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행사’의 주인공 고아인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차별에 굽히지 않고 불굴의 도전으로 대표가 되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머슴으로 살기 싫다며 직원이 주주인 독립 대행사를 차렸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특히 자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고 싶은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된다.
몇 년 전, 자원 활동으로 참여하던 H 생협에 박사 학위가 있는 남자 실무자가 들어왔는데 모두 그를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보다 못해, 나도 박사인데 왜 내게는 ‘박사님’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약간 난처해하면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그 관행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렇게 항의한 것은, 다른 실무자들과 구별되게 그에게만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당해서 한 말일 뿐, 나를 박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그 실무자는 그의 연구 분야와 연관 있는 업무를 하고, 나는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자원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굳이 ‘박사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SNS에서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두어 달 전, S여대 교수가 내게 능력에 비해 성취가 적다며 몇 가지 제안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은 ‘가면 증후군’을 다룬 것인데, 가면 증후군이라는 이름은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처음 붙였다고 한다.
가면 증후군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여자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자들이 남자에 비해 자신의 재능과 성취를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자기는 형편없는데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재능 있고 어느 정도 성취도 한 사람들이 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가 실패하면 ‘거봐, 남들이 알고 있는 나는 가짜거든. 나는 실패할 만해.’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가면 증후군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르네 젤위거도 밤에 일어나 ‘그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 역할을 준 거지? 내가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밸러리 영은 먼저 ‘가면 증후군’이 내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인식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내게 ‘박사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다는 의심하는 것이나 낙제 한번 없이 학위를 받은 것, 유명한 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것 모두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면 증후군’의 작동 방식이다.
더불어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힘도 필요하다. 내게 능력이 있는지 자신을 의심할 시간에, 그동안 내가 성취한 일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서 균형 감각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보자. 그러니,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자들이여, 자신의 재능과 성취에 대한 의심은 이제 그만 거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