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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권하는 사회의 무능력자를 위한 엘레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11-30 21:54 게재일 2012-11-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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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민음사 펴냄 최민석 지음, 228쪽<br>초능력자가 아니면 살 수 없는 현대사회의 통렬한 비판 담아<br>평범한 능력으로 의미있게 살고 보잘것없는 시간도 값짐 보여줘

“내가 지향하는 문학은 바로 `항문발모형(肛門發毛形, 울다가 웃다가 ***에 털이 나는)` 문학이다.”

201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은 최민석은 이렇게 선언하며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등단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를 통해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끝까지 읽게 만드는 필력이 예사롭지 않으며, 화자의 시선이나 화법 등에서 이미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부산말로는 할 수 없었던 이방인 부르스의 말로`, `쿨한 여자`, `누구신지….`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아 온 그는 마침내, 2012년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데 성공했다.

`능력자`(민음사)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없던 신인 무명작가 `남루한`이 전직 세계 챔피언 `공평수`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면서 진정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 남루한은 `순수문학`을 넘어 `청순문학`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청순한 작품을 써 왔으나, “청순하게 살아서는 입에 풀칠도 못한다는 거대한 문학 세계의 현실적 장벽”에 부딪혀 야설 작가로 전락하고 만다.

`한때는 온 땅을 뒤흔들었으나 지금은 멸종해 버린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이제는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 권투를 소재로 삼은 이 소설에서 전직 권투 선수 공평수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소설은 공평수의 삶을 마냥 우울하게만 그리지 않으며, 그에게 남아 있는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그려 낸다.

공평수는 말한다.

“비운의 선수, 게으른 천재, 시대가 몰라본 선수. 이런 말 들으면서 자위할지도 모르지. 그건 정말 허망한 자위일 뿐이야. 평생 그렇게 변명할 텐가.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스스로 “너절한 자아”라 할 만큼 추락해 있는 남루한은, 공평수가 복귀전을 치르면서 보여 주는 진정성으로 인해 “너절해져도 찢어지진 않는” 삶의 경지를 깨달으며 자신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능력자`는 초능력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대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사회는 결과 위주, 성과 위주, 경력 위주의 가치관을 갖고 오로지 승부에만 집착하며 결과만 기억한다.

땀 흘리는 과정 따윈 어느 누구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평범한 능력으론 살아남지 못한다. 사회는 능력자를 넘어선 `초능력자`를 원한다.

“학생들은 더 나은 대학을 위해, 청년들은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직장인은 더 높은 자리를 위해, 주부들은 더 넓은 집을 위해, 청춘들은 더 나은 배우자를 위해, 더욱 혹사하라고, 더욱 희생하라고” 몰아친다.

이렇게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일상, 우리의 진정한 삶을 잃고, 그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를 구성하는 볼트와 너트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저의 오늘은 모두 어제의 희생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저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라고 자기최면을 걸며 더더욱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그러나 공평수는 “평범함 능력만으로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고, 보잘것없는 시간들이 값지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난 끝까지 버텼어. 난 포기하지 않았어. 알지? 꼭 그렇게 써야 해.”

공평수가 남기는 마지막 말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승부를 떠나, 달리고, 땀이 나고, 눈물이 나는 그 과정, 비록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살아 있음 그 자체를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승리라는 진리를 가슴 깊이 전해 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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