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 관조하는 고요하고 감성적인 목소리
토속적 정서에 밀착된 탁월한 언어감각과 특이한 시풍으로 서정시학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이전의 시세계와는 색다른 면모와 한걸음 더 진화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체로 거른 듯 더욱 정갈해진 시어와 티 없이 맑고 선명한 이미지에 불교적 사유의 깊이가 도드라진 감성적인 시편들이 눈길을 끈다. 사물을 바라보는 세밀한 관찰력, 느림의 삶에 대한 겸허한 성찰, 인생의 무상함을 관조하는 고요한 마음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실려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이곳에서의 일생(一生)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꿈속 마당에 큰 꽃나무가 붉더니 꽃나무는 사라지고 꿈은 벗어놓은 흐물흐물한 식은 허물이 되었다/초생(草生)을 보여주더니 마른 풀과 살얼음의 주저앉은 둥근 자리를 보여주었다/가볍고 상쾌한 유모차가 앞서 가더니 절룩이고 초라한 거지가 뒤따라왔다/새의 햇곡식 같은 아침 노래가 가슴속에 있더니 텅 빈 곡식 창고 같은 둥지를 내 머리 위에 이게 되었다/여동생을 잃고 차례로 아이를 잃고/그 구체적인 나의 세계의, 슬프고 외롭고 또 애처로운 맨몸에 상복(喪服)을 입혀주었다”(`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부분)
문태준의 시는 적요로운 풍경 속에서 슬픔의 “눈물자국 같은 흐릿한 빛”(`망인(亡人)`)이 어룽진다. “슬프고 외롭고 또 애처로운”(`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시인에게 삶은 근본적으로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형편이 반 썩은 복숭아 한알처럼 되어서” 꿈을 꾸어도 꼭 “몸속으로 자꾸 벌레들이 꼬물꼬물 들어”(`꿈속의 꿈`)서는 꿈을 꾸고, “상한 정신”(`사과밭에서`)을 앓고, “작고 네모진 보자기만도 못한”(`보퉁이가 된 나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시인은 쓸쓸함과 비애감에 젖는다.
삶은 아름답지만 찰나이고 항상 누군가와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음을 아는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내생으로 연결되는 삶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그 원초적인 공간에서 시인은 “한번 내쉬는 큰 숨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무엇이든 되고 싶어하고(`공백(空白)`), “서로에게/받친 돌처럼 앉아서”(`일가(一家)`) “하늘도 흰 물새도 함께 사는 수면”(`물가`)을 그리워한다. “풀밭 속 풀잎이 되고 나니” “모든 게 수월했다”(`아래로 아래로`)고 말하는 시인은 그렇게 사물과 타인과 감응하고 한몸이 되는 교감의 순간을 보여준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서정시 가문의 적자(嫡子)`라고 말했듯이 문태준 시인은 서정시의 전통과 문법을 존중하며 형식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여백의 미에 담긴 섬세하면서 온화한 풍경을 펼치며 한 호흡 느린 숨결과 한 박자 느린 걸음으로 여유롭게 삶의 무늬를 돋을새김하는 그의 시에는 불협화음도 없고 과격한 비유도 보이지 않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태준 시인 `먼 곳` 창비 펴냄, 100쪽, 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