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단의 방문` 문학동네 펴냄,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번역
제니퍼 이건은 지난해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린 세 명의 소설가 중 하나다. 또` 깡패단의 방문`은 지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연말 결산 기획으로 작가들에게 `올해의 책`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이기도 했다.
레코드 레이블 대표 베니와 그의 비서 사샤. 이야기는 그들의 비밀스러운 과거와 다가올 미래, 주변 사람들의 내면을 넘나든다.
제목인 `깡패단의 방문`에서 `깡패단(Goon Squad)`은 원래 노동조합원들에게 부당한 폭력을 일삼으며 정당 하부조직을 부패시키는 조직을 뜻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폭력 조직을 가리키게 됐다. 최근엔 `갱(gang)`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순화돼 `패거리` `무리` 정도의 뉘앙스로도 많이 쓰인다. `깡패단의 방문`에서 퇴락한 로커 보스코가 말하듯이, 시간은 깡패다. 시간이라는 깡패는 젊은이들을 부수어버린다. 어마어마한 힘으로 그들을 계속 후려친다. 마침내 그들이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언제나 오늘 같을 거야”라는 제멋대로의 낙관과 “결국 이거였던 거야”라는 쓰디쓴 회한을 오가는 소설 속 인물들은 바로 우리 자신의 끝없는 데자뷔와도 같다.
`깡패단의 방문`에서 등장인물들은 록 음악 혹은 음악산업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고 있다. 록만큼 시간성에 종속되는 사례가 또 있을까. 순수성을 부르짖는 록, 특히 펑크록은 1970년대 이래 청년하위문화의 구심점이자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전복할 힘을 가진 `반문화`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가장 쿨한 힙스터 문화로 `팔리면서` 오히려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마는 아이러니한 문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니퍼 이건은 히피와 게이와 펑크록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십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건이 `깡패단의 방문`을 집필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였다. 특히 마흔이 넘으면서 `시간`에 천착하게 된 이건은 9·11 테러라는 엄청난 사건을 직접 겪었고(브루클린에서 살고 있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이렇듯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의 삶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건은 9·11 테러다.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붕괴와 재건, 근미래에 쌍둥이 빌딩의 터에 조성된 메모리얼 풀(The Memorial Pools) 주변에서 열리는 콘서트까지. 초강대국 미국부터 9·11 테러로 상징되는 몰락, 그리고 새로운 재건을 꿈꾸는 근미래의 미국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이건은 개인적 삶이라는 수많은 바늘귀들을 거쳐 촘촘히 꿰어나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