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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성난타조`

우리 시대 비극 그린 슬픈 자화상안광(54) 작가가 15년 간의 긴 침묵을 깨고 두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정처 없는 존재들의 애옥살이를 좇던 첫 소설집 `쥐와 그의 부하들`에서 작가가 보여주었던 핍진한 관찰력은 한층 성숙해졌고, 장편 `유령사냥꾼`에서 묻어나던 우화성 짙은 스토리라인과 환상적 리얼리즘은 독특한 구도로 새로 짜여졌다.`성난타조`(실천문학사 펴냄)에서 안광 작가는 일상에서 파생되는 현대인들의 전형적 고통과 애환을 특유의 상상력과 탄탄한 알레고리 구조를 통해 재현해낸다. 타의에 의해 욕망이 획일화되고 재편성되는 현대사회구조 속 존재의 군상들이 이 소설 속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소설가 김원일은 안광의 소설을 두고 “넉넉한 정서로 소재를 수용하면서도 긴 여운을 이끌어내어,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평하며 현대인이 당면한 비극적 상황을 준엄하게 환기시킨다.표제작인`성난 타조`는 남성 판타지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화자인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고 퇴직금으로 `타조 농장`을 시작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은 `21세기 미래 축산 타조 벤처사업`에 대한 심포지엄에 홀려 아내와 함께 “호주의 대농장주처럼 풀장 있는 대저택에서 수십 명의 인부와 하인들을 거느리고 성주처럼” 사는 전원생활을 꿈꾸었으나 주문이 쇄도할 거라고 믿었던 타조알과 타조고기는 외면당하고 3년 만에 망하고 만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농장`은 `전원과 자연`에 대한 꿈이 아니라 총화되고 집적된 `자본`을 향한 판타지이다.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간의 꿈과 이상조차 가판대에 진열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낸다ㅏ. 저마다의 `개별`의 만개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이 시대에 우리는 쇼윈도에 진열된 `기성품`으로서의 `판타지`를 산다. 온갖 크레딧 카드와 최신 브랜드의 기호품과 첨단 기기들을 존재 증명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매끈한 기계와 아스팔트 위에 구축된 `인공의 판타지`를 꿈이라 믿고 달려 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욕망의 바닥과 환멸, 죽음의 얼굴을 본다. 안광의 소설은 우리 시대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욕망이 죽음과 함께 펼치는, 어지러운 무도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풍자하고 또 애도하고 있다. 이 황폐한 삶이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 안광의 소설이 신랄하면서도 슬픈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실천문학사 펴냄, 안광 지음, 240쪽, 1만1천원

2011-08-04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민중현실과 시대상황 연계“지금 다시 ?가 필요하다” 우리시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이자 지식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3)의 문학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5`(창작과 비평사 펴냄)가 출간됐다.`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4`(2006)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문학평론집으로, 2007년부터 꾸준히 발표해온 문학평론들을 제1부에 묶고, 1980년대 여러 지면에 실은 외국문학 관련 평론들과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주최한 관악초청강연내용을 모아 제2부를 꾸렸다.특히 한국문학에 대한 제1부의 글들은 문학현장에 밀착해 비평활동을 해온 저자의,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깊고도 날카로운 분석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명문들이다. 새로운 세대와 미래파 시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고은에서부터 박완서 신경숙 윤영수 박민규 김애란 등의 작품에 대한 정치한 분석은 그의 여전한 독서의 폭과 함께 한국문학과 현장비평에 대한 애정을 잘 드러내준다.`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에서 그 어느것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나, 알게모르게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서 고리타분하고 고답적인 질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책 제목은 (…) 그 물음을 신실하게 계속 묻는 일이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긴요하다는 믿음에서 택한 것이다. 더구나 문학평론이 인문적 교양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 중요성은 문명사회의 누구에게나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물음이 중단될 가능성은 많고 실제로 중단되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중단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여서, 문학이 무엇이다라는 정답을 임의로 설정해서 더이상의 묻기를 끝내버리는 방식도 있고, 정답이 없음에 자족하고 마는 또다른 정답주의도 있으며, 작품을 실제로 읽고 생각하는 작업을 소홀히함으로써 묻기를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책머리에, 7면)이와같은 통찰을 거쳐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왜 지금 다시 필요한지를 사유하는 대목은 역시 저자의 오랜 연륜과 깊은 내공이 담긴, 이 시대에 던지는 근본적이면서도 갱신을 요구하는 화두라 할 수 있다.표제 평론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에서 저자는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이 어떻게 익숙한 작품과의 새로운 대면을 유도했는가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 최근 한국문학이 사회 상황과 맥락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한다. 문학적으로도 일대 사건인 촛불항쟁에 직면해 문학인들이 일반 시민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은 자기 부류에서만 읽히는 글쓰기로 자족하고 작가들조차 그런 평론에 언급되기 위해 작품을 쓰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민중현실 및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지금에 다시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1970년대 이래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등으로 이어져온 저자의 문학론의 궤적이 당대와 어떻게 호흡했는지 짚는 한편으로 그 현재적 재해석으로 이어지고 확장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창작과 비평사 펴냄, 백낙청 지음

2011-08-04

`생각의 일요일들`

일상의 읽을거리 담은 유쾌한 창작노트 은희경, 등단 이후 첫 산문집.이 한 줄 외에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기까지만 들어도 호흡이 빨라지고 마음이 급해진다. 처음 만나는 `은희경 산문집`이라니. 굳이 기존에 그녀가 발표한 소설책 제목들을 줄줄 읊어대거나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보아도 사족이 되고 만다. 그냥 `은희경 산문집`, 이 한마디면 되는 것. 여기 이 산문들이 있었기에 은희경의 수많은 장편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생각의 일요일들`(달 펴냄)은 은희경(52) 작가가 소설을 연재하면서 틈틈이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한 작가의 창작 노트이기도 한 이 책은 그렇다고 글쓰기의 이론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일상의 흐름들을 연결해 재미있고 유쾌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열어놓은 집필실 창문을 통해 작가의 사생활 주변을 기웃거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은희경 작가의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와 악수할 수 있다. 창작 과정에 수반되는 끝없는 고민과 생각의 발자취를 따르다보면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 자분자분 산책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500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긴 호흡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고 또 어떤 사소한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를 거꾸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형식의 산문집은 보기 드물게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소설을 집필하던 일산과 서울의 작업실과 원주, 그리고 잠시 머물다 온 독일과 시애틀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들 속에 조금의 보탬이나 과장 없이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그 덕분에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어느 한 장 허투루 넘길 수는 없다. 한 세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작가가 그려가는 밑그림들을 펼쳐보는 동안, 생각의 날을 다듬고 호흡을 고르는 과정 자체에 한 편의 장편소설 탄생 과정이 고스란히 함축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우리가 비슷한 감각으로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동시대인이라는 느낌, 그것이 저를 쓰게 만듭니다.”은희경 작가가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선명한 울림을 받게 되는 건, 그녀는 열 권의 소설책을 낸 대한민국 대표작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밥 먹고 그렇게 엇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기도 하다는 동질감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의 블라인드를 열고 날씨를 살피고 시계를 보고 커피콩을 가는 일상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쓰기 시작하는 것,그밖에도 충분히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면면들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일화 등 이 모든 부분은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힘줄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 얼마간이 됐든 전체를 이루게 하는 데 중요한 나사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평소 소설을 통해 보여주었던 `다소 쿨함`과 `서늘한 맺고끊기`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약간의 엉뚱함`과 `따뜻한 진지함`을 첫 산문집에 담았다.이 산문집은 그가 작년 1월부터 7월까지 출판사 문학동네의 웹진에`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는 동안 매연재물에 직접 달았던 댓글을 중심으로 엮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달 펴냄, 은희경 지음, 324쪽, 1만2천원

2011-07-28

`이오덕 유고 시집`

`교육의 성자` 미발표 詩 341편 “어린이의 말은 시어린이의 몸짓은 시산새처럼 재잘거리는피라미처럼 파닥거리는팔팔 살아있는어린이는 생명 바로 그것( ….)부끄러워라 우리 어른들어린이에게 말하는 자유를 주자어린이에게 뛰노는 자유를 주자그리하여 그 생명의 시를 읽고우리 모두 어린이로 돌아가자아아, 어린이어린이를 살리는 일이것만이 인류의 희망이다.”(이오덕`인류의 희망`)우리말·글 살리기에 평생을 바친 아동문학가 고(故) 이오덕(1925~2003) 선생의 미발표 시가 수록된 유고 시집이 출간됐다.`이오덕 유고 시집`(고인돌 펴냄)은 `이 시대의 참교사`로 불리는 `교육의 성자` 이오덕 선생이 1950년대부터 2003년 무너미 고든박골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쓰고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을 모아 엮었다.이오덕 선생은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살며, 우리나라 아동문학이 나아갈 길을 열었고, 우리말 바로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를 펼친 한글운동가이고, 어린이 문화 운동의 싹을 틔운 어린이문화운동가로 살면서, 어느 이름난 시인 못지않게 많은 시를 썼다.`이오덕 유고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오덕 선생의 아들인 이정우 `이오덕 학교` 교장 선생이, 이오덕 선생 유품들과 자료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무리 된 시들이다. 또 살아생전에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에 준 시 몇 편도 딸이 보내줘 빛을 보게 됐다.`이오덕 유고 시집`은 시로 보는 우리나라 역사와 교육에 대한 아주 귀중한 증언이고 문헌이며 그리고 이오덕 선생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오덕 개인사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이오덕 연구가인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이 시대별로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온 이야기를 썼다.`이오덕 유고 시집`은 시대별로 나눠 6부로 편집해 984쪽의 양장본으로 엮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이오덕 선생청송 출생인 이오덕 선생은 1944년 청송 부동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86년 성주 대서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43년 간 교직에 종사했다. 54년동시 `진달래`를 `소년세계`에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7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필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됐다.교육이론서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 평론집 `시 정신과 유희 정신`, 교육 수상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아동시집 `일하는 아이들`, 아동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 53권의 저서를 냈다. 한국아동문학상, 단재상 등을 수상했다고인돌 펴냄, 이오덕 지음, 984쪽, 3만원

2011-07-28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옛시조와 가사 1`

쉽고 재미있게 풀이한 우리 고전문학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옛시조와 가사 1`(살림어린이 펴냄)에는 초등학생들이 꼭 알아야 하고, 외기 좋은 평시조 22수와 대표적인 가사 5편을 골라 실었다.선비들의 절개와 자연 속의 삶, 백성을 가르치는 노래 그리고 여인들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시조는 주제별로 나눠 당대의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실었다. 시조의 원문를 현대어로 쉽게 풀어 적되 원문의 맛을 살렸다. 그리고 시조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꼼꼼히 들여다보기`와 그 시조와 관련된 주제, 상황, 일화를 소개한 `한걸음 다가가기`를 곁들여 시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가사는 안빈낙도를 노래한 `상춘곡``면앙정가`와 임금에 대한 충정을 노래한`사미인곡` 그리고 명승지를 유람하며 노래한`관서별곡``관동별곡`등 5편이 실려 있다. 가사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가사가 씌어진 개인적, 사회적 배경을 그린 `배경동화`와 조선 시대 사용했던 언어를 알기 쉽게 풀이한 `현대어로 원문 맛보기` 그리고 원문 중 한 자락을 자유롭게 스토리로 풀어 쓴 `가사 한 자락 산문으로 맛보기`를 곁들여 새로운 감상법을 시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살림어린이 펴냄, 권영상 글

2011-07-28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어느새 인생의 시계는 오후시련은 영혼을 담금질하는 축복찬란한 노을 보는 희망을 노래하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57) 시인이 열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펴냄)를 펴냈다. 부드러움과 강직함 속에 녹아드는 맑고 투명한 언어로 세상을 감싸안으며 전통적인 서정시의 진경을 펼쳐온 시인은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예와 다름없이 삶에 대한 성찰과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진솔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들을 일치시키는 시인의 타고난 영성(靈性)”(고은 시인)이 지나오는 동안 폭과 깊이를 더해 메마른 가슴과 고단한 몸을 적시는 단비가 돼 흘러내린다.도종환의 시는 사랑과 연민에 뿌리를 둔 희망의 노래이다. 가난과 외로움으로 얼어붙은 “빙하기로 시작한 어린 날”(`빙하기`)로부터 “흥건한 울음”이 넘치던 “생의 굽이 많은 시간”(`귀뚜라미`)을 지나온 시인은 “모진 세월 속에서 푸르게/자신을 지키는 이들이 있는 걸” 고마워하며 “작은 것에도 크게 위안받는”(`제일(除日)`)다. “툭하면 발길로 나를 걷어차곤 했”(`인포리`)던 세상이지만 상처와 아픔마저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서도 새살이 돋는 희망의 안쪽을 바라본다.“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부분)도종환 시인은 빼어난 서정시인이면서 교육운동가이자 문화운동가로서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아낌없이 바쳐왔다.“모든 몸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꿈”(`몸에 대한 블라지미르 쏘로킨의 발제`)을 잃지 않는 시인은 “어떤 모형을 사회에 강제로 도입하기 위해 인간적 가치들을 버려야 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다시금 시퍼런 정신을 벼리며 사회의식으로 지평을 넓힌다.시련을 영혼의 담금질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청안한 삶을 꿈꾼다.시인은 8년 전인 2003년 3월 심신 허약으로 쉽게 피로가 찾아오는 `자율신경 실조증`이란 병을 얻어 교사직을 그만두고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산방(山房)으로 들어갔다.오랜 시간 산속에서 생활한 시인은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에도 의미를 두고 흔들리며 피는 꽃 한송이에도 애정을 담는다. 더욱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혼자씩 젖”(`나무들`)으며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영혼들”(`맨발`)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애틋하기 그지없다.굽이 많은 생을 지나온 시인은 어느덧 인생의 오후에 접어들었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 사리물고”(`발치(拔齒)`) 평온한 속도로 “바람 속에서 갈기털을 휘날리며 산을 넘는”(`악령`) 시인의 어깨 위로 “반쪽 달빛”(`하현`)이 환하게 내려앉는다. 시의 산길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창비 펴냄, 도종환 지음, 132쪽, 8천원

2011-07-21

`십자군 이야기1`

평화를 염원하는 `神의 전쟁` 역사서 `로마인 이야기`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74·사진)가 십자군 전쟁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욕망과 의지를 다룬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 펴냄)`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저자가 필생의 역작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으로 전체 3권 가운데 일본에서는 2권까지 출간됐으며 국내에는 이번에 1권이 나왔으며 10월께 2권, 내년 상반기에 마지막 3권이 번역돼 나올 계획이다.책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200여년 지속된 인류 사상 최장의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했던 십자군 전쟁을 장쾌한 서사로 다루며, 권력자들이 종교와 이념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익을 둘러싼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보여준다.이 책은 십자군이 1096년 유럽을 출발해 예루살렘을 정복한 과정과 이후 십자군 국가의 성립 과정, 그리고 1118년 십자군 제1세대가 역사에서 퇴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힘 있는 문장은 십자군 전쟁을 지속시킨 인간의 복잡다단한 욕망을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숨결로 재현한다.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종교와 이념 혹은 지역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균형 감각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스스로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서”라고 했다.`십자군 이야기`에는 중세 시대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이는 그런 시각과 관점에 의한 왜곡이 없다. 서구 중심의 시각이나 이슬람 중심의 시각, 혹은 보수적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벗어나 그 시각 때문에 왜곡시켜 보지 않는 강점이 있는 것이다.또한 `십자군`이 가능했던 중세 시대의 물적 토대와 구조에 대한 분석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봉건제와 장원, 농노, 왕과 봉건 제후의 관계, 기사도,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법왕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 교회의 갈등(비잔틴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과 가톨릭 개혁 운동) 등 그런 것에 힘을 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그리고 있는 중세의 인간들은 어찌 보면 중세의 인간스럽지 않다.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중세적이지 않다. 현대적이다. 그들의 신념과 이상, 욕망들이 그렇기에 생생하게 다가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시오노 나나미 지음, 1만3천8백원

2011-07-21

`내가 누구게?`

생각의 힘 키우는 한국 첫 수수께끼 동시집우리나라 동시문학의 거장, 신현득 시인의 스물네 번째 동시집 `내가 누구게?`(사계절 펴냄)가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되는 `수수께끼 동시집`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동식물과 자연 현상, 인물 등을 소재로 한 37편의 수수께끼 동시가 실려 있다.시인은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고 여린 생명, 하찮아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에도 동심을 불어넣는다.`내가 누구게?`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시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동시집으로, 시 한 편 한 편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마치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조곤조곤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뜨뜻하게 달궈진다.무엇보다 늘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노 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가치 있는 책이다.신현득 시인은 “수수께끼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 재미있는 말놀이”이며 “이런 수수께끼 형식을 빌려서 쓴 동시를 수수께끼 동시”라고 정의한다.또한 “수수께끼 동시는 우리나라에서 첫 삽을 뜨는, 동시의 새로운 갈래”이며 “비록 말놀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엄연한 문학작품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일찍이 고(故) 윤석중 선생이 수수께끼 동시를 계획했으나 끝내 작품을 내어 놓지는 못했다. 따라서 `내가 누구게?`는 그가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뜻을 후배 시인이 이어나가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사계절 펴냄, 신현득 글, 112쪽, 8천원

2011-07-21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

가족의 참의미 일깨우는 다문화가정 이야기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은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웅진주니어 펴냄)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의 참의미를 체험해 나가는 따뜻한 이야기다. 시종일관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코믹하고 사랑스럽게 묘사해 나가는 작가의 재능이 돋보인다.이 책은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대상을 받았고, 경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우수예술프로젝트 선정작이기도 하다.이 책은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관우와 할아버지가 벌이는 유머러스한 사건이 가득하다.무에타이 고수였다는 과거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앞니가 빠진 어눌한 할아버지의 모습하며, 한국에는 없는 겉과 속이 다른 기묘한 고추젤리 덕분에 혼쭐이 난 관우와, 할아버지의 엉터리 태권도를 무에타이인 줄 알고 기겁하는 국동섭의 일화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돌게 한다.태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관우. 이번에 처음으로 태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한다. 관우는 할아버지에게 태국 무술인 무에타이를 배워, 평소 자신을 놀리던 똥국과 부하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한다.그런데 비쩍 마른 데다 이까지 빠져 버린 할아버지가 과연 무에타이를 할 수 있을까?할 줄 안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하는 관우가 무사히 무에타이를 익힐 수 있을까?처음에는 무술에만 관심 있었던 관우. 하지만 낯설게만 느껴졌던 할아버지가 관우처럼 라면을 좋아하고, 관우가 하는 태권도를 따라서 하는 동안, 관우와 할아버지는 서서히 진짜 가족이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웅진주니어 펴냄, 김리라 글, 156쪽, 9천5백원

2011-07-21

세계적 시인 고은 사랑가를 부르고 시대를 얘기하다

아내에게 바치는 생애 첫 사랑시집`상화 시편 : 행성의 사랑`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92쪽, 9천5백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인 고은(79)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 두 권을 나란히 내놓아 눈길이 쏠린다.고은 시인이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창비 펴냄)은 28년 전 결혼한 아내, 영문학자 이상화씨에게 바치는 시집이다.이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는,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한 남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시인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세월과 사유의 과정을 담은 시편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나아가 인간의 사랑 속에서 시간의 무한성과 우주의 약동으로 확장되어나가는 깊이있는 주제의식에서는 대시인의 풍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고은 문학의 또하나의 기념비적 성과라 할 만하다.“사랑하기 위해서는 / 가난해진 빈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서문`에서 시인은 스스로 “80세 앞에서 사랑의 시를 쓰는 나를 이제까지의 누구도 예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시인은 지난해 자신의 대표적인 연작시집인 `만인보`를 마치고 “완만한 흐름의 강물이 갑자기 숨찬 흐름으로 바뀌는” 일에 몸을 맡겼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시`는 그의 삶과 문학세계가 오롯이 담긴 “삶의 최고 형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해가 진다 / 사랑해야겠다 / 해가 뜬다 /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 너를 사랑해야겠다 /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서시` 전문)시인은 시작부터 거침없이 사랑을 이야기한다.선 굵고 강렬한 시인 특유의 필치로 선언하는 이 사랑은 태곳적 인류의 태동과 함께 살아숨쉰, 인간이 존재하는 근거이자 존재 그 자체로서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것이다.하여 연인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너는 먼 근원이다`)이며 `둘의 나신으로 태고의 달빛을 밀어내고 현재로 건너오게 하는`(`달밤`) 존재의 기원과도 같다.또한 시인에게 사랑은 관념 혹은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에 토대를 둔 실재하는 그 무엇이다.그런만큼 사랑은 “언제까지나 정의되지 않”는, “무수한 정의들 이전, 무수한 정의들 이후” (`아직 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장엄한 인연이기도 하다.`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에서는 고은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쏠쏠한 재미도 얻을 수 있다.28년 전 결혼식의 풍경, 자택에서 보내는 부인과의 시간 등 시집 곳곳에는 시인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더불어 사랑에 울고 웃고 감동하는 범부로서의 솔직한 모습 또한 이 시집을 읽는 감흥을 더욱 드높인다.황혼에 즈음해 탄생을 노래하다``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36쪽, 7천원`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 펴냄)에서 시인은 바람 같고 폭포 같은 목소리로 우리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시대와 맞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큰`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끊임없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시쓰기를 꿈꾸는 시인의 모습이 중단없는 갱신과 변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도저한 시정신을 확인하게 한다.시인은 기왕의 성과와 세월에 안주하는 일 없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맹렬한 기세로 놀라운 창작 에너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114편의 시 한편 한편이 모두 “고여 있지 않으려는, 낡아가지 않으려는, 어떻게든 다시 태어나려는 역동성의 증거”이자,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여전히 청춘으로 사는 귀신이 있는 모양”(안도현, 추천사)이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만든다. 그만큼 힘이 넘치는 시들이다.“오늘도 내 발밑에서 / 고생대 화성암 층층의 억센 함구로 캄캄할 것 / 오늘도 내 서성거리는 발밑에서 / 바스라져 / 바스라져 / 쌓여 울부짖다 퇴적암의 굳은 포효로 캄캄할 것 / (…) / 이토록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로부터 / 내 고뇌가 와야 한다 / (…) / 이 모독의 지상 여기저기 내 석탄의 고뇌가 와야 한다”(`태백으로 간다`부분)시인은 자신의 발밑에 쌓인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을 돌아보는 시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즈넉한 관조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석탄으로부터 곧장 수억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생대의 시간을 현재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그로부터 단숨에 시인의 고뇌가 와야 함을 거듭 다짐한다.부당한 시대를 향해 화살이 되어 꽂히는 시를 토해내었던 시인은 여전히 시대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시대와 맞서고 있다.모두가 중심을 향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시는 시대의 변방을 자처한다. 변방은 곧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곳, 우리가 오래전에 떠나온 곳이다. 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두고 온 우리의 고향이며, 그곳을 통해서만 우리는 중심을 향해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변방의 시선을 지닌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는 `흉측망측`하기 이를 데 없어, 시인은 한탄을 금치 못한다. 삼천리강산을 초토화시키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린다.“오늘도 강은 강대로 죽어가고 산은 산대로 마구 죽어갑니다 // 돌아보소서 / 이 꼬라지 / 이 꼬라지가 / 할아버지 할머니 후손의 막된 나의 삶입니다 // 돌아다보지 마소서 / 더이상 나는 당신들의 무엇이 아닙니다 / 한갓 이 문명 떨거지 생핏줄 끊긴 불초막심의 삽날입니다”(`나의 삶―네 강을 걱정하며`부분)나아가 시인은 이 `막된 삶`을 낳은 모든 중심의 문명을 향해 거침없는 일갈을 날린다.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다시 말한다 /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불을 발견하고 술을 발견하던 시절이여 / 거기로부터 / 너무나 멀리 와버렸구나”(`포고`).그러나 시인은 시원에 기대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 배어 있는 신생을 향한 열망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은 끝내 세상을 내던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기를 꿈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박병선 박사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

`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 북오션 펴냄, 조은재 글 1975년 외규장각 도서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프랑스 거주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로 유학을 간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도서관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우리 문화유산`직지`를 찾아냈고, 이것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책임을 밝혀냈다.그리고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에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고 10년간에 걸쳐 그 내용을 연구해 해석했다.박병선 박사는 이 보물이 한국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수십 년 동안 반환 운동을 펼쳤고, 드디어 지난달 11일 우리나라로 이 선조의 위대한 유산이 돌아오게 된 것이다.`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북오션 펴냄)은 그런 박병선 박사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전달하는 책이다.책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거쳐 뇌수막염에 걸리는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여성 유학생 1호가 되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후,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시키기 위해 박병선 박사가 펼친 노력과 헌신,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어린이들에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꿈을 이루게 하는 노력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항공과 우주의 꿈을 펼치는 세 친구 이야기

`하늘로 우주로 네 꿈을 쏴라!` 한겨레아이들 펴냄, 황도순·오선아·김수석 글 한겨레아이들의 `열두 살 직업체험` 세 번째 책인 `하늘로 우주로 네 꿈을 쏴라!`는 항공과 우주 분야의 직업을 항공 편, 로켓 편, 인공위성 편, 우주인 편으로 나눠 살펴보는 책이다. 또한 하늘과 우주를 향해 꿈을 꾸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꿈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항공과 관련해 흔히 알고 있는 두 직업, 조종사나 승무원 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안전을 책임지는 비행기 정비사,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돕는 항공 교통 관제사, 운항 관리사들도 만나 본다.또 인간과 인공위성 등을 우주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인간을 우주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매개체인 로켓의 원리부터 하나의 로켓을 만들기 위해 어떤 분야의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대는지 알아본다.이와함께 인공위성 제작 과정을 통해 인공위성분야의 다양한 직업들을 만나보고, 마지막으로 우주인 선발 과정을 통해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 과정들을 거치는지, 우주 관련 직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황도순 박사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위성구조팀장으로 일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인 `우리별 1호`와 `우리별 2호` 등 많은 인공위성 개발과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이다. 이렇듯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연구 성과와 자료들을 토대로 만들어져 보다 깊이 있는 정보와 내용으로 채웠다.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직업에 대한 소개를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는 것이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정보를 실었다.항공 분야는 파일럿, 스튜어디스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들이 있지만 우주 분야는 직업군이 다양하지도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군도 아니다. 이 책에는 `다짜고짜 인터뷰` 코너를 두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더불어 `궁금타파`라는 정보 코너를 두어 `공항에는 어떤 직업이 있을까?` `인공위성을 만드는 사람들` `우주 관련 직업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직업 이야기를 들려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읽고 쓰는 즐거움이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양의 책을 읽는 작가.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지식인 중 하나인 움베르토 에코. 그만의 독특한 지적 유머가 듬뿍 담긴 에세이가 오랜만에 출간됐다.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성공한 교수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코의 나이는 이미 여든 살이다.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그는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했으므로 소설가로서 자신의 나이는 채 서른 살이 되지 않는다고 허풍을 떨며,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등 다섯 권의 소설 외에도 수많은 비평서와 칼럼을 통해 본인이 `걸어 다니는 지식의 백과사전`임을 보여주었던 `대작가`가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 이야기를 우리에게 고백한다는 걸까? 에코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독자들은 이미 예상했겠지만, 그가 말하는 고백이란 사적인 의미의 고백과는 거리가 있다. 이 책의 본문 맨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란 바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말한다.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서부터 호메로스와 단테, 보르헤스와 제임스 조이스, 톨스토이와 뒤마 등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 소설과 독자와의 관계, 소설가와 소설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독자와 소설가와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 첫 번째는 에코의 방대한 독서 이력이 선사하는 지식의 즐거움. 두 번째는 에코 자신이 겪었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재미있는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세 번째는 능청스럽고 뻔뻔할 정도로 익살스러운 유머가 주는 즐거움이다.이 짤막한 에세이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지식을 읽고 그것에 영향 받아 다시 쓰게 되는 행위, 즉 읽고 쓰는 행위에서 이토록 경이로운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위대한 작가의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온 짧은 에세이 한 편이 독자에게 얼마만큼 지적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읽는 행위가 쌓이고 쌓이면 쓰는 행위에 언젠가는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이 책은 성공한 교수이자 학자로서 살고 있던 그가 왜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었는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외야에서 날아오는 하얀 공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충동적으로 결심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에코 역시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열여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한 소년, 에코는 회랑을 걷다가 어두운 장서관 위에 펼쳐진 `성인전`(교회력 연대로 정리된 성인, 순교자의 전기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깊은 적막과 어둠 가운데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몇 가닥의 빛줄기가 쏟아지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그의 온몸에는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그 순간이 의식 밖으로 뛰쳐나와 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렇듯 창작 과정에 영향을 주었던 개인적 경험과 작품의 뼈와 살이 되어주었던 여러 텍스트들을 공개하는 첫 장은 에코의 유머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2장에서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다”고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에코 역시 “텍스트는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에” 작가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독자에게만 살짝 윙크를 던지듯이 그는 작품 속에 이중코드라는 요소를 심어놓았고 그걸 알아보는 수준 높은 독자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끔찍이도 즐긴다. 좋은 작품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해석을 준다고 말하는 에코는 이중코드를 소설에 대한 애정과 지성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한다.안나 카레니나, 햄릿, 몽테크리스토 백작, 베르테르, 히스클리프, 라스콜리니코프, 그레고르 잠자와 스크루지 영감. 이와 같이 가족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서술해놓은 3장에서 에코는 소설가이자 철학자로서 허구 세계가 갖는 존재론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친한 친구가 연애에 실패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사람들 때문에는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실연에 가슴 아파하며 목숨까지 버리는 독자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에코는 이렇게 물으면서 또 이렇게 답한다. “역사 인물과 달리 소설 속 주인공들은 `피와 살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슬픔과 비극에 가슴 아파한다”창작 과정에서 필요한 날것 그대로의 재료를 전시하는 4장에서는 방대한 지식의 창고를 개방한다. 라블레와 제임스 조이스, 호메로스와 휘트먼의 목록에 자신이 뽑은 목록까지 공개하는 이 장은 언어에 대한 순수한 탐닉과 과잉에 대한 욕구를 과시한다. 자신의 저서 `궁극의 리스트`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 장에서는 훌륭한 문인들의 작품에 등장했던 목록들의 컬렉션이지만, 그 덕분에 독자들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놀라운 언어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위대한 작가의 머릿속을 훔쳐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레드 박스 刊, 움베르트 에코 지음, 320쪽, 1만3천8백원

2011-07-07

소설로 보는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 2`실천문학사의 담쟁이교실 시리즈 중 하나인`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 `이 개정판으로 재출간 됐다. 이 책은 일제시대의 현진건, 채만식으로부터 1960~1970년대의 김승옥, 황석영을 거쳐 오늘의 박완서, 윤정모, 임철우, 김원일, 공선옥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설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을 매 편마다 해설을 곁들여 올바른 소설 읽기와 문학사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꾸민 책으로 1992년 출간 이후, 학교 현장을 비롯한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대표 소설 11편을 담은 1권이 먼저 출간됐고 이번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표작을 수록한 2권이 출간됐다. 뒤이어 2000년대의 대표작을 선한 3권으로 개정판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을 완간할 예정이다.1권이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공간, 한국전쟁의 상흔 들이 담긴 작품이라면 2권과 3권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늘에서 쓰여진 작품으로 우리 시대 대표작가의 대표소설을 통해 보는 한국현대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2권은 근대화를 거쳐 산업화,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한국사회의 단면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환경문제를 문학으로 끌어들인 역작으로 평가되는 최성각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산업화 과정에서 또 다른 소외계층으로 부각된 여성문제, 특히 빈곤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형상화해온 공선옥의 대표작도 수록됐다. 개인화, 내면화로 요약되는 1990년대 중후반과 디아스포라의 삶이 부각된 2000년대의 대표작이 함께 묶일 예정인 3권도 기대해볼 만하다.송기원 `월행`, 윤정모 `밤길`, 박완서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임철우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 양귀자 `일용할 양식`, 김하기 `살아 있는 무덤`, 최성각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방현석 `새벽 출정`, 김원일 `마음의 감옥`, 공선옥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등 10편이 실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실천문학사 刊, 권순긍 김진호 문재용 엮음, 398쪽, 9천원

2011-07-07

포항문인협회 `문학만` 통권 35호 발간

문학과 미술의 만남...백남준 작품 모음도 (사)포항문인협회(회장 이대환)가`문학만`통권 35호를 발간했다. 호수로 보면 `문학만`이라는 제호를 달고 독자들에게 다가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문학만`의 편집인이자 소설가인 이대환은`문학만`통권 33호 `권두 에세이`에서 “`포항문학`은 통권 33호 발간에 즈음하는 2010년 상반기부터 반년간`문학만(Literature Bay)`으로 다시 여정을 떠났다.”며 발간 배경을 밝힌 바 있다.`문학만`통권 35호에는 기획, 비평의 시선, 특별초대, 작가의 시선, 묻혀 있는 한국의 명시, 시, 동화, 소설, 수필을 실었다. `기획`으로는 `한국문학 시인들의 문학적 경향`을 짚은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의 `신예 시인의 시적 모험, 시의 미래적 징후`와 오창은(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의 `젊은 소설의 미래`다. 이 두 글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짚는 데 바쳐진 평문이다.`비평의 시선`에서는 방민호(문학평론가, `ASIA`편집위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일본 사소설과 한국의 자전적 소설의 비교`가 이뤄지고 있다. 방민호는 다야마 가타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사소설과 김명순, 이광수, 이상의 사소설 등을 분석한다. 또 다른 `비평의 시선`으로는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백석 시의 영향`이다. 유성호는 백석의 시들과 백석의 영향을 받은 신경림, 문태준, 안도현, 송찬호 시인의 시들을 분석한다. `작가의 시선`에서는 소설가 이대환의 에세이 `늙고 가난한 시인의 비상금과 통일세` 외 8편이 실려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사적인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묻혀 있는 한국의 명시`에는 안상학 시인의 `내 손이 슬퍼 보인다`가 재수록 돼 독자들에게 소유, 폭력, 군림 등의 의미를 묻는다. 소설, 동화, 수필 코너에는 포항문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이 실렸고 시 코너에는 포항문인협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고증식, 손병현, 정안면 등 외부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 `문학만`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특히 2011년 `문학만`상반기호에 수록된 컬러 120여 쪽의`특별초대`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특별초대는 지난해 포항시립미술관을 통해 세계적 이목을 모은 `백남준 특별전 : Teletopia―드로잉에서 레이저까지`의 작품들과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의 글 등을 실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자료를 제공받아 `백남준과 이경희의 사랑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특별초대에는 문학과 미술이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다.한편 포항문인협회는 포항시, 재단법인 애린복지재단에서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한 `문학만` 통권 35호 출판기념회를 지난 1일 오후 7시 장성동 솔향기에서 가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07

살인과 지진 등 미칠 듯한 상황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야기

`미칠 수 있겠니` 한겨레출판사 刊, 김인숙 지음, 304쪽, 1만2천원 “사랑한다고 믿었다와 사랑한다의 사이에 차이 같은 건 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될 일이지만, 분명 그것은 같은 말이다.” (145~146p)`바다와 나비``그 여자의 자서전``안녕, 엘레나` 등으로 여러 문학상을 받은 작가 김인숙(48)이 신작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펴냄)를 출간했다.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상실의 계절`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인숙은 거대 이념 보다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차별과 성 모순의 현실, 이를 감당하는 여성의 내면에 천착하면서 공지영, 공선옥 등과 함께 90년대 여성문학의 주류로 여성문제를 초점화하거나 여성해방을 선보이며 한국 문단을 주도해 왔다.이번 소설`미칠 수 있겠니`도 그 연장선에 있다. `미칠 수 있겠니`에서 작가는 살인과 지진 등 삶의 비루한 진창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숭고함을 이야기 한다.이름이 같은 진과 진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 섬에 여행을 다녀온 후 한국을 떠나 섬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유진. 그런 유진을 섬으로 보낸 진. 유진을 보러 섬에 간 진은, 유진의 집에서 예전부터 써번트로 일하던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는 유진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를 가져 볼록 나온 배를 가진 채.섬의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드라이버 이야나는 우연히 개를 치어 죽인 날, 진을 만난다. 이야나는 그녀를 태우고 재래시장을 관광하고, 사람을 치료해주는 힐러를 만나러 가고, 진을 호텔에 내려다준다.친구 만을 만난 이야나는 그녀와의 전화통화 후에 그녀가 여권을 자신의 차에 떨어뜨린 것을 알게 되고. 만은 이야나에게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다음 날 진과 이야나는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야나가 투계장에 가서 구경을 하는 사이, 갑자기 땅이 흔들린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해안가에 있는 타운에서 일하던 옛 약혼자 수니를 찾으러 가는 이야나에게 진이 구해달라는 문자를 보낸다. 진과 이야나가 극적으로 만나는 순간, 해일이 일어나고 파도가 서로를 덮친다.기적적으로 살아난 진은 이야나와 함께 구호소에 가서 치료를 받고, 이야나는 수니를 찾아 다시 해안가로 간다.이야나는 수니와 헤어지고, 섬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병원으로 가서 진과 다시 만난다. 진과 이야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7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서로 연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7년 전 감쪽같이 사라진 유진을 찾으러, 진은 유진과 함께 살던 옛집으로 간다.집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기억하기 싫었지만 기억해야만 했던 일들이, 비로소 7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비밀이 밝혀지는데…./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30

과학자와 실천적 지성인의 삶 조명

`라이너스 폴링 평전` 실천문학사 刊, 2만원세계 최초로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미국 과학자 겸 사회운동가 라이너스 폴링(1901~1994)에 대한 평전 `라이너스 폴링 평전`(실천문학사 펴냄)이 출간됐다. 라이너스 폴링은 `과학`과 `사회운동`이라는 두 개의 실천적 삶을 하나로 조화시킨 인물이었다.20대에 양자물리학을 복잡한 분자 연구에 응용했고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아인슈타인에 견주어지기도 했던 천재 과학자이기도 한 반면, 냉전시대의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학자의 양심을 지키며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항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바탕한 실천적 지성인의 삶을 살았다.온갖 역경 속에서 한 개인의 앎이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주체적 삶이 될 때 전 세계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 책은 냉전 시대 이후의 “불확실성, 부도덕성, 지속적 갈등이 난무”하는 지금 이 사회를 향해 `라이너스 폴링`이라는 보편적 영웅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대답을 들려준다.라이너스 폴링은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친구인 제프레스의 집에 차려진 실험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화학반응에 매료돼 화학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여섯 살의 나이에 오리건농과대학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과학 수업을 받지만 그곳의 과학 강좌는 폴링의 학구열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폴링은 이후 칼텍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양자역학을 이용해 화합결합의 비밀을 밝혀 미국의 젊은 화학자에게 수여하는 랭뮤어 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과학자로 발돋움해 명성을 얻는다. 1939년에 20세기 가장 중요한 화학 저서 중 하나로 꼽히는`화학결합의 본질`을 출간했고, 그에 대한 연구로 1954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45년 적혈구 모양이 변형되는 유전병의 원인을 밝혀낸 데 이어 단백질의 나선 구조를 설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체에 침투해 질병을 일으키는 항원(세균, 바이러스)과 그것을 죽이는 항체의 결합 성질을 알아내며 분자생물학의 장을 열었다. 이렇듯 화려한 폴링의 과학적 삶의 여정은 20세기 과학사의 일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사회운동가로 폴링의 삶은 암울했던 세계 현대사의 한 대목에서 한 사람의 신념과 평화를 향한 이상이, 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사회운동가의 면모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던 폴링이 사회운동가로서의 자의식을 싹틔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 원폭 사건이었다. 이때 폴링은 과학자로서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을 절실히 느껴 반전 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아인슈타인이 의장으로 있는 핵과학자 비상위원회에 가입해 원폭 반대운동 및 반핵 시민운동에 참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정부와 우익 단체는 이런 폴링을 `공산주의 동조자`라고 비난하며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대기 중 핵실험에 의한 낙진 위험성을 세계에 알렸다. 전 세계 과학자 1만 1천 명에게 서신을 보내 핵실험 금지 서명을 받아내며 국제 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럴수록 폴링은 매카시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칼텍에서조차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정부로부터 여권 발부가 거부돼 출국 금지를 당했다. 급기야 핵정책위원회에 침투한 공산주의자 색출 명목으로 국내 안전보장법 행정감시소위원회 소속 상원 의원인 토마스 도드에 의해 미 상원 소위원회에 소환되기까지 했다. 거기에서 폴링은 핵실험 금지 서명 작업을 도와준 명단 제출을 요구받았으나 그는 끝내 밝히기를 거부했다. 1963년, 냉전의 기운이 서서히 거치면서 미 · 소 핵협정이 이루어지자 폴링의 반핵 운동은 공로로 인정돼 화학상에 이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윤희정기자

2011-06-30

운명과 같은 소년과 소녀의 만남 글로 나타낸 풋풋한 사랑의 소묘

`숨은 밤` 문학동네 刊, 김유진 지음, 208쪽, 1만원 젊은 소설가 김유진(30)의 첫 장편소설 `숨은 밤`(문학동네 펴냄)이 출간됐다.2004년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문학동네를 통해 문단에 나온 김유진은 당시 신선한 상상력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문단에 화제를 낳았다.`80년대 생(生)`인 김유진은 한유주, 김태용 등 일군의 작가들과 2000년대 젊은 문학의 한 흐름을 대표한다. 이 흐름은 이른바 `서사 파괴의 소설`이다.이번 소설은 김유진 특유의 단단한 문장들이 담고 있는 시적 분위기는 한층 안정되고 아름다워졌다는 평이다.한 소년과 한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여관에 맡겨진 소녀와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의 만남. 고아나 다름없이 마을에서 이방인 생활을 하는 이들의 불안과 분노를 그림 그리듯 그려내고 있다.작가는 특유의 몽환적 이미지와 여운 가득한 문장으로 소년과 소녀가 느끼는`사랑`의 전조(前兆)를 한 폭의 회화처럼 곱게 빚어냈다.여기, 희미한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어느 날 헛간의 썩은 볏짚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기(基)`이다.다른 아이는 트럭을 끌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가 여관에 맡겨두었다. 그 소녀는 기가 일하는 여관의`404호`에 산다.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그들은 여름 휴양지로 반짝 성수기를 이루는 이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이방인들이다.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제 마음 안에 왕국이 만들어졌다 무너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그들은 마을에 안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이윽고 분노한다. 그리고 소년은 마을에 불을 지른다.하지만 소설의 끝에선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손을 잡음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그것은 놀랍게도 `사랑`이라는 눈부신 단어로 매듭지어진다.“너는 누굴 싫어해?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그럼 누굴 좋아해?나는 너를 좋아해.”(203쪽)소년과 소녀가 숨어든 한 동굴에는 커다란 뿔을 들이밀며 자세를 낮추고 있는 황소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 몸보다 큰 황소에게 망설임 없이 죽창을 겨누는 용맹한 전사가 그려져 있다.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인가.우리는 여전히 미흡하고, 어쩔 수 없이 미완성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좋아`한다. 견딜 수 없는 세상을 견디고 극복하는 작가의 해답은 이토록 아름답다.“제목은 `빚 뒤에 숨은 어둠`이란 뜻이에요. 모닥불에 가장 근접한 곳이 어둡잖아요. 회화에서도 가장 밝은 부분을 그릴 때 역광을 넣고요. 이 소설을 쓸 때는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랑의 전조를 쓰고 싶었죠.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 태어나기 전에도 사라지는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어요.”/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30

아랍 작가로부터 듣는 재스민 혁명의 안과 밖

2006년 여름호로 창간호를 발간한 계간 문학지 `ASIA`(발행인 이대환)가 창간 5주년 기념호로 2011년 여름호를 발간했다. 통권 21호까지 45개국 461명 작가들이 이 잡지에 필자로 참여했다. 모두가 아시아의 작가들은 아니다. 아시아 48개국 중에서 몰디브, 부탄, 브루나이, 아제르바이젠 등 6개국의 작품을 싣지 못했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의 작가들이 참여했다.`ASIA`는 포스코청암재단(이사장 박태준)이 아시아펠로십 사업들의 하나로 선정해 `편집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발간 지원`을 결정함으로써 창간될 수 있었으며,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행인 이대환(작가)과 방현석(작가, 중앙대 교수), 방민호(평론가, 서울대 교수), 김재용(평론가, 원광대 교수), 전승희(평론가, 하버드대 연구원)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ASIA`가 무엇보다 소중히 추구하는 가치는 `아시아의 문학을 통한 아시아의 내면적 소통이다. 이 정신은 발행인의 `창간사`에 잘 드러나 있다.“사실 아시아의 언어들이 서로의 내면으로 대화를 나눈 경험은 아직까지 딱할 정도로 빈약하다. 상대의 언어 안에 피처럼 흐르는 정서와 영혼과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의 연대와 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는 인류사회가 새롭게 기획해야 할 평화의 질서를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ASIA`는 어떤 힘의 중심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굳이 중심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면, 아시아의 다양성이 동등하게 만나고 섞이는 `소통의 중심`이란 평가를 가장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한다.”지난해 여름호(통권 17호)에서 팔레스타인문학 특집을 꾸리는 등 중동 아랍권 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ASIA`는 이번호에서 그동안 교류해온 현지 작가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재스민 혁명`의 현지 작가 목소리와 아랍권 단편소설과 시로 아랍혁명의 특집을 꾸렸다.우리나라에 구제역 광풍이 휘몰아치던 지난겨울,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예맨, 요르단 등 아랍 국가들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세계는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이 혁명을 주목했다. 그것은 한 국가를 넘어 `아랍`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국가` 차원의 단편적 분석에 머무르거나, SNS라는 새로운 매체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 치우쳐, 혁명이 가진 정당한 의미로부터는 다소 먼 뉴스들이 한동안 이슈가 됐다. 이에 `ASIA`는 혁명의 주체인 현지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혁명을 아랍의 안과 밖의 시선으로 다시 고찰해 보고 있다.이번 특집에는 인도 출신의 A. J. 토머스, 요르단의 파크리 살레, 이집트의 살와 바크르의 산문을 실어 그들이 현지에서 바라본 혁명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들은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에서 일어난 혁명의 생생한 모습들을 담고 있기에, 외부인이 바라본 것과 현지인이 겪은 경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이 글들과 함께 실린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의`중동 ― 격변의 역사와 그 문화`는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이 중동이라는 지역을 만나는 데 가장 친절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이와함께 대담을 실었다. 아랍 세계에는 `바니팔(Banipal)`이라는 잡지가 있다. 이 잡지는 아랍 작가들의 작품을 영어권 국가에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수단에는 어떤 소설이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매체다. 현재 바니팔의 편집인으로 있는 사무엘 시몬과 안도현 시인이 중동의 민주화와 관련해 대담을 진행했다. 이 대담에는 영어권 국가에 아랍권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온 바니팔의 지난 여정과, 중동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세계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여러 작가들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는 1988년 선정 발표문에서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를 위와 같이 소개했다. 현대 아랍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나기브 마푸즈와 그의 20년 후배 작가 가말 알 기타니의 인터뷰를 실었다. 나기브 마푸즈는 아랍 지역의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게벨라위의 아이들`(1959)`도적과 개들`(1961) `미라마르`(1967)와 같은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이 인터뷰는 마푸즈의 93세 생일을 기념하여 진행한 것으로 심층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통해 아랍 세계와 현대 문학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인터뷰 뒤에는 마푸즈의 소설 `제7 하늘`을 발췌 수록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집인 `제7 하늘`은 마푸즈의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써진 중단편들을 가장 긴 작품에서 가장 짧은 작품 순으로 배열한 것으로, 이는 코란의 구조와 비슷하다. 부제로 붙여진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말하듯 사실주의의 관습을 초월한 작품들을 모았다.이외에도, 아랍 현대 문학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아도니스, 자히르 알 가프리, 사우키 사피그의 아름다운 시들을 실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아도니스의 시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프리, 사피그의 시는 하나의 놀라움이다. 엘리사 파르코, 이브라힘 알 코니, 살레 알 데임스의 소설은 영미권, 일본 소설에 익숙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취향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23

여류시인 유안진·신달자 `두 빛깔`로 담아낸 인생 여정

한국 문단의 대표적 여류 시인인 유안진·신달자 시인이 신작 시집과 에세이를 각각 펴냈다. 특유의 고백적인 문체와 종교적 경건함으로 어머니의 품을 보이는 유안진(70) 시인은 `둥근 세모꼴`(서정시학 펴냄)이라는 짧고 간결한 극서정시집을 내놓았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올해로 문단생활 47년을 맞은 시인이 짧지 않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이야기들이다.`우리 시대 감성시인`이란 호평을 받으며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 등 여러 결실을 낸 바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지치고 힘든 우리들의 일상과 삶속에서 시적 감수성을 찾아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가치판단력을 높여가는 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재의 시를 빚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장황한 산문시와 달리 짧게는 두, 세 문장의 시로 간결하면서 담백한 서정의 세계를 선보인다. 종교와 신화, 예술과 페미니즘 이외에도 옛 애인과 흘러가는 세월 등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재료들로 위트 넘치면서도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선보이고 있다.“예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오히려 천상천하유아독존주의天上天下唯我獨尊主義다다수결多數決은독창성獨創性의 적敵이라서.”― `시도 다수결이 아니다` 전문“만인에게 나눠줄 떡이 될 몸이라서지명地名이 떡집인 곳은 베들레헴뿐이라서.”― `그 아기씨는 왜 거기까지 가서 태어났을까?` 전문“신문이 빈 벤치에 앉아 자꾸 손짓한다가 앉아 펼쳐드니 은행잎들 자꾸 떨어져 가린다읽을 건 계절과 자연이지시대나 세상이 아니라면서.”― `노랑말로 말한다` 전문교육학 박사이기도 한 그가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전하는 넉넉함과 따스함은 초여름의 사색과 낭만의 추를 드리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최근들어 자신의 솔직한 인생경험담, 문학과 인생에 대한 초청 강연과 방송을 통해 청중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신달자 시인(68)은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에세이`여자를 위한 인생 10강`(민음사 펴냄)을 펴냈다.이번 에세이는 그동안 시인이 수많은 강연과 상담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들 중에서 핵심만을 추려 여성들에게 전하는 열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고, 사회통념과 부딪쳐 깨지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여자들은 외롭고, 아프고, 슬프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에게 열 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도전하라고, 외로움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때,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 나이와 함께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행복은 여자가 창조하는 신화라고 말한다.인생과 사랑, 가족, 꿈, 행복 등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과 수많은 예화 등 시인 특유의 입담으로 여성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행복은 결코 그냥 오지 않는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소질`을 계발해야 한다. 시인은 매일매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무엇을 했다`라는 결과보다 `무엇을 하고 있다`라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고 말하며,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 돈보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하루에 한 시간만 해도 인생이 달라지는 기적을 체험할 거라고 말한다.신달자 시인이 전하는 10가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1강 열 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다2강 척박한 땅에서 핀 꽃이 더 향기가 짙다3강 물은 1도만 모자라도 끓지 않는다4강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5강 행복은 여자가 창조하는 신화다6강 여자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7강 마음속 자궁으로 남자를 품으라8강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9강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10강 그대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23

고독한 현대 도시인의 이야기 두 원로작가 소설 서점가 강타

황석영 최인호. 한국 문단에서 개성적 성취를 이룩한 원로 문인 두 명이 나란히 신작 장편소설을 냈다. 어느덧 나이 예순 중반에서 일흔에 이른 이들이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백하게 들여다 본다. 자본주의와 도시의 속성,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을 이야기 한다. 이들의 작품은 출간 1~2주일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또한 이런저런 매체에 연재했던 것을 모으지 않고 전작으로 소설을 완성했다는 공통점도 눈길을 모은다.무엇보다 50~60년 동안 한국 문단을 지키며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이들의 그치지 않는 문학열정을 만나 볼 수 있어 반갑다.소설은 늘 우리를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에게로 데려간다. 올 여름 우리의 시공과 시야를 확장시켜 줄 좋은 작품들이다.■`낯익은 세상`소설가 황석영(68)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 대표적 소설가.`낯익은 세상`은 개발이 지상과제였던 80년대 난지도를 무대로 그곳에서 성장한 10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딱부리`라는 열네 살 소년이 폐품 수집꾼으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쓰레기 매립지인 `꽃섬`에 들어와서 겪는 일을 그렸다. 쓰레기장인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을 터전으로 삼은 빈민들의 이야기는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지금, 쓰레기는 매립지로 오기 전까지 생산과 소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딱부리의 눈을 통해 이곳이 도시문명에서 얼마나 고립된 낯선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욕망과 소비와 폐기가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낯익은 것인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소설은 쓰레깃더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되기가 어렵거나 어른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성,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샤머니즘적 믿음, 전원시적인 농촌의 이미지…. 무엇보다도 세계의 마법을 기억하는 동화적 이야기구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작가의 말`에 표제의 의미가 곡진히 밝혀져 있듯이, 이 소설의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처럼 `매트릭스`로서의 그 세계는 바로 우리 지척에 있다.” (`작가의 말`에서)■`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침샘암으로 투병중인 소설가 최인호(66)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느닷없는 소음에 주인공 K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이 소설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_발문, 김연수(소설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6

“미움도 집착도 버리고 강처럼 흐르라”

`어떤 그림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 마음의 숲 刊, 성전 스님 지음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 진행자. 라디오 스타. 불교계의 글쟁이. 아름다운 문장가. 미소 스님. 남해 용문사 주지 스님…. 법정 스님을 잇는 불교계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성전 스님에게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참 많다. 그가 세속에서 대중들과 함께 참 말씀을 나누고 전하면서 생긴 꾸밈말이다. 스님은 이런 말들에 그저 벙긋이 웃는다.“내 꿈은 그냥 깊은 산속 오두막에서 사는 것이에요.”스님이 최근 펴낸 `어떤 그림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마음의 숲 펴냄)에도 자주 나오듯이 스님은 산속에서 혼자 사는 현자들, 꽃과 나무와 같이 홀로 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들을 이야기하며 그리워한다.`어떤 그리움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는 별을, 산중에 홀로 핀 이름 없는 꽃을, 정신이 명료해지는 산사의 겨울바람을 그리워하다 다시 그들을 자연 속에서 만난 기쁨을 노래한다. 저자는 말한다. 하늘에 구름으로 흐르던 물방울들이 빗방울로 내려와 만나는 찰나의 순간 속에 영겁의 기쁨이 들어있다고. 즉 이 책은 꽃과 바람과 나무가 쓴 짧고도 청량한 자연의 경전이다.스님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 자연과 삶에 대한 찬미로 가득 찬 이번 새 책에는 나무와 구름이 만난 이야기, 바람과 햇빛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지상의 꽃들이 서로 그리워하는 이야기 등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 놓고 쉬어 갈 수 있는 초록 그늘의 쉼터를 내준다. 또한 영혼의 쉼과 함께 자기성찰과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게 해 주는 깨달음의 글들로 가득하다.“강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냥 흐를 뿐이라고. 강에겐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입니다. 지금 흐르는 것 외에 강에겐 어떠한 대답도 생각도 없습니다. 강은 다만 흐름에 마음을 다 모을 뿐입니다. 그래서 강은 흘러도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들 인생도 그냥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전부라 말하며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강은 그냥 흐를 뿐`중에서)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말고 그냥 강처럼 흐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바다에 이르는 길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문제들, 아픔, 슬픔, 힘듦, 어려움, 시련, 고통을 치유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며 심지어 죽음마저도 자연 속에서 답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결국 이 책은 강, 구름, 바람, 햇빛, 별, 꽃, 산에게 저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고뇌하고 반성하며 답을 얻은 자연의 경전(經典)이다. 의외로 이 경전은 어렵지도, 길지도 않다. 새벽별을 바라보며 혹은 노을 앞에 무릎 끓고 자각하며 기도하는 저자의 풍경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 일깨움이 꽃처럼 아름답고 가볍다. 명쾌하고 간단하다.이 책은 자연을 대전제로 모두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한 편, 한 편이 짧은 잠언으로 구성돼 있지만 각 장의 주제가 유기적으로 구성돼 마치 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시처럼 유려하게 펼쳐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6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시계`의 영향을 크게 받아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에 어울리는 `올바른 나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 하지만`마음의 시계`(사이언스북스 펴냄) 저자인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엘렌 랭어(64) 박사는 실제로 어느 나이에 신체 상태가 어떻다라는 절대적인 기준이란 의학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다분히 상대적이면서 고정 관념에 불과할 뿐인 나이에 대한 인식은 곧 질병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불러일으켜, 우리는 당연히 50세가 넘으면 무리한 운동을 하기에는 체력이 떨어지고 시력 및 청력의 감퇴를 경험하게 되며, 70세가 넘으면 기억력이 나빠져 자주 깜박깜박하며 너무 쇠약해 홀로 지낼 수 없다고 단정한다.랭어 박사는 1979년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실행한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 8명을 시골 마을로 보내 1959년인 듯 살게 한 것이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산지 일주일 만에 놀랍게도 노인들은 실제로 젊어졌다. 시력과 청력, 기억력, 악력이 향상되고 체중이 늘었으며,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걷기 힘들었던 한 노인은 심지어 꼿꼿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과 후의 노인들 사진을 찍어 제3자에게 보여주자 모두가 일주일 후의 사진을 더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생각했다.이들 노인들 또한 처음 도착할 당시만 해도 사회와 고정 관념이 부과한 사고와 행동이 몸에 배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마음의 시계`는 이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진행했던 랭어 박사가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담아낸 책이다.`긍정의 심리학` `가능성의 심리학`을 다듬어 온 저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들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질병이나 노화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마음가짐이 우리 육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랭어 박사의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러 심리 실험에서도 잘 나타난다.저자는 노화가 인간 발달상의 한 단계일 뿐 쇠퇴나 상실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과정이나 결과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미리 결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나이 듦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 노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인 것이다. 80세 남자는 더는 50세 때만큼 테니스를 칠 수 없다는 데 좌절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그가 더는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테니스를 치려고 애쓴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하지만 우리 사회가 조성한 물리적 환경(젊은 선수에 맞춰진 경기장과 경기 시간 등)과 정신적 환경(고정 관념)은 80세 테니스 선수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노화하고 있는 탓에 더 이상 예전처럼 경기를 펼칠 수 없다는 데에만 사고를 고정시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전략으로 경기를 펼칠 생각은 애초에 떠올리지도 못하게 거대한 마음의 벽을 쌓아 버린다.랭어 박사는 노화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몸무게를 3kg 감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일로 느껴질지 모르나 30g을 뺀다는 생각에 기가 죽을 사람은 별로 없다. 저자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30g만큼의 치유법만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마음의 시계`가 제안하는 30g의 치유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나이라는 숫자에 굴복하지 마라그간 얽매여 있던, 우리의 잠재성을 제한하는 문화, 언어, 사고방식을 버리자.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 의학계가 인간의 육체와 질병에 붙여 놓은 이름표들이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부채질한다. 나이라는 숫자, 질병이나 노화라는 이름표를 벗어던지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다.▲사소한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일상에서 소소한 선택의 기회를 주고, 물리적인 환경을 약간만 변화시켜도 우리의 건강과 행복은 향상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평균이라 가정되는 특정 집단을 지향해 젊은이들에 의해 고안되고 설계된 세계이다. 계단 옆에 손잡이를 달고, 현관 앞에 선반 하나를 두는 등 각각에 맞는 조그만 변화로도 크나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내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자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의학계에 절대적인 진실, 확신이란 없으며, 우리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아는 이는 의사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의학계에, 전문가 집단에 무심코 넘겨주던 통제권을 되찾아 우리 몸의 사소한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스스로의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에 적극 참여한다면, 선택의 힘, 그리고 그 힘으로 인한 개인의 통제력 증가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랭어 박사는 우리 몸에 불가피한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질병들이 사실은 되돌릴 수 있으며, 의식을 집중해 자그마한 변화에도 주목하며 건강을 학습하는 자세로 우리 몸을 대한다면, 몸과 마음, 삶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 젊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9

이성의 노동을 통해 지혜를 얻는 철학

`철학연습` 민음사 刊, 서동욱 지음, 332쪽, 1만5천원 삶의 골칫거리들과 현대철학의 고민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나?철학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기쁨, 슬픔, 질투, 고통, 불안)이 깊숙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찾아내, 그 원인들과 당당하게 마주하게 하기도 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짜로 대면해야 할 문제들을 밝혀주기도 한다. 늘 새로운 것이 출몰하는 현대의 삶에서, 정말로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도 바로 철학이다.철학자이자 시인인 서동욱씨가 펴낸 `철학연습`(민음사 펴냄)은 현대철학의 핵심적 내용을 성실하게 소개하고 있다.학생부터 주부까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마옴속에 간직한 이들이라면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 쉽게 썼지만 현대철학이 품고 있는 깊이를 무시한 채 단순화하고 도식화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저자의 생각과 마음을 통해 철저히 소화된 이야기만을 실었다. 또 철학자들이 고심했던 문제를 소개할 때, 그 치열함과 진지함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령 스피노자나 키르케고르 철학이 당대의 네덜란드와 덴마크 사회와 어떤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되는 `의식의 익명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 어떤 경험과 연관돼 있는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이렇게 네덜란드는 자유와 예속의 체험 모두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유를 자극했다. 스피노자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당한 파문을 감수한 것,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 초빙을 거절한 것 등은 모두 그의 삶 전체가 예속에 맞서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루어낸 하나의 작품임을 알려준다.”(31쪽)“의식은 말을 통해 대상에 의미 부여를 하고 의미를 통해 대상을 규정하는 일을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사르트르가 자신의 성장에 관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거울 놀이밖에는 없었다.” 거울 놀이 속에서 자기 시선을 통해 자기자신을 규정하는 소극적인 방어를 했던 어린이는, 이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의식 바깥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고 한다.”(96쪽)이렇게 철학자들의 사유가 발을 디딘 현장을 목격하게 하는 장치 역시 이 책이 깊이를 양보하지 않고서도 쉽게 읽힐 수 있는 비결이다.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얻듯이, 그렇게 이성의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책은 현대철학에 대한 쉬운 안내서일 뿐만 아니라, 저자의 독창적인 에세이라 할 수 있다.책은 1부 `이론`과 2부 `연습`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현상학(실존주의)과 구조주의(탈구조주의)라는, 현실에 특별히 밀착했던 두 흐름을 중심으로 주요 철학자들을 살핀다. 각 꼭지 뒤에는 철학자들의 핵심 개념과 저작에 대한 설명, 더 공부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국내외 자료들이 나온다. 철학자들의 대표 저작 목록을 백과사전을 참조해 정리한 자료가 아니라 저자가 20년 이상 공부해온 내용을 압축해 알짜배기만 담아놓은 노트나 마찬가지이다. 한 줄의 설명에도 저자의 내공이 스며들어 있다.2부에서는 주제를 앞세워 생각을 전개시키는 에세이들이 등장한다. 존재와 무, 차이와 환대, 진리, 진짜와 가짜 등 고전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들을 현대철학 버전으로 재정비한 글들이 준비운동을 돕는다. 그러고 나면 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 현대적 삶의 국면이 철학의 언어와 만나는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책 곳곳에 실린 컬러 사진들은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 혹은 괴로움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9

서른 살의 위기에 옛 친구 찾아 떠나는 여행기

`서른 살의 인생 여행` 민음사 刊, 대니 월러스 지음, 496쪽, 1만6천원`서른 살`을 키워드로 하는 도서들이 강세다. 사회 초년생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거나 또는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미래를 다시 모색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서른 살에 반드시 알아야 할 처세술, 재테크 비법, 인생의 지혜 등을 알려 주는 여러 책들이 최근 다수 등장했다. 서른 살에 겪는 심리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거나 그들에게 위안을 전하는 책들도 인기다. 하지만 서른 살의 위기를 좀 더 재기 발랄하고 즐겁게 넘길 수는 없을까? `서른 살의 인생 여행`(민음사 간)은 전작 `예스 맨`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행동으로 위기를 오히려 행복의 기회로 만든 유쾌한 괴짜 대니 월러스가 자신이 겪은 서른 살의 위기를 다룬 아주 특별한 인생 실험 다큐멘터리다.저자 대니 월러스는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자신이 어른이 되어 가고 있으며, 더구나 평범한 중년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어릴 적 물건을 모아 둔 상자 속에서 낡은 주소록을 발견한 그는 옛 친구들 역시 서른 살을 앞두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그들도 나처럼 어른이 되는 것이 불안할까?` 하는 물음이 떠오른 그는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만 적어 놓았던 그 특별한 주소록의 열두 친구들을 직접 만나 보기로 결심한다. 여러 난관을 헤치고, 어쩌면 대단치 않지만 어쩐지 실행에 옮기기 힘든 이 프로젝트를 해내며 대니 월러스는 여러 가지 인생의 깨달음을 얻어 간다. 그리고 똑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친구들의 인생을 자기 인생과 함께 나란히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서른 살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에 떠는 20대 후반의 사회 초년생들, 결혼을 하고 어느덧 안정된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이것이 과연 내가 원했던 것일까` 의문을 품기 시작한 30대들 모두를 위한 책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친구 100만 명보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진정한 소셜 네트워킹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독특한 실화 에세이는 서른 살의 위기를 넘기는 특별한 방법을 제안한다.30대가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나뿐일까?”와, 정말 백만 년 만에 생각 난 이름이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 지금쯤 뭐가 되어 있을까? 모두들 행복할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도 서른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서른이 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은 기분일까? 그들도….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을까? (62쪽)20대 후반에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서글픈 마음으로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른 즈음이란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며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누구나 고민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사춘기로 떠오르는 불안한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 대니 월러스 역시 30대가 되는 것, 이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멀어져만 가는 그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서른 살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어떤 거창한 방법론이나 대단한 조언이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을 이해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친구란 언제나 불안한 인생살이를 옆에서 지지해 주는 존재로서 그 소중함을 증명하지만, 옛 친구가 소중한 것은 그들이 나의 특별한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옛 친구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들과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내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소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 때가 많다. 주변 환경에 맞춰 사회적 요구에 따라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하다 보면, 문득 `이건 내가 아닌데.`라는 좌절감이 들기 마련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일이다.`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을 기억하고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옛 친구를 만나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전의 소중했던 관계를 잘 유지해 볼 것을 권한다. 어쩌면 정말 좋은 우정이라면 영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우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과거에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걸 지켜보았고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아는 그 친구들이 계속 곁을 지킨다면, 어떤 인생의 위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정말 소중한 소셜 네트워킹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옛 친구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깨우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2

수묵화 같은 자전적 일상의 노래

포항제철소 근무 정헌종 첫 시집 `붉은 파도` 아르코 刊, 115쪽, 7천원 포항제철소에 근무하는 정헌종(42) 시인이 첫 시집 `붉은 파도`(아르코 간)를 발간했다.정헌종 시인은 포항제철소에 근무하면서 꾸준히 시인으로 활동해 `한국문학정신`에 `까치` `오디`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정 시인은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부드럽고 쇳물처럼 뜨거운 제철소의 시인이다. 직장인과 시인의 신분을 오가며 틈틈이 옥토를 개간하듯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써오고 있다.그의 시는 고향 전북 익산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나 포항에서 유학와서 생활했던 자신의 일상들을 이야기 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시적 소재는 사람과 사물이다.정 시인은 “난해할수록 자기만족에 가깝고 쉬울수록 자기고백에 가깝다.”며 시를 독자의 관점에서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게 표현한다.정 시인의 작품들은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쉬워 시가 어렵지 않다. 독자와 소통하려는 흔적들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며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표현들을 절제하면서 일상적인 시어를 통해 사물을 수묵화처럼 그려내고 있다.이 시집의 해설을 쓴 윤석홍 시인 역시 포항제철소의 직원으로 등단 20년이 넘는 중견시인이다. 윤석홍 시인은 “정헌종 시인은 자기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을 들려주고 있다”며 “그의 시에서는 그만의 언어로 서정적 표현을 그려내고 있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2

의지와 상관없이 농부가 된 이야기

`그곳은 평화롭겠지` 헤르브란트 바커르 지음, 신석순 옮김, 364쪽, 1만2천원“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내 인생을 망쳐놓았기 때문이에요. 난 아버지가 내 인생을 더 망쳐놓는 것이 싫어서 의사도 부르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몰라요, 헹크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했는지. 헹크하고 난 쌍둥이잖아요. 아버진 쌍둥이 형제가 어떤 건지 알기나 해요?” (246쪽)“지난 10년 동안 발간된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을 썼다”는 찬사를 들으며 데뷔와 동시에 여러 문학상을 받고 네덜란드 문단의 기대주가 된 헤르브란트 바커르의 장편소설 `그곳은 평화롭겠지`(문학과 지성사 펴냄)가 출간됐다.이 소설은 네덜란드 국내는 물론 여러 해외의 유명 잡지들에서도 각종 찬사를 받았으며, 이미 영국·독일 등 10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을 뿐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영어판 `쌍둥이`는 `2010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송하는`그곳은 평화롭겠지`는 초록 잔디밭과 물, 새 그리고 고랑과 호수를 메운 얼음판, 소, 양, 고분고분한 당나귀 두 마리, 또 어느 뿔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그 자연은 인간을 외로움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농부가 되고 만 헬머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아비는 쌍둥이 동생 헹크를 편애했고, 그래서 동생이 아비의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 아비의 뒤를 잇는 운명이 헬머를 덮친다. 헹크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문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헬머는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을 대신해 농장에 남는다.반평생 동안 쌍둥이 동생이 살았어야 하는 인생을 대신 산 헬머. 그의 삶이, 미지에 대한 동경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샴쌍둥이라도 되어 한 몸이 되고 싶었던 동생과 함께 보낸 나날들은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동생을 잃음과 동시에 자신의 인생마저 빼앗겨버렸다. 반쪽짜리가 되었다고 느끼면서 수십 년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니…. 그렇지만 이 책은 슬픔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저 동생을 대신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산 한 남자의 삶을, 그의 상념을, 그가 있는 네덜란드의 전원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까지.이 작품은 인간의 상처, 상실, 그리고 그리움과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자신에게 딱 맞는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인생은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외로운 여정일 뿐이다. 하지만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가 아니다. 헬머는 늘 동생 헹크를 그리워했고, 농가에서 일하는 얍을 그리워했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아비와 단둘이 농가를 지키는 동안 헬머는 아비의 일손이 되었다. 그러다 아비가 병이 들어 몸져눕자 그는 스스로 농가의 주인장이 됐다.물기가 흥건한 농토, 소들의 숨소리와 양들의 우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정적을 깨우는 전원에서 헬머는 농장의 가축들과 늙은 아비를 묵묵히 돌본다. 아비를 위로 `치워버리고` 아래층 거실과 안방을 분주하게 새단장하는 책의 초반부는 사뭇 뭔가를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농가라는 자리는 헬머가 꿈꾸는 자리가 아닌지라 헬머의 마음은 그다지 가다듬어지지 않는다. 농장에, 병든 아비 곁에 묶여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공상밖에 할 수 없는 헬머. 그가 갈망하는 땅, 덴마크.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방에 덴마크 지도를 걸어놓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지명들을 읽어보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2

대한민국의 교육 백년지계 암기 아닌 창의성에 달렸다

`우리아이 창의력 엄마하기 나름이다` 푸른길 刊, 이용석 지음, 328쪽, 1만5천원 최근 교육계 곳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지난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담한 제목으로 시작한 일명 김예슬 선언에 이어 얼마전 한국 최고의 대학인 카이스트에서 몇 명이나 되는 학생과 교수가 스스로 아까운 목숨을 끊었다.이용석 오메가창의교육연구소장이 최근 경북매일신문에 1년반 동안 연재한 글들을 모아 펴낸 `우리아이 창의력 엄마하기 나름이다`(푸른길 펴냄)는 이제는 우리가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전반적인 사항을 비판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을 위한 창의력 교육 지침서가 될 것이다.30여년 동안 학교 현장에서 체험적으로 알게 된 내용들을 이 책에 정리했다는 저자는 우리의 교육은 과연 백년지계의 제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대학 진학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가? 우리의 교육은 다른 나라의 교육처럼 아이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게 하고, 저마다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핵심은 바로 `창의성 교육`이라고 주장한다.“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은 입시라는 한 목표에 치중돼 있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 여러 가지의 방안을 함께 논의하기보다는 정해진 답안을 무작정 외우는 주입식 교육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런 교육 방식은 입시 그 자체에는 주효할지 몰라도, 입시 이후에 맞닥뜨려야 하는 다른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명문대에 입학을 하고도 적응을 못해서 낙오되는 학생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시험 문제 하나도 서술형으로 출제되는 대학 시험에서부터 지원자의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취업 현장, 에세이라고 불리는 논술로 이루어지는 외국 대학 수업에 이르기까지 학습자의 지식보다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곳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창의성 교육, 과연 우리는 학생들의 창의력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저자의 교육법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지향하는 교육법은 한번 배워서 잠깐 써먹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운동 선수가 기술을 배우듯 장기적인 안목을 두고 조금씩, 천천히 생각의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그가 생각하는 `교육이 잘 된 인간`이란 그저 공부만 잘 하는 우등생이 아니다. 교과서에만 파고드는 공부벌레는 저자의 눈으로 볼 때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조금 `문제가 있는` 학생이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그만큼 많은 것을 접하고, 규칙을 벗어나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창조적인 산출물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교과서에만 매달려 외우는 데만 여념이 없는 학생은 그런 능력을 기를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저자는 창의력 학습법 OMEGA 5를 제안하고 있다.첫째, Open Mind(열린 마음)이다.Open Mind는 말 그대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마음을 여는 활동은 상대편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기의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Open Mind를 통해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게임, I-message 대화법, 감정 코치법, 토론법 등의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Open Mind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한 토론은 창의력 신장에 크게 도움이 된다.둘째, Multiple Thinking(다면적 사고)이다.우리는 그동안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공부를 해 왔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정답을 좇아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면 핀잔을 받는 분위기에서는 남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창의성을 키우려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다면적으로 바라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셋째, Embodied Knowledge(체화된 지식)이다.창의력을 발휘하려면 풍부한 바탕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때의 지식은 암기 위주로 얻는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서 얻는 주관적 지식을 말한다. 직접 고민하면서 경험을 통해 얻는 지식은 문제 상황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체험적 지식을 많이 얻어야 한다.넷째, Goal-Oriented Learning(목표 지향 학습)이다.창의성에는 크게 지식, 경험, 기능, 성향 등의 네 가지 영역(Category)이 있다. 이 영역 속에는 24가지의 요인(Factor)이 있다. 이 요인들을 세분하면 다시 114개의 요소(Element)가 있다. 창의성을 기른다는 것은 각 요소들을 자극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기른다고 막연하게 영역이나 요인에 해당되는 큰 덩치에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세부 요소들을 자극하는 목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다섯째, Aha, Product(새로운 산출물)이다.사람은 새로운 것을 생각하거나 놀라운 것을 보게 되면 `Aha!`라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 교육에서도 `Aha!`라는 탄성이 자주 나오게 해야 한다. Aha 경험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에 가 보고, 새로 나온 것과 자주 접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는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본문 p70~71 중에서)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창의성을 길러 줄 수 있을까? 부모라면 한번쯤 고민해 보는 숙제다. 그러나 저자 이용석씨는 창의력이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에게 이미 내재된 힘이라고 강변한다. 이 책에는 생각의 확장을 도와 줄 브레인스토밍, 스캠퍼 기법과 ASIT, 감정 코치법 등 다양한 교육법이 소개돼 있다. 교육법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이 책의 특징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면 언제든 가정에서 간편하게 꾸밀 수 있는 놀이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혹은 가족이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평소보다 조금은 다른 생각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 새 자녀의 상상력이 몰라보게 자라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