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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性善說)과 백당기(白堂記)

등록일 2020-11-09 19:04 게재일 2020-11-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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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노자는 백색의 맑음을 알아야 흙색의 혼탁함을 지키며, 맑음을 지키면서 혼탁함을 조화시키는 것이 온전한 도리라고 했다. 이 흰색의 앎이 귀한 이유는 장차 그 앎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백색은 채색의 바탕이기에 백색이 아니면 채색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백색은 채색을 수용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채색이 끝난 다음에도 백색이 아니면 다시 담박하고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문장이나 일을 꾸밀 때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색깔로 보면 채색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으나 채색은 반드시 흰색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또한 마무리해야한다.

구한말 독립운동가 수당 이남규 선생의 저서 수당집에 ‘백당기(白堂記)’가 수록돼 있다. 이 글은 윤장이 남산 밑에 집을 지어 서재로 삼고 그 처마에 ‘백당’이라는 편액을 달아 내걸면서 수당에게 백당에 대한 기(記)를 써달라고 부탁해 지은 글이다.

“일반 사람들은 오로지 채색을 취하지 백색을 선택하지 않는데 그대는 오히려 채색을 버리고 백색을 취했다. 이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고상한 자질을 알고 숭상해 그 취할 것을 아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바라건대, 그 고상한 자질을 온전히 지켜서 백색을 취한 뜻을 잃지 말라. …. 이미 마음이 맑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남들의 시기가 모여들 수 있다. 남들의 시기란 세상 바깥의 일이기에 실제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여 어찌 이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방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다른 사람의 시기를 받고도 온전히 천성을 지킨다는 것은 성인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형산의 옥에 비유하면 바탕이 맑고 찬란해 진실로 천하의 백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박석(璞石·옥돌)에 싸여 땅속에 묻힌 채 세상에 나와도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 뽐낸 적이 없기에 백색의 맑음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을 드러내고 형체를 노출시켜 스스로 백색의 맑음을 발했다면 거친 자갈과 돌들이 흠을 낼 텐데 어떻게 온전한 모습을 지킬 수 있겠는가. 흰색의 맑음을 지키면서 검정의 혼탁함을 조화시킨다면 그 모습을 온전히 지키는 도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한 것’이라고 기록된 맹자 등문공상(<6ED5>文公上)의 성선설을 근거로 볼 때, 천성(天性)의 맑고 깨끗함을 멀리하고 오욕의 혼탁함과 뒤섞여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삶을 더럽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들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위정자를 비롯한 공직자들은 그 속마음을 국민들에게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하며, 자신의 뛰어난 재지(才智)와 공(功)은 박석같이 바위 속에 숨겨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없게 해야 한다.

비리를 감추려는 어설픈 임기응변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위정자가 남은 올바른 삶의 시간을 고민한다면 흰색의 맑음의 유지는 반드시 새겨야 할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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