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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당(유명천)의 한시로 옛 지역 모습 엿보세요”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01-15 00:25 게재일 2013-01-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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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 유배문학 산책` 낸 향토사학자 이상준씨
▲ 향토사학자 이상준씨

유배는 가혹한 형벌이라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배가 오히려 선비들에게는 염치와 명분의 상징이었고, 자기완성의 공간이며 자기성찰의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유배인들이 머물다 간 유배지는 한 선비에게는 말 못할 고통의 장소였겠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문학의 산실이자 더 높은 문화의 보급 장소이기도 했다.

포항의 향토사학자 이상준씨가 15일 펴낸 `영일유배문학산책`(삼양문화사)은 포항(구 영일군) 일대에 유배를 온 사람들의 실상과 작품을 비롯해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퇴당 유명천이 남긴 `오천고사 10절`을 소개하고 있다.

14일 이씨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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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나.

◆유배를 온 이들이 지역에 남긴 문학은 문학성도 빼어날 뿐 아니라 그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혜, 민중들의 애환과 염원들이 담겨져 있다. 이들이 남긴 작품들이 지금에 와서는 고전문학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특히 숙동 대에 유배를 와서 영일현(옛 포항)과 인연을 맺었던 퇴당 유명천(1633~1755)이 쓴 `오천록`은 17세기 포항 인근의 지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유배지에서 저작된 문학작품은 유배지에서의 생활상과 접맥시켜 연구해야만 그 진면목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유배문학 작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작품이 창작된 현장을 답사하고, 그 지역에 남아있는 유적과 전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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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내가 위원으로 속해있는 포항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위원회를 중심으로 포항의 고전과 문화를 발굴해 오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에는 김윤규 한동대 교수가 죽장지역의 시가를 연구한 `죽장입암시가 산책`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펴낸 `영일유배문학 산책`은 그 두 번째인 것이다. 앞으로도 지역의 고전과 문화를 발굴하는 포항문화원의 사업은 해마다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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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천은 어떤 인물인가. ◆유명천은 공조·예조판서, 사헌부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1693년에는 조선시대 최상위 관계(官階)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694년 갑술옥사 때 남인이 실각함에 따라 처음에는 강진에 유배됐다가 그해 6월 영일현으로 이배됐다. 그때부터 1699년 2월까지 약 5년간 영일현에서 생활했다. 그가 남긴 시집 중 `오천록`은 5년간 영일에 머물면서 창작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 특히 `오천록`에 실린 `오천고사십절(烏川故事十絶)`은 17세기까지 존재하던 영일현의 빼어난 10가지 정경을 묘사해 둔 것이기 때문에 지역사 연구에는 더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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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이 책의 대부분은 퇴당이 영일 유배지에서 읊은 한시들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영일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과 전설들을 답사하면서 쓴 글이다.

우선 영일(구 영일군) 일대에 유배를 온 사람들의 실상과 작품들은 간략히 소개하고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퇴당이 남긴 `오천고사 10절`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그의 글로써 17세기 영일현의 실상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그 장소를 직접 답사해 현재의 형상과 비교를 했다. 그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혜, 민중들의 애환과 염원들이 담겨져 있음을 확인했다. 나아가 권력의 뒤안길에서 쓰인 그의 문학의 한 끝도 이해해 보려고 했다.

퇴당이 남긴 글 중에는 금위영과 어영청에서 사용하던 화살이 포항 죽도(竹島)에서 생산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져 있다. 궁중의 진상품으로 영일만에서 첫물로 잡힌 청어가 사용됐다는 것. 특히 오천 갈평리 여석굴에서 나는 숫돌은 전국에서 가장 빼어나서 진상품으로 상납됐다는 사실도 적혀있다.

그는 또 조정에 바칠 공물을 채굴하느라 영일현 사람들이 겪는 참상을 묘사하기도 했다. 천길 깊은 곳까지 굴을 파고 들어가야 양질의 여석이 채취되는 실정이었기에 매몰사고가 빈발해 연달아 장정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구중궁궐에 계신 왕이 알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시에 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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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에 따른 기대 효과가 있다면. ◆유구한 세월 속에서 어느 한 시점의 손길과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과거와 교감하는 일이며, 나아가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과 교감하는 일이다. 그들이 없었던들 오늘의 우리들이 어찌 있겠는가. 이 책을 발간한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유배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었기에 유배인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유배지에 남기고 간 음영들은 때로는 인생의 격랑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줄 수가 있다.

유배객들이 남긴 유배문학은 조선 시대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배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유배지에서 겪은 체험과 정신적 충격을 문학화한 작품이다. 이런 문학들은 유배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주제로 한 기행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실상과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사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지역에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치인 많은 유배객들이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안은 채 살다가 갔다. 그중에는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 등 이름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조선시대 걸출한 인물들도 많았다. 어떤 이는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은 고관대작들도 있었다. 이들이 지역에 남긴 문학은 문학성도 빼어날 뿐 아니라 그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혜, 민중들의 애환과 염원들이 담겨있었다.

특히 퇴당의 글로 인해 우리는 17세기의 영일현의 모습과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의 모습,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시대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도 가져다 줬다.

퇴당이 영일을 떠난 316년 후인 지난 2010년 포항시는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포항 12경`을 선정했다.

영일의 유배문학은 포항이 `역사·문화의 도시`로 거듭나는데 꼭 필요한 또 다른 자산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연구와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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