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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눈으로 세계를 보는… 강미정 시인 다섯 번째 시집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05-13 18:05 게재일 2024-05-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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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잉크로 쓴 분홍’ 출간
“갑자기 그것이 펼쳐졌다/오므린 꽃봉오리가 꽃잎을 쫘악 펼치는 동영상처럼/소복이 쌓인 눈 사르르 녹은 자리//찬바람 맞아 거뭇거뭇 타들어 간 민들레꽃에 앉아/날개도 접지 않고 절명한 나비 한 마리//….//가녀린 꽃대 아래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하얗게 지워 준 눈/아직도 해끗해끗 담 그늘에 남았다….”- 강미정 시 ‘조막만 한 고요’ 일부

1994년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으로 등단한 강미정(경주시 안강읍) 시인이 지난 2008년 출간한 네 번째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이후 16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도서출판 북인)을 출간했다.

강 시인은 젖은 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녀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눈물로 약호화한다. 그녀의 젖은 눈은 주로 가난한 것, 힘든 것, 죽어가는 것, 슬픈 것, 불쌍한 것들의 뒷모습을 향해 있다. 그녀는 그런 세상의 슬픈 뒷꼭지를 보고 운다. 진짜 울음은 슬픔으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울음은 사유이고 통로이며 대안이다.

강 시인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기꺼이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는 중’)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시 속에 거대 서사나 환상의 세계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지 않으며, 대신 삶에서 쪼개져 나온 소소한 하루들이 오글거리도록 한다. 아버지와 엄마로부터 생겨난 피붙이들과 낯 모르는 사람의 식솔들까지 안부를 챙기고 섬겨서 시집에 살게 한다.

그녀의 감성과 상상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은 이토록 사소한 생활, 새들한 감정이지만, 시로 빚어진 그것은 무한히 자라나는 삶의 모습들이라는 점에서 아릿하게 따뜻하고 갸륵하다. 또한 천성적으로 그녀는 약하고 버려진 것들을 거둬 마음으로 먹이고 입히는 사람인데, 이런 태도는 시의 어조와 어법에 그대로 스며 사랑하라는 속삭임이 시의 저 뒤편에서 들려온다. 묵묵한 견딤의 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해낸 최대의 선량을 보고 싶다면 이 시집이 그 대답을 줄 것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젖은 눈의 글쓰기’라는 해설에서 “강미정은 젖은 눈으로 세상을 읽되 감상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고통을 이야기하되 과장하지 않는다. 눈물의 코드로 세계를 읽으면서도 그는 비개성의 시학을 실천하듯 센티멘털리즘과 거리를 둔다. 그녀는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울릴 줄 아는 기술의 소유자다”라고 평했다.

강미정 시인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94년 월간 ‘시문학’에 ‘어머님의 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타오르는 생’, ‘물속 마을’, ‘상처가 스민다는 것’,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등 네 권을 출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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