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민음사 펴냄, 헨리 키신저 지음, 696쪽, 2만5천원
첫 방문 이후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중국 지도자들과 접견하고 대중국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끈 헨리 키신저는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식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중국 정상들과의 개인적 대화 기록과 최근 해제된 기밀문서들을 바탕으로, 중국과 근대 유럽 세력과의 첫 만남, 중소 연합의 형성과 와해, 한국 전쟁, 닉슨 대통령의 첫 방중, 톈안먼 사건 등 중국 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여러 사건들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그려 낸다. 나아가 문화 혁명의 물결이 잦아들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현재 중국을 바라보며 앞으로 중국이 나아갈 길, 그리고 미국과 아시아 주변국들의 변화될 역학 관계에 관해서 짚어 본다.
1971년 7월9일, 수십 년간 높게 둘러쳐 있던 죽(竹)의 장막을 걷고 중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딘 헨리 키신저는 서구식 외교와는 확연히 다른 중국의 외교 스타일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때껏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였던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협상 스타일을 기대했던 터라 중국의 호의와 친절, 심지어 여유작작한 방문 스케줄까지 모두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곧 그는 그것이 서양, 특히 미국과는 비견될 수도 없는 장구한 역사에서 비롯된 전통적 중국 외교였음을 깨달았다.
그래서`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는 이러한 중국의 전통적 외교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중국의 대외 전략은 기본적으로 방어에 있었다. 다른 주변 이민족이 뭉쳐서 중국에 도전하는 일만 없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에서 나타난 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고 이것이 지금까지도 중국 외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키신저는 분석했다. 또한 그는 어느 한쪽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영웅주의적인 공적을 쌓기보다는 섬세하고 간접적인 전략으로 상대적 우위를 끈질기게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국의 스타일이며 이는 바둑(웨이치) 게임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키신저는 이러한 `이이제이,` `웨이치` 외에도`손자병법`, 공자 등의 키워드를 통해 중국 외교 전통을 만들어 낸 핵심 개념들을 짚어 내면서 국제 질서에 대한 중국의 생각은 어떠한지, 그리고 근대 이후 국제 무대에서 보인 중국의 여러 행보들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밝히고자 한다.
한편 키신저는 첫 방문 이후 성공적으로 미중 수교를 맺고 나서도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장쩌민 등 중국 현대사를 이끈 지도자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교류했다. 키신저는 그들과의 대화를 모두 기록으로 남겼으며, 그 기록은 이 책의 중요한 원천이 됐다.
2011년의 끝자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각국은 북한과 더불어 중국의 행보에도 촉각을 기울였다. 김정일 사망 이전에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도 키신저는 앞으로 대중국 정책과 전략에서 주요하게 다뤄야 할 이슈로 경제 문제와 북한 핵 문제를 꼽았다. 중국의 삼각 외교와 한국 전쟁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5장에서 키신저는 김일성의 전쟁 도발을 둘러싼 중국과 소련의 머리싸움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