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스트레스` 탁석산 지음 창비 펴냄, 348쪽
정치권에서 비롯된 `국민행복시대`라는 말이 최근 들어 전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사실 행복은 일찌감치 자기계발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아왔다. 소위 우리 사회의 멘토들도 너나할 것 없이 저마다의 행복론을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철학자 탁석산은 이번에 출간한 `행복 스트레스`(창비)에서 맹목적으로 행복에 집착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행복 담론의 실체를 깊이있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현대인들에게 강요되는 행복 강박증을 `행복 스트레스`로 개념화하며 우리가 종교처럼 떠받드는 행복이 사실 텅 빈 개념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악용될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을 헛수고로 끝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초부터 모든 것을 의심하는 철학자들이 우리 사회의 맹목적 행복 집착 현상을 분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등장한 지 200년도 되지 않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이런 사고방식이 어떻게 우리 삶을 왜곡하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행복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성찰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행복 스트레스`는 한국문화의 역동적인 생활철학을 분석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심리상태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선보인 탁석산이 자신의 대표적 베스트셀러 `한국의 정체성`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후 마음먹고 내놓는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서이자 자기계발 담론에 잠식당한 행복을 인문학적 통찰로 재구성한 대중적 교양서이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믿음이 근대 사회를 지배한 이후 `행복`은 신의 자리를 차지한 대표적인 키워드이다.
철학은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벌이는 투쟁 속에서 자신을 키워왔음을 지적하는 저자 탁석산은 이번 책에서 왜 철학이 시대의 물음인 행복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지에 대해 문제제기한다. 그가 보기에 정부와 종교단체를 비롯해 개인과 사회 전체가 행복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행복은 좀처럼 얻기 어렵고 설사 얻었다 해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행복한 사람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 행복해야 한다고 외쳐댄다. 대한민국 전체가 `행복 스트레스`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저자 탁석산이 개념화한 `행복 스트레스`의 대표적인 사례는 모순적이게도 `범람하는 멘토`의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부·승진·돈·외모·명예·젊음 등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에 목을 매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들의 목소리는 달콤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시대의 유행어가 되고, 수많은 종교 지도자와 스님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이 그 증거다.
저자는 행복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 그리고 `그 사이`까지 아울러 살피며 행복문제의 근원을 캐나가야 우리의 현실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왜 그토록 행복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행복이 어떻게 현대인을 지배하는 세속종교가 되었는지 파헤치는 `행복 스트레스`는 행복에 대한 짧은 역사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오늘날의 우리 삶을 철학하고 그 안에서 개인의 삶을 바꿀 대안을 스스로 모색하게 하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잠시 동안의 위로 혹은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책들 사이에서 인문학의 폭넓은 시야와 통찰을 보여주는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책은 1부 `행복이라는 이상한 이름`, `행복 신화를 만든 것들`, 3부 `행복을 다시 생각한다` 등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저자 탁석산은 행복이라는 말을 지금처럼 사용한 것은 서양에서도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동양권에서도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전에 사용한 행복은 `신의 은총` `운`과 같은 의미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뜻하는 말이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특히 공리주의의 등장으로 행복의 의미가 쾌락으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행복의 크기를 잴 수 있으며, 자신의 힘으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 근원이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이유이기도 하다.
제1부가 행복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그 기원을 살핀다면, `제2부 행복 신화를 만든 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행복 스트레스의 배후에 숨겨진 힘을 파헤친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공리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시장주의다.
행복의 배후에 있는 공리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시장주의가 상품화, 추상화, 개인의 고립, 즉흥적 쾌락 등의 문제를 불러왔으며, 행복에 집착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제3부에서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의 행복을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