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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의궤도는 모든 것 갖춘 종합선물세트

`신의 궤도` 문학동네 펴냄, 배명훈 지음, 328쪽, 1만2천원2009년 연작소설집 `타워`를 선보이며,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소설가 배명훈의 글쓰기는, 지금까지 그 어떤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고, 생생하고 산뜻했으며, 그만큼 그동안 우리에게 매우 절실하고 아쉬웠던 어떤 것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기발한 상상력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문체는 발랄하고 흡입력 있으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 사이사이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유머러스하게) 던져지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숨기지 않는다.“그게 뭔데요?”“신이요. 이건 신이 될 겁니다.”“신을 만들겠다는 겁니까?”“물론 아무나 만질 수 있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올려둘 거거든요. 쉽게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간절히 원한다면 결국은 닿을 수 있게 해야겠죠.” -`신의 궤도`중에서“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신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은 늘 가까이에서 행성 주위를 공전하시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 작으셔서 세상 어떤 성전에 설치된 망원경으로도 감히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 신앙이 신앙으로 남아 있는 것은 신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기 때문이었다. 신은 그렇게 언제나 모습을 감추고 계셨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목표는 언제나 신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었다.”배신 믿음 화해 사랑 혁명 낭만 형이상학 그리고 빨간색 삼엽기가 가로지르는 하늘까지 `신의 궤도`는 정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입니다. 한국의 진정한 SF작가 배명훈은 이른바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수만 광년 떨어진 두 행성의 오랜 적대와 몰이해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행성연합을 이룩해 낼 우주문학의 유능한 외교관입니다. 배명훈 소설이 앞으로도 두 행성 간의 실시간 번역과 소통을 훌륭히 담당하길 바랄 뿐입니다. -복도훈(문학평론가)인공위성 재벌의 서녀인 은경은 배다른 언니인 경라에게 늘 미움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생활하려 노력한다.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서 비행예술과 궤도비행까지 배우며 점차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달아가는 은경. 하지만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아빠에 대한 미움은 끝내 가시지 않는다. 타국에서도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은경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코스모마피아` 바클라바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는 은경의 아빠인 킴에 대해서는 증오를 품고 있지만, 유일하게 은경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를 눈치챈 경라 언니는 은경을 제거할 술책을 꾸미고, 꼼짝없이 말려든 은경은 바클라바도 잃고 아빠를 죽이려 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은경의 결백을 아는 아빠는 그녀의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은경은 겨우 사형만 면한 채 냉동되어 아주 먼 미래에서나 다시 깨어나야 하는 신세가 된다.약 십오만 년 뒤, 아빠가 창조한 휴양행성 나니예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된 은경. 영문도 모른 채 미래에 던져진 그녀의 앞에는 지구에서 아빠에게 선물받았던 빨간색 삼엽기가 우뚝 서 있다. 아빠가 만든 이 역겨운 낙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나니예를 탈출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분명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클라바가 아닌가! 낯설지만 아름다운 행성 나니예에서 은경은 과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01

전통 서정시 외형 허물고 색다른 시적 공감 불러…

이장욱 시집 `생년월일` 창작과 비평 펴냄, 144쪽, 8천원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일궈온 이장욱(43)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년월일`(창작과비평 펴냄)이 출간됐다.시집 `정오의 희망곡`으로 잘 알려진 이 시인은 현재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한 사람이자 소설가, 비평가이면서 러시아 미학을 전공한 학자다.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세련된 특유의 감수성을 선보이며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실재를 서늘한 눈빛으로 꿰뚫어본다. 전통 서정시의 외형을 허물고 재래의 익숙한 서정과 정형화된 시의 문법을 비트는 파격이 색다른 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미묘한 서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이장욱의 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사뭇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감각적인 이미지 묘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시인은 “근육질의 눈송이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를 듣고, “점 점 점 떨어”지는 “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는 것을 예감한다.“넌 누구냐?/가까워서 안 보여//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네/바위를 부수는 계란과 같이/사자를 뒤쫓는 사슴과 같이//근육질의 눈송이들/허공은 꿈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네/너는 너무 가까워서/너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드디어 최초의 눈송이가 된다는 것/점 점 점 떨어질수록/유일한 핵심에 가까워진다는 것/우리의 머리 위에 정교하게 도착한다는 것”(`겨울의 원근법`부분)시인의 예감은 현실이 되어 “사슴의 뿔과 같이 질주”하다가 “계란의 속도로 부서”진 후 “뜨거운 이야기”(`겨울의 원근법`)로 번져간다. `정교하게 정렬해 있는 고요한 세상`의 해체(`내 잠 속의 모래산`)와 `자아의 실종`(`정오의 희망곡`)에 골몰했던 시인이 이제 “입을 벌리는 순간/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솟아”나고 “곰곰 생각하고 생각한 후 간신히/생일 다음에 오는 불안에 대해/긴 이야기를 시작한다”(`당신이 말하는 순서`).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내가 태어난 건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는데,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쾅!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에/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더군./수평선은 생후 십이년 뒤 내 눈앞에 나타났다. 태어난 지 만 하루였다가, 십이년 전의 그날이 먼 후일의 그날이다가,/수평선이다가,/저 바다 너머에서 해일이 마을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생일이 찾아오고, 죽어가는 노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연인들은 처음으로 입을 맞추고,/케이크를 자르듯이 수평선을 잘랐다. 자동차의 절반이 절벽 밖으로 빠져 나온 채 바퀴가 헛돌았다.(`생년월일` 전문)축복받아 마땅한 `생일`을 `불안`으로 경험하는 시인에게 세계는 “오래 살아온 도시가 재가 되”고 “자꾸 무너지면서 또/발생하는” “등뒤의 세계”(`뒤`)이다. “신호등이 지배하는”(`세계의 끝`) 이 세계에서 시인은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동사무소에 가자`)나 “모퉁이를 돌면 남자의 성기가 나타나고/아무리 걸어가도 큰길은 나오지 않”고 “운구차가 영영 들어오지 못하는”(`재크의 골목`) 골목, “지진에만 반응”(`특성 없는 남자`)하는 횡단보도 등과 같은 일상의 후미진 구석을 떠다닌다.일상이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생일`을 지속하고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함돈균 `해설`)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생일`은 태어남에 관한 것인 동시에, 일상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생년월일`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곳”, “시작과 끝이 명료”하고 “간결한 곳”,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는 더이상 예측 불가능한 일이 남아 있지 않은 일상의 공간이다. 이 빈틈없는 일상에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질문. “질문이 없는” 세계, “의심”하지 않는 이곳은 세계의 끝이다. 그리고 일체의 질문이 소거된 세계의 끝에서 문득 “동사무소란/무엇인가”라는 세계 형식 자체를 문제 삼는 최후의 질문이 출현하는 순간, 세계의 모순은 드러나고야 만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개체들의 `탄생`과 개체들이 모여 이룬 세계의 `지속`과 그것이 곧 `끝`이 되는 세계 풍경의 묵시적 묘사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25

사기꾼들의 본성과 진정한 가족의미 그려

`까마귀의 엄지` 문학동네 펴냄, 미치오 슈스케 지음, 380쪽, 1만1천원스릴 넘치는 미스터리 구조와 심도있는 세계관으로 일본문단계에서 `제 2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평가받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올해 나오키 상을 수상한 그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작품세계로 국내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까마귀의 엄지`(문학동네 펴냄)는 그런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나오키 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에는 영화화가 결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젊은 시절 사채조직의 덫에 걸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공통점을 지닌 중년 남자 다케자와와 데쓰. 달리 의지할 곳 없는 둘은 각자의 기술을 이용해 함께 크고 작은 사기를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예쁘장한 외모를 이용해 상습적으로 소매치기를 하는 소녀 마히로가 나타난다. 역시 사채업자에 시달리다 엄마가 자살한 과거가 있는 마히로와 언니 야히로, 그리고 그녀의 애인 간타로까지 엮이면서 다섯 명의 좌충우돌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어느새 가족처럼 가까워진 이들의 안락한 생활도 잠시, 다케자와를 쫓는 사채조직의 위협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져만 간다. 불공평한 세상을 언제나 인내하며 살아왔던 이들은 지금껏 뒷골목에서 쌓아온 모든 노하우를 끌어모아 공동의 적 사채업자 히구치에게 복수를 꾀하는 대규모 사기극, 일명 `앨버트로스 작전`을 계획하는데….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사회부적응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빈곤한 삶이나 범죄의 어둠이 자아내는 칙칙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문체, 범죄자이긴 하지만 결코 `악인`이 아니며 은근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재치 있는 대화, 그리고 군데군데 등장하는 기발한 말장난 덕분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까마귀` 역시 `검다`라는 뜻의 일본어와 발음이 비슷한 `프로 사기꾼`을 뜻하는 은어로, 작중 다케자와와 데쓰의 대화에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는 말장난들에서 상징적인 의미와 복선을 찾아내는 것은 `까마귀의 엄지`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이다. `까마귀의 엄지`는 치밀하게 짜여진 대규모 사기극을 중심에 두고 쓰여진 대중소설이지만, 그에 앞서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을 묘사하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2011-08-25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산문집 `울지 말고 꽃을 보라` 해남 펴냄, 382쪽, 1만3천800원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 이외의 모든 관심은 예비적 관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빼고 나면 신이 설 자리를 잃듯이 인간에게도 사랑을 빼고 나면 삶의 자리를 잃고 맙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계신지요. 혹시 지금 사랑의 문제 때문에 울고 계신다면 울지 말고 꽃을 보십시오. 꽃이 피어나는 것도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정호승 `울지말고 꽃을 보라``작가의 말`중에서)사람살이의 슬픔, 상처, 고통을 이야기하는데도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은 온기와 희망으로 차오르게 하는 작가 정호승(61). 작가생활 4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시와 산문을 발표하며 사람들에게 삶의 상처마저도 희망의 씨앗으로 키우는 지혜를 선물해 온 그가 우리가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하는 화두는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답한다.정호승의 인생동화 `울지 말고 꽃을 보라`(해냄 펴냄)가 출간됐다.책은`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1998), `스무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1·2`(2003),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2004) 등 3종 4권의 작품집에서 희망을 잃고 지쳐만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02편을 선별해 새롭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개정완결판이다. 이번 작품집은 오랫동안 작가와 교감하며 동행해온 박항률 화백의 특유의 고요하면서도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펜화와 채색화가 더해져 그림의 여백만큼이나 글의 울림을 더한다.인생을 이루는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나와 우리를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동화와 우화의 그릇에 담아 선보이는 이 책은, 1장 `기다림 없는 사랑은 없다`, 2장 `뼈저린 후회`, 3장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4장 `완벽하면 무너진다`, 5장 `겨울의 의미` 등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우리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혹독한 겨울의 눈보라를 견딘 다음에야 열매를 맺는 가을보리가 고통의 의미를 일깨우는가 하면, 서로 다른 견해로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해와 달의 모습에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을 때 아집에 빠지고 마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되비춘다. 바위라고 우기는 모래를 비웃다 모래가 된 뒤에야 뉘우치는 바위의 이야기에서 누구의 인생에 주어진 고통과 인내이든 그 크기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엄연한 진실과 심한 바람에도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제주 돌담의 허술함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운다. 한 편 한 편의 동화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한다. 나무와 풀, 돌과 짐승 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풀어낸 이야기들은 간결하지만 압축미 넘치는 문장에 인생을 꿰뚫는 통찰을 잃지 않았으며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는 마음을 울린다. 작가는 단순히 삶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이 모든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사랑`임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사는 일이 힘들어 울고 있다면, 울지 말고 우리를 사랑해서 피어나는 꽃을 보라고. 그래서 `울지 말고 꽃을 보라`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인생을 더 단단하고 성숙하게 키우는 씨앗이 돼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25

쉽고 재미있는 몸의 심리학 이야기

`몸에 갇힌 사람들` 창비 펴냄,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고(故) 다이애나비의 폭식증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정신분석가 수지 오바크가 펴낸 책 `몸에 갇힌 사람들`(원제 `Bodies`)은 몸의 불안을 야기하는 현대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몸과의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수지 오바크는 다이애나비를 상담했던 정신분석가로,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동안 몸의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의 연구주제들을 총집결한 것으로, 저자가 상담했던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몸의 심리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여기서 몸의 심리학이란, 신체적 고통의 원인을 심리적 문제에서 찾았던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과는 달리, 몸의 문제를 몸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체적 증상은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그 자체의 욕구와 고통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뚱뚱한 몸은 태만과 자기무시의 결과가 아니라, 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쏟아붓는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음이 몸을 장악한다는 기존 정신분석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 몸들을 재고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그 새로운 사고방식 중의 하나는 바로 몸의 문제들을 다룰 때 신체발달 이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둘러싼 광란의 분위기가 가족을 통해 흡수, 전달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최초로 신체적 감각을 습득하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몸은 부모와의 접촉을 통해 올바로 형성되거나 잘못 형성된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아기가 우유를 토하는 것을 보고 과도하게 걱정한 엄마의 영향으로 반사적인 구토습관과 대장염에 시달리게 된 헤르타, 자기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어머니로 인해 정상적인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된 루비 등―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부모가 자기 몸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엄마가 늘 다이어트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몸에 대한 인식이 어려서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신체경험에 부모의 괴로운 몸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며, 예비부모와 초보부모에게 올바른 몸 인식을 심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8

타고르의 고향서 쓴 1초 1초의 의미와 성찰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문학동네 펴냄, 곽재구 지음, 352쪽, 1만3천8백원 `사평역에서` `포구기행` 등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과 따뜻하고 위로를 줬던 곽재구(57) 시인이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이번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시인이 인도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 산티니케탄에서 540일을 사는 동안, 우리 생의 수많은 1초들, 찰나의 시간들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한 영혼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언제나 지상이 천국이고 삶이 축복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2009년 7월, 시인 곽재구는 순천대 문예창작과에서의 시 강의를 잠시 멈추고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으로 떠난다. 그리고 2010년 12월28일까지 540일 동안, 그는 산티니케탄에 체류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2000년대 최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포구기행`이후 시인은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앤솔로지에 한 편씩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동화를 쓰거나 신문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하는`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어느 지면에도 발표한 적이 없는 `전작`이며, 책의 출간에 대한 의식도 없이 `필연적으로 쓰여진`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산문집의 배경은 비슈와바라티 대학교가 자리한 한적인 시골 마을인 산티니케탄이지만, 그것은 여느 여행기나 인도에 관한 잠언집들과는 출발점부터 차이가 있다. 시인에게 그것은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이었다.시인이 인도의 유명한 성지도 장엄한 풍광이 사람을 압도하는 여행지도 아닌 산티니케탄으로 떠난 것은 바로 40년 동안 꿈꿔왔던 `만남`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산티니케탄은 타고르가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다.△1장-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사람이 하나의 별이라면시인이 묘사하는 산티니케탄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다. 초가집들, 뙤약볕 아래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 우물 긷는 아낙네, 흙먼지 이는 시골길 위로 자전거 타고 가는 아가씨, 소와 개와 염소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저녁마다 전깃불이 나가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반딧불들…. 신을 섬기며 농사짓고 아이를 기르고 정을 나누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산티 사람들은 욕심도 경쟁도 고통도 절망도 알지 못한다. 시인은 이들을 `별`이라 일컫는다. 1부에서는 그 별과 같은 사람들과 얽힌 `인연`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2장-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릭샤 스탠드| 행복을 찾는 가장 빠른 길산티니케탄에 체류하는 동안 시인의 일상을 늘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릭샤`라 불리는 자전거 택시를 모는 `릭샤왈라`들이다. 길가의 꽃과 나무 등 모든 생명에게 `발로 아첸`(안녕) 인사를 건네고 시인에게 산티의 수많은 꽃이름들을 벵골어로 가르쳐준 인력거꾼 수보르는 그에게 `꽃 선생님`이자 시인보다 더 시인의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영혼이었다.△3장-마시 이야기| 일상 속 소중한 1초들마시는 `가정부`를 뜻하는 벵골어다. 산티에서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마시 이야기`에는 마시에 대한 여러 풍경들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만만한 주인`과 `만만치 않은 마시들`의 줄다리기는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가슴 졸이게 하고 때론 안타깝거나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감동적인 소통에 이른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에는 행복과 기쁨은 물론이고 갈등과 반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또한 포함된다는 평범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글편들이다.△4장- 가난한 신과 행복한 사진 찍기| 지상이 극락인 시간이 여기에벵골어를 공부해 타고르의 시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시인이 1년 6개월 산티니케탄 체류의 중심 과제였지만, 산티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작가로서 그곳의 사정을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이 장에서는 이 정주의 기간 동안 터득하게 된 삶의 지혜들에 관한 글이 주를 이룬다.시인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티의 노천카페 거리인 `라딴빨리`에 나간다. 반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그늘 아래 앉아 짜이를 마시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이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맞은편에 `달빛의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에게 종이배를 산 날 말을 걸어온 암리타라는 아가씨가 알려준 꽃나무였다. 그는 1년 동안 조전건다 나무를 지켜보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2010년 5월, 마침내 찬란한 빛의 축제와도 같은 광경을 목도한다. (`조전건다 꽃이 필 때` 1, 2)/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8

편리하지만 위험한 원시적 습관

`위험한 생각습관` 21세기 북스 펴냄, 레이 하버트광 지음, 312쪽, 1만5천원 인간은 선택의 많은 부분을 무의식에 맡겨둔다. 이는 태곳적부터 `편리함`을 추구해 온 뇌가 수천 년에 걸쳐 우리의 신경 세포에 남겨 놓은 일종의 원시적 습관으로, 학계에서는 이를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발을 삐끗해 넘어질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게 균형을 잡는다. 뿐만 아니라 문장을 읽을 땐 중간에 틀린 철자가 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바르게 읽고, 모든 조건을 알고서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라고 여긴다.휴리스틱은 우리가 일상적인 의사결정과 판단을 내릴 때 사용하는 인지적 경험법칙이자 마음속에 내재된 정신적 지름길로, 사소한 결정을 내릴 때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결정하게 한다. 학계에서는 대단히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지만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25년 이상 과학 분야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레이 허버트는`위험한 생각 습관 20(21세기북스 펴냄)`에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때로`죽음`을 부를 만큼 위험한 무의식적 선택 습관들을 20가지로 정리해 소개한다.“휴리스틱은 습관과 경험의 혼합물이다. 매일같이 내리는 소소한 선택마다 심사숙고하길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심사숙고하지 않고 내린 결정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우리의 먼 조상들은 매우 원시적인 방식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이러한 방식은 우리의 신경세포에 내재돼 있다.`본능`에 가까운 원시적 습관들은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1부에서는 이러한 원시적 습관을 내재한 우리의 몸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다뤘다.예를 들어 1장에서는 겨울이 되면 더 외롭게 느끼는 인간의`본능적 휴리스틱`에 대해, 2장에서는 가장 객관적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매우 자의적으로 세상을 보는 인간의 `시각적 휴리스틱`, 3장에서는 날아오는 공을 별다른 계산 없이 잡을 수 있게 하고 라이벌전에서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모멘텀 휴리스틱`에 대해 소개한다.2부에서는 세상을 측정하고 확률과 위험을 따져보기 위해 발달된 숫자와 관련된 휴리스틱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끼치는 강력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구체적으로 7장에서는 같은 숫자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혼란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과 한 명의 죽음에는 민감하지만 대량 학살에는 걸맞은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산수 휴리스틱`에 대해 소개한다. 8장에서는 특별한 쓸모가 없는 금이 인간을 열광하게 하고, 세상에 완벽한 남자는 없다고 단정하게 하는`희귀성 휴리스틱`에 대해 이야기한다.3부는 우주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에 대한 느낌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 우리의 믿음을 형성하는 `의미 창출 휴리스틱`들로 구성됐다. 세상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본능 `설계 휴리스틱`, 우리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이유를 알려주는 `수렵채집 휴리스틱`, 고정관념이 만드는 다양한 문제와 오류들을 다룬 `캐리커쳐 휴리스틱` 등. 18장 `범인 찾기 휴리스틱`에서는 판단과 처벌을 구분하는 인간에 대해 소개하고, 그와 연관된 다양한 딜레마를 소개한다.19장 `죽음의 신 휴리스틱`에서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20장 `디폴트 휴리스틱`에서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느끼지 않지만 실제로는 분명히 결정하고 있는 삶의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다룬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8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야한 정신`의 본모습

“별것도 아닌 인생이별것도 아닌 인생이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사랑이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도덕이이렇게 스트레스를 줄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세상이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글이이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똥이이렇게 안 나올 수가 없네. ”마광수 `서시(序詩)`마광수만큼 독자층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를 경외하는 마니아층과 그를 몹시 싫어하는 안티층까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제까지 그가 `감추는 미덕` 없이 소설 속에 표현하는 단어부터 너무 적나라하다는 것 때문이다.센티멘털리즘으로 일관하다가 섹스묘사를 하는 하루키나 아예 의도된 경박성을 갖고 섹스묘사를 하는 마광수 작가는 별 차이는 없지만, `하루키는 되고, 마광수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사실 그 해답은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비롯될 수 있다.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그가 지속적으로 이런 소설을 쓰는 것으로 반항아의 모습에 머무르고 있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그에게 야한 소설만을 쓰기를 강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광수는 싫다`라고만 편견을 가진 독자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마광수가 변했다.시인이자 소설가인 마광수(60) 연세대 교수가 장편소설 `미친말의 수기`(꿈의열쇠 펴냄)를 펴냈다. 그는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야한 정신`의 본모습을 이 소설에서 밝혀준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야한 여자`는 가짜였다. `야한 여자` 뒤에 숨어 있는 `야한 정신`의 실체, 마광수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은 현상 너머의 본질을 마광수 장편소설 `미친 말의 수기`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꿈의열쇠 발행인 조선우 대표는 “그러나 한편으로 당신이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장밋빛 미래와 인생에 대한 달콤한 거짓말에 길들여져 있다면 이 책은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인생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미친 말의 수기`책장을 열어 보라. 이 소설은 멘토가 절실히 필요한 우리 사회에 진짜 싱싱한 삶에 대한 철학적 멘토로 나선 마광수의 변신을 만나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우리는 권위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에 무척 인색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마 교수는 철옹성 같은 권위에 도전을 시도하는 십자가를 졌다. 그는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시선으로 `생각의 전환`을 시도한다. 예를 들면, 항일시인으로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윤동주 시인의 권위에도 성역은 없다는 식이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성과는 별개로 독창적인 정신분석학적 시도를 한다. 저자의 의견에 공감을 하든 안 하든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생생한 브레인스토밍을 시도해볼 수 있다.또 이 `미친 말의 수기`안에는 마광수 작가의 그림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마 교수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본질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것.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권위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그동안 `마광수 = 야한 여자` 공식의 고정된 편견 때문에 그의 문학이 가진 다른 여러 가지 장점들을 놓치고 있었다. 오늘날 문학인들이 일반 독자들은 이해하기도 쉽지가 않은 현학적인 문체로 그들만의 리그들로 전락하는 데 반해, 그의 글은 독자를 배려해 놀랍도록 읽기 쉬운 문체이다. 그의 작품은 읽는 사람들도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또 이 소설 속에서 천재적 문학가로서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직관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마 교소는 이 소설의 시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나는 `창조적 불복종`이라는 말을 일종의 화두로 삼고서 지금까지 여러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창조`란 반드시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항과 불복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창조를 시도한 사람들은 기존의 진리나 윤리 등에 대해 `삐딱한 눈길`을 보낸 사람들이다.”마광수 장편소설 `미친 말의 수기`는 그의 이러한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책일 수도 있다. 대체로 `수기`라고 작품에 표시한 소설들은 작가의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써놓은 글들이다. 그리고 프랑스 작가 베르나노스의 `어떤 시골 신부의 일기` 같은 제목을 붙인 소설들도 그렇다. 가장 유명한 수필식 소설은 릴케의 `말테의 수기`나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등이다. 이 소설들은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기록한 것이다.“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했지만, 나는 거꾸로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라고 말하고 싶다. 고정불변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유연성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서 모든 것들을 대할 수 있어야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니, 고정불변의 `진리`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가 과학발달의 역사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다.”(10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꿈의열쇠 펴냄, 마광수 지음, 280쪽, 1만3천원

2011-08-11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믿는 것”

도서출판 그루 펴냄, 서정은 지음, 151쪽, 8천원“사랑한다는 것은누구인가를 위해기다리는 것입니다.사랑한다는 것은누구인가를 위해인내하는 것입니다.사랑한다는 것은누구인가를 위해봉사하는 것입니다.사랑한다는 것은누군가를 위해이해하는 것입니다.사랑한다는 것은누구인가를 위해용서하는 것입니다.사랑한다는 것은누구인가를 위해믿는 것입니다.”(서정은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중)대구문학 신인상(1993)으로 등단한 서정은 시인(경북도청 근무)이 두 번째 시집 `눈부신 오후`(도서출판 그루 펴냄)를 냈다.서정시편 들이다. 시들이 신선하며 알차고 그 언어들이 생생하게 시 속에 살아 있다. 세속적인 군소리가 없다. 조병화 시인이 “시는 설명이 아니라 강한 느낌으로 읽은 사람에게 큰 기쁨과 그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듯 그의 시들은 시의 흐름 속에 기쁜 감동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갈대가 자라/ 고목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갓 갈대/ 먼 훗날/ 그날에 사랑하리라/ 그대는 그렇게/ 그렇게 말했었다/ 인연은/ 살아있는 날의/ 순수한 진실/ 지는 목숨/ 꽃잎 되어 흩날려도/ 그때/ 그 말은/ 푸른 잎으로 살아있다”(`지는 목숨 꽃잎 되어 흩날려도`중에서)역시 사랑시를 써왔던 그 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 가락은 1993년 `대구문학`에 그를 추천했던 조병화의 가락에 닿아 있다.이와 함께 시 `비애`의 `언제부터 우리들은/ 푸른 날개를 잃었을까`는 구절처럼 그의 시는 `순수 영혼의 시`를 열망했다는 시심이 시어의 날을 세우고 서 있다.`느티나무 가지 끝/ 잎새에 노란 물들이 들고 있다`(`느티나무 아래서`중에서)에서는 푸른 느티나무에서 노란 잎새를 보고 `삶과 죽음이 있는 그곳엔 모두 길이 있다네`(`푸른 길`중에서) 구절은 그림 보다 더욱 맑게 삶의 숲을 그려내고 있다.`우리 모두는 흘러가는 순간에 있는 것`(`고독한 날의 비망록`중에서). 그는 고독, 생존과의 대결, 그 속에서 다시 빚어지는 고고한 학의 청아한 울음, 그것마저 넘어 시의 공감대를 가멸지게 형성하고 싶은 염원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다.서 시인은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그동안 내 영혼이 얼마나 순수해졌을까, 원고를 뒤적이며 투명도를 재어보았다.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으면서 살펴보았다. 쓰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쳤다”라고 말했다.고령 출신인 시인은 제4회 대구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따. 2006년 시집 `길에서 주운 돌 하나`를 펴냈으며 경상북도공무원문학회, 대구문인협회, 대구불교문인협회원, 솔뫼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도서출판 그루 펴냄, 서정은 지음, 151쪽, 8천원

2011-08-11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나누는 마음이 행복

故 이태석 신부 강론 모음집 `당신의 이름은 사랑` 어느덧 고 이태석 신부가 떠난 지 1년7개월,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다 대장암으로 지난해 1월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삶과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바쁜 일상, 이기심, 물질주의 등에 치여 밀쳐두었던 비움과 나눔과 사랑의 문을 여는 큰 도구가 됐다. 이 신부의 삶을 통해 알게 된 낮은 자리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뜻과 행동이 마음과 마음을 타고 흘렀다.사제로서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이태석 신부의 생전의 강론들을 모아 엮은 유고강론집 `당신의 이름은 사랑`(다른우리 펴냄)이 출간됐다.살레시오 수도회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소속 신부인 이태석 신부가 한 강론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이태석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 내게 해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과 그가 몸 담았던 살레시오회의 영성인 `나에게 영혼을 달라.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라는 돈보스코의 가르침을 따라 아무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아프리카 남수단 룸백 교구의 톤즈에서 선교생활을 시작했다.교육을 받지 못하고 전쟁의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던 톤즈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충동적이었다. 그러나 살레시오 영성 안에서 이태석 신부는 그곳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음악을 가르치고, 치료를 해 주었고, 이러한 배움과 사랑을 통해 톤즈의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됐다. “배움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는 내게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라며 소외받은 땅에서의 사목을 수행하다가 2010년 1월 뒤늦게 발견된 대장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난 형제들과 아이들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돈보스코가 저를 축복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아쉽게 선종하고 말았다.이 책에서는 인류애를 실천한 의사 이태석의 삶뿐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살레시오회의 창설자인 돈 보스코 성인과 같은 뜻을 품고 사제로 살아간 이태석 신부의 사목적 삶과 종교적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깊은 신앙의 힘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한 `진정한 기부자` 이태석 신부가 톤즈의 가난한 이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전한 따스한 위로와 보살핌이자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당신의 이름은 사랑`을 읽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나누려 하는가?”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이태석 신부는 이 책 `당신의 이름은 사랑`에서 전한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살피는 마음이라고. 사랑은 내 이웃에 관심을 갖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고, 관심은 마음을 내어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일이라고.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삶이라면 헛되이 산 것이 결코 아니라고. 사랑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원동력이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행복의 원천이라고.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마치 많이 가짐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종종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할 때가 많음을 스스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이태석 신부는 전한다. 주일마다, 때마다 교회를 찾아 기도하고 소원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향기 나는 삶으로 개선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습관적인 종교 행동 치레는 아니었는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게 해달라는 안달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기도 중에 가진 것을 누군가와 나누게 되기를 간구해 보라고.이태석 신부는 우리에게 나누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적음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한다. 비록 우리에게는 하찮은 1%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100%가 되고, 나누고자 함이 바로 기적이라고. 나눔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불빛으로 더 큰 미래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이태석 신부가 우리에게 말한다. `여러분 모두가 `당신의 이름은 사랑`이라고./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다른우리 펴냄, 이태석 지음,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 정리, 3202쪽, 1만5천원

2011-08-04

`성난타조`

우리 시대 비극 그린 슬픈 자화상안광(54) 작가가 15년 간의 긴 침묵을 깨고 두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정처 없는 존재들의 애옥살이를 좇던 첫 소설집 `쥐와 그의 부하들`에서 작가가 보여주었던 핍진한 관찰력은 한층 성숙해졌고, 장편 `유령사냥꾼`에서 묻어나던 우화성 짙은 스토리라인과 환상적 리얼리즘은 독특한 구도로 새로 짜여졌다.`성난타조`(실천문학사 펴냄)에서 안광 작가는 일상에서 파생되는 현대인들의 전형적 고통과 애환을 특유의 상상력과 탄탄한 알레고리 구조를 통해 재현해낸다. 타의에 의해 욕망이 획일화되고 재편성되는 현대사회구조 속 존재의 군상들이 이 소설 속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소설가 김원일은 안광의 소설을 두고 “넉넉한 정서로 소재를 수용하면서도 긴 여운을 이끌어내어,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평하며 현대인이 당면한 비극적 상황을 준엄하게 환기시킨다.표제작인`성난 타조`는 남성 판타지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화자인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고 퇴직금으로 `타조 농장`을 시작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은 `21세기 미래 축산 타조 벤처사업`에 대한 심포지엄에 홀려 아내와 함께 “호주의 대농장주처럼 풀장 있는 대저택에서 수십 명의 인부와 하인들을 거느리고 성주처럼” 사는 전원생활을 꿈꾸었으나 주문이 쇄도할 거라고 믿었던 타조알과 타조고기는 외면당하고 3년 만에 망하고 만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농장`은 `전원과 자연`에 대한 꿈이 아니라 총화되고 집적된 `자본`을 향한 판타지이다.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간의 꿈과 이상조차 가판대에 진열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낸다ㅏ. 저마다의 `개별`의 만개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이 시대에 우리는 쇼윈도에 진열된 `기성품`으로서의 `판타지`를 산다. 온갖 크레딧 카드와 최신 브랜드의 기호품과 첨단 기기들을 존재 증명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매끈한 기계와 아스팔트 위에 구축된 `인공의 판타지`를 꿈이라 믿고 달려 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욕망의 바닥과 환멸, 죽음의 얼굴을 본다. 안광의 소설은 우리 시대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욕망이 죽음과 함께 펼치는, 어지러운 무도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풍자하고 또 애도하고 있다. 이 황폐한 삶이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 안광의 소설이 신랄하면서도 슬픈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실천문학사 펴냄, 안광 지음, 240쪽, 1만1천원

2011-08-04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민중현실과 시대상황 연계“지금 다시 ?가 필요하다” 우리시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이자 지식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3)의 문학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5`(창작과 비평사 펴냄)가 출간됐다.`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4`(2006)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문학평론집으로, 2007년부터 꾸준히 발표해온 문학평론들을 제1부에 묶고, 1980년대 여러 지면에 실은 외국문학 관련 평론들과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주최한 관악초청강연내용을 모아 제2부를 꾸렸다.특히 한국문학에 대한 제1부의 글들은 문학현장에 밀착해 비평활동을 해온 저자의,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깊고도 날카로운 분석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명문들이다. 새로운 세대와 미래파 시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고은에서부터 박완서 신경숙 윤영수 박민규 김애란 등의 작품에 대한 정치한 분석은 그의 여전한 독서의 폭과 함께 한국문학과 현장비평에 대한 애정을 잘 드러내준다.`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에서 그 어느것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나, 알게모르게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서 고리타분하고 고답적인 질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책 제목은 (…) 그 물음을 신실하게 계속 묻는 일이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긴요하다는 믿음에서 택한 것이다. 더구나 문학평론이 인문적 교양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 중요성은 문명사회의 누구에게나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물음이 중단될 가능성은 많고 실제로 중단되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중단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여서, 문학이 무엇이다라는 정답을 임의로 설정해서 더이상의 묻기를 끝내버리는 방식도 있고, 정답이 없음에 자족하고 마는 또다른 정답주의도 있으며, 작품을 실제로 읽고 생각하는 작업을 소홀히함으로써 묻기를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책머리에, 7면)이와같은 통찰을 거쳐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왜 지금 다시 필요한지를 사유하는 대목은 역시 저자의 오랜 연륜과 깊은 내공이 담긴, 이 시대에 던지는 근본적이면서도 갱신을 요구하는 화두라 할 수 있다.표제 평론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에서 저자는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이 어떻게 익숙한 작품과의 새로운 대면을 유도했는가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 최근 한국문학이 사회 상황과 맥락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한다. 문학적으로도 일대 사건인 촛불항쟁에 직면해 문학인들이 일반 시민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은 자기 부류에서만 읽히는 글쓰기로 자족하고 작가들조차 그런 평론에 언급되기 위해 작품을 쓰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민중현실 및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지금에 다시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1970년대 이래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등으로 이어져온 저자의 문학론의 궤적이 당대와 어떻게 호흡했는지 짚는 한편으로 그 현재적 재해석으로 이어지고 확장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창작과 비평사 펴냄, 백낙청 지음

2011-08-04

`생각의 일요일들`

일상의 읽을거리 담은 유쾌한 창작노트 은희경, 등단 이후 첫 산문집.이 한 줄 외에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기까지만 들어도 호흡이 빨라지고 마음이 급해진다. 처음 만나는 `은희경 산문집`이라니. 굳이 기존에 그녀가 발표한 소설책 제목들을 줄줄 읊어대거나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보아도 사족이 되고 만다. 그냥 `은희경 산문집`, 이 한마디면 되는 것. 여기 이 산문들이 있었기에 은희경의 수많은 장편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생각의 일요일들`(달 펴냄)은 은희경(52) 작가가 소설을 연재하면서 틈틈이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한 작가의 창작 노트이기도 한 이 책은 그렇다고 글쓰기의 이론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일상의 흐름들을 연결해 재미있고 유쾌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열어놓은 집필실 창문을 통해 작가의 사생활 주변을 기웃거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은희경 작가의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와 악수할 수 있다. 창작 과정에 수반되는 끝없는 고민과 생각의 발자취를 따르다보면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 자분자분 산책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500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긴 호흡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고 또 어떤 사소한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를 거꾸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형식의 산문집은 보기 드물게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소설을 집필하던 일산과 서울의 작업실과 원주, 그리고 잠시 머물다 온 독일과 시애틀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들 속에 조금의 보탬이나 과장 없이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그 덕분에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어느 한 장 허투루 넘길 수는 없다. 한 세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작가가 그려가는 밑그림들을 펼쳐보는 동안, 생각의 날을 다듬고 호흡을 고르는 과정 자체에 한 편의 장편소설 탄생 과정이 고스란히 함축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우리가 비슷한 감각으로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동시대인이라는 느낌, 그것이 저를 쓰게 만듭니다.”은희경 작가가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선명한 울림을 받게 되는 건, 그녀는 열 권의 소설책을 낸 대한민국 대표작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밥 먹고 그렇게 엇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기도 하다는 동질감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의 블라인드를 열고 날씨를 살피고 시계를 보고 커피콩을 가는 일상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쓰기 시작하는 것,그밖에도 충분히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면면들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일화 등 이 모든 부분은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힘줄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 얼마간이 됐든 전체를 이루게 하는 데 중요한 나사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평소 소설을 통해 보여주었던 `다소 쿨함`과 `서늘한 맺고끊기`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약간의 엉뚱함`과 `따뜻한 진지함`을 첫 산문집에 담았다.이 산문집은 그가 작년 1월부터 7월까지 출판사 문학동네의 웹진에`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는 동안 매연재물에 직접 달았던 댓글을 중심으로 엮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달 펴냄, 은희경 지음, 324쪽, 1만2천원

2011-07-28

`이오덕 유고 시집`

`교육의 성자` 미발표 詩 341편 “어린이의 말은 시어린이의 몸짓은 시산새처럼 재잘거리는피라미처럼 파닥거리는팔팔 살아있는어린이는 생명 바로 그것( ….)부끄러워라 우리 어른들어린이에게 말하는 자유를 주자어린이에게 뛰노는 자유를 주자그리하여 그 생명의 시를 읽고우리 모두 어린이로 돌아가자아아, 어린이어린이를 살리는 일이것만이 인류의 희망이다.”(이오덕`인류의 희망`)우리말·글 살리기에 평생을 바친 아동문학가 고(故) 이오덕(1925~2003) 선생의 미발표 시가 수록된 유고 시집이 출간됐다.`이오덕 유고 시집`(고인돌 펴냄)은 `이 시대의 참교사`로 불리는 `교육의 성자` 이오덕 선생이 1950년대부터 2003년 무너미 고든박골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쓰고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을 모아 엮었다.이오덕 선생은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살며, 우리나라 아동문학이 나아갈 길을 열었고, 우리말 바로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를 펼친 한글운동가이고, 어린이 문화 운동의 싹을 틔운 어린이문화운동가로 살면서, 어느 이름난 시인 못지않게 많은 시를 썼다.`이오덕 유고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오덕 선생의 아들인 이정우 `이오덕 학교` 교장 선생이, 이오덕 선생 유품들과 자료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무리 된 시들이다. 또 살아생전에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에 준 시 몇 편도 딸이 보내줘 빛을 보게 됐다.`이오덕 유고 시집`은 시로 보는 우리나라 역사와 교육에 대한 아주 귀중한 증언이고 문헌이며 그리고 이오덕 선생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오덕 개인사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이오덕 연구가인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이 시대별로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온 이야기를 썼다.`이오덕 유고 시집`은 시대별로 나눠 6부로 편집해 984쪽의 양장본으로 엮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이오덕 선생청송 출생인 이오덕 선생은 1944년 청송 부동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86년 성주 대서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43년 간 교직에 종사했다. 54년동시 `진달래`를 `소년세계`에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7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필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됐다.교육이론서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 평론집 `시 정신과 유희 정신`, 교육 수상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아동시집 `일하는 아이들`, 아동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 53권의 저서를 냈다. 한국아동문학상, 단재상 등을 수상했다고인돌 펴냄, 이오덕 지음, 984쪽, 3만원

2011-07-28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옛시조와 가사 1`

쉽고 재미있게 풀이한 우리 고전문학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옛시조와 가사 1`(살림어린이 펴냄)에는 초등학생들이 꼭 알아야 하고, 외기 좋은 평시조 22수와 대표적인 가사 5편을 골라 실었다.선비들의 절개와 자연 속의 삶, 백성을 가르치는 노래 그리고 여인들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시조는 주제별로 나눠 당대의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실었다. 시조의 원문를 현대어로 쉽게 풀어 적되 원문의 맛을 살렸다. 그리고 시조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꼼꼼히 들여다보기`와 그 시조와 관련된 주제, 상황, 일화를 소개한 `한걸음 다가가기`를 곁들여 시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가사는 안빈낙도를 노래한 `상춘곡``면앙정가`와 임금에 대한 충정을 노래한`사미인곡` 그리고 명승지를 유람하며 노래한`관서별곡``관동별곡`등 5편이 실려 있다. 가사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가사가 씌어진 개인적, 사회적 배경을 그린 `배경동화`와 조선 시대 사용했던 언어를 알기 쉽게 풀이한 `현대어로 원문 맛보기` 그리고 원문 중 한 자락을 자유롭게 스토리로 풀어 쓴 `가사 한 자락 산문으로 맛보기`를 곁들여 새로운 감상법을 시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살림어린이 펴냄, 권영상 글

2011-07-28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어느새 인생의 시계는 오후시련은 영혼을 담금질하는 축복찬란한 노을 보는 희망을 노래하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57) 시인이 열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펴냄)를 펴냈다. 부드러움과 강직함 속에 녹아드는 맑고 투명한 언어로 세상을 감싸안으며 전통적인 서정시의 진경을 펼쳐온 시인은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예와 다름없이 삶에 대한 성찰과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진솔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들을 일치시키는 시인의 타고난 영성(靈性)”(고은 시인)이 지나오는 동안 폭과 깊이를 더해 메마른 가슴과 고단한 몸을 적시는 단비가 돼 흘러내린다.도종환의 시는 사랑과 연민에 뿌리를 둔 희망의 노래이다. 가난과 외로움으로 얼어붙은 “빙하기로 시작한 어린 날”(`빙하기`)로부터 “흥건한 울음”이 넘치던 “생의 굽이 많은 시간”(`귀뚜라미`)을 지나온 시인은 “모진 세월 속에서 푸르게/자신을 지키는 이들이 있는 걸” 고마워하며 “작은 것에도 크게 위안받는”(`제일(除日)`)다. “툭하면 발길로 나를 걷어차곤 했”(`인포리`)던 세상이지만 상처와 아픔마저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고통 속에서도 새살이 돋는 희망의 안쪽을 바라본다.“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부분)도종환 시인은 빼어난 서정시인이면서 교육운동가이자 문화운동가로서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아낌없이 바쳐왔다.“모든 몸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꿈”(`몸에 대한 블라지미르 쏘로킨의 발제`)을 잃지 않는 시인은 “어떤 모형을 사회에 강제로 도입하기 위해 인간적 가치들을 버려야 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다시금 시퍼런 정신을 벼리며 사회의식으로 지평을 넓힌다.시련을 영혼의 담금질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청안한 삶을 꿈꾼다.시인은 8년 전인 2003년 3월 심신 허약으로 쉽게 피로가 찾아오는 `자율신경 실조증`이란 병을 얻어 교사직을 그만두고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산방(山房)으로 들어갔다.오랜 시간 산속에서 생활한 시인은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에도 의미를 두고 흔들리며 피는 꽃 한송이에도 애정을 담는다. 더욱이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혼자씩 젖”(`나무들`)으며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영혼들”(`맨발`)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애틋하기 그지없다.굽이 많은 생을 지나온 시인은 어느덧 인생의 오후에 접어들었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 사리물고”(`발치(拔齒)`) 평온한 속도로 “바람 속에서 갈기털을 휘날리며 산을 넘는”(`악령`) 시인의 어깨 위로 “반쪽 달빛”(`하현`)이 환하게 내려앉는다. 시의 산길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창비 펴냄, 도종환 지음, 132쪽, 8천원

2011-07-21

`십자군 이야기1`

평화를 염원하는 `神의 전쟁` 역사서 `로마인 이야기`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74·사진)가 십자군 전쟁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욕망과 의지를 다룬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 펴냄)`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저자가 필생의 역작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으로 전체 3권 가운데 일본에서는 2권까지 출간됐으며 국내에는 이번에 1권이 나왔으며 10월께 2권, 내년 상반기에 마지막 3권이 번역돼 나올 계획이다.책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200여년 지속된 인류 사상 최장의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했던 십자군 전쟁을 장쾌한 서사로 다루며, 권력자들이 종교와 이념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익을 둘러싼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보여준다.이 책은 십자군이 1096년 유럽을 출발해 예루살렘을 정복한 과정과 이후 십자군 국가의 성립 과정, 그리고 1118년 십자군 제1세대가 역사에서 퇴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힘 있는 문장은 십자군 전쟁을 지속시킨 인간의 복잡다단한 욕망을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숨결로 재현한다.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종교와 이념 혹은 지역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균형 감각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스스로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서”라고 했다.`십자군 이야기`에는 중세 시대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이는 그런 시각과 관점에 의한 왜곡이 없다. 서구 중심의 시각이나 이슬람 중심의 시각, 혹은 보수적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벗어나 그 시각 때문에 왜곡시켜 보지 않는 강점이 있는 것이다.또한 `십자군`이 가능했던 중세 시대의 물적 토대와 구조에 대한 분석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봉건제와 장원, 농노, 왕과 봉건 제후의 관계, 기사도,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법왕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 교회의 갈등(비잔틴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과 가톨릭 개혁 운동) 등 그런 것에 힘을 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그리고 있는 중세의 인간들은 어찌 보면 중세의 인간스럽지 않다.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중세적이지 않다. 현대적이다. 그들의 신념과 이상, 욕망들이 그렇기에 생생하게 다가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시오노 나나미 지음, 1만3천8백원

2011-07-21

`내가 누구게?`

생각의 힘 키우는 한국 첫 수수께끼 동시집우리나라 동시문학의 거장, 신현득 시인의 스물네 번째 동시집 `내가 누구게?`(사계절 펴냄)가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되는 `수수께끼 동시집`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동식물과 자연 현상, 인물 등을 소재로 한 37편의 수수께끼 동시가 실려 있다.시인은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고 여린 생명, 하찮아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에도 동심을 불어넣는다.`내가 누구게?`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시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동시집으로, 시 한 편 한 편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마치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조곤조곤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뜨뜻하게 달궈진다.무엇보다 늘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노 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가치 있는 책이다.신현득 시인은 “수수께끼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 재미있는 말놀이”이며 “이런 수수께끼 형식을 빌려서 쓴 동시를 수수께끼 동시”라고 정의한다.또한 “수수께끼 동시는 우리나라에서 첫 삽을 뜨는, 동시의 새로운 갈래”이며 “비록 말놀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엄연한 문학작품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일찍이 고(故) 윤석중 선생이 수수께끼 동시를 계획했으나 끝내 작품을 내어 놓지는 못했다. 따라서 `내가 누구게?`는 그가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뜻을 후배 시인이 이어나가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사계절 펴냄, 신현득 글, 112쪽, 8천원

2011-07-21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

가족의 참의미 일깨우는 다문화가정 이야기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은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웅진주니어 펴냄)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의 참의미를 체험해 나가는 따뜻한 이야기다. 시종일관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코믹하고 사랑스럽게 묘사해 나가는 작가의 재능이 돋보인다.이 책은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대상을 받았고, 경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우수예술프로젝트 선정작이기도 하다.이 책은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관우와 할아버지가 벌이는 유머러스한 사건이 가득하다.무에타이 고수였다는 과거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앞니가 빠진 어눌한 할아버지의 모습하며, 한국에는 없는 겉과 속이 다른 기묘한 고추젤리 덕분에 혼쭐이 난 관우와, 할아버지의 엉터리 태권도를 무에타이인 줄 알고 기겁하는 국동섭의 일화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돌게 한다.태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관우. 이번에 처음으로 태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한다. 관우는 할아버지에게 태국 무술인 무에타이를 배워, 평소 자신을 놀리던 똥국과 부하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한다.그런데 비쩍 마른 데다 이까지 빠져 버린 할아버지가 과연 무에타이를 할 수 있을까?할 줄 안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하는 관우가 무사히 무에타이를 익힐 수 있을까?처음에는 무술에만 관심 있었던 관우. 하지만 낯설게만 느껴졌던 할아버지가 관우처럼 라면을 좋아하고, 관우가 하는 태권도를 따라서 하는 동안, 관우와 할아버지는 서서히 진짜 가족이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웅진주니어 펴냄, 김리라 글, 156쪽, 9천5백원

2011-07-21

세계적 시인 고은 사랑가를 부르고 시대를 얘기하다

아내에게 바치는 생애 첫 사랑시집`상화 시편 : 행성의 사랑`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92쪽, 9천5백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인 고은(79)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 두 권을 나란히 내놓아 눈길이 쏠린다.고은 시인이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창비 펴냄)은 28년 전 결혼한 아내, 영문학자 이상화씨에게 바치는 시집이다.이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는,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한 남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시인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세월과 사유의 과정을 담은 시편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나아가 인간의 사랑 속에서 시간의 무한성과 우주의 약동으로 확장되어나가는 깊이있는 주제의식에서는 대시인의 풍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고은 문학의 또하나의 기념비적 성과라 할 만하다.“사랑하기 위해서는 / 가난해진 빈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서문`에서 시인은 스스로 “80세 앞에서 사랑의 시를 쓰는 나를 이제까지의 누구도 예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시인은 지난해 자신의 대표적인 연작시집인 `만인보`를 마치고 “완만한 흐름의 강물이 갑자기 숨찬 흐름으로 바뀌는” 일에 몸을 맡겼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시`는 그의 삶과 문학세계가 오롯이 담긴 “삶의 최고 형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해가 진다 / 사랑해야겠다 / 해가 뜬다 /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 너를 사랑해야겠다 /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서시` 전문)시인은 시작부터 거침없이 사랑을 이야기한다.선 굵고 강렬한 시인 특유의 필치로 선언하는 이 사랑은 태곳적 인류의 태동과 함께 살아숨쉰, 인간이 존재하는 근거이자 존재 그 자체로서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것이다.하여 연인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너는 먼 근원이다`)이며 `둘의 나신으로 태고의 달빛을 밀어내고 현재로 건너오게 하는`(`달밤`) 존재의 기원과도 같다.또한 시인에게 사랑은 관념 혹은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에 토대를 둔 실재하는 그 무엇이다.그런만큼 사랑은 “언제까지나 정의되지 않”는, “무수한 정의들 이전, 무수한 정의들 이후” (`아직 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장엄한 인연이기도 하다.`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에서는 고은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쏠쏠한 재미도 얻을 수 있다.28년 전 결혼식의 풍경, 자택에서 보내는 부인과의 시간 등 시집 곳곳에는 시인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더불어 사랑에 울고 웃고 감동하는 범부로서의 솔직한 모습 또한 이 시집을 읽는 감흥을 더욱 드높인다.황혼에 즈음해 탄생을 노래하다``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36쪽, 7천원`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 펴냄)에서 시인은 바람 같고 폭포 같은 목소리로 우리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시대와 맞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큰`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끊임없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시쓰기를 꿈꾸는 시인의 모습이 중단없는 갱신과 변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도저한 시정신을 확인하게 한다.시인은 기왕의 성과와 세월에 안주하는 일 없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맹렬한 기세로 놀라운 창작 에너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114편의 시 한편 한편이 모두 “고여 있지 않으려는, 낡아가지 않으려는, 어떻게든 다시 태어나려는 역동성의 증거”이자,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여전히 청춘으로 사는 귀신이 있는 모양”(안도현, 추천사)이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만든다. 그만큼 힘이 넘치는 시들이다.“오늘도 내 발밑에서 / 고생대 화성암 층층의 억센 함구로 캄캄할 것 / 오늘도 내 서성거리는 발밑에서 / 바스라져 / 바스라져 / 쌓여 울부짖다 퇴적암의 굳은 포효로 캄캄할 것 / (…) / 이토록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로부터 / 내 고뇌가 와야 한다 / (…) / 이 모독의 지상 여기저기 내 석탄의 고뇌가 와야 한다”(`태백으로 간다`부분)시인은 자신의 발밑에 쌓인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을 돌아보는 시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즈넉한 관조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석탄으로부터 곧장 수억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생대의 시간을 현재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그로부터 단숨에 시인의 고뇌가 와야 함을 거듭 다짐한다.부당한 시대를 향해 화살이 되어 꽂히는 시를 토해내었던 시인은 여전히 시대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시대와 맞서고 있다.모두가 중심을 향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시는 시대의 변방을 자처한다. 변방은 곧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곳, 우리가 오래전에 떠나온 곳이다. 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두고 온 우리의 고향이며, 그곳을 통해서만 우리는 중심을 향해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변방의 시선을 지닌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는 `흉측망측`하기 이를 데 없어, 시인은 한탄을 금치 못한다. 삼천리강산을 초토화시키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린다.“오늘도 강은 강대로 죽어가고 산은 산대로 마구 죽어갑니다 // 돌아보소서 / 이 꼬라지 / 이 꼬라지가 / 할아버지 할머니 후손의 막된 나의 삶입니다 // 돌아다보지 마소서 / 더이상 나는 당신들의 무엇이 아닙니다 / 한갓 이 문명 떨거지 생핏줄 끊긴 불초막심의 삽날입니다”(`나의 삶―네 강을 걱정하며`부분)나아가 시인은 이 `막된 삶`을 낳은 모든 중심의 문명을 향해 거침없는 일갈을 날린다.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다시 말한다 /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불을 발견하고 술을 발견하던 시절이여 / 거기로부터 / 너무나 멀리 와버렸구나”(`포고`).그러나 시인은 시원에 기대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 배어 있는 신생을 향한 열망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은 끝내 세상을 내던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기를 꿈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박병선 박사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

`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 북오션 펴냄, 조은재 글 1975년 외규장각 도서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프랑스 거주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로 유학을 간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도서관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우리 문화유산`직지`를 찾아냈고, 이것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책임을 밝혀냈다.그리고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에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고 10년간에 걸쳐 그 내용을 연구해 해석했다.박병선 박사는 이 보물이 한국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수십 년 동안 반환 운동을 펼쳤고, 드디어 지난달 11일 우리나라로 이 선조의 위대한 유산이 돌아오게 된 것이다.`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북오션 펴냄)은 그런 박병선 박사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전달하는 책이다.책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거쳐 뇌수막염에 걸리는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여성 유학생 1호가 되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후,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시키기 위해 박병선 박사가 펼친 노력과 헌신,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어린이들에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꿈을 이루게 하는 노력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항공과 우주의 꿈을 펼치는 세 친구 이야기

`하늘로 우주로 네 꿈을 쏴라!` 한겨레아이들 펴냄, 황도순·오선아·김수석 글 한겨레아이들의 `열두 살 직업체험` 세 번째 책인 `하늘로 우주로 네 꿈을 쏴라!`는 항공과 우주 분야의 직업을 항공 편, 로켓 편, 인공위성 편, 우주인 편으로 나눠 살펴보는 책이다. 또한 하늘과 우주를 향해 꿈을 꾸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꿈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항공과 관련해 흔히 알고 있는 두 직업, 조종사나 승무원 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안전을 책임지는 비행기 정비사,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돕는 항공 교통 관제사, 운항 관리사들도 만나 본다.또 인간과 인공위성 등을 우주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인간을 우주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매개체인 로켓의 원리부터 하나의 로켓을 만들기 위해 어떤 분야의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대는지 알아본다.이와함께 인공위성 제작 과정을 통해 인공위성분야의 다양한 직업들을 만나보고, 마지막으로 우주인 선발 과정을 통해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 과정들을 거치는지, 우주 관련 직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황도순 박사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위성구조팀장으로 일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인 `우리별 1호`와 `우리별 2호` 등 많은 인공위성 개발과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이다. 이렇듯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연구 성과와 자료들을 토대로 만들어져 보다 깊이 있는 정보와 내용으로 채웠다.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직업에 대한 소개를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는 것이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정보를 실었다.항공 분야는 파일럿, 스튜어디스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들이 있지만 우주 분야는 직업군이 다양하지도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군도 아니다. 이 책에는 `다짜고짜 인터뷰` 코너를 두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더불어 `궁금타파`라는 정보 코너를 두어 `공항에는 어떤 직업이 있을까?` `인공위성을 만드는 사람들` `우주 관련 직업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직업 이야기를 들려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읽고 쓰는 즐거움이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양의 책을 읽는 작가.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지식인 중 하나인 움베르토 에코. 그만의 독특한 지적 유머가 듬뿍 담긴 에세이가 오랜만에 출간됐다.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성공한 교수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코의 나이는 이미 여든 살이다.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그는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했으므로 소설가로서 자신의 나이는 채 서른 살이 되지 않는다고 허풍을 떨며,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등 다섯 권의 소설 외에도 수많은 비평서와 칼럼을 통해 본인이 `걸어 다니는 지식의 백과사전`임을 보여주었던 `대작가`가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 이야기를 우리에게 고백한다는 걸까? 에코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독자들은 이미 예상했겠지만, 그가 말하는 고백이란 사적인 의미의 고백과는 거리가 있다. 이 책의 본문 맨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란 바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말한다.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서부터 호메로스와 단테, 보르헤스와 제임스 조이스, 톨스토이와 뒤마 등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 소설과 독자와의 관계, 소설가와 소설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독자와 소설가와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 첫 번째는 에코의 방대한 독서 이력이 선사하는 지식의 즐거움. 두 번째는 에코 자신이 겪었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재미있는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세 번째는 능청스럽고 뻔뻔할 정도로 익살스러운 유머가 주는 즐거움이다.이 짤막한 에세이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지식을 읽고 그것에 영향 받아 다시 쓰게 되는 행위, 즉 읽고 쓰는 행위에서 이토록 경이로운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위대한 작가의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온 짧은 에세이 한 편이 독자에게 얼마만큼 지적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읽는 행위가 쌓이고 쌓이면 쓰는 행위에 언젠가는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이 책은 성공한 교수이자 학자로서 살고 있던 그가 왜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었는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외야에서 날아오는 하얀 공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충동적으로 결심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에코 역시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열여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한 소년, 에코는 회랑을 걷다가 어두운 장서관 위에 펼쳐진 `성인전`(교회력 연대로 정리된 성인, 순교자의 전기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깊은 적막과 어둠 가운데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몇 가닥의 빛줄기가 쏟아지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그의 온몸에는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그 순간이 의식 밖으로 뛰쳐나와 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렇듯 창작 과정에 영향을 주었던 개인적 경험과 작품의 뼈와 살이 되어주었던 여러 텍스트들을 공개하는 첫 장은 에코의 유머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2장에서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다”고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에코 역시 “텍스트는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에” 작가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독자에게만 살짝 윙크를 던지듯이 그는 작품 속에 이중코드라는 요소를 심어놓았고 그걸 알아보는 수준 높은 독자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끔찍이도 즐긴다. 좋은 작품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해석을 준다고 말하는 에코는 이중코드를 소설에 대한 애정과 지성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한다.안나 카레니나, 햄릿, 몽테크리스토 백작, 베르테르, 히스클리프, 라스콜리니코프, 그레고르 잠자와 스크루지 영감. 이와 같이 가족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서술해놓은 3장에서 에코는 소설가이자 철학자로서 허구 세계가 갖는 존재론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친한 친구가 연애에 실패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사람들 때문에는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실연에 가슴 아파하며 목숨까지 버리는 독자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에코는 이렇게 물으면서 또 이렇게 답한다. “역사 인물과 달리 소설 속 주인공들은 `피와 살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슬픔과 비극에 가슴 아파한다”창작 과정에서 필요한 날것 그대로의 재료를 전시하는 4장에서는 방대한 지식의 창고를 개방한다. 라블레와 제임스 조이스, 호메로스와 휘트먼의 목록에 자신이 뽑은 목록까지 공개하는 이 장은 언어에 대한 순수한 탐닉과 과잉에 대한 욕구를 과시한다. 자신의 저서 `궁극의 리스트`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 장에서는 훌륭한 문인들의 작품에 등장했던 목록들의 컬렉션이지만, 그 덕분에 독자들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놀라운 언어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위대한 작가의 머릿속을 훔쳐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레드 박스 刊, 움베르트 에코 지음, 320쪽, 1만3천8백원

2011-07-07

소설로 보는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 2`실천문학사의 담쟁이교실 시리즈 중 하나인`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 `이 개정판으로 재출간 됐다. 이 책은 일제시대의 현진건, 채만식으로부터 1960~1970년대의 김승옥, 황석영을 거쳐 오늘의 박완서, 윤정모, 임철우, 김원일, 공선옥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설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을 매 편마다 해설을 곁들여 올바른 소설 읽기와 문학사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꾸민 책으로 1992년 출간 이후, 학교 현장을 비롯한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대표 소설 11편을 담은 1권이 먼저 출간됐고 이번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표작을 수록한 2권이 출간됐다. 뒤이어 2000년대의 대표작을 선한 3권으로 개정판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을 완간할 예정이다.1권이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공간, 한국전쟁의 상흔 들이 담긴 작품이라면 2권과 3권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늘에서 쓰여진 작품으로 우리 시대 대표작가의 대표소설을 통해 보는 한국현대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2권은 근대화를 거쳐 산업화,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한국사회의 단면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환경문제를 문학으로 끌어들인 역작으로 평가되는 최성각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산업화 과정에서 또 다른 소외계층으로 부각된 여성문제, 특히 빈곤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형상화해온 공선옥의 대표작도 수록됐다. 개인화, 내면화로 요약되는 1990년대 중후반과 디아스포라의 삶이 부각된 2000년대의 대표작이 함께 묶일 예정인 3권도 기대해볼 만하다.송기원 `월행`, 윤정모 `밤길`, 박완서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임철우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 양귀자 `일용할 양식`, 김하기 `살아 있는 무덤`, 최성각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방현석 `새벽 출정`, 김원일 `마음의 감옥`, 공선옥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등 10편이 실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실천문학사 刊, 권순긍 김진호 문재용 엮음, 398쪽, 9천원

2011-07-07

포항문인협회 `문학만` 통권 35호 발간

문학과 미술의 만남...백남준 작품 모음도 (사)포항문인협회(회장 이대환)가`문학만`통권 35호를 발간했다. 호수로 보면 `문학만`이라는 제호를 달고 독자들에게 다가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문학만`의 편집인이자 소설가인 이대환은`문학만`통권 33호 `권두 에세이`에서 “`포항문학`은 통권 33호 발간에 즈음하는 2010년 상반기부터 반년간`문학만(Literature Bay)`으로 다시 여정을 떠났다.”며 발간 배경을 밝힌 바 있다.`문학만`통권 35호에는 기획, 비평의 시선, 특별초대, 작가의 시선, 묻혀 있는 한국의 명시, 시, 동화, 소설, 수필을 실었다. `기획`으로는 `한국문학 시인들의 문학적 경향`을 짚은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의 `신예 시인의 시적 모험, 시의 미래적 징후`와 오창은(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의 `젊은 소설의 미래`다. 이 두 글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짚는 데 바쳐진 평문이다.`비평의 시선`에서는 방민호(문학평론가, `ASIA`편집위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일본 사소설과 한국의 자전적 소설의 비교`가 이뤄지고 있다. 방민호는 다야마 가타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사소설과 김명순, 이광수, 이상의 사소설 등을 분석한다. 또 다른 `비평의 시선`으로는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백석 시의 영향`이다. 유성호는 백석의 시들과 백석의 영향을 받은 신경림, 문태준, 안도현, 송찬호 시인의 시들을 분석한다. `작가의 시선`에서는 소설가 이대환의 에세이 `늙고 가난한 시인의 비상금과 통일세` 외 8편이 실려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사적인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묻혀 있는 한국의 명시`에는 안상학 시인의 `내 손이 슬퍼 보인다`가 재수록 돼 독자들에게 소유, 폭력, 군림 등의 의미를 묻는다. 소설, 동화, 수필 코너에는 포항문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이 실렸고 시 코너에는 포항문인협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고증식, 손병현, 정안면 등 외부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 `문학만`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특히 2011년 `문학만`상반기호에 수록된 컬러 120여 쪽의`특별초대`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특별초대는 지난해 포항시립미술관을 통해 세계적 이목을 모은 `백남준 특별전 : Teletopia―드로잉에서 레이저까지`의 작품들과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의 글 등을 실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자료를 제공받아 `백남준과 이경희의 사랑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특별초대에는 문학과 미술이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다.한편 포항문인협회는 포항시, 재단법인 애린복지재단에서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한 `문학만` 통권 35호 출판기념회를 지난 1일 오후 7시 장성동 솔향기에서 가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