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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vs 화이부동(和而不同)

등록일 2020-12-17 19:37 게재일 2020-12-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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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왼쪽에 있는 사람보다 오른쪽 부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사물을 보는 시야의 범위가 위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자신만 볼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직접 볼 수 없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왼쪽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처럼 물리적 시야의 한계에 의해 생기는 오해는 어떻게 하면 될까.

해답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즉, 서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바꾸면 상대가 얘기한 것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상대의 말을 곧바로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의 시야가 서로 다를 경우는 어떨까. 선입관이나 고정관념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바꾸려면 마음이 서 있는 자리를 역지사지해야 가능한 데, 상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도 서로 정면대치하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해법은 있다.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바로‘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틀렸고 내가 옳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두 사람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결정과 추 장관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윤 총장이 17일 징계 처분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해 법적공방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추-윤 사태를 둘러싼 두 당사자의 입장을 짚어보자. 정부 여당은 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와 원전 수사의 예에서 보듯 산 권력이나 정권 관련 수사에는 물불 안 가리면서 야권 수사나 검사 술 접대 수사, 윤 총장 장모와 부인 수사 같은 제 식구 수사에는 미온적이라고 눈엣가시로 본다. 즉, 검찰이 관심 많은 사건에만 매달리면서 조직을 보호하는 동시에 정치판을 흔드니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윤 총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검찰은 “산 권력도 봐주지 말고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에 따라 마땅히 할만한 수사들을 했을 뿐인데 적폐수사 땐 힘을 실어줬던 여권이 돌변해 윤 총장을 부당하게 찍어내려 하고,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훼손하려 든다고 여긴다. 결국 집권세력은 검찰이 독립성·중립성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무간섭 향유를 의미한다는 것이고, 윤 총장 측이 보는 집권세력의 민주적 통제란 검찰 길들이기 내지 검찰장악을 뜻할 뿐이다. 이처럼 서로를 보는 마음의 시야가 다르니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무릇 정치는 화이부동해야 하건만….

이러니 과연 이 나라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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