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전통을 위한 싸움’<br/>에드먼드 포셋 지음<br/>글항아리 펴냄·인문
전작 ‘자유주의: 어느 사상의 일생’으로 ‘권위, 명확성, 간결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포셋은 ‘보수주의: 전통을 위한 싸움’에서 다른 반쪽의 이야기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번창하는 것은 차치하고 생존이라도 하려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구절로 시작되는 책은 18세기 혁명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보수주의를 연대기에 따라 네 시기로 나눠 기술한다. 하지만 보수주의 자체가 오른쪽에서 중간, 다시 더 왼쪽으로 움직여왔기 때문에 내용은 보수주의자끼리 서로 엎치락뒤치락 생존해온 역설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주의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고 떠받치는 데 많은 일을 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가 한쪽이고, 초시장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국민(대중)’의 이름으로 대변하는 비자유주의적 강경우파가 다른 한쪽이다. 후자는 타자에 대한 낙인 찍기, 사회적 다양성의 부정과 내부 적에 대한 사냥,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보여왔다.
오랫동안 보수주의에는 좌파에 표준 문헌에 상응하는 문헌이 없다고 여겨졌다. 지적인 면에서 보수주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천성적인 지배자였던 그들은 다스리는 데 익숙한 터라 ‘왜’ ‘무엇’을 위해 통치하는지를 대중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파는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 비용과 태만, 실패를 지적하는 데 주로 자신들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왔을 뿐 사상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 책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보수주의자들의 면모를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잘 듣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포셋은 단언한다. 정치 관행과 이데올로기의 성공은 잘 듣는 귀에 달려 있다고. 정치인의 자질은 음역대가 다른 목소리들을 다 들을 수 있는 귀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는 보수적 유권자의 핵심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정서를 파악하는 ‘완벽한 귀’를 가졌고, 레이건 대통령은 분열된 나라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한 귀’를 가졌다. 또 고(古)보수주의자 가운데 미국 우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패트릭 뷰캐넌보다 더 ‘밝은 귀’를 가진 이는 없었다.
이 책의 후반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는 강경우파를 조망한다(저자는 ‘극우’보다 ‘강경우파’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강경우파는 끝자리를 벗어나 정상적인 정치적 경쟁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강경우파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후퇴를 의미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