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 권산 지음 반비 펴냄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그곳 풍경과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짧은 글과 함께 매일 아침 도시 사람들에게 전한다. 어느 날 낡은 것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선호하는 한 방송사 피디로부터 다큐멘터리를 위해 고택을 촬영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경상북도 봉화로 여행을 떠난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대규모 공사를 앞둔 300년 된 집과 그 집에 살고 있는 83세 권헌조 옹의 일상을 촬영한다. 성묘를 하고 집을 둘러보고 글을 쓰거나 누워 있는 노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공사에 들어간 집과, 병원에 머물고 계신 노인을 찍는다. 봉화 장(場) 풍경과 아버지 대신 집을 지키고 있는 아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는다. 권헌조 옹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문상을 간 것이 세 번째 여행이다.
노인의 죽음으로 어떤 가치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한탄하는 지은이에게 장례를 도우러 온 일꾼은 “못난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말을 들려준다.
네 번째 여행은 권헌조 옹의 뒤를 이어 송석헌에 머물기로 했던 아들 권동재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고 난 후 이뤄진다.
마지막 여행에서 만난 집은 공사를 모두 마치고 `이제 살림을 시작하면 된다`는 단아한 시그널을 보내는 듯하다.
네 번의 여행을 사진과 글로 담아낸 이 책은 `착하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낡음이 어떻게 새로움보다 진보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해준다.
안동 권씨 가문의 종손이자 8대째 살고 있는 고택 송석헌의 관리자. 효자. 온화한 아버지이자 남편. 재주가 많은 사람. 학문이 깊은 유학자.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사람. 고 권헌조 노인을 설명하기 위한 말들이지만 어느 것도 권 옹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다. 일견 생소해 보이는 여러 요소들의 합.
그것들이 이 권헌조라는 노인의 삶 속에서 하나로 온전히 통합돼 `아버지의 삶`을 이룬다. 그리고 이 사진집은 그 삶의 기록이다.
1700년대에 지어진 고택 송석헌은 그 자리에서 8대째 이어지는 `권씨 집안`의 삶을 지켜봐왔다. 1991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5호로 지정되고 2007년에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이 한옥은 “영남 지방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가옥”이다. 이 고택이 2010년 정부 지원으로 전면 보수에 들어가게 돼 마지막으로 원형을 기록하기 위한 다큐멘터리가 기획된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스틸사진을 찍기 위해 전라남도 구례에서 경상북도 봉화로, 짧고도 긴 여행을 시작한다.
집이 지어질 당시 주인이 벼슬을 하고 있지 않아 주고를 낮게 지었지만, 경사면에 지어져 앞쪽 기단을 높인 탓에 집은 낯설 정도로 높아 보인다. “전성기의 높이는 힘 있어 보이지만, 쇠락기의 높이는 불안정해 보인다. 그 불안정성은 관찰자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송석헌에서 나는 불안했다. 그 불안, 그 불안정이 송석헌이라는 낡은 집을 촬영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집으로 서서히 진입하며 지은이의 카메라는 이 한옥이 곳곳에 숨겨놓은 `사이`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먼지처럼 내려앉은, 이곳에 머물다 떠난 이들의 기억들도 포착한다.
노인과 집은 하나였다. 노인의 뒤를 이어 누군가 이 집을 계속 `살림`해줄 수 있을까. 집이 `사람`을,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느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