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선 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계절, 모든 걸 얼려버리고 움츠리게 할 듯한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하기만 하다. 갈수록 으스스해지는 기온에 코로나19의 난맥상마저 가중되니 세상이 정말 꽁꽁 얼어붙을 것만 같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도 모를 불안과 위축이 휑한 가슴에 스며들어도 수묵빛 세월은 또 한 겹 연륜을 두르며 세모로 치닫고 있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동짓달은 한겨울의 길목이자 한 해를 갈무리하는 매듭달이다. 추위와 매듭에 즈음해서 버릴 것은 떨구고 남길 것은 거두고 새길 것은 쟁이는 정리와 동장(冬藏)의 시간이다. 즉 불필요함을 없애고 내밀함을 채워가는 과정이랄까? 비웠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비우는 자연 순환이 그러하듯이 세상만사 돌아가는 이치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들판에 가득했던 곡식을 거둬들이고 텅 비게 남은 들녘이나 무성했던 잎새와 열매를 떨군 채 빈 가지로 떨고 있는 나목은 결코 쓸쓸하다거나 허전하지가 않다. 채움으로서 비로소 비워낼 수 있고 비움은 또 다시 새로운 채움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사람이건 동물이건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배를 채우고 배설로 비워낸다. 비움으로써 더 가벼워지고 넉넉해지며 아름다워질 수 있다. 산사의 범종도 소리를 울려 떠나 보냄으로써 골과 마루에 은은한 종소리가 가득해진다. 그래서 ‘텅 빈 충만’이라 했던가.
봄에 핀 꽃의 향기와 여름날에 드리워진 시원한 녹음과 가을날에 내려앉은 색조 고운 단풍을 모두 채우고 떠나 보내며, 이제는 겨울날의 허허롭지만 을씨년스럽지 않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어째보면 비웠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비우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의 습성이다. 즉, 비움과 채움은 자연의 이치면서 인간사회의 논리가 아닌가 싶다. 노력과 성공으로 야망을 채우고 비움과 떠남으로 용퇴와 양보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비쳐진다. 떠남과 물러남을 아는 지혜와 판단은 누구에게나 통용되지만 그렇게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는 않다. 그 모든 것들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남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라 했다. 세상만물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는 말이다. 채움에도 깊이가 있고 비움에도 정도가 있다. 채웠다고 모든 걸 충족시킬 수 없으며 비워내도 마음 켕기는 구석이 있다. 적절히 채우고 적당히 비워내는 것이야 말로 개인과 시민사회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희망과 욕심으로 채워진 가슴을 만족과 불욕(不辱)으로 마무리하는 용단과 슬기가 있어야 한다.
칩거와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시기에 코로나로 인해 집콕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절체절명의 시대적인 상황이라지만, 이런 때일수록 욕심과 마음을 비우고 책과 다양한 콘텐츠로 마음의 양식을 쌓아가면 어떨까? 부질없는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고 신선한 생각을 채워가면 의식과 행동에 작지만 큰 변화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욕심을 줄일수록 잡다함이 사라지고 마음을 모을수록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