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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극복책’ 긴축,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4-05-16 19:41 게재일 2024-05-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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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질서’<br/>   <br/> 클라라 E. 마테이 지음<br/> 21세기북스 펴냄·경제

국민연금 개혁안이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불발됐다. “노후 소득보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소득보장론’과 “기금 소진을 늦추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재정안정론’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만이 난관을 헤쳐나갈 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긴축이 정말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정책일까? 미국의 진보 성향 대학 더뉴스쿨의 경제학 교수인 클라라 E 마테이는 신간 ‘자본 질서’(21세기북스)에서 “긴축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말은 헛소리다”라고 비판한다. 긴축 정책에 부정적인 근거는 국민 고통, 부채감소·성장촉진 효과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불평등 유발이라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정부 부채 증가, 주가 폭락, 부동산 경기 침체, 경제성장률 저하.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이 얼핏 들어도 경제 위기 상황을 나타내는 용어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바로 긴축이다. 공공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약자에게 배정된 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야 나라가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인위적인 절약으로 모인 돈을 기업에 먼저 투자한다면 이를 통해 고용 안정화가 이루어지고 낙수효과가 작동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긴축 재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소수의 기득권이 만들어 낸 거짓말과 같다고 주장한다. 긴축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저자는 정치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긴축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긴축이란 정부와 엘리트층의 실수와 책임을 다수에게 전가하는 책임 회피이며,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역사를 추적하고서 긴축의 의미를 살펴본 끝에 ‘긴축’이란 정부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를 장악하고,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긴축은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이다. 긴축을 알지 못하면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서서히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이 ‘나쁜’ 정책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재무부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 본격적으로 긴축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역진적 조세 정책’ 탓에 공공재 비용 부담은 오랫동안 불평등하게 돌아갔다.

또, 사회 전 계층이 부담하는 소비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상위 소득 계층에 대해 수십 년간 어마어마한 규모의 감세가 이뤄졌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기(1953~1961년) 동안 91%였던 상위 소득세율은 2021년에 37%로 크게 줄었다. 법인세율은 1970년대 50%였는데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21%로 뚝 떨어졌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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