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중원에 내리다

남편의 추억을 되짚는 여행이었다.안성에 터를 잡은 아들을 데려다주고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 충주휴게소에 들렀다. 졸음도 쫓을 겸 벤치를 찾아 잠시 쉬려고 고속도로에서 내렸는데 휴게소 벤치는 흡연석이 된 상태였다. 어디로 가나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톨게이트를 발견했다. 충주는 신기하게도 휴게소에서 바로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로 내려설 수 있게 쪽문을 내놓은 것이었다. 느림의 미학 충청도 사람들의 또 다른 배려인듯싶었다.남편은 한 곳만 들렀다 가자며 내비게이션에 중앙탑을 찍어보라고 했다. 사실 포항에서 경기도까지 다녀가며 길만 보는 것이 아쉬워 역사탐방이라도 하자고 조르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할 남편에게 미안해서 입을 떼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충주에 내려서길래 얼른 조수가 되어 검색에 나섰다. 중앙탑공원이 6분 거리에 있었다. 아파트 숲을 벗어나자마자 들이 보이는 시골풍경이 펼쳐졌다.역사교육학과를 나온 남편은 학창시절 매해 수학여행을 다니는 행운을 누렸다고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역사학자를 가이드로 모시고 대형버스를 맞춰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간다는 건 역사교육학과 학생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만리장성을 쌓는 것도 큰 재미였단다. 여행에서 돌아와 팀을 나눠 주제발표 했던 장소가 여기였다며 남편은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눈길 따라 저어기 탑 하나가 뾰족이 고개를 내밀었다.남한강을 옆에 둔 너른 공원이다. 그 한가운데 칠층탑이 홀로 섰다. 절 마당에 사리를 넣기 위해 세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사찰명은 알 수 없다.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6호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이 본명 같지만 별명이고,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본명이다. 지금은 이곳이 중앙탑면이라고 하니 탑이 유명해 동네 주소까지 바꾼 경우다.중앙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설화 가운데 통일신라 원성왕(재위 785∼798)과 관련된 설화는 탑의 건립 시기와도 관련된다. 내용은 원성왕 때 신라 국토의 중앙 지점을 알아보기 위해 남북 끝 지점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보폭을 가진 잘 걷는 사람을 정하여 출발시켰더니 항상 이곳에서 만났기에 이곳에 탑을 세우고 중앙임을 표시했다고 한다.탑 근처에 국사책에 나오는 더 유명한 비석이 있다. 정식 명칭은 충주 고구려비이지만 학창시절에 달달 외웠던 것은 중원 고구려비다. 장수왕의 남진 순수비(南進巡狩碑)로, 화강암으로 된 사면에 예서체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국보로 넓은 들판의 중앙이라는 뜻의 ‘중원’을 썼으니 중요한 곳임이 분명하다. 찾아가니 멋진 박물관을 지어 비석이 더이상 비와 바람을 맞지 않게 방을 만들어 주었다. 한 방에는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이 있는데 워낙 높아서 반쯤은 뉘어놓았다. 6미터가 넘는 높이라니 상상만으로는 그 웅장함을 다 느끼지 못했다.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북한 땅에 있어서 아쉬운 마음뿐이지만 충주 고구려비도 이제야 알현하니 미안함에 한참을 비석 주위를 맴돌았다.박물관 마당에 비석을 발견한 곳을 표시해 놨다.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 적에는 산밑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붙어있던 시골 동네였는데 지금은 산책로와 전망대까지 갖춘 공원으로 변했구나 한다. 30여 년을 지나며 멋진 집 한 채 마련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앞으로 학생들에게 낡은 사진이 아니라 현장감 넘치는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더 자세히 본다. 남편의 얼굴에 20대 청년의 미소가 스친다. /김순희(수필가)

2022-04-10

부인 문제부터 숨통을 틀 수는 없을까

김진국 고문 우크라이나에서 여성과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잔혹상이 세계의 분노를 자아낸다. 죽음과 학대와 모욕…. 전쟁이 벌어지면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비참하게 희생된다. 정치판도 비슷한 면이 있다. 폭력에 무방비한 약자고, 선전 효과도 크다.지난 대선에서도 최대 쟁점이 여성이었다. 후보보다 후보 부인의 과거가 더 큰 논란이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분노와 증오와 조롱과 흑색선전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당선인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정부 법인카드 유용 의혹,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거기에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의상과 액세서리 구매에 청와대 특활비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는 부산대 의전원과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최서원(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처럼 고졸자다. 그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이 본인의 잘못이 크다. 법의 심판을 피할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부모가 정쟁의 중심에 있어 더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나 부모가 사과 대신 정치 반격에 이용해 수습의 기회를 놓치고, 사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선거는 평화적인 전쟁이다. 선거 때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된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물론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궐선거도 함께 치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제까지 후보도 아닌 가족을 진영 대결의 희생물로 삼을 순 없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첫 여야 정권 교체에 도움을 준 건 틀림없다. 후보의 잘잘못을 가려야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가 선거 결과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나쁜 관행은 바꿔야 한다. 진심을 담은 사과도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갑옷론이 나온다. 대장동 사건, ‘법카’ 수사를 앞두고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 재개를 서두른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기 등판하는 명분을 검찰수사에서 찾은 것이다.국회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 민주당 의석이 172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현재는 국민의힘 110명, 무소속 1명, 국민의당 3명을 제외한 186명이 반(反) 국민의힘이다. 개헌을 제외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게 표류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과 3분의 1씩 비슷하게 득표한 선거 결과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왜곡된 결과다. 대통령선거도 24만7천77표 차이로 승자가 모두 갖는다.이런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정으로 푼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민심도 쪼개졌다. 선동세력은 선거 불복을 부추긴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승자의 시간을 주던 미덕이 사라졌다. 선거가 끝나도 당선인의 지지율은 그대로다.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동화 ‘여우와 두루미’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둘이 함께 식사하려면 음식의 종류, 그릇을 의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배려해야 한다. 여우에게 호로병에 든 음식을 주는 건 먹지 말고 굶으라는 말이다. 국민의힘 정부에 민주당 정책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정부 조직을 강요하면 국민의힘은 일을 못 한다. 발목을 잡는 꼴이다.민주당이 국민의힘 정책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면 적어도 임기 초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여유는 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꽁꽁 묶어놓고, 검찰과 경찰은 뒤늦게 이재명 후보 쪽에 칼을 겨눈다. 협치를 위해선 출구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숨통부터 터야 한다. 가족 문제는 가장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다. 퇴로가 없다. 국민의힘은 대장동과 ‘법카’를 제외하고, 고소·고발 대부분을 취하했다. 여기에 더해 부인들 문제도 진정한 사과와 함께 빨리 털어낼 방법이 없는가.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김진국 본사 고문

2022-04-10

6번째 건의한 대구의 조정대상지역 해제

대구시가 지난 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 대구시를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해 달라고 건의했다. 정해용 경제부시장 등이 건의한 조정대상지역 해제 요청은 지난해 5월 이후 이번이 벌써 6번째다. 대구시의 주택시장 사정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 등 세 부담이 늘고 대출한도도 줄어든다. 부동산 거래에 대한 규제가 커져 주택시장은 침체되고 그 여파가 지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국토부에 따르면 1일 현재 대구의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4천561가구다. 지난해 12월 1천977가구보다 2.3배 증가했다. 경북지역도 1일 현재 미분양 아파트가 6천552가구나 된다. 전국의 미분양 물량 2만5천254가구의 44%가 대구와 경북에 있다.한국부동산원 집계에 의하면 대구는 아파트 매매가격도 21주 연속 하락세다. 게다가 대구의 아파트 입주 예정물량은 올해만 2만여 가구에 이른다. 2024년까지 총 7만5천여 가구가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지금 상태로 가면 주택시장 침체는 불을 보듯 뻔하다.주택업계가 대구의 연간 적정 주택공급량을 최대 1만2천가구로 보는 것을 감안하면 대구는 이미 공급과잉 단계다.문재인 정부는 2019년 12·16 대책으로 서울 등 39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뒤 2020년 네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모두 111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불가피한 점도 있으나 시장 상황에 따라 정책의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미분양물량 증가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일로다. 조정대상지역 지정의 요건에 맞지 않을뿐더러 시장 흐름의 정상화를 위해 조정대상지역 해제가 시급하다.특히 지역 특성에 맞게 주택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해달라는 대구시의 건의가 이제 적극 검토돼야 한다. 부동산시장은 도시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의 집값이 폭등한다고 전국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시장 상황을 왜곡하는 일이다. 새 정부의 대안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2022-04-10

새 정부, 지방시대 연다는 초심 잃지 말아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전국 17개 시도지사와 만나 “새 정부는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에 앞서 당선인 신분으로 “지방시대라는 모토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선거 과정에서도 지역균형발전을 약속해 그의 지방시대 언급은 이제 특별한 의미가 담긴 메시지가 됐다.윤 당선인은 인수위 내 처음으로 지역균형발전특위를 만들었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를 유지하겠다는 의중까지 보였다. 또 세종 2집무실 설치와 특구 설치 등 지역균형 특위 5대 과제를 정하고 실천에 대한 각별한 의지도 보여 비수도권에서는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시도지사회의에 참석한 단체장은 각 지역 현안 건의와 함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했다. 국가경영의 중심에 지방을 두라는 뜻이다. 당선인도 지역발전이 국가발전이라는 생각으로 강력한 균형발전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약속했다.우리나라가 수도권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 신세가 된 지는 오래다. 역대 정부가 이런 불합리한 국가경영 구조를 개선키 위해 노력했으나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적은 없다. 오랫동안 젖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큰 부담이 됐다. 그동안 수도권은 인구가 몰렸고 지방에 있던 대기업 공장마저도 줄줄이 수도권으로 이전했다. 국토면적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매년 지방에서 수만명의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을 찾는 게 현실이다. 수도권은 사람이 넘쳐 도시 과밀화로 날로 경쟁력이 떨어지나 대안 모색도 않았다. 반면에 지방은 젊은이가 떠나 노령화로 소멸위기에 직면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지방시대는 새 정부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새 정부가 내세울 지방자치는 불균형 문제뿐 아니라 멀리는 국가 경쟁력 저하로 생길 국가적 위기에 대응할 중요 키워드가 된다. 일자리 부족, 저출산, 고령화 등 국가적 과제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대다. 획기적 정책전환이 있어야 지방시대도 앞당길 수 있다. 새 정부는 지금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2022-04-07

‘시청이전 이슈’ 대구시장선거 판세 흔드나

6·1지방선거 대구시장 유력 후보인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구을)이 달서구 두류정수장으로 결정된 대구시청 신청사 건립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물의를 빚었다. 홍 의원은 지난 6일 기자들에게 “시청은 중심부에 있어야 한다. 시청 이전이 과연 그리 급한 업무이고 수천억 원 예산을 들여야 하는 것인지 이전 정책을 전부 검토해본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93년 중구 동인동에 건립한 대구시청사는 시설이 낡고 업무공간이 부족해 지난 2004년부터 이전 논의가 진행돼 왔다. 그후 2019년 권영진 대구시장이 시민공론화 과정을 거쳐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부지에 신청사를 짓기로 최종 결정했다. 신청사는 올해 설계공모 과정을 거쳐 2026년 완공 예정이며, 3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간다.홍 의원은 7일“대구시청 이전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 대신 새로운 시청에 버금가는 도시계획을 세워서 중구가 도심공동화 현상을 초래하는 것은 막도록 하겠다”며 발언을 번복했지만,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대구시장 경선 예비후보인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민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어렵게 마련한 이전 계획을 하루아침에 백지화한다는 발표가 과연 대구시장 후보가 할 말인지 귀를 의심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정상환 대구시장 예비후보도 “시청 이전 백지화는 시의 공신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달서구 주민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홍 의원이 신청사 이전 원점재검토를 언급한 지 하루만에 입장을 바꿨지만, 앞으로 시청사 이전 문제는 대구시장 선거의 주요 이슈로 자리잡게 됐다. 시민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합숙까지 하며 숙의한 끝에 결정된 시청사이전의 재검토 발언은 대구시민들에겐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건립 예정지가 선정되긴 했지만 신청사 유치전에 뛰어든 지역 간 갈등이 현재까지도 앙금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특히 이전 대상 지역이 대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달서구(58만명)라는 점에서 대구시장 경선에 뛰어든 후보별 판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22-04-07

엔데믹 논란

엔데믹(endemic)은 주기적으로 발병하거나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이르는 말이다.일정 수준의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질병이 발생하나 관리가 가능한 경우다. 말라리아, 뎅기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엔데믹은 감염병이 사회 각 기능이 작동하는데 큰 차질을 주지 않을 정도로 파괴력이 낮다는 뜻도 포함한다.팬데믹(pandemic)은 우리말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다. 역사적으로 중세기 유럽을 거의 전멸시킨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발병한 스페인 독감 등이 팬데믹 사례다.최근 정부가 사적모임 10인, 밤 12시 영업으로 거리두기를 완화하자 코로나가 엔데믹 상황으로 전환할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우리나라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더 짙게 한다. 또 18일부터 실내마스크를 제외하고는 모든 방역조치가 해제될 거란 전망도 나오면서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린 국민의 관심이 온통 정부의 엔데믹 선포에 쏠려 있다.그러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마당에 엔데믹 선언은 섣부르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엔데믹 검토에 나선 가장 큰 이유가 치명률이 낮다는 것인데 3월 한달 사망자가 9천명에 육박하는 상황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그러나 정부는 엔데믹이란 말보다 포스트 오미크론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조심스레 엔데믹 쪽으로 무게의 추를 옮기는 모양새다. 코로나로 인한 그동안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너무 큰데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건강과 국가적 손실을 모두 건질 묘안은 쉽지 않다. 새로운 변이 발생 가능성도 여전하다. 정부가 선뜻 엔데믹이라 선언하지 못하는 고민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4-07

기사(己巳)

육십갑자 중 여섯 번째 기사(己巳)다. 기토(己土)를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표현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비옥한 논이며, 아주 귀한 재산을 의미한다. 사화(巳火)는 물상으로 겨울잠에서 깨어 나와 허기에 지쳐 독이 오른 뱀이다.기사(己巳)는 초여름 정원(庭園)을 상징하며 지적이고 대중적이다. 어떤 고난을 당해도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이 여유로움을 부릴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고집이 강하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확신에 차있는 모습이다. 때론 독선으로 흐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흙토(土)의 성질이 강하여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기사일주(己巳日柱)는 항시 분주다망하며, 뱀이 기어가다 머리를 세운 모습이라 활동력도 강하다. 총명하고 재주가 많기 때문에 자만심으로 빠질 수가 있다. 뱀은 혀끝이 두 개로 갈라진, 혀가 두 개인 동물이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며, 겉과 속이 다르다고도 한다. 호불호(好不好·좋음과 좋지 않음)가 명확하여 낭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음과 나쁨, 추하고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불경(佛經) ‘아함경’과 ‘열반경’에 ‘공덕천녀와 흑암천녀’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어떤 부잣집에 도착했다. “잠시 묵어갈 수 있겠는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집주인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저는 공덕천녀라고 합니다. 저는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금은보석과 말, 수레, 의복, 하인 등을 얼마든지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룻밤 묵어갈까 합니다.” “호오! 그렇소? 어서 들어오시오. 환영합니다.” 그리하여 집주인은 공덕천녀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공덕천녀 옆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추악한 여인이 서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경사스러운 때 나타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자, “저는 흑암천녀라고 합니다.” “이름이 꼭 걸맞는구려. 당신이 하는 일은 대체 뭐요?” “저는 가는 집마다 재물은 없어지고, 마침내 망하게 되지요.” “썩 나가라! 우물쭈물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그러자 흑암처녀는 싸늘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주인이여! 언니가 곁에 계시는데 나를 이리 구박할 수 있소?”“그럼 네가 공덕천녀님과 자매간이란 말인가?” “그렇소, 이 분은 내 언니이며, 우리 둘은 단짝이어서 늘 함께 다닌다오.” “믿을 수 없다. 공덕천녀님! 이 여자 말이 사실입니까?” 집주인은 마침내 결심한다. “정 그렇다면 나로선 두 분 다 사양하겠소이다. 나가 주시오.”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에 가자, 그 집 주인은 기뻐하면서 두 천녀를 맞아들이고 후대하는 것이었다. 좋은 걸 좋아하고, 싫은 걸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둘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앞면을 가지기 위해서 뒷면을 버릴 수 없다. 부처님은 이 비유를 드신 후 말씀하셨다.“비구들이여, 여기서 공덕천녀는 행복이나 삶을, 흑암처녀는 불행이나 죽음을 의미한다.”사주(四柱)에 뱀 사(巳)가 있는 사람은 대체로 권력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승부욕도 강하고 질투심도 많다. 지혜로운 면이 있는 반면에 질투에 눈이 멀어 남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해 상처를 줄 경우가 있다. 자신을 낮추어서 겸손하게 처리하면 출세할 운이 온다. 만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릇이며, 인내와 노력이 있어 성공이 따르는 성품이다.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인 추기(鄒忌)는 남들보다 훨씬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좋은 옷에 좋은 모자를 쓰고는, 거울을 보면서 자기 아내에게 “온 나라 사람들이 미남이라고 떠드는 서공과 나를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소?”라고 물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이 훨씬 잘생겼어요. 서공이 어찌 당신에게 비교될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추기는 자기가 서공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자기의 첩(妾)에게 가서 “나와 서공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소?”라고 물었다. 첩(妾)도 “서공이 어찌 당신만 하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날 어떤 손님이 추기를 찾아왔다.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기는 또 “나와 서공 중에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그 손님도 “서공은 어른만큼 미남이 못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 다음날 마침 서공이 추기를 찾아왔다. 서공을 자세히 뜯어보니 서공보다 못함이 확실하였다. 거울을 앞에 놓고 뜯어보고, 또 뜯어보아도 서공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워서 주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자신을 추켜 세워준 사실을 거듭거듭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나의 아내가 나를 잘 생겼다고 한 것은 나만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애첩이 내가 더 아름답다고 한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손님은 나의 도움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로구나!” 유향 전국책 ‘제책(齊策)1’에 나오는 글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추기는 한 나라의 재상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2022-04-06

대선 뒷소감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선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한 나라와 백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야 한다. 박빙의 힘든 싸움을 거쳤다 해도 결과를 확인한 국민은 새 리더십에 높은 기대를 건다. 이번엔 왠지 다르다. 당선 때 획득했던 지지율을 못 미치는 국정기대치가 잡힌다는 여론조사발표가 있다. 물러가는 대통령보다 당선인에게 거는 지지율이 낮다고도 한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민심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선거 직전 온 국민의 마음을 졸였던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당선인은 잊었을까. 지켜온 한반도의 평화는 없어도 그만일까 의아해진다. 지난 정권들이 쌓아온 선진국의 국격은 생각이나 하는가.대통령집무실 이전이 민생의 어려움에 밀려난 모양새가 아닌가. 돌려받겠다 요청한 국민이 주변엔 안 보이는데 굳이 취임식 이전에 청와대를 개방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치보복은 없다더니 진정인가 묻고 싶다. 당사자도 아닌 딸과 어미가 빠진 질곡과 멍에는 못난 대학들만 탓해야 하는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한 매듭이 없다.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가했던 상흔과 씁쓸함은 ‘파친코(Pachinko)’가 소설과 드라마로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일본교과서의 부당한 기술 앞에 무엇 때문에 ‘입장표명이 부적절’하였을까. 지난 정부도 소홀하여 국민이 힘들었던 ‘교육’은 아예 돌아보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대계인가, 아니면 무려 부처폐지를 고려할 애물단지인가. 당선인과 인수위의 집행기준은 ‘민심과 미래’인가 아니면 당신들만의 정권탈취 축하행진인가.당선인은 선택해 준 국민들에게 겸허해야 한다. 박빙의 차이 0.7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윤보선을 면도날 박빙 15만표 차이로 이겼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승자독식이라지만, 통합과 협치를 내세운 자신의 지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오만과 독선으로 유신에 이르러 불행한 마감을 초래했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지했던 국민과 함께 지지하지 않았던 표심도 돌아보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끝을 모르고 벌어지는 반목과 격차는 사회문화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 나라와 국민의 분열을 걱정하였던 미국 부시 대통령이 ‘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나라(Kinder and gentler nation)’를 구현했으면 싶다. 역량과 슬기의 한민족이 품격과 관용까지 갖춘다면 손색없는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 나라의 격과 국민의 마음은 앞에 선 리더가 하기에 달렸다. 국민은 당신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당신이 실천하는 바를 보고 겪으며 마음을 결정할 터이다. 성패의 여부는 리더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 마음의 향배에 달려있다.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거꾸로, 지지하던 사람들이 그에게서 멀어진다면 경고등은 이미 들어온 게 아닌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살림을 국정의 기준으로 삼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리더가 잘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깨어야 미래가 밝다.

2022-04-06

리뷰알바의 폐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19 대유행의 장기화에 따라 배달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배달의민족 등 배달전문업체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자영업자들이 리뷰알바 업체들의 난립에 힘겨워하고 있다.리뷰알바업체는 SNS를 통한 영업이 대중화하면서 급격히 늘어난 업종으로, 신규로 가게를 연 업체들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리뷰를 조작하는 ‘리뷰알바’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말한다. 리뷰알바 업체는 배달비와 음식값 외에 리뷰 한 건당 2천~3천원을 지급하며, 재택이 가능한 꿀 알바라는 광고로 리뷰어를 모집한다.리뷰어를 대량 모집한 업체들은 새로 개업했거나 단시간 내에 배달 건수를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리뷰어 숫자를 과시하며, 이른 시일 안에 식당 영업을 안정시켜주겠다고 광고하니, 마음이 급한 업주 입장에선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허위 리뷰어들이 자신들을 고용한 업체에 좋은 리뷰만 써주는 것이 아니라 배달 지역이 겹치는 경쟁업체들에 악성리뷰를 쓰는 방식으로 영업한다는 데 있다.배달 앱 업체들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배달의민족은 2020년 11월부터 허위·조작 리뷰를 자동 탐지하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리뷰 작성자의 주문기록과 이용현황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알고리즘까지 적용하며 대응하고 있다. 쿠팡이츠 역시 지난해 8월부터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악성리뷰를 30일간 블라인드 처리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단속은 역부족이다. 다수의 리뷰어를 확보한 리뷰알바 업체들의 불법적인 영업행태는 정상적인 시장을 교란하고 업주들에게 피해를 준다. 리뷰알바의 폐해를 막으려면 자영업자스스로 불법업체를 이용하지 않아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06

지역현안 풀어갈 속 시원한 정치 아쉽다

대구의 30년 숙원이던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이용이 난산 끝에 협정을 체결했으나 여전히 뒤끝이 개운치 않다. 체결장소를 세종시로 옮겨 진행해야 할만큼 구미지역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최대 현안인 통합신공항 사업도 군위의 대구시 편입 문제가 걸려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심을 거듭해 시도민 의견을 모아 이전부지를 확정했으나 지금 와 정치가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 지역 정치권이 서둘러도 제때 개항이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지역 정치인이 선거구 조정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있다. 정치권 스스로가 이를 풀어야 하나 결자해지의 모습도 없다.지금 부산은 인수위 출발을 계기로 산업은행 본점 이전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어 가덕도 신공항 예타면제가 정치권 이슈로 등장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한 정치권 움직임이 발빠르다. 또 지난 4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산업은행 이전에 이어 수출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의 뜻도 밝혀 지금 부산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새만금 사업도 지역균형발전 특위 5대 사업에 포함되면서 발빠르게 움직인다. 새만금 개발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이에 반해 대구경북의 현안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정치권의 분발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통합신공항을 포함 지역현안에 대한 속도감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력이 발휘돼야 한다. 인수위 참여와 소통을 통해 진행 과정을 확인하고 그 상황을 지역민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을 보탰다는 지역민의 자부심에 대한 정치권의 보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대구는 GRDP 28년째 전국 꼴찌다. 지역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해평취수원 공동이용도 완벽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통 큰 지원을 정치권이 나서 해결해야 한다.대구경북 현안 해결에는 지역정치권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이 정치인의 역량을 과시할 좋은 기회다.

2022-04-06

단체장 인사전권이 공직자 선거개입 원인

경북도를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5일부터 공직사회 특별감찰에 들어갔다. 경북도는 지방선거일 전일인 5월 31일까지 일선 시·군과 함께 11개 감사반을 편성해 암행 감찰활동을 벌인다. 주된 감찰대상은 공직자가 특정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하거나 SNS를 통해 지지 또는 비방하는 등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행위다. 금품·향응 수수와 근무지 무단이탈 등의 비위행위도 집중적으로 살핀다. 퇴직 공무원이 후보자로 등록된 지역은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감찰을 강화한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는 ‘공무원이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할 수 없으며,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을 위반해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퇴직 조치되며, 공공기관 임직원 등 공직에도 일정기간 취임할 수 없게 된다.이같은 법적장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직자들의 선거개입 행위는 끊임없이 적발됐다. 근무시간에 업무용 컴퓨터를 통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거나, 공무원향우회를 비롯한 친목모임에 참석해 특정 후보 지지발언을 하고 법인카드로 식사대를 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례도 있었다. 현 군수 개인의 사조직모임을 총괄 운영하면서 지지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현직 단체장의 선거전략 수립에 깊숙이 개입한 공무원도 있었다.공무원들의 만성화된 선거개입 행태는 결국 선거 이후 행해지는 논공행상식 인사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기초자치단체에서는 누가 단체장이 되느냐에 따라 출신학교별 인사부침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단체장과 출신학교가 같은 공무원들이 핵심보직을 맡거나 승진을 한 반면, 이 그룹에 끼지 못한 공무원들은 한직으로 쫓겨났다. 일선 시·군 선거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선거병폐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감찰활동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단체장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인사권을 제도적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2022-04-06

우리 집 치킨이 맛있대요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음식점들을 가게 된다. 프랜차이즈 식당부터 작은 동네 가게까지,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도시락, 빵, 커피, 아이스크림 등등 메뉴도 다양하다. 워낙 인기가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되는 식당들도 있다. 그런 가게는 직원들도 많고, 항상 분주하다. 음식을 가지러 매장에 도착하면 아예 배달 주문 음식들만 따로 한 곳에 수북하게 쌓인 걸 보곤 한다. 배달 기사가 알아서 주문번호를 확인해 음식을 찾아 가야 한다. 주방이며 홀이며 카운터며 워낙 바빠서 뭘 어떻게 물어볼 틈도 없다.반면 ‘파리 날리는’ 가게들도 있다. 홀에 손님은 하나도 없고, 배달 주문 전화도 좀처럼 걸려오지 않는다. 대부분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골목 식당이거나 단골 장사를 오래 해온 가게들이다. 아주머니나 아저씨 한 분이 음식 만들고, 홀 서빙하고, 계산까지 혼자 다 한다. 이런 집들에 배달하러 가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안 그래도 힘든 자영업인데, 코로나 시대에 얼마나 고달프실까. 장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음식을 받아 나올 때 늘 하는 인사인 “감사합니다” 대신 “많이 파세요”라고 크게 외치곤 한다.요식업 중에도 치킨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수많은 프랜차이즈들과 동네 골목 상권이 경쟁을 벌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메뉴가 등장하고, 온갖 광고와 프로모션이 넘쳐난다. ‘치맥’이 배달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치킨 공화국’이다. 우리나라 식품 관련 자영업의 20퍼센트가 치킨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폐업할 확률이 높다. 코로나19가 지배한 최근 몇 년 동안은 매년 6~7천 개의 치킨집이 창업하고, 1만 개 넘는 집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치킨 한 마리에 2만원 시대라지만 재료비와 서비스비(배달 앱 수수료와 배달 운임)를 제외하면 매장에서 가져가는 마진은 10퍼센트, 약 2천원 정도다. 하루에 닭을 100마리 튀겨야 20만원 버는 셈이다.평촌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작은 치킨집이 하나 있다. ○○치킨. 웬만한 치킨집은 다 한번쯤 들어봤는데, ○○치킨은 정말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토요일 오후, ○○치킨을 찾아 미로 같은 아파트 상가를 좀 헤맸다. 낡은 상가 건물 지하 1층 한 구석에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끼익 끽 소리를 내는 녹슨 철문을 열고 “배달이요” 외치자 연세 지긋한 노부부께서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신다. ‘배민’이냐 ‘쿠팡’이냐 묻지 않으신다. 배달 주문 들어온 게 딱 한 건인 모양이다.테이블 몇 개 없는 매장 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겹쳐놓은 치킨 박스 더미 옆에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미스터 트롯’ 뽕짝 소리가 기름 끓는 소리와 어우러져 정겹다. 빈 테이블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요네즈’, ‘튀김가루’, ‘엿기름’ 등을 적어 놓은 메모지가 널브러져 있다. 아주머니가 치킨을 튀기면 아저씨가 그걸 양푼에 담아 양념 넣고 버무린다. 맛있는 소리와 냄새가 토요일 오후를 채색한다. “아이고, 세 마리나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와서 좀 걸렸어요. 미안해요” 아주머니는 포장 박스가 닫히지도 않을 만큼 치킨을 가득 담더니 양배추 샐러드까지 용기에 꽉꽉 채워 넣으신다. 잔뜩 무거워진 비닐봉지 세 개를 건네받고는 왠지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날 늦은 저녁, 한 건만 더 하고 퇴근하려는데 마침 배달 콜이 울린다. 어라? 아까 낮에 갔던 ○○치킨이네? 반가운 마음에 금방 달려갔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아저씨가 “빨리 오셨네. 다 됐어요” 하신다. “저 아까 낮에도 왔다 갔는데, 오늘 두 번이나 오네요” 말씀드리니 이번엔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고개를 쓱 내밀면서 “그래요? 아 맞다. 아까 낮에 세 마리, 맞아 맞아” 하신다.“얼마나 맛있으면 저한테 두 번이나 콜이 들어 왔겠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먹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하나만 포장해주세요. 이거만 배달하고서 찾으러 올게요” 낮부터 내 침샘을 자극한 소리와 냄새가 치킨집 안에 다시 가득 퍼지기 시작한다. 치킨을 건네받고 “다녀올게요” 하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 아저씨가 해사하게 웃는다. “우리 집 치킨이 그렇게 맛있대요. 먹어 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그래.”

2022-04-05

사소하고 수월한 행복

걷기 좋은 봄이다. 서늘한 밤 목련 주우며 거니는 산책로도 좋고, 얇은 경량 패딩 하나 입고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 것도 즐겁다. 겨울 길거리에서 만나는 녹차호떡이나 크림 붕어빵을 파는 트럭은 보기 어려워져서 아쉽지만, 그럼에도 주머니 안쪽에 3천 원씩 품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퇴사를 한 뒤 시간 여유가 많아지면서 그간 못 갔던 병원도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어쩐지 금방 시들해졌다. 여유 시간엔 새로운 취미생활을 갖기 위해 양말에 꽃 자수 놓는 법도 배워보고, 펀칭니들이나 썬캐쳐 만들기 등 손으로 집중할 수 있는 취미에 몰두해 보려 했지만 이 또한 쉽게 질리고 말았다.그러다 우연히 집 근처 마트 안에 있는 토이 샵에서 뽑기 기계를 발견했다. 기계 앞에 내 또래로 보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순간 장난감 샵에 들어온 게 맞는지 다시금 확인 했다. 대부분 팔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끼고선 한창 뽑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인기 캐릭터를 뽑을 수 있는 기계 앞에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정도로 진귀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직원분께 여쭈어보니 인기 캐릭터인 경우엔 매장에 입고된 지 4시간 만에 뽑기 상품이 동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호기심에 친구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뽑기에 시도해보았다. 동전을 차곡차곡 넣어 레버를 돌릴 때 묵직하면서도 경쾌하게 돌아가는 움직임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동그랗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케이스가 배출구로 떨어지는 소리도 유쾌한데다 형형색색의 캡슐을 쥐고 있으니,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납작이 수그려 뽑곤 했던 해맑은 열정이 단숨에 기억나고 말았다.레고나 인형, 스티커나 다이어리 등 키덜트족들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어른(adult)이지만 아이(kid)시절 좋아하던 감성과 취향을 추구하고 즐기는 키덜트 족은 이미 식음료, 뷰티, 패션 업계 아울러 놀라울 만큼 커다란 시장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한국 콘텐츠진흥원의 자료를 참고해보자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5000억원대에서 지난해 1조6000억원까지 성장했고 추후 최대 약 11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특히 뷰티나 패션 쪽에서도 큰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찰스 M. 슐츠의 만화 피너츠(스누피) 캐릭터와 협업하여 한정 에디션을 출시했고 의류 브랜드인 빈폴 또한 스누피 캐릭터와 콜라보한 제품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대표 명품 브랜드인 구찌는 2020년 쥐띠 해를 맞이하여 미키마우스X구찌 컬렉션을 선보였었으며 출시 후 완판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또한 밀레니얼 세대의 어린 시절 즐겨 먹던 먹거리를 다시금 재현한 포켓몬 빵 시리즈, 초등학교 문방구에서 팔던 간식 세트 등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먹거리들이 뉴트로 트랜드 흐름에 발맞추어 반가운 모습으로 재등장 하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어린 시절 소풍 필수품이었던 뿌요 소다 또한 24년 만에 재출시 되었는데, 집 근처 편의점에서 나의 첫 탄산 음료였던 뿌요소다를 발견하자마자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언제 찍혔는지도 모를 만큼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한 느낌이었달까.물론 강렬한 추억 여행을 하게 해준 건 뽑기였다. 뽑기 기계가 있는 마트 주위만 가도 기분이 절로 상기되는데다, 어느새 뽑기를 하러 가기 위해 산책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뽑기에 한참 빠져들 때쯤 느낀점이 하나 있다. 원하는 걸 뽑기 위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지만 막연히 심취해 있다 보면 갖고 싶은 제품을 뽑기 위해 잔뜩 욕심이 올라 무작정 돈을 밀어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필요 없는 제품만 실컷 뽑다가 덩그러니 남은 씁쓸한 욕심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이렇게 자제력을 잃고 낭비를 저지른 날엔 바다 깊숙이 머무르고 있는 해녀를 생각한다. 딱 자신의 숨만큼만 있다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녀처럼 내게 딱 주어진 몫만을 고려하여 행동할 것. 열정과 중독은 비슷한 듯 싶으면서도 분명한 한 끗 차이를 지니고 있다. 뽑기로 다시금 지혜로움을 배운다.

2022-04-05

대구시장 최우선 조건은 ‘현안해결 역량’

6·1 지방선거의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후보 간 초반 판세는 역시 인지도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북매일신문이 에브리미디어에 의뢰해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대구지역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홍준표 의원(44%)과 김재원 전 최고위원(18.3%)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뒤를 이진숙 전 걸프전 종군기자(4.4%),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2.5%) 등이 추격하는 양상이었다.2주 전 에브리미디어 조사에 비해 홍 의원은 다소 하락한 반면, 김 전 최고위원은 상승 곡선을 타는 추세지만,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 ‘홍 의원 독주구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다크호스로 등장하긴 했지만, 조사시점이 출마선언 전이라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됐다. 다만 그의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결과, ‘부적절하다’(59.4%)는 의견이 ‘적절하다’(23.8%)는 의견보다 2배 이상 많았다.정당지지율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67.5%로 1위를 차지했듯이, 이번 대구시장선거에서도 국민의힘 공천자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국민의힘 공천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대구는 지금 시대적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대구는 사회·경제분야 각종지표에서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IT나 첨단지식산업 쪽으로 개편해야 하는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나 타지역 유수기업을 유치한 성적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이런 모든 현안을 차기 대구시장이 풀어야 한다. 몇 년간 행정력을 집중시킨다고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장기간의 플랜을 가지고 차근차근 대처해야 풀 수 있는 숙제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이러한 역량을 가진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예비후보들의 리더십과 능력, 경력, 정책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지지자를 결정해야 한다.

2022-04-05

원자재값 상승 등 3중고에 시달리는 농촌

본격 영농철을 맞아 영농준비에 나서는 농가의 농업경영 상황이 농자재값 상승 등 각종 물가 인상과 인력난 등이 겹치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도 농사짓기가 만만치 않아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게 없는 빈 농사가 될까 봐 걱정하는 이도 많다고 한다. 영농철이라 정부의 대책이 당장 필요하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가 변수로 작용해 마땅한 대책도 잘 보이지 않는다.현재 농촌지방은 코로나 사태가 3년째 되면서 인력난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로 면세유 가격과 비료비 등 원자재 값이 폭등, 농산물 생산비에 반영되면서 영농 경영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 폭등에 대해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3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하나 농어민이 사용하는 면세유의 경우 지난 2012년 10월 이후 최고가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의 별도 대책은 안 보인다. 또 지난해 10월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촉발된 요소수 대란이 농촌지방에는 비료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전세계가 비료 대란을 우려하는 가운데 국내서 사용되는 요소비료 가격이 최근 3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염화칼슘과 암모니아 등의 가격도 급등했다. 축산농가도 비상이긴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밀과 옥수수 등 사료용 곡물 수급 사정이 악화돼 사료값 인상도 불가피하다.법무부는 농어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올 상반기 중 국내에 들어올 외국인근로자 규모를 1만1천550명으로 확정해 작년보다 수를 늘렸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론 농어촌 인력난 해소에 근본 해결책이 안된다. 경북은 12개 시군에 1천614명을 배정받았으나 보통 경북지역 농번기(4∼6월, 10∼11월) 인력 소요 규모를 23만명 정도라 보면 올해도 인력난으로 시달릴 전망이다.지금 농촌은 영농준비에 바쁜 때다. 원자재값 상승 등의 부담을 안으면서 농사를 준비하지만 일부는 영농규모도 줄일 생각을 한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지금 가장 절실한 때다.

202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