화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이보족의 오콩고는 모두 서구로 대표되는 외부 세계의 문화적 식민지화 속에서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어 자신이 평생 지켜온 가치를 부정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치누아 아체베물론, 그들은 단지 피해자는 아니다. 서구에 의해 식민지를 겪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낭만화하거나 합리화해주지는 않는다. 무당인 모화는 자신의 아들 욱이가 자신과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는 욱이가 소중하게 품고 있던 성경을 불태우고 욱이를 칼로 찌른다.‘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지다’속 주인공인 오콩고의 아버지는 호칭이 없는 남자, 즉 부족 내에서는 ‘여자’라고 불리는 남자였고, 오콩고는 그런 그를 경멸하여 최선을 다하여 부족 내에서 성공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라져야 한다는 그 힘으로 살아온 그는 점점 사회에서 폭력을 용인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그의 아들 은워예는 그를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이후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따라서, 이 두 작품을 단지 서구 열강의 문화적 침략에 저항하다 파멸해간 영웅들의 이야기로만 보는 것은 어쩌면 이 작품들을 읽는 올바른 독법은 아닐 것이다. 단지 ‘우리 것이 아름답다’는 막연한 긍정은 타인이 우리를 규정한 언어를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할 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리 아픈 것이라도 스스로 바라보고 자기 규정할 수 있는 언어, 바로 그것이리라./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4-20

사월, 충만한 영혼이 꽃 피고… 함양 벽송사(碧松寺)

비가 그친 지리산은 봄이 한창이다. 저마다 다른 연둣빛 사이로 산벚꽃이 어울려 꽃길을 연다. 민족상잔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골짜기에도 4월의 유순함이 피어나는데 벽송사 가는 길은 가파르기만 하다.지리산 칠선계곡에 위치한 벽송사는 1520년(중종 15년) 벽송 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정통 조사들이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룬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6·25때는 빨치산 토벌을 위해 방화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이곳은 판소리 여섯 마당 중 ‘변강쇠가’의 배경이기도 하다. 변강쇠가 나무는 하지 않고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쓰자, 장승 우두머리가 통문을 돌려 팔도의 장승을 불러 모아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이야기이다. 부당한 대접과 억압을 받는 민중을 장승에 비유하고 변강쇠를 기층 질서로 풍자한 민중문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벽송사에도 밤나무로 만든 한 쌍의 목장승이 보호각 안에 서 있다. 왼쪽 여장승은 잡귀 출입을 통제하는 금호장군(禁護將軍)으로 산불에 윗부분이 타서 파손이 심하다. 오른쪽 남장승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대신(護法大神)으로 짱구모양의 민머리에 돌출된 큰 눈과 주먹코, 합죽한 입, 무성한 수염으로 표정이 풍부하면서도 익살스럽다.변강쇠와 옹녀의 외설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면 장승과 벽송사의 만남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하지만 질박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한 쌍의 목장승이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걸 알면 궁금증이 풀린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자연스런 융합인 셈이다.세 단으로 조성된 벽송사의 첫 느낌은 여느 사찰과 다르다. 절의 중심에는 주법당이 아니라 벽송선원이 자리하여 맑고 고요한 기운을 뿜어낸다. 선불교의 종가다운 배치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내로라하는 대사들을 배출한 사찰치고는 소박하다. 흐트러짐 없는 선원의 이미지가 제대로 살아있어 발걸음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간월루와 선원 사이로 고독한 눈물처럼 서 있는 홍도화가 방문객을 응시한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낮은 탄성이 터지고 말았다. 저 대책 없는 붉음 앞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한옥을 배경으로 홍도화는 너무나 고혹적이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이토록 이지적인 붉음을 본 적이 있는가.선원을 돌아서 가는 발길이 까닭 없이 바쁘다. 유일하게 단청옷을 입은 원통전과 산신각은 겸허히 뒤로 물러나 있다. 안정감 있는 배치에 감탄하면서도 내 눈은 온통 선원 뒤뜰의 봄꽃에 팔려 있다. 붉게 하혈을 시작하는 동백과 청승스러울 만큼 창백한 돌배나무꽃, 우아함을 갖춘 키 큰 자목련까지, 홍도화와 어울려 만다라가 따로 없다. 모처럼 내린 봄비에도 벽송사 풍경들은 지나치게 차분하다.젖은 봄꽃들의 자태에서 숭고함이 듣는다. 벽송사는 이름난 선원답게 뒤안의 분위기까지 완벽하다. 비가 온 뒤의 4월, 함양에서 오도재를 넘고 추성마을을 지나면서 쏟아냈던 감탄들과는 또 다르다. 아찔한 계절, 중심을 향해 살아가는 벽송사 풍경에 취해 나는 한참을 뒤뜰에서 서성이고, 곧게 뻗은 도인송은 그런 나를 지긋이 내려다본다.높은 축대 위에서 도인송을 향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미인송의 구애도 눈물겹다. 높다란 지지대에 의지하면서도 아슬아슬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미인송의 한결같은 마음과 도인송의 곧은 정신이 살아 있는 죽비가 되어 준엄하게 꾸짖는다. 삶에는 수많은 유혹이 따른다. 나는 얼마만큼의 진중한 자세로 나다움을 지키려 노력해 왔는가.돌계단을 오르자 보물 제 474호 삼층석탑이 홀로 너른 터를 지킨다.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에 조성되었을 거라 보는 석탑은 미인송의 기울어진 목덜미를 외면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강인한 홀로는 언제나 눈길을 끄는 법이다. 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옛날에는 분명 이곳에 금당이 있었으리라.뒤늦게 원통전 법당 문고리를 잡는 손이 떨려온다. 작고 아늑한 법당, 백팔 배를 하는 몸이 신기할 만큼 가볍다. 기도는 단조롭고 엄숙하지만 잡념이라고는 일지 않는다. 그런 우리를 관세음보살부처님의 자비로운 눈길이 함께 한다. 문 밖에는 다시 봄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원통전을 향해 오시는 부처님 발걸음 소리 같기도 하고, 떠나는 동백을 위한 아련한 연가 같기도 하다.절을 하는 동안 법당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만을 위한 작은 공간에는 오로지 감사와 행복이 물결친다. 봄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우산을 가지러 뛰어가고 홀로 원통전 뜨락을 서성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처연히 비를 맞고 있다. 용기를 내어 돌계단을 내려선다. 허둥대거나 서두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만큼은.인적 끊긴 벽송사는 봄비 맞으며 다시 참선에 들고, 간월루 뒤 요사채 뜰 위에는 비에 젖은 우산 하나가 물기를 머금은 채 절을 지킨다. 따뜻한 풍경이다. 벽송사를 향해 두 손 모으는 순간 고단했던 나의 하루는 감사함으로 충만해진다. 깊어 가는 4월, 봄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2020-04-20

오만의 정치는 망국의 지름길

강희룡 서예가‘당 현종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은/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수용했기 때문이네/ 황금 상자를 길이 두고 거울로 삼았던들/ 행차가 어찌 서촉(西蜀)까지 이르렀겠나.’고려시대의 문신이며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금함(金函)이다. 당나라 예종을 이어 즉위한 현종은 연호를 개원(開元)이라 고친 뒤에 요숭, 송경, 장구령과 같은 어질고 뛰어난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국가를 안정시키고 3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개원의 치세(開元之治)이다. 개원 연간 동안 현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의 상소가 올라오면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 황금으로 장식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고 한다.하지만 즉위한 지 30년이 되어 연호를 천보(天寶)로 바꾼 뒤로는 양옥환(일명 양귀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국정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틈을 타서 이임보, 양국충과 같은 간신들이 국정을 농간하더니, 양귀비의 양자가 되어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절도사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니 장안은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목숨만 부지한 현종은 지금의 중국 성도(成都)인 서촉으로 피난하고 나라는 성당(盛唐)시대에서 기울기 시작한다.사람은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성공하고 잘한 행위만을 자랑스러워하고 패배와 잘못은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발전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성공을 자부하고 안주하는 데서 발전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고치는 데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칠 것이며, 잘못이 고쳐지지 않는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는가.4·15 21대 국회의원 총선의 결과를 보면 보수 세력이라고 자칭하던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넘겨 헌법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 활동에 있어 일방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국내의 입법 작용이나 대통령의 정치행위의 결과가 오로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2년 후 국가상황과 여당의 실정은 대선을 통해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벌써부터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오만한 자들의 막말이 쏟아진다. 더불어시민당의 한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젠 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라고 적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18일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이 계속될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현종이 서촉까지 피난하고 나라가 망한 역사적 사실이 새삼 떠오르는 현실이다.

2020-04-20

올해부터 달라지는 유아교육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모든 학교는 대면교육을 늦추고 온라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유아교육에서는 초·중등교육과는 달리 놀이 중심의 하루 일과를 운영하므로 온라인교육이 적합하지 않아 개학이 미뤄지고 있다. 발달단계에 따라 적합한 교육의 형태가 다르다. 어린 연령의 아이들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주변을 탐색하며 놀이를 통해 배운다. 초중등학교에서는 가장 추상적인 의사소통 기호인 언어로 교육하는 반면, 유아교육에서는 구체물을 활용하여 행동으로 체득하도록 교육한다. 이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개학을 보류해서라도 온라인 교육을 지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올해부터 유아교육은 놀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교육의 질 제고와 균등한 교육 기회 마련을 위해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정하고 있으며 국가수준의 유아교육과정을 누리과정이라고 부른다. 올해부터 시행될 누리과정은 한 차례 개정되었으므로 개정 누리과정으로 명명한다.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놀이를 지원하고 이를 위해 유아교육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의 역사를 통틀어 유아교육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으며 지금까지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이 운영되어 왔다. 개정 누리과정은 아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놀이를 하면서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믿음을 근간으로 하여 유아의 놀이를 좀 더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진달래 꽃잎을 따다가 화전을 굽는다면 유아는 물질(찹쌀가루)의 변화, 전통음식(화전), 기본생활습관(손씻기), 도구(뒤집개)의 유용성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유아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가상의 때와 장소에 적절한 언어 사용, 실생활에서의 역할 시연, 또래와 갈등이나 의견 조율하기 등을 경험할 수 있다. 계몽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성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미숙해 보이는 유아를 계몽과 교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교육 성과를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유아 발달의 측정도구를 계량해서 유아를 일률적으로 측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9년 제1차 유치원 교육과정이 제정되기 전에는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를 포함하여 유아를 교육하는 일은 사회복지단체나 민간인의 주도로 이루어져 왔으며 유아교육 행정체계나 질 관리가 부재했다. 때문에 교육의 질 편차를 줄이고 각 유아교육기관을 일괄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교육의 질 관리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부족했음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있었고 이 반성이 누리과정의 개정으로 이어진 듯하다. 유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한 유아교육 학자와 교사는 유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능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올해부터 달라질 유아교육도 유아의 역량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유아를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놀이하며 세상을 배워나가는 존재로 재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2020-04-20

천 명의 천사와 동행하는 사나이(2)

즐겁게 한 편을 외우고, 신나서 또 한 편을 외우고 이렇게 꾸준히 시를 읊조리다 보니 어느새 50편, 100편을 암송합니다. 400편을 암송하자 시를 외우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무료할 시간이 없습니다. 불면증도 사라집니다. 침대에 누워 시를 외우다 보면 스르르 잠들곤 하지요. 화가 나고 감정의 기복으로 힘들 때도 시를 따라 평화로운 별을 산책하노라면 어느새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그의 이름은 문길섭. 광주에서 소공연장을 운영하는 문화인입니다. 시를 외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력인지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하늘이 짙푸르고 구름은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시가 내 육체 안으로 흘러 나를 적시고 내 몸통을 울리고 내 성대를 거쳐 입 밖으로 음파가 되어 허공을 울리는 경험을 해 보면 어떨까요? 천 편의 시를 외우는 사내,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짐작이 갑니다. 그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1천명의 천사들이 부럽습니다. 400편을 넘기며 시를 외우고 읊조리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하는 그의 설렘과 떨리는 입술이 부럽습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이 시구를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내 발걸음은 숲에 가 있겠지요.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 몸의 세포와 혈관에 흐르는 피를 격동하며 춤추게 하는 순간을 경험하겠지요.우리도 숲 속 길로 들어갑니다. 세상에 물든 때 숲속 맑은 공기로 씻어내고 시인의 언어가 천사 되어 내 삶에 흘러들도록 숲 속 길로 들어갑니다. 우리 안에도 천사가 하나 둘, 늘어나는 기적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자크 데리다는 말합니다.“은유(metaphor)가 모든 창의성의 근간이자 핵심이다. 은유 없이는 우리의 사고, 언어, 예술, 학문 자체가 불가능하다.”시적 은유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은 삶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조신영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0

톨레랑스(tolerance)를 아시나요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과 통합당의 참패, 중도 군소정당의 소멸, 진영과 지역대결의 심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에서 볼 때 적지 않은 우려를 낳는다. 왜냐하면 정부·여당이 주도해왔던 범 진보연합의 진영정치가 이제는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은 복수(vengeance)에 함몰된 정치로 항상 내전(內戰) 상태”라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 행사가 아니라 상대 진영에 대한 존중”이라고 했다. 그는 “진영정치가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 슬프지만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을 100회 이상 방문한 세계적 석학의 논평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정치선진국 프랑스에서 ‘톨레랑스(tolerance)’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무기’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적 가치관으로서 톨레랑스를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감성적 관용’보다는 ‘이성적 관용’에 가깝다. 상대방의 정치적 의견과 입장을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의견과 입장도 존중받는 것이다. 톨레랑스는 나의 생각과 다른 남의 생각을 허용하고 관용하는 정신이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톨레랑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한국 민주주의의 후퇴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인간 능력의 유한성과 상대성을 부정하면서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과 아집이 민주주의를 왜곡시켰다. 여당은 권력으로 정의를 합리화하고, 야당은 정의를 명분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 권력에 눈이 먼 외눈박이 정치꾼들의 교활한 선동 때문에 국민들마저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핏발선 눈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한 나라 두 국민’의 비극적 현실이다.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다른 점’과 ‘틀린 점’을 구별하지 못한다. 여당과 야당의 생각이 다를 뿐인데,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차이(差異)’가 ‘불의(不義)’와 동의어로 둔갑한다.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태도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다. 격앙된 적대적 감정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민주주의는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정치문화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 게다가 진영논리에 갇힌 독선정치는 필연적으로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보복을 부른다. 한국정치사가 증명하듯이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후 불행은 바로 이러한 진영정치의 결과였다.진영정치는 국론분열을 초래하지만 톨레랑스는 국론통일을 모색하게 한다. 통합과 협치를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격화시킨 것은 진영정치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민주정치와 독재정치의 근본적 차이는 톨레랑스의 가치를 인정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21대 국회를 장악한 정부·여당은 더욱 낮은 자세로 야당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톨레랑스 없는 다수당의 폭주는 민주주의로 포장된 의회독재일 뿐이다.

2020-04-20

소셜믹스

소셜 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으로, 사회적·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게 함으로써 주거 격차로 인해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다. 최근 정부가 30년 넘은 노후 영구임대주택을 재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입지가 좋은 단지는 종상향을 통해 기존 임대에다 공공분양까지 얹어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소셜믹스’를 적극 도모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소셜 믹스의 기원은 1980년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시작됐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주거지가 점차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고소득층이 사는 주거지역은 부촌으로 치안도 좋고 교육 시설도 고급스러운데 비해, 저소득층이 사는 주거지역은 점차 슬럼화되면서 치안이 불안하고 위생 및 교육환경이 열악해지게 됐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아파트나 주택단지 내에 분양과 임대를 함께 조성,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같은 단지 내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학교 및 교통시설을 함께 이용하고 사회적 교류를 확대시켜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영국 런던, 프랑스의 파리와 리옹,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대만 타이베이 등으로 확산됐다.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서울특별시에서 장기전세주택이라는 이름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시행하면서 소셜 믹스 정책을 처음 도입했다. 노후 영구임대아파트를 기존 저소득층과 신혼부부와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소셜믹스 단지로 전환하자는 구상이니 환영할 만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