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암 시인 네번째 시집 ‘꽃과 별과 총’ 출간<br/>사물·기억에 겸허히 귀 기울여
‘…. 꽃을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몸의 구부러짐과 곧음/색깔의 유무와 강약에도 관계없이/오롯이/함께 숲을 이루는 저 각양각색의/나무, 나무들//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 또한, 그렇다/저마다 꽃이다’- 이종암 시 ‘저마다, 꽃’ 부분
포항에서 활동하는 중진 이종암(59·사진) 시인이 최근 네 번째 시집 ‘꽃과 별과 총’(시와 반시)을 출간했다. 1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는 43편의 서정시가 수록돼 있다. 풍속·인물·기후·생태·역사는 물론 지역의 사투리, 공동체의 체험까지 엮어내며 사물과 기억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시인의 서정을 풍요롭게 만날 수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꽃과 별과 총’은 ‘꽃’과 ‘별’과 ‘총(塚)’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종암 시의 특징은 자연을 창의적 상상력으로써 들여다보려는 태도로 충만하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자연은 시인의 사유와 인식을 구체화하는 실존적 공간이다.
1부 ‘꽃’에서 ‘사월 산길’(‘저마다, 꽃’)을 걷고 ‘바닷바람 드센 호미곶’(‘구만리’)으로 소풍 간 그 여정은 자연에서 얻은 발견과 깨달음을 고스란히 전한다.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미학적 완성도가 높음에도 자유로운 운율을 구사하면서 굳이 분석하거나 설명할 필요 없이 잘 읽히는 시어들을 동원한다.
특히 평생토록 가슴에 품은 사랑으로 표현되는 먼저 저승으로 떠난 동생을 언급한 ‘저(오동꽃) 향기 위에 올라타면, 나는/죽은 동생도 만나는 그 찬란이 오는가’(‘오동꽃, 찬란’)라는 구절에서 독자들은 ‘가슴 아픈 찬란’의 역설을 경험한다.
‘총(塚)’이라는 부제를 단 2부에서는 ‘마음’의 영원성과 초월성을 노래한다. ‘시총(詩塚·경북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 백암 정의번의 무덤)’·‘개밥바라기총(塚)·충노억수지묘(忠奴億壽之墓)’·‘이총(耳塚·경남 사천시 선진리에 있는 귀무덤)’ 등 각각 다른 무덤 셋을 이야기하면서 ‘심총(心塚)’이라는 개념을 쓴다.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해 세상의 빛깔을 바꾼다는 것이다.
3부 ‘별’에서는 ‘육십 가까이 살면서 내게/뜨거운 사랑을 주던 사람도/견디기 힘든 분노를 안겨주던/세상 그 누구도 다 내게는 별이었다/어둔 길 밝혀주는 동강할미꽃’(‘동강할미꽃과 별’)이 눈에 띈다. 별을 닮은 동강할미꽃의 모습을 노래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시인에게 별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웅숭깊은 깨달음을 전해 준다.
신상조 문학평론가는 ‘무구(無垢)의 서정’이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무덤(총)을 찾고 꽃과 별을 노래하는 이종암의 시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에게 시란 삶을 체험하고 표현하고 이해하는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적었다.
이하석 시인은 “고향 청도와 포항의 구만리·경남 사천·단양 가곡·동강과 서강 어디든 시집 곳곳에 그가 누빈 자국들이 찍혀있다. 꽃과 별과 무덤은 그의 독도법상의 주요 부표다. 우리도 서로의 부표가 되어 ‘내려놓은 채’, ‘서로 사무치며’ 함께 떠돌아도 좋지 않겠는가, 하고 바란다”고 평했다.
이종암 시인은 1965년 청도 출신으 로서 영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포항 대동고 교사로 31년간 재직, 2022년 명예퇴직했다. 1993년 ‘포 항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2000년 시집 ‘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물이 살다 간 자리’ 외 ‘저, 쉼표들’·‘몸꽃’ 등이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