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으로 불렸던 김삿갓의 시 가운데 시(是)와 비(非) 두 글자 만으로 지은 칠언절구 시가 있다.
시시비비비시시(是是非非非是是) 시비비시비비시(是非非是非非是)로 시작하는 시다. 내용은 이렇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그른 것 옳다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중략)
김삿갓의 글 재주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 커서는 큰 벼슬을 할거라는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재직하면서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함에 따라 그 집안은 졸지에 망하게 된다.
황해도 산골로 피신했던 김삿갓이 이후 집안의 사면이 이뤄짐에 따라 과거시험을 보게 된다. 김익순을 비판하는 시제가 출제되고 이를 주제로 장원급제에 이르나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는 벼슬을 포기하고 방랑 길로 나선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가 판을 시절이라 김삿갓의 시는 권력자와 부자들의 놀음을 풍자하고 조롱한 글이 많아 대중의 애환을 달래주었다고 전한다.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이다. 이 한마디로 올 한해 정치와 이념으로 지리멸렬했던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꼬집었다. 다르다(異)와 틀리다(誤)를 구분 않는 우리 시대의 극단적 배타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시시비비는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내년에는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는 올바른 세상이 되길 기원해 보면 과욕일까.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