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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와 학교폭력의 계급화

등록일 2023-03-13 19:51 게재일 2023-03-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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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3월 10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2부가 공개되었다. 주로 로맨스물의 주연을 맡아 왔던 송혜교의 파격적 이미지 변신과 개성 넘치는 악역·조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한번 시청을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에는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성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복수를 테마로 삼는 이야기를 복수극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복수극은 멜빌의 소설 ‘백경(모비 딕)’일 것이다. 작중에서 에이허브 선장은 과거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결말에서 그의 배는 모비 딕에 의해 박살나고 복수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복수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복수극은 마치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개운한 복수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

‘더 글로리’ 1부가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조력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인 복수극이 펼쳐지며 악역들이 하나씩 몰락해 간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문동은의 복수가 성공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복수가 얼마나 통쾌하게 이뤄질 것인지를 기대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즉, ‘더 글로리’의 시청자들에게 복수의 실패는 곧 ‘고구마’같은 답답함인 것이다. 왜 그럴까?

이 문제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무엇)인지와 관련이 깊다. ‘백경’의 복수 대상인 흰 고래는 자연에 속한 존재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이 통하는 대상이 아니므로 선장의 복수심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반면 ‘더 글로리’에서 복수의 이유가 되는 학교폭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발생한다. 작중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은 문동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즉, 박연진이나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처럼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모두 갖춘 상류층들에게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은 문동은이나 윤소희(이소이 분)처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괴롭혀도 괜찮다고 믿는다. 설령 들키더라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

현실에서도 학교폭력은 힘센 아이가 아니라 계급적 우위에 있는 아이가 저지르는 일이 되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학폭 썰(사연)’들을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옷차림이나 꾸밈새가 남루한 아이들이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교실에서부터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상위 계급에 굴종하는 법을 학습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 사회의 근본 구조를 좀 더 날것의 방식으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집착하는 가치가 ‘능력주의’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학교폭력을 단지 개개인의 일탈로 볼 것이 아니라, 부의 편중과 교육의 계급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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