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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오늘까지 이끈 것은 `어제의 내일`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11-09 21:15 게재일 2012-11-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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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수선화가 있어요` 문학과지성사 펴냄 홍영철 지음
하나의 추억으로 서 있을 삶의 분위기를 담담한 어조로 직조해내는 시인 홍영철이 7년 만에 네번째 시집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시인은 35년이라는 두툼한 시력(詩歷)을 쌓아오는 동안 일상적 삶의 풍경을 통해 생의 공허와 허무를 읊으면서도 결국엔 폭력과 상처를 모두 껴안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시인은 허무의 정조가 가득한 화법으로 오늘을 배회하는 듯하지만 도처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 어제의 추억과 내일의 희망을 탁본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아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피상과 추상의 옅고 얕은 흔적에서 `수선화`라는 구체를 떠내기까지 시인이 감내했을 고뇌가 엿보인다.

이 시집을 여는 첫번째 시 `가슴을 열어보니`는 화자의 이력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 사막을 지나`온 듯한 `청춘`이 있다. 그 청춘의 가슴에는 `샘도 풀도 나무도 오아시스`도 사라지고 `마른 모래바람`만 가득하다. `먼 사막`은 청춘이(내가) 지나온 `어제`를 말한다. 나의 `어제`에는 혼내고 겁주던 아버지(`그러면 아프잖아요`)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시던 어머니(`슬픈 컵라면`)가 있다. 그런가하면 `꽃잎 밟으며 꽃향내 따라`가버린 `그 사람`은 내게 지독한 풀냄새만 남겨놓았다(`풀냄새`). 아픔을 하소연하고 슬퍼서 울고 상실에 절망하던 나는 어느덧 오늘에 와 있다. 나를 오늘까지 이끈 것은 어제의 내일, 즉 오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것은 구원의 열망이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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