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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의 모습, 이 책 속에 녹아 흐르고…”

지난 2006년 프랑스 출판계는 특이한 제목의 책 한 권으로 술렁였다. 1979년 데뷔해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나, 그전까지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작가 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이 소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고, 프랑스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악어 신드롬`을 일으켰다.팡콜은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후속작인 `거북이들의 느린 왈츠`를 발표했고 `악어들의 노란 눈`의 뒷이야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2010년 발표한 `센트럴 파크의 다람쥐들은 월요일에 슬프다`는 초판부수 25만 부, 1개월 판매부수 40만 부라는 엄청난 기록을 낳았다.카트린 팡콜은 `악어-거북이-다람쥐`로 이어지는 이른바 `동물 3부작`의 성공으로 2009년 프랑스 판매순위 3위, 2010년에는 기욤 뮈소를 제치고 2위에 올랐고, 2011년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3위를 기록했다.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고 인기 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이 이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비밀은 무엇일까?이 작품은 프랑스 원서로는 650쪽, 한국어판으로도 1, 2권 합쳐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다.많은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탄탄한 줄거리 속에, 일상생활에 대한 치밀하고도 정확한 묘사와 현실감 넘치는 대화를 펼쳐 보이며 지루할 틈 없이 독자들을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또한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내세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다.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인물들이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엄마와 딸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과 성공에 대한 갈망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지금의 우리, 앞으로의 우리, 언젠가 될 수도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책 속에 녹아 있고, 소설의 무대인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이곳 한국에서도 현재진행중인 삶과 여러 가지 갈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그렇기에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외칠 수 있을 만큼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카트린 팡콜은 소설의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주변 이웃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중심 사건인 두 자매 이리스와 조제핀의 비밀 공모는 자매 중 한 명이 다른 자매의 죄를 뒤집어썼다는 신문 사회면 기사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깊이 있는 인물 관찰과 호기심 어린 조사, 현실성 있는 팡콜의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8-10

시대의 恨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

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고 재조명하고자 문학과지성사가 펴내고 있는 `이청준 전집` 시리즈 가운데 3권 중단편집 `꽃과 소리`(2012)가 출간됐다.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 `눈길`등 우리 시대의 한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하려 한평생 고뇌한 작가 이청준.말과 말의 질서를 통해 삶을 사랑하기를 문학의 궁극적 행위이자 가치로 놓았던 이청준의 작품 세계는 권력과 인간의 갈등, 집단과 개인의 불화, 언어와 사회의 길항 등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부터 고난을 견디는 장소로서의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과 그 밑바닥의 가장 복잡한 심사들의 뒤엉킴이라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구조에까지 멀리 그리고 깊게 닿아 인간의 한 생을 파노라마로 엮는다.다시 말해, `당신들의 천국`이 완성한 지성의 정치학으로부터 `서편제`가 풀어낸 토속적 정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청준 문학이 뻗어 있는 영역은 우리 삶의 전방위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이청준 전집 3권 `꽃과 소리`에 실린 7편의 중단편은 1960년대 초기 이청준 소설의 문제의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이번 작품집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영찬(계명대 국문과) 교수는 “이청준의 소설은 대부분 증상으로 표출되는 개인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구조”를 띠며, 바로 그 `의심과 호기심`이야말로 이청준의 소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라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10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20세기 중반의 냉전문학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민음사)에는 `오디세이아`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타지를 전전하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20년이라는 세월은 그가 그리워했던 고향 이타카를 낯설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 있어 고향은 자기 기억 속, 향수 속에 머물러 있는 곳일 뿐이었다.이레나와 조제프는 망명이라는 각자의 오디세이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그동안의 세월은 그들에게서 고향을 빼앗았다. 오디세우스와 이들 두 남녀에게 공통점이라면 고향에 대한`무지`이다.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라는 뜻이다. (중략) 이렇듯 어원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 몇몇 언어들은 이러한 향수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망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남편에게 이끌려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고향에 들른 이레나, 아내의 유언에 따라 고향을 찾은 조제프, 이들은 생경한 프라하의 풍경, 달라진 사회 체제, 그 속에 남아 살아가고 있는 옛 친구와 가족들의 무심함과 무지와 일상에 거부당한다.`향수`는 어쩌면 프랑스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노년을 맞은 쿤데라 자신의 경험, 그 뿌리 깊은 각성에서 나온 작품일지도 모른다. 또한 예전과 다르게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현대의 시간,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해 가는 일상들, 그 때문에 마음의 고향을 잃어 가는 우리 모든 망명 세대를 위한 `오디세이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윤희정기자

2012-08-10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며 소통”

여자들이, 엄마들이 카메라를 쥐면, 어떤 사진이 나오는가. 이들의 책에 실린 이미지는 그것을 보여준다. 부드러움, 따뜻함, 과하지 않게 일상을 즐기는 태도, 타인을 향한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 이봄의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문학동네)에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탐내는 광활한 하늘 등의 풍경사진과 인물과 자연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법과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이들은 조금 특별한 목차를 보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공간” “어린 시절” “평온함” “테이블 풍경” “타인과 함께 하는 풍경” “내가 사랑하는 동물”이 그것이다.이 책은 자신들이 얼마나 자신을 잘 찍는지, 어찌하면 우리처럼 잘 찍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술”만을 담은 책은 아니다. 사진술은 기본이다. 노출과 초점거리, 조리개 값 등의 카메라 설정을 팁으로 담긴 했으나,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어떤 마음”으로 담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 지점은 해외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한 이유이다. 사진 찍기가 취미가 아닌 사람도, 셔터 시스터스가 쓴 글들을 보면, 친한 친구의 앨범을 보며 즐거운 수다를 떠는 느낌을 안겨 준다. 동시에 모르는 사람의 사진이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힐링 포토북의 기능도 함께 한다.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며, “소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독자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 들 때, 카메라를 쥐고 세상을 향해 “click!(찰칵!)” 소리를 내라고 말하는 책이다. 그 순간 평범한 나의 일상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진이 되어 남을 것임을 알려준다./윤희정기자

2012-08-03

모든 사람은 미망에 붙들여 살아간다

철도 노동자 출신의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년 ~ 1951)는 `러시아의 조지 오웰`로 불린다.그의 작품 `코틀로반`이 혁명 후 러시아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로 소개되면서 그런 별칭을 얻었다.플라토노프의 작품들은 이미지와 상징의 외피를 입고 등장하는 철학적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인류사를 자연과의 대결 과정으로 파악했으며 인간과 자연, 시간과 공간, 몸과 정신의 분열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천착했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당대의 사회·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혁명 이후 경직된 소비에트 정권의 관료주의를 독특한 풍자로 증언한다. 그의 문학은 혁명의 격동기를 견딘 민중의 역사인 동시에 역사성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한 모색이었다.플라토노프가 예술적 재능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장르는 중단편이었다. 그의 심오한 철학적 탐구와 촌철살인의 풍자, 이를 표현하는 압축적이고 화려한 문체는 중단편과 잘 맞아떨어진다.`예피판의 갑문`(문학과지성사)은 플라토노프의 30년 문학세계의 변모를 볼 수 있는 작품 일곱 편을 엄선해 담았다.이 작품집을 통해 러시아 문학 특유의 철학적 고뇌와 인간적인 깊이, 기상천외한 해학과 독특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결코 인간에게 끝이란 없으며, 인간 영혼을 지도로 그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미망에 붙들려 살아가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창세기인 것이다.” `비밀스러운 인간` 중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03

선과 악, 종교와 세상의 충돌 그려

1억원 고료 제6회 세계문학상(2010)을 수상한 임성순 소설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실천문학사)가 출간됐다.첫 장편소설이자 수상작이었던 `컨설턴트`는 “죽음조차도 하나의 서비스 상품이거나 이른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이어 출간한 `문근영은 위험해`는 “만화 같은 스토리와 `B급 영화` 같은 기법”에 “인문학적 성찰”까지 덧입고 미디어와 그것이 파생시키는 왜곡된 이미지의 문제성을 우리에게 환기시켰다.이번 소설은 작가가 매스컴에서 누차 밝힌 바 있는 `회사 3부작`시리즈의 완결판인 셈이다.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이번 소설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뭇 진중하고 인간의 본성을 향해 좀더 고뇌하는 양상이다.이번 소설에서도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일종의 `조율자`로서 어김없이 `회사`(에이전트)가 등장하지만 충격적인 소재와 구성, 문장 등으로 앞선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녔다.자살하려는 자`와 `살아야만 하는 자` 즉 목숨에 대한 상반된 이해관계를 수요·공급의 경제적 타산으로 환산해 자본주의와 생명, 인간의 존엄 등을 하나씩 해부해 나간다.선택적 죽음(자살)을 도와주는 에이전트가 있다.이 회사는 전직 의사였던 범준이 세운 회사이다. 그는 `선택적 죽음`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의 장기를 적출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이식해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어느 날 그는 15년 전 아프리카 의료봉사 때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박현석 신부를 수술대에서 만나게 된다.15년 사이, 이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종교적 사명에 불타 젊음을 신에게 바친 박현석 신부와 의술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제3세계로 뛰어들었던 젊은 의사 최범준. 둘 다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동안 각각 이들이 겪었던 일련의 사건과 고뇌들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신과 인간의 관계, 이 세계의 불가해한 모순 구조를 고발하며 선과 악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이 소설은 성(性)과 속(俗)의 뒤얽힘 속에서 인간 구원과 초월성의 문제를 추리서사 양식을 통해 흥미롭게 펼쳐놓고 있다.▲ 소설가 임성순씨.이 소설은 성과 속의 양립된 구조 안에서 펼쳐진다. 성역 세계의 심벌로 표상되는 신부 박현석과 속의 세계로 대변되는 의사 최범준. 직업적으로 인간의 영과 육을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유관하지만 참혹한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는 제3세계를 겪으며 그들의 `구원관`에 일대의 변화가 일어난다.이 둘은 비슷한 시기에 내전 중인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나름의 `구원론`을 펼친다.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이상과 달랐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원래의 선한 동기인 의술과 신앙으로는 인간을 치유·구원하기는커녕 얄팍한 도덕과 공리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그리고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의 거대한 모순 벽 앞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구원론`은 무용지물인 것을 절감했다.박현석 신부는 사제로서 스스로의 치기 어린 위선을 발견하고, `신은 왜 인간의 고통에 묵묵부답인가`라는 회의 속에 신을 부정하며 처절히 무너져간다.의사인 범준 역시 정치·사상적 이데올로기 앞에 인간의 존엄이 유린되는, 살인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인간 광기의 현장을 경험하고는 `이제 목숨은 살 만한 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식의 새 구원론의 가치관을 입혀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조율하기 시작한다.그렇게 설립한 `회사`를 통해 작가는 왜 `불법`이 정당한 것처럼 여겨지고 이러한 극단적 처세가 오히려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종의 구석에서 자연스레 이 사회의 모순적 구조와 거기에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한 우리의 타성을 자극하고 있다.이 소설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상황의 에피소드들이 연쇄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로 짜져 있다. 죽으려는 자와 살아야 하는 자의 `삶`에 대한 상반된 의지, 민족 간 정치 지배 이데올로기가 빚은 대학살 등을 통해 너무도 신랄하게 우리 안에 감춰진 반인반수적 면모와 이에 대한 작가만의 `구원론`을 소설에 부려놓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8-03

진보진영, 통렬한 반성 있어야 집권 가능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새책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는 진보진영이 냉철한 비판과 통렬한 반성을 통해 자기혁신을 해야 집권도 가능하고 제대로 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김 교수는 그동안 꾸준히 진보진영과 개혁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조합운동의 합리적 진로에 대한 논쟁을 주도해왔다.이 책은 제1부 `노무현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 제2부 `한국의 진보는 거듭나야 한다`로 구성돼 있다. 이 책에는 가장 최근의 진보정권인 노무현정권의 정치적·정책적 오류에 대한 진단과 비판, 진정한 진보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정치사회적 선결조건에 대한 제안,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 바라본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나아갈 바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노무현을 넘어라`는 단순한 구호나, 친노세력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진보정치권과 야권에 절체절명의 과제이다.저자 김기원은 김대중정권에 이어 한국정치사에서 진보진영의 집권이라는 중대한 획을 그었던 노무현정권이지만 그 `공`보다는 `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점검할 때만이 집권한 후에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를 출발한다.이를 위해 저자는 인간 노무현의 개성과 장단점을 먼저 되새겨보고 1990년 3당합당 당시 통일민주당 해체식에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것을 시작으로 선거운동 시기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던 노무현이 실제 통치시기에는 왜 지지세력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오류를 범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윤희정기자

2012-07-27

당신의 입술이 사라지자 망설임은 맨발로 배회한다

이용임의 첫 시집 `안개주의보`(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2007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서 “상투성을 훌쩍 벗어난 독특함으로 미정형이긴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등단한 이용임은 소시민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등단작`엘리펀트맨` 이후로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을 그로테스크하게 이미지화하며 건조하고 이지적인 묘사로 눈길을 끌어왔다.시인의 이러한 특장점이 도드라진 시들이 모여 6년 만에 첫 시집으로 묶였다. 이 시집은 마치 하나하나 방문을 열 때마다 늘 똑같은 창문이 있는 비슷비슷한 방처럼 죽음과 이별의 기시감이 감도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 장이지는 이에 대해 “하나의 원풍경이 각기 다른 이상기후를 몰고 유령처럼 귀환한다”고 표현했다.“당신이라는 안개 속에서의 삶먼저 당신의 코가 사라진다물렁한 벽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검은 방에서채 스미지 못한 내 체취가 흘러나온다당신의 입술이 사라지자망설임은 맨발로 배회한다 허공을눈 가리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당신의 귀가 하나씩 흘러내린다나의 목소리가 차가운 물방울로 고인다”-`안개주의보` 부분이별 후 당신의 형상은 이제 흐리마리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상을 가득 메운 안개처럼 당신이 편재하는 세계를 화자는 살아가게 된다.깍지 낀 손(`일요일`)이 풀어지고 연리지(`일기예보`)가 끊어진 연인들은 `반쪽 무덤`이 된다. 이 시집의 표제작 `안개주의보`에서 묘사되는 안개 속에는 `죽은 당신`이 천천히 스러지고 있다. 손발이 뭉그러지고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숨결이 아득한 윤곽이 되는 당신의 안개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은 불가능하다. 화자가 숨 쉬는 세계의 모든 것이 녹고 묽어지고 흘러내리다 사라져버릴 뿐.시집 `안개주의보`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어떤 기시감과 반복 속에 섬뜩한 괴로움을 드러낸다.얼음처럼 차가운 슬픔, 거울 조각의 바다에 올려놓은 맨발처럼. 당신이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안개`를 둘러치고 `맑은 뼈`의 창문을 세우고 애도의 시간 속에 깊이 웅숭그리고 있던 그녀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비행”을 예감하며 스스로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기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기 본연의 표정을 드러내고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새로 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7

인간의 죄책감과 의무, 그리고 존엄성 그려

전경린(51).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가득한 문장과 여성의 내면 심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그 이름만으로 독자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그가 2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출간했다.`최소한의 사랑`(웅진지식하우스)은 결핍이 가득한 시대에 던지는 전경린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설정, 환상적인 장치로 작가 전경린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소설이다.`최소한의 사랑`은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아니 사실은 일부러 버렸던, 배다른 여동생 유란을 찾아 나선 희수의 여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수십 년 동안 모든 가족들이 없는 사람 취급했던 유란. 죽어가는 새엄마의 부탁으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 나선 희수는 그녀가 북쪽 끝, 접경지대의 한 도시에 있음을 알고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유란은 자신이 지내던 집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의 흔적만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졌다. 희수는 유란의 방에서 지내며, 유란을 기다리며, 유란이라는 타인의 삶을 흉내 내기 시작하는데….이 소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 있는 `유실물 보관소`와 같다.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이상한 도시에 짐을 풀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체험 속에, 그동안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이 생각난다. 이 작품은 묻는다. 나에게는 꼭 찾아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는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최소한 것은 무엇인지? 독특한 통찰력으로 이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전경린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물음이다. “그 애를 찾아야 해, 최소한, 우린 그래야 해.”이 말을 꺼내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다.사랑 이야기를 지독하게 써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사랑 아닌 사랑 이야기가 있다. 온갖 형태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전경린. 그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하며, 얼마나 깊은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준 작가다.제목에 사랑이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사랑`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죄책감과 의무, 그리고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을 아는 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통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남녀 간의 감정 묘사를 주로 다룬다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볍게 넘어 다양한 인간관계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빛깔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무엇보다 삶의 아픔에 대한 독특한 통찰과 어디선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꼬집고 심하게 흔드는 문장의 힘은 더 강해졌다.“단추를 달면 돌아선 마음도 되돌릴 수 있어. 내 바느질은 특히 효험이 좋지.”주인공 희수에게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남편이 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셔츠에서는 매번 여지없이 단추가 하나씩 떨어져있다. 하나뿐인 열여섯 살 딸은 고모가 있는 호주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궁리만 한다. 떨어지는 단추처럼 인생의 한복판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꿰매어 달 용기도, 그렇다고 잘라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희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미션 하나가 주어진다.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새엄마가 희수의 팔을 절실하게 붙잡고 말한 것이다. “유란이 좀 찾아다오.”수십 년 동안 없는 사람 취급해 온 배다른 여동생 유란. 사실 희수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일곱 살 밖에 안 된 유란을 길가에 버렸었다. 다시 찾기는 했으나 그 날 이후로 유란은 다시는 집으로, 자기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최소한의 사랑`에 나오는 희수의 여정은 마치 떨어진 단추를 꿰매는 과정과 같다.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어쩌면 단추 같은 것들이다. 제대로 달려 있을 때는 작고 사소하지만, 떨어지면 그만큼 옷이 남루할 수 없고,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오기도 한다. 누구나 느껴보았으리라. 한 번 떨어진 단추를 찾아 단단히 제대로 꿰매 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도 사실은 이런 것임을 이 작품은 예리하게 포착해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7

의심과 불안이 도사리는 숲 이야기

2011년 동인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으로 빛나는 한국문학의 중추, 작가 편혜영이 자신의 다섯번째 책이자 두번째 장편소설인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 소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이야기는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전개된다.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작가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에 매료될 것이고, 결국 `복잡하고 막막한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다 그렇다`는 삶의 진실과 맞닥뜨릴 것이다.전작 `저녁의 구애`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냈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km,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서쪽 숲에 갔다`는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박근혜의 대항마 안철수·문재인 해부

2012년 한국사회는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후퇴하는 한국 정치와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도약하느냐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주체는 위정자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개개인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고 파악하고 선택해야 한다.현재 18대 대선에 출마하게 될 인물들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고 안철수 교수의 선택만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연 어떤 인물이 진흙에 빠진 한국 사회의 수레바퀴를 꺼내어 한국 사회를 양지로 안내할 것인가.`안철수냐 문재인이냐`(예옥출판)는 여러 후보들 중에서 안철수와 문재인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의 대항마로서 가장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안철수와 문재인을 전격 해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위로와 공감의 정치`그리고 `보편적 복지와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그런 한편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개혁의 방향과 프로그램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 두 인물의 국가 운영의 총체적인 역량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이 책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생각한다는 대 주제 아래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평가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다각적인 비교 분석을 펼치고 있다.이 기획에 참여한 필자는 가계 분야에서 활동하는 7명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고성국, 조정환, 황상민, 비케이 안, 박현수, 홍성식, 김영경씨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엮었다. 전체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장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위치를 점검하고, 2장에서는 486과 청년세대가 보는 두 인물의 면면을, 3장에서는 지도자로서 누가 더 적합한 인물인지에 관한 비판적인 분석을, 4장에서는 세계의 정치적 흐름을 통해서 보는 한국 정치의 현황을 제시하고 있다.또한 5장에서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가장 최근의 강연 및 콘서트 전문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현장에서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었다.한편 최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야권 후보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김두관에 관한 이력과 발언을 마련하였으며, 진중권·최영미(시인)·박원순·우석훈·김제동의 견해를 듣는 코너도 마련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책 잘 읽는 사람이 삶도 풍요롭게 살아”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독서와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로 매번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던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민음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던지는 독서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써먹을 데가 없는 거 같아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등.정혜윤은 독서 강연을 하며 숱하게 들어 왔던 이 여덟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이 질문들은 모두 누구나 원하는 `다른 삶`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질문들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지독한 독서가로 이름을 떨치는 저자가 그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느꼈던 모든 것이다.저자는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책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거리의 스승들`을 통해 질문에 답하며 그녀만의 독서론, 독서법, 그리고 인생론을 펼친다.늘 연재를 통해 먼저 독자를 만나고 후에 책으로 묶어 내는 방식이 익숙했던 저자가 처음으로 연재 없이 책을 출간해 독자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글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만큼 현재 삶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 하며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저자는 앞서 말한 책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이 단순히 `독서의 기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삶의 기술`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가령 가장 흔하게 던지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라는 질문은 우리가 단지 생존하고 연명하기 위해서만 한정된 하루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일부를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정혜윤은 이에 대해 `자율성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답한다. 우리가 하루 중 일부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욕망으로 기쁨에 몰두해 보내면,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내 영혼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결국 삶의 나머지 시간까지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정혜윤은 이 차이가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스탕달의 `적과 흑`, 베른하르트의 `야우레크` 등의 책과 실제로 인터뷰를 한 농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 놓는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질문 하나하나에 답하며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술`, 곧 `창조적 삶의 기술`을 말한다.“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등의 질문들도 모두 마찬가지다.모두 삶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이 질문들에는 “사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불안한데도 계속 살아가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숨어 있다.책 읽기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지금과 다른 삶에 대한 열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이 우리 삶에 있다고. 책을 잘(풍요롭게) 읽는 사람이 삶도 잘(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독서법 중 하나는 책에서 문자보다 삶을 먼저 읽는 것이다.혹자는 (대개 성공을 위한, 또는 리더가 되기 위한) 책 읽기에서 독해력이나 어휘력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훈련하거나 공부하기를 요구하지만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독서 능력은 공감하고 타인을 돌아보고 세상과 자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저자는 또한 책에서 삶을 읽어 내는 것만큼 삶에서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정혜윤은 오랫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처음엔 책에서 삶을 발견하고 감탄했지만 후에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책에서 봤거나 책보다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고 고백한다. 독서의 기술이 삶의 기술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기술이 독서의 기술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20

설핏 잠든 것 같은데 그곳은 시 공간이었네

김선재의 첫 시집 `얼룩의 탄생`(문학과 지성사)이 출간됐다. 2007년`현대문학`신인추천 시 부문에 당선돼시단에 나온 김선재는 앞서 소설로도 등단해 첫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로 탄탄한 서사와 파격적 이미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선재의 이번 시집은 설핏 잠드는 순간의 경험처럼, 시가 만들어낸 시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홀린 듯 잠겨들게 한다. 여름날 더위에 지쳐 빠져든 한낮의 오수처럼, 김선재는 시 속에서 선명한 풍경 대신 미지의 장소를 끊임없이 펼쳐내며, 꿈속에서 잊었던 슬픔과 담담하게 대면한다. 불평 없이, 처연하지 않게, 원래 삶이란, 사랑이란, 그러한 것이라는 듯.“지금은 오래된 얼룩에게 용서를 구할 시간모든 얼룩이 평등해지는 시간얼룩을 덮은 얼룩이 서로에게 기대는 시간저녁의 새들이 물고 온 종이에 그려진 종이 혼자 우는 시간하루를 지나온 숲은 서늘한 입김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늙어늙어서 기쁜 시간으로시간의 끝으로 달려간 어느 날,슬프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이 별의 모든 사잇길이 걸어갑니다”-`저녁 숲의 고백`부분얼룩은 본바탕에 의도하지 않게 생긴 다른 빛깔의 자국이다. 얼룩이 드러나는 것은 현재지만, 실은 현재의 사태가 아닌 과거로부터의 흔적인 것이다. 살아오면서 생긴 과거의 상처들이 기억 속에 자흔처럼 남아 그것들이 서로 덮이고 뭉쳐져 현재 속에 새로운 양태로 돋아나듯이 얼룩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속하지 않은 고유한 시간성을 가지며 언제로부터의 얼룩인가를 떠나 평등해진다.“통증을 용서해요부분이면서 어느덧 전체가 된 나를,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사이,날을 세운 날은 아니지만 나면서 당신이고,당신이지만 나인시간을 견뎌요(….)통증을 용서해요 나를 잊어요”-`가시를 위하여` 부분사랑과 이별의 전 과정은 꿈처럼 모든 것이 모호하고, 상처를 내는 주체와 상처받는 객체가 구분될 수 없다. 혀와 바늘과 미각과 온도가 지배하는 그 통증의 세계 속에서 감각의 주체는 서로 뒤섞여버리고, 온전한 전체의 몸이 없는 것들은 “피 흘리지 않고 아”프며 “찾는 순간 서로를 지울” 수밖에 없다. 시간을 견뎌서 잊을 수 있길 기다릴뿐./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13

6·25전쟁 한복판 지나는 점득이네 가족

권정생사진 소년소설 `점득이네`(1990)의 개정판이 나왔다. `점득이네`(창비)는 해방직후부터 6·25 전쟁 시기에 이르는 혼란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점득이네의 가족사를 따라가며 그린 작품이다. 아이들이 목격한 전쟁을 사실적으로 기록함으로써 겨레의 비극을 전하는 한편, 절망스러운 시절을 서로 의지하며 견뎌낸 사람들의 체험을 들려주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함께 권정생의 6·25 소년소설 3부작 중 한 편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책. 2012년 개정판에는 판화가 이철수의 신작 목판화가 실렸다.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은 `점득이네`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대목을 피가 돌고 가슴이 뜨거운 생생한 인물과 더불어 그려 나갔다”고 평하면서,`몽실 언니``초가집이 있던 마을`과 함께 이 작품을 `권정생 6·25 소년소설 3부작`으로 꼽으며 주목했다. 이데올로기라는 아동문학의 금기를 깨트렸을 뿐 아니라, 전쟁이라는 민족적 재앙을 통과하면서 이 땅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나 하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아동문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작품이라는 것이다.`점득이네`는 해방직후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점득이네 식구들이 전쟁의 와중에 겪는 혼란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점득이와 누나 점례뿐 아니라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역시 가족을 잃거나 다치고 이념대립에 휘말리는 등, 저마다의 비극을 겪으며 전쟁의 한복판을 지난다. 작가는 이들이 겪는 일을 과장이나 수식 없이 그려 간다. 순식간에 한 마을이 “커다란 초상집”이 되는 폭격 현장을 묘사하고 아이들이 목격한 전쟁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까지 짓밟은 전쟁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겪는 고난은 고스란히 우리 겨레가 겪은 고난을 상징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에게 닥친 대립과 전쟁, 분단의 혼란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곡진하게 그려져, 권정생이 `점득이네`를 통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한, 곧 겨레의 한을 달래고자 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윤희정기자

2012-07-13

삶으로부터 떠나는 가장 먼 여행이란?

영미권에서 `천재 작가`로 불리는 인도 출신의 소설가 로힌턴 미스트리가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 `그토록 먼 여행`(아시아). 1991년에 첫 출간 된 이 소설은 출간된 해에 저자가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캐나다 총독상을, 이듬해에 연영방 작가상을 수상하게 하는 영예를 안겼다. 인도 봄베이에 사는 한 가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친구로부터 정체불명의 소포가 배달된다. 그 소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풀어가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주인공은 저자와 같은 인도 파르시(페르시아 계통의 조로아스터교도) 가족의 가장이다.`그토록 먼 여행`은 한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다.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 큰아들, 이성에 눈을 뜬 작은아들, 그리고 병에 걸린 막내딸을 지키기 위해 기적과 불행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부모의 이야기다. 로힌턴 미스트리는 톨스토이와 타고르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 구조, 디테일로 세심하게 글을 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감상적이지 않지만 부드럽게 모든 갈망과 불완전함을 담은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미스트리는 2009년 `적절한 균형(A Fine Balance)`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손홍규, 김별아 등 소설가들이 극찬한 이 소설로 첫 선을 보이며 알려졌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첫 장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소개되는 `그토록 먼 여행`은 인도의 현실과 역사, 인도인들의 희노애락을 그리면서도 인도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아시아의 이야기로, 다시 오늘날 한국의 이야기로,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제목은 엘리엇의 시에서 유래한다.그러나 주인공 구스타드 노블이 병원에서 죽어 가는 옛 친구인 빌리모리아 소령을 면회하기 위해 델리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 외에는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먼 여행을 떠난다. 명문 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한 소랍, 집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부모가 반대하는 또래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다리우스, 병에 걸린 딸 로샨, 가정의 행복을 위해 점점 잔인한 주술에 끌려 들어가는 어머니 딜나바즈. (중략) 이처럼 가정의 모든 짐을 짊어진 채 괴로워하는 아버지 구스타드 노블.이 다섯 일가족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먼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이 원했거나 원하지 않았거나 그들은 살아 있기에 여행을 떠난 것이며 곧 삶이 `먼 여행`이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먼 여행인 셈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13

정밀한 계산·치밀한 검증으로 미지세계 펼쳐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은 시인 함기석의 신작 시집 `오렌지 기하학`(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전작 `뽈랑공원`이후 4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은 따로 부가 나뉘지 않은 총 67편의 시가 엮였다.한국 현대시의 최전선에서 수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감행하는 함기석의 시는 독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편이 되진 못한다. 하지만 그 시세계에 발을 담그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우주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올 것이다.문자와 의미, 존재와 무한, 말의 한계와 가능성, 그 소멸의 과정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진지하고도 고통스런 성찰을 전개해온 시인 함기석은 이번 시집에서도 정밀한 계산과 치밀한 검증을 바탕으로 미지의 세계를 펼쳐놓는다.무한을 사유하고, 거기서 무에 이르는 길을 쟁취해내는 데 바쳐지는 시. 그것은 시집 전반에서 복잡한 수학적 개념들을 연동시키고 여기에 온갖 언어 실험을 포개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글과 사유, 시 창작의 과정을 수학과 결부시켜 제반의 물음을 확장시켜나가는 일련의 작업은 그러나 “피로 물든 백지와 함께 나를 찾아온다”(`오렌지 기하학`). 불가사의한 인간의 운명이나 우주와 시간과 같은 개념을 수학적 사유를 빌려 시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시인의 작업은 왜 인식의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모험인가./윤희정기자

2012-07-06

지역 교수 출간 `도서 4권` 문화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지역 교수들이 출간한 도서들이 `2012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돼 눈길을 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우수 학술출판 활동 고취 및 지식문화 산업의 핵심기반산업으로 출판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2년도 우수학술도서를 선정·발표했다.영남대 산림자원학과 이헌호·이도형·강미희 교수가 공저한 `숲의 세계`와 이장우 명예교수 외 2명이 역주한 `우리나라 선비들의 中國 시 이야기`(Ⅰ)(Ⅱ)(Ⅲ)과 대구가톨릭대 김동소 명예교수(한국어문학부)가 저술한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와 유은경 교수(일어일문학과)가 쓴 `소설 번역 이렇게 하자` 등이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숲의 세계`는 숲이 갖는 기능과 특성 등 다양한 주제를 각 장르별로 구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치유의 숲, 휴양, 등산, 수목장, 생태관광 등의 내용들도 다뤄 숲과 자연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충족시킨다`우리나라 선비들의 中國 시 이야기`(Ⅰ)(Ⅱ)(Ⅲ)은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한문으로 된 중국 시의 내용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었으며,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대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중국의 광건행 교수가 한국시화 중에서 중국관련 자료를 가려 뽑아 펴낸 것을 역자들이 다시 중국 원시를 찾아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고려의 `파한집`에서부터 근세 정재륜의 `한거잡록`까지 총 34편이 실려 있는데 한국시화에 언급된 중국시만 모아 일관성 있게 편집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된다.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는 루이 드 푸와로 신부의 만주어 성경을 연구한 책이다. 만주어 성경 가운데 마태오 복음을 로마자로 표기하고 그 아래 한국어 역주를 달았다. 이와 함께 발간된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자료편`에는 만주어로 된 성경 자료와 함께 만주어 마태오 성경에 나온 모든 어휘들의 색인이 수록돼 있다.`소설 번역 이렇게 하자`는 원문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번역 기술을 담고 있다. 올바른 문맥 파악의 중요성, 정확한 우리말 표현, 사전의 올바른 사용법, 역사적·문화적 맥락 고려, 음식·의복 ·가옥 등에 대한 번역, 삽화와 번역 내용의 문제 등 구체적인 번역 노하우가 실려 있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07-06

포항문인협회 `문학만` 발간한흑구 작품 재조명 `눈길`

▲ 문학만 편집인 이대환 작가항공촬영한 영일만 전경사진 이미지를 표지에 지속적으로 실어 문학지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한국문학의 대하(大河)에 합류한다는, 포항지역에 기반을 둔 `문학만`이 야심찬 기획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시, 소설, 동화, 수필, 1· 2·3회 포항소재 문학작품 현상공모 수필 부문 수상작, 신간을 찾아서`가 수록된 포항문인협회 2012년 상반기 통권 37호 `문학만`에서는 `특집, 초대 에세이, 기획 에세이, 비평의 시선`이 특히 눈에 띈다.특집에는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작가” 한흑구의 작품이 재조명됐다. 민충환 문학 연구자가 줄기차게 발굴해낸 한흑구(1909~1979, 평양 출생, 1948년 39세 때 포항으로 이주)의 작품(`한흑구 문학선집`· `한흑구 문학선집 Ⅱ`)이 `새로 찾은 흑구 한세광의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문학만`에 수록된 것. 이로써 시 41편, 소설 16편, 평론 10편, 수필 31편 등은 한흑구 개인사를 넘어 한국문학의 귀중한 자산이 됐다.작가 장폴 사르트르(1905~1980, 프랑스 파리)의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는 초대 에세이로, 작가 이대환의 `청암 박태준의 생애와 사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최진덕의 `주마간산, 터키 6박8일을 돌이켜본다`는 기획 에세이로 독자들에게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포항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뽑힌 포항소재 문학작품 현상공모 시 부문 수상자 송유미·정도전 시인도 `문학만`의 참여자로 나서게 됐다. 신구세대를 가리지 않고 패기와 혁신과 변혁을 부단히 갈망하는 포항문인협회원들 중 윤석홍(시), 서숙희(시조), 김도형(수필) 또한 `문학만`을 다채롭게 하고 있다. 뿌리 내리기 쉽지 않은 새터민의 삶을 남한 독서 지도사의 시선으로 묘파한 `아폴로를 씹었어`(김산하, 단편소설), 간결하고도 명료한 문체로 문명의 이면을 탐구한 `멧돼지네 땅`(김일광, 단편동화)은 주제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정서적이라서 독자들의 공감대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듯.베트남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바오 닌의 한국어판 `전쟁의 슬픔`에 서평을 쓴 작가 방현석의 `바오닌과 전쟁의 슬픔`(신간을 찾아서)과 젊은 문학평론가 이경재의`한국전쟁기 소설에 나타난 여성 표상 연구`(비평의 시선)는 분단 체제에서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의 가슴을 진중하게 찾아간다.이대환 편집인(작가)은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포항에서도 문학이 하나의 취미활동 수준으로 쇠퇴하고 전락하는 상황에서 `문학만`은 진정한 문학이 자라는 한 거점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7-06

中 잘못된 편견 바로잡고 韓 입장서 파악

국내 최고 중국 정치 권위자로 손꼽히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조영남 교수가 `용과 춤을 추자 : 한국의 눈으로 중국 읽기(민음사)`를 펴냈다. 조영남 교수는 국내파 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08년 부교수 승진과 함께 종신교수(tenure)가 된 재원이다.저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1997년 베이징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 어느 교수로부터 “중국의 부상이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은 중국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당시에는 그 말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후 2001년 다시 중국에서 의회와 지방정부를 면밀히 연구하고 나서 중국 공산당이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낙후된 정치 체제가 아니며 체제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는 점과 중국이 매년 10%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결코 유리한 국제환경 같은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이후 저자는 한국이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라 재편되는 세계 질서에서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용과 춤을 추자`는 첫째로 중국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둘째로 중국을 제대로 알고 세계의 시각이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파악하고, 셋째로 올바른 대중국 전략을 제안하고자 하는 취지로 쓰였다.저자는 그동안 서울대 국제대학원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GLP), 인문대학 미래지도자과정(IFP), 사범대 교육행정지도자과정, 한국은행 교사직무연수 강좌 등에서 대중을 상대로 중국 정치에 대해 강의해 온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이 책은 많은 시민 강좌에서 저자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민주화가 될 것인가?” “중국이 소련처럼 망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제치고 슈퍼파워가 될 것인가?” “중국은 경제성장만 했지 낙후된 공산당은 일당 독재의 정치 후진국이 아닌가?”1부에서는 먼저 잘못된 편견과 타당하지 않은 주장들을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시작해, 2부에서는 중국의 변모한 현실과 이에 대한 각 나라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본론으로 들어가 중국의 강대국 부상 전략을 들여다보고, 4부에서는 중국의 권력 구조를 통해 공산당이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정치 안정을 이루어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한국이 취해야 하는 전략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2012-07-06

작가의 `특수교육 담론` 2가지 원칙 제시

대구대 특수교육과 김병하 교수가 오는 8월 말 정년에 즈음해 최근 몇 년간 학술대회 기조발표와 특강을 한 내용을 중심으로 `특수교육 담론 ·에세이`를 발간했다. 이 책은 1부 특수교육담론과 2부 (특수)교육관련 에세이 20편으로 구성돼 있다.서문에서 저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discourses)은 지금까지 너무 특수한 지말에 관심을 쏟은 나머지 근본(즉, 體用의 體)을 간과하지 않았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자신의 특수교육 담론을 지배하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개인의 장애(disabilities)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인간 교육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절대로 놓지 말자고 강조하는 등 이 책의 담론 기조는 하나의 이상적 기준으로 존재해야 할 `한국특수교육론`의 실재(實在; reality)를 정립하는 데에 모이고 있다.특수교육 에세이에서는 심층종교와 특수교육의 만남에서부터 김예슬 선언과 대학, `도가니` 현상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평소 지적 관심사를 광범위하게 반영하고 있다.저자 김병하 교수는 2009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되었으며 2010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에서 선정한 21세기 지식인 2천 명에 선정되기도 했다.경산/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12-06-29

하늘·공기·대지를 잠식한 곳 숲에 들어간 사람들 이야기

▲ 소설가 편혜영2011년 동인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으로 빛나는 한국문학의 중추, 작가 편혜영이 자신의 다섯번째 책이자 두번째 장편소설인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 소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전개된다. 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작가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에 매료될 것이고 결국 `복잡하고 막막한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다 그렇다`는 삶의 진실과 맞닥뜨릴 것이다.전작 `저녁의 구애`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 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냈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 km,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다시 한 번 염두에 두자. 이 책은 `편혜영의 소설`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섣불리, 일상에 지친 도시민을 위무하는 쉼터이자 안식처로, 때로 녹색성장 운운하는 정책 입안자들의 공문서에 조림 수치와 함께 등장하는 그런 `푸르른 숲`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하늘과 공기와 대지를 잠식하고 어둠과 일체를 이룬 숲. 복수이자 한 덩어리의 전체로 존재하는 숲. 차고 거친 정적과 짙은 그늘 속에 교교한 바람 소리, 모호한 짐승 소리, 사방을 살피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숲이다.이 숲에 실패한 자제력과 반복되는 결심, 실재 없는 감각의 환영에 시달리는 한 사내가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서쪽 숲에 갔다`는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 그리고 다시 열린 2부와 3부에서 현재 이 숲의 관리사무실에 붙박여 주인 모를 스도쿠 책을 뒤적이거나 바람 소리와 짐승 소리 외엔 적막한 숲으로 나 있는 창틀을 배회하거나 간단한 일지를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박인수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엉키면서 마을에 짙게 드리운 불안과 폭력의 실상이 모습을 드러낸다.이번 작품에는 분명한 사건의 전조와 등장인물 개개별 성격, 그들 관계의 형성을 낳고 엮는 데 앞서 우리가 접했던 그 어떤 편혜영의 소설들보다 대화문이 풍부하게 실렸다.대화를 이어가는 한 단락 안에서 인물 화자가 교차하면서 심리 변화의 추이가 미묘하게 얽히고, 고조되는 갈등과 불안의 진폭은 읽는 이를 숨 가쁘게 한다. 갈등이 고조되고 종국에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버린 폭력으로 치닿는 과정 역시 이러한 대화의 과정에서 벌어진다.현재의 모순과 패배를 이미 예고했던 과거의 불행과 습관은 인물들을 옮겨가며 그 어떤 외부의 폭압보다 거세게 작동한다.짙고 거대한 숲과 그 속에서 퍼져 나오는 듯한 음습한 기운과 소음은 어쩌면 극도의 자기모순과 자아 분열, 순간적인 격분과 반복된 자기의혹에 매몰되는 우리 안의 소리일지도 모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9

시대별 역사적 지명 실제 위치 기록 담아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개념에 대한 관점은 학자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과거 선조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설계해가는 힘을 가진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잘못하고 실수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계하고, 잘한 것은 귀감으로 여겨 삶을 변화시킨다면 선조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고 풍성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볼 때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하지만 역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의 세월이 모여 이룬 역사는 그 과정에서 특정 세력에 유리한 내용이나 지배계급의 편향된 이데올로기 등이 삽입되어 사실이 변질되고, 퇴색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역사 왜곡이 있었고, 사대사상, 즉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우상시하던 역사관으로 인해 잘못된 역사 기록이 더욱 빈번했다. 일정 지역의 지리와 특징을 담은 지리지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초주와 해주`(어드북스)는 현재 과학기술 역사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국학박사 김진경씨가 저술한 책으로 15년간 역사책을 독학해 얻은 주요 역사적 지명의 실제 위치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를 밝힌 `할아버지`의 논문을 토대로 손자 `천손`이 추정된 실제 위치를 찾아 나서는 역사 여행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단순히 `천손`의 생물학적 `할아버지`라기보다는 잘못된 지명 표기에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헤어져 있었던 `조상`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띈다.할아버지의 논문은 바로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각종 문헌을 해석하고 분석해 추정한 결과물이다. 중국 25사 중 `한서`(전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위서`, `남사`, `북사`,`수서`, `구당서`, `신당서`, `요사` 등의 지리지에 근거해 유주(幽州) 지역에 속하는 지명들이 시대별로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를 직접 밝혀 내었다. 모든 기록이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고, 누락된 지명, 의도적으로 삽입된 위서 등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흩어져 있는 지명을 종합해 각각의 배치관계를 파악했다.이 책은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80여 개에 달하는 지도 그림을 실어 특정 지명의 추정위치를 하나하나 표시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9

순정한 마음 담은 품격 있는 詩 선봬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집은 물론 산문집, 평론집, 동화집 등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필력과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김윤배 시인의 열번째 시집 `바람의 등을 보았다`(창비)가 출간됐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대한 순정한 마음을 담아낸 품격있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그의 시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욕망이다. 시인은 내내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사랑의 애잔한 장면들을 담아내려는 욕망, 생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망, 가치있는 시와 언어에의 욕망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그의 욕망들은 특유의 활달한 이미지와 너른 시선과 결합해 자못 인상적인 시적 울림을 선사하는 기제가 된다.“네게 영혼을 헌정한 후 혀를 깨물어 순결한 피를 삼키고, 한 손으로는 심장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름다운 목선을 어루만지며 내 푸른 뼈마디로 놓인 계단을 오르는 일생이었다 구름이 잉태하여 하늘을 낳고 바람이 잉태하여 나무를 낳고 욕망이 잉태하여 내 거룩한 성전을 낳았다”(`홀로페르네스의 마지막 성전`부분)“가슴에서 나는 낙타 발소리가 텅 빈 몸 울린다/낙타의 보이지 않는 길이 사구(沙丘)를 넘는다//보이지 않는 길은/보이지 않아서 두려운 길이지만/보이지 않아서 두렵지 않은 길이다”(`가시떨기나무`부분) 시인의 시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아름다움이 각인돼 있다. 언어와 이미지를 다루는 시인으로서 미(美)에 대한 지향이란 놓을 수 없는 끈이라 믿는 듯한 그의 시선은 자못 매혹적인 시편들을 가능케 한다.“매혹도 독이었다 죽음처럼 황홀한 너는 꽃잎이 날개였다 산맥 넘을 때 달빛은 날개 아래 강물로 흘렀다 영혼의 기착지에서 황홀한 날개 접고 한 세기의 잠을 위해 날카로운 황금 조각들 목구멍 깊숙이 털어넣었을 것이지만//(…)//내 척박한 땅에 잠시 뿌리 내렸던 활련화, 저 황홀한 서러움//숨 멎는 줄 알았던 여름 한낮”(`여름 한낮`부분)/윤희정기자

2012-06-29

어른의 시야 너머 세계소년의 눈을 빌려 발견

“배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어 쓰는”(김기택) 시인 이우성이 첫번째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무럭무럭 구덩이`가 당선되며 등단한 후 햇수로 4년 동안 써온 시편 중 총 예순한 편을 가려 뽑은 이번 시집에서 이우성은 어른의 시야에 미처 포착되지 못했던 세계의 일부를 소년의 눈을 빌려 발견하고 있다. 무수한 “우성이”들의 경쾌한 나르시시즘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 구조의 생략을 통해 시인은 독자들을 자신이 떠나온 세계로 데려다놓는다. 이러한 나르시시즘과 미니멀리즘을 평론가 강계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위로의 수사학”이자 “가능성”이라고 해석한다.“이우성의 `나`는 현재 한국 사회의 대중적 정서로 만연된 `피해자의 나르시시즘`과 정확히 반대되는 자리에 있다. (….) 이우성의 `나`는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그런 감정을 겉으로 표 내는 일에 무심하며, 조금 주저하고, 잠깐 말한 뒤엔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얼른 지워버린다. 피해자의 나르시시즘적 무능과 그것의 거침없는 표현을 조용히 거부하듯 “우성이”(`사람들`)는 작은 목소리로, 가장 적은 말을 사용하여 자기를 이야기하려 한다. (….) 긍정 어법이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과잉 예찬이 아니라 세계의 상실이 객관적 실재로 고착돼버린 이의 유용한 존재 기술(技術)이자 위로의 수사학이라면, (….) 자기 소진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는 현실을 죽거나 도피하거나 망가지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을,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는 시적 비전을 찾게 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우리는 이 시인의 자기애를 기꺼이 환대할 필요가 있다” -강계숙(문학평론가)소년은 스스로의 개별성(`나`)을 강화하며 어른이 된다. 그렇다면 어른은 어떻게 다시 소년이 되는가. 시를 쓰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결국 자신을 알기 위해 쓰게 됐다는 시인은 `나`에게로 파고들기보다 `나`를 확장시키는 것을 그 방법으로 선택한다. -`마음의 마음`부분 (p. 84)/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2

투쟁·자유의지의 詩 그리움으로 회귀하다

▲ 시인 양성우투쟁과 자유 의지의 양성우(70) 시인이 시의 본령인 그리움으로 회귀했다.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실천문학사)는 서정시의 눈부신 향연을 보여준다. 첫 시집 `발상법`에서부터 `겨울공화국`을 거쳐 시력(詩歷) 40여 년 동안 양성우 시인은 투사적 이미지로 한국 시사의 돌올(突兀)한 별자리가 됐다.이번 시집은 끊임없이 현실과 호흡해온 거대한 산맥 같은 시정신의 뿌리가 간단없이 샘솟는 간곡하고 지극한 사랑으로부터 연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는 그의 언어가 출발하고 지향하는 세계의 기저에 자리한 상실과 그리움을 대면하게 된다. 상실과 그리움은 서정의 양면이다. 상실이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현실의 불모성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합일에 대한 지향을 낳는다. “아무리 지우려고 몸부림쳐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남포리`)들을 향한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비탈에 분홍 꽃잎 흐드러지고 왕소나무 구부정”(`산 하나`)한 고향 마을이 드러나고, 때론 “하염없이 비가 내리”면 광주 감옥에 갇힌 아들을 생각하며 “담장을 주먹으로 때리며 내 이름을 부르며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봄비`)로 가슴을 적시기도 한다. 시인은 모든 상처를 적시던 어머니의 눈물처럼 “노래가 되어 꿈이 되어” “목이 쉬도록 부르고 또 부르며” “송곳 같은 바람 끝에” 몸이 부서져도 “하얀 강을 건너서”(`하얀 강`) 너에게로 가리라 한다. 시인이 찾아가고자 하는 너란 세상의 모든 애틋한 사물들과 풍경들, 그늘지고 외져서 함부로 잊힌 삶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돌멩이나 지푸라기나 별이나 나, 온 길이나 갈 길, 슬픔이나 기쁨 등을 한통속으로 보는 그리움이 우주적 순환의 파동”(`해설`, 이경철)으로 확장된다.파동의 언어적 형식은 근원적인 리듬에 휘감겨 그의 고향 마을을 휘감는 영산강 줄기처럼 유장한 가락을 이루며 흘러간다. 뜨거운 역사의 중심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던 열기를 부드럽게 식혀주며 흘러가는 가락은 기운 데가 없어 이것이 시인의 천성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숲의 외로움이 나를 그에게 데려가리구슬픈 풀벌레 소리 여울물 소리가나를 그에게 데려가리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는 그에게소리 없이 떨어지는 마른 나뭇잎들이색 바랜 꽃잎들이 바람보다 앞서서나를 그에게 데려가리때가 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것들과숨어서 우는 새들의 슬픔이 나를그에게 데려가리저 산의 새들처럼 울고 싶어라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만 있다면맨발로 가시나무 덤불을 태우는 불길앞에 서고풀 한 포기 없는 빈 골짜기에서라도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끝 모르는 숲의 외로움을 따라서 나는그에게 가리”-`새들의 슬픔이 나를 데려가리` 전문어떤 시는 눈이 아닌 귀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게 하는데 양성우의 시가 그렇다. 위 시는 리듬이 내용을 이끈다기보다 리듬 속에 뜻이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으로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형식단위와 내용단위의 긴밀한 연합을 절경으로 보여준다. 미처 뜻을 새기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가락을 통해 뜻이 온몸으로 전달돼 온다고나 할까. 양성우의 시는 마침내 이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파편화된 산문적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그의 시를 읽으면 무언가 애달프고 서럽고, 한편 따뜻하고 포곤하다. 오늘의 우리시가 가진 일부 문제점을 푸는 열쇠가 거기서 발견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며 폐쇄적인 언어 미학에 빠져버린 현재 시단의 병폐를 치유할 가능성을 그 독특한 가락으로부터 찾고 있기까지 하다. 삶의 진실에 대한 경건함과 경험에 대한 섬세한 미감이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짚을 수 있는 대목이다.양성우 시인은1943년 11월1일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75년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군사독재를 비판한 `겨울공화국`을 낭독해 교직에서 파면됐다. 1977년에도 저항시를 써 일명 노예수첩 필화 사건이 터졌다. 그 결과 1979년 감옥에서 지냈다. 2009년 8월11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2

유배지에서 핀 담박한 한시

정민 교수의 `한밤중에 잠깨어`(문학동네)는 위대한 지적 성취를 이끌어냈던 조선후기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위대한 정신을, 쉽게 포기하거나 방기하기 쉬운 절망과 좌절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세워나갔던 정약용의 내면풍경과 인간 의지의 위대한 승리 과정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주역`에 감지(坎止)란 말이 있다. 물이 흘러가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워 넘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나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상처만 남는다. 묵묵히 감내하면서 자신이 구덩이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하며, 구덩이를 다 채워 흘러 넘칠 때까지 수양하며 기다릴 뿐이다. 다산의 유배 한시는 이렇듯 환난과 역경과 시련 속에 처한 인간이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고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다산의 위대함은 그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취가 이런 절망을 딛고 나온 것이어서 우리는 그에게 더욱 놀라고 경탄한다. 보통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남 탓하며 세상을 향해 원망과 적의를 품게 마련이다. 좌절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그때의 내 자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시련이 닥쳐오기 마련이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조선 후기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 역시 그러했고, 그에게 닥친 시련은 더 엄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련과 절망에 넘어지지 않았다. 그 시련의 시간들 속에서 그는 조선 후기의 가장 위대한 지적 저작들을 내놓았다. 그 학문적 성취도 위대하고 아름답지만,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고뇌했던 그 인간적인 노력과 흔적들이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 그 비록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으나 18년에 이르는 전체 유배 기간 중 전반 10여 년 동안에 이뤄진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버리지 않고 본연의 나를 찾으려 했던 다산의 길은 “환난에 처한 인간이 지녀야 할 바른 자세를 들여다보기에 부족함이 없다”(`머리말`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22

사소한 일상의 일들 詩 안에 녹아 흘러~

이근화 시인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자극적인 이미지와 구문의 파괴 없이도, 요설체와 장광설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이근화(34) 시인의 세번째 시집 `차가운 잠`(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시인은 일상의 세목을 선별하고 배합하는 과정에서 노련한 바리스타처럼 감각적인 기동력과 순발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선별과 배합이 만들어내는 맛과 향이 예사롭지 않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시 안에서 어우러지며, 공동체의 `어려운 문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맞닥뜨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이 시집을 읽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시인에게 일상은 항상 미지의 것으로, 한없이 낯설다. 김밥은 무연히 “얻어터지는” 주체가 되고 국자는 위력적인 무기가 되는 식이다. 무분별한 생각의 덩어리들, 오해와 착각과 무모한 열정,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기분과 감정들, 사소한 즐거움과 오랜 열패감이 시인의 삶과 글을 이끈다는 한 산문(`꿀문학이라는 불가능한 말`, `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에서의 고백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정념들을 쉽게 토로하지는 않는다. 심연에서 들끓는 정념을 엄격하게 단속해 표면까지 끌어올릴 뿐이다. 그러는 동안 더욱 팽팽해지는 시적 긴장감이 눈길을 모은다.“살다 보면 그렇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듯그냥 얻어터지는 날도 있고어제도 오늘도 만났던 사람을어느 날 갑자기 만날 수 없게 된다죽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김밥에 관한 시`부분국 없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사람이 천천히 죽는 영화 한 편과사람이 빨리 죽는 영화 한 편국자를 휘두르면 한두 사람쯤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도 같아장외로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그다음에는? ”(`국자 사러 가기` 부분)이근화 식 화법의 특징 중 하나는 무상함이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아도 좋겠”(`내게 없는 것`)다거나 “그래서 기분이 이런 것이군”(`물체주머니`) 하며 짐짓 무표정을 짓는다. 시인은 이러한 무표정에 도달하기 위해서 일단 명랑함을 가장한다. “우리는 오늘의 식사가 즐겁다”(`그물의 미학`)거나 “국수가 좋다/빙빙 돌려가며 먹는다”(`국수`)고 말하지만 이내 “실종된 유학생”과 “노동자의 마스크”와 “남편을 잃은 베트남 여인”(`그물의 미학`)을 불러들이고 “풀기 어려운 문제”(`국수`)를 만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낙차를 만듦으로써 시 속에서 이야기가 생성될 수 있는 높이와 질량과 속도를 충전하는 것이다. 심상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그 베일 뒤에서 “오늘의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표정으로 별이 몇 개 뜬다”(`너무 늦게 온 사람`). 그 별은 시적 화자가 짓고 있는 불안한 표정과 닮았다. `김밥에 관한 시`와 `김밥에 관한 시 2`는 이 시집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연작시다. 시인은 김밥에 관해 개인적 경험을 열거한 시 한 편을 쓰고 나서 곧이어 “김밥에 관한 시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며 앞의 시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멸추김밥처럼 웃긴”, 김밥에 관한 시 쓰는 일을 다시 하려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입맛이 단지 개인의 기억에만 결부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개인의 입맛에 국한되던 김밥이 기억과 정념의 연쇄작용을 작동시켜 공동의 생존권과 연결되는 것이다. `김밥에 관한 시 2`에는 차가운 바닥에서 더러운 냄새가 밴 마스크를 쓰고, 막내가 보고 싶지만 그마저 뒤로한 채 바닥에서의 하루를 이어가야만 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시는 이들 열두 명에게 김밥이 고작 한 줄만 배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명랑`에서 `불안`으로 감정이 옮아가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구체적인 정황은 숨겨져 있지만 시인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상상보다 훨씬 기괴하고 어이없는 현실을 목격했을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현실에 `김밥에 관한 시` 연작으로 맞서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15

사랑이란 관계로 매혹·고독 탐구

그의 소설은 `은희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독자를 설레게 한다.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 삶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통찰은 늘 우리를 열광하게 해온 은희경 소설의 위력이었다. 등단 16년, 매 작품마다 다양한 변신을 선보여온 그의 작품세계는 이제 더 깊어지고 여유로움마저 갖추었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장편 `태연한 인생`은 그간 집적된 은희경 소설의 성취들이 고스란히 담긴 은희경 소설의 빛나는 정수를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의 개인들의 존재론과 그들이 맺는 관계의 양상을 냉철하게 묘파하는 것이 은희경 소설의 본령이었다면, `태연한 인생`(창비)은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을 깊이 탐구하는 가장 은희경다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외로움과 오해 속에서 흘러가고 얽히는 관계들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 내면의 나약함과 비루함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포착해내는 필치는 과연 은희경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냉소적이고 자유로운 소설가, 요셉“착한 여자들은 말야, 패턴을 강요해. 그것처럼 남자를 지겹게 만드는 건 없을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변하잖아. 당연하지. 안 죽었으니까.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변하는 거거든.”세상 끝, 열정의 끝에서 사라진 여인, 류“매혹은 지속되지 않아, 열정에도 일정한 분량이 있어. 그 한시성이 사랑을 더욱 열렬하게 만들지….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놓고 되돌아와버린 것을 후회하진 않아.”`태연한 인생`을 이끌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소설가 요셉과 신비로운 여인 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개성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한다. 소설은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며 한순간의 매혹에 쉽게 몸을 던지는 아버지와, 반면에 생활과 가족이라는 서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기를 선택했던 어머니. 류의 전사(前史)에는 그렇게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있었다. 류는 고백한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류는 그 매혹에 이끌려 한때 요셉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그를 떠났었다.소설은 요셉의 일상과 류의 과거사가 교차되며 두 세계의 겹침과 엇갈림을 그려나간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타락한 세계를 향해 던지는 요셉의 가차없는 독설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연민을 자아내고, 감추어진 듯 언뜻언뜻 드러나는 류의 서사는 아련하고 서정적인 색채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곳곳에 깔린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이 섬세한 문장으로 겹겹의 층을 이루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 오해와 연민에 대해 오래 곱씹게 하는 그 빛나는 경구들은 물론 은희경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자 그 자체로 머릿속에 외우고 다니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날렵함과 통쾌함을 지나 점차 깊고 묵직하고 어딘가 쓸쓸하기까지 한 느낌을 더하는 그 문장들에서 은희경 소설세계의 또다른 변모를 감지하는 것 또한 설레는 일이다.“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265면)모든 좋은 소설이 그러하듯, 어떤 측면에서 읽어도 흥미로운 깨달음과 감흥을 발견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면모는 `태연한 인생`이 지닌 큰 매력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