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책 여러 권을 쌓아두고 손닿는 대로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문학과 비문학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이장근 시인의 시집 ‘당신은 마술을 보여 달라고 한다’와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고전 ‘시경’을 같이 읽는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은 옳다’와 손훈영 작가의 ‘그 여자의 자서전’을 번갈아 읽는다. 이화정의 ‘북 코디네이터’와 메리 파이퍼의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함께 읽는다. 책 대 여섯 권을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함께 읽어나간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 어떤 책은 잘 읽히고 많이 읽히는데, 또 어떤 책은 몇 줄 읽다가 보기 싫은 사람처럼 덮기도 한다. 아무렴 어떠랴. 누구 보라고 책 읽는 게 아니다. 내가 좋으면 그뿐. 서로 다른 장르의 책을 여러 권 번갈아 읽다보니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물과 현상들이 서로 ‘융합’되는 기이한 경험을 종종 한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의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한 권씩 감질나게 읽지 말고, 대범하게 동시에 열권을 읽어라. 읽되, 지혜롭게 읽어라. 가급적 서로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극단적으로 다른 책들을 골라 최대한 몰입해서, 읽어야 할 곳과 읽지 말아야 할 곳을 선택해 가며 신속하게 읽어라.”고 주장한다. 일명 ‘초병렬 독서법’이라고 하는데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쌓아두고 다양한 책을 동시에 섭렵하는 방식을 말한다. 화장실, 거실, 침대, 식탁 곳곳에 여러 권을 책을 놓아두고 동시에 읽는 것이다. 장르가 다른 책을 읽으면 뇌의 다양한 부위가 활성화되고 의욕과 긴장감이 살아나 예기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때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한다.
손훈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주 밑줄을 그었다. 이를테면, “글을 쓰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은 결국 재능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 “진실로 ‘문학’을 하고 싶지, ‘문학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에는 강렬함이나 활활 타오름이라는 요소가 없다. 내가 원하는 건 행복이 아니라 강렬하게 집중된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몰입과 집중이 모자라서다. 집중된 시간을 뚫고 흘러나오는 다이아몬드의 광휘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빛나는 문장에 마음을 벼리고, ‘시경’을 펼쳤을 때 지루하기만 하던 ‘시경’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채로 다가왔다. 거기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나 ‘코스모스’같은 책을 펼치면 광활한 우주에 시와 에세이의 무늬가 어른거린다. 인문학과 과학이 어떤 독특한 접점을 이루는 것을 목격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시구가 떠올라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시한 책은 읽다가 얼른 덮고 다른 책을 찾을 수도 있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선동적이지만, 핵심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자유롭게 오가며 색다른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