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현대인의 잠자는 양심 뒤흔든 잠언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5-10 00:08 게재일 2013-05-10 11면
스크랩버튼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목수정 번역 문학동네 펴냄, 300쪽

`분노하라`라는 작은 책 한 권으로 세계인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깨뜨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 2012년 발표한 마지막 자서전이 출간된다. 지난 2월27일 향년 95세로 타계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붐이 일고 있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문학동네)는 스테판 에셀이 세상을 떠나기 1년여 전인 2012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자서전으로, 원제는 `Tous comptes faits… ou presque(이제 모든 것을 말하지요… 거의 모든 것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현재 파리에 살고 있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목수정이 번역했다.

마치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진보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낱낱이 회고한 그의 마지막 자서전은 우리의 잠자고 있던 양심을 뒤흔드는 잠언들로 가득하다. 그는 몸에서 서서히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여전히 자본주의의 폭력과 난맥상을 지켜보면서도, 세상은 진보해왔으며 여전히 더 큰 진보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것은 그가 낙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좌파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주의가 역사의 진화를 명백히 관찰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테판 에셀의 사후 그를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안장하자는 청원서를 올린 정치가들에는 좌파와 우파가 따로 없었다. 에셀이 지지해온 사회당과 녹색당은 물론 우파인 대중민주연합의 정치가들까지그의 죽음 앞에 고개 숙였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스테판 에셀은 `프랑스의 사상` 그 자체”라고 추모했다. 그가 진영을 넘어 이렇게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굳건한 믿음,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교조적인 관점을 벗어나 미래 세대와 소통하고 교감한 열정 때문이었다.

▲ 스테판 에셀

이 책에는 그가 이러한 사상을 구축하기까지 그의 생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만남과 모험이 펼쳐진다. 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자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자유와 행복을 향해 질주해 영화 `쥘 앤 짐`의 여주인공 모델이 된 어머니 헬렌 그룬트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메를로퐁티, 다니엘 컨벤디, 에드가 모랭 등의 사상가들과의 전율 어린 만남, 그리고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 서른네 살이었던 `친구의 어머니`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비롯해, 그의 생애 단 한 번 찾아온 동성애 경험 등 그 자신의 아주 특별한 사랑의 연대기가 담겨 있다.

`분노하라`라는 강력한 슬로건과 레지스탕스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스테판 에셀의 인간적인 매력, 그리고 `분노하라`가 불러일으킨 세계적인 돌풍 이후, 스테판 에셀이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마지막 자서전에 응축돼 있다.

“사랑을 사랑하라, 감탄에 감탄하라!”

에셀은 한 인간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진정 100% 청년으로 살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의 1세기에 가까운, 충만하고도 활력으로 가득하던 삶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00살까지 산 레비스트로스나 얼마 전에 죽은 대처가 오히려 그들의 죽음이 그들이 한때 살아 있었음을 알렸다면, 에셀은 94세에 발표한 이 책이 하나의 증거물이듯, 죽음을 앞둔 그 마지막 호흡까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눈 삶이었다.

지식의 감옥에 갇히거나 안온한 노년의 평화 속에 주저앉지 말고 참여하는 것, 맹렬히 세상을 움직이는 노를 젓는 하나의 손이 되는 것, 우리가 믿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그가 한 세기를 줄곧 청년으로 살아낸 첫번째 비법이라면, 또하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낸 이 자유롭고 인간적인 혁명가는 더이상 숨길 것도,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자신의 인생에 깃든, 경계를 가로지르는 각양각색 사랑의 역사를 회고한다. 그리고 “질투하지 않는 사랑의 방법을 체득하고 모든 사랑의 모험에 주저 없이 나섰던” 이 경쾌한 젊은이는 훗날 사람들의 사랑과 행복을 가로막고 경계 짓는 모든 것들에 맞서 싸우는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스테판 에셀은 이 책에서 지구상의 60억 인구가 유럽인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두 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미국인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의 지구에서 60억의 인구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라면, 그는 이 현실 가운데서 가능한 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길 꿈꿨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