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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하여

등록일 2020-11-05 18:39 게재일 2020-11-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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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추수가 끝난 들판은 한가롭다. 사람들의 용도를 벗어나 차분한 휴식에 들어간 모습이다. 빈 들길을 걷는 발걸음은 자유롭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고 피하거나 둘러가야 할 방해물도 없는 들길의 자유가 참 정갈하고 소중하다. 사람에게 의식주(衣食住) 다음으로 중요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부와 권세와 명예 같은 세속적인 명리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앙이나 사랑, 예술 같은 본질적이고 심미적인 것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자유가 없고서야 어찌 제 구실을 하겠는가.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 자유에 대한 사전적 풀이다. 말은 쉽지만 그런 자유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조건 등 외적인 제약이 많은 데다 남의 자유와 상충이 되기 일쑤 때문이다. 자유란 말에는 피가 묻어 있다거나,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신장(伸張)을 위한 투쟁의 역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저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자유다. 자유에는 법률로 규정한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같은 개인의 사회적 권리로서의 자유도 있지만 영혼의 구원이나 해탈과 같은 궁극적인 자유도 있다.

고대로부터 자유의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니나 개인의 당연한 권리로 실현된 것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이 성공한 다음부터였다. 오랜 세월 서양의 종교를 독점해온 가톨릭 교단에 반대하여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백년이 넘은 종교전쟁 끝에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종교독재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네덜란드와 영국에 이어 미국과 프랑스가 시민혁명에 성공하여 전제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의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국가성립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분단된 반쪽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이다.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대한민국을 수립하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전혀 경험이 없고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다 워낙에 열악하고 피폐한 경제사정으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데도 불과 70여 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였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자유와 민주는 허상이다. 인권의 최우선 과제는 굶지 않는 것이다. 아프리카 빈국들을 보라. 기아로 죽어 가는데 민주가 어디 있고 인권이 다 뭔가. 대한민국은 지금 소위 민주화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민주주의가 이만큼 신장하기까지 그들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산업화를 이룩한 공로는 그 이상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든 산업화든 그 과정에는 다 공과가 있을진대, 저들의 공만 내세우고 반대편은 모조리 적폐로 모는 정권에 나라를 맡겨서는 장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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