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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눌렸던 것이 튀어 오르는 삶의 노래

생의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의 누추한 삶의 풍경을 따스한 감성의 필치로 그려온 문성해 시인의 세번째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창비)이 출간됐다.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도시의 후미진 외곽 지역을 들여다보면서 슬픔조차도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안쓰러운 삶의 순간순간들을 읽어내며 삶의 진면목을 사유하는 존재론적 성찰에 이른다.대상을 바라보는 세밀한 관찰력과 선명한 이미지가 투명한 언어에 실려 반짝이는 가운데 섣부른 수식이나 과장 없이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삶의 다양한 무늬들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며 잔잔한 울림을 자아낸다.문성해의 시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자, “아래로 눌렸던 것이 일순간 튀어오르는”(문태준, 추천사) 듯한 삶의 간곡한 노래이다.시인은 특히 “도시의 외곽에 기계부속품들로 흩어져 살”(`대구`)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이나 “하루 삼만원 일당”의 공공근로에 나서는 여인들처럼 “누구에게 꺾어줄 수도/머리에 꽂을 수도 없는 꽃”(`파꽃`)과 같이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삶을 연명해가는 존재들에게 애틋한 관심을 보인다.“주변과 중심에 대한 예사의 생각을 거역하고 역전시키는 도발적인 상상력”(문태준, 추천사)이 빛나는 문성해의 시는 부정적인 현실을 뒤집는 힘으로 삶의 비애를 뛰어넘는다. 목청을 높이는 법 없이 담담하게 “저녁 기도를 위해 가는 향을 피우는 사제”(`국화차를 달이며`)의 심정으로 “한 방울의 맹독”과 같은 시를 짓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숭고한 시정신을 엿보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0-19

한의원서 겪은 재밌는 에피소드 엮어

포항 한국한의원장인 한의사 김중규씨가 건강에세이 `일도쾌차`(와이겔리)를 펴냈다.`마음까지 치유하는 한의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잘못된 한의학 상식을 바로잡고 한의학의 위치를 되찾기 위한 저자의 20년간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최신 한의학의 다양한 성과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독자에게 친숙한 한의학으로 거듭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에 저자는 실제 한의원에서 겪었던 재밌는 에피소드 위주로 책을 꾸몄다.고스톱 치다 피박 광박에 열 받아 쓰러진 할머니, 임신한 며느리 데리고 와 뱃속에 든 손자를 고추로 바꿔달라는 시어머니, 배트맨 내의 입고 온 양반 어르신, 망사팬티 차림의 순박한 시골 청년…. 여기에다 환자 앞에서 수영복 패션쇼를 하게 된 한의사 때문에 배꼽을 잡다가도, 낡은 왕진가방 들고 무료 진료 가고, 쓰러진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잘못 알고 있던 한의학에 대한 오해가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책 이름 `일도쾌차`는 `한 번의 치료로 완쾌시킨다`라는 의미.저자는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아프면 침 맞고, 뜸 뜨고, 몸이 허해지면 진맥하고 탕약 한 제 지어 먹던 풍경은 낯익은 우리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오늘날 서양의학의 대중성에 밀려, 한의학이 조금씩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다.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한의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최고의 인재들이 연구와 임상을 통해 최신 의료법을 쏟아내고 있는 실용 의학이다. 의료기관 이용자들의 만족도 조사에서 한의원이 수년째 가장 높다는 결과만 봐도 한의학의 실용성은 충분히 입증된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게 한의학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다. 한약을 잘못 먹으면 간이 나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침을 잘못 맞으면 반신불수가 오고, 여름에 한약을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등의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세간에 넘치는 탓”이라고 말한다.`질병을 다스리는 의학`이 아닌 `건강을 유지하는 의학`이라는 21세기 의료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 한의학이 있다는 것.“한의학은 몸에 병이 찾아오기 전, 마음의 병부터 찾는, 병을 다루는 의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 몸이 본래 지닌 자연치유력을 높여 건강을 유지하는 참된 의학”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옛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가장 좋은 의사는 병이 오기 전에 치료하는 의사일 것이다. 개인의 병을 치료하면서도, 시선은 세상의 병을 치료하는 큰 의사가 어디 없나 살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상의 병을 고칠 수 있는 큰 의사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간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책 발간의 의의를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0-12

궁궐로 통해 본 조선시대 제도와 이념

`궁궐, 조선을 말하다`(아트북스 펴냄)는 경북대 건축학부 조재모 교수가 `체제`의 관점에서 궁궐을 탐독한 책으로 궁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체제`란 건축 행위에 전제된 계획 같은 `건축적 요소`와 궁궐의 실제 운영 방식·역사적 변화 같은 `건축 외적인 요소` 모두를 일컫는다.저자는 `어떻게 사용하려고 만들었는가`와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조선의 제도와 이념이 궁궐에서 어떻게 구현됐는를 입체적으로 살핀다.공간 구성이나 배치 등의 건축적 요소가 궁궐의 하드웨어라면, 운영 방식 등의 건축 외적인 요소는 궁궐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1부 `궁궐, 그 복잡한 얼개`에서는 건축을 읽기에 앞서 궁궐 운영을 둘러싼 여러 키워드를 다뤘다. 궁궐의 계획 개념과 운영법이라 할 의례 문제, 의례 속에서 살아간 왕실 사람들의 존재를 살폈다. 2부 `규범과 관습의 타협, 궁궐 건축`에서는 궁궐 배치·공간 구성 등 물리적 실체로서 건축 공간을 이야기했다.1부에서 언급한 의례라는 운영체제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하드웨어가 최적화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례와 궁궐 건축이 주고받는 관계가 2부의 주제이다. 3부 `궁궐을 뒤흔든 욕망`에서는 궁궐 운영의 규범에 균열을 낸 욕망과 그로 인한 건축적 변모를 조망했다. 절대 권력의 취향·근대화·외세의 영향력 등이 궁궐을 변모시킨 요소들이다. 결국 궁궐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규범 바깥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축 공간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가인 저자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답사하며 축적한 풍부한 문헌자료의 해석을 통해 이미 소멸한 건축 유형인 궁궐의 속살을 세세히 살핀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 특유의 안목의 깊이와 새로운 관점을 만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이 책은 단순히 궁궐 건축뿐 아니라 그 건축 뒤에 자리한 정치적 의미를 살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세종의 경복궁 정비를 예치의 차원에서 진단하는 것이나, 성종 대의 대비전 영건을 `대비의 수렴청정에 대한 임금의 도덕적 리액션`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읽는 점 등이 그렇다.또 책 곳곳에서 저자는 문헌이 증언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가설을 제시해 흥미롭다. 제사용 건물이나 빈전이나 혼전으로 오랜 기간 사용된 편전 전각에 복도각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복도각이 제사의 형태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 등은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해 새로운 학문적 해석의 가능성을 남긴다.무엇보다 북경의 자금성이나 교토 어소 자신전의 기타비사시, 베트남의 후에 궁궐 등 동시대 동아시아 궁궐의 고찰을 통해 조선 궁궐의 특징을 규명하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궁궐은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당대 건축 기술과 운영 이념이 집약된 매력적인 공간이다. 문화재청이 `문화가 펼쳐지는 궁궐, 역사가 숨 쉬는 궁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3년간 312억원을 투자해 선보이는 대규모 사업 또한 궁궐을 중심으로 역사를 읽으려는 맥락일 테다.하지만 궁궐에 대한 무수한 자료 속에서 단지 궁궐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시선은 그 시대의 도시와 건축을 둘러싼 제 문제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0-12

“개인의 고향은 범인류의 에덴과 같아”

인간은 원래 자신이 어떤 영원하고도 완전한 세계, 그러니까 천국이나 극락 혹은 선경(仙境) 같은 곳에 살았거나 혹은 살고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가 이 지상에 유배돼 이렇듯 불완전한 삶을 영위한다는 생각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 집단 혹은 인류가 지닌 어떤 보편적 상상력으로까지 확장될 경우 우리는 일컬어 그것을 낙원상실의 원형상징이라 부른다.포항지역 원로 시인 서상은(77·사진)씨가 최근 펴낸 시집 `호미곶 아리랑`(고요아침)은 이같은 낙원상실의식이라는 원형상징이 그 중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 작품들은 이 원형상징의 파생물로서 각자 유기적 체계를 형성해 전체 문학의 의미망을 엮어내고 있는 듯 하다.서씨의 시집은 시간적인 차원과 공간적인 두 가지 관점에서 낙원상실의식이 내면화 돼 있다.시인에게 있어 시간적 차원의 낙원상실의식은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의 의식 속에서 유년시절이란 한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시기로 각인돼 있는데 그런 까닭에 현재 그가 성인이 돼 세속적 삶에 골몰케 된 것은 바꾸어 말해 완전한 삶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즉 개인사적으로서의 그의 유년은 인류사적으로는 일종의 신화시대에 비유돼 마치 그 신화시대에 에덴이 있었듯 그의 유년에 한생의 가장 순수무구한 영원성이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초가집 저녁연기타오르는 냄새마구간 여물향기산 그림자 묻어오는당신의 발자국 소리윙윙 개 짖는 소리장작 패는 소리산울림으로 번져가고초승달 비친어머니 얼굴다듬이 소리로익어가는 저녁”`산촌이 익어간다` 전문그의 유년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을지는 모르나 성인의 삶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갈등과 탐욕과 이기적 생존경쟁을 초월한 어떤 사랑과 축복이 가득 넘치는 시기였다.`초가집 저녁 연기/타오르는 냄새/마구간 여물향기`라는 묘사를 통해 그의 유년이 또한 아름답고 순결하고 무구한 삶의 어떤 원형의 하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에게 있어서 유년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행복한 시기인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년이 되어 이 유년의 행복을 상실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 시집의 수록 시들이 대부분 이렇게 그가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러므로 서씨에게 있어서 공간적 차원의 낙원상실의식은 당연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출된다.시간의 축에서 그의 삶의 낙원이 유년이었다면 공간의 축에서 그것은 고향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향이란 그 누구에게나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다. 그것은 그 곳이 어머니가 항상 주거하고 있으며 공간, 자신의 생명이 잉태되고 자신의 목숨이 무보수의 사랑 속에 길러진 공간이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0-12

같은 처지에 놓인 자들이 보여 준 호의의 소중성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과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은 서유미(37)의 소설집 `당분간 인간`(창비)이 출간됐다. 서유미는 그간 세편의 장편소설을 통해 동시대 인간 군상의 꿈과 욕망, 일상의 풍경을 솔직하고 날렵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그려내왔다. 그런 한편으로 지금껏 꾸준하고 성실하게 발표해온 단편들은 작가가 다양한 모색과 변화를 통해 그와는 또다른 매력을 지닌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의 소설은 우선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스노우맨`은 폭설을 뚫고 출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기록적인 폭설로 온 도시가 파묻혀 집 안에 꼼짝없이 갇힌 재난 상황에서도 남자는 직장에서 뒤처질 것 같은 불안에 떠밀려 출근을 감행한다. 홀로 삽 한 자루를 들고 갖은 애를 쓰며 앞으로 나아가보지만 출근길은 여전히 멀고, 부장은 태연하게 출근을 재촉한다. 남자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책하며 다만 막막한 삽질을 계속한다.`저건 사람도 아니다`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여자는 비밀리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로봇 도우미`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숨통이 트이는 것도 잠시, 완벽한 능력을 지닌 로봇 도우미에게 밀려 어느새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로봇 뒤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삽의 이력`의 남자는 도시개발의 기초작업이라는 명분으로 무작정 공터에서 구덩이를 파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구덩이를 파는 족족 다음날이면 말끔히 메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다른 남자 역시 똑같은 이유로 무작정 구덩이를 메우는 업무를 맡고 있었던 것. 하지만 두 남자 모두 각자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무의미한 `삽질`을 멈출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된다.일과 육아에 치여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출근이란 재앙을 헤치고 살아남는 일과 다를 바 없으며 생활을 위해 하루하루 반복해야 하는 일은 실은 아무런 의미 없는 삽질과도 같다. 그러니 이 모든 것에 지쳐 온몸이 한없이 물렁해져 퍼져버리거나 굳어서 산산이 부스러진다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그처럼 우리는 모두 인간이지만 `당분간`만 겨우 `인간`으로 버텨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사방이 완강하게 막힌 이곳에서도 가냘프나마 따뜻한 온기가 존재한다. `그곳의 단잠`에서 고층아파트에 사는 K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반지하방에 사는 L은 폐소공포증 때문에 똑같이 날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서로 형편과 처지가 같지 않지만, 우연히 만난 K와 L은 어느새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의 방을 번갈아 찾으면서 오랜만의 단잠을 누리는 단짝이 된다. 이처럼 팍팍한 생활 속에서 다르면서도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주고받는 작은 호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는 것이 서유미의 소설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0-05

동서양의 정신 포괄 `제3의 정신` 수록

서울대 철학과 김상환 교수사진의 신작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헤겔 만가`(문학과 지성사)가 출간됐다.`현대의 지성`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은 서양 철학에 대한 단순 개괄이나 잘 정리된 해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철학자 김상환의 본격 이론서로, 저자는 이 두툼한 한 권의 책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철학적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전작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를 통해 동서 사상사를 꿰뚫는 새로운 관점으로 “계사 존재론”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철학적 행보를 시작한 김상환의 논의는 이 책에서 한층 더 확장되고 심화됐다.이와 같이 동서양의 정신을 포괄하는 제3의 정신을 찾는다는 저자의 야심찬 기획은 단순히 자생적 철학을 일구어내겠다는 저자의 개인적 야심이 아닌, 문명사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시대정신의 발로다.저자는 모든 것이 동요하고 기존의 질서가 뒤얽히며 미증유의 변화를 겪는 이 시대가 인문학이 처한 위기인 동시에 “미래의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저자의 귀에 오늘날 인문학자들에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시대적 요구는 진짜 철학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요구, 다름 아닌 `나는 철학자다`에 참여하라는 요구처럼 들린다. “지식생산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나 비판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현재의 인문학에서 벗어나, 인문학의 존엄을 직접 증명해 보이라는 요구.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철학자 김상환의 적극적인 응답이다.그동안 꾸준히 동양과 서양의 사유를 아우르며 양자를 뛰어넘는 새로운 길, 제3의 정신을 모색해온 김상환의 문제의식은 이번 책에서 더욱 깊이와 밀도를 더했다.동서양의 사유를 상호 번역하는 수준과 그 폭도 변화를 겪었으며, 한편에 플라톤 이래의 서양 전통 철학과 해체론의 흐름이, 다른 한편에는 `주역`에서 발원하는 동양 사상의 전통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짜인 텍스트는 더욱 촘촘해졌으면서도 더욱 넓은 외연을 망라한다.600여 쪽의 두께에 담긴 밀도 높은 열일곱 편의 글들은 저자의 깊이 모를 사유의 폭과 그 진정성을 짐작케 한다.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인문적 상상력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인간, 언어, 역사 등 인문학의 구심점을 이루는 사태들에 대해 두루 언급하는 한편, 이 사태들을 상호 교차 및 삼투시키면서 새로운 인문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이 책의 부제가 `헤겔 만가`인 것은 헤겔의 역사적 위치 때문이다. 20세기 후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탈서양 담론이나 탈근대 담론은 헤겔 철학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한 만가였다.이번에는 우리의 자생적 인문학 담론이 그 상여를 대신 멜 차례가 됐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인식이다. 그것은 “서양의 정신을 절대화하기 위해 동양의 정신을 살해, 애도, 매장했던 장본인”이 바로 헤겔이었으며, 이후 서양의 해체론이 향하는 듯 보이는 철학의 동쪽이 실은 서쪽의 서쪽이었다는 자각에서 비롯됐다.동서양 사상을 포괄하며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문주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는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대과(大過)시대`라 명명할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주역`에서 끌어낸 시대진단으로 “어떤 안정된 척도로 질서가 조직되는 시대가 아니라 척도 자체가 흔들리고 굴절되는 시대, 위대한 개혁을 기다리는 과도기”의 시대를 일컫는다.물질적 풍요가 기술적·정신적 풍요로 이어지며 마침내 기존의 제도적 질서를 초과하는 시대로, 다시 말해 “새로운 인문적 교양의 탄생”이 요구되는 시기인 것이다.저자에 따르면, 인문적 상상력의 발원지인 인간의 내면성 혹은 내면적 인간성은 홀로 발아할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사람(대타자) 옆에 서야만 비로소 자기 고유의 차원을 획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문적 상상력은 “엄마 곁과 같이 세계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가늠할 수 있는 어떤 원초적인 장소를 찾고 또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양 인문주의의 역사적 기원에 있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그런 장소를 고전 문헌에서 찾았으며, 동양 인문주의의 역사 또한 철두철미 고전 주석의 역사였다.그것은 바로 전승되는 위대한 언어야말로 엄마 곁과 같은 장소, 나아가 인간 일반의 곁일 수 있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0-05

삶을 리셋하고 싶은가? 아직 늦지 않았다

▲ 김난도 교수대한민국에 멘토 열풍을 몰고 온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가 신작 에세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오우아)를 펴냈다. 청춘의 불안을 지나 세상 속에서 뜨거운 볕을 맨몸으로 견디며 흔들리고 있는 어른아이들, 어른이라 불리는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당신은 어른입니까”라는 질문의 무게에 관해 이야기한다.이번 신작에서 김난도 교수는 사회초년생들이 힘겨워하는 문제와 딜레마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함께 고민한다.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어른아이의 삶은 시련과 상처투성이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을 그만두고 `진짜 꿈`을 찾아가겠다며 축 처진 어깨로 찾아온 제자를 돌려보내고, 그는 편지를 쓴다.아무래도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했지? 황금 같은 대학생활을 다 바쳐 들어간 회사가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고….이밖에도 월급, 이직, 연애, 결혼…. 어른의 삶에는 무수한 화두와 갈림길 들이 출몰한다. 사회에서 `동료`가 아닌 `친구`를 만들려다간 뒤통수 맞기 십상이라는데, `어른끼리 친구`하는 게 정말 가능할까? 결혼은 언제, 어떤 사람과 해야 행복할까? 아니 결혼은 꼭 해야 할까? 어렸을 땐 안 그랬는데, 자꾸 남보다 더 서먹해지는 가족관계는 어떻게 해야 풀 수 있을까?이런 문제들에 대해 `란도샘`은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안정적이지만 갑갑했던 삶을 살다가 그간 손에 쥐고 있던 기득권을 놓아버리고 전격적으로 인생 `리셋`에 성공한 친동생의 사례를 들려주기도 하고, 갈팡질팡 헤매고 아파했던 자신의 `초보 어른`시절을 되새기며 각자 `나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면 1m를 갈 수 있는 애벌레가 죽기 전에 10km를 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열심히 몸을 꿈틀거려야 할까? 아니다. 리셋해야 한다. 나비로 변해 훨훨 날아가야 한다.연연하는 것을 놓아버리면, 삶은 가슴 벅찬 도전이 된다. 삶을 리셋하고 싶은가? 아직 늦지 않았다.김난도 교수는 이런 절대적인 좌절의 순간, 자신의 인생을 일으킬 마음의 주문으로 `아모르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를 꼽는다. 가난과 고독과 가족의 붕괴 앞에서 그에게 절박한 호소를 보내오던 한 여학생에게 들려주었던 말. 그리고 암에 걸린 어머니와 돈 걱정에 짓눌려 비뚤어져버린 형과 아버지 사이에서 가까스로 견디다 자신의 건강까지 상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싶습니다, 버티고 싶습니다, 버티고 싶습니다….`라고 울먹`이던 한 남학생에게 눈물로 건넨 말, 아모르파티.이번 신작에서 청춘 이후 좀더 복잡해지고 난감해진 `어른아이의 삶`에 건네는 그의 멘토링은 더 깊어졌고,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건네는 조언은 곡진하다./윤희정기자

2012-09-28

언론경험·강의 교재로 저널리즘 윤곽 그려

지금은 메타저널리즘(meta-journalism)의 시대다. 인터넷 등장 이후 배타적으로 구획된 개별 미디어만의 저널리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신문, 방송, 온라인, 소셜미디어로 이어지는 다세대의 저널리즘이 함께 협력하고 경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신문, 방송의 뉴스와 정보를 온라인이 이어받고 온라인의 뉴스와 정보를 신문, 방송이 확대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저널리즘은 이들 전체를 하나의 경계, 하나의 범주로 바라봐야 한다. 동시에 서로 이질적인 개별 저널리즘들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언론인 박진용씨가 최근 펴낸 `메타저널리즘(한울아카데미)`은 정보화시대의 언론 종합입문서로 기획됐다.저자의 언론경험과 기존 강의 교재들을 바탕으로 현대 저널리즘의 전체 윤곽을 그려보고자 했다. 성격적으로는 현업 언론인들과 예비 언론인들을 위한 교양서나 언론 실무서의 범주에 있다.학술적 형식이나 이론적 바탕에 구애되지 않고 언론인의 시각으로 서술했다. 저술의 주안점은 3가지다. 먼저 별개로 존재하던 신문·방송·온라인·소셜미디어 저널리즘을 함께 모았다. 통합 뉴스룸과 OSMU(one source multi-use) 보도제작 체제가 일반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둘째는 언론 핵심지식을 실용적으로 정리했다.예비 언론인들이나 현업 언론인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추리는 데 중점을 뒀다. 셋째는 대학 예비 언론인 교육이나 교양교재로 활용될 수 있게 했다. 언론 교재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저널리즘의 현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하지만 현장과 학습의 괴리를 줄여 교재의 현실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일상적 과제가 되고 있다. 교재의 시대성을 조금이나마 개선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책은 2부 10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 제5장까지는 저널리즘 일반편(Macro-journalism), 제2부 제10장까지는 저널리즘 분야편(Micro-journalism)이다. 제1부에서는 언론직 종사자라면 꼭 알아야 할 큰 범위의 언론이론 및 실무지식을 소개하고, 제2부에서는 신문·방송·온라인·소셜미디어 저널리즘을 분야별로 서술했다.책 전체나 각 장은 저널리즘의 큰 흐름이나 양상을 제시한 뒤 세부적인 사항들을 부연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상식성이나 언론 현장의 실용적 가치를 우선했다.책의 구성에서 전통과 온라인, 직업 저널리즘과 시민 저널리즘, 언론매체와 이용자를 병립되는 개념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다. 저널리즘의 패러다임 변화를 수렴해보려는 의도에서다. 책은 또 게이트키핑, 취재, 기사 쓰기, 언론윤리에서의 오류들을 일관되게 조명하고 있다. 언론활동의 1차적 목표가 오류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저자 박진용씨는 1975년 매일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사회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거친 뒤 2009년 1월까지 33년여 근무한뒤 퇴직했다. 퇴임후 4년째 영남대 언론정보학과에서 저널리즘, 홍보론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기자학입문`, `실전기자론`, `언론과 홍보`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28

뇌의 원리로 30년 젊게 사는 비결 제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79) 박사가 뇌의 원리로 30년 젊게 사는 건강 비결을 담은 새 책 `이시형처럼 살아라`(비타북스)를 내놨다.이시형 박사는 이 책에서 자신이 40대 후반에 겪은 건강상의 위기와 이를 극복하고 현재 `80 중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만든 `트리밍 프로그램`을 전한다.트리밍 프로그램은 이 박사가 몸소 실천하고 경험한 실천지침과 뇌과학적 지식, 각 분야 전문의의 총체적 결과물이다.특히 이 박사는 무의식중에 우리 몸을 병 들게 하는 하루하루의 생활습관에 주목한다. 생활습관 의학연구회를 조직해 각 분야 전문의와 함께 연구해온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활용한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방법을 선보인다.이 박사는 생활이 무너지고 몸이 망가지면서 보내오는 신호에도 “이 정도 쯤이야” 하고 가볍게 넘기는 미련함이 암,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무서운 생활습관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병을 키우는 고질적인 습관도 뇌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쉽게 바꿀 수 있다. 바로 습관 개선의 열쇠, 트리밍의 7가지 황금률을 통해서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습관, 그 습관 형성의 비밀을 쥐고 있는 뇌의 원리까지. 뻔한 건강상식과 유행처럼 변하는 건강법칙을 뛰어넘는 우리 몸과 마음의 숨겨진 원리를 알려준다. 이 박사가 트리밍 프로그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과 방어체력 향상이다. 그가 지금처럼 `80 중년`이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는 비결, 남보다 30년 젊게 사는 비결은 바로 트리밍에 있다. 트리밍은 신체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을 다듬어 나가자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이다. 하루의 생활리듬을 다듬고, 운동은 물론이고 식사, 영양 생활을 균형 있게 조율하고, 자세도 다듬고, 적정 체온을 유지하면서 마음도 다듬는 전체적인 조율 활동이다. `마치 조각하듯 정성스레 내 몸을 다듬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생활 전반에 걸친 정리 작업이다. 몸을 가꾸고 다듬는 일은 내 삶을 다듬는 일이다. 그게 생활습관이다.이 책에서 제시하는 `습관을 바꾸는 트리밍 황금률`은 뇌의 원리가 고스란히 반영된 습관개선의 원칙들이다. 이 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억지로, 뇌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도 저절로 습관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이시형 박사, 본인이 겪은 몸의 변화와 선마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완성된 트리밍 프로그램은 `허리둘레 5cm 줄이기`를 1차 목표로 삼는다.이 박사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허리둘레 5cm만 줄여도 대사증후군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생리적 지표가 정상방향으로 변화해 나간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한줌씩 털어넣는 각종 약을 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또한 이 책은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습관을 `트리밍`할지 상세한 지침도 담고 있다.매일 일정한 패턴의 리듬습관과 걷는 것을 생활화하는 운동습관, 천천히 먹고 과식하지 않는 식습관, 여유와 평화, 불필요한 욕심을 가지치기 하듯 버리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마음습관 등을 3일, 3주, 3개월 과정으로 자기 습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1주일 단위로 실천사항을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28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 맞아친딸 `불필 스님` 회고록 발간

▲ 성철 스님의 친딸인 불필 스님.불교계의 큰 어른 성철 스님(1912~1993) 탄생 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친딸인 불필 스님(75)이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김영사)를 발간했다.회고록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사와 성철 스님 법문을 비롯해 은사 인홍 스님 등 선지식과의 인연이며 불필 스님 자신의 수행 과정이 들어 있다.특히 그동안 개인적으로 소장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성철 스님의 법문과 편지, 사진 자료들을 실었으며, 과거에 가필된 형태로 발표됐던 성철 스님의 친필 법문 노트를 원문 그대로 담아 눈길을 모으고 있다.불필 스님은 아버지 성철 스님의 권유에 따라 1957년 출가한 뒤 철저한 수행을 해왔으며 지독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치열한 수행 인생을 이 책에 압축했다고 밝혔다.해인사 산내암자 금강굴에 주석중인 불필 스님은 이 책을 통해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멀리 있어야 했던 아버지 성철 스님의 가장 철저했던 동시에 너무나 자비로웠던 참모습을 드러낸다.성철 스님을 한 번도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한 불필 스님의 고백은 절절하다. 뱃속에 있을 때 출가한 아버지를 13세에 찾아가 외면당한 뒤 그리움에 사무쳐 18살 때 두번째 만남에서 불필(不必,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이라는 법명과 수행을 위한 법문 “행복은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이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자신도 출가한다.“죽을 힘을 다해 정진하라”고 가르쳤던 아버지의 유일한 부정에 따라 50여년 구도의 길을 걸은 불필 스님은 성철 스님이 열반한 후에도 영결식과 다비식에 나가지 못했다. 세인의 시선 때문에 다비식에 가지 않고 산너머에서 9번 절만 했던 불필 스님은 “생사의 바다에서 마음의 눈을 바로 떠서, 영원한 대자유인으로서 성철 스님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다짐한다.현재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수장으로 당당히 서있는 불필 스님은 이 책에서 인홍 스님, 법전 스님, 향곡 스님, 묘엄 스님, 법정 스님 등 대가들의 성자 같은 삶도 고스란히 녹여 냈다.불필 스님은 책의 말미에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를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진정한 메시지를 전한다. “무소유의 삶과 용맹정진”을 세상사람들에게 당부하고 떠났던 아버지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느껴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21

지도로 보는 `日 삿포로 이야기` 재미 쏠쏠

문학을 통한 아시아의 소통과 유대를 목표로 하는 한·영 대역 문예지인 계간 `아시아(ASIA)`가 통권 제26호 2012년 가을호를 펴냈다. `스토리텔링 아시아`를 표방하는 이번호는 아시아 각국의 도시를 현지 작가와 국내 작가의 `이야기 지도`로 소개한다.지난 봄호 하노이를 시작으로 여름호 상하이, 이번 가을호에서는 일본 삿포로를 찾아간다.우리에게 눈의 도시, 맥주의 도시로 익숙한 삿포로는 일본 북단의 섬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본래 홋카이도는 `인간`이라는 뜻의 아이누 선주민의 땅이었다. 하지만 홋카이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발판이 되는 내적 식민지 개척이 시작된 곳이다. `스토리텔링 아시아` 삿포로 편에서는 설국 너머 존재하는 일본 식민주의의 기원과 미우라 아야코, 아리시마 다케오, 고바야시 다키지 등 홋카이도 삿포로가 낳은 문인들도 소개한다.더불어 김연수, 김윤식, 김남일 등 한국문인들과 삿포로 사이의 특별한 인연도 만날 수 있다. ◇이야기 지도 1 _ 문장으로 그린 조감도김경원이 제시하는 키워드들 이를테면 눈, 후루카와 강당, 홋카이도대학, 영화 `북쪽 나라의 0년`, 클라크 박사, 포플러, 삿포로의 근대 건축물, 이시카와 다쿠보쿠, 아리시마 다케오 등은 삿포로 탐험 길잡이의 핵심 키워드들이다. 김경원이 꼽은 키워드들은 삿포로를 가로지르며 `식민지의 무대`로서 삿포로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이야기 지도 2_ 이야기 박물관홋카이도에서 탄생한 문학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구조적 명료성과 만만치 않은 삶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아이누 민담 네 편을 읽는 재미는 각별하다. 홋카이도가 낳은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토 세이의 시 `눈 오는 아침`과 `눈빛 밝은 밤에 오는 사람`은 홋카이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눈을 순백의 서정으로 담아냈다.유다 가쓰에의 `모래는 모래가 아니고`는 삼선 조난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비극을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게 형상화한 소설이다. ◇이야기 지도 3_ 홋카이도와 문인들홋카이도 문학 지도를 보고 싶다면 가미야 다다타카가 쓴 글을 주목하자.가미야 다다타카의 글 `홋카이도 삿포로의 문인들`에서 홋카이도가 낳은 작가들과 그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문인 연표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아리시마 다케오, 미우라 아야코, 이시카와 다쿠보쿠, 와타나베 준이치 등 홋카이도뿐 아니라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많은 작가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특히 우리에게는 `빙점`으로 친숙한 미우라 아야코가 결혼 전 마에카와 다다시와 나눈 정갈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대중소설 작가로 알려진 미우라 아야코 삶의 이면을 엿보게 한다.◇이야기 지도 4_ 그늘의 힘삿포로의 어두운 과거와 원전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대립을 어떤 양상일까.치리 마시호는 `아이누의 문학, 신요(神謠)`에서 소멸 직전의 아이누의 문학 신요, 즉 유카라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모리야마 군지로의 `땅속에 버려진 사람들`은 홋카이도 광산촌에 반강제적으로 끌려와 혹독한 노동 끝에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글이다.북한의 납치 사건은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선조들이 저지른 조선인 상대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일본인들의 모순된 피해자 의식을 지적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오오바 가즈오의 `오오마에 원자력발전은 필요 없다!`는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후안무치한 국가와 전력 회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담고 있다.◇이야기 지도 5_ 삿포로의 이방인김연수, 김남일, 김윤식, 이경재 한국의 문인들의 눈을 통해 삿포로를 살펴본다.김연수는 `지금은 없는 사람들의 땅, 홋카이도`에서 삿포로에서의 강연 경험을 들려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 `쓰시마 유코나`를 통해 `인공적인 섬`, `현실적인 섬`, `역사적인 섬` 세 가지 빛깔의 홋카이도를 발견하게 된다.김남일의 글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이 1980년대 한국문학과 만나던 순간의 내면 풍경을 그려냈다. ◇또 다른 이야기`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박민규의`버핏과의 저녁식사`(`현대문학`2012년 1월호)를 영어로 번역해 싣는다. 해외 독자들에게 발 빠르게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수작을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한다.강연호의 시 `빈방`과 `자필 이력서 쓰는 밤`은 한국 시단이 최근에 획득하고 있는 새로운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정은경과 이경재는 아즈마 히로키와 사사키 아타루의 최근작을 꼼꼼하게 고찰한 서평을 썼다. 쉬쿤의 단편소설 `굿모닝, 베이징`은 시골에서 온 친척들에게 베이징이라는 거대 도시를 가이드 해야 하는 주인공 저위안의 곤혹스러움을 익살스럽게 그려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21

“시조는 누구나 쉽게 다가가는 친밀한 형식”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데이비드 매캔(David McCann) 교수의 영어 시조집 `도심의 절간`(창비)이 출간됐다. 데이비드 매캔 교수는 국제 학계에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오랜 세월 한국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김소월, 서정주, 김지하, 고은, 김남조 등의 작품을 손수 번역하여 소개하고, 한국문학 전문지 `진달래`(Azalea)를 창간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또한 미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조 창작대회나 각종 강연활동을 통해 한국문화를 대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도 힘써왔다.여느 한국인보다도 더 시조를 잘 알고 아끼는 이 벽안의 외국인은 1960년대에 평화봉사단 활동차 안동에 머물렀던 것이 인연이 되어 한국시와 시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도심의 절간`은 시조를 향한 그의 오랜 애정과 탐구의 결실을 모은 시조집이다. 영어로 지은 시조를 우리말로 번역한 뒤 한영대역으로 나란히 실어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한 시조들을 비교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매캔 교수는 애정 어린 눈으로 시조를 읊고 전하는 감상자일 뿐 아니라 본인 역시 어엿한 시인으로서, 시조를 영시의 한 형식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스스로 영어 시조의 형식을 탐구하고 창작함으로써 언어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시조, 그리고 한국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매캔 교수는 서문에서 시조는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국 만리에서 온 한국말이 서툰 젊은이를 사로잡을 정도로 강렬하고 친밀한 형식이라고 말한다.낯선 언어로 씌어진 시조는 시조의 고향인 한국의 독자들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 비치겠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 여느 한국시 못지않게 친숙하게 느껴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14

한국 정치문화 양극화 두드러져 합의 없어도 논쟁있다면 `건강`

올해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며 드러난 한국의 정치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 양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오랫동안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오는 남북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과 동서로 나뉜 지역감정이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다면, 여기에 더해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로 편을 갈라 싸우는 이전투구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의 정치현실이다.첨예한 대립과 적개심은 있되 공적인 논쟁이나 원칙은 찾아보기 힘들고,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는 상대방의 말과 태도를 문제 삼는 경우가 태반이다.정치가들뿐 아니라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치 쟁점을 둘러싼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렇듯 자치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상대를 정형화하고 상호 비난과 경멸을 반복하는 일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다수의 횡포뿐이다.이런 정치적 악조건 속에서 민주주의가 그 가치에 가깝게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새로운 정치 토론을 위한 원칙`(문학과 지성사)에서 저자가 대면하는 문제의식이다.▲ 작가 로널드 드워킨이 책의 저자 로널드 드워킨은 미국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치적 분열을 본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너른 합의만 있다면 심각한 정치적 논쟁 없이도 건강할 수 있다. 또 합의가 없더라도 논쟁 문화가 있다면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깊고 쓰라린 분열만 있고 진정한 논쟁이 없다면, 다수의 횡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이렇듯 존 롤스의 뒤를 잇는 가장 권위 있는 법철학자이자 진보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현실 문제에 대해 비중 있는 발언을 해온 실천적 지식인, 그러면서도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저자로 잘 알려진 로널드 드워킨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고도 강력하다.과도한 정치적 양극화의 조건에서는 공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있을 수 없고, 그런 논쟁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정치적 양극화란 공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혹은 과도한 파당적 경쟁만이 지배하는 정치를 가리킨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9-14

현대인, 사마천에 길을 묻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힘든 세상이다. 여러 복잡한 관계와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초인에 가까운 힘이 필요할 때도 있다.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싸워나가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지침으로 갖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른다.중국 한나라 무제 때의 역사가 사마천이 기원전 90년에 펴낸 역사서`사기`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 책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동양의 대표적 고전이다.중문학자 김원중 교수가 사마천의 `사기`중 `열전`을 번역한 `사기 열전`(민음사)은 `교수신문`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최고 번역서로 선정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김원중 교수의 번역은 “이해하기 쉽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며, `사기`의 원래 의도를 존중해 어감을 살려 번역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기 열전`이란?`사기`는 상고 시대부터 사마천이 살던 한 무제 때까지 중국 역사를 다룬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중국 역사의 전범(典範)이자 역사서의 궁극으로 일컬어지며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사기`는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열전`은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한 인물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때로 계급을 초월해 기상천외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왜 `사기 열전`은 인간학 교과서인가?`사기 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사마천은 되도록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우선적으로 고르고 거기에 평가를 더했다. 독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러지 않은 자는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심지어 어떤 인물의 행동에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으면 아예 그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전기에 집어넣기도 한다.진나라 말기에 권력을 휘둘렀던 환관 조고(趙高)의 경우, `이사 열전` 등 다른 사람들의 `열전`을 통해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번역 김원중 교수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한 그 당시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서(經書)와 제자서(諸子書)들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도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기 열전`의 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또 독자에게 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에 놓은 경우도 많다.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인물에 대해 나열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주는 특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열전의 두 번째 편인 `관안 열전(管晏列傳)`을 보면 관중과 안영의 생애 서술은 철저히 무시되고, 그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두 일화만 소개한다. `중니 제자 열전`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은 후반부에 이름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저자 사마천(기원전 145년~ 90년)`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했던 이릉을 변호하다 한무제로부터 노여움을 받아 궁형(宮刑)을 당한 인물이다.궁형은 남자의 생식기를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이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치욕과 고통 속에서 영원한 고전을 잉태했다. 고통 속에서 한 줄 한 줄을 꾹꾹 눌러 썼기에 `사기`는 단어 하나 행간 한 줄에도 저자의 깊이가 담겨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14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진 슬픔…

지난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이후 두권의 시집을 통해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최근 국내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오른 진은영 시인사진의 세번째 시집`훔쳐가는 노래`(창비)가 출간됐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선보인다.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그 머나먼`외 5편(`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훔쳐가는 노래` `망각은 없다`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오래된 이야기`)을 비롯해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깃든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언어와 감각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표현들로 정제된 총 50편의 시편이 저마다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나머지는 물//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붉은 물이 스민다/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세상의 절반`전문)`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창작과정의 문제로 고민해온 진은영 시인은 “아름답고 동시에 정치적인 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시인”(신형철)으로 꼽힌다.2000년 이후 등단한 많은 젊은 시인들이 그렇듯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무엇`과 `어떻게`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문학적 글쓰기와 현실정치의 간극 속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삶의 한 지점에 발을 딛고 선 시인은 타성의 울타리 안에 갇힌 관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고착된 시선을 거두고 진실에 가까운 삶의 실체를 보고자 한다.가까이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멀리 있는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 시인은 “어떤 이야기가,/어떤 인생이,/어떤 시작이/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름답게 시작되는 시`)를 생각하며, “가장 낡은 변두리에서 흘러나오는 더운 하수 같은 노래”가 흐르고 “미로처럼 생긴 거리들에서 일제히 떠오르는 빨간 풍선 같은 소망”(`Bucket List`)이 이루어지는 `혁명`과 `철학`의 세계로 시야를 넓혀간다.사회참여와 감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시적 화법에 “시의 정치성에 대한 자신만의 오랜 고민”(함돈균)을 담아온 시인은 동화적인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접합하여 국가폭력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살인자`가 오히려 당당하게도 버젓이 “살인의 장소”를 점령하는 오늘의 현실을 환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07

3·1운동~4·19혁명까지 한 촌락이 겪은 수난·항거 그려

1977년에 출간된 이래 오랫동안 민중문학의 전범(典範)으로 자리매김해온 송기숙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창비)가 새롭게 출간됐다. 송기숙은 한국 현대사의 엄혹했던 시절과 정면으로 맞서온 작가다. 치열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으며, 특히 동학농민운동을 장구한 이야기로 풀어낸 대하소설 `녹두장군`,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장편 `오월의 미소`등 깊이있는 역사의식과 토속적인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담긴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며 민족문학의 중추 역을 담당해왔다. 그의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는 3·1운동 전해(1918)부터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쳐 4·19혁명(1960)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한 촌락이 겪은 수난과 항거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 민중문학의 역작이다.작품의 배경은 전라도의 어느 벽지인 `자랏골`이다. 순박하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자랏골은 물론 인근 지역의 제일가는 유지인 이양문 일가의 존재이다.이양문은 일제 치하에선 일본의 비호 아래 위세를 떨치고, 해방 이후엔 자신이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대왔다는 거짓말과 국회의원 아들의 위세에 힘입어 자랏골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소설은 자랏골 최고의 명당자리에 이양문이 자기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자랏골의 주민들로서는 동네를 굽어보는 명당에 사욕을 위한 묘가 자리잡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일제시대엔 묘의 이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일본 헌병과 순사들이 잔혹한 폭력으로 진압하고, 한국전쟁 때는 이 묘가 국군과 인민군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구실이 되며, 전후 자유당 독재시기에 이르면 이양문과 마을 주민 간의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의 상징으로 기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07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는 현재 중국어권 최고의 작가인 위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장편소설 `형제`이후 4년 만에 쓴 것이다.`형제`에서 보여준 중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이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위화는 미국 퍼모나 대학에서 당대 중국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됐는데, 그 강연의 원고를 준비하며 이 책을 썼다.책은 이미 미국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10여 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됐다. 중국어판은 지난해 1월 타이완에서 출간됐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현재까지 출간이 불가능한 상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중국 정부 당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이 책의 원제는 `열 개 단어 속의 중국(十個詞彙中的中國)`이다. 저자는 인민, 영수(領水),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등 열 개의 단어 속에 중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열 개의 단어를 열 쌍의 눈으로 삼아 열 개의 방향에서 중국을 응시하는 책`이다.저자는 이 책을 두고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굴지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 사회의 “뿌리와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첫번째 글 `인민`에서 위화는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개혁개방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 급작스레 중국 전역을 뒤흔든 민주화 운동인 톈안문 사건을 회고하며, 그것이 중국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어떤 전환점이 됐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톈안문 사건을 통해 “문화대혁명 이래로 누적되어온 정치적 열정이 마침내 깨끗이 발산”되었으며 “그 뒤로는 부(富)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정치적 열정을 대신했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돈을 버는 데 집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90년대의 경제적 번영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열정을 목격하며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영수`에서 `영수`는 다름 아닌 현대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이다.이 글에서 위화는 오늘날 중국 사회 한편에서 불고 있는 마오쩌둥 부활 움직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심리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는 “마오쩌둥 사상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전 세계에 갈수록 그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며 “전 세계 수많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마오쩌둥이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차이`는 오늘날 중국 사회를 규정하는 중요한 단어다.`차이`에서 위화는 오늘날 중국이 “현실과 역사의 거대한 차이 속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커다란 꿈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발전 등 해결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은 장밋빛 중국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07

동양적 수양과 명상·금언으로 가득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란 뜻으로 중국의 경전과 사서, 제자백가, 문집 등에서 가려 뽑은 주옥같은 200여 단장들의 모음이다. 작지만 작지 않은 이 책엔 동양적 수양과 명상, 의미 있는 삶의 실천을 위한 금언으로 가득하다.김원중 건양대 교수가 펴낸 `명심보감-시공을 초월한 인간관계론의 성전`(글항아리)은 `명심보감`의 전편을 모두 번역하고 각 편에 간단한 해제와 소제목을 덧붙이고 문장의 말미에 간략한 해설과 관련 인물이나 책들에 관한 보충설명을 각주로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명심보감`은 저자와 판본 문제가 복잡한 책 중의 하나이다. 국내에는 주로 추적이 엮은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의 원저자는 중국 나라 초기의 인물 범립본이다.`명심보감`은 원래 범립본이 상, 하 20장으로 지은 책이다. 원말 명초의 인물인 그는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은둔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다 1394년 `명심보감`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다.`명심보감`을 편별로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선행을 권장한 `계선`편, 하늘의 섭리를 말한 `천명` 편, 천명에 순응하는 법을 말한 `순명`편, 자신을 바로잡는 법을 말한 `정기`편, 분수에 편안하라는 `안분`편, 반성하면서 마음을 보존하라는 `존심`편, 삼가는 품성을 말한 `계성`편, 배움에 힘쓰라는 `근학`편, 자식교육 문제를 다룬 `훈자`편, 인생사 전반에 걸쳐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다룬 `성심`편, 가르침의 기본을 말한 `입교`편, 정치 문제를 다룬 `치정`편, 가정을 다스리는 법을 말한 `치가`편, 의리의 중요성을 다룬 `안의`편, 예의 문제를 다룬 `준례`편, 말의 중요성을 다룬 `언어`편, 친구와의 사귐을 다룬 `교우`편, 부녀의 행실을 다룬 `부행`편 등 19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31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꽃이 지다…

`접시꽃 당신`,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의 저자 도종환 시인의 시집`흔들리며 피는 꽃`(문학동네)이 출간됐다.신동엽창작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저자의 이번 시집은 1994년 초판이 발간된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를 새로운 장정으로 펴낸 것으로, 저자 자신이 마흔 고개에서 허리를 꺾으며 쓴 시, 흔들리며 써낸 시편들로 구성돼 있다.권력이나 초월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살아온 삶만큼의 순결한 언어로 정갈하게 빚어낸 80여 편이 5부로 나뉘어 있는 시집의 주조음은 언뜻 차고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곳곳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진다. 그러는 동안 깜깜한 세월은 속절없이 저물고 시를 노래하는 이는 “몸 어디인가 소리없이 아프다”(`오늘밤 비 내리고`).그러나 대부분의 말과 말 사이엔 휴지(休止)가 많고, 그 텅 빈 자리는 언어와 자리를 바꾸지 못한 응어리진 슬픔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화자의 말 못 할 슬픔은 짧은 호흡 속에서도 유장한 울림을 자아내고 덜어낼 대로 다 덜어내 고요로 충만한 말들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비로소 시로 태어난다.`낙화`는 그러한 과정을 오롯이 보여준다.“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꽃이 돌아갈 때도 못 깨닫고꽃이 돌아올 때도 못 깨닫고본지풍광本地風光 그 얼굴 더듬어도 못 보고속절없이 비 오고 바람 부는무명의 한 세월사람의 마을에 비가 온다”―`낙화`전문시집 전반에 흐르는 잔잔한 서정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실은 세상을 향한 유순한 사랑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혁명과 좌절과 눈보라 지난 뒤에도/때가 되면 다시 푸른 잎을 내”(`나뭇가지와 뿌리`)는 어린 가지처럼 시인은 지난한 슬픔의 뿌리에서 사랑의 새순을 피워올린다.간절히 꾸었던 참다운 세상에의 꿈이 무너졌을 때조차 화자는 “아름다운 세상 아, 형벌 같은 아름다운 세상”(`단식`)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 부르는 것이다.꽃 진 자리에선 언젠가 또 꽃이 피기 마련이다.“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어떤 마을`) 뜨는 마을, 여전히 비가 오고 바람 불지만 그곳엔 운명인 듯 꽃이 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이러저리 흔들리며 기어이 다시 피어난다. 시인의 슬픔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시인의 삶과 사랑이 그러했듯이.“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흔들리며 피는 꽃`전문“도종환의 좋은 시들은 회한이 깊어질수록 더욱 단정해지고, 절망이 클수록 더욱 청결해지는 마음의 무늬를 펼쳐 보인다”- 황종연(문학평론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31

현대인들의 고민 효과적인 해결책 담아

요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 하나 크고 작은 고민에 시달리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전력투구 해보지만 매일 매일이 고난의 연속일 뿐이다. 회사 생활, 대인관계, 가족 간의 불화, 과도한 음주,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그로부터 기인하는 우울증과 각종 증상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지치게 만드는 것일까? 지금 나는 인생의 장애물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제각기 다른 해법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심리학의 작은 비밀`(새로나온책)은 현직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심리학자들의 생생한 증언들로 이뤄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우리를 진단하는 의료인이 아닌, 가장 평범한 `보통사람`으로서 겪었던 삶의 어려움과 고통들을 진솔하고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또한 전문가로서 알고 있는 지식과 치료방법을 본인의 문제에 대입해 직접 적용해본 결과와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과연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치료할 수 있었을까?저자들이 가장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추천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자기 확신과 인지 치료, 그리고 마음 챙김 요법이다. 최근 심리학의 접근법에서 제일 부각되는 키워드는 `받아들이기`인데, 이는 체념이나 무기력과는 다른, 적극적으로 삶을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인지해낼 수 있어야하며 다음 단계는 바로 적절한 대응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위의 세 방법은 `인지하기-받아들이기-대응하기`의 모든 단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인지 재구성`이란 머릿속의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현실검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것인가, 그 믿음을 입증 혹은 반증할 확실한 증거들은 있는가?` 이성에 근거해 자신의 부정적인 신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파생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본문 p.64)“마음 챙김 요법은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내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그 생각들이 거기 있음을 알되 쫓아가지 않고 스스로의 몸과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 속을 해매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있을 수 있도록 우리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본문 p.71)물론 이런 방법들은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며 진행하거나 적절한 약물 치료를 동반하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변비가 오래가면 장 청소를 하고 감기가 심해지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의사의 도움을 받아 명상과 치료로 나쁜 기억을 몰아낼 수도 있고 마음의 감기를 위해 약을 처방받기도 하는 것이다.증상의 정도가 비교적 가볍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기법들을 찬찬히 따라해보는 것도 좋은 자가 치료가 될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도 큰 수줍음을 느꼈었다는 베테랑 심리학자 스테판 루아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꼭 수줍음이 아니더라도 많은 걱정거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31

세계 우뚝 선 한국인 9명 `꿈과 성공 이야기` 그려

▲ 작가 이채영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중심에서 거론되는 미국.그곳에서 정치, 과학, 부동산, 법조계, 미술, 교수, 요리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위치에 우뚝 선 `한국인` 9명이 책 한 권에 모두 모였다. ①워싱턴 주 상원부의장 신호범, ②`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③UBS은행 아태지역 회장 윤치원, ④레스토랑 `단지` 셰프 김훈이, ⑤조지타운 대학 교수 빅터 차, ⑥미국의 여성작가 선정 김원숙, ⑦뉴욕 시 브루클린 형사법원 판사 정범진, ⑧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YWA 공동대표 마가렛 리, ⑨미국 보건부 차관보 고경주….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채영(34) 작가가 최근 펴낸 `꿈을 이뤄드립니다`는 일일이 그들을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것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책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그들을 찾아가 연출이 아닌 실제 생활의 일부를 함께 경험했다.그런 과정에서 그들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심지어 그들의 가족이나 동료들까지 만나는 등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9명의 끊임없는 `열정`, 그리고 `꿈`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냈다.여기에 실린 명사들의 공통점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라고 가르치는 단순 `성공 노하우`를 전달하기보다는 실제로 그들이 삶에서 혹은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달은 생생한 `경험`과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누구나 우러러보는 자리에 올랐지만 그들 역시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 터, 그들의 실패담 혹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를 극복해나가던 경험담 등에서도 주옥 같은 이야기 보따리가 열린다. 사실, 이들은 스스로를 성공했다고 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염원했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되돌아보게끔 한다.점점 스스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꿈을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 학교가 그리고 사회가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미래가 불확실한 사회초년생들, 그리고 진짜 `멘토`가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까지, 이 책의 주인공 9명은 물론이고, 그들을 만나고 온 이채영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나하나는 좋은 자극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24

미국 이타키에 머문 생활인 체류기

민주통합당 송호창 의원이 지난 2010년부터 2년간 미국의 대안 도시 이타키에서 머문 기록을 담은 생활 체류기 `같이 살자`(문학동네)를 발간했다. 송 의원은 뉴욕 주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 생태주의와 풀뿌리 지역 경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이 책은 정치인 송호창의 책이 아니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평범한 시민 송호창이 2010년과 2011년, 두 해 동안 미국 이타카에서 머문 기록을 담은 생활인 체류기다. 그는 낮에는 빨래를 널고 저녁엔 장을 보며 이타카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뉴욕 주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는 뜻밖의 놀라운 발견을 자꾸 하게 됐다. 거기서 송호창은 생태주의와 풀뿌리 지역 경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인 송호창의 책이다. 촛불 변호사 송호창, 시민운동가로 10년, 인권변호사로 10년을 살아온 그가 이제 정치인으로서 내디딜 발걸음의 지도가 바로 이 책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오기 위해 이타카로 떠났다.송호창이 이타카 주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이타카에서 살다가 돌아가면 미국에서 살다가 왔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타카는 미국 안의 미국 아닌 미국이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전혀 미국적이지 않으며, 주민들이 그런 점을 자랑으로 여기는 특이한 곳이다. 이타카는 미국에서 자유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곳 중 하나인데, 그것은 그곳 사람들의 독서 습관, 교육, 그리고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시민 교양 프로그램이 낳은 결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24

사물의 마음까지 읽어내다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달한 생명 감각이 숨쉬는 생기발랄한 언어와 일상의 세목을 재현하는 정밀한 묘사가 어우러진 단정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이병일 시인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이 출간됐다. 등단 5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사물의 세미한 움직임을 간취하면서도 존재의 시원적 원리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유성호, 해설) 심미적이고 감각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소멸의 이미지들을 감싸안으며 삶의 단면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존재의 기원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사유, 사물의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섬세한 감성이 신선한 감동을 자아낸다.“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 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 한낮의 하품을 마저 놓는다. 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격장`부분) 이병일 시인은 가파른 현실을 초월하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오롯이 품어 안으면서 생을 견디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다른 형식을 투시하고 탐색해나가는 열정을 보여준다.“내려가도 내려가도 발이 닿지 않는” 생의 심연을 바라보며 “아프도록 멀리 있는 병이 씻기”(`우물`)도록 삶의 근원적 치유를 꿈꾸는 시인은 “세상의 옆구리에 박히는 붉은 심장의 박동을 세어보기 위해”(`옆구리의 발견`) 격장을 이루어가면서, “뼈 울음 같은 고락”(`빙폭`)의 “파동이 있는 곳을 응시”(`파랑의 먼 곳으로부터`)함으로써 맑고 심원한 세계로 가닿고자 한다.“아직 봄은 저 바깥에 머물고 있었던 거다/나무는 봄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피안을 끌고 들어가는 꽃송이와 새순을 토해낸 거다/그러니까 이제 봄비 그친 직후, 꽃나무를 보는 것은 멀리하자/밀려나오는 꽃순 소리는 새파란 음악이 되었다/그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꿈이었다, 생이 가려웠으나/당신은 아름다움 끝에 있는 폐허를 좋아했다/새순과 꽃송이엔 흉터가 자라고 있었다/바깥이 바깥 안에 든 다른 생으로 몸을 바꿨다/오늘 당신은 낮에 나온 꽃자리를 보며 생을 찾아간다/그러나 흰 영구차의 매연이 눈부시게 빛날 때처럼/이 바깥 세계에 있는 세상은 세상 아닌 듯 투명해졌다(`아직 봄은`전문) 삶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시인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거름자리를 파헤치는 갈퀴 발의 노동”(`닭발이 없었다면`)의 신성함과 “제 생을 위태롭게 허공에 매”단 “일용직 거미인간들”(`사소한 기록`)의 삶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눈길은 나아가 “칠흑 밤마다 많은 맨발들이 숙명으로 국경을 넘고 넘는”(`꽃제비`) 탈북자들의 세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이병일은 최근 5·18문학상을 수상하며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젊고 진지하고 상당히 세련된 시인”(정희성, 추천사)이다.우리는 사물에 대한 남다른 사유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기원을 탐색해가는 그가 “감각의 파동과 삶의 기원을 동시에 노래하는 시인”(유성호, 해설)으로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견지하며 더욱 참신한 목소리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나갈 것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24

실천시선, 통권 200호 기념 `시선집` 발간

한국 현대시사의 전개과정에서 주요한 흐름을 대변해온 실천시선이 통권 200호를 맞아 기념 시선집을 펴냈다. 실천시선은 1984년 `시여 무기여`를 시작으로 최근 출간된 고형렬 시집 `유리체를 통과하다`까지 28년간 총 199권을 출간한 바 있다.오랫동안 실천시선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한 최두석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가 개별 시집들의 대표작 한 편씩만을 엄선해 총 12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이번 200호 기념 시선집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문학사)는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총화이자 한국시의 드넓은 지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200호 기념 시선집은 `시의 시대`인 80년대를 주도한 대표작품과 90년 이후 민중·노동·참여시의 변모 양상, 2000년 이후 스펙트럼이 넓어진 리얼리즘 시를 총망라한다.문익환의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백무산의` 삶의 거처` 등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를 비롯해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조용미의 `벽오동나무 꽃그늘 아래`, 박후기의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등의 서정시, 그리고 김사이, 최종천, 황규관 등 2000년 이후 쓰여진 리얼리즘적 경향의 시 등을 다양하게 엮었다.시선집의 1부는 1955년부터 1979년까지 등단한 시인들로 구성되었다.4·19와 5·16 등 한국 현대사의 큰 굴곡을 지나면서 형성된 시인들의 굳건한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2부는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등단한 시인들로 엮었다.특히 이 시기 일부 시인들은 1980년 광주항쟁이라는 커다란 외상을 충실히 기록하고 오롯이 기억해내는 것으로 극복과 치유의 한 방법을 꾀하기도 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8-17

한 페이지에 하나씩 등장하는 죽음

단 한 줄의 문안,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광고, 그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 국제적인 광고회사 MC Saatchi.GAD를 설립한 다니엘 포르의 첫 소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문학동네)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넘치는 유머와 활기, 때론 통찰력까지 엿보이는 감각적인 문장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제목 그대로 `죽음`이 한 페이지에 하나씩 등장하는, 기발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한 남자가 처절한 이별 통보를 받는다. 그의 여자친구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에다 실패작이라며 가시 같은 말을 쏟아내고 그의 등 뒤에 겨드랑이 좀 씻고 다니라는 애정 어린 충고도 보탠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하필이면 그때 건물 관리인이 지나가고, 조롱과 빈정거림이 섞인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다.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뚜렷하지 않은 이 남자에 대해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사실 여자친구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쯤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지금으로선 평균이거나 평균에 아주 조금 못 미치는 삼사십대 남성으로 추측할 뿐.쓰라린 실연의 상처를 안고 여자친구의 집에서 나오면서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자동차 사고를 목격한다. 자동차는 그가 불과 십 초 전 서 있던 자리를 들이받고, 차 밖으로 튕겨나간 운전자는 토마토처럼 찌그러졌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불운이 시작된 줄은. 자기 연민에 허덕이거나 `실연남` 특유의 비분강개하는 허세를 부릴 법도 하지만, 예상 밖에 그는 맥주 한 잔으로 털고 일어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한다. 다시 사랑에 빠지기 위해 여자를 만나고, 베스트셀러 소설을 써서 유명해지기 위해 열심히 영감을 떠올리고, 몸짱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운동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게 계획처럼, 마음처럼 쉬울 리 없다. 그의 노력에는 늘 2퍼센트가 부족하다. 계획은 실패의 연속이다. 게다가 자동차 사고를 목격한 후로 그의 일상에 `죽음`이, `한 페이지에 하나씩` 계속해서 가로놓인다. 아버지가 죽고, 옛 애인이 죽고, 키우던 화분이 죽고, 급기야 연쇄 살인 사건에 연루되기까지….소설 속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주인공의 주변에 죽음이 잇따른다. 주변 인물들이 죽거나, 주인공이 직접 죽음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그의 곁에 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들은 이런 실질적인 죽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 아이디어, 자본주의, 과거의 나 등 관념적인 죽음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어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말 그대로 한 페이지에 하나씩, 실질적인 죽음에서 상징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150번이 넘는 `죽음`이 작품 곳곳에 배치되지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스릴러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여자친구에게 버림받고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일상에 수많은 죽음이 개입하고, 그로 인해 복잡해지는 사건들이 다니엘 포르 특유의 유머와 한데 어우러진다. 이름이나 직업, 나이조차 뚜렷하지 않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금-여기`를 사는 현대 남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7

부끄러움 없으면 사회 구조물 허물어져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내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 제4권으로 `부끄러워야 사람이다`(글항아리)가 나왔다. 이번 책에서는 동양의 선현들이 스스로를 향해 수없이 던졌던 `치(恥)`라는 질문, 즉 `부끄러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권모술수가 일종의 경쟁논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후흑학`이 자기합리화의 보루로 여겨지는 요즘, `부끄러움`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질문으로 던진다는 것은 왠지 퇴화한 꼬리뼈를 만지작거리는 멋쩍음마저 준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꼬리를 치켜드는 때가 없다. 정의의 실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지난 2~3년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 대한 나이든 세대의 안타까움으로 세대간 소통을 이뤄냈다.만약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의`를 묻지도 못했을 것이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했을 때문이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진화론의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마음의 물리학에 속하는 듯하다. 부끄러움이라는 꼭지점이 없으면 마음이라는 구조물, 더 나아가 사회라는 구조물 또한 허물어지는 그런 존재.`부끄러워야 사람이다`는 부끄러움이 배면으로 밀려난 시대, 다시 한 번 그것을 개인과 사회의 윤리로 제대로 제시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 윤천근 교수는 윤동주의 `서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부끄러움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펼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7

“우리의 모습, 이 책 속에 녹아 흐르고…”

지난 2006년 프랑스 출판계는 특이한 제목의 책 한 권으로 술렁였다. 1979년 데뷔해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나, 그전까지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작가 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이 소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고, 프랑스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악어 신드롬`을 일으켰다.팡콜은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후속작인 `거북이들의 느린 왈츠`를 발표했고 `악어들의 노란 눈`의 뒷이야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2010년 발표한 `센트럴 파크의 다람쥐들은 월요일에 슬프다`는 초판부수 25만 부, 1개월 판매부수 40만 부라는 엄청난 기록을 낳았다.카트린 팡콜은 `악어-거북이-다람쥐`로 이어지는 이른바 `동물 3부작`의 성공으로 2009년 프랑스 판매순위 3위, 2010년에는 기욤 뮈소를 제치고 2위에 올랐고, 2011년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3위를 기록했다.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고 인기 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이 이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비밀은 무엇일까?이 작품은 프랑스 원서로는 650쪽, 한국어판으로도 1, 2권 합쳐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다.많은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탄탄한 줄거리 속에, 일상생활에 대한 치밀하고도 정확한 묘사와 현실감 넘치는 대화를 펼쳐 보이며 지루할 틈 없이 독자들을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또한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내세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다.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인물들이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엄마와 딸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과 성공에 대한 갈망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지금의 우리, 앞으로의 우리, 언젠가 될 수도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책 속에 녹아 있고, 소설의 무대인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이곳 한국에서도 현재진행중인 삶과 여러 가지 갈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그렇기에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외칠 수 있을 만큼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카트린 팡콜은 소설의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주변 이웃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중심 사건인 두 자매 이리스와 조제핀의 비밀 공모는 자매 중 한 명이 다른 자매의 죄를 뒤집어썼다는 신문 사회면 기사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깊이 있는 인물 관찰과 호기심 어린 조사, 현실성 있는 팡콜의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8-10

시대의 恨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

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고 재조명하고자 문학과지성사가 펴내고 있는 `이청준 전집` 시리즈 가운데 3권 중단편집 `꽃과 소리`(2012)가 출간됐다.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 `눈길`등 우리 시대의 한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하려 한평생 고뇌한 작가 이청준.말과 말의 질서를 통해 삶을 사랑하기를 문학의 궁극적 행위이자 가치로 놓았던 이청준의 작품 세계는 권력과 인간의 갈등, 집단과 개인의 불화, 언어와 사회의 길항 등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부터 고난을 견디는 장소로서의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과 그 밑바닥의 가장 복잡한 심사들의 뒤엉킴이라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구조에까지 멀리 그리고 깊게 닿아 인간의 한 생을 파노라마로 엮는다.다시 말해, `당신들의 천국`이 완성한 지성의 정치학으로부터 `서편제`가 풀어낸 토속적 정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청준 문학이 뻗어 있는 영역은 우리 삶의 전방위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이청준 전집 3권 `꽃과 소리`에 실린 7편의 중단편은 1960년대 초기 이청준 소설의 문제의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이번 작품집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영찬(계명대 국문과) 교수는 “이청준의 소설은 대부분 증상으로 표출되는 개인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구조”를 띠며, 바로 그 `의심과 호기심`이야말로 이청준의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라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