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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잔한 삶의 풍경과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맑은 서정의 詩心으로 노래하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2-10 21:28 게재일 2012-02-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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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창비펴냄, 이시영 지음, 156쪽, 8천원

끊임없는 시적 갱신을 통해 치열한 시정신과 문학적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시영 시인의 열두번째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가 출간됐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신작 시집에서 시인은 간명한 언어에 담긴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밀도 높은 단형 서정시, 삶의 애잔한 풍경 속에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진 산문시, 책의 한 대목이나 신문기사를 옮겨 적거나 재구성한 인용시 등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며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현실과 밀착된 “서정시 본연의 깊은 내면성과 높은 심미적 완성도”(염무웅, 추천사)를 갖춘 시편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이전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에서 `인용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그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구호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사실`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시인의 말`)고자 한다.

맑은 서정의 시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인의 관심은 무척이나 너르게 표출된다. 가깝게는, 철거민 다섯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현장에서 “두 대의 경찰 살수차를 온몸으로 막아낸” `유모차맘`(`직진`), 구제역 파동으로 1백여 마리의 소를 살처분해야 했던 한 축산농가의 비극(`고급 사료`) 등 지금-이곳의 참담한 현실을 꿰뚫어보고, 나아가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인도의 어린이노동자들(`어린이노동`),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과 “인간 사냥”이 자행되던 2011년의 리비아 사태(`2011년 2월 24일, 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망원경과 도시락 등을 준비해” 가자지구의 “전쟁 현장을 구경하러” 와서는 `브라보!`를 외치는 이스라엘인들의 비정함(`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 등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야만과 불의,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의 뒷모습을 상기시킨다.

`은빛 호각`(2003) 이후 `인물시`의 한 전범을 보여줬던 시인은 아릿한 기억 속에서 살아숨쉬는 인물들을 다시금 불러낸다.

아침에 나갈 때마다 아내(박용길 장로)에게 “소년처럼 한쪽 눈을 찡긋했다”는 문익환 목사(`조사받다가 남산 수사관들에게서 우연히 들은 말`), 수업 대신에 학교 앞 선술집에서 오장환과 이용악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눈자위가 “촉촉이 젖어”들던 서정주 시인(`시론`), 1973년 지하신문 결심공판에서 “한마디로 좆돼부렀습니다!”라는 최후진술로 법정을 잠시 웃음바다로 만든 김남주 시인(`최후진술`),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 손님에게 예의를 지키라며 소주를 달라고 했던 김지하 시인(`소주 한잔`) 등의 일화는 은근한 미소를 자아내며 이 시집을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더해준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 속에 은은한 사람 냄새와 해학이 깃든 이러한 인물시편들은 한 개인의 자전을 넘어 지난 시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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