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포레 펴냄, 284쪽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연애소설 9편을 모은 베스트 컬렉션 `서른 넘어 함박눈`(포레 펴냄)이 출간됐다.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다나베 세이코는 200만 부 베스트셀러 `신 겐지이야기`의 저자로 일본에서는 `다나베 겐지`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리는 국민작가이며, 특히 간사이 사투리 연애소설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영화와 함께 큰 사랑을 받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서른 넘어 함박눈`은 `서른 넘은 여자들`을 테마로 쓴 구첩반상 같은 연애소설집이다.
이 상 위에는 매콤한 맛, 시큼한 맛, 짭조름한 맛, 숙성된 장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까지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이야기가 줄줄이 올라 있다.
천연덕스러운 여자와 바람기 많은 남자의 속 보이는 밀애, 둔한 여자와 게으른 남자의 기우뚱한 연애, 우악스런 여자와 부드러운 남자의 장난 같은 교제, 재미없는 남자와 아직도 사랑 타령하는 여자의 고양이 같은 사랑, 그 밖에도 지지고 볶고 헤헤거리다 투덕거리다 하는 부부 사이, 애증으로 똘똘 뭉친 일심동체 같은 모녀 사이, 뭉쳤다 헐뜯었다 하면서도 꼭 붙어 수군대는 여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열두 두름쯤 되는 삶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곁들여 있다.
그러나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달콤하고 낭만적인 전개를 기대한다면 참으로 곤란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희로애락에 부르르 떠는 가련하거나 다감하거나 섬세한 여인의 분위기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연애의 쓴맛, 인생의 쓴맛을 알아버린 서른 넘은 여자들이 그래도 다시 사랑 좀 해보자고 덤벼드는, 조금은 안쓰러운 실화 같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소설은 뜨거운 `시작`과 절절한 `이별`보다 어중간하게 시작되고 흐지부지하다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현실적인 연애의 굴곡을 실감나게 그려내 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랑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현실의 사랑은 그저 나뭇가지 모아 대충 피운 모닥불 같은 것이다. 낭만과 온기로 잠시 설레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싸늘해지고 마는….
회색 재가 남은 자리엔 씁쓸함과 애잔함, 아쉬움과 외로움, 그리고 원수 같은 `그 남자`에 대한 기억만이 조용히 똬리를 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