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민주 정치의 다원주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이다.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이념이나 색깔이 다른 정당은 찾아 볼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정당은 비슷한 정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여서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한다. 정당은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여 정강정책을 만들고 정권 쟁취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여기에서 당내 민주주의 혹은 정당민주주의는 당원들의 집단지혜를 모으는 핵심적이고 주요한 수단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보장 없이는 정당의 정책 개발의 역동성은 보장할 수 없다.
지난 대선 이후 우리나라 여야는 모두 당 운영에서 당내 민주주의 실종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가 추락된 구도 하에서 정상적인 정책정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내 민주적 의사 결정 구도도 갖추지 못하고 어찌 정당간의 협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난주 새 당대표를 선출한 집권 여당의 사정부터 알아보자.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징계 사태 이후 당 운영 방식은 점차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
윤핵관이나 윤심이 지배했던 비대위 하의 집권여당은 여러 행태의 파행을 겪었다. 이번 당 대표 선출과정은 윤심의 경쟁에 지나지 않았다.
비윤 진영의 유력한 경쟁자 유승민은 당헌 개정으로 선거 초반 출마를 포기했다. 당내 여론 1위였던 나경원도 윤심의 직격탄을 맞아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 3월 8일 당대표 경선 결과는 윤심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김기현 당 대표가 당선되고 당 최고 위원도 완전 친윤 일색으로 선출됐다.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의혹 사건까지 불거져 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상명하복의 관계가 성립된다면 국정은 그 부메랑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내의 비주류인 이준석과 안철수가 배제된 구도에서 정당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을 것이다.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역시 당내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당의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진보와 개방을 표방하던 민주당은 대선 패배와 이재명 체제 출범 이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와 방탄 국회가 민주당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 대책회의는 이재명의 체포 동의안을 ‘일치단결하여 막자’고 했으나 그 결과는 의원 상당수가 이탈해 당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민주당 의원 169명 중 138명만이 부결에 동의하고 최소 31표에서 최고 38표까지 동의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친명 당권파들은 조직적인 반대 세력 색출, 수박 찾기, 이낙연 영구 제명론 등 듣기에도 민망한 대책을 제기했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그 대응책은 당내의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당론을 모아야 한다. 민주당은 여전히 당내의 민주주의의 실종이라는 비극에 빠져들고 있다.
이처럼 윤심 지배의 여당과 친명 지배의 야당은 공통적으로 정당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의사에 의존한 독점적인 정당 운영은 현대 민주주의 정당제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모두가 과거 권위주의 통치 시절의 퇴행적인 당 운영일 뿐이다. 위로부터 명령하달 식 정당 운영 방식은 당원들의 의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할 수 없다.
여야 모두 100만 당원 시대를 맞고 있는데 당 운영은 과거의 보스 중심의 운영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가 단상을 점령하고 물리적으로 대결하던 정당 대결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이러한 당 운영방식은 팬덤정치를 강화시키고 내부의 갈증만 증폭시킬 뿐이다. 이러다가 내년 총선 전야 여야는 공히 분당의 위기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이런 퇴행적 당 운영 방식 하에서는 정당간의 협치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의 힘에서 ‘국민’이 도외시 되고, 민주당에서 ‘민주’가 배제되면 이 나라의 정당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
여야 공히 정당 민주의의 본질인 당내 민주주의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정당 개혁 없는 정치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야 공히 당내의 비주류 의견도 반드시 민주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보스 중심으로 재편된 당의 당내의 곪아 터지는 갈등은 분당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대 대중 정당의 구조 내에서 온건부터 과격에 이르는 다양한 당내 스펙트럼은 공존돼야 한다. 당의 의사 결정 방식은 탑 다운이 아닌 바텀 업 방식이 되어야 당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다. 우리 정당도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를 탈피하려면 먼저 정당의 민주적 운영 방식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도 독일처럼 정당의 재단이나 펀드를 마련해 재정적인 자립 정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공천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정책 개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출발과 종착점은 정당 민주주의의 안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