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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故 정영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정영상문학전집 : 감꽃과 주현이’ 책 표지 “소나 돼지들의 똥과 오줌을쓰라린 속으로 받아들이며서로 끌어당기며 사는 것들그리하여 쉬지 않고오로지 썩는 일에만 몰두하여겨울에도 뻘뻘 땀 흘리며썩으면 썩을수록 더욱 정신 차려논 밭으로 나가쓰라린 속이 기쁨으로열매 맺힐 때까지 사는 것들”-정영상 시 ‘두엄’ 전문순정하고 강고한 시정신을 보듬고 이 세상의 ‘열매’들을 위한 ‘두엄’ 같은 삶의 길로 나아갔던 정영상 시인. 1993년 4월 37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한 정 시인의 30주기를 추모하는 ‘정영상문학전집: 감꽃과 주현이’(아시아)가 출간됐다.정영상 시인은 1956년 포항시 대송면 적계못 마을(남성동)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포항고교 시절부터 시와 인연을 맺었다.국립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 미술과를 졸업한 뒤 1989년 전교조 교사들의 대규모 해직사태 때 안동시 복주여중에서 해직돼 안타깝게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시간을 맞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했다.“아들로서, 지아비와 아비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미완에 그쳐버린”(이대환 작가) 생을 살고 떠난 고인은 시인으로서 생전에 두 권의 시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와 ‘슬픈 눈’을 펴냈고, 타계 후 유고 산문집 ‘성냥개비에 관한 추억’과 유고시집 ‘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이 출간됐다. 2003년 4월에는 공주대 교정에 ‘정영상 시비’가 세워졌다.이 문학전집에는 정영상(1956∼1993)의 시 255편과 그의 희소하고 귀중한 산문 18편이 수록돼 있다. 독자와 정영상의 대화는 그의 고향 풍경·어린 시절을 짚고 넘어가야 독자가 그의 시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유고 산문집 제1부의 유년 이야기들을 맨 앞에 배치했다.이어진 시편들은 시집 세 권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유고 산문집의 제2부에 모아둔 전우익 작가·신경림 시인·박원경 교사(정영상의 부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정영상의 편지들과 제3부에 모아둔 그의 단상들, 그리고 시집에 붙은 ‘시인의 말’과 ‘발문’은 수록되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의 ‘정영상론’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정영상 시인. /아시아 제공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시집들과 산문집을 새로 디지털화해서 엮어낸 ‘감꽃과 주현이’출간에는 정영상 시인을 더 널리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는 고향의 선후배 몇 사람과 출판사 아시아의 뜻이 담겨 있다.신경림 시인은 추천사에서 “글 어느 한 편을 읽어도 한 자 한 자 박아 쓴 장인의 손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는 본디 그림이 전공이기도 하지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원고지 위에 글을 가지고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마치 귓가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은 나무와 벌레와 작은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얘기들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고 적었다.엮은이 이대환 작가는 “서른 해 지나서 새로 읽어도 정영상의 작품들은 이 책에 실은 18편의 산문에 잘 나타난 그대로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년시절에 체화한 집안이나 이웃 농민의 빈궁 현실에 대한 쓰라린 애절과 직시의 고통, 그리고 교편을 잡은 1980년대의 독재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지와 극복의지를 담은 시 255편은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자라난 곡식들이다. 순정성, 이것이 사람 정영상의 진면모”라고 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6-21

자연에서 거닐기,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행복

‘지금 이 순간, 충분히 행복해지고 싶다면 걸어라. 가장 단출한 인간 행위인 ‘걷기’와 ‘행복한 삶’을 관통하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조언’.산책부터 하이킹, 등산과 같은 도보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 쉴 곳을 찾고, 건강을 증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의 저자 알베르트 키츨러는 자연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걷기의 가치가 건강 유지나 ‘힐링’ 차원의 휴식 그 이상이라고 본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을 뒤로하고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걸음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만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독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철학가이자 걷기 예찬자이기도 한 저자는 대자연과 하나 되며 자기 자신의 중심에 가닿았던 크고 작은 걷기의 경험과 함께 걷기를 즐겨 한 역사적 인물들의 사례와 철학적 사유를 엮어낸다. 또한 노자,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등 동서양 고대 철학자들이 ‘행복한 삶’에 관해 설파한 지혜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행복에 이르는 근본적인 요소들을 걷기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세세한 결은 다르지만, 동서양 고대의 현자들은 공통적으로 행복을 ‘평온하고 균형 잡힌 마음’의 상태로 봤다. 이런 상태는 외부 조건이나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길어내는 것’이었다.저자에 따르면, 사색적으로 자연 속을 걷는 활동을 통해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내면의 진실된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이 단순한 신체 활동으로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걷기가 삶에 미치는 힘을 일찍이 발견한 사상가들 중에는 걷기를 열렬히 예찬한 이들도 많았다.독일의 유명 철학자인 저자는 고대 철학에서 삶의 난관을 돌파하는 해결책을 찾아왔다. 그는 고대 철학자들이 설파한 ‘좋은 삶’, ‘행복’에 이르는 근본적인 요소들을 우리의 단출한 행위인 걷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발길을 딛는 단조로운 운동이 주는 리듬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점진적인 ‘변화’를 체험한다. 명상하듯 평온하고 균형 있는 마음에 이르면 일상의 근심이나 걱정은 하찮아진다. 따사로운 햇볕이 피부에 닿는 걸 느끼며 나뭇잎이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매혹적인 대기의 분위기에 취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순전한 기쁨을 맛본다.간혹 악천후나 험난한 지형을 만나 헤매다 보면,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것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일 외엔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많지 않음을 겸허하게 배우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자기 인식’이다.“침묵 속에서 홀로 자신의 생각에 젖어 걸어갈 때 (….) 이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황, 타인과의 관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 혹은 큰 기쁨을 주는 것들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서 걷는 일은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소풍이면서 자신만의 은신처를 소유하는 것과도 같다.”(17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6-15

섣불리, 쉽사리 단정하지 않은 채…

지난 2012년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일약 ‘문단의 아이돌’로 떠올랐던 황인찬(33) 시인의 신작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가 출간됐다.이번 시집에는 “시들이 전부 미쳤구나 싶게 근사하다”(황인숙)라는 평을 이끌어낼 만큼 탁월한 감각으로 빛나는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을 포함해 64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일상적 제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화(詩化)하는 황인찬은 우리 주변에 놓인 사물이나 사건들을 보고 섣불리 안다고 말하지 않고, 쉽사리 단정하지 않은 채, 그 모르겠는 것들에 신중하게 하나둘 이름을 부여하기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를 써나간다. 그는 ‘이게 내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고 말한다.‘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는 “그걸 사랑이라 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없는 저녁’)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빛의 언어로 충만한 황인찬의 시에는 명백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지 않은 역설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사진 속에 남아 고정되고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이미지들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너무 좋아하면서 언젠가 누군가와 남도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 정말 좋았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말하게 되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아는 사람은 다 아는’ 중에서 /윤희정기자

2023-06-15

위기, 권력을 낳다

예외적인 시대는 예외적인 일을 해내는 예외적인 지도자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 예외성의 공통요소는 다름 아닌 ‘체제의 위기’다.‘역사를 바꾼 권력자들’(한길사)은 그러한 예외적인 지도자들, 특수한 방식의 권력 행사가 가능했던 예외적 상황이 만들어낸 20세기 유럽 지도자들에 관한 사례연구다. 즉, 각자 다른 배경과 다른 정치체제로부터 등장한 그들이 어떻게 권력의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그 권력이 20세기 유럽을 어느 정도로 바꿔놓았는지를 다룬다. 저자 이언 커쇼(80)는 나치 독일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다. 히틀러의 기념비적인 전기를 쓴 저자로도 유명한 그는 이 책에서 ‘개성과 권력’을 주제로 12명의 유럽 지도자들을 도전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분석해내고 있다. 이 책은 흔히 교훈성과 위대성에 초점을 맞춘 평전이나 전기와는 그 접근법이 다르다.12명의 인물을 한 권에 다뤘지만, 이 책은 결코 ‘축소형 전기’가 아니다. 방대한 역사 문헌과 자료를 토대로 치밀하게 분석한 깊이 있는 연구서이면서도 대가다운 저자의 역사 인식과 통찰, 명쾌한 필력으로 인물들의 ‘개성’과 20세기 유럽 역사의 결정적 국면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역사의 변혁에서 한 개인의 역할과 영향’이라는 역사학의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문제를 저자는 놀라우리만치 균형된 시각으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듯 탄탄하게 풀어낸다. 이 책에서 다룬 지도자들은 모두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여는 데 중요한 방식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렇게 했다. 위기는 권력을 행사해 거대한 충격과 유산을 남긴 개인이 등장하는 배경이다.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을 시작으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 전쟁과 학살의 선동자 히틀러, 대숙청을 단행한 공포의 정치가 스탈린이 책의 전반부를 연다. 이어서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항독(抗獨) 의지를 불태운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 폐허 위에 서독을 재건한 백전노장의 정치인 아데나워, 스페인 내전의 국민파 반란 지도자 프랑코, 유고슬라비아의 절대권력자 티토가 중반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강한 영국을 만든 ‘철의 여인’ 대처, 소련을 개방의 길로 이끈 새로운 유럽의 건설자 고르바초프, 통일독일의 총리이자 유럽통합의 견인차 콜이 종반부를 구성한다.이 지도자들을 보면 독재자도 있고 민주주의자도 있으며, ‘파괴적인 인물’(Destroyers)도 있고 ‘건설적인 인물’(Builders)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구분과는 별개로 이들을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했다는 하나의 사실이다. 그가 거칠 게 없는 독재자라면 어떻게 해서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가 민주주의자라면 어떻게 해서 헌법에서 정한 제약을 극복하고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독재자도 민주주의자도 아니라면 권력 행사의 이론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개성과 환경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한다. 왜 어떤 개인은 출중하고 탁월해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행사해 정치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특정한 개인의 개성과 힘, 그리고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특정한 인물의 성격상 장점이 어떤 때에는 정치적으로 호소력이 없다가 다른 때에는 매우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인물을 카리스마 있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과 조건,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지도자 개인의 행위뿐만 아니라 그의 역할이 가능했던 비인격적, 구조적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역사적 변화에 한 인물의 개성이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자’ 시도한다.“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개성 있는 인물은 가급적 피하고 개성은 덜 화려하더라도 (모든 시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집단토의와 건전하고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한) 실현가능하고 효율적인 거버넌스를 제시하는 인물을 택하겠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6-15

근대문학의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

우리 문학의 무대로서 뚜렷한 아우라를 지닌 근대 문학의 ‘장소들’, 그리고 지난날 우리가 꾸었던 ‘꿈’ 한국의 근대 문학이 움튼 서울, 조선의 무수한 청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건너갔던 도쿄, 그리고 휴전선 너머 압록강과 두만강, 개마고원과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우리 작가들의 생생한 숨결이 뜨거운 발자취….폭넓은 독서와 여행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남일(66)이 최근 ‘한국 근대 문학 기행’(학고재)이라는 담대한 기획으로 ‘서울 이야기’, ‘평안도 이야기’, ‘함경도 이야기’, ‘도쿄 이야기’ 4부작을 펴냈다.‘어제 그곳 오늘 여기’(2020)를 통해 아시아의 근대 문학 작품을 지도 삼아 서울과 도쿄, 교토와 오키나와, 사이공과 하노이, 상하이와 타이베이를 가로지른 데 이어 이번에는 뚝심 있는 발걸음을 우리 땅으로 옮겨 오롯이 한국의 근대 문학에 집중했다. 한국 문학의 근대를 이룬 작가들이 미처 당혹감을 떨치지 못하던 시대, 그 시절 문학의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된 분단 이전의 우리 땅이 대장정의 출발지이자 목적지가 됐다.40년 넘게 소설을 써온 김남일은 “등단 이래로 수많은 외국 작품들을 읽어왔으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은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 말고는 딱히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읽은 기억이 없다”고 반성한다. ‘한국 근대 문학 기행 4부작’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의 근대 문학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처음부터 딱딱한 문학사론의 틀을 배제하고 ‘문학 기행’이라는 형식을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전 문학 작품을 좌표 삼아 소설 속 도시와 촌락, 산과 들을 되짚으며 그 장면 장면에 담긴 ‘사람’과 ‘삶’을 들여다보기로 작정한 만큼, 이 방대한 ‘한국 근대 문학 기행’ 역시 소설처럼 읽는 가운데서 저절로 한국 문학사의 큰 줄기를 그릴 수 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김남일은 오래전 작가들이 풀어놓은 글줄을 속속들이 곱씹는다. 그러고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하늘을 채우던 북방의 눈 내리던 밤 풍경부터 함흥과 제주에서 온 유학생이 뒤섞인 서울의 교실 풍경까지 생생하게 우리 눈앞으로 옮겨놓는다. 반세기 넘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저자는 고정된 풍경화로 그칠 뻔한 장면들을 유려하게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되살려냈다.지도에서 사라진 길, 마음마저 멀어져 쉬이 갈 수 없는 곳, 그 길을 안내하는 소설가 김남일이 글로 그린 근대 풍경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은 한국 근대 문학의 출발지이자 보고인 서울에서 시작한다. ‘서울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화두로 박태원, 염상섭, 채만식, 김남천, 윤동주, 유진오, 이광수 등 근대 문인의 삶과 문학을 둘러싼 풍성한 일화를 소개한다. 김남일의 풍부한 문학사적 지식, 근대와 고투한 문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 남다른 인문적 식견, 인간과 시대를 바라보는 곡진한 마음을 깔고 덮으며 신선한 자극과 배움을 얻는 즐거운 독서가 그 안에서 펼쳐진다.(권성우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평안도 이야기’는 진달래꽃 피고 지던 소월의 영변 약산, 이효석이 서국주의(西國主義)의 꿈을 키웠던 평양의 푸른 집, 김남천이 벗들과 술 마시던 성천의 눈 내리던 밤 풍경…. 이제는 갈 수 없는 휴전선 너머 우리 땅과 우리 문학 이야기 등 평안도 사람들과 문학에 관한 진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함경도 이야기’는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와 문화지리를 망라한 두터운 독서를 바탕으로 함경도를 재해석해냈다.(고명철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김남일 소설가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던 이용악의 두만강, 아직 철저한 민족주의자이던 시절 육당 최남선이 벅찬 가슴으로 올랐던 백두산, 그러나 지금은 우리 눈에서 아득히 멀어진 ‘북방’의 문학사적 복원이다.‘도쿄 이야기’는 나쓰메 소세키, 루쉰, 홍명희와 이광수. 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의 제도(帝都)를 꿈꾸던 도쿄에서 동아시아의 다른 작가들과 함께 호흡을 나누던 한국 근대 문학 작가들의 뒷모습을 숨김없이 찾아간다.김남일은 1983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전태일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제비꽃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권정생 창작기금을 받았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었고, ‘한국과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아시아문화네트워크’ 등에서 활동했다. 현재 동료 작가들과 함께 소모임 ‘아시아의 근대를 읽는 시간’을 꾸려가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5-18

인간의 마음·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

“때로는 인간종의 성공이 지능 때문이라고 설명되지만, 사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다.”모든 종이 저마다 독특하나, 인간은 그중에서도 특히 독특하다. 인간은 지난 1만 년 동안 도시를 건설하고, 수억 권의 책을 집필하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원자를 쪼개고, 인터넷을 발명했다. 인간은 뜨거운 열대우림부터 꽁꽁 얼어붙은 툰드라까지 말 그대로 지구를 장악했다. 그러나 동시에 소나 개 같은 가축, 쥐나 집파리 같은 공생동물, 진드기나 벌레 같은 기생동물들의 막대한 번식을 초래했다.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진화생물학과 케빈 랠런드 교수는 지난 25여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쓴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동아시아)에서 그 답이 우리의 문화 그리고 문화적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 것이 바로 문화이며,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 짓는 데 동원되는 언어, 협력, 초사회성과 같은 우리의 다른 특징들 역시 문화적 능력의 결과라고 답한다.저자는 책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된 이유로 누진적인 문화의 발전을 든다. 여기서 문화란 공유되고 학습되는 지식의 광범위한 축적과 시간에 따른 기술의 끊임없는 개선을 의미한다. 지능도 어느 정도 성공과 관련이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통찰력과 지식을 한데 모으고 각자의 해결책 위로 새로운 해결책을 누적해 나가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o.com

2023-05-18

“독일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현대사에서 독일만큼 극적 반전을 보여준 나라가 있을까? 독일은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학살 등 씻기 어려운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국가는 패망하고 국토는 분단됐으며 국제사회의 불신과 경계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독일은 철저히 과거를 반성한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경제부흥과 통일을 이뤄냈고 전범 국가의 오명을 떨쳐버리고 국제적 신뢰를 다시 얻었다. 그리고 세계사적 격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하나의 독일을 이뤘다. 이후 통일의 혼란과 후유증을 치유하며 새로운 번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로서, 그리고 세계 평화의 중재자로서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김황식사진 전 국무총리는 최근 펴낸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2’(21세기북스)에서 전후 독일의 민주 정치, 특히 그 정치를 이끈 총리의 역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설파한다.김 전 국무총리의 독일 총리 연구는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인식과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전범국 오명을 씻고 통일과 번영을 이뤄낸 독일 정치에서 한국 정치의 변화 방향을 찾고자 한 것이다. 2022년 1월 출간된 1권은 우리 정치도 대립과 갈등의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 펴낸 2권은 1권에 이어서 독일 역대 총리 4명의 정치 역정을 중심으로 독일 정치와 총리 리더십의 강점을 살펴본다.1권에서는 콘라트 아데나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쿠르트 키징거, 빌리 브란트의 정책을 분석했고 이 책에서는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어떻게 격변의 시대를 이끌었는지를 분석한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와 갑작스러운 통일 분위기 조성 이후 독일 총리들은 열강을 설득하며 평화적 통일을 이뤘다. 그리고 통일 이후 혼란을 극복하며 유럽과 세계 평화의 중재자로, 세계 중심 국가로 올라선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공헌을 한 총리들의 리더십은 극심한 대립과 혼란을 겪는 분단국가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이번에 발간한 2권엔 지혜와 신념으로 나라의 품격을 높인 헬무트 슈미트, 뛰어난 판단과 결단으로 독일 통일을 완성한 헬무트 콜, 신념과 희생으로 독일 재성장의 토대를 놓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성실과 실용으로 독일과 유럽연합(EU)을 관리한 앙겔라 메르켈의 리더십을 담았다. 책 후반부에는 독일 정치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들도 김 총리만의 시각으로 정리해 덧붙였다.저자 김황식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법관으로 재직 중이던 1978~1979년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수학하고, 2013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다시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공부했다. 비록 독일 관련 전공학자는 아니지만 김 전 총리는 그 후에도 틈틈이 독일을 오가며 우리가 참고할 만한 국가발전의 모델을 꾸준히 탐구해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20

사유의 충돌과 조화 속 동아시아 문화의 기원 돌아봐

극심한 문명의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그 핵심은 종교적 대립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하나의 종교로 수렴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교, 불교, 도교의 가치를 다채롭게 수용한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을 경험했다. 세 가지 사유의 치열한 충돌과 융합을 통해 한·중·일을 묶는 ‘동아시아 세계’가 형성돼 동아시아의 다원주의적 문화를 함께 발전해온 것이다.고대 중국에서부터 이어진 유교와 도교 전통 아래 외래종교 불교의 유입, 토착신앙의 발전 등 1~8세기 동아시아는 인간과 삶에 관한 다채로운 생각들이 얽히고설킨 사유의 용광로와 같았다. 우리의 기틀을 이루는 세 가지 사상은 국가 통치이념인 유교, 내세를 기원하는 불교, 개인 수양을 위한 도교로 나뉘어 충돌 끝에 조화를 이뤘다.고대사 연구자로 문화재청장·문체부장관 등을 역임한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사학과)는 최근 펴낸 신간 ‘사유의 충돌과 융합-동아시아를 만든 세 가지 생각’(21세기북스)에서 다섯 명의 인물의 고전 속에 드러난 동아시아 문화의 생생한 기원을 들여다본다.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과서였던 ‘정관정요’, 우리나라 삼국의 사상적 흐름이 담긴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일본 문화의 기원이 된 ‘일본서기’의 기록을 통해 우리 의식 깊숙이 자리한 화합과 상생의 정신을 새긴다.이 책에서 저자는 각국의 고전에 기록된 사유의 충돌과 각 융합의 흔적을 드러내는 데에 주목했다. 중국 당나라의 오긍이 집필한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과서였던 ‘정관정요’를 통해 유교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퍼져나간 동아시아 가치관의 기틀을,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고려 김부식과 일연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나라 삼국의 문화와 사상적 흐름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를 통해 사상의 수용을 통해 국가의 틀을 갖춘 일본을 돌아본다.“본래 우리나라의 토착 신앙은 천신과 산신을 숭배하는 것이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비롯하여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불교가 융합된 것이다. 결국 토착 신앙인 자연숭배 신앙에 유교적 가치인 충효 사상,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 불교의 이상인 집착과 구애를 받지 않는 자비와 선행까지 모두를 아울러 함께 실천한다는 의미이다.”-‘유·불·선을 융합한 풍류도 정신의 부활’74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20

대중투자사회가 시작된 역사적 맥락과 관점 고찰

오늘날 사회를 ‘대중투자사회’라고 진단하고 투자의 역사를 중요사안별로 정리하면서 경제적 인간 혹은 투자하는 인간으로 자리매김한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박진빈 경희대 사학과 교수와 김승우 스웨덴 웁살라대학 경제사학원 연구원 등은 책 ‘투자 권하는 사회’(역사비평사)에서 오늘날 사회를 ‘대중투자사회’라고 진단한다.‘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등 투자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는 이제 일상어가 됐다.10명의 저자들은 대중투자사회가 시작된 역사적 맥락과 관점을 고찰한다. 다양한 시대와 지역 그리고 투자시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며 경제적 인간 혹은 투자하는 인간으로 자리매김한 우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각 글은 한국은 물론 20세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특정 투자 붐을 주목한다. 그 현상이 일어난 배경과 추동시킨 조건과 주체, 그리고 일반 국민을 ‘투자자’로 소환시킨 기법과 정책 등을 살펴보며, 근대사회 이래 ‘투자’의 실태와 사회적 영향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일반인이 투자시장으로 초청·호명됐던 배경 및 귀결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김승우 연구원은 20세기 초부터 대중투자사회로 진입했던 미국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지금도 시장에 적용되는 주요 투자 전략의 역사적 기원과 의미를 살핀다.박진빈 교수는 1920년대 광적으로 등장한 미국 플로리다 부동산 개발과 투기 열풍을 조명하고, 최은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1904년경부터 1910년대까지 조선에 대한 일본인의 토지 투기 양상과 일제 식민 당국의 정책 지원을 분석한다.이 밖에도 책은 1970년대 중산층이 등장하며 대중화한 국내 부동산 투기(송은영), 1980년대 후반 증시 호황기에 등장한 개미군단(이정은), 버블 시기 일본에서 나타난 투기·투자의 특징과 의미(여인만) 등 투자와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한다. /윤희정기자

2023-04-20

민주주의는 어떻게 자유주의 없이도 번영하는가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조사이아 오버 교수(역사학·정치철학)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원초적 민주정’부터 유럽의 계몽기와 근대를 거쳐 20세기 중반까지 민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사상의 경합과 명멸을 조망하면서 민주주의의 참뜻과 가능성을 탐색한 책이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권위체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하나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자신을 자본주의사회로 부르는, 혹은 그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라 지칭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나라들 역시 스스로를 민주주의라 부르며 정당화한다.저자는 자유주의를 통해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를 제한해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자칫 ‘자유’ 쪽으로만 쏠릴 가능성이 있다며 자유주의가 민주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자유주의 가치를 선별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그는 자유주의와 민주정의 결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민주정이 자유주의를 포함해 다른 어떤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이론과 결합하지 않고도 그 자체만으로 여러 가지 바람직한 생존 조건들을 효과적으로 증진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자유주의와 민주정이 양립할 수 있는지 상호 배타적인지를 알려면 우선 민주정과 자유주의를 따로 떼놓고 탐구해야 한다”며 “원초적 민주정의 조건으로 ‘정치적 자유’ ‘정치적 평등’과 함께 공동체의 규칙과 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지켜지는 ‘시민적 존엄’”을 특히 강조한다. 저자는 순수한 다수결주의가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한 정치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은 민주정의 타락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하나의 원형적이고 정상적이며 건강한 정치체제의 유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 책에 피력된 오버의 주장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번성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무효임을 밝힌다.두 번째로, 오버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제3자의 통치 없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개인들이 설립한 가상의 사회인 ‘데모폴리스’에 기반한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넘어 오늘날에도 민주주의가 그 원초적 형태로 어느 정도로나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이같은 사고실험은 아테네의 시민적 존엄성(시민의 존엄성)에 대한 그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의 존엄성은 성인 시민 누구나 정치적 참여에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같은 인정은 서로 다른 잠재적 이해관계를 가진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사회적 균형으로 이해되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존엄성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다. 우리는 서로를 존엄하게 대해야 하며, 공직자 역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마찬가지로, 힘 있는 공직자나 힘 있는 개인이 시민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굴욕감을 주고, 시민을 어린아이처럼 무능력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동료 시민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시민은 책임감 있는 성인이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기에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06

치킨·맥주·삼겹살·과일·국수·빵… 맘껏 먹고 살 빼는 ‘과탄단 분리식단’

‘치맥, 삼겹살 다이어트’(비엠케이)는 석 달 만에 10kg을 감량한 생생한 다이어트 체험기와 성공 노하우를 담았다. 저자 일보접근(필명) 씨는 다이어트의 성과를 좌우하는 최후의 보루인 식단 조절로 10kg 감량에 성공했다. 저자는 다이어트 식품 사재기부터 식욕 억제제, 운동, 단식, 지방흡입술까지 20년 넘게 살 빼는 데 좋다는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 끼니 씨름 선수처럼 먹고도 살이 빠지는 원리로 ‘과탄단 분리식단’을 소개한다.분리식단은 미국의 유명 건강 컨설턴트 하비 다이아몬드가 쓴 책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에서 소개한 방법이다. 20대 내내 90kg이 넘는 비만으로 고생하며 각종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그는 자연위생학을 접한 뒤 한 달 만에 25kg을 감량했고, 이를 75세까지 유지했다고 한다.자연위생학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하면 몸속의 독소가 빠지면서 비만에서 벗어나고,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자연 치유 개념 중 하나다. 여기에서 파생된 분리식단은 ‘우리 몸은 위에서 한 가지 이상의 농축음식(가공처리·조리를 통해 물이 제거된 음식)을 동시에 소화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음식을 섞어 먹으면 안 된다’는 ‘음식 배합의 원리’를 적용해 만들어졌다.굶기는커녕 배 터지게 먹어도 좋다는 일보접근 씨의 희한한 다이어트의 규칙은 간단했다. “하나, 섞어 먹지 마라!”. 아침엔 과일, 점심은 탄수화물, 저녁은 단백질을 먹는 ‘과탄단 분리식단’을 실천했다. 한 끼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먹지 않고 한 가지 영양소만 섭취했고 꼭 채소를 곁들였다. 이것만 지킨다면 그 양에는 제한이 없다. “규칙 둘, 단맛 내는 첨가물 먹지 마라!” 설탕을 주원료로 하는 각종 소스와 양념, 첨가물들은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주범일 뿐만 아니라 현대 성인병을 부르는 ‘소리 없는 살인자’다.첫째 주에만 2kg이 빠지고, 한 달에 4kg, 석 달 만에 10kg을 감량했다. 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10kg에 성공한 저자의 식단을 그대로 부록에 실었다.섭취 및 조리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금지 식품과 이유, 허용되는 양념과 금지 양념, 감량에 성공한 후 유지기 식단 완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06

나를 찾아가는 별자리… 나의 강점·가능성 탐구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성격 때문에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내 재능은 무엇일까? 내 성향에 이 직업이 어울릴까? 요즘은 MBTI(성격유형검사·Myers-Briggs Type Indicator)로 자신을 알려는 MZ세대가 많다. 사실 MZ세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나는 ‘I’라서 이렇고, 너는 ‘E’라서 그렇다.” 이렇게라도 자신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별자리 오디세이’(비엠케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천문해석학인 점성술을 통해 자신의 별자리 차트를 해석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점성술(占星術·별자리·어스트롤로지·Astrology)은 천체 현상을 관측해 인간의 운명과 장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하늘의 현상은 언제나 인간이 경외심을 품는 대상이었고, 이러한 현상과 법칙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은 일찍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활용되고 있는 육십갑자(六十甲子)나 황도12궁(黃道十二宮) 등은 이러한 사상이 반영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옛날 사람들은 별, 즉 천체의 움직임이 인간의 생활과 자연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도 천체의 움직임이 결정짓는다고 생각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점성술 관찰 대상은 주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의 행성이었다. 예를 들면 목성과 금성은 행운의 별이며, 화성과 토성은 불행과 재난의 별이라고 생각했다. 또 두 개의 행성이 만나면 전염병이나 흉년, 혹은 혁명 같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징조로 보았다. 특히 혜성은 불길한 징조로 여겼는데, 느닷없이 나타나는 혜성은 균형의 파괴자로서 역모와 재난 등 나쁜 전조로 해석됐다. 중세에는 나라마다 점성술사를 두고 별의 움직임을 늘 관찰하도록 했다.점성술을 통해 운명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성 유닛 그룹인 우주살롱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인간과 우주의 상호관계에 토대를 두고 자신이 태어난 날들의 별의 배치를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표현하게 될 에너지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저자들은 MBTI는 어떤 사람이라고 단편적으로 규정할 뿐 자기답게 살도록 이끌어주지는 못하고 16개 성격 유형 중 하나로 압축할 따름이라고 본다. MBTI는 자신을 단적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는 반면, 별자리는 ‘나’에 대한 규정을 넘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준다고 설명한다.“각양각색의 개성을 찾는 시대에 별자리는 자아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매혹적인 도구다. 왜 늘 감정이 예민하고 힘들었는지, 직업에서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관계에서 배려만 하다가 지치는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 수 있다. 실용적인 해석법과 일상 활용 팁을 알려주는 별자리 출생 차트 워크북을 채우다 보면 자신에 대한 밑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질 것이다. 몰랐던, 때로는 알지만 숨기고 싶어했던 자신의 삶의 목표, 감정의 경향, 삶에 대한 태도, 연애관, 가치관, 무의식까지 알아보는 이 작업은 매우 흥미진진한 여정이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06

“인류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

이제 겨우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되자마자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 인구 폭발(한국의 경우는 인구절벽), 날로 심화하는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 AI의 일자리 뺏기까지 대다수가 인류에게 부정적인 신호다.그렇다면 정말로 인류의 미래는 암울한 것일까? 어떤 학문보다 데이터를 신봉하고, 증명과 검증에 철저한 경제학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까?오데드 갤로어는 미국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통합성장 이론’의 창시자다. 2021년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며,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석학이다. 통합성장 이론은 인류사 전체에 걸친 개발, 번영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갤로어는 경제학자로서 일생을 바쳐 얻은 통찰을 세계 각지에 공유했으며, 그렇게 얻은 통찰과 발견을 모아 최근 ‘인류의 여정’(원제 The journey of Humanity)’(시공사)을 펴냈다. ‘인류의 여정’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갤로어의 첫 책으로 전 세계 30개국에 번역 출판됐다. 영국 진보 언론 ‘가디언’은 이 책을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라는 평을 남겼다.‘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인류의 여정’에는 경제학자인 오데드 갤로어가 바라보는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등 거대한 담론을 담았다.“지식과 기술이 이토록 엄청나게 진보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건 수명과 삶의 질, 그리고 물질적 안락함과 번영 정도로 가늠하면 인류의 생활 수준은 대체로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리는 이 정체의 근본 원인인 ‘빈곤의 덫’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인류의 여정’ 1장 ‘첫걸음’ 중에서“이 여정 끝에서 나온 전망에 대해 미리 말해 두자면 기본적으로 희망적이다. 지구의 모든 사회를 아우르는 궤도를 봐도 그러하며, 이런 관점은 기술 발전을 진보로 보는 문화적 전통과도 일치한다. ”(21페이지)책의 1부 ‘인류의 여정’에서는 ‘경제적 활동’의 범위를 저 멀리 30만 년 전으로까지 확대해 인류를 고찰한다. 인류의 몸부림이 산업혁명으로 결실을 맺기까지의 ‘여정’을 인구, 소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2부 ‘부와 불평등의 기원’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대탈출로 인한 인종과 문화의 분화, 먹고사는 문제와 제도의 다양화, 산업혁명 발생에 시간차가 발생한 이유와 그 차이가 끼친 영향 등을 지리와 문화의 요소를 더해 설명한다.저자는 이제 세계 출산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인적자본 형성과 기술혁신이 가속화되는 ‘티핑 포인트(급변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는 “인류가 환경과 기후에 미치는 불리한 영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하며, 인류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서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3-16

기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재편되고 있다

남극 대륙을 둘러싼 해빙(바다얼음) 면적이 지난달 13일 기준 191만㎢로 1978년 시작된 위성 관측 사상 최소를 기록했다. 북극보다 온난화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보이던 남극마저 기후변화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인류가 위협적인 기후위기 상황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 대응이 최근 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30년 가깝게 ‘환경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가 지금까지 기후와 한국 경제를 위해 헌신한 연구 성과를 한 권으로 집대성한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다산북스)을 펴냈다. 경제학자라는 신분답게 기업이나 정부의 의사결정에 자문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홍 교수는 기후문제가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주체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는 환경문제를 넘어선 경제문제로 우리의 일상이나 주거 환경, 그리고 경제성장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응전략에 따라 개인이나 기업의 경쟁력, 그리고 국가의 위상이 재편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다.‘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은 기후위기가 환경, 과학,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온 지구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대두된 지금, 대한민국이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수 있는지 가장 한국적이고 경제적인 해법을 제시한다.홍 교수는 환경을 가계와 기업에 이어 제3의 경제주체로 지칭하며 우리 실생활에 이미 깊숙이 작용하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만 공급받도록 한다는 ‘RE(Renewable Electricity)100’ 선언이다. 기업이 2030년 60%, 2050년까지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 선언에 가입한 세계적 기업에는 납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5%에 불과한 실정이다.홍 교수는 “기후위기는 이제 환경문제를 넘어 산업·일자리·인구 이슈”라고 봤다. 예컨대 탄소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석탄발전소를 점차 퇴출시키면 발전소가 밀집된 충남 지역에서는 일자리가 대거 사라진다. 인구절벽 시대, 지역 일자리 감소는 지방 소멸을 부추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려면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를 묻는 기후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홍 교수는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지구 온도 상승이 야생동물의 생존율을 높여 초래한 인류의 위기 중 하나였다. 이 글로벌 감염병은 관광업과 요식업, 항공업과 물류업을 마비시키며 일자리를 빼앗았고 경제활동의 사슬을 군데군데 끊어놓았다. ‘기후위기’가 ‘질병 위기’로, 이어서 ‘경제위기’로 변모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미국과 유럽은 ‘기후경영’으로의 전환에 가속을 붙이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5%까지 높일 계획이며,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을 사회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글로벌 기업들도 앞으로 7년 이내에 재생에너지로 전면 전환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OECD 국가 중 단연 꼴찌인 우리나라로서는 당장 눈앞에 비상등이 켜졌다.이제는 투자자들도 ‘기후’를 투자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연구 결과 환경문제를 일으킨 기업들의 주식 가격은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 이후 떨어진다. 바야흐로 기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탄소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저자 홍종호 교수가 기후위기는 ‘환경문제’인 동시에 ‘경제문제’라고 지적하는 이유다.기후문제는 우리의 가계경제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비가 쏟아지는 날 부잣집 아들 ‘다송’의 집과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집을 번갈아 보여줬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통해 자산 격차가 우리의 생활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개봉하고 나서 불과 1년 후,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영화적 허용’이 아님을 실감하게 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3-02

최영미 신작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 14년 만에 시사부터 일상까지 엮어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화려하게 등단한 최영미(62) 시인이 신작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이미출판사)를 냈다. 나이 서른에 도발적인 시어로 독자들을 흔들었던 최 시인은 어느새 회갑을 넘겼다. 지난 2017년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뒤 문단의 냉대와 외면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글을 쓰고 글로 먹고살았다고 한다. 2019년엔 출판사들이 시집 출간을 외면해 1인 출판사를 직접 열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의 새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는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2009년) 이후 14년 만에 묶은 본격적인 산문집이다. 산문집은 최 시인이 2013년부터 최근까지 매체 등에 발표한 글을 3부로 엮었다. 미투 등 논쟁적이며 시사적인 주제부터 축구·야구 등 스포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발견을 담백하고 치열한 언어에 담았다. 자신 몸에 마치 총처럼 보이는 기둥을 관통시킨 자화상 ‘부러진 기둥’을 그린 멕시코의 국보급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년)에 관한 이야기로 산문집은 시작한다. 최 시인은 “프리다처럼 몸이 여러 차례 부서지고 병실에서 지내다 보면 자기를 오래 들여다볼 수밖에. 고통을 잊기 위해 아름다움으로 도피한 화가”라며 “인생과 예술의 관계를 이보다 명징하게 포착할 수 있을까”라며 감탄을 표한다. 책 제목 역시 화가 프리다 칼로를 두고 그가 아는 어떤 이가 했던 말에서 나왔다.1부는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등 미투 재판 사회문제를 다루는 논쟁적이며 시사적인 글을 모았다. 신문에 에세이를 연재할 때 고은 시인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시작돼, 생활수필이지만 재판 냄새가 나는 글들이 꽤 있다. 2부는 축구·야구·수영 등 스포츠 칼럼들을 모았다. 3부에는 유년의 추억, 호박잎, 사업자가 된 사연, 집수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행복 등 생활의 냄새가 진한 이야기들이 담백하게 펼쳐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3-02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감독·젤렌스키 주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다 돼 가고 있다. 현재까지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러·우 전쟁이 세계에 미친 악영향은 심대하다.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등으로 러시아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침략 세력인 러시아를 ‘절대 악(惡)’으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절대 선(善)’으로 받아들인다.국제관계학 전문가인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사계절)에서 러·우 전쟁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그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러·우 전쟁의 원인, 경과 그리고 이 전쟁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통해 전쟁의 해법을 탐구한다.저자는 러·우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탈냉전 이후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을 꾀하는 미국의 ‘네오콘(Neo Conservatism)’이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의 전쟁이라기보다 미국과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와 벌이고 있는 ‘대리전’이라는 것이다.저자는 “포화에 스러지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맞은편에 또한 전쟁에 희생되는 러시아 국민이 있지 않나? 푸틴이 자국 병사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죽음을 맞게 하는 독재자라면, 역시 자국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젤렌스키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세계는 과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수십만 발의 포탄과 수십 대의 탱크가 정말로 ‘평화’의 수단인가? 그렇게 구축하려는 평화에 러시아는 포함되는가, 배제당하는가?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이 전쟁을 숭고한 선과 절대 악의 대결로 볼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그러면서 “아마도 이 전쟁 또한, 무수한 전쟁들이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어떤 지정학 전략과 또 다른 지정학 전략의 충돌”이라고 강조한다.전쟁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어난 측면이 있지만, 원인은 복잡하다.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에 위협을 가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나치즘과 결합해 러시아인들이 밀집한 돈바스에서 인종 청소를 시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전쟁을 일으킨 건 러시아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촉발했다는 근거다.또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무장 해제와 나치즘 제거, 동남부 지역의 주민 보호를 목표로 하는 ‘특수군사작전’ 명령과 동시에 키예프와 하르코프, 오데세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핵심 시설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해 러·우 전쟁이 시작됐다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서방의,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른바 진보 리버럴 네오콘이 만든 정의라고 주장한다.저자는 “실제로 2014년 이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과 질의 군사 장비와 훈련, 자문을 최대한 제공해 마치 서방의 자본 및 기술과 남방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하듯이 미국 및 나토의 군비와 재정, 첨단 무기, 정보 및 장비로 무장한 양질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맞상대로 육성됐다”며 “이 전쟁은 미국의 리버럴 혹은 진보 네오콘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바둑돌로 들고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대리전쟁’이다. 또한 이 전쟁은 미국이 감독하고 젤렌스키가 연기한 드라마다”라고 주장한다.미국과 유럽의 ‘오판’과 ‘책임론’도 제기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년 2월 1일자 모스크바발 비밀전문을 보면 “러시아는 나토에 의한 포위로 자국의 안보 이익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방 세계는 진작부터 나토의 동진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자급자족이 충분히 가능한 러시아를 과소평가해 경제제재에 나선 결과 전쟁 이후 오히려 석유와 가스 등 원자재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미국에서 통상 ‘매파’로 불리는 우익세력이 전쟁에 반대하는 반면 ‘네오콘’이 주류인 미국 민주당과 좌파가 전쟁을 지지하는 ‘기현상’을 분석한다.‘친미’를 최핵심으로 하는 한국 역시 전쟁 이후 재편될 글로벌 다극 체제 속에서 경제·정치적으로 큰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개전 초기부터 나는 이 전쟁은 고전적 전면전(적지, 적 영토의 점령을 동반한 적의 완전 섬멸과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제한전(limited war)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 정치적 목표에 과연 우크라이나 전역의 군사적 점령과 이후의 정권 교체까지 포함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푸틴은 개전과 동시에 이 전쟁의 정치적 목표로 ‘돈바스 해방’, ‘나치 제거’, ‘탈 군사화’를 제시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치고 있는 특수 군사작전은 바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인 셈이다. -2장 ‘전쟁의 원인과 성격’ 중 36쪽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6

붉은 수수밭 원작 작가 ‘모옌’의 자전적 에세이 자신 삶 솔직하게 엮어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莫言·68)의 산문집(아시아, 上·下)이 출간됐다. 모옌 산문집의 국내 출간은 2012년 ‘모두 변화한다’ 이후 11년 만이다.중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은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 ‘홍까오량 가족’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번 산문집은 2010년 중국에서 출판된 모옌이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새로 엮은 모옌의 산문(莫言散文新編)’에 수록돼 있는 59편을 번역한 것이다. 소설 창작과 관련한 비화뿐 아니라 문화 예술 감상평, 여행기 등 다양한 주제가 망라돼 있어 ‘과묵한 작가’로 알려진 모옌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근현대화를 직접 겪은 모옌이 중국의 이러한 변화와 자신의 인생을 교차점을 통해 역사와 경제, 사회가 한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맞물려 나가는지 사실적으로 담아냈다.한국어판에서는 독자들이 좀더 체계적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내용에 따라 4부로 나눠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상권을, ‘다른 세계와 나’라는 제목으로 하권을 묶었다. 모옌 작품의 기원을 밝히는 에세이들과 그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들을 1부 ‘붉은 수수, 그 고향은 어떻게 내 소설이 되었는가?’, 2부 ‘삶을 질투하지 않는 문학, 문학을 질투하지 않는 삶’으로 나눠 수록했다.1부에서는 산동성 가오미 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문화대혁명을 겪고 인민해방군으로 활동하던 자신의 삶을 흥미로운 소설처럼 써내려갔다.2부는 모옌 개인의 이야기에 더해 중국의 현대사와 관련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모옌의 비판적인 시각이 엿보이는 관찰과 사색도 담아내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6

104세 김형석 교수,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믿음의 여정 기록

‘국내 최고령 철학가이자 수필가, 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이야기다. 한국 나이로 꼭 104세가 된 김 교수가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여정을 기록한 책 ‘그리스도인으로 백년을’(두란노)을 펴냈다. 부제에는 ‘김형석 교수의 믿음 삶 가르침’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일제강점기인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가난과 전쟁을 겪었고, 전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실향민이기도 하다. 70여 권의 저서 중 10권에 달하는 기독교 관련 서적을 펴낼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잘 알려져 있다.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신앙을 접했던 그에게 신앙은 그가 지치거나 힘들 때 매달려 용기를 얻은 생명줄이었다. 그는 종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인물과 신앙과 관련된 여러 미담을 소개한다.기독교의 교리보다는 인간다운 삶의 진리가 더 소중하고 그 진리가 복음이라는 사실을 체험했다고 고백한다.1부 ‘나는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가’는 김 교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건강을 주시면 내일보다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고, 60대 이후로도 꾸준히 집필과 강연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2부 ‘일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 삶’은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제자 교육,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며 살라는 부친의 당부, 이상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노선을 바꾸게 된 과정 등을 소개한다. 3부 ‘예수의 가르침을 내 것으로 하다’에선 성경에 언급된 △탕자의 비유 △자유케 하는 진리 △충성된 종 △나중 온 사람에게 더 베푸는 은혜 △옥토 밭 등에 대한 깨달음을 제시한다. 4부 ‘나라와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완성하는 기독교의 중심 역할을 강조하며, 하늘 나라의 일꾼을 키우고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이끌어 내야 하는 교회의 역할도 밝히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6

“보람된 삶의 고민 장편동화에 담아”

‘염라대왕의 재판-세 개의 문’표지 포항에서 활동 중인 중진 서가숙사진 작가가 새 장편동화 ‘염라대왕의 재판-세 개의 문’(고래 책빵)을 펴냈다.어떻게 살아야 각자의 삶을 보람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긴 동화다. 서 작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에서 만족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설정했다. 그는 죽음 후 염라대왕 앞에 선 사자와 강아지, 소가 사람으로 환생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했다.주인공은 죽어서 지옥에 오게 된 사자와 강아지, 소다. 세 동물이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해 인간으로 환생해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았다. 서 작가는 독자들이 이 세 동물들을 통해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가며 살아가길 바랐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자 하는 사회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향해 희망을 갖고 노력할 때 행복해진다”며 “후회는 적게 하면서 하루를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보람된 삶이 될 것이라는 세 동물의 참회에 우리는 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동화와 마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서 작가는 포항에서 30년 넘게 동화와 시, 수필을 쓰며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포항 형산문화제에서 시 장원과 수필 우수상을 받아 등단했으며 백산전국여성백일장에서 시 장원·우수상, 종합문예지 ‘문예감성’ 동화 부문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또한 동화 ‘도깨비들의 사람체험학습’, ‘학교를 끊을 거예요.’, ‘우리가 친구 맞니’를 비롯해 수필집 ‘행복해지는 법’, ‘숨은 행복 찾기’, 역사소설 ‘내 사랑 부용공주’, 성인동화 ‘복수의 화신 변학도’ 등을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5

국부론에 가려진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

올해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1723~1790)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다. ‘경제학의 성서’인 저서 ‘국부론’(1776)으로 대표되는 그는 많은 이가 경제학자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도덕철학자, 즉 윤리학자였다. ‘국부론’보다 앞선 저서 ‘도덕감정론’(1759)에서 볼 수 있듯 18세기 유럽의 많은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와 번영을 가져오는 법칙은 무엇인지 탐구했다. 그의 묘비에도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씌어 있다. ‘국부론’의 빛에 가려 있었던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를 다시 보고, 놀라울 만큼 평등주의적인 그의 생각을 바로 읽자는 신간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글항아리)가 출간됐다.오랫동안 경제지 기자로서 애덤 스미스 문제와 번역에 천착해 오고 있는 저자 장경덕 씨는 그런 이력을 살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두 원전 텍스트를 재번역해 애덤 스미스에 대한 상투적인 해석과 오랜 편견을 걷어낸다.저자 장경덕 씨는 “이 책은 애덤 스미스를 이기심의 옹호자라는 편파적인 오해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유’라는 개념부터 다시 파헤친다. 오히려 그는 일생 ‘도덕감정론’의 개정을 거듭하며 공감하는 인간상, 이타적인 인간상을 정립하려고 애썼다. 그는 노예해방선언보다 한 세기 앞서서 노예제를 비판했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해가 부딪칠 때면 거의 예외 없이 못 가진 자 편에 섰다”고 설명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2

“난 좌절의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백혜선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다산북스)는 중견 피아니스트 백혜선(57)의 첫 에세이집이다.1989년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홀’ 독주회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백혜선은 30년이 넘는 경력의 중견 피아니스트로, 일본 사이타마현 문화예술재단 선정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9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3위) 등 다수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낸 백혜선은 현재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책에는 4살 때 건반 앞에 앉은 이후 50년 넘게 연습을 거듭해오며 깨달은 인생 내공을 담았다.흔히 사람들은 연주자를 보며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화려한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연주자가 지닌 극히 일부의 측면에 불과하다. 실제로 연주자의 인생은 당장이라도 음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좌절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백혜선이 이 책에서 주로 보여주려는 것도 연주자의 영광이 아닌 좌절의 순간들이다. 그는 책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답고 정제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가장 못생긴 발’을 내민다. 30여 년의 국제무대 경력 동안 꼽은 최악의 연주, 콩쿠르 탈락 후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낸 슬럼프 시기, 사람도 잃고 돈도 잃은 채 미국에서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지낸 불우한 시간마저 고백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 어둡고 부족한 면모들이 자신의 내면을 훨씬 더 정확히 표현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고단했던 순간을 서술하는 중에도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을 향한 의지이자 음악적으로 자신을 거듭 계발하려는 집념이다. 유머러스하고 가볍고 편한 문체로 글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힘주어 말한다. 좌절이란 곧 특권이라고. 즉, 좌절과 불안과 걱정은 성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라고. 어디가 됐건 ‘여기가 종착역’이라며 눌러앉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앞으로 찾아올 좌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며 백혜선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2

사악한 독재자인가 성공적 지도자인가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은 독재자로 유명하다. 스탈린은 흔히 대량 학살을 저지른 사악한 독재자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류의 악인으로 낙인찍힌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은 러시아 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때때로 되살아난다. 1990년대 옐친 통치 시절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강제 이행하며 발생한 물질적 박탈은 스탈린과 스탈린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푸틴이 집권한 2000년대 초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 엽서와 기념품이 인기를 끌었다.”신간 ‘스탈린의 전쟁’(열린책들)은 제2차 세계 대전과 복잡한 20세기 국제 관계에서 소련의 지도자로서 스탈린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스탈린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영국 출신의 스탈린 및 소련 군사 및 외교 정책의 역사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스탈린의 잔혹성을 솔직하게 탐구하면서,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군사 지도자이자 자본주의 세계와의 평화적 공존을 꾀한 노련한 외교관, 전후 소련의 개혁 과정을 주도한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증거도 발견해 낸다.책은 주로 스탈린의 인생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데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에서 스탈린이 사망한 해인 1953년 냉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 영국, 미국의 대연합에서 소련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에서 시작한 이 책은, 대연합이 어떻게 출현하고 발전했는지, 소련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후 이 연합이 왜 붕괴했는지를 탐구한다. 이에 더해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탈린의 리더십과 전후 소련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살펴본다.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독일에 맞선 전쟁에서 스탈린이 군사 지도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승리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그는 엄격한 규율과 가혹한 처벌로 장교들의 후퇴를 단속하는 동시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사람들을 북돋웠고, 정치적으로는 애국주의에 호소했다. 규율을 위반한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형벌 부대를 운영할 정도로 가혹했고, 독일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주민들까지 포격할 정도로 잔인했지만, 전쟁터에서 승리를 목표로 하는 군사 지도자 위치에서 스탈린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저자는 스탈린이 결과적으로는 냉전 시대를 열었지만, 냉전은 결코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스탈린에게 영국·미국과의 대연합은 군사적 연합뿐 아니라 정치적 동맹을 의미했으며, 이를 통해 히틀러와 영국 및 미국 내 반공산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소련 체제를 방어하고자 했다. 1945년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등 전후 처리를 위한 논의 자리에서 스탈린은 외교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나 오해와 입장의 차이로 스탈린은 돌아서고 말았다. 저자는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으나, 미국이 개입하자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한 점도 그런 맥락에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스탈린은 서방 세계의 지도자들보다 평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종전 후, 스탈린은 피해를 입은 국토를 재건하고, 사회와 경제를 평시 체제로 운영하고자 했다. 이 시기 민간 행정 기구와 민간 법원이 여러 권한을 돌려받았고 절차가 합리적으로 발달했으며, 경제 운영이 체계적으로 바뀌고 기술 관료들이 능력을 발휘했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들이 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이념적 행동주의가 덜 채택되고 관리와 기술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비록 소련과 서방 세계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체제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활동들을 검열하고 숙청을 단행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저자는 소련의 전후 체제는 전전 체제보다 더 이완된 질서로 이행하는 과도기 시스템이었다고 평가한다.저자는 스탈린이 “현실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였으며, 소비에트 시스템이나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지 않는 한 타협하고 변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지도자였다”며 “확실히 스탈린은 노련한 정치인이었고, 영리한 이데올로그였으며 매우 뛰어난 행정가였다”고 평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2

김도일 첫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 출간

포항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소재로 세상과 인간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소설가 김도일이 최근 첫 번째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도서출판 득수)를 펴냈다.‘어룡이 놀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힘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질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으며, 궁극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에서 시작된 책이다.김도일(49) 작가는 등단 7년 차로서 현재 포항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단편 ‘디어 마이 엉클’로 제9회 포항소재문학작품공모 대상을 받고 지역에서 자신의 문학을 촘촘히 축조해가고 있는 신진이다.이번 소설집 표제작인 ‘어룡이 놀던 자리’를 비롯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써온 소설들은 포항 이야기의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지역을 넘어 더 깊은 문학적 세계로 천착해 들어가고 있다는 평이다.“포항과 역사, 가족 같은 소재들을 마주한 채 한참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고, 오랜 시간 그런 용기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는 김도일은 이번 소설집에서 역사와 현실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진중하게 다룬다. ‘어룡이 놀던 자리’는 우리가 과거의 힘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디어 마이 엉클’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고 죽어간 포항 학도병 이야기를 다뤘다. ‘관목(貫目)’은 할아버지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고엽제 피해를 입고 베트남 여인과 결혼했던 아버지, 그리고 나(철수)의 이야기가 쳇바퀴 돌듯 바다와 베트남으로 이어진다.노대원 평론가는 “김도일 소설의 공간 배경의 중심은 분명 우리나라의 한 지역이지만, 소설의 심층 주제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죄의식에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김도일 작가의 문학적 천착이 그저 가벼운 유희에 불과한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김도일이 그려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찾아간다”고 평했다. 이어 “가족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도 순진한 태도를 버리고 역사적 상상력과 비판적 상상력을 통해서 돌아보려고 한다. 그는 한 지역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흥미로운 소설로 재탄생시킬 줄 아는 스토리텔러이지만, 현실과 역사, 이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 보게 하고, 서로를 비추어 보게 하는 리얼리스트”라고 분석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1

설빙학 개척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글항아리)는 1936년 세계 최초로 인공 눈(雪)을 만든 일본의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1900∼1962)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우키치로는 동시대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였던 데라다 도라히코의 제자로 잘 알려진 나쓰메 소세키와 문학적 소양을 나눈 스승의 영향이 그의 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당시까지만 해도―어쩌면 지금도―과학계에서나 대중적으로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눈’이라는 자연 현상에 매혹돼 현미경으로 그 형상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세계 최초로 눈을 만들어낸 과학자가 된 여정만 보아도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을 엿볼 수 있다. “흐트러짐 없는 결정 모체, 날카로운 윤곽, 그 안에 박힌 다양한 꽃 모양, 그 어떤 탁한 색도 섞여들지 않은 완벽한 투명체”,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미학임을 그는 눈 결정을 처음 들여다본 그 날부터 알아챘던 것이다.이후 우키치로는 가장 흔한 육화형 결정에서부터 장구 모양, 포탄 모양을 한 수십, 수백 종의 눈 결정을 관찰해 분류하고, 눈이 생성되는 조건을 밝혀내 저온실험실에서 인공 눈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눈이 만들어지는지까지 정리해냈다. ‘눈의 과학자’로서 그의 연구 결과는 세계 최초로 자연에서 눈 결정을 촬영한 윌슨 벤틀리에 이어 ‘눈 결정: 자연 눈과 인공 눈(Snow Crystals: Natural and Artificial)’이란 제목으로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소개되기도 했다.나카야 우키치로의 위대한 점은 홋카이도라는 북쪽 지방의 특성을 잘 살린 연구를 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눈, 얼음, 안개, 번개, 서릿발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생성 조건을 밝혀냈다. 특히 눈 결정에 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야외 관찰에만 머물지 않고 저온실험실을 만들어 공기 중의 수증기량과 온도를 변화시켜 자유자재로 눈 결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알래스카와 그린란드에도 다녀와 지구 각지에서 나타나는 눈과 얼음의 성질을 분석했고, 세계 최초로 ‘설빙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그는 생전에 눈과 얼음에 관련된 연구 주제뿐만 아니라,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적인 문제를 폭넓게 다룬 30여 종 이상의 산문집을 남겼다. 이 점에서는 스승인 데라다 도라히코보다 더 폭넓은 시야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파악한 과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과학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강연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져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은 나카야 우키치로의 수많은 산문 가운데 북쪽 지방에서의 연구 이야기와 함께 그가 교류했던 과학자들과의 추억, 일상에 숨어 있는 과학과 비과학 등 독자가 재미있어할 만한 글들을 주로 싣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이들에게 주려고 했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이 책을 엮은 그의 말처럼 표제작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책에는 일상의 풍경을 담은 글에서부터 엄격한 과학 정신을 논한 글까지 나카야 우키치로의 다양한 에세이가 실렸다. 나뭇가지를 ‘마녀의 머리칼’처럼 헝클어놓는다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홋카이도의 설국, 심지어 섭씨 영하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저온실험실에서 꽁꽁 언 몸으로 연구를 계속하던 그의 글엔 뜻밖의 따뜻함이 서려 있다.동료 과학자들과의 일화, 젊은이들과 후대를 위해 적은 글, 자연에 순종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은 쓰인 지 한 세기 가까이가 지나고 그들 모두가 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생생하고 어쩌면 그리운 감각을 선사해준다. 또 과학의 발달로 지금은 완전히 구시대 이야기가 된 과학계 이야기 역시, 과학을 정밀한 학문으로 대하며 세상을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마음과 태도에는 낡음이 전혀 없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1-12

동물들에게서 배우는 리더십

국내 진화생물학 권위자인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생명과학전공) 교수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동물들의 리더십을 조명한 책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21세기북스)을 출간했다. 장 교수는 ‘5가지 진화 테마로 읽은 리더의 조건’을 부제로 한 이 책에서 코끼리와 꿀벌 등 집단생활을 하는 20가지 동물들을 통해 리더십은 생존을 위한 생명체의 한 형질이라는 점을 밝힌다. 리더십도 행동이나 형태처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겪는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고찰한다. 책은 크게 리더십을 둘러싼 5개의 진화생물학적 테마로 분류된다. 1부에서는 다양한 동물 사회가 등장하고, 각 사회마다 독특한 리더십을 소개한다. 2부는 게임 이론을 이용해 마침내 리더십의 진화를 조명하고, 리더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3부에서는 불공평한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을, 4부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필요한 의사결정 방식과 과정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5부에서는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인 협력에 초점을 맞춰 협력을 잘 이끌어내고 결속력을 다지는 리더십으로 귀결한다.장이권 교수는 동물의 소리를 연구하는 야외 생물학자로 JTBC ‘차이나는 클라스’, SERICEO 리더십·경영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EBS ‘해요와 해요’, CBS ‘장이권의 지금, 자연은’에서 신비로운 동물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리더십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라는 형질로 인해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이익은 리더뿐만 아니라 팔로워에게도 돌아가야 한다. 팔로워는 리더만큼의 이익은 얻지 못하지만, 혼자 사는 개인보다는 높은 이익을 누려야만 집단에 남는다. 동물 사회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집단이 와해되는 시점은 팔로워가 더 이상 집단에서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 때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99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1-12

“세상 모든 이야기의 힘 전하고 싶어”

문학과 심리학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정여울 작가의 신작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한겨레 출판)이 출간됐다.평소 “내 인생을 지켜준 힘은 문학에서 나왔다”고 자주 이야기해 온 작가는 이 책에서 문학으로 치유받은 자신의 값진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 동서양 고전은 물론 권여선, 윤이형, 이언 매큐언, 니콜 크라우스 등의 현대 문학, 영화와 음악 같은 대중문화까지도 넘나들며 문학이 말을 걸어오는 시간 속으로 독자를 친절히 안내한다.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외로운 문제아 홀든을 보며 “믿어주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가든파티’에선 조용한 배려의 아름다움을, ‘바리데기’에선 사랑받지 못한 자의 원한 없는 사랑을 일깨운다.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선 고통을 직시하며 고결한 품성을 잃지 않은 신화 속 인물을 발견하기도 한다.정여울 작가는 “문학 속 이야기는 늘 현재의 이야기, 우리의 삶, 지금 나의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며 “온 힘을 다해 이를 알리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여울은 문학, 여행, 심리학, 예술 관련 에세이를 쓰며 문학 평론가로 활동했다./윤희정기자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