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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하지만 `안녕`하지 않은 날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11-30 21:54 게재일 2012-11-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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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그자리` 문학동네 펴냄 이혜경 지음, 276쪽<br>`틈새` 이후 6년 만의 작품집<br>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의 아버지의 첫 발자국과 같아”<br>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느리고 조용하게, 치밀하지만 따뜻하게 일상적 삶의 한 면을, 누군가의 아픈 마음자리를 가만히 더듬어보는 작가 이혜경의 새 소설집 `너 없는 그자리`가 출간됐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틈새`(2006) 이후 6년 만의 작품집이다. 6년 그리고 아홉 편의 단편, 워낙 과작(寡作)인 작가의 유독 더딘 걸음이지만 그 발자국은 여전히, 보다 더 깊고 단단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작가가 옮겨놓은 그 한 발 한 발, 선명하게 남아 있는 발자국은 깊고 넉넉하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밤사이 큰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내어놓은 아버지의 첫 발자국과도 같다. 우리는 그가 찍어놓은 발자국 위에 내 발을 포개어놓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된다. 감당하지 못할 폭설이 아니어서, 재앙으로 이어지는 큰눈이 아니라서, 그것은 얼핏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발자국 위에 제 발을 포개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앞서간 이가 내어놓은 그 발자국이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더운 온기를 품고 있는 것인지.

“당신, 잘 지내요?

사건사고가 차고 넘치는 요즘, 뉴스거리와는 (다행히) 상관없는 우리의 일상은 일견 무탈해 보인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지나가고, 또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면서 우리는 잠이 든다. 하지만 바로 같은 순간에, 늘 같아 보이는, 평온해 보이는 그 일상과 함께 자라나는 불안과 상처의 자리 역시,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그늘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그리고, 축제`

그런 날들이 있다.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스스로를 그늘 안에 가둔 날들. 그것은 때로 무사한 일상에 날아든 뜻하지 않은 사고가 아니라, 어느새 한켠에 자리를 잡아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늘이기도 하다. `무사`하지만 `안녕`하지는 않은 날들의.

이혜경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런 일상의 한가운데서 문득 건네받는 안부인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 잘 지내요?` 작가의 밝은 눈은, 우리 안의 그늘과 상처와 허기를 미리 보고 더듬어, 오히려 우리를 조용히 무너뜨린다.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은 일상, 잠들기 전이면 또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가슴 쓸어내리는 동시에,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한숨 쉬는 날들.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위에 드리워진 그늘 안에서 우리는 늘 흔들리고 불안하다. 단단하게 발붙이고 있는 듯 보이는 두 다리는 실은 늘 가늘게 떨리고, 일상이라는 바닥이 과연 안전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때문에, `무사`한 하루중에 누군가 문득, 당신 잘 지내요? 안부를 물어오면, 우리는 때로,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싶다. 그제야 우리가 `안녕`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 작가 이혜경씨.

해서, 이혜경의 소설이 건네는 이 안부인사는 입밖으로 내지 않은 더 많은 말들을 삼키고 있다. `알아요, 당신. 괜찮지 않다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발버둥치며 울고 싶다는 거. 하지만 당신,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우리.`

세상 밖으로 달아나던 오후, 시장에서였다. “내 손이 이렇게 커지는 걸 보니, 아가씨가 무척 허기졌나보우.” 그러면서 떡장사가 내민 떡은, 치른 값의 두 배가 되는 양이었다. 그 떡이 간식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임을, 어떻게 알아본 걸까. 사람의 허기를 눈 밝게 알아보고 어루만지는 손, 내가 쓰는 글이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오래전 작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길 위의 집`작가의 말) 소원한 대로 그는 무탈한 일상에도 상처를 입는 우리에게 더운 손이 되려 하고 `약풀`이 되려 하지만,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어쩌면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위로와 공감의 말이 어차피 제대로 가 닿지 않을 것임을. 함부로 입밖으로 내놓은 위로의 말이 오히려 또다른 독이 될 수도 있음을. 한 걸음 햇살 안으로 걸음을 떼어놓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이다. 다른 누구의 손에 이끌려서는 그늘과 맞닿아 있는 그 얇은 `금`을 넘을 수 없는 것이다. 대신 그는 그렇게 별뜻 없어 보이는, 무심해 보이는 안부인사 한마디로 온기를 전한다. 그 자리에 그렇게 흔들리며 견뎌내는 것이 우리의 삶일지 모른다고. 저마다의 앞에 놓인 그 강은 결국 혼자 건너야 하는 것이라고.

불가항력을 딛고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항력에 한 발을 내어준 채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짜 삶다운 것이라고, 그리고 그 삶다움을 재현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문학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려는 듯하다. 제 자신의 불행을 모른척하기 힘들다는 앎의 불가항력,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삶의 불가항력, 그리고 어떤 위로나 공감으로도 좀처럼 완벽해질 수 없다는 관계의 불가항력. 작가는 이 모든 불가항력을 디딘 채로만 우리 삶이 언젠가는 진정한 축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연정(문학평론가) 작가의 문장들은 아무 멋부림 없이, 섣부른 위로의 몸짓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던져져 있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한 편 한 편이 이미 어떤 `틈새`를 드러내고 `파문`을 만든다. 그것은 결국 호수의 저 끝까지 닿은 뒤에야 다시 고요한 수면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무사`한 일상을 흔드는 모든 불가항력을 깨닫게 함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위로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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