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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조는 누구나 쉽게 다가가는 친밀한 형식”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데이비드 매캔(David McCann) 교수의 영어 시조집 `도심의 절간`(창비)이 출간됐다. 데이비드 매캔 교수는 국제 학계에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오랜 세월 한국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김소월, 서정주, 김지하, 고은, 김남조 등의 작품을 손수 번역하여 소개하고, 한국문학 전문지 `진달래`(Azalea)를 창간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또한 미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조 창작대회나 각종 강연활동을 통해 한국문화를 대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도 힘써왔다.여느 한국인보다도 더 시조를 잘 알고 아끼는 이 벽안의 외국인은 1960년대에 평화봉사단 활동차 안동에 머물렀던 것이 인연이 되어 한국시와 시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도심의 절간`은 시조를 향한 그의 오랜 애정과 탐구의 결실을 모은 시조집이다. 영어로 지은 시조를 우리말로 번역한 뒤 한영대역으로 나란히 실어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한 시조들을 비교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매캔 교수는 애정 어린 눈으로 시조를 읊고 전하는 감상자일 뿐 아니라 본인 역시 어엿한 시인으로서, 시조를 영시의 한 형식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스스로 영어 시조의 형식을 탐구하고 창작함으로써 언어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시조, 그리고 한국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매캔 교수는 서문에서 시조는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국 만리에서 온 한국말이 서툰 젊은이를 사로잡을 정도로 강렬하고 친밀한 형식이라고 말한다.낯선 언어로 씌어진 시조는 시조의 고향인 한국의 독자들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 비치겠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 여느 한국시 못지않게 친숙하게 느껴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14

한국 정치문화 양극화 두드러져 합의 없어도 논쟁있다면 `건강`

올해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며 드러난 한국의 정치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 양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오랫동안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오는 남북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과 동서로 나뉜 지역감정이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다면, 여기에 더해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로 편을 갈라 싸우는 이전투구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의 정치현실이다.첨예한 대립과 적개심은 있되 공적인 논쟁이나 원칙은 찾아보기 힘들고,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는 상대방의 말과 태도를 문제 삼는 경우가 태반이다.정치가들뿐 아니라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치 쟁점을 둘러싼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렇듯 자치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상대를 정형화하고 상호 비난과 경멸을 반복하는 일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다수의 횡포뿐이다.이런 정치적 악조건 속에서 민주주의가 그 가치에 가깝게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새로운 정치 토론을 위한 원칙`(문학과 지성사)에서 저자가 대면하는 문제의식이다.▲ 작가 로널드 드워킨이 책의 저자 로널드 드워킨은 미국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치적 분열을 본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너른 합의만 있다면 심각한 정치적 논쟁 없이도 건강할 수 있다. 또 합의가 없더라도 논쟁 문화가 있다면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깊고 쓰라린 분열만 있고 진정한 논쟁이 없다면, 다수의 횡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이렇듯 존 롤스의 뒤를 잇는 가장 권위 있는 법철학자이자 진보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현실 문제에 대해 비중 있는 발언을 해온 실천적 지식인, 그러면서도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저자로 잘 알려진 로널드 드워킨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고도 강력하다.과도한 정치적 양극화의 조건에서는 공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있을 수 없고, 그런 논쟁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정치적 양극화란 공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혹은 과도한 파당적 경쟁만이 지배하는 정치를 가리킨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9-14

현대인, 사마천에 길을 묻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힘든 세상이다. 여러 복잡한 관계와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초인에 가까운 힘이 필요할 때도 있다.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싸워나가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지침으로 갖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른다.중국 한나라 무제 때의 역사가 사마천이 기원전 90년에 펴낸 역사서`사기`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 책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동양의 대표적 고전이다.중문학자 김원중 교수가 사마천의 `사기`중 `열전`을 번역한 `사기 열전`(민음사)은 `교수신문`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최고 번역서로 선정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김원중 교수의 번역은 “이해하기 쉽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며, `사기`의 원래 의도를 존중해 어감을 살려 번역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기 열전`이란?`사기`는 상고 시대부터 사마천이 살던 한 무제 때까지 중국 역사를 다룬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중국 역사의 전범(典範)이자 역사서의 궁극으로 일컬어지며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사기`는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열전`은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한 인물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때로 계급을 초월해 기상천외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왜 `사기 열전`은 인간학 교과서인가?`사기 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사마천은 되도록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우선적으로 고르고 거기에 평가를 더했다. 독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러지 않은 자는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심지어 어떤 인물의 행동에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으면 아예 그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전기에 집어넣기도 한다.진나라 말기에 권력을 휘둘렀던 환관 조고(趙高)의 경우, `이사 열전` 등 다른 사람들의 `열전`을 통해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번역 김원중 교수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한 그 당시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서(經書)와 제자서(諸子書)들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도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기 열전`의 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또 독자에게 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에 놓은 경우도 많다.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인물에 대해 나열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주는 특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열전의 두 번째 편인 `관안 열전(管晏列傳)`을 보면 관중과 안영의 생애 서술은 철저히 무시되고, 그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두 일화만 소개한다. `중니 제자 열전`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은 후반부에 이름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저자 사마천(기원전 145년~ 90년)`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했던 이릉을 변호하다 한무제로부터 노여움을 받아 궁형(宮刑)을 당한 인물이다.궁형은 남자의 생식기를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이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치욕과 고통 속에서 영원한 고전을 잉태했다. 고통 속에서 한 줄 한 줄을 꾹꾹 눌러 썼기에 `사기`는 단어 하나 행간 한 줄에도 저자의 깊이가 담겨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14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진 슬픔…

지난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이후 두권의 시집을 통해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최근 국내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오른 진은영 시인사진의 세번째 시집`훔쳐가는 노래`(창비)가 출간됐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선보인다.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그 머나먼`외 5편(`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훔쳐가는 노래` `망각은 없다`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오래된 이야기`)을 비롯해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깃든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언어와 감각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표현들로 정제된 총 50편의 시편이 저마다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나머지는 물//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붉은 물이 스민다/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세상의 절반`전문)`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창작과정의 문제로 고민해온 진은영 시인은 “아름답고 동시에 정치적인 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시인”(신형철)으로 꼽힌다.2000년 이후 등단한 많은 젊은 시인들이 그렇듯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무엇`과 `어떻게`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문학적 글쓰기와 현실정치의 간극 속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삶의 한 지점에 발을 딛고 선 시인은 타성의 울타리 안에 갇힌 관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고착된 시선을 거두고 진실에 가까운 삶의 실체를 보고자 한다.가까이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멀리 있는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 시인은 “어떤 이야기가,/어떤 인생이,/어떤 시작이/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름답게 시작되는 시`)를 생각하며, “가장 낡은 변두리에서 흘러나오는 더운 하수 같은 노래”가 흐르고 “미로처럼 생긴 거리들에서 일제히 떠오르는 빨간 풍선 같은 소망”(`Bucket List`)이 이루어지는 `혁명`과 `철학`의 세계로 시야를 넓혀간다.사회참여와 감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시적 화법에 “시의 정치성에 대한 자신만의 오랜 고민”(함돈균)을 담아온 시인은 동화적인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접합하여 국가폭력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살인자`가 오히려 당당하게도 버젓이 “살인의 장소”를 점령하는 오늘의 현실을 환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07

3·1운동~4·19혁명까지 한 촌락이 겪은 수난·항거 그려

1977년에 출간된 이래 오랫동안 민중문학의 전범(典範)으로 자리매김해온 송기숙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창비)가 새롭게 출간됐다. 송기숙은 한국 현대사의 엄혹했던 시절과 정면으로 맞서온 작가다. 치열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으며, 특히 동학농민운동을 장구한 이야기로 풀어낸 대하소설 `녹두장군`,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장편 `오월의 미소`등 깊이있는 역사의식과 토속적인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담긴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며 민족문학의 중추 역을 담당해왔다. 그의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는 3·1운동 전해(1918)부터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쳐 4·19혁명(1960)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한 촌락이 겪은 수난과 항거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 민중문학의 역작이다.작품의 배경은 전라도의 어느 벽지인 `자랏골`이다. 순박하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자랏골은 물론 인근 지역의 제일가는 유지인 이양문 일가의 존재이다.이양문은 일제 치하에선 일본의 비호 아래 위세를 떨치고, 해방 이후엔 자신이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대왔다는 거짓말과 국회의원 아들의 위세에 힘입어 자랏골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소설은 자랏골 최고의 명당자리에 이양문이 자기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자랏골의 주민들로서는 동네를 굽어보는 명당에 사욕을 위한 묘가 자리잡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일제시대엔 묘의 이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일본 헌병과 순사들이 잔혹한 폭력으로 진압하고, 한국전쟁 때는 이 묘가 국군과 인민군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구실이 되며, 전후 자유당 독재시기에 이르면 이양문과 마을 주민 간의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의 상징으로 기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07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는 현재 중국어권 최고의 작가인 위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장편소설 `형제`이후 4년 만에 쓴 것이다.`형제`에서 보여준 중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이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위화는 미국 퍼모나 대학에서 당대 중국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됐는데, 그 강연의 원고를 준비하며 이 책을 썼다.책은 이미 미국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10여 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됐다. 중국어판은 지난해 1월 타이완에서 출간됐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현재까지 출간이 불가능한 상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중국 정부 당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이 책의 원제는 `열 개 단어 속의 중국(十個詞彙中的中國)`이다. 저자는 인민, 영수(領水),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등 열 개의 단어 속에 중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열 개의 단어를 열 쌍의 눈으로 삼아 열 개의 방향에서 중국을 응시하는 책`이다.저자는 이 책을 두고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굴지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 사회의 “뿌리와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첫번째 글 `인민`에서 위화는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개혁개방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 급작스레 중국 전역을 뒤흔든 민주화 운동인 톈안문 사건을 회고하며, 그것이 중국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어떤 전환점이 됐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톈안문 사건을 통해 “문화대혁명 이래로 누적되어온 정치적 열정이 마침내 깨끗이 발산”되었으며 “그 뒤로는 부(富)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정치적 열정을 대신했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돈을 버는 데 집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90년대의 경제적 번영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열정을 목격하며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영수`에서 `영수`는 다름 아닌 현대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이다.이 글에서 위화는 오늘날 중국 사회 한편에서 불고 있는 마오쩌둥 부활 움직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심리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는 “마오쩌둥 사상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전 세계에 갈수록 그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며 “전 세계 수많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마오쩌둥이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차이`는 오늘날 중국 사회를 규정하는 중요한 단어다.`차이`에서 위화는 오늘날 중국이 “현실과 역사의 거대한 차이 속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커다란 꿈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발전 등 해결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은 장밋빛 중국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9-07

동양적 수양과 명상·금언으로 가득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란 뜻으로 중국의 경전과 사서, 제자백가, 문집 등에서 가려 뽑은 주옥같은 200여 단장들의 모음이다. 작지만 작지 않은 이 책엔 동양적 수양과 명상, 의미 있는 삶의 실천을 위한 금언으로 가득하다.김원중 건양대 교수가 펴낸 `명심보감-시공을 초월한 인간관계론의 성전`(글항아리)은 `명심보감`의 전편을 모두 번역하고 각 편에 간단한 해제와 소제목을 덧붙이고 문장의 말미에 간략한 해설과 관련 인물이나 책들에 관한 보충설명을 각주로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명심보감`은 저자와 판본 문제가 복잡한 책 중의 하나이다. 국내에는 주로 추적이 엮은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의 원저자는 중국 나라 초기의 인물 범립본이다.`명심보감`은 원래 범립본이 상, 하 20장으로 지은 책이다. 원말 명초의 인물인 그는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은둔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다 1394년 `명심보감`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다.`명심보감`을 편별로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선행을 권장한 `계선`편, 하늘의 섭리를 말한 `천명` 편, 천명에 순응하는 법을 말한 `순명`편, 자신을 바로잡는 법을 말한 `정기`편, 분수에 편안하라는 `안분`편, 반성하면서 마음을 보존하라는 `존심`편, 삼가는 품성을 말한 `계성`편, 배움에 힘쓰라는 `근학`편, 자식교육 문제를 다룬 `훈자`편, 인생사 전반에 걸쳐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다룬 `성심`편, 가르침의 기본을 말한 `입교`편, 정치 문제를 다룬 `치정`편, 가정을 다스리는 법을 말한 `치가`편, 의리의 중요성을 다룬 `안의`편, 예의 문제를 다룬 `준례`편, 말의 중요성을 다룬 `언어`편, 친구와의 사귐을 다룬 `교우`편, 부녀의 행실을 다룬 `부행`편 등 19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31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꽃이 지다…

`접시꽃 당신`,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의 저자 도종환 시인의 시집`흔들리며 피는 꽃`(문학동네)이 출간됐다.신동엽창작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저자의 이번 시집은 1994년 초판이 발간된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를 새로운 장정으로 펴낸 것으로, 저자 자신이 마흔 고개에서 허리를 꺾으며 쓴 시, 흔들리며 써낸 시편들로 구성돼 있다.권력이나 초월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살아온 삶만큼의 순결한 언어로 정갈하게 빚어낸 80여 편이 5부로 나뉘어 있는 시집의 주조음은 언뜻 차고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곳곳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진다. 그러는 동안 깜깜한 세월은 속절없이 저물고 시를 노래하는 이는 “몸 어디인가 소리없이 아프다”(`오늘밤 비 내리고`).그러나 대부분의 말과 말 사이엔 휴지(休止)가 많고, 그 텅 빈 자리는 언어와 자리를 바꾸지 못한 응어리진 슬픔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화자의 말 못 할 슬픔은 짧은 호흡 속에서도 유장한 울림을 자아내고 덜어낼 대로 다 덜어내 고요로 충만한 말들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비로소 시로 태어난다.`낙화`는 그러한 과정을 오롯이 보여준다.“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꽃이 돌아갈 때도 못 깨닫고꽃이 돌아올 때도 못 깨닫고본지풍광本地風光 그 얼굴 더듬어도 못 보고속절없이 비 오고 바람 부는무명의 한 세월사람의 마을에 비가 온다”―`낙화`전문시집 전반에 흐르는 잔잔한 서정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실은 세상을 향한 유순한 사랑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혁명과 좌절과 눈보라 지난 뒤에도/때가 되면 다시 푸른 잎을 내”(`나뭇가지와 뿌리`)는 어린 가지처럼 시인은 지난한 슬픔의 뿌리에서 사랑의 새순을 피워올린다.간절히 꾸었던 참다운 세상에의 꿈이 무너졌을 때조차 화자는 “아름다운 세상 아, 형벌 같은 아름다운 세상”(`단식`)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 부르는 것이다.꽃 진 자리에선 언젠가 또 꽃이 피기 마련이다.“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어떤 마을`) 뜨는 마을, 여전히 비가 오고 바람 불지만 그곳엔 운명인 듯 꽃이 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이러저리 흔들리며 기어이 다시 피어난다. 시인의 슬픔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시인의 삶과 사랑이 그러했듯이.“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흔들리며 피는 꽃`전문“도종환의 좋은 시들은 회한이 깊어질수록 더욱 단정해지고, 절망이 클수록 더욱 청결해지는 마음의 무늬를 펼쳐 보인다”- 황종연(문학평론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31

현대인들의 고민 효과적인 해결책 담아

요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 하나 크고 작은 고민에 시달리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전력투구 해보지만 매일 매일이 고난의 연속일 뿐이다. 회사 생활, 대인관계, 가족 간의 불화, 과도한 음주,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그로부터 기인하는 우울증과 각종 증상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지치게 만드는 것일까? 지금 나는 인생의 장애물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제각기 다른 해법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심리학의 작은 비밀`(새로나온책)은 현직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심리학자들의 생생한 증언들로 이뤄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우리를 진단하는 의료인이 아닌, 가장 평범한 `보통사람`으로서 겪었던 삶의 어려움과 고통들을 진솔하고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또한 전문가로서 알고 있는 지식과 치료방법을 본인의 문제에 대입해 직접 적용해본 결과와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과연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치료할 수 있었을까?저자들이 가장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추천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자기 확신과 인지 치료, 그리고 마음 챙김 요법이다. 최근 심리학의 접근법에서 제일 부각되는 키워드는 `받아들이기`인데, 이는 체념이나 무기력과는 다른, 적극적으로 삶을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인지해낼 수 있어야하며 다음 단계는 바로 적절한 대응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위의 세 방법은 `인지하기-받아들이기-대응하기`의 모든 단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인지 재구성`이란 머릿속의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현실검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것인가, 그 믿음을 입증 혹은 반증할 확실한 증거들은 있는가?` 이성에 근거해 자신의 부정적인 신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파생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본문 p.64)“마음 챙김 요법은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내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그 생각들이 거기 있음을 알되 쫓아가지 않고 스스로의 몸과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 속을 해매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있을 수 있도록 우리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본문 p.71)물론 이런 방법들은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며 진행하거나 적절한 약물 치료를 동반하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변비가 오래가면 장 청소를 하고 감기가 심해지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의사의 도움을 받아 명상과 치료로 나쁜 기억을 몰아낼 수도 있고 마음의 감기를 위해 약을 처방받기도 하는 것이다.증상의 정도가 비교적 가볍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기법들을 찬찬히 따라해보는 것도 좋은 자가 치료가 될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도 큰 수줍음을 느꼈었다는 베테랑 심리학자 스테판 루아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꼭 수줍음이 아니더라도 많은 걱정거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31

세계 우뚝 선 한국인 9명 `꿈과 성공 이야기` 그려

▲ 작가 이채영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중심에서 거론되는 미국.그곳에서 정치, 과학, 부동산, 법조계, 미술, 교수, 요리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위치에 우뚝 선 `한국인` 9명이 책 한 권에 모두 모였다. ①워싱턴 주 상원부의장 신호범, ②`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③UBS은행 아태지역 회장 윤치원, ④레스토랑 `단지` 셰프 김훈이, ⑤조지타운 대학 교수 빅터 차, ⑥미국의 여성작가 선정 김원숙, ⑦뉴욕 시 브루클린 형사법원 판사 정범진, ⑧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YWA 공동대표 마가렛 리, ⑨미국 보건부 차관보 고경주….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채영(34) 작가가 최근 펴낸 `꿈을 이뤄드립니다`는 일일이 그들을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것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책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그들을 찾아가 연출이 아닌 실제 생활의 일부를 함께 경험했다.그런 과정에서 그들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심지어 그들의 가족이나 동료들까지 만나는 등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9명의 끊임없는 `열정`, 그리고 `꿈`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냈다.여기에 실린 명사들의 공통점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라고 가르치는 단순 `성공 노하우`를 전달하기보다는 실제로 그들이 삶에서 혹은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달은 생생한 `경험`과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누구나 우러러보는 자리에 올랐지만 그들 역시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 터, 그들의 실패담 혹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를 극복해나가던 경험담 등에서도 주옥 같은 이야기 보따리가 열린다. 사실, 이들은 스스로를 성공했다고 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염원했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되돌아보게끔 한다.점점 스스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꿈을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 학교가 그리고 사회가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미래가 불확실한 사회초년생들, 그리고 진짜 `멘토`가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까지, 이 책의 주인공 9명은 물론이고, 그들을 만나고 온 이채영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나하나는 좋은 자극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24

미국 이타키에 머문 생활인 체류기

민주통합당 송호창 의원이 지난 2010년부터 2년간 미국의 대안 도시 이타키에서 머문 기록을 담은 생활 체류기 `같이 살자`(문학동네)를 발간했다. 송 의원은 뉴욕 주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 생태주의와 풀뿌리 지역 경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이 책은 정치인 송호창의 책이 아니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평범한 시민 송호창이 2010년과 2011년, 두 해 동안 미국 이타카에서 머문 기록을 담은 생활인 체류기다. 그는 낮에는 빨래를 널고 저녁엔 장을 보며 이타카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뉴욕 주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는 뜻밖의 놀라운 발견을 자꾸 하게 됐다. 거기서 송호창은 생태주의와 풀뿌리 지역 경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인 송호창의 책이다. 촛불 변호사 송호창, 시민운동가로 10년, 인권변호사로 10년을 살아온 그가 이제 정치인으로서 내디딜 발걸음의 지도가 바로 이 책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오기 위해 이타카로 떠났다.송호창이 이타카 주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이타카에서 살다가 돌아가면 미국에서 살다가 왔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타카는 미국 안의 미국 아닌 미국이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전혀 미국적이지 않으며, 주민들이 그런 점을 자랑으로 여기는 특이한 곳이다. 이타카는 미국에서 자유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곳 중 하나인데, 그것은 그곳 사람들의 독서 습관, 교육, 그리고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시민 교양 프로그램이 낳은 결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24

사물의 마음까지 읽어내다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달한 생명 감각이 숨쉬는 생기발랄한 언어와 일상의 세목을 재현하는 정밀한 묘사가 어우러진 단정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이병일 시인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이 출간됐다. 등단 5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사물의 세미한 움직임을 간취하면서도 존재의 시원적 원리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유성호, 해설) 심미적이고 감각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소멸의 이미지들을 감싸안으며 삶의 단면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존재의 기원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사유, 사물의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섬세한 감성이 신선한 감동을 자아낸다.“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 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 한낮의 하품을 마저 놓는다. 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격장`부분) 이병일 시인은 가파른 현실을 초월하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오롯이 품어 안으면서 생을 견디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다른 형식을 투시하고 탐색해나가는 열정을 보여준다.“내려가도 내려가도 발이 닿지 않는” 생의 심연을 바라보며 “아프도록 멀리 있는 병이 씻기”(`우물`)도록 삶의 근원적 치유를 꿈꾸는 시인은 “세상의 옆구리에 박히는 붉은 심장의 박동을 세어보기 위해”(`옆구리의 발견`) 격장을 이루어가면서, “뼈 울음 같은 고락”(`빙폭`)의 “파동이 있는 곳을 응시”(`파랑의 먼 곳으로부터`)함으로써 맑고 심원한 세계로 가닿고자 한다.“아직 봄은 저 바깥에 머물고 있었던 거다/나무는 봄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피안을 끌고 들어가는 꽃송이와 새순을 토해낸 거다/그러니까 이제 봄비 그친 직후, 꽃나무를 보는 것은 멀리하자/밀려나오는 꽃순 소리는 새파란 음악이 되었다/그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꿈이었다, 생이 가려웠으나/당신은 아름다움 끝에 있는 폐허를 좋아했다/새순과 꽃송이엔 흉터가 자라고 있었다/바깥이 바깥 안에 든 다른 생으로 몸을 바꿨다/오늘 당신은 낮에 나온 꽃자리를 보며 생을 찾아간다/그러나 흰 영구차의 매연이 눈부시게 빛날 때처럼/이 바깥 세계에 있는 세상은 세상 아닌 듯 투명해졌다(`아직 봄은`전문) 삶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시인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거름자리를 파헤치는 갈퀴 발의 노동”(`닭발이 없었다면`)의 신성함과 “제 생을 위태롭게 허공에 매”단 “일용직 거미인간들”(`사소한 기록`)의 삶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눈길은 나아가 “칠흑 밤마다 많은 맨발들이 숙명으로 국경을 넘고 넘는”(`꽃제비`) 탈북자들의 세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이병일은 최근 5·18문학상을 수상하며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젊고 진지하고 상당히 세련된 시인”(정희성, 추천사)이다.우리는 사물에 대한 남다른 사유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기원을 탐색해가는 그가 “감각의 파동과 삶의 기원을 동시에 노래하는 시인”(유성호, 해설)으로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견지하며 더욱 참신한 목소리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나갈 것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24

실천시선, 통권 200호 기념 `시선집` 발간

한국 현대시사의 전개과정에서 주요한 흐름을 대변해온 실천시선이 통권 200호를 맞아 기념 시선집을 펴냈다. 실천시선은 1984년 `시여 무기여`를 시작으로 최근 출간된 고형렬 시집 `유리체를 통과하다`까지 28년간 총 199권을 출간한 바 있다.오랫동안 실천시선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한 최두석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가 개별 시집들의 대표작 한 편씩만을 엄선해 총 12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이번 200호 기념 시선집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문학사)는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총화이자 한국시의 드넓은 지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200호 기념 시선집은 `시의 시대`인 80년대를 주도한 대표작품과 90년 이후 민중·노동·참여시의 변모 양상, 2000년 이후 스펙트럼이 넓어진 리얼리즘 시를 총망라한다.문익환의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백무산의` 삶의 거처` 등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를 비롯해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조용미의 `벽오동나무 꽃그늘 아래`, 박후기의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등의 서정시, 그리고 김사이, 최종천, 황규관 등 2000년 이후 쓰여진 리얼리즘적 경향의 시 등을 다양하게 엮었다.시선집의 1부는 1955년부터 1979년까지 등단한 시인들로 구성되었다.4·19와 5·16 등 한국 현대사의 큰 굴곡을 지나면서 형성된 시인들의 굳건한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2부는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등단한 시인들로 엮었다.특히 이 시기 일부 시인들은 1980년 광주항쟁이라는 커다란 외상을 충실히 기록하고 오롯이 기억해내는 것으로 극복과 치유의 한 방법을 꾀하기도 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8-17

한 페이지에 하나씩 등장하는 죽음

단 한 줄의 문안,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광고, 그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 국제적인 광고회사 MC Saatchi.GAD를 설립한 다니엘 포르의 첫 소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문학동네)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넘치는 유머와 활기, 때론 통찰력까지 엿보이는 감각적인 문장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제목 그대로 `죽음`이 한 페이지에 하나씩 등장하는, 기발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한 남자가 처절한 이별 통보를 받는다. 그의 여자친구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에다 실패작이라며 가시 같은 말을 쏟아내고 그의 등 뒤에 겨드랑이 좀 씻고 다니라는 애정 어린 충고도 보탠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하필이면 그때 건물 관리인이 지나가고, 조롱과 빈정거림이 섞인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다.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뚜렷하지 않은 이 남자에 대해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사실 여자친구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쯤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지금으로선 평균이거나 평균에 아주 조금 못 미치는 삼사십대 남성으로 추측할 뿐.쓰라린 실연의 상처를 안고 여자친구의 집에서 나오면서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자동차 사고를 목격한다. 자동차는 그가 불과 십 초 전 서 있던 자리를 들이받고, 차 밖으로 튕겨나간 운전자는 토마토처럼 찌그러졌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불운이 시작된 줄은. 자기 연민에 허덕이거나 `실연남` 특유의 비분강개하는 허세를 부릴 법도 하지만, 예상 밖에 그는 맥주 한 잔으로 털고 일어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한다. 다시 사랑에 빠지기 위해 여자를 만나고, 베스트셀러 소설을 써서 유명해지기 위해 열심히 영감을 떠올리고, 몸짱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운동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게 계획처럼, 마음처럼 쉬울 리 없다. 그의 노력에는 늘 2퍼센트가 부족하다. 계획은 실패의 연속이다. 게다가 자동차 사고를 목격한 후로 그의 일상에 `죽음`이, `한 페이지에 하나씩` 계속해서 가로놓인다. 아버지가 죽고, 옛 애인이 죽고, 키우던 화분이 죽고, 급기야 연쇄 살인 사건에 연루되기까지….소설 속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주인공의 주변에 죽음이 잇따른다. 주변 인물들이 죽거나, 주인공이 직접 죽음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그의 곁에 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들은 이런 실질적인 죽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 아이디어, 자본주의, 과거의 나 등 관념적인 죽음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어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말 그대로 한 페이지에 하나씩, 실질적인 죽음에서 상징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150번이 넘는 `죽음`이 작품 곳곳에 배치되지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스릴러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여자친구에게 버림받고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일상에 수많은 죽음이 개입하고, 그로 인해 복잡해지는 사건들이 다니엘 포르 특유의 유머와 한데 어우러진다. 이름이나 직업, 나이조차 뚜렷하지 않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금-여기`를 사는 현대 남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7

부끄러움 없으면 사회 구조물 허물어져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내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 제4권으로 `부끄러워야 사람이다`(글항아리)가 나왔다. 이번 책에서는 동양의 선현들이 스스로를 향해 수없이 던졌던 `치(恥)`라는 질문, 즉 `부끄러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권모술수가 일종의 경쟁논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후흑학`이 자기합리화의 보루로 여겨지는 요즘, `부끄러움`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질문으로 던진다는 것은 왠지 퇴화한 꼬리뼈를 만지작거리는 멋쩍음마저 준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꼬리를 치켜드는 때가 없다. 정의의 실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지난 2~3년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 대한 나이든 세대의 안타까움으로 세대간 소통을 이뤄냈다.만약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의`를 묻지도 못했을 것이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했을 때문이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진화론의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마음의 물리학에 속하는 듯하다. 부끄러움이라는 꼭지점이 없으면 마음이라는 구조물, 더 나아가 사회라는 구조물 또한 허물어지는 그런 존재.`부끄러워야 사람이다`는 부끄러움이 배면으로 밀려난 시대, 다시 한 번 그것을 개인과 사회의 윤리로 제대로 제시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 윤천근 교수는 윤동주의 `서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부끄러움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펼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7

“우리의 모습, 이 책 속에 녹아 흐르고…”

지난 2006년 프랑스 출판계는 특이한 제목의 책 한 권으로 술렁였다. 1979년 데뷔해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나, 그전까지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작가 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이 소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고, 프랑스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악어 신드롬`을 일으켰다.팡콜은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후속작인 `거북이들의 느린 왈츠`를 발표했고 `악어들의 노란 눈`의 뒷이야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2010년 발표한 `센트럴 파크의 다람쥐들은 월요일에 슬프다`는 초판부수 25만 부, 1개월 판매부수 40만 부라는 엄청난 기록을 낳았다.카트린 팡콜은 `악어-거북이-다람쥐`로 이어지는 이른바 `동물 3부작`의 성공으로 2009년 프랑스 판매순위 3위, 2010년에는 기욤 뮈소를 제치고 2위에 올랐고, 2011년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3위를 기록했다.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고 인기 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이 이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비밀은 무엇일까?이 작품은 프랑스 원서로는 650쪽, 한국어판으로도 1, 2권 합쳐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다.많은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탄탄한 줄거리 속에, 일상생활에 대한 치밀하고도 정확한 묘사와 현실감 넘치는 대화를 펼쳐 보이며 지루할 틈 없이 독자들을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또한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내세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다.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인물들이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엄마와 딸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과 성공에 대한 갈망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지금의 우리, 앞으로의 우리, 언젠가 될 수도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책 속에 녹아 있고, 소설의 무대인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이곳 한국에서도 현재진행중인 삶과 여러 가지 갈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그렇기에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외칠 수 있을 만큼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카트린 팡콜은 소설의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주변 이웃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중심 사건인 두 자매 이리스와 조제핀의 비밀 공모는 자매 중 한 명이 다른 자매의 죄를 뒤집어썼다는 신문 사회면 기사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깊이 있는 인물 관찰과 호기심 어린 조사, 현실성 있는 팡콜의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8-10

시대의 恨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

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고 재조명하고자 문학과지성사가 펴내고 있는 `이청준 전집` 시리즈 가운데 3권 중단편집 `꽃과 소리`(2012)가 출간됐다.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 `눈길`등 우리 시대의 한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하려 한평생 고뇌한 작가 이청준.말과 말의 질서를 통해 삶을 사랑하기를 문학의 궁극적 행위이자 가치로 놓았던 이청준의 작품 세계는 권력과 인간의 갈등, 집단과 개인의 불화, 언어와 사회의 길항 등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부터 고난을 견디는 장소로서의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과 그 밑바닥의 가장 복잡한 심사들의 뒤엉킴이라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구조에까지 멀리 그리고 깊게 닿아 인간의 한 생을 파노라마로 엮는다.다시 말해, `당신들의 천국`이 완성한 지성의 정치학으로부터 `서편제`가 풀어낸 토속적 정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청준 문학이 뻗어 있는 영역은 우리 삶의 전방위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이청준 전집 3권 `꽃과 소리`에 실린 7편의 중단편은 1960년대 초기 이청준 소설의 문제의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이번 작품집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영찬(계명대 국문과) 교수는 “이청준의 소설은 대부분 증상으로 표출되는 개인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구조”를 띠며, 바로 그 `의심과 호기심`이야말로 이청준의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라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0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20세기 중반의 냉전문학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민음사)에는 `오디세이아`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타지를 전전하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20년이라는 세월은 그가 그리워했던 고향 이타카를 낯설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 있어 고향은 자기 기억 속, 향수 속에 머물러 있는 곳일 뿐이었다.이레나와 조제프는 망명이라는 각자의 오디세이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그동안의 세월은 그들에게서 고향을 빼앗았다. 오디세우스와 이들 두 남녀에게 공통점이라면 고향에 대한`무지`이다.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라는 뜻이다. (중략) 이렇듯 어원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 몇몇 언어들은 이러한 향수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망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남편에게 이끌려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고향에 들른 이레나, 아내의 유언에 따라 고향을 찾은 조제프, 이들은 생경한 프라하의 풍경, 달라진 사회 체제, 그 속에 남아 살아가고 있는 옛 친구와 가족들의 무심함과 무지와 일상에 거부당한다.`향수`는 어쩌면 프랑스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노년을 맞은 쿤데라 자신의 경험, 그 뿌리 깊은 각성에서 나온 작품일지도 모른다. 또한 예전과 다르게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현대의 시간,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해 가는 일상들, 그 때문에 마음의 고향을 잃어 가는 우리 모든 망명 세대를 위한 `오디세이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윤희정기자

2012-08-10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며 소통”

여자들이, 엄마들이 카메라를 쥐면, 어떤 사진이 나오는가. 이들의 책에 실린 이미지는 그것을 보여준다. 부드러움, 따뜻함, 과하지 않게 일상을 즐기는 태도, 타인을 향한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 이봄의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문학동네)에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탐내는 광활한 하늘 등의 풍경사진과 인물과 자연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법과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이들은 조금 특별한 목차를 보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공간” “어린 시절” “평온함” “테이블 풍경” “타인과 함께 하는 풍경” “내가 사랑하는 동물”이 그것이다.이 책은 자신들이 얼마나 자신을 잘 찍는지, 어찌하면 우리처럼 잘 찍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술”만을 담은 책은 아니다. 사진술은 기본이다. 노출과 초점거리, 조리개 값 등의 카메라 설정을 팁으로 담긴 했으나,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어떤 마음”으로 담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 지점은 해외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한 이유이다. 사진 찍기가 취미가 아닌 사람도, 셔터 시스터스가 쓴 글들을 보면, 친한 친구의 앨범을 보며 즐거운 수다를 떠는 느낌을 안겨 준다. 동시에 모르는 사람의 사진이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힐링 포토북의 기능도 함께 한다.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며, “소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독자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 들 때, 카메라를 쥐고 세상을 향해 “click!(찰칵!)” 소리를 내라고 말하는 책이다. 그 순간 평범한 나의 일상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진이 되어 남을 것임을 알려준다./윤희정기자

2012-08-03

모든 사람은 미망에 붙들여 살아간다

철도 노동자 출신의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년 ~ 1951)는 `러시아의 조지 오웰`로 불린다.그의 작품 `코틀로반`이 혁명 후 러시아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로 소개되면서 그런 별칭을 얻었다.플라토노프의 작품들은 이미지와 상징의 외피를 입고 등장하는 철학적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인류사를 자연과의 대결 과정으로 파악했으며 인간과 자연, 시간과 공간, 몸과 정신의 분열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천착했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당대의 사회·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혁명 이후 경직된 소비에트 정권의 관료주의를 독특한 풍자로 증언한다. 그의 문학은 혁명의 격동기를 견딘 민중의 역사인 동시에 역사성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한 모색이었다.플라토노프가 예술적 재능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장르는 중단편이었다. 그의 심오한 철학적 탐구와 촌철살인의 풍자, 이를 표현하는 압축적이고 화려한 문체는 중단편과 잘 맞아떨어진다.`예피판의 갑문`(문학과지성사)은 플라토노프의 30년 문학세계의 변모를 볼 수 있는 작품 일곱 편을 엄선해 담았다.이 작품집을 통해 러시아 문학 특유의 철학적 고뇌와 인간적인 깊이, 기상천외한 해학과 독특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결코 인간에게 끝이란 없으며, 인간 영혼을 지도로 그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미망에 붙들려 살아가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창세기인 것이다.” `비밀스러운 인간` 중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03

선과 악, 종교와 세상의 충돌 그려

1억원 고료 제6회 세계문학상(2010)을 수상한 임성순 소설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실천문학사)가 출간됐다.첫 장편소설이자 수상작이었던 `컨설턴트`는 “죽음조차도 하나의 서비스 상품이거나 이른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이어 출간한 `문근영은 위험해`는 “만화 같은 스토리와 `B급 영화` 같은 기법”에 “인문학적 성찰”까지 덧입고 미디어와 그것이 파생시키는 왜곡된 이미지의 문제성을 우리에게 환기시켰다.이번 소설은 작가가 매스컴에서 누차 밝힌 바 있는 `회사 3부작`시리즈의 완결판인 셈이다.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 소설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뭇 진중하고 인간의 본성을 향해 좀더 고뇌하는 양상이다.이번 소설에서도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일종의 `조율자`로서 어김없이 `회사`(에이전트)가 등장하지만 충격적인 소재와 구성, 문장 등으로 앞선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녔다.자살하려는 자`와 `살아야만 하는 자` 즉 목숨에 대한 상반된 이해관계를 수요·공급의 경제적 타산으로 환산해 자본주의와 생명, 인간의 존엄 등을 하나씩 해부해 나간다.선택적 죽음(자살)을 도와주는 에이전트가 있다.이 회사는 전직 의사였던 범준이 세운 회사이다. 그는 `선택적 죽음`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의 장기를 적출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이식해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어느 날 그는 15년 전 아프리카 의료봉사 때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박현석 신부를 수술대에서 만나게 된다.15년 사이, 이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종교적 사명에 불타 젊음을 신에게 바친 박현석 신부와 의술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제3세계로 뛰어들었던 젊은 의사 최범준. 둘 다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동안 각각 이들이 겪었던 일련의 사건과 고뇌들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신과 인간의 관계, 이 세계의 불가해한 모순 구조를 고발하며 선과 악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이 소설은 성(性)과 속(俗)의 뒤얽힘 속에서 인간 구원과 초월성의 문제를 추리서사 양식을 통해 흥미롭게 펼쳐놓고 있다.▲ 소설가 임성순씨.이 소설은 성과 속의 양립된 구조 안에서 펼쳐진다. 성역 세계의 심벌로 표상되는 신부 박현석과 속의 세계로 대변되는 의사 최범준. 직업적으로 인간의 영과 육을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유관하지만 참혹한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는 제3세계를 겪으며 그들의 `구원관`에 일대의 변화가 일어난다.이 둘은 비슷한 시기에 내전 중인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나름의 `구원론`을 펼친다.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이상과 달랐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원래의 선한 동기인 의술과 신앙으로는 인간을 치유·구원하기는커녕 얄팍한 도덕과 공리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그리고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의 거대한 모순 벽 앞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구원론`은 무용지물인 것을 절감했다.박현석 신부는 사제로서 스스로의 치기 어린 위선을 발견하고, `신은 왜 인간의 고통에 묵묵부답인가`라는 회의 속에 신을 부정하며 처절히 무너져간다.의사인 범준 역시 정치·사상적 이데올로기 앞에 인간의 존엄이 유린되는, 살인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인간 광기의 현장을 경험하고는 `이제 목숨은 살 만한 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식의 새 구원론의 가치관을 입혀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조율하기 시작한다.그렇게 설립한 `회사`를 통해 작가는 왜 `불법`이 정당한 것처럼 여겨지고 이러한 극단적 처세가 오히려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종의 구석에서 자연스레 이 사회의 모순적 구조와 거기에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한 우리의 타성을 자극하고 있다.이 소설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상황의 에피소드들이 연쇄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로 짜져 있다. 죽으려는 자와 살아야 하는 자의 `삶`에 대한 상반된 의지, 민족 간 정치 지배 이데올로기가 빚은 대학살 등을 통해 너무도 신랄하게 우리 안에 감춰진 반인반수적 면모와 이에 대한 작가만의 `구원론`을 소설에 부려놓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03

진보진영, 통렬한 반성 있어야 집권 가능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새책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는 진보진영이 냉철한 비판과 통렬한 반성을 통해 자기혁신을 해야 집권도 가능하고 제대로 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김 교수는 그동안 꾸준히 진보진영과 개혁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조합운동의 합리적 진로에 대한 논쟁을 주도해왔다.이 책은 제1부 `노무현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 제2부 `한국의 진보는 거듭나야 한다`로 구성돼 있다. 이 책에는 가장 최근의 진보정권인 노무현정권의 정치적·정책적 오류에 대한 진단과 비판, 진정한 진보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정치사회적 선결조건에 대한 제안,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 바라본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나아갈 바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노무현을 넘어라`는 단순한 구호나, 친노세력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진보정치권과 야권에 절체절명의 과제이다.저자 김기원은 김대중정권에 이어 한국정치사에서 진보진영의 집권이라는 중대한 획을 그었던 노무현정권이지만 그 `공`보다는 `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점검할 때만이 집권한 후에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를 출발한다.이를 위해 저자는 인간 노무현의 개성과 장단점을 먼저 되새겨보고 1990년 3당합당 당시 통일민주당 해체식에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것을 시작으로 선거운동 시기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던 노무현이 실제 통치시기에는 왜 지지세력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오류를 범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윤희정기자

2012-07-27

당신의 입술이 사라지자 망설임은 맨발로 배회한다

이용임의 첫 시집 `안개주의보`(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2007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서 “상투성을 훌쩍 벗어난 독특함으로 미정형이긴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등단한 이용임은 소시민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등단작`엘리펀트맨` 이후로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을 그로테스크하게 이미지화하며 건조하고 이지적인 묘사로 눈길을 끌어왔다.시인의 이러한 특장점이 도드라진 시들이 모여 6년 만에 첫 시집으로 묶였다. 이 시집은 마치 하나하나 방문을 열 때마다 늘 똑같은 창문이 있는 비슷비슷한 방처럼 죽음과 이별의 기시감이 감도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 장이지는 이에 대해 “하나의 원풍경이 각기 다른 이상기후를 몰고 유령처럼 귀환한다”고 표현했다.“당신이라는 안개 속에서의 삶먼저 당신의 코가 사라진다물렁한 벽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검은 방에서채 스미지 못한 내 체취가 흘러나온다당신의 입술이 사라지자망설임은 맨발로 배회한다 허공을눈 가리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당신의 귀가 하나씩 흘러내린다나의 목소리가 차가운 물방울로 고인다”-`안개주의보` 부분이별 후 당신의 형상은 이제 흐리마리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상을 가득 메운 안개처럼 당신이 편재하는 세계를 화자는 살아가게 된다.깍지 낀 손(`일요일`)이 풀어지고 연리지(`일기예보`)가 끊어진 연인들은 `반쪽 무덤`이 된다. 이 시집의 표제작 `안개주의보`에서 묘사되는 안개 속에는 `죽은 당신`이 천천히 스러지고 있다. 손발이 뭉그러지고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숨결이 아득한 윤곽이 되는 당신의 안개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은 불가능하다. 화자가 숨 쉬는 세계의 모든 것이 녹고 묽어지고 흘러내리다 사라져버릴 뿐.시집 `안개주의보`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어떤 기시감과 반복 속에 섬뜩한 괴로움을 드러낸다.얼음처럼 차가운 슬픔, 거울 조각의 바다에 올려놓은 맨발처럼. 당신이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안개`를 둘러치고 `맑은 뼈`의 창문을 세우고 애도의 시간 속에 깊이 웅숭그리고 있던 그녀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비행”을 예감하며 스스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기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기 본연의 표정을 드러내고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새로 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7

인간의 죄책감과 의무, 그리고 존엄성 그려

전경린(51).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가득한 문장과 여성의 내면 심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그 이름만으로 독자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그가 2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출간했다.`최소한의 사랑`(웅진지식하우스)은 결핍이 가득한 시대에 던지는 전경린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설정, 환상적인 장치로 작가 전경린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소설이다.`최소한의 사랑`은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아니 사실은 일부러 버렸던, 배다른 여동생 유란을 찾아 나선 희수의 여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수십 년 동안 모든 가족들이 없는 사람 취급했던 유란. 죽어가는 새엄마의 부탁으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 나선 희수는 그녀가 북쪽 끝, 접경지대의 한 도시에 있음을 알고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유란은 자신이 지내던 집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의 흔적만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졌다. 희수는 유란의 방에서 지내며, 유란을 기다리며, 유란이라는 타인의 삶을 흉내 내기 시작하는데….이 소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 있는 `유실물 보관소`와 같다.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이상한 도시에 짐을 풀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체험 속에, 그동안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이 생각난다. 이 작품은 묻는다. 나에게는 꼭 찾아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는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최소한 것은 무엇인지? 독특한 통찰력으로 이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전경린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물음이다. “그 애를 찾아야 해, 최소한, 우린 그래야 해.”이 말을 꺼내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다.사랑 이야기를 지독하게 써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사랑 아닌 사랑 이야기가 있다. 온갖 형태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전경린. 그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하며, 얼마나 깊은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준 작가다.제목에 사랑이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사랑`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죄책감과 의무, 그리고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을 아는 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통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남녀 간의 감정 묘사를 주로 다룬다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볍게 넘어 다양한 인간관계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빛깔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무엇보다 삶의 아픔에 대한 독특한 통찰과 어디선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꼬집고 심하게 흔드는 문장의 힘은 더 강해졌다.“단추를 달면 돌아선 마음도 되돌릴 수 있어. 내 바느질은 특히 효험이 좋지.”주인공 희수에게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남편이 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셔츠에서는 매번 여지없이 단추가 하나씩 떨어져있다. 하나뿐인 열여섯 살 딸은 고모가 있는 호주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궁리만 한다. 떨어지는 단추처럼 인생의 한복판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꿰매어 달 용기도, 그렇다고 잘라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희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미션 하나가 주어진다.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새엄마가 희수의 팔을 절실하게 붙잡고 말한 것이다. “유란이 좀 찾아다오.”수십 년 동안 없는 사람 취급해 온 배다른 여동생 유란. 사실 희수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일곱 살 밖에 안 된 유란을 길가에 버렸었다. 다시 찾기는 했으나 그 날 이후로 유란은 다시는 집으로, 자기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최소한의 사랑`에 나오는 희수의 여정은 마치 떨어진 단추를 꿰매는 과정과 같다.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어쩌면 단추 같은 것들이다. 제대로 달려 있을 때는 작고 사소하지만, 떨어지면 그만큼 옷이 남루할 수 없고,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오기도 한다. 누구나 느껴보았으리라. 한 번 떨어진 단추를 찾아 단단히 제대로 꿰매 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도 사실은 이런 것임을 이 작품은 예리하게 포착해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7

의심과 불안이 도사리는 숲 이야기

2011년 동인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으로 빛나는 한국문학의 중추, 작가 편혜영이 자신의 다섯번째 책이자 두번째 장편소설인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 소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이야기는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전개된다.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작가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에 매료될 것이고, 결국 `복잡하고 막막한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다 그렇다`는 삶의 진실과 맞닥뜨릴 것이다.전작 `저녁의 구애`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냈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km,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서쪽 숲에 갔다`는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박근혜의 대항마 안철수·문재인 해부

2012년 한국사회는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후퇴하는 한국 정치와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도약하느냐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주체는 위정자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개개인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고 파악하고 선택해야 한다.현재 18대 대선에 출마하게 될 인물들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고 안철수 교수의 선택만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연 어떤 인물이 진흙에 빠진 한국 사회의 수레바퀴를 꺼내어 한국 사회를 양지로 안내할 것인가.`안철수냐 문재인이냐`(예옥출판)는 여러 후보들 중에서 안철수와 문재인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의 대항마로서 가장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안철수와 문재인을 전격 해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위로와 공감의 정치`그리고 `보편적 복지와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그런 한편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개혁의 방향과 프로그램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 두 인물의 국가 운영의 총체적인 역량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이 책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생각한다는 대 주제 아래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평가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다각적인 비교 분석을 펼치고 있다.이 기획에 참여한 필자는 가계 분야에서 활동하는 7명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고성국, 조정환, 황상민, 비케이 안, 박현수, 홍성식, 김영경씨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엮었다. 전체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장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위치를 점검하고, 2장에서는 486과 청년세대가 보는 두 인물의 면면을, 3장에서는 지도자로서 누가 더 적합한 인물인지에 관한 비판적인 분석을, 4장에서는 세계의 정치적 흐름을 통해서 보는 한국 정치의 현황을 제시하고 있다.또한 5장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가장 최근의 강연 및 콘서트 전문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현장에서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었다.한편 최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야권 후보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김두관에 관한 이력과 발언을 마련하였으며, 진중권·최영미(시인)·박원순·우석훈·김제동의 견해를 듣는 코너도 마련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책 잘 읽는 사람이 삶도 풍요롭게 살아”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독서와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로 매번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던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민음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던지는 독서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써먹을 데가 없는 거 같아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등.정혜윤은 독서 강연을 하며 숱하게 들어 왔던 이 여덟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이 질문들은 모두 누구나 원하는 `다른 삶`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질문들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지독한 독서가로 이름을 떨치는 저자가 그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느꼈던 모든 것이다.저자는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책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거리의 스승들`을 통해 질문에 답하며 그녀만의 독서론, 독서법, 그리고 인생론을 펼친다.늘 연재를 통해 먼저 독자를 만나고 후에 책으로 묶어 내는 방식이 익숙했던 저자가 처음으로 연재 없이 책을 출간해 독자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글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만큼 현재 삶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 하며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저자는 앞서 말한 책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이 단순히 `독서의 기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삶의 기술`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가령 가장 흔하게 던지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라는 질문은 우리가 단지 생존하고 연명하기 위해서만 한정된 하루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일부를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정혜윤은 이에 대해 `자율성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답한다. 우리가 하루 중 일부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욕망으로 기쁨에 몰두해 보내면,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내 영혼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결국 삶의 나머지 시간까지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정혜윤은 이 차이가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스탕달의 `적과 흑`, 베른하르트의 `야우레크` 등의 책과 실제로 인터뷰를 한 농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 놓는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질문 하나하나에 답하며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술`, 곧 `창조적 삶의 기술`을 말한다.“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등의 질문들도 모두 마찬가지다.모두 삶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이 질문들에는 “사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불안한데도 계속 살아가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숨어 있다.책 읽기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지금과 다른 삶에 대한 열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이 우리 삶에 있다고. 책을 잘(풍요롭게) 읽는 사람이 삶도 잘(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독서법 중 하나는 책에서 문자보다 삶을 먼저 읽는 것이다.혹자는 (대개 성공을 위한, 또는 리더가 되기 위한) 책 읽기에서 독해력이나 어휘력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훈련하거나 공부하기를 요구하지만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독서 능력은 공감하고 타인을 돌아보고 세상과 자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저자는 또한 책에서 삶을 읽어 내는 것만큼 삶에서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정혜윤은 오랫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처음엔 책에서 삶을 발견하고 감탄했지만 후에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책에서 봤거나 책보다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고 고백한다. 독서의 기술이 삶의 기술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기술이 독서의 기술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