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나처럼 허약 체질에겐 딱 좋은 산책길이었다. 피곤할만 할 때쯤 미술관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보였다. 바람이 숲을 스치는 소리가 오후의 편두통을 사라지게 해줬다. 누군가 내가 산에 갈 때 복장을 보고 나무랐다.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모자도 잘 안 쓰는 편이다. 맨다리가 긁힐 거라는 둥 땀이 많이 나면 면 티셔츠는 체온 유지가 안 되어 해롭다는 둥 유난스럽게 야단을 친다. 나는 에베레스트나 백두산을 오르는 게 아니다. 그저 기껏해야 한 시간 뒷산에 간다. 반바지에 티셔츠로도 충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늘은 작은 배낭 하나에 물도 없이 휴대폰만 넣었다. 어젯밤 멜론에 가입해 이루마와 김광석의 모든 노래를 다운받아 놨기 때문이다. 가을에 딱 맞는 선곡 아닌가.
지금 포항시립미술관에는 이종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보고도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자꾸 보다 보면 맘이 편해진다. 미술관 분위기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톤이라 나는 혼자서도 자주 간다. 도슨트가 설명을 해주는 것을 따라가며 듣기도 하고, 어느 땐 기분 나는 대로 어느 그림 앞에 앉아 멍을 때리기도 한다. 미술관 찻집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창으로 난 풍경을 그림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미술관이 내게 주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인다. 이 모든 게 공짜라는 건 안비밀!
가는 길은 산으로 갔지만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탔다. 노곤하다. 집에 가서 낮잠 한숨 자야겠다. 일요일이니까. /이은규(포항시 남구 연일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