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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모님 모시기”

심청은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픈 마음에 쌀 삼백석에 몸을 판다. 끝내 인당수에 몸을 던졌지만 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복한 용왕은 그녀를 사람으로 다시 환생케 한다. 효를 주제로 한 우리나라 대표적 고전소설인 심청전의 한 토막이다.부모를 위한 자녀의 효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부모님의 날이 별도 정해져 있다.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어버이날, 어머니날, 아버지날 등이 지정돼 있다. 이날만큼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 정신을 기리자는 뜻이다.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 아버지날은 6월 세번째 일요일로 따라 정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날은 전 세계 100군데가 넘는 나라에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기념일을 보내고 있다.우리나라도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다가 아버지날을 정하자는 여론이 나오면서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변경 운영되고 있다. 이날은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고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이다.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등으로 고전적 가족 분위기가 많이 퇴색돼 가고 있다. 그렇다고 부모를 섬기고 존경하는 미덕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모님을 자식이 꼭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는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부모를 모실 책임이 자녀에게 있다”는 물음에 반대가 찬성보다 월등히 많았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는 반증이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효의 기준인 시대는 이미 끝났다. 어버이날에 즈음해 생각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05

피론(Pyrrhon)의 돼지들

안재휘 논설위원‘승자의 손에는 꿈이 가득하고, 패자의 주머니에는 욕심이 가득하다’는 말이 있다. ‘승자는 넘어지면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뒤를 본다’는 말도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고, 미래통합당은 당권 쟁취 가능성 저울질 속에 ‘김종인’ 추대냐 아니냐를 놓고 연신 파열음이다. 당분간 제1야당에서 무슨 희망의 싹수를 보기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고 있다.민주당에서 일어난 ‘개헌론’ 돌개바람은 결코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송영길 의원을 필두로 일부 당선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후죽순 터져 나온 개헌론은 ‘대통령 중임제’에서 ‘토지공개념’, ‘이익공유제’에 이르기까지 휘발성 높은 개헌 화두들을 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마저도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라며 부채질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국민 100만 명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국민발안 개헌안’ 처리를 모색 중이다.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가 일단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개헌추진과 관련해 우리 당, 지도부 내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청와대와 정부는 전혀 개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그러나 집권당의 개헌론이 소멸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 코로나19의 가공할 여파가 걱정인 판국에 개헌 논란 과열로 인한 민심이반을 우려한 작전상 후퇴로 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어질더분한 안팎 사정이 조기에 정돈될 가망이 전혀 없는 판국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미래통합당은 아직 배가 부른 모습이다.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총선참패의 충격을 획기적인 혁신의 전환점으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여전히 구닥다리 권력 쟁패만 탐닉하는 양상이다.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 극적인 반전을 꾀하자는 측과 전당대회를 통해 자강(自强)의 길을 가야 한다는 측이 맞서 8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의 정중동 패싸움에 함몰돼 있다.나라도 그렇고 통합당도 그렇다.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난 선박 신세다. 그런데, 아수라장이 된 배 위에서 식식거리고 잠을 자거나 먹을 궁리에만 빠진 천하태평 돼지들이 너무 많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피론의 돼지’ 또는 ‘필론과 돼지’로 통용)는 무도한 각반(脚絆·폭력집단의 상징)들의 횡포를 방관하는 비겁한 군상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하버드대 교수 야스차 뭉크(Yascha Mounk)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 포퓰리스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래통합당은 아직도 ‘수구꼴통’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낡은 보수’ 각반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

2020-05-03

보복소비

‘보복소비’라는 다소 거친 용어가 등장했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사태의 진정세를 틈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왜 보복이라는 부정적 표현을 했는지는 그 어원을 알 수 없다. 코로나 발상지인 중국에서 나왔다는 설만 있다. 우리말로는 보상소비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다.억눌렸던 소비가 일시에 터져 나오기 때문에 보복소비의 구매력은 대략 폭발적이다.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에서는 에르메스 명품매장이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지난 1월 코로나 사태로 문 닫은 지 석 달 만에 매장을 다시 오픈하자 소비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거 몰려와 하루 판매액이 무려 270만 달러(한화 약 32억 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지금 곳곳에서 이런 보복소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코로나 사태로 참았던 소비자의 구매심리가 봇물 터뜨린 것이다. 그러나 초점은 보복소비가 침체된 시장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여부다. 중국은 보복소비 현상이 침체된 소비시장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긍정 평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4조위안의 자금을 풀어 경기부양 효과를 본 바 있다. 코로나 이후도 중국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한 준비에 나설 거라 한다.5월 황금연휴를 맞아 국내서도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국 관광지마다 사람이 넘치고 고속도로는 도시를 벗어나려는 차량으로 꼬리를 물었다. 도심의 공원과 카페 등도 모처럼만에 사람들로 활기를 찾았다.코로나19로 풀이 꺾였던 시장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침체된 국내 경기에 보복소비가 과연 위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시장변화의 단초가 되길 바랄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5-03

봄을 기다리는 월성원전

박민철 한수원노동조합 월성원자력본부노조 제1발전소 지부위원장월성원전 1호기가 영구정지 결정 됐지만, 아직까지 여기저기서 논란이 되고 있다.하물며 월성2,3,4호기는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의 포화가 예상되면서도 추가건설에 대한 아무런 액션도 취할 수 없이 무작정 넋 놓고 기다리고 있다. 내년 말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돼 추가건설 결정이 시급한 재검토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에 대한 논의는 코로나19와 총선의 분위기 때문에 그 관심조차 잃었다.월성원전에서는 4년 전부터 준비하고 추진해 온 사안이지만, 포화시점이 가까워 짐에도 아직 건설 여부에 대해 결정조차 하지 않아 공사는 시작도 못한채 애타는 마음으로 시간만 허비되고 있다.월성원전에 대한 관심은 월성 1호기를 향하고 있다. 설계수명이 2022년인 월성1호기의 경우 앞으로 겨우 1년 남짓한 운영을 기대하며 다시 되돌리겠다는 것은 에너지산업의 실익은 무시한 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월성1호기는 더 이상 가동 논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역사 속으로 우리 가슴에 묻고 가야 함을 알고 있다. 지금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월성 2,3,4호기 상황이다. 설계수명이 2022년인 월성1호기와는 달리 월성 2,3,4호기의 설계수명은 각각 2026년, 2027년, 2029년이다. 아직 6~9년간은 더 운영할 수 있는 원전이고 1호기당 하루 매출이 약 10억원에 달한다. 이를 가동하지 못하는 손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계산이 나온다.올해 1월 월성원전은 원전운영의 안전성을 심사하는 원안위에서 맥스터 추가건설에 관한 운영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이 아직 남아있다. 지금 맥스터 관련 여론으로 이를 공론화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해도 시기가 급박한 상황이다.실제로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미래에 중요한 부분으로 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것은 맥스터이다. 이제 월성1호기는 가슴에 묻고 맥스터 추가건설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해 월성 2,3,4,호기가 동시에 셧-다운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지금까지 원전 1개 호기도 수명연장 영구정지 등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하지만 원전 3개 호기의 존폐를 동시에 결정짓는 사안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지 통탄할 따름이다.경주의 원자력산업은 우리 지역주민들의 삶, 고용안정 등 지역경제와도 끊을 수 없는 긴밀한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이제 우리 시민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힘으로 월성원전과 경주에도 봄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0-05-03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소재 안보부터

우리나라가 생활방역체계로 전환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과 달리 최근 일본은 긴급사태를 선언한 상태에서 기존의 3밀 회피(밀폐공간, 밀집장소, 밀접장면)와 기본적인 감염대책(손씻고, 기침할 때 가리고, 환기하기 등)을 유지하면서도 지켜야할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였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22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80% 줄이는 10대 포인트’라는 지침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 영상통화로 온라인 귀향, 2) 슈퍼는 1인 또는 소수 인원으로 덜 혼잡한 시기에 이용, 3) 조깅이나 산책은 소수로 공원은 비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 4) 필요한 물품은 온라인 통신판매를 이용, 5) 회식 등도 온라인으로 각자 공간에서, 6) 진료는 원격진료로 대체하고 정기검진은 간격을 조정, 7) 헬스, 요가 등은 자택에서 동영상을 활용, 8) 음식은 식당에서 포장하거나 배달, 9) 의료, 인프라, 물류 등 사회기능 유지를 위한 목적을 제외하고는 재택 근무, 10) 마스크 착용 상태로 대화하기다. 전체적인 흐름은 역시 비대면, 비접촉을 생활화하자는 것이다.이처럼 세계는 각국의 사정과 상황에 맞게 현재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려는 고민에 빠졌다. 일부에서는 과거 아시아통화위기는 미국에 대한 높은 수출의존도가, 이번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위기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최적지가 동남아시아나 인도라며 그것을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 꼽기도 한다. 이처럼 그 방법이 어떠한 것이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는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 지금까지의 생활환경부터 도시정책에 이르기까지 위기 이후 새로운 시대상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우리가 비대면 또는 비접촉이라는 말을 하는 자체가 어쩌면 소수 얼리어댑터만이 적응하고 있던 디지털세계를 모두가 공유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뉴노멀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 국가들이 노멀에서 뉴노멀로 진전되는 과정에서 유효 적절하게 대응하는지 못하는지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영원히 변함없이 그 존재감을 유지하는 ‘진정한 노멀(Real Normal)’도 있다. 어떠한 나라라도 제조업이라는 산업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제조업은 각국의 고용을 창출하고 가계에 소득을 제공하는 근원이 된다. 바로 이 제조업이라는 산업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금속’이 제조산업에 식량으로 원활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우리가 피츠버그를 보면서 쇠퇴하였던 철강 도시의 부흥과정에만 주목하였지만, 사실 사양산업이라는 철강은 세계의 강대국인 미국조차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괜히 미국이 한국산이나 중국산 철강 수입을 제한하고 반덤핑관세를 물리는 것이 아니다. 안보개념은 군사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량안보라는 말이 단지 구호처럼 들리나 실제 국제분쟁에서 어느 한 국가가 식량 자급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양국 간의 군사대립이 심각해져 식량 수출을 막는 순간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인을 먹일 수 없어 시작도 전에 손을 들 수밖에 없다.무역전쟁이 치열한 지금의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일본이 주요 소재 부품의 수출을 제한하였을 때 대일 수입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등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것도 ‘뉴노멀’의 하나다. 우리가 분노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는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쌀인 철강금속, 반찬이 되어야 할 소재 부품을 얼마나 보호 육성해왔는지도 반성해야만 한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하물며 자국이 무기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을 아무 조건도 없이 무한대로 상대국이나 경쟁국에 수출하는 멍청한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면에서 미래 사회가 아무리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옮아가는 ‘뉴노멀’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기초적인 국가 경제의 제조산업에 필요한 ‘산업의 쌀’은 변함없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최근에야 경량화, 탄소 배출억제 등 다양한 환경문제로 인해 탄소섬유, 알루미늄, 플라스틱, 강화유리 등과 같은 대체소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소재들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소재를 생산하기 위한 기계설비는 여전히 ‘철강금속’이라는 소재로 제작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강금속’이야말로 어떠한 ‘뉴노멀’이 세계를 뒤흔들더라도 변함이 없는 ‘진정한 노멀’이다. 물론, 단순히 철강, 금속이라는 말만 가지고 앞으로 세계 무역전쟁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철강금속이라는 소재 자체에서도 ‘뉴노멀’은 있다. 보다 내구성과 내식성, 고탄성, 고장력 등을 충족시키는 특수강, 합금강 등과 같은 특수금속은 이른바 ‘고급 쌀’로 항공우주, 의료공학 등 선진국의 첨단산업에서 높은 가격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특수금속이야말로 ‘진정한 노멀’인 철강금속 분야에서 ‘뉴노멀’로 진화하고 있다.최근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조기 경제회복을 위해 조선, 기계 등과 같은 7대 기간산업을 선정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7대 기간산업에 포함된 기계, 조선, 자동차부품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해당 산업의 후방에 자리하여 보이지 않는 철강금속산업에서 ‘산업의 쌀’을 적기에 적절하게 공급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문제는 지금 국내에서 산업의 쌀을 생산하는 농사꾼인 ‘철강금속산업’이 수년간 이어온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 등으로 인해 논밭을 놀리고 있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 ‘산업의 쌀’을 수입해도 된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나 강대국의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를 고려한다면 국가 경제의 안정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의 식량안보 즉 ‘소재 안보’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정부가 이번에 7대 기간산업을 살리기 위해 40조 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그만큼 정부가 국내 산업기반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생명체고 산업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하나의 생태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7대 기간산업에 선정된 조선, 기계, 자동차와 같은 기계장비 분야의 생태계는 철강금속 소재부터 조립가공을 거쳐 최종재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가 유기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여야만 살아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7대 기간산업이라는 분류나 항목에 굳이 ‘철강금속’을 끼워 넣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들 산업이 활성화되면 그 기반을 이루는 철강금속도 절로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지원대책이 보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별도로 특정 산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각종 지원대책을 마련할 때 공급망과 산업생태계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세부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면서 해당 산업의 ‘쌀’에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도록 지원대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포항의 철강금속업계에서도 즉각 변화를 모색해야만 한다. 영원불멸의 ‘진정한 노멀’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한다면 그 속의 ‘뉴노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 가격 경쟁력이 아닌 품질과 기술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고급 쌀’을 국내 기간산업에 공급하고, 그것이 전방산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갈 때 만이 국내 기간산업의 ‘소재안보’를 위한 정부 대책도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5-03

예술인 심리상담 체험기 1

김현욱 시인재 작년에 모친이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짜증과 신경질, 감정 변화가 극에 달했다.누군가에게 속 얘기를 하고 싶은데 자식이나 남편은 싫다고 했다. 오랫동안 계 모임을 해온 친구들이 있지만, 속 얘기는 털어놓을 사이가 아니란다. 모친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지역 상담소가 떠올랐다. 몇 군데 알아보니 집 가까이에 상담하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전화로, 두 번째는 방문해서 소장에게 상담 절차와 비용을 들었다.상담 비용이 중국집 메뉴판 같았다. 8만 원, 10만 원, 12만 원. 팔보채, 유린기, 샥스핀이 나오는 코스요리처럼. 석사 급, 박사 급, 교수 급으로 나눠지는 듯했다.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모친을 위해 8만 원 하는(?) 상담사로 총 5회 상담코스를 골랐다. 원래는 주 1회 10회 코스인데, 5회를 먼저 해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모친은 비용 얘기를 듣더니 펄쩍 뛰었다. “한 시간 내 얘기 들어주는데 8만원?” 어찌어찌 모친을 달래 상담을 시작했다. 첫날은 내가 고이 모시고 갔다가 모시고 왔다. 모친에게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낯선 상담일 테니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5회 상담을 끝낸 모친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자식이나 남편, 친구에게 못하는 얘기를 상담사에게 마음껏 하고 나니 살 것 같단다. 아, 상담이란 게 이런 거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맞구나. “한 번 더 할래요?” 물었더니, 이번엔 거절하지 않는다.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모친의 우울증은 심리 상담을 통해 봄날 봄바람처럼 보드라워졌다. 그러던 차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지원 상담을 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대체 모친이 어떤 경험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중년의 무게감을 느끼던 차에 덜컥 신청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 연락이 왔고, 나는 참마음심리상담센터 문가인 원장과 주 1회 12회 코스로 상담을 받기로 했다.3월 첫 번째 상담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문가인 원장의 성격이다. 그녀는 내가 상담사에게 가졌던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일 거라는 묵은 선입견을 완전히 깨주었다. 단도직입, 직설, 명랑, 소탈한 상담사였다. 그동안 내가 책과 영화에서 만나 온 상담사는 현실의 상담사가 아니었다. ‘오길 잘했구나. 좋은 경험이 되겠어.’ 그녀는 중년의 고비를 막 오르고 있는 내 삶의 방향과 성격에 대해 듣고 호탕하게 조언해주었다.567개짜리 문항 MMPI-2 심리검사도 받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성’이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여기서 듣다니. 내 안의 여성성과 남성성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 겉으로는 남자답게 과격하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움츠리고 상처받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상담소를 나서며 문득 고갱의 그림이 떠올랐다. 계속.

2020-05-03

탈북자 태영호 국회의원에 거는 기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총선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당선자가 여러 명 있다. 태구민이란 이름으로 강남 갑구에서 당선된 그도 그중의 한 명이다. 야당의 총선 참패가 공천의 잘못이라고들 비판하지만 이번 탈북자 2명의 보수 정당 공천은 매우 신선한 측면이 있다.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가 3만 명을 훨씬 넘어섰지만 아직도 남한 땅에는 성공했다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태영호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조명철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번 꽃 제비 출신 비례 대표 지성호도 있지만 그는 탈북자 중 지역구에서 당선된 첫 국회의원이다.그는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하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다. 황장엽 선생 보다는 직위는 낮지만 외교관으로서는 탈북민 중 가장 고위직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탈북 동기에 의아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그가 ‘북한 공금 횡령자’, 심지어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심지어 그는 북한의 이중 스파이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는 북한 탈출 동기를 언론을 통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는 아들의 북한 소환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식의 장래를 위해 탈북했다고 증언했다. 사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함께 거주하는 일부 탈북민 보다 형편없는 처우인 북한 외교관 생활에 환멸을 느꼈을지 모른다.그의 2016년 남한 땅 정착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는 평양에서 중국 유학을 다녀오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친가와 처가 모두 핵심계층 출신이다. 그는 이곳에서도 정부 기관 특임 연구원직을 맡아 특권을 누렸다. 그의 ‘3층 서기실의 암호’는 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칼럼에는 그의 남한 사회 정착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지난 2월 보수 정당인 ‘미통당’에 전격 입당하고, 강남 갑구에서 58.4%의 득표로 당선되었다.그의 당선 소식은 북한 땅에서 분명 전파되었고 북한당국은 여전히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북한 당국은 탈북자를 수령의 품을 떠난 ‘배신자’로 간주한다. 10여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북 학술 토론회에 참석한 바 있다. 북한의 저명 J 교수는 북한 땅에서는 탈북자가 없다고 주장하다 독일인들의 빈축을 산적이 있다. 태영호의 남한 지역구 당선은 그 자체만으로 북한 당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은 그를 ‘인간쓰레기’로 비판하지만 그의 당선 소식은 북한 당국에 더욱 무거운 짐이 되어 괴로울 것이다.이제 태영호는 태구민이라는 주민 이름을 버리고 대한민국 의원으로 당당히 출발한다. 그의 이번 남한 지역구 당선은 남북 분단사에서 남을 수 있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북한의 고위 탈북자로서 그는 이제 남한 정착의 역할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그는 남북 화해라는 민족적 대업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의원이 되길 바란다. 그의 활동은 세계 언론의 주목도 받고 한국 정치의 다원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남한의 일부 진보그룹에서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극히 정당치 못한 처사이다. 그는 이 땅을 남북의 젊은 세대들에게 열려진 ‘희망의 땅’이라는 점을 보여주길 바란다.

2020-05-03

코로나도 뚫지 못한 ‘산소카페 청송군’

윤경희 청송군수청송군 보건의료원 응급실을 들어가려면 ‘잠시 멈춤’을 해야 한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원 직원들이 일일이 내방객의 체온을 체크하고 신원 확인과 해외방문 여부를 기록한 후 발열이 없을 경우에만 내방을 허가한다. 청송군 보건의료원은 엄격한 출입통제를 위해 응급실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원 출입구는 모두 봉쇄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청송군의 치밀한 방역활동 모습이다.지난 2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청송군보건의료원의 물 샐 틈 없는 방역체제 구축으로 지역에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확진자 1명도 완치, 퇴원했다. 또 청송군 확진자로 집계된 2명 중에 1명은 주소지만 청송인 대구의 대학생이고, 1명은 해외입국자여서 사실상 지역주민 감염은 없었던 셈이다.‘코로나19 없는 청정 청송’이 된 것은 △민관 합동의 완벽한 방역체제 구축 △정부 대책보다 한발 앞선 방역당국의 선제 대응 △청송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청송군보건의료원은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의료원 및 군청 방역반, 관내 사회단체, 봉사단체 등 50명의 긴급방역대책반을 편성하고, 군청 축산부서 차량과 군부대 살수 차량 협조를 받아 진보면 일대에 대대적인 방역에 나섰다. 다중집합장소, 사회복지 및 요양시설, 공공기관을 우선 방역한다는 방침 아래 확진자 동선에 따른 상가, 식당에 대해서도 일제 방역에 나섰다. 주민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 일반 아파트, 빌라 등 주거지역의 공동시설 및 복도까지 꼼꼼히 방역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8개 읍면의 재래시장, 버스터미널 등 군민이 모일만한 장소면 어김없이 방역에 치중했다.특히 청송군은 지난 4월 10일 코로나19 검체 채취의 신속성과 안전성 향상을 위해 ‘워킹스루’ 검체 채취 방식을 도입했다. ‘워킹스루’ 방식은 공중전화와 비슷한 형태의 음압시설이 작동하는 부스를 이용한 검체 채취방식으로, 이번에 도입한 ‘워킹스루’ 부스는 기존의 방식에서 진일보한 양방향 워킹스루가 가능한 형태이다.정부대책보다 한발 앞선 청송군의 선제 방역대응도 코로나19를 잡은 요인 중의 하나다. 청송군은 긴급방역에 따른 예산이 없자 여름철 방역비를 선집행해 방역활동에 나섰다. 정부는 다음날 일선 행정기관에 선집행을 지시했다. 또 서울 콜센터 집단확진이 터진 날 청송군은 정부 방침이 내려오기 전에 관내 다중집합장소인 노래방, pc방 등지에 대해 미리 일제방역을 실시하는 등 선제 대응했다. 또한 청송군은 정부 발표 이전에 이미 임신 공무원에 대해서는 재택근무를 지시하기도 했다.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중앙정부와 경북도의 지원을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도 지원과는 별도로 청송군 자체적으로 긴급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게 됐다.소상공인 긴급생계비 지원, 청송사랑화폐 특별 할인, 지방세 감면, 농기계임대료 감면, 전통시장 점포사용료 2개월 면제, 소상공인 특례보증 등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군민들의 위축된 소비 심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침체 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그리고 지난 3월 12일부터 근 한 달 동안 운영돼온 생활치료센터 ‘소노벨 청송’은 191명이 입소하여 지역 전파 없이 완치율 92%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자칫 청정지역인 청송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 우리 군민은 대승적 차원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며 따뜻한 응원을 메시지를 보내며 힘을 보탰다.특히 이번 사례는 코로나19라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국가적 비상사태를 마주한 상황에서 지방의 지자체와 민간이 합심해 최상의 치료환경을 제공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그런 덕분이었을까. 청송군은 ‘코로나19 청정지역’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산소카페 청송군’이 2020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에서 도시브랜드 부문의 첫 대상이라는 선물과 함께. 더불어 사과브랜드 부분에서 ‘청송사과’는 8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가져왔다. 이 기쁨을 소중한 우리 군민들과 환희 속에서 함께 누리고 싶지만 아직 깨알 같은 코로나19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섣불리 축배를 들지 않기로 했다.

2020-05-03

인문학(Liberal Arts)이 뭐길래

박현미회사원수년 전, 고전 열풍을 타고 인문학 붐이 대한민국을 들썩였다. 책방에는 관련 서적이 넘쳐났고 나 역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고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고전을 처음 손에 잡기 시작한 이유는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솔깃한 구절을 본 다음이었다. 대표적 인물로 조선 시대 권율 장군은 고전을 파고든 뒤, 마흔이 되어 벼슬자리에 나갔다고 한다. 늦은 관직 진출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자 문신이 아니던가? 100세 시대인 요즘, 나 또한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똑똑해지고 싶었고, 말도 잘하고 싶었다. 난처한 상황에서도 빠른 상황 판단과 임기응변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었다. 지금 하는 일에 지성이라는 무기를 더하여 비상하고 싶었고, 궁극적으로 팍팍한 세상살이가 고전 읽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수월해지길 바랐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지혜로운 삶과 정신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것이 고전이라는 희망을 품었다.처음에는 책에서 소개하는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해 무턱대고 고전을 읽어 나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솝우화를 읽는 내내 미궁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수십 세기가 지나도록 살아남은 천재들의 책은 오르기 힘든 견고한 벽처럼 상상 이상으로 문턱이 높았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내 바람은 결국 고전을 함께 읽는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통해 위대한 사상과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내게도 활짝 열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경이롭다. 새롭고 깊은 울림은 기분 좋은 두통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번 읽고 그만두지 않고 거듭 반복 읽기로 같은 고전을 한 번 더 읽을 때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전과 다른 나, 한 뼘 성장한 나를 발견한 것이다.고전은 우리에게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바른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준다. 어떤 잘못된 경험을 직접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아픔 없이도 지혜롭게 삶의 교훈을 선물해 준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전을 공부하는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고전은 삶의 진짜 문제, 가장 깊은 관심사를 다룬다. 기쁨, 아픔, 두려움, 사랑, 증오, 용기, 분노, 죽음, 믿음,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들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갈등과 문제는 늘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니, 고전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장 깊은 부분을 직면하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미래를 저당 잡히지는 말아야 하며 삶의 현장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인문학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내 기쁨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기쁨을 줄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삶의 기쁨은 두 배로 늘어난다. 나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인문학 정신이 퍼져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밝고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기성세대를 포함, 나 역시 얼마나 꽉 막힌 사고를 하며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가? 초, 중, 고 교육을 마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대학에 떨어지거나 진학하지 않는 것은 인생의 시련이자 패배로 치부한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나온다 해도 좋은 직장을 잡는 일, 연봉을 높이는 일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스펙은 결코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국어를 꾸준히 해야 하며 미래를 위한 자격증도 두어 개는 따 놓아야 덜 불안하다. 그래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월을 허비하며 헛된 힘을 쏟을 뿐이다. 물질로 내 존재를 증명해 내야 하는 사회의 근본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잉여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저변에 깔린 탓이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인문학이 절실하다.인문학은 내게 속삭인다. 대단하고 심오한 사유로 홀로 서 있기보다 지혜를 추구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라고. 먹고 살만큼의 부에 자족하고 넓은 아량으로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며 살되 독립적이고 선한 의지로 살아가라고. 벌어도, 벌어도 모자란 물질문명에 속지 말고 깨어 있어 행복하라고. 끝

2020-05-03

사랑 따로 결혼 따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70년대 결혼 풍속도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고시공부를 하는 남자 애인을 위해 공장에 다니는 여자 애인이 열심히 돈을 벌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한다. 남자는 몇 번의 도전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고시에 합격한 남자 애인은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복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변심한다. 그는 많은 희생을 한 여자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뻔하디 뻔한 통속적인 스토리다. 이같은 출세지향적인 풍토가 만연해지자 이를 묘사한 말이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미래통합당이 바로 그 짝이다.대구·경북지역은 미래통합당의 본산이다. 지역구 25개 가운데 복당을 추진중인 대구 수성을 홍준표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24개 지역구에서 모두 통합당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통합당의 공천이 잘못됐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많았겠지만 지역민들은 통합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여당에 맞서 싸울 야당이 힘이 부족해서 되겠느냐는 심산에서였으리라. 문제는 지역민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통합당이 정작 자신의 운명을 정하는 비대위나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는 대구·경북지역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나이 든 어르신들이 설득조로 내놓는 이 얘기에는 ‘사랑은 감성, 결혼은 이성(현실)’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데 과연 이 논리가 합당한가.통합당은 여당이 180석을 얻는 동안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간신히 넘긴 10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어떻게든 지지세를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구·경북에서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 참패한 통합당이 외연을 넓히려면 누가 당의 중심이 돼야 할까. 통합당 중진들은 대구·경북은 중심에서 빠지고,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올 만한 세력이 앞장서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한다. 당의 가장 핵심적인 지지기반은 대구·경북지역인 데,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뒤로 빠져 있으란 얘기다.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오기 위해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배제한 채 당권과 대권다툼에 혈안이 된 몇몇 이들에게 당의 운명을 맡기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통합당은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 대안을 갖춘 야당, 중도적 보수를 포용하는 폭넓은 보수가치의 채택 등 개혁과 쇄신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통합당은 오히려 자신들을 뜨겁게 지지하는 TK지역의 민심을 등에 업고, 수도권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개발과 보수가치의 확장에 힘쓰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수도권 민심을 공략할 수 있는, 젊고 참신한 대권 후보를 내세워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한다. 무엇보다 통합당이 바로 서려면, 우선 총선 직후부터 언론에 떠도는 ‘대구·경북지역 패싱론’이 현실화되는 걸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산토끼보다 집토끼가 우선이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순리다.

2020-04-30

코로나19 백신

인류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각종 질병에 대응하는 백신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부터다. 수세기 전까지 만해도 아이가 태어나 10살이 되기 전에 보통 3분 1정도는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래야 30살 남짓했다. 콜레라, 장티푸스, 페스트 등 전염성 질병으로 사람들의 수명은 그야말로 하늘의 뜻에 맡겨야 했던 시절이다.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고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행성 질환 중 하나가 완전 박멸됐다는 뜻이다. 두창이라 불리는 천연두가 수세기 동안 인류에게 끼친 폐해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치사율이 30%다. 어린아이에게는 더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매년 천연두로 40만 명이 사망했다.그러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에 의해 백신이 개발되면서 천연두의 퇴치는 시작됐다. 또 장티푸스, 콜레라, 페스트 등도 잇따라 백신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질병과의 전쟁에서 점차 승기를 잡는다. 그때가 19세기다.WHO의 설립 목적은 세계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최고의 건강수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인류의 행복은 인류의 건강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이 예로부터 즐겨 써온 오복 중에도 수(壽)와 강녕(康寧)은 건강의 덕목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처럼 건강은 사람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다.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백신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한창이다고 한다. “병원체가 규명되고 1년만에 개발된 백신은 없었다”는 의학계의 지적에 비쳐볼 때 코로나 백신의 개발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세계적 권위의 의학연구소들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뜻밖의 결과가 인류를 기쁘게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30

삭막해지는 캠퍼스의 추억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캠퍼스의 추억들이 삭막해져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졸업앨범에 새겨져 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 졸업앨범이 유일한 추억이었고 앨범을 뒤져가면서 친구들 얼굴, 선생님들 얼굴을 떠올리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교사 10명 가운데 7명이 학생 졸업앨범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데 불안감을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교사들은 졸업앨범에 들어간 사진이 범죄나 학부모들의 평가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졸업앨범에 교사 사진이 들어가는 것에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앨범 사진 탓에 피해를 본 경우를 접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0% 가량이 “직접 피해를 경험했거나 다른 교사가 피해를 본 사례를 들었다”고 답했다고 한다.졸업앨범을 안 만드는 학교도 늘어가고 앨범을 사지 않는 학생은 과반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쉬워 학창시절 사진이 차고 넘치니까 앨범에 대한 필요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삭막해지는 학창시절의 추억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들어가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졸업식 전에 하는 사은회도 없어지고 있다. 40여 년 전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 사은회는 제자와 은사 간의 큰 잔치와 같은 것이었다. 여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남학생들도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교수님들에게 큰절을 하는 행사였다. 졸업생들도 교정을 떠나는 아쉬움과 스승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떠나는 제자를 축하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런 자리였다.스승과 제자 사이가 예전만 하지 못하고 또 사은회의 참석률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사은회가 없어진 대학도 꽤 있다고 들었다. 졸업식도 마찬가지이다.많은 국내의 대학 졸업식에는 대학원생만 자리에 앉고 학부 학생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사진만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졸업식에 와서 사진만 찍는다면 졸업에 대한 감회와 기억이 남아있을까. 서구의 대학에서 졸업식은 엄숙하면서도 온 가족이 참석해 화기애애하게 치러진다. 모든 졸업생을 단상으로 불러 학위를 수여하고, 식이 길어져도 자리를 이탈하는 졸업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몇 년 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시작했던 졸업식 길거리 퍼레이드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졸업식에 모두 참가하여 그 타운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고 정겨웠다. 그러나 그 행사도 코로나19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나오는 앨범의 전통도 지켜지고 사은회의 아름다운 모습도 지켜지고, 졸업식도 좀 더 화기애애하면서도 모두 참가하는 그런 잔치로 치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이지만 캠퍼스의 추억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가 아날로그 시대의 전통이 지켜지면서 삶의 큰 보람으로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2020-04-30

임사체험과 양자물리학

김병래시조시인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 의해서 지동설이 확립되고, 뉴턴이 물리학적 체계를 정립하면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의 과학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현대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물리적 현상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거시적 현상이나 미립자와 같은 미시적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론과 법칙이 발견되어 뉴턴의 역학은 한계를 드러내었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중력장으로 인한 공간과 빛이 휘어진다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증명되고, 원자(atom)의 구조와 같은 미시적 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은 물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원자가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건 중학생이면 배우는 상식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원자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전자의 자기장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처럼 물질계의 기본이 되는 미시현상은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의식(意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임사체험(臨死體驗)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사체험이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라고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장이 멎고 뇌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사망으로 보는데, 요즘은 심폐소생술이 발달하여 일시적인 사망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982년에 행해진 갤럽조사에서는 미국에서만도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임사체험자들의 증언에는 보통 몇 가지 패턴이 있다. 밝은 빛을 본다든가 자신의 삶을 순간적인 파노라마로 보는 것,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무한한 확장 등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한히 밝고 가볍고 안온하고 모두가 하나인 상태를 경험하고 나서 모든 집착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한 무한한 영적세계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임사체험 연구가 종교적 영역이 아닌 수백 건이 넘는 학문적 보고서와 논문이 제출된 의학의 한 분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대다수 임사체험자들의 일관된 증언은 우리가 과학적 사유로 인식하는 물질계 말고도 영계와 같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육신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는 의식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사체험을 하고 난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불필요한 욕심이나 이기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늘어나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는 등 상당히 고양된 의식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과 연구자들의 견해는 우리의 의식이나 사유가 과학이라는 고전물리학적 프레임에 갇혀서 너무 형편없이 찌들고 쪼그라든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2020-04-30

무재칠시(無財七施)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얼핏 쳐다 본 TV에 ‘김정은 사망설’이란 자막이 보여 깜짝 놀랐다. 요즘은 워낙 가짜뉴스가 넘치는 터라 웬만한 뉴스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고 마는데, 북한의 소식에는,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고에 관한 뉴스에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사망설, 중태설, 식물인간 상태 등의 설들이 난무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내부의 특이 동향 없음”을 공식화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김정은의 안위에 대하여 몇 차례나 언급했지만, 분명한 건 폐쇄국가인 북한의 수뇌부 사정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다.돌이켜보니, 학창시절에는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열린 반공웅변대회에서 연사들은 치를 떨며 북한을 성토했고, 주적인 북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학교 교육과정에도 ‘교련’이란 교과를 편성하고 학도호국단을 조직하여 군사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그러나, 오늘날은 갈등과 대립 구도의 반공교육이 아니라 상생의 통일안보교육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남북 간의 평화 공존을 위하여 남북정상이 마주 앉았고, 특히 한반도의 비핵화를 기대하며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남북 철책의 상징적인 시설물이 철거되기도 하여 높기만 하던 남북 간의 장벽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 하였으며, 은둔의 왕국이던 북한의 30대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가 아주 높아지기도 했다. 북한 지도자에 대한 호감의 팔할은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였겠지만, 그의 활짝 웃는 모습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믿는다. 독특한 헤어스타일, 비대한 몸집, 너무 젊은 나이 등이 절대 권력자의 면모와는 영 매칭이 되지 않았으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이 모든 것을 너끈하게 덮었고, 오히려 호감까지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석가모니의 ‘화안시(和顔施)’가 따로 없을 듯하다.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으로 로켓을 연신 쏘아대는 그의 모습은 딴 판이 되고 말았지만.어떤 이가 석가모니에게 물었다.저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으니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요?그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라 남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그렇지 않느니라. 무재칠시(無財七施), 가진 것이 없다 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있는 법이다. 첫째는 화안시,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대하는 것이요, 언시, 심시, 안시, 신시, 상좌시, 찰시이니라. 이 일곱가지를 늘 행해서 습관으로 굳히면 네게 행운이 따르리라.종교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여 신심을 말하기는 부끄러우나 절실하면 저절로 기도가 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막내 동생이 원인불명의 질환으로 생사까지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을 때 난생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가 되었고, 큰 슬픔에 빠졌을 때 보경사 법당을 찾아 삼배를 올림으로써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경험이 있으므로.이제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의 가피가 온 세상에 가득히 깃들기를.

2020-04-28

족발정치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먹지도 않은 족발사진을 SNS에 올린 국회의원 당선자가 사과를 하고 사진을 삭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족발가게들로 유명한 선거구 지역에서 서민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당선되면 1주일에 한 번씩 들러 족발을 먹겠다’는 공약을 성급히 이행하려다 자초한 망신이었다. 물론 직접 그 족발 가게에 들러 음식을 먹었지만 해당 사진은 보좌관의 보고를 믿고 남의 사진을 올렸다며 정중히 사과했다.역시나 정치는 쇼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직장인이나 서민에게 사랑받는 족발이 얼떨결에 본의 아니게 정치에 소환된 것 같다. 서울의 장충동 족발은 한국 족발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원조의 원조 경연이 이어지고 있는 장충동 족발골목. 한국 전쟁당시 피난민이었던 분이 북한의 족발과 중국의 오향장육 조리법으로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실향의 아픔과 그리움을 족발 한 점으로 달랬을 것으로 생각하니 손발 잘린 돼지의 아픔(?)보다 더 짠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새우 장에 찍은 족발 고기 한 점을 상추쌈에 말아 꼭꼭 씹어 삼킨 뒤 소주 한잔으로 입을 가시는 소소한 식도락 일상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재료로서 손색이 없다. 임산부들의 모유분비를 촉진시키고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장수를 비는 국수와 건강을 비는 족발로 생일상을 차린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와 즐겨 먹는 삶은 돼지정강이 부위 고기인 ‘아이스바인’이 우리의 족발과 흡사하다.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서 강력형사들의 시간은 분주해진다.사건관계인,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형사들은 용의자 추적, 상부보고 등 끼니를 거른 채 밤을 지새우기 십상이다. 어느 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밤늦은 시간에 야근으로 끼니를 거른 부하직원들을 위해 형사반장이 검정 비닐봉투 하나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선다. 늦은 시간 반장의 출현에 형사들은 피곤한 눈총을 쏘며 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막내 형사가 반사적으로 비닐봉투 꾸러미를 받아든다. 그리고 봉투를 벌린다. 야근하는 부하를 위해 야식을 챙겨온 상사에 대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동료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 외친다.“반장님 웬 족발입니까?” 머뭇거리던 반장이 한마디 던진다.“글쎄, 왼쪽발인지 오른쪽발인지 잘 모르겠는데 맛은 있을거야”반장의 썰렁한 한마디에 장내는 족발 같은 구수한 웃음과 함께 밀려오던 피곤을 잠시 떨치게 되었다. 정치가 오른쪽, 왼쪽과 같은 편 가리기에 너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념논쟁 속에 정작 국민의 가려움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할까 걱정이다. ‘왼쪽발인지 오른쪽발인지 모르겠지만 맛은 있을 거야’라고 했다는 형사반장의 말이 자꾸 되뇌어진다. 어떤 이념도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것보다 앞설 수 없다. 퇴근길에 족발 하나 사가야겠다. 소주 한잔 곁들여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제 혼자 지나가는 봄바람 붙들고 세상다리 건너가는 얘기나 나눠야겠다.

2020-04-28

비우며 살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18년 만에 이사를 했다. 대학 임용 후 한 방에서 지금껏 지내다가 같은 층의 북쪽방에서 남쪽방으로 향만 바꾼, 방 한 칸짜리 연구실 이사였다. 면적이 반 평 정도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짐을 줄여야 했다. 책과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내놓았다. 한 권 한 권 떠들쳐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볼 수도 있는데, 들인 책값이 얼마인데….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욕심에 불과했다. 18년 전 처음 연구실에 가져 오고 한 번도 안 본 책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결국은 학회지 등 정기 간행물을 포함하여 버린 책들이 1천권이 넘었다. 책장도 4개나 버렸다.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는 저장강박증이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고양시의 90세 독거노인 이야기가 방송이 된 적이 있다.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이 할머니를 여러 날 동안 설득한 끝에 2013년 10월에 열 평도 안 되는 집에서 100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치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3년도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에 그 집에서 다시 치운 쓰레기가 5톤 트럭 4대 분량이었단다.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일본인 곤도 마리에의 집정리 노하우가 전 세계에 정리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바로 1년여 전인 2019년 1월이었다. 그러나 이 열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모으고 채우고 쌓기를 거듭하다가 코로나를 만났다.코로나19로 인류는 세 달여 기간 동안 의도치 않게 멈추고 비우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국민 격리 조치로 자동차의 운행은 줄어들었고 소비의 급감으로 곳곳에서 공장의 가동은 멈췄다. 그러자 지구별에 뜻하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다. 오염원의 배출이 급격히 줄어들자 이 짧은 기간에 대기질이 확연히 좋아졌다. 인간의 발길이 멈춘 곳에 원래 살던 동물이 돌아왔다. 인도의 루시쿨야라는 해변에는 관광객과 그들이 버린 쓰레기 대신 거북이 80만 마리가 돌아왔고, 영국 북웨일즈의 휴양지 란두드노에서는 야생 염소떼가 사람으로 번잡하던 거리에 나타났다고 한다.지구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욕망을 채우면서 지금까지 거침없이 달려왔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그 욕망의 질주를 강제로 멈추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욕심을 비워야만 했다. 그러나 이 비움의 작업이 얼마나 오래 갈까. 고양시의 저장강박증 할머니 경우처럼 코로나가 잦아들면 또다시 질주를 시작하고 비웠던 욕망의 집 욕심의 방을 이전보다 더 꽉꽉 채우려는 보상심리가 작동할지 모르겠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비움은 다시 채움으로 환원된다.성경 마태복음에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나갔다가 그 살던 집(몸)이 비고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됐다는 말씀이 나온다. 비우면 채우고 싶어진다. 비우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인가, 코로나는 인간이 스스로 비우지 못한 욕망을 강제로 비우게 만들고 있다.어떻게든 비우며 살 일이다.

2020-04-28

북한의 폐쇄성

철의 장막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을 중심으로 떨어져 나간 공산국가진영의 폐쇄성을 풍자한 표현이다.1946년 영국 윈스턴 처질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극단 체제로 인한 냉전시대를 빗대어 철의 장막이란 표현을 쓰면서 더 유명해진 말이다. 실제로 종전 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도 국경을 장벽으로 서로가 막아섰다.1989년까지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누어져 팽팽한 긴장과 대립관계를 견지했다.중국을 죽의 장막으로 표현한 시절이 있었다. 중국 공산주의의 폐쇄성을 중국 명산물인 대나무와 비유해 쓴 표현이다. 90년대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대외적으로 내세울 때까지 중국은 죽의 장막에 가려진 나라였다. 그 이후 중국은 경제 개방정책에 힘입어 지금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은 국내 총생산이 155배가 증가했고, 8억 명이 넘는 사람이 빈곤에서 탈출했다.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장막 속에 가려진 나라를 치면 북한을 손꼽을 수 있다. 북한은 그 오랜 폐쇄성으로 권력세습을 통한 체제의 유지가 가능했다. 70년 동안 3대에 걸친 세습은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하지만 폐쇄성으로 인해 정보와 사람이 오가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빈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둘러싼 건강 이상설이 2주째 난무하고 있다. 지난 15일 태양절(김일성주석 생일)에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에 불참한 이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해 억측도 가지가지다. 사망설에서 뇌사상태, 식물인간, 중국의료진의 진료설과 건재하다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체제의 폐쇄성이 보여준 북한의 또다른 진면목이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8

신조어로 본 현실

강희룡서예가코로나19로 인해 10여 년 만에 미국의 일자리가 70만개가 사라졌다 한다. 통계적인 수치이기에 현재는 아마도 더 악화된 상황으로 예상된다. 호텔과 서비스업 제조 건설 등 3월에만 70만개의 일자리가 공중분해가 됐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자체들마다 주말이면 외출과 집단모임 등 감염에 취약한 행동이나 모임은 자제하라고 계속적인 주의사항을 국민들에게 전달한다.대부분의 국민들은 힘들지만 빨리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의 권고사항을 따르며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을 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온라인 구매가 중가하면서 택배 회사들의 호황과 전자상거래 매출이 고공성장을 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사업장에서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제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실행하기에 부적합한 사업장은 무급휴가나 강제퇴사 등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결국 기업으로서는 존폐위기에서 직원들의 자리를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요즘 우리사회는 청년들이 실감하는 고용절벽을 빗댄 신조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공감하는 1위 신조어는 ‘이퇴백’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퇴사해 다시 백수’가 된 사람을 뜻한다.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조기퇴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무리 취업이 어려워도 회사가 본인과 맞지 않으면 조기퇴사도 불사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위는 ‘백수’로 생계유지와 취업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취업에 ‘100번을 도전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긴 구직기간 동안 생계비를 벌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취업준비생의 애환이 담겨 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인 ‘자소서 포비아(공포증)’는 3위였다. 구직자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차별화된 자기소개서 작성이 요구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구직자들이 많은 것이다. 신입 구직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소서 작성에 막막함을 느낀다고 했으며 이들이 꼽은 가장 까다로운 문항은 지원동기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구직자 49,7%는 자소서의 공포증으로 입사지원을 포기했던 경험으로 나타났다.이 외에도 ‘청년실신시대’로 ‘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학자금 대출 등으로 청년신용불량자가 증가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31살까지 취업을 못하면 절대 취업을 못한다는 ‘삼일절’, 새벽 등교를 줄인 ‘새등’, 가축처럼 일만하는 직장인을 ‘사축(社畜)’, 사축은 회사에서 길러지는 가축처럼 일만하는 직장인으로 긴 노동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단어이다. ‘월급로그아웃’은 월급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로 월급이 들어와도 월세, 카드 값, 세금 등으로 다 빠져나가 실상 월급이 들어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는 직장인의 슬픔을 담고 있는 신조어이다. 불확실성의 현실 속에서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기에 자신의 결정에 긍정과 확신을 가진다면 보람찬 삶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2020-04-27

나를 멈추게 한 힘

스칸디나비아반도나그네쥐 레밍은 개체 수가 급증하는 경우 집단적으로 질주하기 시작합니다.맨 앞 쥐들이 뛰기 시작하면 따르는 쥐들이 덩달아 뛰기 시작합니다. 뛰다 보면 왜 뛰는지 이유를 더 이상 묻지 않고 뛰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맨 끝에 절벽이 있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리다 모두 죽습니다.디즈니에서 만든 하얀 광야(white wilderness)라는 다큐멘터리는 1958년 아카데미상을 받습니다. 레밍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포착해 화제가 되었지요.우리 사회는 유독 이런 쏠림 현상이 심합니다. 어떤 업종이 잘 된다고 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일이 흔합니다.98년에는 조개구이, 2001년에는 찜닭 열풍이, 연이어 저가형 참치 전문점, 시들해지면 닭강정이 유행합니다. 2010년 불어닥친 카페 열풍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만 6만 개의 카페가 영업 중입니다.먼저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질주하는 인생. 기득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대중들의 모습입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가슴 설레는 진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누리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질주의 끝은 허무하고 황당한 결말인 경우가 많습니다.시인 반칠환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 나를 멈추게 한다 (중략) / 나는 언제나 /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 다시 걷는다.”질주하는 삶에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시인은 일침을 가합니다. 디테일은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코로나로 전 인류적인 브레이크를 경험한 2020년,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밝은 면도 없지 않았으면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7

콜센터 선생님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사스(2002년)에서 신종플루(2009년)까지 8년, 신종플루에서 메르스(2015년)까지 7년, 메르스에서 코로나 19(2019년)까지 5년! 코로나19에서 다음 바이러스가 유행하기까지는?”이 글은 ‘학생 중심 온라인 수업 모델 개발의 필요성’이라는 필자 글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글에서 보는 것처럼 바이러스 유행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의료와 방역 시스템을 비롯해 바이러스 유행을 막기 위해 많은 사회 체제들이 정비되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대한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것이 교육시스템이다.필자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기 시작한 2월 중순부터 온라인 수업 일지를 적고 있다. 또 다른 학교의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분석도 진행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몇몇 온라인 수업 유형은 절대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다음은 어느 교사들의 대화이다. 이야기 전에 이 글은 전문 직업으로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함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쪽 학교는 온라인 수업 어떤가요?” “과제를 많이 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뭣합니까?” “단체로 교무실에서 전화로 학생들의 출석 등을 확인합니다. 콜센터 선생님 같습니다.”콜센터라는 말에 대화에 참여한 모든 교사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피었다. 교실에서 수업해야 할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단체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란? 그런데 이런 낯선 모습이 연출 된 것은 많은 교사가 온라인 수업 유형 중에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들 수업에는 학교 수업 교사는 없다. 학교 교사 자리에 EBS 강사와 과제가 들어갔다. 이것이 교사들이 분필 대신 전화기를 들게 된 이유이다. “수학이 계산한 암울한 미래 ‘가을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뉴스대로라면 사회적 거리 두기를 느슨하게 하면 올해 가을에는 2차 코로나 대유행이 온다. 그럼 그때도 온라인 수업을 할 것이 뻔하다. 과연 그때도 지금과 같은 교사 출근용 온라인 수업을 할 것인가?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더 그렇다. 필자가 신규 선생님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의 첫 수업이 선생님의 정년 퇴임 때의 마지막 수업이 될 수 있습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지켜본 건 결과 학교의 처음은 대부분 그대로 틀로 고정된다. 대표적인 것이 수행평가이다. 수행평가가 처음 도입된 2000년대와 현재의 수행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교사 중심의 일방적인 수행평가는 지금이 훨씬 심하다.온라인 수업에 갈팡질팡하는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이 있다. 이양연의 야설(野雪)이다. “눈을 뚫고 들판을 지나갈 때/모름지기 이리저리 어수선히 가지 마라/오늘 아침 내가 간 발자취는/결국 뒷사람이 따라갈 길을 만드는 것이니!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迹 遂作後人程)”5월에는 콜센터 선생님 대신 학교 선생님이 교실에서 수업다운 수업을 하길 기원해본다.

2020-04-27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에는… 달성 용연사(龍淵寺)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 비슬산 가는 길은 벚꽃이 지기가 무섭게 화려한 영산홍들이 길을 연다. 비슬산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으며, 명산답게 이름의 유래도 다양하다. 나는 인도의 힌두교 신 ‘비슈누’를 한자로 음역한 비슬노(毘瑟怒)에서 왔다는 설을 좋아한다. 왠지 먼 나라의 신화를 떠올리면 평범하던 산은 더 깊고 신비로워 보인다. 8대 적멸보궁으로 이름난 용연사가 그 안에 있다.5대 적멸보궁에 건봉사, 도리사, 용연사를 넣으면 8대 적멸보궁이다. 용연사는 912년(신덕왕 1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이 절터에 용이 살던 곳이라 용연사로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3년에 사명대사의 명을 받고 인잠, 탄옥, 경천 등이 재건하였다. 1650년에 일어난 화재로 보광루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으나 다시 중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비슬산 용연사 자운문(琵瑟山 龍淵寺 慈雲門)’ 일주문 현판은 여느 사찰보다 이색적인데 그곳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없다. 살짝 돌아앉은 일주문은 제 구실을 못하고,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보물 제539호 석조계단(石造戒壇)이 있는 적멸보궁 가는 길, 우측으로는 극락전을 비롯한 많은 당우들이 기다리고 있다.용현사의 백미는 적멸보궁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대부분 우측길로 접어든다. 극락교를 지나 천왕문을 통과하는데 수많은 염원을 담은 문구들이 철재 난간에 빼곡히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사업 성취, 의대 합격, 글씨체만큼이나 다양한 소원들, 재미삼아 걸어놓았을 소원들이 승자독식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듯 치열하다. ‘우리 아빠 아침에만 출근하게 해주세요.’ 어린 아이의 비뚠 글씨체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내게 간절한 소원 하나 있다면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리라. 마음속에서 기도를 먹고 자라는 소원은 눈빛과 행동으로도 그 완곡함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미끄러지기를 좋아하는 언어에 나의 간절한 마음을 싣고 싶지는 않다. 영험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몰래 하는 사랑처럼 은밀하고도 진중하게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누하진입식으로 안양루를 지나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극락전을 지키는 삼층석탑 난간에도 수많은 소원종이 댕강거리며 맞는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삼층 석탑의 우아한 자태와는 달리 고만고만한 소원종들의 아우성으로 마음은 심란하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 이곳에 모여 든 것 같다.보물 제 1813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극락전에서 불자들이 기도를 할 때도 소원종은 쉬지 않고 저만의 방식으로 기도를 한다. 바람이 거칠어지면 소원종의 호흡도 벅차다. 많이 펄럭일수록 그들의 기도가 간절히 전해진다고 믿는 히말라야 산기슭의 룽다와 타르쵸처럼, 그들은 경쟁하듯 시끄럽다.다시 극락교를 건너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자연석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딴 세상처럼 한적하다. 오래된 나무들의 미소 사이로 보이는 벤치에는 4월의 고요가 뒹굴고 숲은 싱그럽다. 크고 작은 돌탑들도 보인다. 강한 바람에도 누설되지 않을 돌탑의 소원이야말로 궁금하다.적멸보궁은 용연사를 떠나 그 안에 섬이 되어 또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파른 계단 위로 보광루가 보이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둔 보물 제 539호 금강계단(金剛戒壇)을 향하는 마음이 자꾸 앞서 걷는다. 계단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해지는 성스러운 곳이다.조낭희 수필가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적멸보궁 문은 일시적으로 잠겨 있다. 유리문에 얼굴을 대고 법당을 훔쳐본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세계 하나가 창문 너머에 존재한다.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 그곳,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면 가까이 갈 수 있을까.뜰 앞을 거니는 내게 담장 너머로 연분홍 철쭉들이 사랑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저 여린 나뭇가지 끝에도 무한한 애정을 쏟는 신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철쭉은 꽃의 이미지를 벗고 유순하고, 금강계단 주변은 온통 4월의 기도로 평화롭다. 이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감지하며 나는 비슈누 신을 떠올린다.우주의 질서와 인류를 보호하는 신, 두루 꽉 차다는 뜻을 지닌 비슈누를 ‘깊은 내부에서 우주 전체를 들고 있는 신’이라 괴테는 표현했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금강계단을 향해서인지 숲을 향해서인지 분명치는 않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들과 신화에 대한 경의였는지 모른다.마당 건너편에 있는 보광루 법당에 올라 백팔 배를 하는 동안 사리탑이 내 안으로 성큼 들어와 앉고 마음은 철쭉빛으로 물든다. 천왕문 난간에 매달려 있던 소원글들이 또 다시 비집고 들어온다. 작은 흥밋거리로 치부했던 나의 무례함을 사죄한다. 어쩌면 그들은 어둠의 변두리를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신산한 언어들의 보챔을 잠시라도 외면했던 순간을 반성한다.그리고 기도한다. 떨어지는 햇살 속에도, 참새의 작은 부리 끝에도,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과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2020-04-27

포스(Force)와 함께한 42년의 대서사시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일단락 됐다. 1977년 시작돼 2019년까지 이어졌던 42년의 장대한 대서사시가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3대에 걸쳐 오래전 언제인가 알 수 없는 은하계를 종횡무진했던, 과거로부터 전승돼왔던 이야기의 마무리였다.총 9편이 제작된 ‘스타워즈’시리즈는 1977년 오리지널 시리즈 3부작과 1999년부터 오리지널 시리즈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3부작을 선보인다. 그리고 디즈니가 루커스필름을 인수한 2015년에 오리지널 시리즈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시퀄 3부작을 시작해 ‘2019년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로 막을 내린다.42년의 시간은 인간의 나이로 중년을 맞는 시기다. 이 시간 동안 제다이와 시스, 제국과 반란군의 이항대립으로 전형적 신화의 연대기가 이어져왔다. 그 속에 성장의 과정과 출생의 비밀이 삽입되며 선과 악의 선택 기로에 선 주인공이 빠짐없이 등장했다.영화 ‘스타워즈’의 뼈대를 이루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조는 ‘포스’라는 힘의 근원에서 출발한다. 제다이와 시스가 스타워즈 세계의 대립항이지만 이들은 ‘포스’라는 하나의 힘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제다이는 은하의 균형과 평화를 위해 ‘라이트 사이드 포스’를, 시스는 포스의 어두운 면을 통해 스스로의 욕망을 성취하는데 ‘다크 사이드 포스’를 사용한다.포스를 사용하는 제다이가 다크포스에 물들어 타락하면 ‘시스’, 다크제다이가 된다. 하나의 힘에서 나와 그 힘의 어느 면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은하계에서 그의 행보가 달라지고 행해야할 임무가 달라진다. 은하계의 평화를 위할 것인가 나의 욕망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평화와 열망의 선택에 의해 하나의 힘이었던 포스는 갈라진다.이렇게 볼 때 ‘포스’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돼 전승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불안정한 것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위치가 달라진다. 제다이에서 시작해 시스로 전이되는 과정이 영화 ‘스타워즈’ 9부작의 시리즈마다 등장한다. 간단하게 영화 ‘스타워즈’의 42년은 포스에서 시작된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요약된다. 이 대결구도 속에서 ‘스타워즈’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출생의 비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선의 상징인 제다이가 악의 상징인 시스를 처단하는 과정 속에서 선과 악의 혈연관계가 드러나고 종국에 가서 그 꼬이고 꼬인 선과 악의 연대기가 혈연의 관계 속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늘 영화 ‘스타워즈’는 은하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 영화 속에서 은하계는 그 일부며, 포스의 어느 쪽에서 서 있지 않은 대부분이 은하계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속에서도 은하계는 넓고 넓은 다양한 존재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 넓고 광대한 은하계에서 포스의 밝고 어두움과 상관없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채로운 존재들이 잠깐씩 등장하곤 했었다. 제다이와 시스가 머물다 간 자리마다 황폐해지거나 폐허가 됐다. ‘평화’와 ‘욕망’이라는 명분을 위해서 그들의 기나긴 우주전쟁이 이어졌지만 광활한 은하계에서 그 사건은 자잘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3대에 걸친 연대기는 제다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푸른 광선검과 붉은 광선검의 싸움에서 푸른 광선검은 명맥을 유지하며 계승을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히어로와 빌런을 탄생시키며 시리즈를 확장하는 영화들의 행보가 아니더라도, 포스의 활용에서 기인한 불안정성이 늘 존재하기에 그 불안정성에서 탄생할 존재들이 언제든 출연할 것임을 알고 있다.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자아가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는가에 따라서 포스의 밝음과 어둠이 존재하는한 ‘스타워즈’시리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때 당신에게 ‘포스가 함께 하시길.’/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2020-04-27

코로나의 역설

전세계를 감염병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오지만 인간에게 피폐해진 지구에겐 코로나가 백신이 되고 있다. 이를 ‘코로나의 역설’이라 부른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인 감염병이 인간문명앞에 가려져 있던 자연의 본래모습을 되찾아주고 있다는 것이다.가장 두드러진 건 깨끗해진 공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본격적인 측정에 나선 이래로 지난달 미 북동부 지역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가장 낮았다. 중국의 대기중 이산화질소 농도 역시 2월에 30% 감소했다. 베이징하늘은 ‘베이징 블루’를 되찾았다. 이산화질소는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다.3월이탈리아에선 40~50%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재택근무, 개학연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한 3월 초미세먼지 농도가 지난해보다 46% 줄었다.세계 최악의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에 휩싸였던 인도에서 맨눈으로 히말라야를 볼 수 있게 됐다.공기만 맑아진 게 아니다. 세계적 관광지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가 맑아졌다.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녹색에 가까웠던 강물이 투명해져 작은 물고기떼까지 볼 수 있게 됐다. 베네치아 운하는 연간 2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인 데, 지난 달 17일 이탈리아 전 지역 봉쇄령이 내려진 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호주 애들레이드에선 캥거루가 길거리를 뛰어다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코요태가 금문교 인근을 거니는 장면이 목격됐다.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퓨마가 도심을 활보하고, 웨일스의 휴양도시 란디드노에서는 난데없이 산양무리가 나타나 도로를 가로지른다.코로나19는 어쩌면 지구가 잠시 쉬자며 지르는 비명일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27

조삼모사 고사가 놓친 것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조삼모사는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한 교훈적인 이야기다.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화내자, 순서를 바꾸어 아침에 네 개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내용이다. 이 고사는 주인의 교묘함을 비난하는 이야기로 보기도 하지만, 주로 원숭이를 조롱하는 이야기로 인용된다. 어차피 똑같이 일곱 개인데, 아침 저녁 순서를 바꿨다고 좋아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이다. 이 고사의 교훈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오다가 최근에 한 가지 일을 겪고 나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지난 4, 5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서 조심하며 살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컨디션이 나아져서 작년 11월부터 운동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스쿼트 10번으로 시작했는데, 한 달만에 60번씩 하게 되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겨 스쿼트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실내자전거를 타고 스쿼트를 해보니 잘 되어, 훌라후프를 추가했다. 훌라후프, 실내자전거, 스쿼트 순으로 운동을 했다. 그런데 스쿼트가 잘 안 된다. 몸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고 실내 자전거, 스쿼트, 훌라후프로 순서를 바꿔보았다. 그러자 스쿼트 하기도 쉽고 훌라후프를 더 많이 돌려도 거뜬했다.어떤 사람에게는 이 정도는 운동도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정도의 운동도 엄청난 사건이 될 수 있고,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발견까지 한다. 실내 자전거를 타고 스쿼트를 하면 스쿼트가 더 잘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흥미진진했지만, 운동 같지도 않은 훌라후프 때문에 스쿼트 하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치 과학적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러자 조삼모사 고사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훌라후프를 먼저 돌리느냐 나중에 돌리느냐에 따라 스쿼트 60번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동작이라도 순서를 바꾸면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원숭이 역시 똑같은 도토리 일곱 개라도 아침저녁으로 세 개 네 개 순서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도토리 효용이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은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같을 수도 있지만, 원숭이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넓은 생각도 덤으로 얻었다.한때 아침 식사를 안 해야 건강에 좋다는 조식 폐지 주장이 대세인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한 것 같다. 어쩌면 원숭이들이 일찌감치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사족 하나, 아침을 얼마나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에도 여전히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닌 것 같다. 1일 1식이나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아침을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저녁을 안 먹는 사람도 있다. 획일적으로 어느 방식이 옳다고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2020-04-27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김두한경북부해운법 제1조(목적) 이 법은 해양운송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며 해운업의 건전한 발전과 여객·화물의 원활한 운송을 도모함으로써 이용자의 편의를 향상시키고 국민경제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이 법이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하 포항해수청)의 존재 이유다. 이 법을 통해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울릉도 여객·화물 운송 형태를 보면 국민을 위해 일한다가 보다 업자 편에서 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먼저 여객운송을 보면 포항~울릉 간 정기 여객선 썬플라워호가 2월29일 선령만기로 운항이 중단된 후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면 지도 감독, 명령을 통해 울릉주민의 발길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직자의 책무다.하지만, 지금까지 대책마련을 커녕 오히려 울릉군과 선사에 미루고 있다. 해운법 제14조(사업개선의 명령)에는 운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공복리증진을 위해 대체선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또한, 화물운송도 국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다. 지난 2018년 3월, 5천t급 대형화물선 미래 15호가 포항서 월, 수, 금요일 오후 출발, 울릉도서 화, 목, 토요일 오후 출발하도록 허가받아 운항에 들어갔다.,그런데 같은 해 6월 금강해운의 2천t급 대형화물선이 같은 노선에 취항했다. 하지만, 미래15호와 같은 날, 같은 지역, 거의 같은 시각 운항하도록 허가했다. 이렇게 허가하면 울릉주민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대형 화물선 미래 15호가 화물이 없어 3분 1도 못 채우고 운항 중인 가운데 추가 취항하는 화물선을 같은 날, 같은 지역서 운항하도록 허가, 이틀에 한 번씩 운항하게 됐다.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한 척이 포항서 출발하면 같은날 다른 한 척은 울릉도에서 출발하도록 허가해야 했다. 그래야 매일 운항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공식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운항하면 선사로서는 큰 이해득실이 없지만, 울릉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선사는 그날, 그날 화물에 따라 많이 실을 수도, 적게 실을 수도 있어 궁국적으로는 같다.그런데 이용자들은 매일운항에서 이틀에 한번 운항으로 바뀌게 된다. 울릉주민들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화물선을 여객선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화물선은 화물 승·하역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 매일 운항 불가능하다.그런데도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앞다퉈 출항하도록 허가해 울릉주민들을 위한 공공복리 증진은커녕, 공정한 경쟁 및 운송질서, 이용자의 편의를 저해하는 등 해운법 1조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포항해수청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울릉도 상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여객·화물의 원활, 이용자 편의, 공공복리 증진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선사의 애로, 불편을 들어주는 느낌마저 든다.포항해수청은 하루빨리 해운법에 따라 포항~울릉 간 여객선 썬플라워호 대체선 처리는 물론 화물선도 사업 개선 명령을 통해 이용자의 편의에 맞도록 국가기관으로 국민을 위해 전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0-04-27

재난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대구경북의 힘

라정일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재난안전연구소 부소장4월 10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0명으로 떨어졌다.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52일 만이다. 물론 언제든지 다시 대폭발로 이어질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사회재난인 감염병으로는 처음으로 대구와 청도·경산·봉화 등 경북 일부 지역에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다. 또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구·경북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대구시내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자 전국에서 약 1천200명의 의료진이 달려왔다. 국민 성금 역시, 사회재난으로는 최대인 약 2천500억원이 모아졌다. 재난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도 국민과 기업이 943억원이라는 소중한 돈을 기탁했고 현재까지 마스크, 손소독제, 생필품·식료품·의료진 키트 등 다양한 구호물품 약 460만점을 지원하고 하고 있다.코로나19 구호대상자는 사망자, 확진자, 자가격리자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긴급구호지원 중심에서 중장기적인 지역 회복과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대구·경북을 통해 그 첫 시도가 이루어졌다. 대구지역아동센터, 대구척수장애인협회와 골목식당을 연계한 도시락 지원사업과 지역자율방재단과 함께한 대구·경북 다중이용시설 방역작업, 대구·경북 봉제기업들과 연계한 경북형 면마스크 지원 등은 지역 공동체 상생협력 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약 193억원의 상품권 지원을 더해 마비수준인 지역경제에 마중물이 됐다.또한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역사회의 위로와 돌봄이 필요하다. 작년 4월 산불 피해가 컸던 강원도 속초 영랑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가을에 ‘산불피해 치유를 위한 주민화합 행사’를 열었다. 이재민, 자원봉사자, 주민, 관계기관 모두가 스스로 및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됐다.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와 국민에게 받은 무한한 지원과 응원을 발판 삼아 대구·경북은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이제 개인, 시민단체, 구호기관, 지역사회, 지자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재난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대구·경북 시민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

2020-04-26

김종인과 ‘TK 정치’

안재휘논설위원골동품 수준의 기계부품들로 가득한 낡은 공장 하나가 있다. 지붕까지 새고 기둥과 벽에 금까지 가 있는 데다가 기계들은 잇달아 고장 나고 부서지고 수시로 멈춰 서곤 한다. 구닥다리 생산품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지 오래됐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능한 관리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씩 사주는 일부 소비자들을 믿고 공장 경영권에만 매달린다.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초토화되다시피 한 당을 추스를 구원투수로 지명된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을 놓고 미래통합당이 시끌벅적하다. 김 전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무기한·전권’ 요구를 시사하자 반발하고 있다. 논란 확산에 김종인은 “임기, 언제든 그만둘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전쟁터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다선의원들을 중심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 권한을 용납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은 순정, 제1야당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 속에 ‘자기 정치’ 욕심의 발로는 정녕 추호도 없을 것인가.경남에서 대구로 날아와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가 거품을 물었다. 비대위 카드를 찬성하던 그는 김종인이 자신을 겨냥해 “시효가 끝났다”고 잘라 말하자 표변했다. 홍준표는 지난 1993년 동화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 전 위원장의 전력을 소환해 수사 당시의 장면까지 시시콜콜 묘사하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역설적이게도, 홍준표의 구상유취한 행태는 미래통합당이 왜 이대로는 안 되는 건지, 그 퀴퀴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종인이 던지는 화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하다 싶을 수 있지만, 그 메시지는 대단히 적확하다. ‘70년대 생 경제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상징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그냥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통합당 일부 중진들의 심사는 도대체 뭔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통합당 득표율에서 민주당과의 차이가 고작 8%라고 우쭐대는가.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62%를 훌쩍 넘고, 민주당 43%·통합당 22%로 나타난 갤럽의 지지도 조사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오해하지 마시라. 41%, 그거 통합당 좋아서 찍은 표 아니다.굳이 김종인이 아니더라도 미래통합당은 ‘창조적 파괴’ 말고 길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TK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꼴통보수 본산’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품고 있는 ‘중도실용 정치’에 대한 갈망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가 살길은 ‘중도실용’으로 재무장하는 외길뿐이다. ‘TK 정치’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지난 4·15총선은 ‘보수’와 ‘TK’가 이제 대한민국의 주류가 아님을 충분히 증명했다. 담대한 설계도를 놓고 ‘보수정치’의 낡은 공장을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시간이 왔다.

2020-04-26

코로나 2차 대유행 경고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아직 그 기원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그해 초여름 미국의 한 병영캠프에서 독감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작했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 별 주목을 끌지 못하다 그해 8월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세상의 이목을 모았다고 한다.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본국으로 귀환하던 미국 병사의 병영캠프가 전염원이 됐을 것으로 본다. 캠프에 모여 각지로 귀향한 병사가 전파자 되어 전 세계로 번졌을 것이란 짐작이다. 이 독감은 다음해까지 창궐하면서 2년 동안 적게는 2천500만 명에서 많게는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았을 것으로 본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사자가 900만 명이었던 사실과 비교해 보면 독감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 최대 재앙이다. 내용으로 보면 미국독감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러나 당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언론이 독감에 대해 대서특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란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무오년 독감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는 당시 조선인 인구의 거의 절반인 742만 명이 감염됐고 13만9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중국에 거주한 김구 주석도 이 독감에 걸려 간신히 회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미국 식품안전국(FDA)은 코로나19가 오는 11월쯤 다시 발생해 내년 3월까지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국 정부도 2차 대유행에 대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4월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20만 명을 육박한다. 엄청난 인명피해로 전세계는 충격에 빠져 있다.의료계의 2차 대유행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2년에 걸쳐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을 떠올리게 한다.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6

포항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

지난 4월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WEO)을 발표하면서 1월 시점 전망치를 대폭 낮추었다. IMF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봉쇄(Great Lockdown)’가 확대되어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성장하면서 내년까지 세계 GDP에서 9조 달러가 증발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는 기타 고피너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밝힌 것처럼 일본과 독일 양국의 GDP를 합한 큰 규모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IMF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세계 경제가 2/4분기까지는 심각하더라도 후반기부터는 점차 회복할 것으로 전제하면서도 지난 1월 전망 당시 상정하였던 세계 경제의 성장경로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크지 않다고 전망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1.2%로 보는 등 선진국, 개도국 모두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내리면서 올해 세계 경제는 -3.0%의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에 더하여 IMF는 기본 시나리오 외에 3개의 리스크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하였다. 첫째, 기본 시나리오보다 감염사태 수습 기간이 50% 더 길어질 경우. 둘째, 내년에도 감염이 재발하여 올해 수준의 약 2/3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셋째, 앞의 두 개 위험이 모두 발생하는 경우다. 그만큼 코로나19의 감염 확산 방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일반적인 과거의 충격과 달리 노동 공급 감소와 사업장 폐쇄 등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생산성 하락 등의 연쇄효과로 인해 전염병 발생지역의 산업 활동과 소매업, 고정자산 투자 등 실물 경제가 빠르게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였다.이상을 고려할 때 IMF가 전망에서 채용한 기본 시나리오가 그대로 적중되더라도 올해 2/4분기까지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으며 하반기 이후에나 회복 조짐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수석경제해설가 마틴 울프는 ‘지금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The world economy is now collapsing)’라는 4월 15일 자 칼럼에서 IMF가 ‘대봉쇄’라고 했으나 ‘대차단(Great shutdown)’이라 보아야 하며 봉쇄로 세계 경제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며 IMF의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물자의 적극적인 국제 교류의 중요성과 함께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물류 흐름을 차단하는 행위가 세계 경제 회복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의 말대로 IMF의 전망이 낙관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포항경제는 더 정도가 심할 것임은 분명하다.게다가 IMF의 예측대로라면 글로벌금융위기 당시보다 그 진폭이 크고 회복속도는 더 느려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포항경제도 당연히 주요 지표는 마이너스였다. 포항경제의 주력인 철강산업만 보더라도 피해가 컸다. 당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2009년 연간 조강생산량은 전년 대비 3.9%가 감소하였다. 철강 공단의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13.5%, 8.8% 감소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철강(제1차금속) 부분만 추출하여 살펴보면 하락 폭이 더 컸다. 철강 공단의 제1차 금속부문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17.3%, 21.7%가 감소하였다. 당시 포항시 전체 수출액은 23.8%나 감소하였다. 이외에도 지역 건설과 운수업 등과 연관성이 높은 투자지표인 건축허가에서는 상업용과 공업용 건축 허가면적이 2008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전체 허가면적이 전년 대비 22.0% 감소를 기록하였다. 결국, 올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안 포항경제의 3대 천왕인 철강, 운수, 건설 등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내지는 그 이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따라서 포항경제가 정상적인 성장경로로 최대한 빨리 회복하여 주력 기반산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전국적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대책과는 별개의 지역 독자적인 방책이 있어야 한다. 포항경제가 지금의 위기를 조기에 극복해 나가려면 다양한 사업을 광범위하게 펼쳐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왔던 종전방식과 달리 굵직한 몇 개 사업을 선택하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일시에 쏟아부어야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공황에 버금가는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는 미래의 신성장동력보다는 당장 지역 기반산업이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만 한다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따라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포항의 경제대책에서 최우선순위는 지진복구사업이어야만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지역 경제의 다양한 분야가 과거와 달리 위축되었던 최대원인은 포항지진이었다. 그동안 포항지진의 원인 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이 지연되면서 커졌던 불확실성이 지역 경제주체의 소비, 투자심리를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지난해 말 포항지진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지진 특별법에서는 다양한 부분을 다루겠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부 예산을 배정받아 집행할 수 있는 복구 재건사업이다. 지역에 자금이 풀리고, 지역기업이 참여하여 제대로 경제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복구 재건사업을 추진할 때도 사업의 추진 방침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사전에 설정해 두어야만 한다. 반드시 지역기업, 그중에서도 철강 공단에서 생산하는 철강 자재를 듬뿍 사용하는 건축물 등의 설계와 시공을 채택하고,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진복구 재건사업을 일괄적인 단일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사업주에게는 경제성과 효율성은 높겠지만 최대한 소규모 단위사업으로 분리하였으면 한다. 사업 전체 조감도는 당연히 한 장의 청사진에 담아야겠지만, 공사 시행 구간과 단계를 최소 단위로 분리하여 지역 건설업체들이 건설 도급순위 등의 규모나 실적에 밀려 해당 사업에서 원천 배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주력 기반산업인 철강, 건설, 운수가 아예 독과점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특혜를 주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지역경제의 조기 회복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지금은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시의회나 도의회에서도 한시적인 제한을 두더라도 지역업체에 우선권을 주는 특별조례를 제정하여 이를 뒷받침해 주었으면 한다. 다른 지역이라면 없는 사업이라도 만들어야 할 이때 포항에는 당연히 해야 할 복구사업, 재건사업 등 현안 사업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방역 관계로 즉각적인 건설사업 착수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태가 종식되는 즉시 복구 재건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둘 필요는 있다. 최대한 많은 철강, 건설, 운수업종의 지역업체들이 밤낮없이 지진복구, 재건사업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전준비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이들 3대 업종의 지역업체들이 지역 내 사업에 참여하여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피해가 컸던 지역 소상공인, 골목상권 등의 경기는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듯이 저절로 생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의외로 포항경제는 빠르게 회복할지도 모른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26

익숙한 듯 낯설게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우는 잎새달이다. 진초록 위에 연초록 잎새 겹쳐 피어나면서 나무들은 신음인듯 환희인듯 일제히 잎차례를 벌이고 있다. 혹한의 시련을 이겨낸 인고의 몸짓같은 여린 이파리들이 앙증스럽게 손 흔들며 약동하는 봄날을 환호하는 듯하다.몇 차례의 신열같은 꽃 잔치 속에 온갖 생물들은 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생육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새로운 싹과 잎사귀를 드리우고 곤충과 동물들은 본격적인 먹이활동을 시작하면서 번식과 생장의 사이클에 접어들고 있다. 이처럼 자연만물은 때가 되면 돋아나고 피어나고 나타나 익숙한 듯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 것이다. 초목은 차디찬 땅 속에서도 부단히 새봄을 준비하는 일손을 멈추질 않았고, 동면의 겨울나기 속에서도 생명체는 나름의 생존법을 익혀 왔었기에 새로운 싹과 꽃을 피우며 개체를 연명해가는 것이 아닐까?자연은 이렇게 자생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당연하게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온갖 만물의 존속과 조화,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해마다 낡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익숙함을 보여왔었기에 생성과 소멸, 진화를 거듭하면서 현재까지 이르렀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리라. 그래서 새로운 것들은 낡은 것에서 싹트고 희망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했던가.세상도 자연도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세월이 가고 오고 계절이 바뀌듯이 세상의 모든 유무형의 물질들은 시시각각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자연과 세상은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사이, 작거나 크게, 느리거나 빠르게, 조금씩 변하고 확연히 달라지며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물론 변화하되 변함없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시대나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하고 퇴보함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고 흔히 보아왔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생과 존립, 진전과 확장을 위한 치열한 도전과 생명력 그 자체라고 여겨진다.변화를 두려워하면 성장과 발전이 없다. 최근 들어 걷잡을 수 없는 이변의 소용돌이 속에 고난과 질곡, 파란과 충격의 여파가 만만치 않은 듯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난마같은 코로나19를 탓하고 투표로 나타난 민심의 향배만 안쓰러워 할 것인가. 앞으로 어쩌면 그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최악의 딜레마에 휩쓸릴 수도 있음을 예단하고, 보다 지혜로운 대응과 만반의 조치, 유연하고 과단성 있는 변화의 길목에 나서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종전과 달라진 생활패턴과 새로운 의식의 지향 속에서 익숙한 듯 낯설게 움직이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여, 차별화된 새로움과 확고한 비전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목의 등걸에서도 새순이 돋아나듯이 경험과 시련을 통해 지혜가 자라고 내성이 길러진다. 진정한 변화는 전통의 배제가 아니라, 역사의 무늬가 응축되고 융화되는 그루터기 위에서 싹이 트는 창조적인 혁신인 것이다.

2020-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