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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

강희룡서예가조선의 선비 중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기인이라 하였고, 또 다른 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하여 글은 취하되 사람은 사귀기를 꺼렸던 선비가 있었으니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임제(1549~1587)다. 그는 초서에 능하였으며 호방한 필치로 막힘이 없이 써내려간 풍모를 통해 구속을 싫어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기개와 곧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글공부에 뜻을 두어 몇 번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28세가 넘어 벼슬길에 나아갔다. 하지만 당시 조정에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는 당파싸움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유람하였다.어느 날 임제가 잔치 집에 갔다 술이 취했다. 신을 신고 문을 나서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다. 이를 보고 하인이 곁에서 왼발은 가죽신이고 오른발엔 나막신을 신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술 취한 임제는 끄떡도 않고 그냥 말 위로 훌쩍 올라타며 하인에게 하는 말이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저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구나 할거고, 길 오른편에서 본 자는 저 사람이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테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서 가자.’ 맞는 말이다. 말 탄 사람의 신발은 한 쪽만 보인다. 짝짝으로 신을 신었을 줄은 누구도 짐작 못한다. 각자 본 것만 가지고 반대쪽도 같은 신발이려니 하며 생각을 결정짓는다.사람의 판단 역시 항상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된다. 한쪽만 보고 다른 쪽도 으레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나 아예 반대편은 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다. 하지만 막상 말에서 내려 보면 그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한쪽만 보는 외눈으로 결정을 내리면 이런 생각들은 늘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외눈박이 결정이 국가에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사관(史觀)이다. 역사를 양 눈으로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이념의 틀에 묶여 외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현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들이 뻔히 두 눈을 뜨고 과거 속의 지도자들 공과(功過)를 읽고 있는데도 국사책은 너덜거린다. 국가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국가지탱에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독립유공자가 친일파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바뀌는 외눈박이 역사를 평가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수립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키운 이들을 친일의 오명 속에 빠뜨려 파묻으려 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고 누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인가.이 사회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시민단체는 시민이 스스로 모여 한 개인이나 집단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환경이나 인권과 같은 사회 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사회정의로 포장된 개인들의 영욕을 목표로 하는 집단행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짝짝이 신발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헛된 약속과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을 위치를 찾는 게 국민들에게 던져진 숙제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더욱 무거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외눈박이 역사의 표본’이라고 규정해 본다.

2020-06-16

사름하다

김현욱시인“그렇게 다양한 글감을 어디서 구해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얻는다. 첫 번째는 신문이나 잡지, 두 번째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세 번째는 생활 속 관찰이다.가장 유용한 것은 신문이나 잡지다. 매일 중앙지와 지방지를 합해서 4~5종을 훑어본다. 정치나 스포츠는 건너뛰고 사회, 국제, 과학, 문화, 칼럼을 정독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요건 글이 되겠다, 안되겠다, 금방 감이 온다. 오늘 읽은 기사 중에 ‘아무 영상이나 보고 욕 배운 AI 어린이’는 동화로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크랩해두었다. 서너 달 열심히 신문을 보면 글감이 제법 모인다. 시, 동시, 동화 순으로 분류해둔 것도 제법 양이 많다. 그럼에도 엉덩이가 가볍다보니 진득하게 앉아서 초고를 못 쓰고 자꾸만 묵혀둔다. 생각지 못한 청탁이 와서 급할 때면 글감 폴더를 열어본다. 내겐 보물 상자 같은 것이다.월간 ‘좋은 생각’과 ‘샘터’, ‘작은 책’ 같은 잡지도 즐겨 읽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서 좋다. 잡지를 읽고 밑줄도 치고 블로그에도 가려 올린다. ‘좋은 생각’ 6월호에서 ‘달빛 스쾃’이란 글이 뭉클했다. 화물차는 모는 아버지가 자신의 처지에 맞게 화물차 좁은 칸에서 스쾃을 하는 내용인데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했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제가 ‘What a feeling!’도 처음으로 들어봤다. 단란했던 가정에 병마가 들이닥쳐 한순간에 남편을 잃었지만, 역경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러나 수기’도 시큰한 감동을 주었다. ‘아들은 예순 셋, 어머니는 여든여덟’에서 용돈보다는 자주 얼굴 보고 맛있는 것 많이 먹기를 실천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특히, “우리 모자의 점심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삼 년은 더 지속되면 좋겠다.”는 마지막 문장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월간 ‘작은 책’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 책인데, 이번 달에 창간 300호 특별호가 나왔다. 1995년 1호를 창간할 때 “노동자가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고 이오덕 선생의 말씀을 잣대로 삼았다고 한다. 6월호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30년차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의 ‘사름하다’란 글이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 30년차’란 말의 무게를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동생과 함께 너른 논을 다 채우면서 느꼈던 감동, 함께해서 이뤄 냈다는 성취감 같은 거. 오늘같이 힘든 비행이 끝날 때마다 함께 일한 동료들을 보면 그때의 감동이 문득 살아날 때가 많아요. 그때 난 동생과 모를 심고 ‘우리의 벼’가 자라는 동안, 내가 온전히 내 일의 주인이 되는 경험 같은 걸 했나 봐요. 저는 그런 순간들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혼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내고 그런 감동을 순간을 기억하면 좋겠어요.”‘사름’을 하고나면 ‘모’는 더이상 모로 불리지 않고 ‘벼’가 된단다. 인생도 사랑도 ‘사름’이 필요하다.

2020-06-16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장규열 한동대 교수북한이 수상하다. 미국과 북한 관계에 진전이 없자 북한의 비난이 봇물같다. 우리 대통령에게까지 막말이 쏟아진다. 정부도 여당도 까닭을 새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귀에 솔깃한 외침이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 대통령 폄훼를 중단하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어느 야당 국회의원의 일갈이라 더욱 새롭다. 진영논리에만 갇혀 답답하게 정쟁만 이어가던 우리 정치권에 이런 싱싱함이 살아있다니! 지금은 힘을 하나로 모을 때라서 여당야당 따질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분명하다. 대의와 국익을 온갖 논의의 제일 앞에 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난 게 아닌가.정치가 의심스럽다. 겨우 두 달 전 선거운동 때에는 뽑아만 주면 분골쇄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당장 모든 걸 바꾸겠다고들 하지 않았나. 뽑아놓은 삼백인 국회가 어느 틈에 슬로우모션이다. 산적한 입법과제와 쌓여있는 개혁이슈, 일으킬 경제동력과 시급한 교육담론, 집중해도 부족할 남북관계와 국제질서. 해야 할 일은 끝도 없는데 당신들은 지금 무엇 하는가. ‘일하는 국회’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미 실망스럽다. 고작 다툰다는 게 자리싸움이라니. 국민이 보기에는 남북관계 뿐아니라 그 어떤 담론에도 여당야당 따질 일이 아니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며 당략에 갇혀 발목잡을 일도 없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진정성을 기대할 뿐이다.견제와 균형이란다. 민주주의 교과서에 따르면, 그건 정당 간의 이해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입법부와 사법부를 따로 둔 ‘삼권분립’의 정신이다.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여 국정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당 사이의 다른 의견은 협의하고 조율하며 결정방법에 따라 수용하고 결의해야 한다. 국회 내 정책집단 사이에는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토론과 협상’이 있어야 한다. 결정방식의 토대는 물론 국민의 선택에 기초함이 상식이다. 국회가 만드는 법과 제도의 틀에 따라 국정을 행정부가 수행하고 그것이 적절한지 살피는 사법부가 있어 국가경영이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국민은 목이 마르다. 당신들 가운데 누가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가는 다음다음 문제다. 경제가 얼른 기력을 차렸으면 하고, 코로나19가 이제는 물러갔으면 하며, 남북에 평화의 숨결이 돌아왔으면 하여 목이 마르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기술의 진보는 어떤 세상을 펼칠 것인지, 모이고 흩어지는 일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답답하고 궁금하다. 여의도에 모인 삼백인 집단, 당신들의 어깨에 어떤 짐이 놓여있는지 다시 좀 살펴주시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 북한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처럼,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해야하지 않겠나. 슬로우모션은 볼 만큼 보았다. 이제는 정말 일하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 여당야당을 뛰어넘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자주 더 듣고 싶다. 지금은 힘을 모을 때가 아닌가.

2020-06-16

야시장의 위기

야시장은 저녁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포장마차다. 음식과 일상용품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 형성한 야간 시장을 말한다.굳이 유래를 따지자면 중국에서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26년 서울 종로 보신각부터 종로3가까지 전차가 다니던 길의 북쪽에 형성된 야시장이 최초의 야시장이라 한다.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야시장은 그 나라 문화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각광을 받으며 동남아국가에서 야시장이 많이 만들어졌다. 대만의 한 야시장은 2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기도 한다.우리나라도 지역상권을 살리고 관광자원화 하려는 취지로 야시장들이 도시마다 특성에 맞게 많이 생겼다. 서울의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처럼 대구에서는 서문시장 야시장이 2016년 6월 처음 문을 열었다.350m에 이르는 80여 매대에서 판매하는 각종 음식과 생활용품 등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개장 첫날 10만여 인파가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서문시장 야시장의 인기에 편성해 지난해 11월에는 칠성시장 야시장도 개장했다.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안겨주었다.그러나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이들 야시장은 된서리를 맞았다. 우선 몇 개월의 휴장기간을 가져야 했고 그로 인해 방문객의 발길도 자연 줄어들었다. 서문시장 야시장의 경우 하루 방문객이 지난해보다 60%가 줄었다. 매대 운영자도 절반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칠성시장 야시장도 비슷하다.상인들은 예전 같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해가 야시장까지 마수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장사가 되는 야시장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같아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16

대구 도성사(道成寺)

예정되지 않는 만남과 계획 없는 여행이 좋을 때가 있다. 휴일 아침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불현듯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만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일 년에 고작 서너 번 정도의 만남이지만 그 시간들은 값지고 소중한 추억으로 이어진다.“네가 좋아할 만한 절을 발견했어. 천년고찰이 아니기에 재미있는 전설이나 볼거리는 없지만 꽤 느낌이 괜찮은 절이야. 너도 가보면 분명 좋아할 거야.”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작은 절을 떠올리며 나는 온갖 상상으로 행복해진다. 한 달째 허리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씀이 더 고맙다. 성격이나 전공은 다르지만 정서적인 교감 하나로 언제나 든든한 친구, 그녀는 나를 믿고 아픈 몸을 움직였고 나는 그녀를 의지하며 운전대를 잡았다.천연기념물 제 1호인 도동 측백나무숲을 조금 지나자 좌측 편으로 절의 안내판이 보인다. 들꽃처럼 소박한 눈을 뜨고 길가를 지키는 생소한 이름이다. 이 길을 몇 번이나 오가며 관심없이 지나쳤던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다. 낯설고 조심스럽던 길은 다리지라는 작은 연못 하나로 갑자기 익숙하고 친근해진다.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주 작고 정겨운 못이다.못 둑에 갈대가 필 무렵, 도시에서 공부를 하던 삼촌이 양동이 가득 우렁이를 잡아주던 오랜 기억 하나가 월척이 되어 낚인다. 못물을 빠져나간 진흙 속에서 팔딱거리던 미꾸라지들의 몸부림, 눈부시게 뽀얗던 삼촌의 발목, 산골짜기를 울리던 때묻지 않은 웃음들을 떠올리며 나는 오랫동안 전하지 못했던 안부를 전한다.그 많은 꿈들과 따스했던 눈빛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기억들로 내 영혼은 촉촉해져 온다. 추억은 변함없이 삶에 물기를 더해주는데 육신은 늙어가며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친구의 심장에도 월든의 호수같은 무욕의 자연 하나 박혀 있나 보다. “좋재 좋재”만 되풀이 하던 친구도 생각에 잠겨 말이 없다.자동차는 한껏 무거워진 몸으로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오른다. 각박한 삶처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인 오르막이다.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다. 비탈길을 오르고 나니 한적한 솔밭 내리막길이 펼쳐지고 구릿빛으로 그을린 중년 남자가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맞은편에서 올라온다. 건강한 열정을 토해내는 숲길을 들어서기가 참으로 미안해진다.길은 혈류처럼 천혜의 자연 속으로 이어지고, 절은 숨바꼭질을 하듯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솔숲 그늘 길은 이따금씩 이글거리는 태양에 목덜미를 잡히기도 하면서 도성사를 찾아 나아간다. 밤꽃 향기가 스멀스멀 숲으로 숨어들 무렵 내리막길 끝에 제법 너른 하늘이 열리며 절이 있음을 알린다. 담장은 낮아서 넉넉하고 그 뒤로 나무로 만든 사립문이 도성사의 불이문을 대신한다.몸집 자그마한 여인 홀로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걸어 나온다. 하늘과 숲과 하나가 되어 힐링 중인 그녀에게서 나무냄새가 날 것 같다. 정자에서 자전거와 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가 도착하자 헬멧을 쓰고 폐달을 밟으며 다시 숲으로 향한다. 숲은 말없이 그들을 받아주고 그들은 힘들게 숲을 통과하여 또 도시로 향할 것이다.결코 적막하지 않은 일련의 풍경들을 높은 곳에서 대웅전이 내려다보고 있다. 긴 계단을 오르며 친구는 조심스럽게 할미꽃씨를 따서 주머니에 넣고 나는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요즘은 채송화, 할미꽃, 봉숭아 같은 꽃들이 좋아지더라.” 친구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또 다시 숲을 빠져 나오는 자전거들의 반짝거림을 응시한다. 사람들은 정자 앞에 멈춰 헬멧을 벗고 약속이나 한 듯 대웅전을 바라본다.조낭희 수필가평화가 흐르는 풍경, 무탈을 기원하는 대웅전, 어느 새 법당에 들어가 아픈 몸으로 삼배를 하는 친구, 이 모든 광경들이 보석처럼 눈부시다. 나도 뒤늦게 백팔 배를 시작한다. 친구의 건강이 빨리 회복될 수 있기를, 배낭을 메고 이 솔숲을 다시 걸어와 나란히 백팔 배할 수 있기를, 나의 기도는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간절해진다.절을 하는 동안 삽질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서걱서걱 염불소리만큼 경건하게 만든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절에는 주지 스님의 살아있는 기도가 끊이지 않을 것만 같다. 백우당 쪽에서 젊은 처사님과 울력 중인 스님의 야심찬 정성을 위해 가만히 두 손을 모은 후, 친구를 찾아 나선다.칠성각에 부처님처럼 앉아 있는 친구의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소소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고, 내 힘으로 열지 못하는 문 앞에 설 때까지 감성 충만한 풀꽃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들이 일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절을 내려온다.추억이 우리를 겸허하게 성장시키듯 도성사도 아름답고 건강한 염원들로 채워질 것이다. 오층석탑은 교신이라도 하듯 저 멀리 팔공산 레이더 기지를 응시하고, 스님은 또 손수레를 끌고 유월의 햇살 속을 걸어가신다. 가까이서 팔공댐은 저토록 태평스레 졸고 있는데도.

2020-06-15

속도와 리듬, 그리고 밀도의 영화를 감상하는 법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드라마는 단순하다.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밀어붙이는 속도감으로 인해 스토리가 있었는지, 굳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의 되새김보다는 강렬했던 이미지들이 남아 그것들의 조합으로 남는다. 의미보다는 이미지가 먼저 다가와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는 영화다.영화가 시작되고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시작해 황량한 모래벌판을 내리 달린다. 모래 먼지와 모래 폭풍, 화염과 기괴한 모양의 자동차들이 질주하며 부딪치고 폭발한다. 그 사이로 인간들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며 질주한다. 거칠지만 아름답고, 기괴하지만 ‘리듬’을 가진다. 이 리듬이 강렬한 이유는 ‘속도’에 있다.맹렬한 속도와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무언가가 옥죄었던 모든 것을 풀어 헤치고 거침없이 질주한다. 속도는 자동차의 엔진과 함께 한다. 시동을 걸면 질주하고 시동을 끌 때 영화 속 모든 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거나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속도를 가진 리듬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내연기관의 강도에 따라, 그 강도의 리듬을 타고 영화가 흘러간다. 뿐만 아니라 황폐한 미래의 지구에서 이들이 가늠하는 시간도 내연기관의 엔진이 식어가는 정도와 내연기관으로 달려가는 거리로 측정된다.단순하게 속도를 가진 리듬만으로 이 영화가 주는 액션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하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강도를 더해가는 액션만으로 채워졌다면 지루한 자극만으로 이어진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황량한 모래 벌판의 배경은 단순한 풍경으로 지루함을 더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잡다한 요소를 제거하고 오로지 액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이 되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주는 쾌감과 속도감이 남다른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밀도’에 있다. ‘속도를 지닌 리듬’이 ‘밀도감’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드라마에 많지 않은 대사들.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액션의 이유가 구구절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불친절하거나 어설픈 구성으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우선 내리 달리고, 달리면서 부딪치고 폭발하면서 단순한 드라마에 강렬한 이미지를 채워넣으며 시종일관 질주한다. 핵전쟁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라진 황폐한 세계 속에서 오로지 “유일한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라는 맥스의 대사처럼, 살아남기 위해 질주하고 부딪치며 생존할 최소한의 액체를 쟁취하기 위한 속도, 리듬, 밀도가 가득한 향연이다. 결핍과 생략, 단순함의 선택이 효율성으로 자리잡는다. 이것이 액션을 쉼없이 나열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점이며, 그 많은 액션 중에서 단 한 순간도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래와 바람, 불과 쇳덩이로 이루어진 자동차, 그리고 살아남은 몇몇의 인류가 황량하고 거친 모래사막을 질주한다. 질주의 이유는 등장하는 모든 것들과 대비되는, 생존의 기본이 되는 액체를 얻기 위함이다. 황폐한 사막에 대비되는 물과 불을 만들고 쇳덩이로 이루어진 자동차를 움직이는 기름과 기괴한 착취의 상징인 피와 모유를 통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건조함과 촉촉함의 강렬한 대비다. 다채로움과 속도감에 리듬을 더하고 거기에 밀도를 채워넣는다. 그리고 이것들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은 단순화시킨다. 등장하는 인물의 사연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며,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을 구체화시키지 않는다. 영화 속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멈춤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다. 내연기관이 멈췄을 때 그들은 불안해 했고, 그들의 목표는 아득해진다. 반대로 속도 속에서 안정을 찾고, 속도의 정도에 따라 희망과 목표가 더 강렬해진다.‘시타델’이라는 물이 있고 식물이 자라는 지배와 착취의 세계에서 출발한 영화는 ‘녹색의 땅’이라는 생명과 자유의 땅으로 핸들을 돌린다. 그리고 이상의 도피처가 황폐해져 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곳을 반환점으로 다시 출발점(시타델)으로 향한다. 강렬한 대비의 요소에 시작점에서 출발해 시작점에서 끝나는 순환과 반복의 영화다. 이는 희망없는 미래에 반복을 통한 문명의 단초를 놓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오직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유일한 목표를 강렬한 액션의 향연으로 목도하는 영화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는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6-15

생활 속 운동습관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한다. 천성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격이지만, 습관은 어떤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질 때까지 반복함으로써 형성된다. 습관은 한번 깃들여버리면 타고난 성격과도 같아져 다시 바꾸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즉, 습관이 패턴으로 굳어진 후에는 그 반복되는 패턴 속으로 자꾸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어려서부터 들이고 나쁜 습관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삶은 습관의 연속이다. 먹고 입는 양식, 말하고 행동하는 버릇, 학습하고 일하는 방식 등 사람은 일생에 걸쳐 제 나름의 습관으로 이어지고 굳어진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개개인의 정서나 습관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 관습이나 풍습이 되고 그것은 곧 지역과 사회적인 문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습관은 의식주와 생활 전반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몸을 움직여 신체를 단련하거나 건강을 도모하는 운동도 습관에서 비롯된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체는 움직임이 있어야 신진대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자생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움직이고 활동해야 한다. 원활한 대사(代謝)작용과 활력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은 움직임이나 자극을 통해 땀을 배출시키고 신체를 유연하고 활발하게 하며 심신의 활기를 더해준다. 또한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운동은 신체리듬을 활성화시키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운동을 습관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걷기, 구기, 수영 등 운동의 방법도 무수하지만 필자는 수년 전부터 생활운동을 고수하고 있다. 매일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 하루에 계단 2천개 이상 오르내리기, 맨손체조 등 말 그대로 일상생활 자체를 운동처럼 여기며 실행하고 있다고나 할까? 바쁘고 각박한 시대를 살면서 운동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기 보다 생활과 병행하는 가벼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습관화되어 심신의 긍정적인 효과와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최근 포항지역의 영일대 해변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새벽같이 영일대 해상누각 주위에 약속처럼 나타나 모래의 감촉을 온 발바닥으로 느끼며 왕복 5㎞ 정도 2시간 남짓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어김없이 맨발걷기한지 벌써 106일, 삼삼오오 함께 걸으면서 그들은 찬란한 해맞이도 하고 파도소리의 추임새를 듣는 것을 흡족해하는 듯하다. 이에 포항시북구보건소에서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실외에서 할 수 있는 손쉬운 생활 속 걷기운동이나 건강체조교실을 운영하고 장려하고 있어서 한층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운동이나 기타의 건강한 습관은 평소 스스로 실천하고 지켜나가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만, 단발성이나 너무 과도한 생활 속 운동습관은 자신의 취향과 형편에 따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반복과 지속은 기적을 낳는다. 습관이 무기가 될 때, 평범했던 자신을 최고로 만든 요체는 단 하나의 습관이 아닐까?

2020-06-15

북한은 왜 대남 강경노선을 선택했을까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여정의 강경 발언 이후 북한 당국은 연일 대남 선전포고식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남북의 통신선을 전면 단절하고 대남관계를 ‘적대관계’로 바꾼다고 선포하였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9·19 군사적 합의마저 폐기할 의사를 표명했다. 폐쇄한 전방 GP를 복원하고 단거리 포사격 훈련도 재개할 의사까지 보이고, 개성공단 지역을 과거처럼 군사적 요충지로의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남한은 이제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북한이 과거의 강경노선인 군사적 모험주의로 회귀한 배경은 무엇일까.가장 직접적 요인은 그들이 밝힌 대로 탈북 시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행위이다. 북한은 ‘수령의 권위’를 손상하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경계하고 비난해 왔다. 그들은 전단 살포 행위의 주체가 일부 탈북 단체라는데 분노하면서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했다. 대북 전단에는 그들의 수령을 비하·비판하는 글귀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미국 달러 1장과 남한 CD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은 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국가 존엄’ 모독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북한의 노선 선회의 본질적 배경에는 북미 관계가 조금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그렇게도 기대했던 하노이 정상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간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 3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셈이다. 북한 당국이 애원하는 북한 체제 보장과 북미 수교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는 종래의 ‘벼랑 끝 전술’도 핵실험 위협도 통하지 않음을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북한은 트럼프를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남한 당국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또 다른 강경 요인은 외재적 요인을 내부 주민 통치용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북한도 이미 정보화 사회에 진입했고 초보적인 시장 경제는 작동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보다 어려운 민생 경제는 카리스마가 약한 김정은 수령에게 향하고 있다. 더구나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북한 경제를 목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국가 존엄’에 대한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의 적을 이용할 필요가 절박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학생, 청년, 군인들의 대남 선전 선동이라는 관제 시위에 연일 동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러므로 북한의 대남 강경 노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11월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트럼프나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내부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대남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강경 노선의 직접적 요인인 전단의 살포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4·27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 군사적 합의에도 위배되고 남북 교류 협력법이라는 현행법에도 위반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급히 대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협상의 지연 전술도 필요할 것이다.

2020-06-15

핵 그림자 효과

핵그림자 효과는 직접적으로 핵공격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핵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대를 위축시키고 이를 통해 전략적 우위를 갖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특히 한반도에서 북한은 핵무력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같은 효과를 상당부분 거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핵그림자 효과와 달리 핵우산은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이 핵으로 응징한다”는 것과 같은 미국의 공약을 가리킨다. 미국의 핵전쟁 억제의 기본개념은“미국에 핵공격을 가하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한다”는 것인데, 이같은 핵우산 개념에 더해 한국에 대한 핵공격을 미국에 대한 핵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문제는 핵우산이 북한의 핵사용을 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핵그림자(Nuclear Shadow)’까지 차단해 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핵무기의 특성때문이다. 핵무기는 일단 사용되면 엄청난 파괴와 살상 효과를 나타내는 군사적 무기지만, 사용하지 않고 보유한 상태에서도 상대를 주눅들게 만들어 각종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심리전 수단이자 정치·외교적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걸핏하면“궁극무기의 맛을 보여주겠다”“불벼락을 내리겠다” 는 등의 핵공갈(Nuclear Blackmail)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핵그림자 효과 때문이다.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연평도 도발 역시 핵그림자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북한의 핵사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한반도에 핵 그림자를 드리운 채 남북관계를 지배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차단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15

미·중 충돌, 기로에 선 한국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미·중 패권경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외교가 중대한 기로(岐路)에 섰다.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문재인 정부의 ‘줄타기외교’가 이제 더이상 계속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코로나19의 세계적 팬데믹(pandemic)을 계기로 더욱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의 본질은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 간의 패권전쟁이다. 외교·안보·군사차원에서 볼 때 중국이 세력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전략’에 맞서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중국을 포위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독려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G7에 한국을 초청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핵심이익(core interest)’으로 중시하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국제수로 항행자유’를 주장하며 핵항모전단·강습상륙함 기동훈련을 계속하면서 반중(反中)성향의 동남아국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이 주권문제라고 강변하는 ‘홍콩보안법’ 제정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위협하는 등 대중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 국방부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는 중국에 대한 ‘경쟁적 접근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신냉전을 공식화했다.경제·금융·무역차원에서의 미·중 패권전쟁도 심각하다. 미국은 세계 공급망의 중심국인 중국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방국들과 함께 새로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설립을 통한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화웨이(Huawei)를 비롯하여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중국제조 2025’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견제는 중국의 ‘기술패권’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위안화 기준환율을 인상하자 미국은 이를 환율조작으로 간주함으로써 미·중 통화전쟁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단순한 협박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미어세이머(John J. Mearsheimer)는 그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강대국 간 패권전쟁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미·중 패권전쟁의 전운(戰雲)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양 강대국으로부터 ‘줄서기’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줄타기’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미·중 패권전쟁에 대비하는 한국외교의 좌표설정이 시급하다.한국은 한·미 동맹의 당사국, 즉 행위자(player)라는 점에서 미·중 사이에서 중재자(mediator)가 될 수는 없다. 만약 불가피하게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패권전쟁에서 이기는 편에 서야 하는데, 대다수 국제정치학자들은 상당 기간 미국의 패권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또한 정치이념과 가치체계가 이질적인 나라보다는 동질적인 나라가 우리의 국익에 더욱 부합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로에 선 한국외교의 진로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2020-06-15

불확실성 시대에 확실한 것부터 해결하자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1월 전망치보다 낮춘 마이너스 3.0%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약 2달 정도가 지난 6월 8일 세계은행(World Bank Group)은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에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5.2%로 예측하였다. 미국과 일본 모두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 6.1%로, 유로지역은 마이너스 9.1%로 예측하는 등 선진국은 약 마이너스 7%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는 한편, 중국(+1.0% 성장)을 포함한 신흥개발도상국도 마이너스 2.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경기후퇴로 보이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역성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각 지역 간, 지역 내 물류 이동이나 수급이 차단된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무역 규모가 13.4%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신흥개발도상국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지난 6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는 세계은행 보고서의 예측이 정확한 것인지를 떠나 적어도 전망을 위한 전제 조건 즉 기본 시나리오가 대부분 올해 중반 또는 다소 지연되는 시점에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 가정하고 있어 크게 낙관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다만,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코로나19로 인한 각 지역이나 나라별로 겪을 경제적 영향의 정도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역시 제일 심각하게 코로나19의 피해가 컸던 지역이나 나라일수록 경제적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제무역, 관광, 1차 산품 수출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영향이 클 것이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조달 의존도가 높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국 경제의 회복에 자금을 투입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기에 해외로부터 자금 조달 의존도가 높은 곳은 높은 국제금리를 감내하거나 아예 상환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자율적인 경제순환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달린 셈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세계은행이 전망한 것과 다른 결과가 초래된다면 바로 이 외부요인으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내성이나 메커니즘이 각 나라나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그만큼 지금의 전망치조차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다.경북 동해안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의 최근 조사결과에서도 지역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느끼고 있다. 당연히 과감한 투자나 어떠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하물며 대기업과 달리 정세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안테나도 없는 지역 대다수 중소기업은 오직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시간이 흘러 사태가 종식되고 기존 거래처들과 거래를 재개하여 자사의 공장이나 영업점이 정상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기업의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구어왔던 공장, 가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나 또 언제나 가능하지도 않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최적기일 수도 있다. 다시 경제 활동이 정상화되는 순간부터는 또다시 중소기업 경영자의 뇌리에는 당장 공장 가동문제에 매달릴 것이기에 정말 해결해야 할 확실한 문제는 다시 봉합될 가능성이 크다. 다름 아닌 후계자 문제다.전 세계 어느 나라나 지역에서도 중소기업들은 후계자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미국과 같은 서양에서는 기업 간 흡수합병이나 외부로부터 경영자를 초빙하는 경영 방식이 동양보다는 활발한 관계로 해당 기업을 처음 만들었거나 육성한 개인이나 가문이 바뀌더라도 기업 자체의 존속 확률이 동양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비교적 ‘뿌리’나 ‘전통’을 중시하는 ‘피의 계승’ 경향이 기업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결과가 재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면서 불법 승계니 뭐니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그 누구라도 자신이 피땀을 흘려 청춘을 바쳐 이룩한 기업을 자기 자식이나 친족이 아닌 제3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일례로 어느 중소기업 경영자가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기술이나 공법 등을 이용하여 독보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그 비밀은 함부로 전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종업원이 지닌 암묵지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포항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유명 음식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지역 중소기업의 업종 중에서도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고 있는 분야는 역시 중소제조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중에서도 포스코가 포항에 자리 잡은 이후부터 자수성가하여 지역에서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고 기술력만으로 버티고 생존해온 중소제조업체가 이 문제를 안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때부터 출발하여 성장해온 기업이라면 20세에 창업하였더라도 이미 70세 고령일 것이다. 다행히도 친족이나 자식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2세 경영 심지어는 3세 경영으로 진입한 기업도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2세, 3세가 경영권을 인수하여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대개가 충분히 먹고 살 만하고 경영자 스스로 기름때를 손에 묻히지 않아도 되는 기업일 것이다.하지만 종업원 10명 이내의 기업으로서 그동안 기술력으로 때로는 종업원들과 일치단결하여 지금까지 생존해온 중소기업이라면 과연 그 경영자의 2세도 기꺼이 부모의 가업을 계승하려는 마음으로 스스로 손에 기름때를 묻히려는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이들 중소기업을 경영해온 부모의 희망, 자식의 야망 등이 융합되어 2세들 대부분은 진작에 대구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여 공업과는 무관한 상업이나 공무원 등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기 쉽다. 그러하기에 이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어쩌면 나이가 더 들어 기력이 쇠퇴하면 그냥 공장문을 닫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양과 같이 비록 자신이 이룩해온 공장이지만 누구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해당 공장, 해당 기업을 제대로 살려 끌고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전혀 다른 타인이라도 기업의 후계자로 삼아 물려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진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 가운데 한두 기업이 고령화 문제로 공장문을 닫는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 중소기업의 입장이 이와 유사한 후계자 단절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면 이는 기업문제가 아니라 포항이라는 도시 자체의 문제가 된다. 우리가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이 지역의 고용생태계를 형성하고 그 종사자들은 시민이자 소비자, 학부모, 납세자, 유권자로서 지역의 정치, 경제, 행정,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후계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폐업하게 된다면 지역의 고용창출력은 물론 과거 수십 년간 축적해온 지역의 기술력, 지역의 잠재성장력, 지역의 경영자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크다고 해서 잠자코 있을 때가 아니다. 이때야말로 냉정하게 자신이 몸담은 중소기업의 후계자 문제, 기업의 지속성 확보문제 등 보다 확실한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6-14

튼튼한 방역 위에 민생경제 활력 ‘올인’

이강덕 포항시장미증유(未曾有)의 ‘코로나19’ 여파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2분기에 들어서면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대세이다.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가장 거세게 휩쓸었던 대구 경북은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포항지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지역경제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비심리의 위축이 경제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고,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한다.당장 가뭄을 해결할 단비 같은 응급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포항시는 신속하게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생활안정 대책을 마련하는 등 경제적 지원에 시동을 걸었다.지난 4월에는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의 제도적 근거 마련을 위해 ‘포항시 저소득주민 생활안정 지원조례’를 신속히 제정한데 이어, 동시에 예비비를 신속하게 집행하는 한편 1차 추경예산에 ‘코로나19’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아동양육수당 지원, 저소득층 한시생활지원, 긴급복지지원, 입원자가격리자 생활지원 등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위기 상황에서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 경제 살리기 대책과 지원 사업들을 최대한 확대하고 신속하게 추진했다.이제는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즉, ‘포스트 코로나’가 화두다. 이에 어려운 민생의 안정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포항시는 ‘포스트(post) 코로나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핵심 현안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모든 힘을 쏟을 방침이다.이를 위해 의료, 보건, 경제, 산업, 기업, 소상공인, 시민생활 등을 각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포스트(post) 코로나 전문가 자문회의’도 열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금순환 촉진, 디지털·바이오산업 육성,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대응한 생활방역의 확산, 뉴노멀(New normal)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 발굴, 지속가능한 도시환경 조성을 비롯해 보건·의료, 경제·산업, 시민생활, 도시·환경 등 4대 분야별 전략과제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또한 경북도와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 간담회’를 열어 포항지역의 핵심 현안들을 공유하고, 미래 사업 발굴 및 국비확보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관련해서 포항시는 ‘코로나19’로부터 일상회복을 통한 사회통합과 경제활력으로 민생안정 도모를 목표로 의과대학·대학병원 유치와 환동해 해양복합전시센터 건립,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 융합기술산업지구 국제학교 신설 등 ‘포항형 뉴딜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그동안 신속하고 빈틈없는 방역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해주고 계신 시민 여러분께 거듭 깊이 감사드린다. 포항의 성공적인 방역체계 구축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과 경제 사회구조 변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시민과 함께 ‘코로나19’의 높은 파고를 넘어 새로운 포항을 위한 준비를 꼼꼼히 챙겨나갈 계획이다.단란한 일상을 멈추게 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그 어둠은 생각보다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예견이 나오기도 한다.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희망의 불씨’가 찾아올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유난히 위기에 함께하고 뭉치는 힘이 유난히 강한 민족이지 않은가? IMF 때가 그랬고,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그랬지 않은가?

2020-06-14

상서로운 집

영양은 경북에서는 오지 중에 오지이다. 육지 속에 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첩첩산중이다. 예전엔 포항에서 가려면 3시간은 걸리니 쉽게 나설 수 없는 곳이었지만 영덕상주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1시간 정도면 도착하니 옆 마을이 된 듯하다. 한걸음에 달려갔다.전국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하고 오염이 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가는 곳마다 경치 좋은 명승지요, 그 속에 품고 있는 문화재도 많다. 산이 깊으면 물이 많은 것인지 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어디나 내가 흐르고 내에 엎드려 다슬기를 잡는 어르신들이 눈에 뜨였다.오지라 해도 역사가 깊은 곳이다. 신라 때 고은(古隱)이라 불렀으며, 고구려 장수왕 때 잠깐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신라에게 돌아왔고 이후 영양(英陽)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조선시대 대표 정원인 서석지다. 오래전에 찾았을 때에는 없던 주차장이 생겼고, 담장을 새로 단장하는지 7월 2일까지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섰다. 그래도 아쉬워 잠시 들어가 봐도 되냐고 물으니 포클레인이 길을 비켜주었다.들어가는 문이 옆으로 놓였다. 왜 이렇게 돌아가게 해 놓았는지는 마당에 들어서면 알게 된다.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마당 전체가 연못이니 말이다. 마당이 없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연못의 풍경에 또 놀라게 된다. 여름에 가면 분홍빛 진한 연꽃이 만발해 이 동네가 연꽃을 심은 연못이라는 ‘연당리’라고 이름 붙여진 연유를 알게 된다.반변천 지류의 개울을 이용해 물을 끌어들이고 자연석의 오묘함을 최대한으로 살려 지은 집이다. 근처의 풍광을 외원으로 삼아 조선시대 사대부의 자연관과 넓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멀리 있는 보길도 세연정과 담양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정원에 들어가는 서석지, 광해군 때 정영방이라는 사람이 만든 조선 전통 정원으로 중요 민속 문화재 제108호이다.정원 풍경의 압권은 400년이 훨씬 넘게 이곳을 지킨 은행나무다. 아마도 서석지 역사와 함께 했을 것이다. 담장에 기댄 가지들은 담을 벗어나 마을 입구에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의젓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은 품새다. 벌어진 가지에 은행 알이 떨어져 싹을 틔워 나무에 어린 나무가 자랐다. 자식을 품은 어미의 모습이다. 여름에는 연꽃을 보러 가고 가을에는 금빛 찬란한 은행나무를 보러 이곳에 가야한다.김순희 수필가은행나무를 돌아 연못 북쪽에 자리한 주일재(主一齋, 서재) 앞에 선다. 네모난 단을 만들어 매화(梅),소나무(松),국화(菊),대나무(竹)를 심어 벗하였다. 사우단(四友壇)이다.‘매란국죽’이라 하여 사군자를 뜻할 텐데 난 대신 소나무를 심어 ‘매송국죽’이 되었다. 또한 서석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바로 연못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위 같은 돌(瑞石)이다. 울퉁불퉁 솟아난 60여개의 서석들은 때로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여 오묘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상서로운 돌이란 뜻으로 정자의 이름이 되었다. 서석지의 주인공이다. 저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연못의 물은 북동쪽 귀퉁이로 흘러 들어와 남서쪽으로 흘러나가도록 되어 있다.연못을 한 바퀴 돌면서 감상하고 이제 경정이라는 현판이 있는 정자에 올라 가 본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경치가 달리 보인다. 경정(敬亭)의 경은 성리학의 처음과 끝이다.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고 가지런히 하는 것이 경이라고 한다.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시원한 마음이 절로 든다. 몇 해 전 이곳에 올라 지인들과 두런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서늘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닥쳐왔다. 유월의 한낮의 뜨거움을 식히고 사라진 소나기로 주위가 더 고요해져 마루에 누워 한나절을 즐겼었다.오래된 건물에 들어가는 일은 타임머신을 타는 일이다. 시간은 다르지만 경정에서 글을 읽고 제자를 키우던 주인의 숨결을 느끼며 나도 한순간 조선의 선비가 되어본다. 낭랑한 시 읊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2020-06-14

찌라시 전쟁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광고의 홍수시대다. 찰나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광고 전쟁이 치열하다. 광고경쟁을 뚫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입장에서는 광고는 핵심 전략이다. 유명 연예인에게 거액의 모델료를 주고 광고를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광고문구(일명 카피)를 만들까 골몰하게 된다.일부 광고물은 사람들에게 공해가 되는 것 같다. ‘찌라시’라 불리는 전단지가 광고에 활용된다. 특히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성 전단지를 대로상에서 버젓이 나눠주는 경우가 있다. 단속관청의 관심이 소홀해지면 길거리 한 모퉁이를 차지하곤 한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온 부모들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다.유흥가 주변의 음란 전단지를 전쟁 치르듯 일소한 여성경찰지구대장이 있어 신문지상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단지를 뿌리고 도주하는 사람을 추적해 제작 장소까지 단속을 해서 발길을 끊게 했다고 한다. 청소년 유해환경을 정화시켰을 뿐 아니라 매일 아침 청소 부담을 줄여 학부모와 지자체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던 일이다. 시민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준 참다운 경찰활동이다.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면 가던 길을 멈칫하게 된다. 호주머니에 구겨 넣거나 휴지통이나 길거리에 내팽겨진다. 외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단지를 돌리던 청년들이 전단지가 구겨져 내던져지는 것을 보고 처음부터 구겨서 종이 뭉치로 나눠주자 사람들이 오히려 펼쳐보는 재기 넘치는 장면이었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외면을 참고 견디며 노상에서 하는 일이다. 나이가 제법 있는 아주머니나 심지어 연세를 드신 분들도 눈에 많이 띤다. 일정량을 배부해야 소액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이나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해내기 힘든 일이다.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어진 손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란 쉽지 않다. 길거리에서 무단으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이 법적으로 허용된 일도 아니다. 단호히 거절하고 받지 않는다면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전단지 홍보는 음란성 전단지 살포와 같은 법적, 정서적 불허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다. 주로 소상공인, 동네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홍보다. 이들이 고용한 사람들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전단지 내용을 보지 않거나 전단지에 실린 것들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힘겹게 전단지를 내미는 손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머니 깊숙이 찔러둔 손을 꺼내 한번쯤은 받아드는 것은 어떨까? 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유익하게 집행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북쪽으로 전단지 날리는 일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법적으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생계형으로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뜨끔해할지 모르겠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법적 형평성’이라는 말을 워낙 좋아하니까!

2020-06-14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에 바란다

양만재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가 지난 12일 포항에서 현지 조사 및 회의를 개최했다. 조사위는 지난해말 제정된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9명의 위원으로 지난 4월 1일 공식 출범했다. 조사위원이자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사위에 몇 가지 건의를 하고 싶다.진상 조사 결과에 대한 중간보고 형태로 시민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적어도 분기별로 조사 진척사항을 포항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생각된다.또한 지진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관련자를 소환할 경우 참석하지 않아도 특별법에서의 처벌 제재조항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조사위의 소환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조사위원 9명은 모두 탁월한 역량을 소유한 전문가들이다. 특히 지진관련 분야 두 위원은 교수이자 전문 과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학술지에 포항지진에 연구 논문을 발표해 이번 진상 조사에 대한 기대가 크다.진상위원회는 감사 결과 보고서를 조사의 중요한 근거로 삼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읽어 보고 분석한 감사보고서는 상세히 잘 정리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도 조사한계가 있는 걸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그 한계는 몇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첫째, 지진발생을 아주 단순하게 진단해 입지선정과 수리압력 분야에서 문제가 없다고 평가부분이다. 둘째, 조사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조사를 하지 않은 분야 산업부, 3·1 지진이후 경주 방폐장, 원전/ co2 저장고를 고려해서 위험조사의 하지 않은 산자부 책임은 거론하지 않았다. 셋째, 조사를 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 규명이 없다. 서울대 교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 건설기술연구원 등에 해당한다. 넷째는 책임감을 물었지만 처벌 제재 강도의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감사원 조사는 성격이 법적인 근거에 의한 업무 조사가 체계적이고 면밀한 조사를 하였지만, 포항지열발전소 참여자들이 주로 과학자 전문가라는 점이고 이들은 국내외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경력을 가진 참여자들이다. 감사원 감사는 그들이 발표 논문의 증거를 토대로 지열발전소 참여자들의 조사가 부족했다고 본다. 미국 에너지국의 7단계 프로토콜에서는 보험 가입이 적시되었지만 감사원은 이 부분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았다.따라서 진상위원회는 이상의 부족한 조사를 보강하고 그 책임을 다양한 차원, 즉 국가, 포항시, 과학공동체에서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특히 포항지열발전소에 참여한 산업부를 비롯한 컨소시엄의 참여자들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규명해야 하지만, 그들 중에는 전문적인 과학자이자 교수로서의 참여한 점을 고려해 그들에게 법적인 책임은 물론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 책임을 조사해 조사위원회의 차별성을 확보해주시길 바란다. 그 차별성은 과학자와 교수의 개발프로젝트의 관행과 문화를 변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6-14

‘김여정’과 ‘진중권’

안재휘 논설위원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말 폭탄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일부 탈북인들이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며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대북 전단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아예 전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비방들을 연일 쏘아대고 있다. 13일에 날아온 김여정의 폭언 미사일은 실로 오싹한 내용을 담고 있다.김여정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다음번 대적(對敵)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북한의 도발과 생트집에 대해서 국방부는 물론 우리 정부 누구도 까칠하게 되받아치지 않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김여정 한 마디에 마치 창고 안에 든 빈대 때려잡듯 온갖 부처가 다 나서서 타작 놀음을 하는 것도 일단 북한의 생떼를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치자.그런데 아주 엉뚱한 곳에서 이와 대비되는 야릇한 공방이 벌어졌다. 바로, 재야 평론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 마디에 발끈하여 집권세력이 앞다투어 모다깃매를 가하고 있는 행태다. 정의당 당원 출신으로서 ‘진보 논객’임을 자부하는 그는 지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집권당에 대해 예리한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그는 얼마 전 국민의당 초청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겨냥해 “대통령에게 철학이 없다, 의전 대통령처럼 느껴진다”는 인상비평성 발언을 내놨다. 그러자 윤영찬, 하승창, 최우규 등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그 발언을 융단폭격했다.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기형도 시인의 시 ‘빈 꽃밭에서’를 동원해 비난 대열에 동참했고, 진중권은 곧바로 ‘빈 똥밭’이라는 패러디 시로 응수했다. 진중권은 “품격과 예의를 갖추라”는 신동근 민주당 의원의 공격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향해 ‘쥐박이’·‘귀태’라고 한 건 민주당”이라며 반격했다.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아직, 진중권의 비평 한 마디에 떼거리로 달려들어 몰매를 퍼붓는 충신(?)들이 핵 위협을 일삼는 북한의 막강한 실력자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향해 퍼붓는 악담에 일언반구라도 반박했다는 소식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말이 안 되는 이중잣대다.더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우상화가 빚어낼 반민주적 통치행태다. 우리의 정치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분산되고, 소수의견도 알뜰히 존중되는 다양성 충만한 선진 민주정치로 발전돼가야 한다. 김여정의 폭언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건전한 표현의 자유는 충성경쟁을 벌이면서 무참히 깔아뭉개는 이중성은 타파돼야 한다. 진영논리가 빚어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도그마 앞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휘청거리고 있다.

2020-06-14

호모스펙타쿠스

그 시대의 취업난 풍경을 잘 반영한 것 중 하나가 취업 준비생이 만든 신조어다. 그 말 속에는 취업을 제때 못한 젊은이의 애절한 심정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취업 세태도 반영하고 있다.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취준생의 표현에는 구구절절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녹아 있다.코로나 사태가 젊은이의 취업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2020년 현재 10%를 넘었다. 2000년대 들면서 청년취업난은 거의 만성화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5월 중 우리나라 실업률은 20년 이래 최고다. 실업자 수도 127만 명에 달해 역대 최고다. 이대로 가면 우리경제가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이다.젊은이가 부모세대에 얹혀사는 것을 두고 캥거루족이라 한다. 비슷한 빨대족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30세가 넘어서도 부모한테 의존해 사는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금수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취업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젊은이다. 반대로 흙수저가 있다.취직이 안 돼 연애와 결혼, 출산을 아예 포기한 세대를 N포세대라 한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도 있다. 인구론은 인문대 출신 졸업생의 90%는 논다는 뜻이다.취직이 어렵자 대한민국을 지옥과 비교해 헬조선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 때 취업 3종 세트가 유행했다. 학벌과 학점, 토익점수만 잘 받으면 취업이 되던 시절 나온 유행어다. 그러나 이것도 지금은 자격증, 어학연수 등이 추가돼 취업 9종 세트로 바뀌었다.호모사피엔스에 스펙을 붙여 호모스펙타쿠스라는 말도 등장했다. 스펙이 중시되는 취업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지금의 실업률을 놓고 보면 취업을 위한 정부 그간 대책은 매번 헛발질했다. 젊은이를 실업의 공포에서 해방시킬 묘안은 없을까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6-14

두 마리 토끼 잡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출범하면서 진로선택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때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 정국을 이끌었고,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여당과 야당을 넘나들며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좌클릭에 대한 우려가 당내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에는 미래통합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와 김 비대위원장을 ‘용병’ ‘히딩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원 지사는 이날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 강연자로 나와 “앞으로는 용병이나 히딩크같은 외국 감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에 의한 승리를 해야 한다”라며 통합당의 혁신 작업을 추진중인 김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원 지사는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김 위원장을 겨냥한듯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라며 “보수의 선택은 지난 100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우리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은 보수 정당이고, 보수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해 온 세력이니, 외부 세력이 아니라 보수 자체의 힘으로 정권을 되찾아오자는 얘기다.좌클릭 정책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섰던 김 위원장은 급기야 당내 중진의원들과 만나 “보수의 가치를 부정한 게 아니다”라며 다독여야 했다.지난 10일 국회서 열린 비대위원장·중진의원 회의에는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 정진석, 서병수(이상 5선), 권영세, 박진, 이명수, 홍문표(이상 4선)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중진의원들은 대체로 보수노선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좌클릭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적극 표명했다. 중진 의원들은 “‘보수’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근본 가치를 유지하면서 진취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박 진) “확실한 당의 좌표가 설정되면 조금 서운하고 부족해도 ‘가자’하는 합창이 나올 수 있는데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우려스럽다” (홍문표)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제, 전일보육제 등 이슈를 선점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이슈 선점에 따른 당의 정책 대안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이명수) 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아이러니한 것은 통합당 중진들이 김 비대위원장의 ‘기본소득’ 카드를 선뜻 받아들지 못하는 사이에 더불어민주당 대권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고 나서는 바람에 범여권내 ‘기본소득제 도입’대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구도가 형성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김 비대위원장 체제 출범이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했지만 4주째 하락한 반면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총선 이후 최고치인 28.7%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이는 김 비대위원장의 ‘중도 공략 전략’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추후 계속될 미래통합당의 보수와 중도, ‘두 마리 토끼잡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2020-06-11

공중보건과 에너지 절약

매년 8월 22일은 에너지의 날이다. 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미래에 대비한 에너지 절약을 홍보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2003년 8월 22일 국내 전력소비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날을 기념해 만들었다. 이날은 ‘전국 동시5분 소등’ 행사가 벌어진다. 전국의 지자체가 중심이 돼 저녁 9시에 5분간 실내 전등을 끄는 행사다. 에너지 절약을 국민이 직접 실천하고 또 에너지의 소중함도 체험케 한다.에너지 절약은 지구온난화 속도를 감소시키고 기후 변화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에너지 절약운동은 아무리 많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범국민적 캠페인이다.에너지 당국은 여름철에 과다 사용되는 전력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 설정온도 2℃ 올리기와 같은 각종 절약 캠페인을 매년 벌인다.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의 플러그 뽑기나 엘리베이터 사용 자제, 에너지 효율 등급품 사용 등이 그런 운동의 일환이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문 열고 냉방영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단속을 벌여 왔다.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서 실내 냉방과 코로나 감염증 발생과의 상관관계가 관심을 받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순환 없이 지속적으로 냉방을 한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실내공기 환원차원에서 문을 열어놓는다면 에너지 낭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산자부는 매년 단속하던 문 열고 냉방영업에 대해 단속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밀폐된 작은 공간에서 문 닫고 영업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다.공중보건을 생각하면 문 열고 냉방을 허용해야겠지만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본다면 낭비 규모가 너무 커 이래저래 고민이라는 소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11

문제는 ‘나’의 바깥에도 있다

사람은 역시 여러 유형의 기질을 타고 나는 것 같다. 프로이트가 말하기를, 장미꽃 만발한 화원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저 꽃도 곧 시들겠구나 하고 우울해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낙천가와 우울증 성향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이겠지만, 같은 현상을 대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에 기우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부류의 사람들은 원인을 여러가지로 따져 이런 원인, 저런 원인, 하고 양적인 비율을 할당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 오로지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어 그것과 싸우고자 한다.생각해 보면 나는 2,30대 어디쯤까지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얽힌 실타래 풀리듯 저절로 풀릴 것 같은 마법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다고 할까. 그후에는 그런 사고를 버리려 노력했다. 질 대신에 양을, 본질 대신에 문제를 이루는 원인 그룹을 찾아내서 비중이 높은 것부터 낮은 것까지 중요성을 그에 맞게 부여하려 했다.그럼으로써 사실 나는 후자의 사고법에 익숙했을 때 친했던 사람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종교적 근본주의 같은 것으로는 현실 문제에 무력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삶을 결코 많이 살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도 나는 한때는 문제를 주로 내 안에서 찾는 이른바 ‘반성적’ 체질을 갖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남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해 볼 수 없었고 내 자신 아주 약점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사람들, 사태를 호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야말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문제의 원인을 나와 내 바깥에서 고루 찾고 그 원인자의 중요도만큼 의미를 부여해서 함께 해결해 나가려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전히 나는 본질주의적 사고법에 기울어 있는 불균형의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그런 불완전, 결핍, 편향을 가진 존재이고, 그래서 조화니 원만이니 원융이니를 이상으로 삼는다. 문제는 나만에 있지 않고 내가 없어져도 문제는 남는다. 또 나에게만 이유가 있지 않기에 내 외부의 문제들과 싸우다 보면 내 삶이 좀더 나아질 수도 있다.며칠 전 파주 자택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마포 쉼터 소장님의 소식이 들렸다. 왜 ‘스스로’였나? 어디까지 진실일까? 생각하면서 짓눌리기 쉬운 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서 싸워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이 사회가 그런 힘 필요한 사람들을 더 잘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늘 문제에 직면해 있고 어떻게든 견뎌가며 나아가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11

대북 전단이 통일의 열쇠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넘도록 통일을 노래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이 수차례 회담을 하고, 정상들이 만나고, 공동선언문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김일성일족의 세습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기극에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 햇빛정책이니 남북교류니 하는 것도 세습독재를 연장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돈과 시간을 대준 것이 전부였다.통일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까닭은 천만 이산가족의 해원이 그 첫째요, 압제와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의 해방이 그 둘째고, 민족이 하나로 뭉쳐 더 부강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 그 셋째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절실한 것이 통일에 대한 염원일진대 도대체 무엇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어느 정권이 통일을 원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통일에는 딱 두 가지 방법밖엔 없다. 남북이 합의를 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란 말은 같지만 그 내용은 남북이 정반대다. 북쪽은 어디까지나 적화통일이고 남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이다. 그러니 합의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고, 남은 하나는 흡수통일인데 국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남한이 북한에 흡수된다는 건 가당한 일이 아니다. 그런즉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방법밖엔 없는데, 그것은 곧 북한의 세습체제의 종식을 전제하는 것이다.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치고 북한의 세습체제가 존속하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 터인데, 지금 한국 정부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남북이 이념적 노선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통일을 위해서 분단의 간극을 좁히는 길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일단은 남한이 사회주의 체제로 가야 한다는 속셈인데,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남한의 경제가 망해서 북한과 비슷한 수준이 되게 하려는 것이나 다를 게 없는 수작이다.며칠 전 북한의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날린 탈북인 단체와 남한 정부에 대고 온갖 쌍욕과 공갈 협박을 해댔다. 그렇게 발악을 하는 것은 대북전단이 그만큼 김정은 세습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얘기다. 외부에서 무력으로 북쪽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거라면 민중들의 봉기나 김정은의 조기사망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밖에서는 미국과 유엔의 제재로 계속해서 숨통을 조이고, 전단 살포 등으로 내부의 봉기를 유도하는 줄탁동기가 가장 유력한 통일의 방안임에 틀림이 없다. 꾸준하고 대대적인 전단 살포야 말로 김정은의 명줄을 단축하는 가장 효과적인 통일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북한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아는 탈북인들이 온갖 위협과 박해에도 목숨을 내놓고 북녘을 향해 전단지를 날리는 까닭이다.김여정의 공갈협박에 안절부절못하는 이 정부의 꼴이 참으로 가관이다. 세습독재의 주술에 걸려있는 북한 주민을 깨우는 대북전단을 백해무익이라고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들이야말로 이념의 망상에 사로잡혀 통일에 역행하고 민족에 반역하는 백해무익한 자들이다. 머지않아 역사의 심판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2020-06-11

포스텍, 세계 30위권 대학으로 가야 한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2010년 9월 필자는 프랑스 낭트에서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저녁때 호텔방에서 이메일을 열어보니 영국의 유명한 평가기관 THE라는 곳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그 이메일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시간을 보았다. 한국시간 새벽 4시. 그래도 좋다. 당시 백성기 총장께 전화를 했다. 한국은 취침 시간이었다. 한국 최초로 세계 30위 내에 한국대학이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압도적으로 카이스트, 서울대를 제치고 1등으로 랭크되었다.1994년부터 시작된 중앙일보 랭킹에서 포스텍이 국내 1위를 종종 차지하곤 했지만 국제랭킹에서 국내 1위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전화를 잡은 두 사람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고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포스텍 세계 28위”기사가 도배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28위의 자존심은 여전히 포스텍의 그리고 한국대학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이번주에 THE와 함께 유명한 QS 랭킹 기관이 월드 랭킹을 발표하였다. 포스텍은 100위안에 들긴 했지만(77위)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에 이어 4위에 랭크되었다. THE 월드랭킹에서는 작년 146위로 서울대, 카이스트 성균관대에 이어 역시 4위로 랭크되었다. 현재 포스텍은 주요 6개 대학(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 중에서 학계평판도(AR)가 최하위이다. QS 기준으로 서울대의 98점, 카이스트 87점에 비하여 포스텍은 43점이다. 만일 포스텍의 AR이 카이스트 만큼만 되어도 바로 국내 1위로 랭크 되는 상황이다.연구력은 국내 1위인 포스텍이 대학 랭킹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 AR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AR은 대학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대학의 서열은 연구력의 서열이 아니며 선호도의 서열이기 때문이다.포스텍은 AR을 카이스트 만큼 끌어올려 대학평가를 논문피인용 경쟁으로 끌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포스텍은 AR 향상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력은 방법론이 맞아야 한다.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랭킹도 리더가 되어야 한다. 랭킹이 낮은 상태에서 외치는 구호는 공허한 구호일뿐이다.세계 30위권에 들어가고 국내 1위로 복귀하는 것은 포스텍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포스텍의 위상은 더이상 떨어져서는 안 된다. 대학의 위상이 높아야 좋은 학생,·대학원생, 좋은 교수를 지속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이 지역 그리고 한국의 자랑과 자부심인 포스텍은 이제 물러날 수 없는 벼랑에 와있다. 배수진을 치고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세계대학 랭킹을 회복해야 한다. 불과 같은 욕망을 불살라야 한다. 그건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포스텍이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다.

2020-06-11

변하는 세상이 차별을 극복해야

장규열 한동대 교수세상이 빠르게 변해간다. 코로나19와 겹치면서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일마저 경험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사회활동. 재택근무와 온라인교육. 변화의 가닥과 범위가 워낙 다양하고 글로벌하여,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접촉을 최소로 하고 가능한 한 만나지 않으면서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감염위험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하여 변화에 적응하면서, 한편으로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고 있다. 차별.미국이 흔들린다. 백인경찰의 인종차별적 행태에 흑인남성이 스러져간 일을 기화로 온 미국이 다시 한번 몸살을 앓는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지만, 집요하리만큼 사라지지 않는 미국의 치부로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인종차별이 그들의 약점이라면 혹 우리에겐 약점이 없을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어두운 구석이 우리에게도 있다. 우선 ‘다문화현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 디지털 초연결사회로 진입하고 글로벌환경이 펼쳐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차피 섞여야 한다.닮은 사람들만 가까이 하겠다는 고집은 내려놓아야 한다. 중국화교 공동체가 흥왕하지 못했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는 소리도 있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를 찾았을 적에도 대단히 부정적이지 않았던가. 초등학교에는 이미 다문화자녀들이 우리 국민으로 자라나고 있다. 좁다락한 나라에서 우리만큼 지방색을 드러내며 살기도 힘들지 않을까.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오해부터 씻어야 한다.다른 것을 틀리고 잘못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수정해야 한다. 차별하고 배격하기 보다 궁금하고 신기해야 한다. 다른 이들로부터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무엇을 배울 것인지 또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 무엇을 나눌 것인지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 공감과 배려를 발휘해야 한다. 겉모양이 바뀌어 가듯이 속에 든 생각에도 변화를 불러와야 한다. 상생과 화합은 구호로만 성취되지 않는다. 호기심과 관심으로 가까이 당겨야 한다.사회관계망(Social Network Services)은 더욱 촘촘해 질 터이다. 지구상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할 정도로 변화해 간다. 다른 사람들을 낯설게 여기고 편가르며 등돌리는 습관은 이제 벗어야 한다.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을 반기며 포용하는 습관부터 들여야 한다. 미국이 진정으로 앞선 나라가 될 양이면 사람을 피부색으로 다르게 보는 구태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한국이 참으로 국격을 높여가려면 여러 모양의 차별과 혐오부터 멀리해야 한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안타깝도록 그대로인 차별의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풍성하게 다양한 모습들이 문턱없이 어울리며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일어나야 한다.인류가 만나는 변화가 단절과 반목을 극복하기 위해서,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차별과 혐오도 가라.

2020-06-10

QR코드

QR코드는 요약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격자무늬의 2차원 코드를 말한다.사각형의 가로세로 격자무늬에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2차원(매트릭스) 형식의 코드로, ‘QR’이란 ‘Quick Response’의 머리글자다. 1994년 일본 덴소웨이브사(社)가 개발했으며, 덴소웨이브사가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QR코드는 숫자 최대 7천89자, 문자(ASCII) 최대 4천296자, 이진(8비트) 최대 2천953바이트, 한자 최대 1천817자를 저장할 수 있으며, 일반 바코드보다 인식속도와 인식률, 복원력이 뛰어나다.바코드가 주로 계산이나 재고관리, 상품확인 등을 위해 사용된다면 QR코드는 마케팅이나 홍보, PR 수단으로 많이 사용된다.QR코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스마트폰 사용자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QR코드 스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은 후, 스마트폰으로 광고판·홍보지·포스터·잡지·인터넷 등에 게재된 QR코드를 스캔하기만 하면 각종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나 영화 포스터의 QR코드를 스캔하면 홍보동영상 및 사진 정보, 할인권 및 입장권 정보, 영화관 또는 경기장 정보 등을 받을 수 있는 식이다.코로나19사태를 맞아 접촉자 추적 및 역학조사 등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는 데, QR코드의 사용은 필연적 귀결이다.노래연습장과 클럽, 헌팅포차 등 감염병 전파 위험이 높은 고위험시설 출입자는 반드시 개인신상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어야 한다니 QR코드에 대한 활용도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10

인문학적 마인드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얼마전 필자의 모교인 동국대학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신 큰스님을 뵈었다.모교 사랑이 남다르신 분이다.더구나 종립 학교인 모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시었으니 오죽하실까만은 만나자마자 우리 동국대학이 배출한 만해 스님과 무애 양주동, 미당 서정주를 거론 하시더니 우리 대학은 인문학의 보고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학 중심 대학임을 갈파하시는 것이었다.요즘 세상이 하수상 하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게 된다.‘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가, 온 곳도 모르니 갈 곳인들 알을 손가’살아가면 느끼는 바이지만, 세상이 살기 편리해지고 문명이 천지개벽을 하였다고 하지만, 인간의 생존은 더욱 각박해지고 험난 일변도로 변해 가는 듯하다.이러한 때에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보며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얼마전 대학에 적을 둔 젊은 친구들에게 인문학에 대하여 물었다.여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인문학이 단순히 유적을 탐방하거나 역사적 인물의 삶 속에 내재된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것만은 아니다.어떤 이는 공자, 맹자의 논어 대학 등 고전읽기가 인문학이라고 목청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인문학이 경험적인 세계에서의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의 인문학은 분석적, 비판적 방법으로 인간의 여러 조건들을 연구하는 좀 더 사변적인 학문이다.그러니 ‘인문학이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니다’라는 말은 결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흐름과 그 근원만은 알 수가 있다.현대적 의미에서 철학, 미학, 문학, 역사 등 대학의 교양 과목이 인문학을 의미하고 고대어, 현대어 등의 언어와 언어학, 문학, 역사, 철학, 종교가 포함되며 흔히 예능으로 분류하는 음악, 연극,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도 포함되기도 하고 사회과학 분야인 인류학, 지역학, 커뮤니케이션학, 문화연구, 법학 등도 광의적 의미에서의 인문학이다.인문학 내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디지털 기기와 방법을 사용하거나 고전 문헌을 데이터화한다든가 하는 방법적 과정을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어찌되었든 인문학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제반 문제를 성찰하는 학문이며 인간이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며 삶과 죽음, 대립과 갈등이 있고 사랑과 증오가 인간세계에 공존한다는 사실이다.또한 이성과 야만의 틈에서 비합리성과 절망, 고독의 문제를 직시하고 분석하여 성찰하는 것이 인문학이다.그러므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 길은 인간에 대한 모든 관심 혹은 배려심을 지니는 것이며 넘쳐 나는 자본의 물결과 전염병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인문학적 마인드를 지닌 대학인 양성이 가장 시급한 시점이라 하겠다.

2020-06-10

슈가 하이

병원 가는 날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흡입기와 천식 비염약 등을 처방 받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흡기내과를 찾는 게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올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랍니다. 여름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36도가 넘는데다 습도마저 높습니다. 차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납니다. 비상용 인삼 캔디 한 알을 머금습니다. 사실 출발할 땐 더운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후식으로 달달한 케이크까지 먹은 터라 도리어 상기된 기분이었습니다.병원 마당 천막, 1차로 체온을 잽니다. 무사통과입니다. 호흡기내과가 목적지라고 했더니, 안내하는 분이 병원 모퉁이를 가리킵니다. 그 새 출입구가 바뀌었습니다. 공용 출입구에서 호흡기 환자 전용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2층에 있던 호흡기내과는 입구와 가까운 1층 구석자리로 옮겨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세심한 배려이자 온당한 조치입니다. 호흡기 질환이야말로 코로나 앞에서 주의가 필요한 기저질환이니까요. 취약한 면역력으로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건장한 이들에 비해 몇 배나 위험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묘한 긴박감과 미세한 파장이 일어납니다.진료실 입구, 2차로 체온을 잽니다. 미열이 있나 봅니다. 오늘 같은 날씨엔 다들 체온이 조금 높으니 괜찮다며 간호사는 진료 대기실을 안내합니다. 대기실 앞 접수대, 3차로 귀의 체온을 잽니다. 미심쩍은지 왼쪽 귀로 바꿔 잽니다. 37. 7도. 양쪽 귀 체온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규정 체온보다 높아 진료가 불가하답니다. 비대면으로 처방전은 받을 수 있답니다. 그토록 원했던 비대면 진료가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성사 되게 생겼습니다.다시 진료실 입구, 밀려나 처방전을 기다리는 동안 4차로 체온을 잽니다. 여전히 열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담당 간호사가 의자를 권합니다. 상냥함과 친절함을 장착했지만 그 맘이 편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감 있는 환자를 대면할 텐데 그 스트레스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앉는 시늉만 하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마음 씀이 진심으로 느껴져 더 미안해집니다. 친절 카드 작성으로 화답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걸로 보아 저 스스로 당황한 게 분명합니다. 멀쩡한데 체온이 높다니 어인 일일까, 그 생각에만 갇혀 있습니다.처방전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자주 들어도 금세 까먹는 각종 꽃들이 병원 뜰을 장식합니다. 꽃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대궁을 꼿꼿이 말아 올리지는 못합니다. 등나무 벤치에 맞춤한 그늘이 집니다. 가서 앉습니다. 왜 열이 나지? 하기야 밖의 열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 지경의 날씨이니 열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높은 온도와 습도, 에어컨을 켠 차 안과 바깥의 온도 차, 달라진 병원 환경, 숨 돌릴 틈도 없이 재고 또 잰 체온, 가장 높은 체온의 시간은 늦은 오후라는 점 등이 갑작스레 열이 돋은 원인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부대껴 열을 방출하지 못한 제 몸이 일시적으로 과부하를 일으킨 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그 와중에 강력하게 덧붙이고 싶은 요인이 있으니, 단 맛 중독이 그것입니다. 후식으로 먹은 케이크와 차에서 내릴 때 긴급으로 입가심한 인삼 캔디 말입니다. 저는 단 것을 유달리 좋아합니다. ‘달콤함’을 먹으면 가라앉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슈가 하이(sugar high)라는 말이 제게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설탕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피로가 풀리고 흥분감 같은 걸 느끼는 현상 말입니다. 그 효과가 소멸되면 안 먹은 만 못하는데도 자꾸 찾게 됩니다. 완전한 공복에는 그런 욕구가 덜한데, 식후엔 뭔가 허전함이 밀려오면서 단 것이 뇌리에 맴돕니다. 욕구가 채워지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면서 활기가 돕니다. 높아진 오늘의 열은 여러 요인 못지않게 슈가 하이 현상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듭니다.김살로메소설가단맛은 생래적입니다. 기억의 원형처럼 자리 잡은 엄마 젖의 달콤함이 그 매혹적 중독의 출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탕맛에 홀릭 된 제 흥분지수가 열감에 기름 역할을 한 건 아닐까요. 몸은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설탕에 기댄 제 심리 상태가 피톨도 달뜨게 했나 봅니다. 여러 약점이 드러남에도 쉽사리 단맛의 쾌감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커피 없이 못 산 ‘커피 칸타타’의 여주인공처럼 노래해 봅니다. 다 없어도 괜찮아. 하지만 설탕만은 못 끊어. 열이 돋는대도 순간의 기쁨이 보장되는 설탕만은 못 끊어.사랑에 빠지는 게 죄가 아니듯, 적당한(!) 달콤함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각설하고 처방약을 받아들고 귀가한 뒤 체온부터 쟀습니다. 정상입니다. 멀쩡하게 돌아온 몸의 온도, 혹시라도 당 떨어져 그런가 싶어 제 눈은 벌써 남은 케이크가 든 냉장고를 더듬습니다.

2020-06-10

화초를 들이며

윤순옥수필가봄맞이 행사를 하는 동네 꽃집에서 화초를 골라보았다. 욕심을 내다보니 주인이 끼워준 꽃까지 합해 열 개가 넘었다. 발렌타인자스민, 스투키, 산세베리아, 크로톤 등 이름표 하나씩을 달고 꽃집 직원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설레고 반가웠다.새 식구를 들이면서 베란다 터줏대감들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봄이 다 가도록 연분홍 꽃을 피우던 삼단 철쭉, 노르스름한 줄이 예뻐 자꾸 눈이 가던 관음죽, 한결같은 모습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군자란도 예외가 아니었다.새로 들인 화초에 정성을 쏟느라 하루가 바빴다. 아침저녁으로 물때를 살피고 햇빛을 쫓아 베란다에 들락거렸다. 그 때문인지 홍콩야자는 잎이 풍성해지고, 꽃기린, 제라늄도 꽃망울을 터뜨려 내 애정에 보답했다. 새 식물에 전념하는 사이 구석으로 밀려난 화초에 차츰 물주는 일도 잊었다. 햇빛 한 줌이 귀해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그렇게 봄이 무르익었다. 주인의 홀대에도 오래 된 화초들은 제 빛을 내고 있었다. 피울 꽃은 피우고 키울 잎은 키웠다. 아차! 싶었다. 새 화초를 보는 즐거움에 빠져 그것들에 소홀했던 사실을 깨달았다.수도꼭지를 틀었다.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호스가 꿀렁거렸고 줄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막힌 것이 터지듯 시원했다. 그동안의 일을 만회라도 하듯 옛 화초에 오래 물을 주었다. 물줄기에 군자란 잎이 흔들리자 잎과 잎 사이에 희끗한 것이 드러났다. 꽃대였다. 꽃망울을 만들기 시작한 어린 꽃대가 숨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주황색 탐스러운 봄을 안겨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꽃망울을 보니 더욱 미안하고 감격스러웠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슬렀다. 호들갑스러운 내 모습과 달리 언제나 조용히 꽃대를 피어 올리는 군자란은 과연 이름값을 하고도 남았다.화분 배치를 새로이 했다. 화분 끄는 소리, 낑낑대며 내 뱉는 거친 내 숨소리까지 겹쳐 시끄러웠다. 식생이 비슷한 종류별로 자리이동이 끝나자 비로소 모두 제자리에 든 듯하였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마음 따로 몸 따로 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진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전기 포트에 적당량 물을 붓고 끓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사람의 일이라고 다를까. 오래 알던 사람을 군자란 밀어내듯 했더라면, 상황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식물을 두고 마음 쓰는 나에게 또 한마디 던질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균형이 깨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되돌릴 기회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 생각에 잠기는 동안 전기 포트에서 신호음이 울렸다.원영 스님의 책 ‘삶이 지금 어딜 가느냐고 불러 세웠다’를 손에서 놓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즈음 나는 바쁜 일상에 쫓겨 방향도 목적지도 잊은 채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만난 책 한 권이 멈추면 안 될 것 같던 나를 멈추게 했다. 한두 번 보고 들은 말이 아니었을 텐데 ‘삶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멈칫했다.책 읽기를 멈추고 나를 보았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내 모습과 마주했다. 욕심에서 비롯된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래 전부터 해왔던 과외 일을 줄이는 것이었다. 학생들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고 새 일을 하면서도 붙들고 살았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삶의 지혜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지혜를 얻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새로운 것에 눈이 팔려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진 않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다시 가져봐야겠다.어느새 봄도 지나고 초여름 햇살이 베란다에 가득 내린다.

2020-06-10

재난 지원금으로 전국 학교에 코로나19 검사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적막강산이던 학교가 드디어 활기를 찾았다. 5월까지만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교사들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분명 메아리가 되어 돌아와야 할 학생들의 소리는 모니터 안에서만 맴돌았다. 교실이 힘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학교에 아이들이 돌아왔다.물론 지금의 등교 수업을 교사라고 다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EBS 수업을 자신의 수업인 것처럼 제공한 교사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마스크 쓰고 수업하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알기나 아나.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온라인에서 EBS 수업 틀어주고 학생보고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차마 학교 수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진 지난 몇 달 동안 학교는 교육수요자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필자가 만난 많은 학생의 이야기이다. “시험 기간에 학교에 가서 시험만 치면 되잖아요. 지금도 대부분 EBS 듣고 있어요. 학교에서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이들 학생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말해주는 언론 보도 자료가 있다.“원격수업 방식은 기대만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가 교사 22만4천여 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 쌍방향으로 원격수업을 한 교사는 5%뿐입니다. 독후감 등 숙제를 내주는 ‘과제 수행형’이 10%, EBS 강의 등을 보는 ‘콘텐츠 활용형’이 40%였습니다. 나머지 43%는 혼합형인데 과제형과 콘텐츠형을 섞은 교사가 대다수였습니다. (….)”교육부 자료가 말해주듯 지금까지 학교에서 해 온 온라인 수업은 수업이라고 할 수 없다. 교육부 어느 관계자가 필자에게 말한 것처럼 학습 도움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 정부와 관련 있는 교육평론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당 언론은 기사 제목을 “한국 온라인 수업 짱”이라고 달았다. 웃기지도 않는다.“다른 나라 대비 굉장히 잘 됐습니다. 지난 3월 (….) 영국 고등학교를 둘러봤습니다.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잘하는 곳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만큼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어요.”그에게 묻고 싶다, EBS 틀어주는 것이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인지?산자연중학교는 지난주 월요일에 전국에 주소를 둔 전교생이 모두 등교했다. 처음에는 우려도 컸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등교 다음 날 교육청의 도움으로 전교생과 강사 선생님을 포함하여 전 교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검사자 전원이 음성이 나왔다. 검사 전후 학교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검사 전에는 서로를 못 믿었다. 불신은 교육 활동을 위축시켰다. 하지만 검사 후 학교 교육 활동은 정상을 되찾았다.전 국민 재난 지원금 등 천문학적인 국가 돈이 풀리고 있다. 물론 모두 빚이다. 이왕 빚내서 하는 빚잔치라면 가장 시급한 전 국민 코로나 검사부터 하면 어떨까! 전 국민이 어려우면 전국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부터라도 하면 지금의 이 막연한 공포가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격주 등교 같은 해괴망측한 일은 안 해도 된다.

2020-06-10

87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김규종 경북대 교수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사건이 있다. 그들 덕에 인생은 풍성하고 화사해진다. 나이 들어서 얘깃거리가 부족한 사람은 사건과 관계가 궁색한 때문이다. 나와 무관하고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과 관계와 사건을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대상에 대한 지적(知的) 호기심이 태부족한 때문일 것이다. 지구별이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강박증 환자 역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1987년 6월 서울은 뜨거웠다. 6월에 예정된 평화 대행진은 시민들을 들뜨게 하였다. 피 끓는 열혈 청춘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6월 10일, 18일 그리고 26일의 세 번에 걸친 저항운동을 뭉뚱그려 ‘6·10민주항쟁’이라 부른다. 대학원 박사과정생이면서 강사이자 러시아문화연구소 간사에 민족극연구회 회원이었던 나도 1987년 6월의 소용돌이 속으로 합류한다. 80년 5월을 되새기면서!6월 10일 저녁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난다. 그러다 불쑥 명동성당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가볼까, 한 마디로 그 자리를 뜬다. 명동성당은 넓지 않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생들과 전투경찰로 양분되어 있었다. 평온한 분위기에서도 감촉되는 팽팽한 긴장감이 한밤중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상황. 그 순간, 날카롭고 새된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전투준비!”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지?! 들어가, 아니면 후퇴?!” 친구와 나는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 물러선다. 그는 출근해서 아이들 건사해야 할 가장이었고, 나는 시간강사이자 간사로서 직분이 있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우리가 물러선 이유는. 28∼9세의 호기로운 나이에도 우리는 쫓기듯 자리를 물러 나왔다. 살면서 지난날을 돌이키다 후회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때 일이 간간이 떠오르곤 한다.대학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매일같이 모친은 “데모하지 마라! 네가 우리 집안 기둥이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모질도록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모친에게 둘째 아들은 무너진 집안을 재건하는 첨병이었다. 어떻게 해서 대학에 보낸 자식인데 데모 한 번으로 속절없이 자식을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언제나 먼발치에서 시위대를 보고, 마음속으로나 동조했던 소시민의 전형으로 살았던 내가 늘 우울하고 억울했다.80년 5월 15일 데모하다가 경동시장 부근에서 전경한테 잡혀들어갔던 기억이 80년대의 나를 구원해준 유일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87년 6월의 사흘을 나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시위대와 함께했다. 개운사 젊은 승려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들은 모두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그토록 뜨겁던 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현대사는 다시 써졌고, 30년 넘도록 87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한낱 추억이나 영화로 반추되는 6월 민주항쟁기념일이 어제였다. 과연 나는 온전하게 사람과 사건과 대면하면서 우리의 기억과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2020-06-10

김여정의 대남 위협 발언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여정은 공식적으로는 북한노동당의 선전선동담당 부부장이며 정치국 후보위원이다. 그는 평창올림픽 때 사절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하노이 회담 시에도 오빠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였다.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정치보다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이복형 김정남은 이미 독살되었고 고모부 장성택은 무참히 숙청되었다. 고모 김경희는 투병중이고, 폴란드 대사였던 이복 삼촌 김평일도 귀국했으나 실권이 없다. 결국 김여정은 현재 백두 혈통 중 최고 권력 실세이다.북한 실질적 권력 2인자 김여정의 이번 대남 압박 발언은 그 강도가 높다. 그는 휴전선 일대에서 남측이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할 경우 개성 공단과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9·19 남북 군사 합의서까지 폐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남쪽의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공들인 남북 관계가 다시 냉각상태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치적인 4·27 판문점 선언과 세 차례의 정상회담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이번 김여정 발언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김여정의 발언은 김정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남한의 자유북한 연합 박상학 대표가 보내는 전단의 핵심은 김정은에 대한 폭로에 있다. 탈북자 출신인 그는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대북 삐라를 살포하고 있다. 이번 전단에도 김정은을 ‘새로운 핵무기로 충격적인 행위를 하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발언 배경은 수령 모독은 언제나 응징한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을 뿐 아니라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이 좌절된 시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김여정의 이러한 발언에 대한 여야의 대응은 판이하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발언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여당 김홍일 의원은 국회에서 ‘전단 살포 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그러한 법의 제정은 ‘김여정의 하명법’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초래한 결과로 보고 있다. 사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유엔 대북 인권 결의안의 공동 발의국에도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북한연합은 6·25 70주년인 6월 25일 전단 100만장을 다시 북으로 보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정부는 북한의 강경 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대화부터 제의해야 할 것이다. 북의 공세적 발언은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대화제의라는 의도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중첩되어 있다. 그들의 대중 무역과 교류 협력은 현격히 위축되고 식량도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은 내부적 위기 앞에 종종 대남 강경노선을 천명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즉각적 반응보다 대북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선 판문점 연락사무소부터 재가동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0-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