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歲─) 또는 세모(歲暮)는 한 해가 거의 다 가서 얼마 남지 않아 곧 한 해가 다가는 무렵을 가리킨다. 올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기승으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처참히 무너진 일상으로 우울하게 저물어 간다. 우리가 부르는 세모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본식 한자라 하여 세밑으로 순화해 쓰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초간본)에 “세모에 음양이 짧은 해를 재촉하니, 하늘가의 상설이 찬 하늘이 개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율곡이 지은 연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제9곡 문산(文山)의 경치를 읊은 부분에 ‘구곡은 어드메오, 문산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무쳐셰라’란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시대에도 세모란 말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세모로 사용해도 틀린 어휘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세시풍습은 입춘으로 시작하여 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섣달그믐이 되면 고관들은 왕에게 문안을 하고 사대부집안에서는 가묘(家廟)에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집안마다 어른을 찾아뵙고 묵은세배를 올리는 한편, 친지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으면서 한 해의 끝을 뜻있게 마무리하였다. 또한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 부엌, 마구간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 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렸다. 부엌신인 조상신은 1년 동안 그 집안사람들의 선악을 섣달 스무 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마지막 날 밤에 하강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때문에 연말 일주일은 한 해 동안의 처신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심판받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풍속은 36년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일관된 식민 지배의 탄압과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정책으로 철저히 왜곡되거나 실종되었다. 해방 후 우리의 고유 세시풍속이 사라진 자리를 ‘망년회(忘年會)’란 이름의 술 파티가 등장한다. 이 망년회는 연말과 연시로 이어지는 일본의 비공식적인 연휴로 신년회까지 이어지는 오랜 풍습이다. 한 해 동안의 온갖 핍박과 수탈을 모두 술로 잊어버리자는 의미로 망년회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를 일본어투의 말이라 하여 90년대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송년모임 또는 송년회’로 순화했다.
사회구조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현대인들은 직장을 비롯해 여러 갈래 집단 간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임들은 연말이면 송년회란 이름을 빌어 본격적인 권주절(勸酒節)을 만들어 간다. 망년회란 의미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 이름만 송년회로 포장한 이 상품을 우리는 목청 높여 뜻도 의미도 없는 ‘위하여’를 외치면서 건강을 해치고 경제력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는 심정은 동서고금이 모두 같다. 지나가는 한해가 안타깝고 아쉽지만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과 비전이 있기에 즐겁기만 하다. 이웃을 한번쯤 둘러보면서 서로 갈등으로 반목했던 사람들도 화합과 용서로 바뀌는 것이 바로 새해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밝아오는 신축년에는 전염병을 속히 퇴치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일상을 찾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