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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삼국통일 이룬 영웅호걸의 삶 곱씹어야 할 아픔도 함께 했으니…

경주 고분에 관한 취재를 시작하며 몇몇의 역사·고고학자와 관련 학문을 전공한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학계와 문화계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분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그리고, 그 주목의 이유도 궁금합니다.”이에 대해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이재현 조사연구실장은 아래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제 경우는 황남대총, 원성왕릉과 함께 무열왕릉에 관한 보다 정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능 주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어 매장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고분이니까요.”최초 진골 출신 왕의 陵, 둘째아들 김인문이 직접 비석 글 남겨높이 8.7m·둘레 112m크기 봉분 언저리 호석·받침석 돌려 배치대다수 경주의 왕릉 인근에서는 비석을 찾아볼 수 없는 것과 달리 무열왕릉 바로 앞에는 `太宗武烈大王之碑(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여덟 글자를 전서체로 새긴 비석이 서 있다. 현재는 귀부(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와 이수(용 모양을 새긴 비석의 머리)만이 남아있고, 비신(碑身·비석의 바탕돌)은 어디론가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바로 이 무덤의 주인인 무열왕(김춘추·604~661)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경주 왕릉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 강석경의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에는 무열왕의 풍모와 인품에 관한 짤막한 묘사가 등장한다. 다음과 같다.“사나이에 걸맞은 한 이름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세상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가졌다는 사람. 풍채가 아름답고 빼어나 당나라 황제가 `신성한 사람`이라 칭한 이. 진덕여왕 사후에 정사를 돌볼 사람으로 추대된 알천(閼川)이 `덕망이 높고 두터운 것이 그만한 이가 없으니 백성을 구제할 영웅호걸`이라며 권좌를 양보한 인물...(후략)” 신라 29대 왕인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다. 모친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고, 아내는 신라의 명장으로 삼국의 통일을 이끈 김유신의 동생 문희였다. 27대 선덕여왕 시절부터 지략과 용맹을 인정받아 외교사절로 고구려와 당나라 등을 오갔다.무열왕은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백제를 절멸시켰는데, 그가 백제에 원한을 품었던 이유는 사위와 딸이 백제의 군대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 무열왕에 대해서는 조금은 우스꽝스런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 중 하나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기록돼있다.“김춘추는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고,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었는데 하루에 쌀 여섯 말과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었다.” 다소 과장된 듯 보이는 이 서술은 그가 `보통의 인간`은 아니었음을 부풀린 수사학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추측된다.28대 진덕여왕 사후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는 51세. 당시의 의료수준과 평균연령을 감안하자면 노인에 가까웠다. 요즘 어법으로 이야기하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고, 갖은 풍파를 온몸으로 통과한 준비된 왕”이었던 셈이다. 즉위 이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백제를 치고 고구려까지 병합하려 동분서주했던 무열왕은 그의 아들인 문무왕, 처남인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불러온 삼두마차`로 평가받고 있다.이처럼 극적인 삶을 살았던 김춘추. 비석에 새겨진 글씨 `태종무열대왕지비` 중 무열은 시호(諡號·왕이 죽은 후 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는 성골이 아닌 진골 출신으로 왕이 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661년. 김춘추는 왕좌에서 내려와 피와 살점이 튀는 전쟁이 없고, 아귀다툼 또한 벌일 필요가 없는 영원한 안식의 공간으로 떠났다. 갑년을 몇 해 앞두고서였다. 그의 유택이 바로 무열왕릉이다. `삼국유사`는 이 능의 위치를 “애공사(哀公寺) 동쪽”이라고 쓰고 있고, `삼국사기`에는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전한다.사적 20호로 지정된 무열왕릉의 위치를 현대식 주소 표기법으로 적으면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 기사의 서두에 등장하는 태종무열왕릉비는 국보 25호다.무열왕릉을 찾아가던 날은 초여름 날씨답지 않게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묻어있는 솔숲의 향기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한 쌍의 연인이 능 주위에 세워진 비석의 한자를 읽으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그들은 오랜 시간 천천히 주위의 고분들까지 꼼꼼히 둘러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젊은이들이 역사에 무관심하다는 건 어쩌면 지독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기자의 머릿속을 스쳤다. 선도산 동쪽 능선의 끝머리. 무열왕릉과 마주했다. 거기서 서쪽을 바라보면 또 다른 거대한 고분 4기를 확인할 수 있다. 연인들이 한참을 돌아보던 서악동 고분군이다. 이근직의 저서 `신라왕릉 연구`는 무열왕릉의 외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봉분의 높이는 약 8.7m, 봉분 직경은 36.6m, 봉분의 둘레는 112.2m이며, 봉분 언저리에 약 1m의 괴석으로 된 호석과 이에 기댄 받침석을 돌렸다. 호석에 기댄 받침석은 봉분자락에 10개가 노출돼 있는데, 최소 간격으로 배치된 경우는 80cm 내외다.”이 책에는 태종무열왕릉비에 관한 설명도 간략하게 덧붙여져 있다. 이런 대목이다. “비석의 글은 당대의 명필이자 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양각된 여덟 글자로 인해 무열왕릉은 신라 역대 능묘 중에 피장자(묻혀 있는 사람)가 명확한 능이 됐다. 무열왕릉의 귀부와 이수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신라에 발현된 것이나, 조각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있어서는 당나라의 것들을 능가하였다,”많은 이들은 상상한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왕으로 살았던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태종무열왕 김춘추는 목숨이 걸린 외교담판을 시시때때로 벌였고, 딸이 자신보다 먼저 죽는 참척(慘慽)의 슬픔까지 겪어야 했다. 왕위에 올라서도 자신의 백성을 위해 다른 나라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던 것은 또 어떤가.`신분과 지위가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을까`라는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무열왕릉 주변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그 고민의 공간으로 한 조각 바람이 불어왔고, 푸르게 돋아난 왕릉의 풀들은 무심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전설과 풍문 속에 존재하는 금척(尺) 신라 보물 탐낸 당나라 속이려 40여개의 봉분 더 만들어온전히 모습을 드러내 그 안과 밖을 모두 공개한 유적은 인간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그러나, 그 옛날 우리가 알 수 없는 내밀한 사건이 일어나던 공간을 바라보며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여지는 빼앗아간다. 이것은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의 오래된 딜레마다.경주시 건천읍에서 경주 시내로 향하는 국도. 그 길을 달리다보면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진다. 도로 양편으로 40여 기의 거대한 고분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몇몇 고분은 그 규모가 일반인의 무덤 100배를 넘어서는 크기.인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지역을 `금척리`라 불렀다. 고분 중 하나에 금척(황금으로 만든 자)이 묻혀있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금척리 고분군(사적 43호)의 봉분은 신라 초기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간에 알려지기 전 이미 허물어져있던 2개의 고분은 1952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조사됐다. 그 결과 고분의 형식은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는 세환식 금귀고리 1쌍, 곱은옥(반달 형태로 옥을 깎아 끈에 꿴 장식품), 철편과 토기 등이 출토됐다.이 지역 고분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전설이 떠돈다.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신라시대. 평민이 우연한 경로를 통해 얻게 된 금척을 왕에게 진상한다. 금으로 만든 이 자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어떤 병이라도 낫게 했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지사 금척은 신라의 국가적인 보물이 됐다.풍문으로 이 사실을 전해들은 당나라가 욕심을 부렸다. “사신을 보낼 터이니 금척을 내 놓으라”고 협박한 것이다.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함부로 묵살할 수도 없었던 왕은 궁여지책으로 고분을 급조해 금척을 거기에 숨긴다. 여기에 더해 어느 고분에 금척이 묻힌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주위에 40여 개의 봉분을 더 만들었다.금척리 고분군은 이러한 약소국의 슬픈 역사 속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지혜를 발휘해 보물을 뺏기지 않은 그 왕이 누구였는지, 금으로 된 자를 왕에게 올린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설과 풍문 속에 존재했던 신라 왕의 금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발굴이 완료돼 그 비밀을 속속들이 세상에 내보인 고분 이상의 매력을 가진 금척리 고분들. 마흔 개의 커다란 봉분은 오늘도 한가로운 국도에 변함없이 서서 지나는 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기다리고 있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5-26

`하늘이 선물한 땅`서 알알이 영그는 희망

짙푸른 녹음 위에 점점이 떨어진 눈송이 같았다. 어린 시절 재잘거리며 흥얼대던 추억 속 노래가 함께 떠올랐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취재를 위해 고령군 개진면 감자밭을 찾았던 날. 땅 위로 드러난 새하얀 감자꽃과 땅 속에 숨어 알알이 영근 감자가 동시에 고개 들어 기자를 반겼다. 검댕을 입에 묻힌 채 호호 불며 까먹던 바로 그 감자,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반찬으로 거의 매일 만나던 바로 그 감자였다. 때로 기억은 냄새를 동반한 맛의 형상으로 다가온다.동고령농협 “서울 경매사 초청 등으로 전국화 노력” 군도 무인항공방제 지원 등 품질향상 적극 도와봄·초여름 수확하는 `답전윤환방식`이 우수품질 비법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서 25년째 감자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규(47)씨. 무작정 대처(大處)로 떠나고만 싶었던 20대를 지나 혈기방장한 30대를 거쳤고, 이제 세상사 미혹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불혹(不惑)을 넘긴지도 오래. 자타공인 `감자달인` 김씨가 운전하는 트랙터가 지나는 곳마다 알 굵은 감자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무슨 마술 같았다.“여기서 나오는 감자는 무엇보다 맛있습니다. 대구건 서울이건 따질 것도 없어요. 한 번 개진감자를 맛본 사람들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다시 찾게 됩니다. 요즘엔 밀려드는 택배주문 탓에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비닐하우스 4동과 1만6천530여㎡의 노지에서 감자를 키우고 있는 김씨는 “감자 재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우리 지역”이라는 자랑을 하면서도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름 아닌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주문이 늘어가면서 감당해야 하는 택배비용. “인근 지방자치단체에선 우체국 등과 계약을 맺어 농산물 택배비를 지원해준다고 들었다. 고령군도 지역 농산물의 판매 활성화를 이룰 수 있도록 택배비를 일부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김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이는 직거래를 통한 생산자와 소비자간 신뢰구축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이날 수확되는 감자의 작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동고령농협 개진지점 권순목 지점장은 “이미 수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개진감자의 품질과 맛은 확인이 됐다. 서울 가락동 공영도매시장의 경매사를 초청해 고령에서 생산되는 감자를 보여줌으로써 경매에서 높은 가격이 나오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로 향후 `개진감자의 전국화`와 판로 개척에 소홀함이 없을 것임을 약속했다.지금까지도 고령군은 비용의 100%를 지원해 연 3회 무인항공방제를 실시하는 등 개진감자의 품질 향상과 홍보에 적지 않은 힘을 쏟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역의 특산물이 제대로 자리 잡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민·관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수 중에 필수다.대구시 달서구에서 감자 수확을 돕기 위해 김종규 씨의 감자밭을 찾은 김영순(62)씨는 “여기서 일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나이 되도록 먹어본 감자 중에선 이곳 개진면 감자만한 게 없더라”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캔 커다랗고 실한 감자를 보여주었다. 그런 김씨의 웃음이 더없이 환했다.고령에서 생산되는 감자가 좋은 품질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낙동강변을 따라 형성된 양질의 토양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봄과 초여름에 감자를 수확하는 `답전윤환방식`을 통해 밭을 논으로 전환하는 것도 개진감자가 우수한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1820년대 재배 시작… 지역선 1900년대 초반부터 농기센터,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 제공 생산량 제고농민·군청·농협·농기센터 협업으로 명품감자 생산농업전문가들은 이를 “담수효과로 연작장해(동일 작물을 같은 밭에 연속적으로 재배할 때 작물의 품질과 수확량이 떨어지는 현상)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그렇다면 감자가 우리 땅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1820년대 중반 청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인삼을 몰래 캐러 왔다가 가지고 온 감자를 남기고 돌아갔다”는 것이다.고령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터 개진면 일대에서 감자를 길러 먹기 시작했다. 이후 “농업생산력이 높아진 1970년대에 들어서면부터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대형화됐다”는 게 동고령농협의 부연이다.조선시대부터 전해져오는 각종 농사관련 서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큰 하천이나 강의 중·하류 지역은 유기질이 풍부하고, 토양입자가 미세하여 감자와 양파, 마늘과 수박의 재배에 적합하다. 반면, 강의 상류 지역은 토양입자가 굵어 무와 당근, 파 등이 잘 자란다. 이것에 근거해도 고령 개진면은 감자농사를 위해 `하늘이 선물한 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동고령농협은 그간 생산단계에서부터 유통단계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개진감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감자농사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고령군농산물산지유통센터 설립과 집하장, 저온저장고, 자동선별기계 등의 도입을 통한 인프라 구축 등이 그 생생한 사례다.기자가 고령군농업기술센터를 찾았던 날. 서창교 작물환경계장은 품질 좋은 씨감자 배양을 위한 연구에 골몰하고 있었다. 2012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기술센터 조직배양실은 개진감자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한 공간 중 하나다.서 계장은 “재배농가들이 직접 원종생산을 함으로써 좋은 씨감자를 자체적으로 길러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로 재배를 하면 생산량을 최대 2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령군에선 오늘도 농민과 군청, 농협과 농업기술센터가 즐거운 마음으로 협력하며 개진감자의 내일을 설계하고 있다. 고령의 5월, 활짝 피어난 하얀 감자꽃 같은 탐스런 미래가 익어가고 있다.멜론,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시원한 여름을… 성인병 예방은 물론 항산화작용으로 미용에도 그만압도적인 맛·당도, 농협중앙회 평가서도 인정받아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 비단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작가의 이름일 것이다.`오감도` `날개` `봉별기` 등 오래 기억될 한국문학사의 걸작을 남긴 그는 폐병을 앓던 스물일곱 살의 어느 날 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멜론 향기가 맡고 싶네.”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의 도쿄. 식민지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이국(異國)에서 그리워한 것은 멜론으로 상징된 이상향의 향수가 아니었을까.지금 고령은 1930년대 이 땅 최고의 시인을 매료시켰던 바로 그 멜론의 향기로 가득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령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무네트멜론(과일의 표피에 그물 무늬가 없는 멜론)`의 생산지였다. 2001년부터 시작된 고령 멜론의 일본 수출은 해외에 한국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린 좋은 사례로도 기록됐다. 80여 년 전 이상이 머물렀던 도쿄. 현재 그곳에 사는 한국동포들은 이제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국 멜론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멜론의 원산지는 북아프리카 혹은, 인도나 중동으로 추정된다. 쌍떡잎을 가진 속씨식물로 둥근 모양의 과일이며, 과육은 품종에 따라 흰색이나 연한 녹색을 띤다. 재배 지역에 달리해 앞서 언급한 무네트멜론과 함께 네트멜론(표피가 그물과 같이 갈라져 있는 멜론) 등이 생산된다.고령의 무네트멜론은 맛과 당도에서 타 지역 멜론을 압도한다. 동고령농협이 주도해온 선진적인 재배·출하시스템 또한 2012년 농협중앙회가 주관한 `한국 멜론 평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 효율성을 인정받았다.비타민A와 C는 물론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된 멜론은 항산화작용과 함께 피부 미용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전문가들은 멜론이 “심장병과 뇌졸중 등 성인병 예방에도 좋은 과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수분이 많아 쉽게 포만감을 느끼는 까닭에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도 인기”라는 게 고령 멜론 생산농가들의 설명이다.고령에서는 파파야, 양구, 홈런 등의 이름을 가진 다양한 품종의 멜론이 재배된다. 재배 면적은 약 100ha. 모두 133 가구가 멜론농사를 짓고 있으며, 한 해 생산량은 2천600t 정도로 추산된다. 고령 멜론의 출하 시기는 4월부터 6월. 멜론의 향긋한 향기와 달콤한 맛에 빠져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이 고령 방문의 적기(適期)다./전병휴·홍성식기자

2016-05-23

그늘진 폐허의 유적에서 희망과 만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빛깔의 돌 수백만 개가 이뤄놓은 웅장한 과거의 흔적. 비단 앙코르와트가 아니어도 좋다. 인근 앙코르톰이나 바이욘사원에서 여행자들 틈에 끼어 세상사 고민을 잠시 잊고 일출을 기다리는 건 가슴 설레는 경험이다. 동쪽에서 시작된 태양의 꿈틀거림이 사원의 성벽을 발갛게 물들일 때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앙코르 유적은 1000년 전 크메르인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찾을 미래의 불특정다수를 위해 축조한 장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1천년 전 크메르인의 장엄한 유적일상의 감각·시간도 잠시 잊어맨발의 어린 동승 축원 들으면해탈은 법당이 아닌 길 위인 듯일몰 또한 일출의 감동과 다를 바 없다. 높은 기온과 눅눅한 습기에 셔츠가 젖도록 땀을 흘리며 시엠립 곳곳에 자리한 크메르 사원을 돌아본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옅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앙코르 유적지의 벽에 기대 태양이 제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린다.세상의 존재하는 붉은색 모두를 모아 흩뿌려놓은 듯한 진홍(眞紅)의 일몰. 사원의 나무그늘에서 만난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의 청년들은 바로 이 일출과 일몰 무렵의 앙코르와트를 만나기 위해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경이 주는 감동만큼 울림이 큰 게 사람이 주는 감동이다. 예술적으로 깎아 쌓은 돌 틈에 살아온 날들의 비밀을 고백하게 싶게 만드는 시엠립의 유적지. 그 이상으로 기자를 설레게 한 것이 캄보디아 사람들이다. 앙코르 유적은 사방 수십 km에 이름 없이 허물어져가는 작은 사원과 성곽 또한 흩뿌려놓고 있는 곳. 1~2달러를 주고 빌린 자전거에 올라 그곳들을 찾아다니다 만난 동승(童僧)들.국민 대다수가 소승불교 신자인 캄보디아에선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어린 승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갓 열두어 살이나 됐을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오렌지색 승복을 입고 햇살에 달아오른 길을 맨발로 걷는 그 아이들의 눈빛에선 나이와 상관없는 외경이 읽힌다. 생수 한 병 혹은, 빵 한두 개를 그네들의 가방에 넣어주며 앞에 엎드리면 동승은 사람들의 귓가에 축원의 말을 조용히 읊조려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해탈이나 종교적 깨달음의 공간은 법당이나 성당이 아닌 `길 위`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한낮의 더위가 사라지고 해가 저물면 시엠립 여행자의 대부분은 `나이트 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줄지어 늘어선 노천카페 중 한 곳을 골라 안락의자에 편하게 등을 기댄다. 푸릇푸릇한 민트가 듬뿍 들어간 칵테일 `모히토`를 마시며 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 와 있다는 즐거움에 미소가 그려진다. 프놈펜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유쾌한 20대 청년은 기자의 서툰 강의(?)를 듣고는 한글 자음과 모음의 운용방식을 알아낸다. 영민한 청년이다. 그런 청년들이 이끌어갈 캄보디아의 미래가 어두울 까닭이 없을 것이란 믿음에 기분이 좋아졌다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10대 후반 소녀도 잊을 수 없다. 다음 달이면 경기도 수원의 공장으로 일을 하러가게 됐다며 좋아하던 모습. 월급 액수와 체류 기간이 적힌 근로계약서를 보여주며 잇몸을 드러내고 웃던 그 소녀가 한국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며 앞날을 꿈꿀 수 있었으면. 앙코르와트의 도시 시엠립은 신을 믿지 않는 기자가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앙코르 유적에 새겨진 압사라 여신의 유혹하는 춤사위, 천 년 세월을 견뎌온 석조건물 사이에 낀 푸릇한 이끼, 눈부신 아름다움의 일출과 일몰, 흙먼지 날리는 동네 골목길에서 크메르 아이들의 천진한 몸짓에 취하게 되는 시엠립. 그곳에서 지내다보면 일상에서의 감각과 시간을 잠시 잊게 된다. 하지만, 여행은 떠날 때부터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 것. 아쉬움은 추억이 가진 힘으로 견딜 수밖에 없다. 시엠립에서의 마지막 날.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 `툭툭`을 타고 톤레샵엘 갔다. 제주도보다 큰 면적의 바다 같은 호수. 포이펫에서 국경을 넘을 때 본 지평선 이상으로 아름다운 수평선이 쓸쓸함과 충만을 동시에 선사하며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수백 종의 민물고기를 제 안에 기르며 호수에 삶을 기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톤레샵. 그곳에서 만난 석양 역시 숨 막히게 붉었고 또한, 아름다웠다. 밀려드는 호숫가의 어둠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툭툭 기사가 “우리 삼촌 집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보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마을.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 2층의 희미한 남폿불 아래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툭툭 기사의 조카가 누워 있었다. 방글거리며 기자를 올려다보는 그 아기의 얼굴과 가난에도 주눅 들지 않은 아기 엄마의 미소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는 것이구나. 천 년 세월 저편 번성했던 크메르왕국 왕자의 탄생만이 축복받을 일은 아니구나. 비록 희미한 빛 아래 누웠지만 누가 감히 이 조그만 아기의 내일이 어둡고 습할 것이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우리 주위엔 세상의 번듯함보다는 폐허, 미래보다는 과거, 빛보다는 그림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다소 퇴행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들의 천성이 못나거나 구차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인간 개개인의 취향과 지향의 다름에서 오는 것일 뿐.현재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지난날의 흔적 시엠립 앙코르 유적의 그늘진 폐허에서 낙관과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기자의 취향. 그 취향과 지향을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 앙코르와트는 과거인 동시에 진행 중인 현재이며, 내일을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설레는 미래다. 캄보디아를 즐기는 3가지 색다른 방법여행지에서라면 평소 해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캄보디아는 4~5시간 안팎의 짧은 비행으로 가닿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서 한국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며칠이나마 즐겨보자. 틀에 갇히지 않는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자전거로 유적지 돌아보기시엠립에서 앙코르와트를 포함한 각종 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장 흔한 방법은 개조한 오토바이택시를 타는 것이다.그러나, 젊고 더위와 싸울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여행자라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 밀림 속에 숨겨진 조그만 유적들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휘파람 불며 달리다가 우거진 수풀 속에서 천년 이상의 세월을 조용히 숨죽여온 사원을 발견한다면 `나도 모험가가 됐다`는 기쁨에 절로 큰 웃음이 나올 것이다.자전거 대여료는 하루 1~2달러로 매우 저렴하다.▲ 현지인들과 친구 되어보기일반적인 패키지여행에선 현지인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제외한 캄보디아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하지만, 배낭을 멘 자유로운 여행자라면 얼마든지 현지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고 친절한 캄보디아 사람들은 조금만 친해지면 곧잘 “우리 가족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집으로 놀러오길 청한다.달콤한 사탕이나 한국에서 가져간 기념품 등 조그만 선물을 들고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 크메르의 내밀한 풍경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운이 좋다면 캄보디아 가정식으로 차린 저녁 식사도 대접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캄보디아 전통음식 맛보기수도인 프놈펜과 유명 관광지인 시엠립에는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이 흔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도 여럿 있다.하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듯, 캄보디아에선 캄보디아 전통요리를 즐겨보자.태국과 베트남 요리에 영향을 받은 캄보디아 음식들.서민들은 쌀을 재료로 만든 면발에 각종 채소를 데쳐 얹은 국수를 즐겨 먹는다.시장 좌판에 앉아 먹는 한 그릇 500원짜리 쌀국수도 제법 맛있다. 좀 더 고급스런 전통음식을 찾는다면 생선과 쇠고기 등에 코코넛밀크와 향신료를 더해 걸쭉하게 끓인 아목(Amok)을 권한다. 곁들여 먹는 밥이 커다란 바나나 잎에 올려져 있어 재밌는 볼거리까지 제공한다.사진제공/구창웅/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5-20

천천히, 초급 독해능력부터 길러라

본지는 지난달 2회에 걸쳐 포항 출신 박병태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융합교육지원팀장의 영어 말하기 학습법 노하우를 소개했다. 본지의 이번 특집기획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정규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해 검정고시로 수학하는 틈틈이 독학으로 영어 말하기를 정복한 필자의 이력만큼이나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4월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박병태 팀장에게 다시 한번 축하와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 하편에서는 영어 말하기 학습법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놓치기 쉬운 중요한 점에 대해 요약 정리해 본다취향따라 시각·청각·율동적 학습 적극 활용을방과 후 자기 주도에 의한 말하기 훈련도 필수.□다중지능이론에 따라 학습 깊이와 방향을 조절해야하버드 대학의 가드너교수는 인간의 지능을 논리수학, 언어, 대인관계, 음악, 공간, 신체, 자연탐구, 자기이해 등 8개의 다중지능으로 분류한다. 8대 지능에 대한 검사결과, 언어지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면 영어공부를 보다 심층적으로 할 수 있고, 영어와 관련된 직업을 염두에 두고 보다 전문적으로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또한 취향에 맞는 학습 자료와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습자에 따라 시각적·청각적·율동적 학습자로 분류할 수 있다. 학습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각적인 학습자는 그림이나 동영상 자료를, 청각적인 학습자는 음성 자료와 같이 청각적인 자료를 그리고 율동적인 학습자는 신체의 움직임을 영어공부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읽고, 듣고, 우리말 직역하는 감각 길어야영어와 언어체계가 전혀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쉽게 영어를 정복하는 방법은 먼저 기본적인 영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초급 독해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그 다음에는 기본적인 영어문장을 의미단위로 나누어 큰 소리로 읽고, 듣고, 우리말 직역을 하며 자연스럽게 따라할 수 있는 감각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러한 학습법이 저비용·고효율의 유일한 영어 학습방법이 될 것이다.탁월한 영어실력으로 TOEFL과 GRE(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미국 교수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득점을 획득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했으나, 말하기 능력이 향상되지 않았던 사례를 언론에서 보도한 적이 있었다. 상기 유학생들은 3년 또는 8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수많은 논문을 작성하고, 자신이 직접 작성한 자료를 발표, 교수 또는 동료 학생과 끊임없이 영어로 토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 교수들은 유학기간 동안 이들의 영어 말하기 능력이 향상되지 않았다고 평가했고,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은 영어 말하기 능력 향상에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인 소리 내어 읽는 능력과 듣고 따라 하는 능력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지적됐다.□원어민 보조교사의 효과를 과신하지 말 것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을 추진하고자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는 2011년 9천320명을 정점으로 점점 줄어들기 시작해 2016년 현재는 5천500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에 1만1천500개의 학교가 있으니, 2개 학교에 1명의 원어민 영어보조교사가 있다. 이는 예산 부족, 교사의 영어 말하기 능력 향상 등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들에 대한 활용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필요한 사전 준비 없이 원어민과 대화만 해도 영어 말하기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뇌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필요한 사전 준비란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능력과 듣고 따라 말하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는 일이 될 것이다.□ 수업시간의 현실적 한계를 제대로 알라초등학교 영어수업 시간은 연평균 85시간이고 중학교는 113시간이며, 이중 회화수업은 연평균 30시간 미만이다. 결국 1년 동안의 회화수업을 통해 학생 1명이 직접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시간은 1년 동안 불과 60분 정도이지만, 다른 과목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더는 영어수업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이렇게 부족한 회화수업만으로는 영어 말하기 능력의 습득이 전혀 불가능하며, 수업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방과 후 자기 주도에 의한 말하기 훈련이 필수적이다.현재 우리 주변에는 소리 내어 읽거나 듣고 따라 말하기 훈련에 필요한 학습기기는 너무나 많다.테이프를 활용할 수 있는 소형 카세트에서부터 인공지능에 의한 쌍방향 말하기 기능을 갖춘 최첨단 소프트웨어까지 실로 다양하므로, 자신의 취향에 맞춰 학습기기를 선택해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끝

2016-05-19

밥과 술, 무엇과도 어울리는 명태찌개

`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집`포항시 남구 일월동에 있는 `또순이얼큰한명태찌개`식당은 맛에 대한 자신감을 유리창에 문구로 새겨놨다. 세월 따라 간판은 낡고 상호는 빛바랬지만, 이 문구에 토를 다는 이는 없다. 오히려 단골만 더 늘었다. 시간이 흘러도 맛은 변함없단 뜻이다.청림시장을 지나 도구방면 50m 지점에 자리한 이곳은 명태찌개 1인분 가격(1만2천원)이 저렴하진 않지만 때때마다 손님들로 북적거린다.단골들은 또순이 명태찌개의 맛과 양(量)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했다. 특히 “반드시 배가 많이 고플 때 가라”고 강조했다. 얼큰한 국물로 속을 풀거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덧붙였다.식사 주문을 하면 반찬이 먼저 상을 메운다. 구운 김과 노릇하게 익힌 생선구이, 배추김치 한 포기, 투박하게 썰어 무심한 듯 담아낸 어묵볶음 등이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편인데 주문과 동시에 조리해 식탁 위에 놓인 반찬 온도가 적당히 따뜻하다.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연분홍빛 명란젓이다. 참기름에 살짝 버무려 채 썬 고추를 얹어냈다. 밥과 찌개까지 상 위에 오르면 차림이 완성된다. 식당 주인의 넉넉한 인심과 마주하는 순간이다.반찬이 먼저 나왔으니 맛 또한 반찬 얘기부터다. 나열하고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집 반찬들인데, 집어먹다 보면 자꾸만 구미를 당긴다. 그중에서도 “어묵볶음 더 달라”는 추가 주문이 가장 많다고. 어묵을 큼지막하게 썬 것이 특징인데, 중독성을 지녔다는 게 먹어본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특히 이 집 반찬은 두 종류 이상 함께 먹었을 때 풍미가 좋아진다. 방법은 취향대로. 예를 들어, 쌀밥에 명란젓을 얹어 김으로 싸먹는 조합이 있다. 서로의 맛을 더욱 좋게 하는 만남을 찾는 재미까지 더해진다. 생선 한 마리가 통째 들어간 명태찌개는 국물부터 맛봐야 한다. 처음엔 맑고 개운하지만,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해져 얼큰하고 진한 맛을 낸다. 밥과 술, 모두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찌개이다. 밥공기가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꼭 배고플 때 가라던 단골들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지난 주말 식당을 찾은 주부 강모(33)씨는 “다음 달 출산을 앞두고 남편이 평소 좋아하는 식당이라 함께 왔다”며 “가격만 봤을 땐 일반 식당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맛과 양은 그 이상 훨씬 맛있고 푸짐하다”고 말했다./김혜영기자hykim@kbmaeil.com

2016-05-17

청정 가야산과 낙동강 맑은 물 `크나큰 마음`으로 길러

비닐하우스 속에서 조그맣게 피어난 노오란 꽃송이를 본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에델바이스처럼 애달픈 전설을 담고 있는 꽃도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빛깔이다. 바로 수박꽃. 이 수박꽃의 꽃말은 `크나큰 마음`이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과일 중 크기에서 수위를 다투는 큼지막한 수박에 썩 잘 어울리는 꽃말이 아닐 수 없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고대 이집트에서도 수박을 길러 먹었다니 우스개처럼 이야기하자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과일이라 할 수 있다.원산지는 아프리카, 15세기께부터 한반도 재배 당도 뛰어나고 수분높은 `우곡 그린수박` 유명세귀향 20년차 최송기씨에 새로운 길 열어준 효자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통치자였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새하얀 은쟁반에 담긴 새빨간 수박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르게 찾아온 초여름 더위가 어느 순간 잊힐 것이다.수박이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시기는 15세기 중반을 전후해서였다. 한국의 경우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백성들이 수박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수박은 서기 1천500년 이전부터 한반도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준 달콤한 과일이었다.시과(時瓜), 서과(西瓜), 수과(水瓜)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수박. 경북 고령군은 바로 이 수박으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고령군청 관계자는 “청정한 가야산과 낙동강 맑은 물이 길러내는 수박은 청량감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다”는 말로 고령의 특산물로 자리 잡은 `우곡 그린수박`을 자랑했다.최송기(52) 씨는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다가 1996년 한국에 불어닥친 경제 불황의 여파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고향인 고령으로 돌아왔다. 귀향 20년차인 최 씨는 최근 우곡면 들판에서 올해 첫 수박 수확을 했다.660㎡짜리 비닐하우스 17동을 이용해 아내와 수박농사를 짓는 그는 “농경지에는 지하수 시설이 잘 정비돼 있어 물 걱정은 없어요. 외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리는 통에 애를 먹었죠”라고 했다.“거기다가 강한 바람도 불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모든 농사가 다 그렇지만, 수박농사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웃음을 보이는 최 씨. 옆에 있던 마을 주민 역시 “하느님과 동업하는 게 수박농사”라는 농담을 보탰다.서울에서 사업으로 이루지 못한 성공을 수박농사로 절반쯤은 이뤘다는 최송기 씨는 “고향에서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준 수박이 내게는 효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재배해서 판매하는 `우곡 그린수박`은 전국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고령에서 생산된 수박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소비된다.“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한 번 맛을 보라”며 빨갛게 잘 익은 수박 한 조각을 기자에게 건네는 최 씨의 손길에서 넉넉한 시골의 인심이 묻어나온다.“제가 어릴 때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地·비닐이나 지붕 따위로 가리거나 덮지 않은 땅)에서 수박을 길렀어요. 원두막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한두 통씩 몰래 따먹던 수박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라는 추억담을 들려준 최 씨. 과거를 떠올리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수박 수확현장에 자리를 함께 한 주민들도 “인정을 나누고 사는 건 옛날이 훨씬 좋았다”며, “요즘은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 수박을 서리하는 풍경도 전혀 볼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 아쉬운 표정에서 고령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었다. 배수성이 좋은 모래성분의 땅과 진흙성분이 많은 점질토가 고루 분포된 고령은 예로부터 “수박농사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박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재배기술과 토양의 조건, 기후와 종자개발 등이다. 고령은 이중 토양의 조건과 재배기술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령군이 수박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재배지와 생산량은 매년 늘어났다. 1970년대 초반엔 우곡면에서 처음 시작한 비닐하우스 재배방식이 성공함에 따라 인근 성산면과 개진면에서도 같은 방식의 재배를 연이어 시작했고, 그때부터 `명품 고령 수박`의 역사가 시작됐다.수박의 맛과 품질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진행된 수박 관련 이벤트(고령 수박 한마음축제)와 직판장 개설 등은 KBS를 포함한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고령 수박이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토양과 재배기술이 타지역 비해 월등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날씨도 한몫무기질·비타민 등 다량함유 피로회복에 그만수박은 과일 중에서도 특히 수분 함량이 높다.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수박은 무기질, 비타민, 아미노산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또한, 수박의 포도당과 과당은 인체에 흡수되는 속도도 빠르다.`한국식품과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뇨제로서 부종에 효과가 있고, 신장염, 요도염, 방광염 등에 좋으며, 해열 작용도 하는” 과일이 바로 수박이다.그렇다면 고령군 우곡면, 개진면, 성산면에서 생산되는 수박은 다른 지역에서 재배되는 수박과 어떤 차이점을 보일까.“구릉성산지로 이루어진 고령은 온난하고 연중 일조량이 풍부하며, 내륙에 위치해 있어 일교차도 크다. 그렇기에 당도가 높고 식감이 뛰어난 수박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고령군 농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에 “낙동강변에 형성된 충적평야의 비옥한 토질도 고령 수박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차츰 높아지는 기온에 불어오는 바람에서 초여름의 향기가 느껴지는 5월 중순. 식구들이 모이는 오늘 저녁엔 시원하고 달콤한 고령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놓고 수박꽃의 꽃말처럼 서로를 향한 `크나큰 마음`을 정겹게 나눠보면 어떨까. 부인병과 위장 장애에 좋은 향부자잔뿌리는 불에 태워 없앤 뿌리줄기 말려서 사용사질양토가 최적지… 전국 재배면적 70%나 차지해마다 가을이면 고령군 들녘은 해질 무렵의 노을보다 더 붉게 타오른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불을 질렀냐고? 물론 아니다. 복통 등의 위장 장애와 월경불순 등 부인병에 효험을 보이는 작물이며, 요즘처럼 약이 흔치 않았던 시절엔 폐결핵에도 사용했던 향부자(香附子)를 수확하는 풍경이다.사초목 사초과의 식물인 향부자는 수확한 덩이줄기의 잔뿌리는 불에 태우고 뿌리줄기를 햇볕에 잘 말려 앞서 언급한 증상에 약재로 사용한다.고령 들판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은 바로 이 향부자의 가는 뿌리는 태우는 광경이다.딸기, 수박, 감자 등과 함께 향부자는 고령 농가소득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효자 작물이다.농업전문가들에 의하면 “고령의 사질양토는 모래땅을 좋아하는 여러해살이풀인 향부자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한다.현재 고령군에서는 20여 가구가 향부자 농사를 짓고 있다. 재배농가 수는 많지 않지만, 향부자가 뿌리를 내리고 커가는 땅은 24ha로 전국 재배면적의 70%에 해당되는 작지 않은 규모다. 해마다 거둬들이는 수확량도 150t에 육박한다.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란 고령군 다산면의 향부자는 품질이 좋고, 약효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오래 전부터 받아왔다. “다산 향부자를 한 번 이용해본 이들은 꼭 다시 찾게 된다”는 게 고령 농민들의 자랑거리다.고령에서 향부자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재배지가 훨씬 넓었으나, 현재는 낙동강변 개발사업 등으로 노곡, 곽촌, 평리 지역이 재배를 포기한 탓에 경작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향후 고령군청은 향부자와 관련된 각종 현대식 가공시설을 구축하고, 재배·수확 과정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농가소득 확대에 도움을 줄 방침이다.약재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향부자가 진통 작용과 자궁수축억제 작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시퍼렌(cyperene), 시퍼놀(cyperol), 코부손(kobusone) 등의 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지금으로부터 1천800여 년 전에도 향부자는 귀한 약재였다. 중국 위나라의 왕이 사신을 보내 오나라에서 향부자를 구해왔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고령 향부자를 먹는다면 좀 더 좋은 약효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전병휴·홍성식기자

2016-05-16

아름다운 오월, 글로 그림으로 `동심의 꿈` 펼쳤어요

경북매일신문이 주최해 지난 7일 경주황성공원에서 열린 `2016 경북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경북 중·남부권)`가 경북 중·남부 지역 어린이 1천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대회의 백일장 운문 부문에서 남서윤(안강제일초등 4년) 어린이의 `숲은 화가`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산문 부문에서는 이강은(산대초등 6년) 어린이의 `숲`이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백일장 우수상에 김우진(용황초등 4년) 어린이 등의 작품 76점이 선정됐다.이밖에도 이날 참가한 어린이들은 `숲`·`새`·`가족`·`선생님` 등의 글감으로 어린이 특유의 맑고 천진한 심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저마다 정성껏 다듬어 선보였다.이번 대회의 사생대회 부문에서는 조서희(예원유치원)·김윤서(유림초등 1년)·김나경(흥무초등 4년) 어린이가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김동휘(금장초등 5년) 어린이 등 168명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생대회 참가 어린이들은 이번 대회가 열린 경주황성공원을 중심으로 `가족` `숲` 등을 주제로 순수한 그림작품을 빚어 놓았다.경북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올해 경북 전역에서 23회째 열린 본사의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명실공히 경북 최대규모의 어린이 예술대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특히 이번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자전거와 축구공 등 경품 행사가 마련돼 어린이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운문 최우수상-남서윤(안강제일초등 4년)숲은 화가앙상한 나뭇가지 가득한갈색 도화지 위에따뜻한 봄바람 불어오면숲은 화가가 됩니다.노란색 개나리빨간색 진달래산속 가득히 그려넣으면겨울내내 잠자던 동물들이구경오지요.뜨거운 햇빛 내려앉은숲 속 가지마다푸른 잎 가득 그려넣으면매미가 이쁘다고합창하지요.시원한 가을바람에빨간색 물감 노란색 물감보라색 물감 실어보내면온 세상이 알록달록예쁜 수채화가 되지요.산문 최우수상-이강은(산대초등 6년)숲우리 가족은 자라나는 나무 같다. 계절 상관없이 각자의 냄새를 풍기는 가지각색의 나무, 향기로운 꽃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집을 가득 메우면서도 그 냄새가 싫지도 부담스럽지도 않고 구름의자에 앉은 것 마냥 향기롭기만 한 엄마 같은 나무가 있는 반면 그 어떤 나무보다 뿌리를 깊게 뻗은 아빠나무도 있다. 깊게 뻗었지만 다른 나무를 해치기는 커녕 기둥만 되어주고 옆으로 튀어나온 잔 가지를 살짝 감추기만 하는 아빠나무는 나무 안 속이 텅 빈마냥 애처로워 보인다. 바람에 날려 어쩔줄 몰라하다 잔뜩 혼나는 모습은 나와 남동생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서로 조화롭게 있으면서도 어느샌가 거칠게 서로 맞붙는 우리 남매의 모습을 본 부모님께선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나는 것 같아 속만 상하고 그만두고 만다. 속이 상할 때 우리가족을 항상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은 내가 닮고 싶은 대상이다. 그 거친 비바람도 헤치고 모든 것을 따뜻하게 비추며 조용히 잠들게 해주는 햇살이 부럽기만 하다. 나도 모든 것을 순환하면서 아름답게 잠재우는 햇살이 되고 싶다. 모든 것을 순환하면서 아름답게 잠재우는 햇살이 되고 싶다. 모든 것을 비춰 아버지의 텅 빈 속마저 채워주고 싶다. 우리집에는 큰 나무가 있다. 거칠면서도 햇살 하나에 조화롭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나무가 있다. 우리가족은 햇살, 바람, 구름, 별빛을 쟁이는 성장하는 숲이다.입상자 명단□백일장◇운문부△최우수상 남서윤(안강제일 4-1)△우수상 김우진(용황 4-3) 조은수(금장 2-7) 김지훈(대구신매 1-4) 백경민(경주 6-1) 천호민(금장 5-4) 박성현(유림 4-3) 정민유(흥무 4-1) 김서연(안강제일 4-3) 이시훈(산대 4-4) 이성민(황성 4-5) 임보람(흥무 6-1) 김유경(황성 6-1) 김수영(안강제일 6-3) 강수경(산대 3-4) 박지민(서울서원 6-7) 김은서(유림 6-5) 신민서(유림 3-6) 신민정(유림 6-2) 이민채(경주 4-7) 최광혁(용황 4-2) 권예림(황성 4-1) 김재윤(용황 3-4) 박선영(용강 2-3) 최서현(경주 1-3) 윤예찬(경주 1-5) 최연우(용강 1-5) 정영헌(금장 2-3) 김상빈(경주 3-5) 김준희(용황 4-3) 장호윤(동천 1-3) 박재윤(서울서원 4-2) 한연주(경주 1-3) 이승현(유림 3-5) 신지아(황성 2-4) 박준형(불국사 2-2) 최민재(유림 2-2) 권예은(유림 2-7) 김유경(황성 5-5) 이채섭(용황 5-3) 김성범(화랑 3-1) 양채린(나산 5-2) 김민지(용황 6-5) 김대엽(용황 5-4) 최성혁(용황 6-1) 김윤희(꿈나무어린이집)◇산문부△최우수상 이강은(산대 6-1)△우수상 남서영(유림 1-2) 권민우(유림 2-4) 김지수(황성 6-4) 이남경(흥무 3-1) 박가희(용황 1-3) 박주하(나산 1-1) 박수빈(입실 3-3) 이다빈(산대 1-5) 최효원(영지 1-1) 최재원(유림 1-1) 김민혁(유림 3-2) 손유찬(예원유치원) 이승휘(경주 5-5) 노혜민(나산 3-1) 정유진(안강제일 4-1) 안경완(용강 1-2) 이재민(산대 4-3) 이채민(용황 2-3) 이윤서(용황 2-2) 이윤호(흥무 1-1) 이승후(경주 4-7) 임현정(나원 2-1) 정은철(안강제일 2-4) 정계희(금장 4-5) 김예은(경주 4-1) 박채윤(용황 4-3) 백아영(동천 5-6) 손예진(경주 6-2) 이유리(나산 6-1) 최청원(영지 5-1) 이동호(동천 1-3)□사생대회 ◇고학년부△최우수상 김나경(흥무 4-3)△우수상 김동휘(금장 5-2) 박다인(황성 6-2) 김지유(산대 6-4) 장용현(용황 4-4) 김해찬(금장 4-6) 김혜령(금장 5-7) 서나영(황성 6-1) 손혜은(금장 5-2) 박도은(황성 4-5) 윤요원(경주 4-7) 손예지(모량 6-1) 정현권(안강제일 4-4) 한고은(흥무 4-2) 김지연(용황 4-2) 기유성(안강제일(4-3) 김수안(황성 4-2) 송민경(황성 5-3) 손보승(용황 6-1) 류의정(용황 4-4)◇저학년부△최우수상 김윤서(유림 1-2)△우수상 손준영(용황 3-1) 김가령(금장 2-4) 김소연(용황 1-2) 하석문(흥무 3-2) 송수진(황성 1-5) 이선주(나원 3-1) 김도현(용황 1-4) 김보경(동천 1-2) 정승하(안강제일 2-2) 전서현(흥무 1-2) 김한별(금장 2-6) 이동준(동방 1-1) 정소은(유림 2-7) 장윤수(유림 2-7) 석정우(금장 1-1) 허서준(금장 2-5) 손채연(동천 1-4) 오재혁(유림 1-6) 이려흔(유림 3-1) 이수민(유림 3-8) 장유정(나산 3-1) 하 람(금장 3-6) 유현주(서라벌 3-1) 김미주(용강 3-2) 이다인(유림 3-6) 김현리(용황 2-6) 김현준(불국사 2-1) 이준서(황성 2-2) 김수현(황성 2-4) 최희수(유림 2-2) 홍예음(유림 2-3) 류하린(유림 2-2) 신희원(유림 2-7) 이승륜(유림 2-4) 이수민(유림 2-5) 김민서(유림 2-7) 김다예(유림 2-4) 한채아(금장 2-7) 전성환(유림 2-6) 신윤호(동천 2-2) 박솔희(나원 2-1) 김수린(황성 2-5) 유현민(용황 2-2) 이준경(용황 2-6) 권민혁(경주 2-4) 최수현(경주 2-2) 김동휘(유림 2-7) 김민지(나원 2-1) 김규리(유림 1-2) 김승범(황성 1-1) 최유정(금장 1-4) 서지아(유림 1-1) 양서연(용황 1-3) 손지영(유림 1-8) 유연주(서라벌 1-1) 이정민(유림 1-1) 박유혁(흥무 1-2) 김경무(용황 1-1) 김가령(용황 1-2) 김현범(황성 1-4) 손지호(유림 1-8) 장가은(용황 1-6) 채인서(금장 1-4) 위채연(동천 1-3) 김민호(금장 1-3) 박서영(건천 1-2) 김서현(나원 1-2) 임지유(나산 1-2) 강준희(강동 1-1) 이우진(흥무 1-1) 이서경(유림 1-7) 진효원(황성 1-3) 이정협(유림 1-3) 김영란(용강 1-6) 박서연(유림 1-3) 이수진(유림 1-1) 김해인(나원 1-2) 김민찬(흥무 1-2) 이서영(황성 1-1) 임선영(경주 1-2)◇유치부△최우수상 조서희(예원유치원)△우수상 이서윤(현대유치원) 이연수(하나유치원) 신아영(예원유치원) 조서연(예송유치원) 김보미(불국유치원) 안세미(동국대부속유치원) 장준수(현대유치원) 이상아(동방병설유치원) 김도빈(불국유치원) 이준성(제일어린이집) 정은서(곽민지예능어린이집) 조은율(동국대부속유치원) 전서연(용황유치원) 김서현(흥무병설유치원) 이하준(다린어린이집) 정지민(내남병설유치원) 박규빈(동국대부속유치원) 최은서(중앙유치원) 신동훈(서라벌예술어린이집) 천영서(금장병설유치원) 권민호(안심사어린이집) 김다연(경주유치원) 방경선(산대병설유치원) 윤홍찬(용강병설유치원) 최유정(하나유치원) 김유경(불국유치원) 김도영(명성어린이집) 박정현(안심사어린이집) 박정빈(대한유치원) 임서준(월성원자력어린이집) 김담영(동아유치원) 신지훈(동천병설유치원) 윤채원(동국대부속유치원) 채민지(꿈나무유치원) 김보민(꿈나무유치원) 김도윤(용황유치원) 이서연(현대유치원) 김교현(경주유치원) 전보은(현대유치원) 이대관(제일어린이집) 김하정(예원유치원) 손아현(현대유치원) 손민경(꿈나무유치원) 김은율(예송유치원) 송소윤(예원유치원) 권태규(EBS딩동댕어린이집) 이지후(세이유치원) 최강희(예원유치원) 최석훈(예송유치원) 조현호(안심사어린이집) 박선웅(산대병설유치원) 유은서(신나는어린이집) 권수민(황성병설유치원) 박주하(동국대부속유치원) 김민준(황성병설유치원) 김민예(안심사어린이집) 정우용(현대유치원) 이현성(예원유치원) 백선우(동국대부속유치원) 김도연(성림어린이집) 박세은(용황유치원) 김규진(예송유치원) 권지완(산대병설유치원) 권민석(동국대부속유치원) 정민서(예원유치원) 김예령(꿈나무유치원) 최민지(동국대부속유치원) 최은성(제일어린이집) 이시연(꿈나무유치원)/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5-16

동심, 5월처럼 푸르른 바다처럼 넓은 세상을 품다

경북매일신문이 주최해 지난 5일 포항환호공원에서 열린`2016 경북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포항)`가 포항 지역 어린이 2천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대회의 백일장 운문 부문에서 이주은(제철지곡초등 2년) 어린이의`파도`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산문 부문에서는 양윤주(포항해맞이초등 3년) 어린이의 `수평선이 보이는집`이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백일장 우수상에 박예진(장량초등 4년) 어린이 등의 작품 95점이 선정됐다.이밖에도 이날 참가한 어린이들은 `등대`·`파도`·`고래`·`수평선`등의 글감으로 어린이 특유의 맑고 천진한 심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저마다 정성껏 다듬어 선보였다.이번 대회의 사생대회 부문에서는 천희연(서머힐어린이집)·이다영(두호초등 2년)·이시연(양덕초등 6년) 어린이가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곽은성(유강초등 4년) 어린이 등 285명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생대회 참가 어린이들은 이번 대회가 열린 환호공원을 중심으로 `바다엔 누가 살까요?``신나는 바다 여행``현장 사생`등을 주제로 순수한 그림작품을 빚어 놓았다.경북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경북 전역에서 23회째 열린 본사의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명실공히 경북 최대규모의 어린이 예술대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특히 이번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화재 진압 체험, 친환경비누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와 어린이 난타공연, 포항농특산품 홍보관 운영 등 푸짐한 공연·전시 행사가 마련돼 어린이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산문 최우수상-양윤주(포항해맞이초등 3년)수평선이 보이는 집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셨다. “헉, 헉, 헉, 하필 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게 뭐야!” “그러게요, 요즘 고장이 많이 나네요. 꼭대기 층이라 덥기도 덥고 이사라도 가야 하려나?“ 엄마의 말씀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않았다.우리 집은 아파트 25층 꼭대기 층이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다.저녁을 먹으며 엄마는 아빠께 요즘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른 것과 이웃집이 다른 아파트로 이사간 것 등의 이야기를 하셨다. 아빠도 아빠의 서재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하시며 방이 한 개 더 있는 아파트를 알아 보자고 하셨다.나는 점점 불안해졌다.우리 집은 25층 꼭대기에 있어서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춥긴 하지만 정말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숫자를 세게 되면서 매일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의 수를 세기도 했고 하늘과 맞닿은 것이 수평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곤 했다.바다의 색깔은 마법처럼 어떤 때는 은은하고 연한 색이었다가 어떤 때는 파란 물감처럼 진하기도 하여 신기하고 예뻤다.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많이 칠 때면 파도는 마치 구름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이신 아빠는 바다의 풍경을 자주 찍곤 하셨다. 엄마는 바쁜 아침이면 바다의 모습을 보고 옷을 준비해 주셨다.파도가 많이 일렁이면 여름이라도 바람막이를 입으라고 주셨다. 엄마, 아빠도 바다가 보이는 이 집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왜 이사를 가시려고 하시는지 불만스러웠다.언니랑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언니도 세 살 때부터 이 집에 살았지만 매일 매일 바다가 똑같은 적은 없었다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버리고 이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우리들은 꾀를 내었다. 살금살금 일어나서 편지를 썼다. `저는 2504호 10살 윤주네 집이에요. 제가 드린 선물 기억하시죠? 저를 팔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그리고는 편지와 함께 아빠가 찍어놓으신 일출 사진을 한 장 꺼내어 탁자 유리 사이에 끼워 놓았다. 다음 날 마침 눈을 비비며 나와 보니 아빠와 엄마가 베란다에 서 계시는 것이 보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다른 사람들은 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 가기도 하는데 우리는 날마다 집에서 볼 수 있으니 이런 것도 행복인 것 같아요. 그리고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우니까 딸들이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그냥 여기서 살아요.”“하긴, 우리가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시원하게 펼쳐진 수평선을 보고 전망이 너무 좋은 나머지 둘째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평선이라고 하자는 말도 했었지. 당신 말대로 여기서 그냥 살도록 합시다.”아빠의 대답을 듣고 나는 동시에 두가지 기쁜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가지 않는 것에 기뻤고 평선이라는 이름보다는 윤주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에 기뻤다. 나는 얼른 뛰어가 엄마 아빠께 안겼다. 저 멀리 유난히 반짝이는 수평선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운문 최우수상-이주은(제철지곡초등 2년)파도안녕? 하면 한걸음에 달려와내 발을 적시는 반가운 파도야나에겐 출렁출렁신나는 물놀이 친구귀여운 동생에겐맛있는 바다의 솜사탕엄마아빠에겐철썩철썩 시원한 음악 친구너는우리가족 최고의 친구야!입상자 명단□백일장◇운문부△최우수상 이주은(제철지곡초 2-5)△우수상 박예진(장량초 4-7) 이정언(학천초 4-2) 김도연(해맞이초 5-4) 박수안(효자초 2-5) 박민용(제철지곡초 2-4) 이승혜(원동초 2-3) 방현명(제철서초 2-4) 이하진(자연과아이유치원) 김소윤(포항초 2-2) 박세은(항도초 5-3) 권도연(해맞이초 2-2) 우승아(제철지곡초 5-1) 홍태곤(양덕초 3-2) 김나윤(양덕초 3-2) 정은유(상대초 5-1) 이효찬(제철지곡초 3-5) 김하율(남양초 1-1) 하승헌(재능유치원) 송채민(양덕초 4-7) 최영은(신흥초 1-1) 곽경우(해맞이초 6-2) 이명학(연일초 4-1) 우지원(두호초 2-3) 신현태(예일유치원) 김범준(제철지곡초 2-4) 조나은(원동초 5-1) 오병호(구정초 2-3) 최준영(해맞이초 3-2) 김나연(이동초 2-5) 서예찬(제철지곡초 4-3) 천승현(신흥초 2-1) 이우찬(이동초 3-5) 김상은(포항 6-1) 정지우(양덕초 4-4) 우재형(제철지곡초 6-4) 손가영(장량초 4-3) 방현민(제철서초 5-1) 김명진(장원초 3-2) 배소정(장량초 3-5) 지준승(대해초 4-2) 허한찬(두호남부초 3-6) 신지윤(두호초 2-1) 한승완(양학초 5-1) 원아람(해맞이초 1-1) 이수홍(원동초 5-3) 김민진(포항시청어린이집) 이연준(구정초 3-1) 이예찬(제철지곡초 1-3) 김두은(제철동초 2-2) 이지윤(대이초 1-1) 문예지(대이초 1-1) 정채빈(대이초 3-1) 이태진(해맞이초 4-5) 오도경(대도초 2-2) 신재원(제철지곡초 1-2) 우채윤(두호남부초 2-2) 조현준(경주초 2-1) 하윤서(효자초 4-2) 조서윤(동아유치원) 오수연(대도초 5-1) 이태민(경주초 1-2) 최명재(신흥초 3-2) 윤태영(해맞이초 5-1) 신승윤(대흥초 3-5) 김명찬(장원초 3-1) 유주영(상대초 2-1) 김무성(구정초 3-2)◇산문부△최우수상 양윤주(해맞이초 3-2)△우수상 이정연(송림초 2-2) 이하윤(해맞이초 1-5) 김가은(송곡초 3-4) 김보민(두호남부초 4-3) 박수연(해맞이초 5-3) 김두은(유강초 3-5) 양예주(해맞이초 6-3) 정하윤(대흥초 3-1) 박소연(두호남부초 3-2) 이하진(해맞이초 2-2) 허한순(두호남부초 6-4) 장소윤(양학초 3-5) 서지훈(흥해초 3-2) 김세린(연일형산초 4-1) 전선호(양덕초 6-1) 이현우(창포초 6-2) 최민혁(원동초 1-4) 박수빈(대흥초 3-6) 김혜영(송곡초 5-5) 권나영(장원초 5-3) 박경섭(유강초 3-5) 이현수(오천초 3-3) 정지민(이동초 2-2) 임유현(연일형산초 3-2) 이재서(한동글로벌 2-1) 김가은(해맞이초 4-5) 우민서(항도초 6-4) 이주연(해맞이초 6-2)□사생대회 ◇고학년부△최우수상 이시연(양덕초 6-3)△우수상 곽은성(유강초 4-4) 임수하(양학초 4-1) 박예나(양덕초 6-3) 김하린(해맞이초 4-4) 최보영(유강초 4-3) 최현지(송곡초 6-1) 한경아(제철지곡초 4-2) 장예연(해맞이초 5-2) 이진성(두호초 6-2) 이지민(신흥초 4-1) 안재희(제철동초 5-3) 조성민(대잠초(4-1) 김다진(흥해초 6-4) 김려원(양덕초 6-1) 남수민(양덕초 4-5) 안은솔(대흥초 5-3) 김조은(달전초 6-1) 김수빈(양덕초 5-6) 김아정(부산구학초 4-1) 심지은(포항초 4-2) 이가희(두호초 4-4) 김영경(해맞이초 5-4) 정보현(대잠초 5-1) 강태민(연일초 4-2) 최다혜(연일형산초 5-1) 정하린(대도초 5-2) 김나영(양덕초 4-7) 임채빈(상대초 4-1) 고민지(장량초 4-7) 신유림(양덕초 4-1) 최나연(장량초 4-6) 김민지(두호초 4-4) 박하윤(장성초 5-2) 조서현(유강초 5-2) 최지웅(장성초 4-2) 이승주(제철지곡초 6-5) 송예원(두호초 4-2) 정채영(항도초 5-2) 김세은(포항초 5-2) 황보호현(포항초 6-2) 김예언(두호초 4-4) 박경은(송림초 4-2) 김두현(연일형산초 4-1) ◇저학년부△최우수상 이다영(두호초 2-3)△우수상 박도영(장량초 2-6) 백하늬(장성초 3-2) 노경원(양덕초 3-1) 최승빈(장량초 2-5) 박은서(원동초 1-4) 백하랑(장성초 1-4) 박수빈(효자초 2-1) 천희준(유강초 2-1) 김창현(송곡초 1-2) 이서윤(송곡초 1-1) 조승빈(흥해초 2-2) 박지인(학천초 2-5) 우준송(항도초 2-3) 정하윤(남부초 3-2) 김경린(달전초 1-1) 김예원(양덕초 3-6) 이채현(강동초 3-1) 김민지(연일초 1-2) 김지민(장량초 1-2) 이지윤(제철지곡초 3-1) 김민수(해맞이초 2-1) 정민규(창포초 3-2) 김은채(제철서초 2-1) 유현서(해맞이초 2-5) 한정민(동부초 3-1) 김민후(신흥초 3-2) 김시연(양덕초 1-6) 박소현(동부초 3-1) 정영광(송곡초 1-9) 이시은(신광초 2-1) 이현수(송곡초 1-5) 유재욱(양덕초 3-1) 정지운(송곡초 1-5) 박성준(제철지곡초 3-4) 김나경(남부초 2-1) 김지은(대흥초 2-2) 이유나(장흥초 3-5) 이효민(대도초 2-2) 유재영(항도초 3-3) 이예주(두호남부초 2-5) 김성민(송곡초 1-4) 권다은(장성초 3-4) 문정인(구정초 1-4) 신지민(해맞이초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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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3

앙코르와트 붉은 석양을 만나러 가는 길

온종일 붉은색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 인간의 심장을 설렘으로 뛰게 만드는 붉은색 일출과 일몰, 그 나라의 흙빛 또는, 석양빛처럼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 프놈펜에서 시엠립까지 버스길은한국의 70년대 농촌풍경 연상케대평원과 야자수, 스콜까지 더하면바쁜 일상을 벗어난 `낭만의 절정`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의 도시 캄보디아 시엠립을 추억할 때면 잇따라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2011년 봄. 수도 프놈펜에서 시엠립으로 향하는 낡은 버스.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태양이 무인지경의 막막한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날 이후 기자에게 캄보디아와 앙코르와트는 `거대한 붉은색 낙인`으로 새겨졌다. 불과 40여 년 전 기억의 저편. 이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농촌공동체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잔인한 크메르루주(Khmer Rouge) 청년들 탓에 국민의 5분의 1이 허망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야 했고, 당시 무너져 아직도 재건되지 못한 사회적 인프라로 인해 국민의 절대다수가 빈곤의 한가운데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나라.어둡고 습한 역사의 그늘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채, 크메르루주 집권 당시 마구잡이로 뿌려진 지뢰에 손발이 떨어져나간 사람들의 슬픈 표정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시로 마주해야 하는 그곳. 낭만적인 관광지라기보다는 상처 입은 짐승들의 공동체에 가까운 공간임에도 어째서 기자는 2003년 이후 무려 4번이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찾았던 것일까?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 여행기는 그 답을 에둘러 찾아가는 과정이 될 듯하다. 실용적 차원이 아닌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구 위 가장 아름다운 석조건축물`이라 불러도 좋을 앙코르와트. 그리고, 동양 최대의 담수호 톤레샵 호수를 만날 수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다. 정치적으로 안정기에 들어선 2000년대 이후엔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직항 전세노선이 생겼다. 대부분 3~4일의 짧은 휴가를 이용해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주로 전세기를 이용한다.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에 목적지로 직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시엠립 현지의 일정을 관리하는 가이드를 따라 상황버섯 등의 건강식품이나 라텍스로 만든 침구를 판매하는 가게에 수차례 들러 `울며 겨자 먹기`로 쇼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분을 상하게도 한다.이웃나라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거의 `독점노선`인 탓에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런 이유로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족들은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고 시엠립을 향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한 털털거리는 중고버스를 타고 이젠 보기 어려워진 1970년대 농촌 풍경 속을 달리는 색다른 맛이 있는 코스다. 모두 나름 장단점이 있는 방식이지만, 기자가 추천하고 싶은 건 태국 방콕에서 아란야프라텟과 캄보디아 국경마을인 포이펫을 거쳐 시엠립으로 가는 방법이다. 새벽에 방콕을 출발하면 점심 먹기 전 포이펫에 도착할 수 있다. 포이펫은 시엠립으로 가는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국경도시. 여기서 3~4명이 모여 택시를 대절해 3시간 정도 달리면 시엠립 시내에 도착할 수 있다. 비용은 30~40달러 내외. 1인당 10달러 정도다. 이 코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포이펫 시내를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평원 때문이다. 야자수와 잡초,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막막한 풍경. 네온사인 빛나는 도시, 숨 가쁜 직장인으로 살면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원시(原始)가 선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평원을 수십km 달리다가 운 좋게 스콜이라도 만나게 되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방랑자의 낭만은 절정에 이른다. 일상에선 결코 볼 수 없는 풍경과 만난다는 건 여행하는 사람만이 누리게 되는 특권이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포이펫-시엠립` 코스를 택했을 때마다 그 평원 한가운데 잠시 택시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도로를 지나는 차와 사람은 물론, 풀숲 들쥐조차 몸을 숨긴 적요한 풍경 속에서 마시는 `앙코르맥주` 한 모금이 얼마나 달콤한지 말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엠립에 도착하면 각자 형편과 취향에 따라 숙소를 찾으면 된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는 큰 길가에는 수영장과 깨끗한 로비를 갖춘 대형호텔이 흔하고, 시엠립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스타마트`와 `펍 스트리트(Pub Street)` 사이에는 10달러 내외의 대중적인 숙소가 지천이다. 저렴한 호텔도 에어컨과 욕실을 갖췄으니 크게 불편할 게 없다. 2003년 겨울. 처음 시엠립을 찾았을 땐 구걸하는 아이들 탓에 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갈 때마다 줄어들었고, 이제는 왁자지껄 시끄러운 주요관광 포인트가 아닌 곳에선 싸구려 기념품을 팔거나, “1달러만 주세요”라며 손을 내미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날 `크메르`라는 이름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으나, 현재는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로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가는 캄보디아 국민들. 그래서일까? 시엠립 시내는 한때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살던 늙은 마술사의 낡은 외투를 보는 것처럼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가난이 사람의 모든 것을 완벽히 파괴하지는 못하는 법.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와는 관계없이 낙천적으로 보이고, 웃음에도 인색하지 않다. 아마도 `미소의 힘`으로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집단학살의 역사를 애써 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떠올리며 뜨거워진 머릿속을 식히는 방법은 단순해지는 것이다. 해 뜰 무렵. 들러붙는 잠을 떨쳐내며 세수를 하고, 거리에 즐비한 오토바이택시 중 하나를 골라 탄다. 이제 앙코르와트와 만날 시간이다. 캄보디아는…공식적인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King dom of Cam bodia)`. 인도차이나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수도는 프놈펜. 면적은 18만1천35㎢로 한국보다 약 2배가 크다. 남북의 길이가 450㎞, 동서가 580㎞로 사각형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인구는 약 1천5백만 명. 1970년대 겪은 혹독한 학살로 인해 여성 인구가 좀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구의 90%는 크메르족. 소수의 베트남인과 중국인 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메르어를 사용하지만, 나이 지긋한 지식인들은 식민지 체험을 겪어서인지 프랑스어와 영어에도 능하다. 국민들의 절대다수(약 95%)는 불교신자. 소수의 무슬림(2%)도 존재한다. 오렌지 빛깔 가사(袈裟)를 걸친 어린 스님들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외형상으로는 `왕정국가`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정부 수반인 총리가 행사한다. 31년째 캄보디아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내외부에 알려진 사람은 캄보디아인민당(CPP)의 훈센(Hun Sen). 화폐단위는 리엘(Riel)로 1달러(한화 약 1천150원)는 약 4천 리엘.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자국 화폐와 달러가 함께 사용되고,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인 시엠립에서는 원화가 통용되기도 한다.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폴 포트와 카잉 구엑 에아브 등이 주도해 벌인 대학살은 `킬링필드(Killing Fields)`로 불리며, 영화로도 제작돼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들로 세계사에 기록됐다.기온은 고온 다습한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내고, 1년 내내 영상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은 드물다. 가장 더운 시기는 3월과 4월. 건기인 12월과 1월이 비교적 서늘하고 이때가 여행하기에 좋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많은 비가 내리는 우기다. 천연고무와 농수산물, 목재 등이 주요 수출품이고, 자동차 및 관련 부품, 전자기기와 철강 등은 수입에 의존한다. 프놈펜과 시엠립, 시아누크빌 등에는 무역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한국인들도 다수 거주한다. 어두운 현대사를 극복하고, 찬란했던 고대 크메르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프놈펜의 청년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예의 바르고, 동시에 당당한 모습으로 외국인들을 맞이한다.사진제공/구창웅/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5-13

천마총 속살 열어 보던 날, 신라 지배층의 삶이 쏟아지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대의 전설과 신화에는 말(馬)이 자주 등장한다. 현존하며 세간을 떠도는 옛이야기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케도니아 출신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애마 부케팔로스, `삼국지`의 명장 관우를 태우고 하루에 400km를 달렸다는 적토마, `서초패왕`으로 불리던 항우와 삶은 물론,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한 오추마 등은 역사와 전설 안에 존재하는 명마(名馬)다.천마도장니·금관 등 1만1천여점 `우르르`신분과시용 금장신구·말 관련 유물이 대다수20대 자비왕이나 22대 지증왕 유택 추정돌무지덧널무덤 구조 눈앞서 살펴볼 수 있어고대왕국 신라의 왕과 귀족들 역시 전쟁 수행과 신속한 이동에 도움을 주는 말을 소중하게 여겼다. 경주시 황남동에 자리한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는 이를 증명한다.1973년. 박정희 정부는 대릉원 인근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고분 발굴작업을 진행한다. 애초 계획은 황남대총에 대한 발굴조사를 거쳐 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 하지만, 당시 한국의 유적 발굴기술로는 큰 규모의 고분을 조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155호 고분으로 불리던 천마총에 대한 발굴조사.발굴결과는 놀라웠다. 앞서 언급한 천마도장니와 금관을 필두로 1만1천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중 말과 관련된 유물은 총 504점. 그중에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단연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장니(障泥)였다.말의 배를 가려 진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장식의 용도로도 사용된 천마총 출토 장니는 신라 고대미술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자작나무 껍질을 누벼 만든 1600여 년 전 화폭에 뿔 달린 말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놓은 신라 사람들.경주학연구원 박임관 원장은 이에 대해 “한국에서 자생하지는 않았지만, 신라의 고위층들은 말을 기르고 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의 자동차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 당시의 말”이라는 설명을 들려줬다.“비단 천마도장니만이 아닌 말의 뼈와 마갑(馬甲·말에게 입힌 갑옷), 각종 마구(馬具·말을 탈 때 사용하는 기구)가 함께 출토된 것을 볼 때 말은 신라 귀족들이 귀하게 생각했던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역시 박 원장의 견해.천마도장니는 그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207호로 지정됐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이 유물은 신라시대에 그려진 그림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한 까닭에 역사학계는 물론, 미술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여 왔다.고고학자 조유전의 책 `발굴 이야기`에는 천마총 발굴에 얽힌 흥미로운 후일담이 등장한다. `경주에 가뭄이 지속되자, 왕릉을 파헤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아 민심이 흉흉했다. 금관이 출토된 날.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조사단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쏟아졌다. 이어 천둥과 번개도 몰려왔다. 겁을 먹은 조사단이 금관을 급히 수습해 상자에 옮겨놓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밝아지고 비가 그쳤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땅 속에 있던 신라 왕의 넋이 노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 천마총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인의 손으로 금관을 발굴한 최초의 고분이기도 하다. 거기서 출토된 금관의 두께는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가장 두껍다. 금의 성분 또한 우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천마총 출토 금관을 국보 188호로 지정했다.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금은 고대에도 귀한 광물로 대접받았다. 신라의 지배층들 역시 금으로 된 장신구를 신분 과시 등의 수단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관과 함께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제 허리띠(국보 190호)와 순금 관모(국보 189호), 화려한 금귀고리 등은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렇다면 천마총에는 누가 묻혀있었을까? 이는 연구자에 따라 견해가 엇갈린다. 22대 지증왕의 능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출토된 유물의 전체적인 성격이 국가의 비약을 드러내고 있으며, 칠기 화염문(火炎文·불꽃무늬) 등이 중국 북위의 영향을 받은 6세기 초의 작품으로 보인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 천문학 지식을 동원해 해마다 달라지는 해돋이 방향을 근거로 “천마총은 20대 자비왕의 유택”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강석경의 책 `능으로 가는 길`에는 이와 관련된 좀 더 상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으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천마도가 그려진 장니를 얹은 말 위에 앉아 순금으로 만든 왕관이나 관모를 쓴 왕과 귀족, 커다란 금귀고리로 화려하고 예쁘게 꾸민 왕비 혹은, 후궁들이 신라의 월성을 유유자적 오가는 장면을 떠올리는 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끝 간 데 없이 자극한다.천마총은 이러한 사람들의 상상 속 궁금증을 일부나마 해소시켜주고자 발굴된 고분의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거리도 없지 않다. 천년 이상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던 고분의 속살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의 위험성은 없을까? 기자의 이런 우려를 불식해준 사람은 박임관 원장이었다. “공개가 결정된 다음부터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했기에 큰 위험은 없다. 내부로 스며드는 습기를 막아야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데 이는 제습시설 확충 등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 다만 장마나 폭우를 대비한 침수 방지책은 보다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천마총에는 동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금관을 쓰고 조용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고분 주인의 유해도 재현돼 있다.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박 원장에게 물었다. “일반인들이 신라 고분의 내부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천마총이다. 재현과 복원이 잘 된 부분과 미흡한 부분으로 나눠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경주 고분의 고유한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를 바로 눈앞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출토 상태가 양호한 여러 가지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천마총의 매력이다.” 이에 덧붙여 박 원장은 “돌무지와 돌무지를 덮은 찰흙과 봉토의 두께 등을 실제 발굴 시 확인된 정보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천마총을 찾아간 날. 대릉원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그 봄볕을 받으며 서너 살 꼬마들이 병아리처럼 종종거렸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아이들 또한 `천마와 황금의 나라`로 천년왕국 신라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우연한 발견, 그러나 빛나는 보물 `금관총`일제강점기 빼앗길 위기 처한 유물경주시민들 십시일반 모아 지켜내1921년 일제강점기. 그해 경주에서는 한국인의 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일반주택을 보수하다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조선총독부가 보관하려 하자, “그 방식은 옳지 않다”며 들고 일어선 경주시민들이 돈을 모아 유물전시관을 축조했고, 그것을 국운이 기울어가던 나라에 기꺼이 기증한 것.경주시 노서동의 금관총은 `한반도 식민지배의 정당성과 근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의 `고적 조사사업` 와중에 예기치 않게 찾게된 고분 중 하나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역사서 `일본 사기` 에 기록된 “경주는 일본에게 예를 바치며 항복한 나라”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1920년대 일본이 주도한 경주 고분의 발굴역사는 `발굴`이라기보다는 `도굴`과 `유물 빼돌리기`에 가까웠다. 이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의 제국주의국가가 식민지에서 행한 문화적 착취의 전형적인 형태였다.하지만, 일본의 의도와 달리 금관총의 발굴 조사작업은 경주 고분에 대한 당대 시민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비록 일본이 주도한 것이었지만, 발굴과정에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출토된 미려한 금관은 “한국은 한때 이처럼 빛나는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던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져다줬고 이는 무장독립운동과는 또 다른 형태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경주학연구원에 따르면 인류사를 통틀어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금관이 발굴된 것은 겨우 10여 건에 불과하다.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레나드 울리(Leonard Woolley)가 찾아낸 수메르 왕릉의 금관, 아프가니스탄 테베 고분의 금관을 제외하면 나머지 금관은 모두 한반도에서 발굴됐다. 현재까지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은 모두 7점. 이만하면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별호가 어색하지 않다.금관이 나왔다고 해서 얻게 된 이름이 금관총이지만 이 고분에선 금관 외에도 순금귀고리, 금제 팔찌와 반지, 모양을 달리하며 빛나는 구슬, 금제 신발, 칼과 갑옷, 화살촉, 말방울, 말띠 장식, 각종 토기와 칠기 등 수만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출토된 금의 양만도 7.5kg. 예술적 가치를 차치한 금 가격만으로도 3억6천만 원에 달한다.비록 입을 가지지 못한 무덤이지만, 금관총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는 듯하다. “수난 속에서도 지속되는 것이 역사다. 그러니, 역사의 엄정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사진제공 구창웅/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5-12

산마늘명이절임, 맛 보면 “바로 이 맛” 감탄

영국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험소설 `보물섬`은 해적이 소년 짐 호스킨에게 보물섬 지도를 건네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적이 있었기에 소년이 주인공이 되고, 보물까지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청정지역 포항 상옥 등 해발 500m 고지서 재배낮과 밤 기온차 커 잎이 두껍고 알싸한 향 강해㈜독도무역 윤성근 대표는 해적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손에 거머쥔 지도를 누구에게도 건네지 않고 주인공이 되어 직접 보물섬을 찾았다.윤 대표의 보물섬 스토리는 26년간의 울릉도 생활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자신을 “울릉도와 독도 간 관광여객선인 삼봉호를 최초로 띄운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관광여객선을 모두 팔고 난 뒤 생계를 고민하던 중 불현듯 울릉도 명이나물이 고갈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산마늘 채취에 대한 규제나 단속이 없어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뜯어가 결국 5년 내 사라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곧 `지도` 역할을 했다. 윤 대표는 지난 2006년 4월 ㈜독도무역을 설립하고 산마늘을 재배해 채취부터, 세척, 절임, 포장, 판매까지 맡았다. 제조 및 저장 가공시설의 규모는 전국 상위 수준에 달하며 해썹(HACCP) 인증까지 받아 지역을 대표하는 강소기업 대열에 올랐다.실제로 윤 대표의 예견은 적중했다. 울릉도 자연산 산마늘 생산량은 지난 2010년 500t, 2011년 350t으로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올해 자연산 명이나물은 100t도 채 되지 않아 `완전 고갈됐다`라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독도무역이 사용하는 산마늘은 포항시 상옥과 학천리, 흥한리 일대에서 재배, 생산된다. 해발 400~500m 고지에서 자라는데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잎이 두껍고 알싸한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그 맛에 대해 윤 대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아무리 맛있다고 거듭 강조해도 직접 먹어봐야 공감할 수 있다. 한 번 맛본 사람들은 `바로 이 맛!`이라고 감탄하며 단골이 된다”고 말했다.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덕분에 나물이 부드럽고 특유의 매운 풍미가 진하다고 덧붙였다.윤 대표는 쌀밥을 주먹밥처럼 작게 뭉쳐 산마늘명이로 감싸 초밥처럼 먹는 방법을 추천했다. 싱싱한 회와 잘 어울리고 장어요리와의 호흡도 환상적이라고.이처럼 맛 좋은 산마늘명이를 만들기까지 그는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4년 이상 기른 뿌리를 3포기씩 심은 다음 1년에 4번 풀 매기 과정을 거친다. 이후 3년이 지나야 산마늘 잎 채취가 가능하다. 나물을 길러 완제품을 손에 얻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해가 갈수록 생산량은 배로 늘어난다. 한 번 기반을 잡아 놓으면 이후엔 비교적 과정이 수월해진다.이제 윤 대표는 소설 `보물섬`의 해적처럼 지도를 건네 줄 사람을 찾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일반 식당에서 제공하는 명이나물의 80%가량이 중국산이다. 국산 산마늘명이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산마늘 재배 농가가 늘어나 국산 나물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사람이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5-12

푸르른 5월 아래 싱그런 동심 가득 펼치다

경북매일신문이 주최해 지난 1일 안동물문화관 광장에서 열린 `2016 경북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경북 북부권)`가 경북 북부 지역 어린이 1천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대회의 백일장 운문 부문에서 김윤현(복주초등 3년) 어린이의 `물`이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산문 부문에서는 권유빈(길주초등 6년) 어린이의 `바쁜 물, 소중한 물`이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백일장 우수상에 류승주 어린이 등의 작품 55점이 선정됐다.이밖에도 이날 참가한 어린이들은 가족·선생님·물 등의 글감으로 어린이 특유의 맑고 천진한 심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저마다 정성껏 다듬어 선보였다.이번 대회의 사생대회 부문에서는 정지윤(성심유치원)·정민경(영호초등 3년)·유현(영남초등 6년) 어린이가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김지우(송현초등 5년) 어린이 등 199명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생대회 참가 어린이들은 이번 대회가 열린 안동물문화관 중심으로 `아름다운 안동댐` `행복한 우리가족` 등을 주제로 순수한 그림작품을 빚어 놓았다.경북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올해 포항에서 23회째 열린 본사의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명실공히 경북 최대규모의 어린이 예술대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특히 이번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우드마커스 미니거울 만들기, 카이로봇으로 머핀 맞추기 등 다채로운 부대 행사와 넷북, 자전거, 축구공 등 푸짐한 행운권 추첨 등의 시간을 갖기도 해 어린이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운문 최우수상-김윤현(복주초등 3년)물물은 맑고 푸르다.초롱초롱 빛난다.오늘도 너와 함께 하루를 시작해.물은 우리의 생명.내 몸속엔 니가 70%오늘도 물에 감사해.물도 늙을까?물도 늙으면 죽을까?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산문 최우수상-권유빈(길주초등 3년)`바쁜 물, 소중한 물`“아이고, 목 말라.”시원하게 물 한잔 마시면 살 것 같다. 이 물이 우리 몸속에서 구석구석 퍼져나가 피와 오줌과 눈물을 만들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물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 그 뿐만 아니라 손이 더러워졌을 때에도 말끔하게 물로 씻으면 된다.그런데 우리가 쓰는 물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우리가 사용하는 수돗물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보이는 강에서 와서 다시 강으로 돌아간다. 깨끗하게 걸러진 강물이 수도관을 타고 졸졸졸.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쏴 쏟아진다. 쓰고 난 물은 하수 처리장으로 가서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깨끗해진 물은 다시 강으로 흘러간다.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너무 흔해서 소중한 걸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마구 더럽히고, 함부로 쓰기도 한다. 그럼, 나는 물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흐르고, 적시고, 녹이는 물 덕분에 내 몸을 뽀득뽀득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릇을 닦을 수 있다. 또한 빨래를 빨고 헹굴 수 있다. 이렇게 물은 우리를 살아있게 해 주고, 더러운 걸 깨끗이 씻어 주고,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가끔씩 여름철이 되면 물총에 물을 가득 채워 동생과 물놀이를 할 때가 있다. 실컷 놀다 보면 어느새 물총에 든 물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사실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장난으로 물을 사용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차라리 이 물로 자라나는 식물에게 물을 주면 싱싱해지는 풀과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햇빛이 뜨거운 무더운 여름날의 소나기는 고마운 손님이다. 뜨거운 땅바닥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물이 열을 만나서 수증기로 변한다. 수증기가 된 물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 빗물, 강물, 바닷물에서 올라간 수증기는 다시 작은 물방울로 바뀐다. 이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면 커다란 구름이 되는데, 구름 속의 물방울들이 커지고 무거워지면 비와 눈이 되어 내린다. 빗물이 되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물은 우리 가까이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는 물이 부족한 나라가 있다고 한다. 이 소중한 물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해 보자. 우리는 밥을 먹고 나면 양치를 한다. 주로 치카치카를 한 후에 흐르는 물에 손으로 물을 받아 입 안을 헹군다. 그럴때는 양치컵을 사용해 보자. 양치질 하는 동안 수도꼭질을 잠그면 엄청난 물이 절약된다고 한다. 샤워기를 끄고, 바가지를 쓰자! 흐르는 물로 샤워를 할 경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물을 사용하게 된다. 큰 통에 물을 받아 놓고 바가지로 몸에 물을 뿌리면, 적은 양으로도 상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물을 아끼기 위해서는 우리 생활에서 조그마한 습관을 한가지씩만이라도 고치면 미래에는 물 때문에 전쟁이 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물이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입상자 명단□ 백일장◇운문부△최우수상 김윤현(복주 3-2)△우수상 류승주(영호 2-3) 김도희(송현 3-4) 전가영(영가 2-3) 강새하(영가 1-2) 최민경(복주 2-2) 김남혁(송현 3-5) 임재현(서부 2-2) 정은솔(용상 1-1) 박진우(영남 6-1) 배민규(길주 3-1) 신예찬(강남 4-3) 김수민(강남 3-4) 박경낭(동부 5-1) 김민석(영호 3-2) 권상우(길주 3-1) 권효연(용상 4-1) 류시영(대구교대안동부설 2-3) 박혜진(영남 1-2) 최형정(서부 2-1) 서채은(풍천풍서 5-1) 김규리(송현 1-5) 송은빈(영남 4-1) 강문성(성심유치원) 최승은(영호 2-7) 서아현(영호 6-2) 금민제(동부 6-1) 이하민(영호 3-1)◇산문부△최우수상 권유빈(길주 3-2)△우수상 이수현(강남 6-6) 권희원(영남 6-3) 김윤지(동부 6-1) 이정민(강남 3-6) 홍희수(영호 3-5) 이가영(길주 3-3) 김은지(풍천풍서 3-1) 이승한(서부 6-3) 박정민(용상 6-1) 김지연(송현 5-1) 이세진(송현 5-3) 김유진(대구교대안동부설 5-3) 이보영(길주 5-4) 서다빈(영호 5-3) 채민서(영남 4-2) 권규진(송현 4-2) 강민정(송현 4-5) 조서진(송현 4-3) 조설민(강남 4-5) 김나은(영가 4-2) 강정서(영호 2-1) 이유진(안동 2-1) 권나휘(영가 2-3) 김효원(송현 2-5) 김가현(영호 1-4) 권소휘(오상유치원) 김지연(은성유치원) 김지현(강남유치원)□ 사생대회 ◇고학년부△최우수상 유 현(영남 6-1)△우수상 김지우(송현 5-2) 임유진(강남 4-6) 유 진(영남 6-2) 윤서연(강남 4-3) 조은영(송현 4-1) 서나희(내성 5-달반) 김미영(길주 5-2) 이채현(송현 4-4) 조민경(서부 6-5) 남경수(와룡 4-1) 송수민(영호 4-7) 강한길(용상 4-3) 김수연(송현 5-1) 정채원(송현 5-1) 윤혜리(영호 4-2) 정예지(강남 4-2) 황성혜(서선 6-1) 김나경(영호 4-1) 강재이(강남 4-5) 김나현(영호 4-7) 강한솔(용상 6-2) 신주영(강남 4-6) 송치헌(용상 5-2) 박규태(안동 5-2) 강재호(강남 4-3) 이윤진(대구교대안동부설 4-3) 권용성(강남 5-2) 장민경(용상 5-3) 임수연(풍천풍서 4-2) 권준형(영호 5-1) 박예은(복주 4-1) 강연지(강남 5-3) 권성용(복주 4-3) 권기대(영남 4-2) 안민준(영남 4-1) 박주원(안동 4-1) 서민경(영호 4-6) 정유민(영남 4-2) 박윤서(강남 4-1) 권기창(복주 4-4) 우지민(강남 4-3) 김초은(송현 4-2) 정유인(복주 4-1) 신지혜(영호 6-4) 성현지(강남 6-4) 우재형(서부 6-1) 김승현(강남 6-4) 엄정윤(용상 5-2) 김경빈(길주 4-3) ◇저학년부△최우수상 정민경(영호 3-7)△우수상 이예원(남후 2-1) 전창민(서부 1-2) 현은채(강남 3-3) 천수림(영호 1-7) 하윤지(용상 3-1) 황수민(송현 2-6) 이서빈(영호 1-1) 전민규(강남 2-1) 우정민(대구교대안동부설 3-3) 정채원(영가 1-1) 김도현(복주 3-3) 김다희(송현 1-3) 황수빈(송현 2-2) 권예은(강남 1-1) 윤성현(강남 1-2) 전부경(용상 3-2) 김경언(송현 3-2) 권민지(길주 2-1) 김경환(송현 1-6) 전예원(서부 3-3) 박세연(강남 2-5) 박지민(영호 2-2) 남유진(와룡 1-1) 김도완(송현 3-1) 임현수(강남 3-4) 김승희(풍산 1-1) 김채현(영남 3-1) 권시경(대구교대안동부설 2-1) 배하은(송현 1-2) 이은구(서부 3-3) 이현숙(길주 3-1) 정민건(서부 3-1) 유지윤(영호 3-2) 조윤채(강남 3-3) 박은혜(안동 3-2) 권서은(복주 3-4) 김재원(풍산 3-1) 김수한(강남 3-7) 지승엽(송현 3-6) 이승엽(강남 3-2) 김혜림(풍산 3-1) 서유정(용상 3-2) 엄태영(안동 3-1) 강휘택(서부 3-5) 심희선(길주 3-1) 박세현(길주 3-4) 박준오(서부 3-5) 정준혁(영남 1-2) 윤성환(강남 1-2) 권성민(복주 1-3) 김승휘(송현 1-5) 지민주(송현 1-6) 오현우(영호 1-4) 김수민(강남 1-1) 권민성(영호 1-6) 박세린(길주 1-4) 강지호(강남 1-3) 유연서(영가 1-3) 정지원(영호 1-7) 김승연(풍산 1-1) 권서윤(영남 1-1) 권나경(강남 1-1) 임휘수(강남 1-4) 최수인(풍천풍서 1-2) 신소연(길주 1-2) 최진우(강남 1-1) 임수빈(풍천풍서 1-2) 박윤지(강남 1-6) 조용훈(송현 1-6) 김수민(서부 2-4) 신규영(강남 2-1) 권나연(송현 2-3) 김나영(강남 2-2) 권휘윤(영남 2-1) 조예슬(영가 2-2) 김수현(영호 2-2) 이승문(길주 2-2) 권나영(복주 2-1) 조현준(강남 2-3) 전우겸(서부 2-3) 김동우(서부 2-2) 손미지(서부 2-4) 권승휘(영가 2-1) 권윤하(길주 2-5) 민다령(영남 2-2) 이서하(강남 2-3) 김지은(송현 2-1) 구혜선(강남 2-6) 박수연(송현 2-6) 김사랑(송현 2-4) ◇유치부△최우수상 정지윤(성심유치원)△우수상 김보경(영재유치원) 서민규(용상병설유치원) 유승찬(상지유치원) 주수빈(상지유치원) 권현준(송현병설유치원) 송수현(성심유치원) 김예은(송현병설유치원) 송도윤(해동사금강유치원) 권대현(해동사금강유치원) 권단비(꿈나무어린이집) 권서윤(용상병설유치원) 윤채원(강남병설유치원) 진여원(성심유치원) 권민지(상지유치원) 엄도예(자연유치원) 우지윤(세잔느어린이집) 김혜린(해동사금강유치원) 남지원(함백어린이집) 정민재(혜성어린이집) 장민교(해동사금강유치원) 류혜원(동산유치원) 홍다연(강남유치원) 정지윤(성심유치원) 김도완(해동사금강유치원) 강경윤(길주병설유치원) 권예인(영남병설유치원) 심현아(해동사금강유치원) 남지민(안동꿈터유치원) 정수민(상지유치원) 강민서(혜성어린이집) 김지민(해동사금강유치원) 전민정(자연유치원) 김규연(꿈빛유치원) 김승현(해동사금강유치원) 황기민(도원어린이집) 신지연(용상병설유치원) 권준엽(영호병설유치원) 이가은(영재유치원) 김관우(예담어린이집) 김정민(안동유치원) 박미소(서부병설유치원) 김연주(해동사금강유치원) 지서영(상지유치원) 임수현(길주병설유치원) 신유주(영가병설유치원) 이하윤(용상제일어린이집) 한윤서(강남병설유치원) 손건영(상지유치원) 유예지(상지유치원) 이승훈(오상유치원) 김채원(자연유치원) 김아민(자연유치원) 김서연(자연유치원) 김나희(해동사금강유치원) 서 익(꿈터유치원) 강지윤(성심유치원) 김주연(예와은어린이집) 방혜원(동산유치원) 임승엽(꿈빛유치원) 신우영(자연유치원) 윤지현(오상유치원) 전민화(해동사금강유치원) 김영준(상지유치원) 조현아(성심유치원) 전사랑(동산유치원) 김승현(송현병설유치원) 정수민(상지유치원)/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5-10

천년 문화유산·자연자원의 `형산8경`, 시너지 극대화

경주인들의 밑바탕에는 천년 왕국 신라의 고도로서 한반도 왕조들의 종주(宗主)라는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형산강 역시 그 발원지는 물론 수계의 대부분을 경주가 품고 있어 그 자존심의 한 기둥이자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훌륭한 공공 자산이 돼 왔다. 반면 강의 하류에 자리잡은 포항의 존재로 인해 형산강의 이용과 보존이라는 양날은 경주에게 늘 큰 부담이 돼 왔다.이 같은 형편에서 경상북도가 중심이 돼 이웃도시 포항과 추진하고 있는 형산강 프로젝트는 강의 상류 도시 경주에 오랜 수고로움에 대한 보답이나 다름 없는 여러 혜택을 기대하게 한다.`역사관광도시`에 `생태도시` 면모 더할 알찬사업 추진체육·역사공원·교육관 등 여가·교육·관광 한 자리에△첫해 421억원 확보 성과포항과 경주를 통털어 형산강 프로젝트에는 올해부터 오는 2024년까지 모두 10년 동안 총 5천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이 가운데 경주시 구간의 사업 규모는 전체 24개, 2천179억원으로 포항 구간의 사업비 3천228억원에 비하면 다소 작다. 하지만 개별 사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사관광도시 경주에 강을 활용한 생태도시의 면모를 더할 수 있을 만한 알찬 사업들로 채워져 있다.특히 모두 10개년 기간의 초기에 완료되는 사업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첫해의 사업비 확보 성과가 421억원으로 포항의 146억여원을 훨씬 넘어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여가공간에 교육기능 더해이 가운데 지역발전특별회계 사업인 `형산강 수상 테마공원`은 경주시 성건동 지점의 형산강 동대교~강정보 구간에 오는 2018년까지 4년간 총 80억원(국비 40, 지방비 40)을 투입한다. 수상테마공원, 생태공원, 숲길 등을 조성하면 카누, 수상자전거, 용선대회장, 펌프바이크 등 수상레저 활동이 가능해진다. `형산강 체육공원`은 황성동 1070번지 일대 시유지를 활용해 올 한해 10억원(국비 3, 지방비 7)을 투입해 풋살장 2면, 족구장 3면, 농구장 1면, 조깅트랙 400m를 설치해 인근 7천여세대의 시민들에게 여가 공간을 제공한다.`형산 에코리움`은 천북면 신당리의 현 에코물센터 인접 부지에 오는 2019년까지 50억원(국비 25, 지방비 25)을 투입해 전시관, 실험실, 체험관, 교육관 등을 설치한다. 이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하수 급속처리기술 관련 특허를 취득한 경주시 에코물센터를 활용해 체계화된 물 교육관을 구축한다는 취지이다. 특히 일본 도쿄 오다이바 물과학관의 사례처럼 중학교 자유학기제의 전면시행에 따른 체험프로그램 운영으로 물의 중요성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형산강 상생로드`는 강동면 유금리~양동리 일원에 2017년까지 28억원(도비 14, 시비 14)을 들여 자전거도로 5km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형산강 역사문화관광공원`은 강동면 유금리 국당2교 하류에 오는 2018년까지 19억원(국비 9.5, 지방비 9.5)을 투입해 형산강 관광안내소, 자전거 편의시설, 역사문화광장 등을 조성한다. 이를 통해 경주의 역사문화와 포항의 해양 관광객이 증가하는 현실에 맞춰 포항 해맞이공원~포항운하~부조장터~경주 동강서원~역사문화관광공원~양동마을에 이르는 관광벨트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주요 사업내용은 관광안내소, 자전거 편의시설 등 형산강 관광편의시설과 형산강 경관구(승지, 경, 곡) 관광안내도, 형산 8향 디오라마 등 형산강관광안내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역사문화미니어쳐, 대지 조형미술, 접경권 거점공원화 등 역사문화광장의 기능도 겸하게 된다.△`형산8경`도 체계화국토연구원의 기본구상용역으로 실마리가 잡힌 `형산강 경관구`(형산강팔경) 공동사업 협력도 기대를 모은다. 이 사업은 포항·경주 경계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자원을 활용해 형산강 경관구를 지정·정비함으로써 관광객 유입 및 상생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이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경북정책연구원이 연구용역을 완료한 결과 형산강 8경을 선정했다. 구체적으로 포항 구간은 영일대, 포항운하, 부조장이, 경주 구간은 양동마을, 금장대, 너울교(보문호), 월정교, 삼릉솔숲이 각각 선정됐다. 앞으로 포항과 경주시는 통일성 있는 8경 안내판 제작을 위한 업무 협의를 통해 관광안내 책자를 제작하고 각종 행사에서 홍보를 추진한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형산강을 중심으로 한 경주와 포항의 새로운 협력 시대를 맞아 형산강 프로젝트를 역사문화와 생태관광을 조화시키는 기회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경주·포항 행정협의회 개최'수질오염사고 관리시스템 구축' 등 상황보고7대 프로젝트 50여 과제 발굴… 421억 확보지난 4일 포항시청에서 열린 경주포항행정협의회는 형산강 프로젝트의 사업 성과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최양식 경주시장과 이강덕 포항시장을 중심으로 한 두 도시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의 상당 부분은 사업의 주요 추진상황을 보고하고 앞으로 추진동력을 추가 확보하는 방안을 논의하는데 맞춰졌다.보고를 맡은 포항시 간부는 우선 지역발전의 창조모델로서`형산강 프로젝트`를 가시화함으로써 형산강 그린프로젝트, 형산강 리버로드, 형산강 컬처트레일, 형산강 호국벨트, 형산강 환경생태벨트, 형산 사이언스밸리, 세계문화융성복합단지 등 7대 프로젝트, 50여 과제를 발굴했으며 올해 24개 사업에 421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포항시는 또 포항·경주 형산강 상생로드의 조기 개설을 위해 지난 3일 착공한 포항 구간을 오는 9월까지 조기 준공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포항-경주 간의 `상생 문화숲길`을 조성해 포항의 소형산-중명생태공원-운제산-오어사-경주 무장산(무장봉)-덕동호 둘레길을 연결시키고 안내판도 공동 제작하겠다고 밝혔다.이날 보고된 `형산강 수질오염사고 위기관리시스템 구축`사업도 눈길을 끌었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내년까지 국비 10억원을 투입해 포항과 경주의 형산강 권역 2곳에 국가 자동측정망을 설치, 운영해 수위 측정은 물론 페놀과 중금속 등 수질오염사고 예·경보 시스템을 갖춘다는 계획이다.`형산강 생태계 조사 및 생태지도 제작`도 추진된다. 보고에 따르면 이 지도는 형산강의 유역계획 및 관리, 교육프로그램, 학술 등 다목적으로 활용될 계획이다.그동안 형산강 유역의 다양한 사업 계획을 위해서는 자연환경의 현황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기본적 현황조사 자료가 미비해 환경계획을 수립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사업이 시행되면 하천생태 전문기관의 현장조사를 통해 식생, 포유류, 조류, 어류, 양서파충류, 곤충, 수질, 빛, 바람, 물 등 하천의 효율적인 환경관리에 필요한 주제도별 GIS-DB가 구축된다. 이후 오픈형 Web-GIS 운영 및 스마트 어플 보급, 책자 등 형태의 생태지도 작성, 주제별 도면, 테마별 스토리텔링 제작 등이 가능해진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5-09

깨끗한 물과 기름진 흙… 이유있는 `고령딸기 전성시대`

고령 출신으로 33년간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정득상(58·운수면)씨. 짧지 않은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이제 막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정 씨의 곁에 고령의 특산물인 `향기로운 보물`이 발갛게 빛나고 있으니 바로 딸기다.지난해 명예퇴직한 정 씨는 `내 사랑 딸기농원 대표`라는 바뀐 명함을 가지게 됐다.“과학영농을 실현해 일손은 줄이면서도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5천600여㎡의 딸기밭을 어린이 딸기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앞으로 농원의 재배시설을 보다 과학화·고급화해 딸기체험 전문공간인 동시에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하는 힐링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정 씨는 “공무원 시절보다 수입이 줄었지만 꿈꾸던 2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1989년 도입 `전조재배 기술`로 대량생산꿀벌도 찾게하는 유기농법으로 품질 제고연평균 수백t 수출… 농가소득 효자로실제로 농원엔 아이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방문해 고령 딸기의 달콤한 맛에 매료되곤 한다.“대가야의 유적지인 고령엔 많은 관광상품이 존재한다. 딸기도 그중 하나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여 전한 정득상 씨.고령군이 내세워 자랑하는 특산물 중의 하나인 딸기. 딸기의 역사는 저 멀리 고대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신 프리카에게 바치던 과일이 바로 딸기였다. 성모 마리아 역시 딸기를 즐겼다고 한다.이와 관련된 재밌는 전설도 전해온다. 딸기를 너무나 좋아한 한 여신은 천국을 방문하는 사람의 입술에 딸기즙이 묻어 있으면, 그가 딸기를 훔친 것으로 여기고 지옥으로 보냈다. 맛있는 것을 양보하지 못하는 건 인간이나 신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재배종 딸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생하던 몇몇의 야생종을 교배시킨 것으로, 이를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그렇다면, 고령에서 딸기 재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고령군청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973년이 고령 딸기 재배의 역사가 시작된 해다. 그해 쌍림면 안림리 600여 평 밭에 딸기모종이 심어졌다. 이후 1980년부터 `반촉성재배`가 일반화됐고, 1982년에는 쌍림면 곽해석 씨 등이 촉성재배를 시작했다.198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전조재배 기술`은 딸기 수확량을 대폭 늘였고, 이때부터 `고령 딸기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더불어 수출의 길도 열렸다.1994년 시작된 딸기 수출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됐다. 현재도 고령은 연평균 수십에서 수백 톤의 딸기를 수출한다. 이는 농가소득 증대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주말 두 딸과 농장에서 딸기수확체험을 한 이혜미(대구시) 씨는 “딸기가 재배되는 현장에서 직접 딸기를 따보는 경험이라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맛도 새콤달콤 해서 나도 맛있게 먹었다”는 이 씨.고령에서 생산되는 딸기는 맛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 딸기에 함유된 펙틴(pectin)은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쿠엔산과 포도당 함량이 높아 회복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영양을 보충해주기도 한다.동맥경화와 변비에도 효과를 보이는 딸기는 칼로리와 지방 함유량이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또한 “비타민C 보충에는 딸기만한 과일이 없다”는 게 고령군청 관계자의 설명.고령 딸기가 오늘날의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딸기 재배농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가야산 줄기 미숭산과 만대산의 깨끗한 물과 일대의 기름진 흙이 고령 딸기의 맛을 알렸다. 유기농법에 의한 재배도 품질 향상의 요인이 돼주었다”고.여기에 농약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꿀벌을 통해 수정을 진행하는 것도 고령 딸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과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고령군의 딸기 재배면적은 경상북도에서는 1위(30%), 전국적으로 보자면 15위(약 3%)다. 하지만, 한국 농촌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령화로 인해 딸기농사를 포기하는 가구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1년 619가구(재배면적 235.8ha)이던 딸기 재배농가는 2005년에는 549가구로 줄었고, 이어 2010년에도 내리막길을 걸어 498가구(206ha)로 감소했다. 지난해 고령의 딸기 재배농가는 385가구로 재배면적은 180ha.고령군청은 이 같은 딸기농가 감소추세를 “노인가구가 많아지면서 영농포기를 선언하는 집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딸기 재배 중심지역인 쌍림면이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대가야읍과 덕곡면은 소폭이나마 재배농가가 늘었다”는 게 군청의 이어지는 부연.노령화로 인한 영농포기 농가 늘어노동력 절감 가능한 고설재배법이 대안딸기체험관광 등 고부가가치 산업 변신그렇다면 줄어드는 딸기 재배농가를 위한 미래의 대안은 없을까? 경북 농업기술원과 고령군청 등에 따르면 노동집약적인 딸기 재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고설재배법`과 딸기관광체험의 확산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고설재배법이란 철재 파이프와 상토(모종을 가꾸는 온상에 사용되는 토양) 등을 이용한 벤치시설에서 딸기를 기르는 방법으로, 딸기 재배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쪼그려 앉아서가 아닌 서서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 재배법이다. 이를 통해 노동력과 시간은 절감하면서, 품질과 수확량은 획기적으로 높였다.딸기체험관광은 딸기 농사를 단순한 1차산업에서 고부가가치의 혁신적인 산업으로 변화시켰다. 대구 등 인근 대도시의 가족단위 나들이객을 딸기농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체험관광은 대가야박물관과 지산동 고분군 등 고령 문화유적과의 연계관광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다.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척 한 사람은 “거기서 딸기를 먹어보고는, 한국의 딸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사람의 몸과 사람이 살아온 땅은 본래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란 이럴 때 사용되는 게 아닐까.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고령 딸기의 달콤한 향기가 바로 곁에서 풍겨오는 듯하다. 낙동강변 사질양토가 품어 기른 개진감자高녹말함유량에 입소문으로 유명세`경북우수농산물` 상표까지 획득군 블로그서 다양한 요리법 소개저 멀리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칠레와 페루. 그곳 안데스산맥에서 태어나 경북 고령군 개진면으로 이주해 와서 이름을 드높이는 농작물이 있다. 술을 만드는 알코올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1800년대 중반 극심했던 `아일랜드 대기근` 때는 수백 만 명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고, 구하기도 한 이것은 뭘까? 그렇다. 바로 감자다.낙동강변의 사질양토(沙質壤土·진흙이 비교적 적게 섞인 보드라운 흙)에서 재배되는 까닭에 씨알이 굵고 깨끗한 흰색을 드러내는 고령 개진감자는 녹말 함유량이 높아 전국에서 최고 품질로 자타가 공인한 농작물이다.고령군 개진면과 성산면 등의 지역은 낙동강 동쪽 경계를 따라 곡류하는 강물이 형성시킨 충적토가 넓은 평야를 만들어냈다. 개진감자는 바로 이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다. 외부적 조건이 감자 재배에 그저 그만인 지역인 것.농업전문가들에 의하면 “큰 하천이나 강의 하류지역은 유기질이 풍부하고, 토양입자가 미세해 감자와 양파, 마늘 등의 재배에 최적지”라고 한다. 여기에 고령은 구릉지역으로 이루어져있어 일조량이 풍부하고, 내륙이라 일교차가 큰 것도 감자가 제 맛을 내기 위한 최상의 조건에 부합한다.고령에서 감자가 주로 재배되는 곳은 개진면과 성산면, 우곡면이다. 이들 지역은 낙동강 연안으로 고령의 동쪽이며 대구시 달성군과 인접해있다. 품질 좋은 감자를 생산하는 이들 지역을 홍보해 판로를 개척해주는 일등공신은 `고령군 블로그`. 고령에서 수확된 감자의 특징과 효능, 성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블로그는 감자를 이용한 각종 요리도 소개하고 있어 방문자들에게 인기다.`들깨감자옹심이`와 `감자영양밥`은 고령군이 개발한 `대가야진찬`의 주요 메뉴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리의 주요재료인 고령 감자는 2005년 `경북우수농산물` 상표를 획득했다. 이후 군은 농가의 소득증대에 보탬이 되고자 집하장 및 자동선별시설 설치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개진면과 성산면 등에서 재배되는 감자는 먼저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탔다. `고령 감자 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TV 등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18.5%)”는 답변보다, “먼저 먹어본 주위 사람의 평가를 들었다”는 대답이 42.0%로 훨씬 높게 나타난 것.감자는 철분과 비타민C가 풍부하고, 칼륨과 식이섬유도 듬뿍 담고 있는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이다. 오늘 저녁엔 `건강밥상`을 떠올리며 고령 개진감자로 감자국, 감자조림, 감자볶음 등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전병휴·홍성식기자

2016-05-09

국립한국문학관, 뿌리깊은 문학의 고장 `文鄕 대구`로

대구시와 지역 문학계는 물론 시민까지 가세해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에 총력전으로 나서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도서관, 공적기록관, 박물관의 기능이 통합된 라키비움(Larchiveum)의 형태로 운영되는 한국문학관은 2019년까지 국비 446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지난해 도종환(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문학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격화되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상반기에 공모를 해 건립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인과 문학 유산을 수집·관리·보존·조사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한국문학관 유치는 근현대 문학 100년 역사를 집대성하고 통합관리하는 전초 기지를 마련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창작 지원과 다양한 지역 발전시설과의 연계가 가능해 대구시를 비롯해 전국 10여개 지자체에서 유치전에 뛰어드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지역 문학·예술계 손잡고 대구유치 100만명 서명운동대구예술창작촌 건립 추진 등`문학의 관광명소` 조성 계획□ 국립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 당위성대구시와 지역 문학계는 문학의 발생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향의 도시인 대구에 한국문학관이 유치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산실이 경주이고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도 경북 군위의 인각사이다.일제강점기에는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이장희, 백기만, 김동리 등 지역출신 문인을 비롯해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항일저항 문인들이 활동한 곳도 대구다.1945년 전국 최초로 죽순시인구락부가 설립되고 영남시조문학회, 영남수필, 대구아동문학회 등 장르별 동인들이 결성됐으며, `아동`, `죽순` 등 잡지가 1946년 잇따라 대구에서 창간됐다.또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비가 1948년 3월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졌다.6·25전쟁 당시에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대구에서 주 무대로 활동했으며, 이들의 주 활동 무대인 찻집과 술집 등이 향촌동에 아직 현존하고 있어 문인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당시 대구문인과 피란문인들이 `문총구국대`, `육군종군작가단`, `공군종군문인단`을 결성해 전선시첩, 전선문학, 창공, 공군순보 등을 발간했다. 전쟁 중인 1952년에는 최초로 이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이름을 딴 전문문예교육기관인 `상고예술학원`이 문을 열어 조지훈·구상·김동리·김동진·이은상·이효상·정비석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활동했다.국내 문화시설의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등 편중현상이 심해 문화시설의 지방 분산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대구는 서울을 제외하면 문인이 가장 많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국립 대구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국립문화시설이 없고 문화시설 기반은 대구의 경우 17개 광역시·도 중 13위에 그치고 있다.□ 문학관 연계 `민족시인 거리` 추진지역 문화계는 물론 시민까지 한국문학관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대구시는 권영진 시장이 지난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 대구 방문 때 한국문학관 대구 건립을 건의했다.대구시는 중구 향촌동 대구문학관과 이상화 고택, 이육사 고택 등으로 이어지는 `민족시인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거리가 조성되면 인근 곳곳에 대구가 배출한 문인들을 알리는 다양한 시설도 마련할 계획이다.대구 문인들도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에 힘을 모으고 있다.대구문인협회와 대구예총, 경북문협, 경북예총은 지난 3월말부터 2·28기념공원 등 도심에서 국립문학관 대구 유치 1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서명에 나섰으며, 시민들의 반응도 뜨겁다.지난달 1일에는 지역문인, 예술인, 교수, 언론인, 정치인 등으로 `국립 한국문학관 대구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4·13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의원 출마자를 대상으로 선거공약 채택을 건의했으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는 선거 기간 중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유치에 힘을 싣기도 했다.□ 국립 한국문학관의 세계화대구에는 국립 한국문학관 입지로 접근성이 뛰어난 두류공원 일대와 경북도청 후적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두류공원 일대에 한국문학관이 유치되면 인근의 대구문화예술회관과 코오롱야외음악당, 예타 중인 CT공연플렉스파크, 출판산업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관광 명소로 발전이 가능하다.또 인근에 2016~2020년까지 사업비 400억원을 투입하는 대구 예술창작촌 건립을 연계할 경우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예술창작전진기지가 만들어져 향후 한국은 물론 세계 문학의 확장성과 문학을 통한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이와 함께 한국 문학축제는 물론 세계적 문학축제 개최도 가능하고 인근의 83타워와 연계하면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향유하는 것은 물론 관광도 함께 즐길수 있는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성장 가능성도 높다.□ 유치위 출범·포럼 열고 유치 활동 본격화지난 4월21일에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유치위원회 출범식을 가졌고 22일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포럼도 개최했다.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과 신상철 전 대구시교육감이, 상임위원장은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 류형우 대구예술인총연합회장, 김주한 경북문인협회장, 이병국 경북예술인총연합회장이, 대외협력위원장에는 이상규 경북대 교수가 각각 선임됐다.추진위는 출범식에서 대구유치선언문을 통해 “대구는 고대문학은 물론 근·현대문학의 산실 중 한 곳이다”며 “국토균형발전과 문화균형 면에서 대구에 반드시 한국문학관이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22일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지역 문인과 문화예술인,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를 위한 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은 `대구문학의 역사성과 그 미래` 등을 주제로 장호병 대구문협회장이 진행을 맡아 이상규 경북대 교수, 오동욱 대경연구원 박사 등이 발제하고 김용락 민족작가회장, 김선굉 전 대구시인협회장이 토론을 벌였다.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상희 전 장관은 “대구는 근·현대 문학사적 역사성과 차지하는 비중에서 대구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며,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성이 우수한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망 구축돼 대구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지다”며 “여기에 시·도민들의 뜨거운 유치열기를 더해 국립한국문학관을 반드시 유치할 수 있도록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나가겠다”고 밝혔다.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는 근현대문학의 본향으로서 역사성과 지리적으로 가장 최적지”라며 “대한민국 문학사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건립된다면 대구시는 전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문화예술창작전진기지가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6-05-04

30년 전통 가장 곰탕다운 소머리 곰탕

지난해 겨울 무렵 “우리 회사 근처에 괜찮은 곰탕집이 생겼다”라는 선배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해(年)가 넘어가고 계절도 바뀌었지만, 그 곰탕집에 가봤느냐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가 하나둘 늘어났다. 냉철한 시각만큼이나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기자들의 추천이 많아진 만큼 언제 한 번 가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사실 곰탕이 거기서 거기, 별반 다르겠나 싶었다. 하지만 직접 `서울곰탕`의 소머리곰탕을 먹고 나서야 `이 집은 꼭 소개해야겠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 품질의 곰탕 한 그릇이라면, 독자들과 공유하는 게 마땅하다고 판단했다.북구 중앙로의 한일냉면 식당에서 포항운하 방면으로 50m가량 걸어가다 보면 크고 눈에 띄는 간판 집이 바로 `서울곰탕`식당이다. 죽도시장 안에서 운영하다 지난해 6월께 이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주변 `터줏대감` 식당들보다 비교적 간판이 깨끗한 이유다.첫인상은 일반 곰탕집과 다르지 않다. 내부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집 대표메뉴인 소머리곰탕은 그동안 맛본 곰탕과 무늬는 같지만 결이 다르다.이 집 곰탕의 비법은 소머리고기에 있다. 경북대구한우협동조합(경산 한우왕)의 한우 소머리가 곰탕의 주재료인데, 순수 한우임을 증명하는 현수막이 식당 내부에 번듯이 걸려 있다.엄선한 국내 한우머리를 우려낸 국물은 과하게 진하거나 혀끝에 텁텁한 여운을 남기지 않고 말끔한 것이 특징이다. 적당히 맑으면서 고소한 풍미를 전하는 개운한 뒷맛은 단골들을 새 터전으로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비결이다.곰탕에 넉넉히 담긴 머리고기야 말로 일품이다. 일단 `특곰탕`을 주문하지 않아도 고기가 무척 많다. 국물 반 건더기 반이다. 보통 곰탕 한 그릇을 먹다 보면 고기는 중반부쯤 사라지고 끝자락엔 국물만 남아 후루룩 마시는 일이 다반산데, 이 집 소머리곰탕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국물에 고기를 곁들어 뜰 수 있다. 그만큼 고기 양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한눈에 봐도 윤기와 탄력을 자랑하는 소머리고기는 입안에 들어왔을 때 그 매력을 제대로 뽐낸다. 듬성듬성 크게 썰어 씹는 재미까지 있다. 이렇게 고기가 쫄깃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이 맛에 매일 `밥 먹듯` 찾아오는 단골이 있다고 한다. 곰탕 속 고기가 이 집 수육 맛까지 보장해준다.맛도 맛이지만, 소머리고기의 효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방이 적고 콜라겐, 엘라스틴 등이 풍부해 관절 기능 개선을 도움을 준다. 피로회복은 물론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어 건강기능식품이 따로 없다.서울곰탕 권향옥 사장은 “반찬을 모두 직접 만들고, 곰탕 역시 최고의 재료로 최상의 맛을 내고자 정성을 쏟는다”라며 “군더더기 없이 가장 곰탕다운 곰탕을 만들고자 본연의 맛을 내는데 충실하고자 30년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고 말했다./김혜영기자hykim@kbmaeil.com

2016-05-04

송도 수상레저타운·연일 상생로드 건설 등 남구발전 재도약

지난 2015년은 포항과 경주, 두 도시가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형산강을 위해 함께 손을 맞잡고 원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상생발전 기본구상 연구용역`을 추진, 완료했다는 점에서 사업 원년의 해였다. 앞선 2014년은 10월을 전후해 사업이 착상 단계의 `맹아`(萌芽)의 시기였다. 2016년은 `형산강 프로젝트`의 구체적 사업 시행을 위한 첫 예산이 확보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간적 장소로 머물렀던 형산강이 두 도시의 공동 발전권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도약의 해라고 부를 만 하다. 본지는 2회에 걸쳐 각각 포항시와 경주시가 추진 중인 구간별 형산강 사업의 내용을 살펴본다.11개 사업 146억 우선 확보… 첫단추 `무난`송도·유강리 등 남구지역에 굵직한 사업추진효자 하천정비사업, 경주 침수피해도 해결돼▲총 10개년 사업의 `첫 단추`포항과 경주를 가로 질러 흐르는 형산강 63.34km를 중심으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에 걸쳐 형산강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산은 총 5천억 규모이다. 이 가운데 포항 구간은 경주와의 공동사업을 포함하면 7대 개별 프로젝트에 18개 사업, 예산은 3천228억원이 계획 중이다.포항시에 따르면 앞서 경북도와 두 지자체는 지난 2014년 10월 프로젝트 추진 준비에 착수해 전담팀을 구성하고 공동 실무협의회를 거듭했다. 이어 2015년 2월 12일 포항경주상생협력교류회의 `형산강 프로젝트`협의를 거쳐 12월에는 국토연구원의 `형산강지역 상생발전 기본구상연구`외에 4건의 개별용역이 마무리됐다.이를 밑그림으로 도와 두개 시가 추진해온 사업 역량의 첫 시험대는 2016년 국비 확보 결과였다. 포항은 일단 11개 사업에 모두 146억4천만원을 확보함으로써 `첫 단추`로는 무난하다는 평가이다. 사업들을 국·도·시비로 구분하면 `형산스마트미디어센터`는 일반국비 10억원을 확보했다. 지역발전특별회계는 올해 4개 사업, 74억원으로 수상레저타운(30억), 에코생태탐방로(4억), 형산 송도솔밭 도시숲(30억), 형산강 랜드마크(10억) 등이다.도비는 4개 사업, 17억4천만원으로 형산강 상생로드(10억), 학도의용군 호국문화길(4억), 해상실크로드 형산강(2억9천), 형산강 클린데이 행사(5천만) 등이다.이밖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2개 사업, 45억원도 관심을 끈다. 효자1지구(연일읍), 효자2지구(경주 강동~포항 연일), 형산강 상생공도교 효자1지구 실시설계 요구 등을 대상으로 한다.▲송도동 사업 효과 기대돼올해 예산 확보를 통해 사업효과가 특히 기대되는 지역은 포항 남구 송도동이다. 그동안 포스코제철소로 인한 해수욕장 황폐화와 이후 슬럼화의 오랜 침체기가 보상을 받기라도 하듯 굵직한 사업이 눈에 띈다. 형산강 수상레저타운은 2017년까지 해도동~송도동 형산강변에 총 90억원을 들여 2층 수상레저타운, 계류장과 푼툰 등 부대시설, 수상스키 등 수상레저장비를 갖추고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전략이다. 형산 송도 솔밭 도시숲 조성사업은 내년까지 전체 송림 32ha 중 시유림 23ha에 숲속광장 등 도시숲을 조성해 경북 대표 도심 숲 관광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연일읍 유강리와 중명리 일대도 대표적인 프로젝트 수혜 지역이다. 상생로드 조성사업은 오는 6월 공사를 발주하고 연말까지 20억원을 투입해 시 경계지점인 유강리 2.5km에 자전거 도로를 조성한다. 에코생태 탐방로 조성사업은 멸종위기 1급 황조롱이 등 조류 월동지의 생태자원을 활용해 중명리와 유강리 일원에 탐방로 4km, 생태환경전망대 2곳 등을 설치한다.상생공도교 사업도 관심의 대상이다. 부산국토청이 주관해 오는 2020년까지 국비 150억원을 투입해 형산강을 가로지르는 400m의 교량을 설치, 조선 3대 시장이었던 연일부조장의 역사자원을 되살려 생태와 문화를 아우르는 동해안권 테마관광지화 한다는 전략이다. 각각 효자 1지구와 2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은 치수를 통한 경주시와의 상생 협력 효과가 두드러진다.하구의 형산강 폭을 확장해 경주 안강 일대의 침수피해를 해결하려면 하구에 위치한 포항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따라서 강 하구의 둔치를 활용해 주민 편의를 향상시킨다는 목표이다. 특히 외팔교 일대 협착부 900m를 확장하는 댓가로 부산청은 포항시의 취수원을 이설하고 수중보도 가동보로 교체해 상수원을 개선하는 당근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형산강 프로젝트는 포항과 경주가 전례 없는 우호협력을 바탕으로 형산강을 `생명과 문화의 강`으로 개발한다는 전략”이라며 “국가재정난으로 신규 개발사업 추진이 힘든 상황에서 경북은 물론 국내 지자체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만한 지역발전의 창조모델로 구축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형산강 기본구상보고서` 어떤 내용 담고 있나?상생·교류·생태 등 8가지 테마, 8대 전략경북도는 지난해 상반기 국토연구원(연구책임 김선희 선임연구위원)에 형산강사업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발주했다.연구원은 이후 두 지자체 관계자는 물론 단행본으로는 유일한 종합인문지리지인 `형산강`(2002년)을 발간한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등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기본 조사를 실시, 2015년 7월에는 경주에서 전문가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용역의 명칭을 `형산강지역 상생발전 기본구상 연구`로 개편, 지난해 12월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연구원은 연구의 기본방향을 포항과 경주 등 △상하류의 상생발전 △역사문화 복원 △환경생태 보전 △경제활성화와 신산업화 등에 맞췄다. 또 기존의 형산강 사업들이 개별적으로 추진돼 하천 유지 용수 부족 등 국가하천으로서 환경생태적 자연성이 미흡하며 강 접근성이 부족하고 수변공간 접근로가 단절돼 있는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연구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참고할 국내 사례로 금강 EH 투어, 낙동강 프로젝트, 백두대간 영서 에코힐링벨트화, 중랑천 녹색문화벨트 조성,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 1400년-백제 숨결 따라 한걸음씩 등을 제시했다.해외는 프랑스의 세느강, 루아르강, 독일 엠셔강, 미국 윌라멧강, 일본 치쿠고강, 시민토강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상생, 교류, 호국, 문화유산, 생태복원, 방재, 친수 등 8가지 테마를 정하고 8대 전략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역사문화는 상생(상생벨트 조성), 교류(생활문화 교류), 호국(평화벨트 구축), 문화유산(세계유산문화융성복합단지) △환경생태는 생태복원, 방재(유역통합관리), 친수(워터프런트 정비) △산업은 과학산업(형산 사이언스벨리 육성) 등의 내용이다.국토연구원은 개별 사업의 개발 및 추진성과를 높이기 위해 `형산강 지역상생발전 선도사업의 선정`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그 선정기준으로 △미래발전 비전과의 부합성 △지역현안 해소 및 주민 체감도가 높은 사업 △투자 대비 지역 파급효과가 높고 환경훼손이 적은 사업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모니터링 계획의 중요성도 강조, 경북도와 포항·경주 등 관 조직으로는 상생발전 전담추진기구를, 민관 조직으로는 민관협력추진단과 시민모니터링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6-05-02

主山 품에 고이 안긴 700여기 무덤은 살아있는 야외박물관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主山)에 높이를 달리하며 솟아난 고분들. 5월 햇살 아래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낸 700여 기의 무덤은 보는 이를 나른하게 압도한다. `나른한 압도`란 반어(反語) 아니면 역설이다. 어법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지산동 고분군`을 설명하기엔 이만한 표현도 없을 듯하다.취재를 위해 고령을 찾았던 날. 봄볕은 옛사람의 유택(幽宅) 곁에 누워 평화로운 낮잠에 빠져들고 싶을 정도로 나른했다. 능선을 따라 때론 촘촘하게, 때론 듬성듬성 자리한 수백 개의 무덤 속에 담긴 갖가지 개인적 사연을 상상하는 일은 기자의 능력 밖이기에 막막했다. `개인사의 총체`라 할 역사의 무게에 압도되는 순간이었다. 대가야읍을 병풍인양 감싸고 있는 주산의 남쪽. 고대왕국 대가야의 흥망과 부침을 보여주듯 웅장한 크기로 조성된 능묘(墓)들. 한국 최초로 발굴된 순장 왕릉인 지산동 44호 고분과 45호 고분. 그 일대엔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이 세상사 시름을 잊고 꿈도 없는 잠에 빠져있다.“이곳은 대가야 시대에 만들어진 최대의 고분군으로, 1600여 년 전 제작된 독특한 형태의 토기와 철기, 말갖춤(말을 부릴 때 쓰는 도구)을 비롯해 왕이 사용한 금관과 금귀고리 등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된 지역”이라는 게 대가야박물관 정동락 학예담당관의 설명이다.44·45호 고분은 한국최초 발굴 순장왕릉돌덧널무덤까지 2만기 이상 무덤 존재장기리 암각화 등은 암각화 연구의 효시왕릉전시관·우륵박물관 등 테마별 구성`대가야박물관` 고대왕국 역사문화 한눈에□대가야 왕족의 공동묘지… 순장풍습 확인되기도통상 `삼국시대`라 하면 고구려, 신라, 백제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산동 고분군의 규모와 미려한 출토 유물들은 대가야를 `또 하나의 고대왕국`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2013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지산동 고분군이 등재된 것은 이러한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얼마 전 고령군은 학술기관에 이 지역에 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700여 기의 고분 외에,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돌덧널무덤(돌로 네 벽을 쌓은 형태의 무덤)까지 포함하면 무려 2만 기가 넘는 선인들의 유택이 지산동 고분군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쉽게 이야기하면 왕과 귀족들이 영원한 안식처로 택한 대가야의 공동묘지였던 셈이다.이에 관해 대가야박물관 손정미 학예사는 “지름 40m 이상의 고분이 1기, 30~40m 사이가 5기, 20~30m 사이가 13기 정도로 조사됐다. 규모가 큰 고분엔 왕과 왕족이 묻혀 있을 것이고, 다소 작은 봉분 아래에는 귀족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서기 400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대가야가 멸망한 562년까지 조성된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순장(殉葬·지배계급이 사망하면 그와 관련된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다.정 학예담당관은 지산동 고분군 중 대가야의 순장 풍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44호 고분을 지목했다. “왕이 묻힌 가운데 돌방 주위로 창고로 보이는 돌방 2개가 확인되고, 주변에 32개의 순장 돌덧널이 배치돼 있다. 40여 명이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순장묘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된다.21세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야만에 가깝지만, 대가야 외에도 세계 각처에 존재했던 여러 고대국가가 순장의 풍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장기리 암각화와 고령향교 거쳐 대가야박물관으로1971년 발견돼 `암각화(巖刻畵)`라는 단어를 한국에 알린 장기리 암각화는 고령군이 간직한 또 하나의 문화적 보물이다. 바위에 그림이나 도형을 새기거나 그린 암각화는 구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종교의식 등을 짐작하게 해주는 사료다.“장기리 암각화를 필두로 안화리 암각화, 지산동 30호 고분 개석 암각화, 봉평리 암각화 등 고령군 4개 장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암각화는 문헌연구가 어려운 시대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령은 암각화의 고장”이라고 손 학예사가 부연했다.고령은 대가야의 정치적 중심지인 동시에 유학 교육의 요람이기도 했다. 대가야읍의 연조리에 있는 고령향교가 이를 말해준다. 주산의 기세가 부드럽게 꺾이는 위치에 들어선 고령향교. 그 자리는 애초에 왕실 건물이 있던 곳이었다. 이후 대가야가 사라지면서 왕궁 터였던 위치에 물산사라는 이름의 사찰을 지었다. 이는 망국의 한을 품고 살아가는 대가야 사람들을 염두에 둔 신라의 유화책 중 하나이기도 했다.불교국가에 가까웠던 고려시대까지는 번성한 절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물산사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왕조는 물산사 자리에 향교를 지어 유학자들을 양성하게 했다. 고령향교는 끊임없이 출렁여 온 역사의 흐름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지산동 고분군과 장기리 암각화, 고령향교를 둘러봤다면 이제 대가야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길 차례다.주산 기슭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은 2000년 가을에 개관했다. 고대왕국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최대 규모의 순장묘 지산동 44호 고분을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 악성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우륵박물관`으로 나눠 구성한 것이 이채롭다.경남 사천시에서 2시간을 달려 박물관을 찾은 김정단(25·사회복지사) 씨와 신학범(34) 씨는 “1년에 한 번쯤 삼천포사회복지관 원생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대가야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전시가 인상 깊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신 씨는 “주산 능선을 따라 들어선 고분 속 왕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웃었다.이처럼 많은 역사적 유산과 양질의 문화 인프라를 가진 고령군. 가정의 달인 5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준비하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다면 고령으로의 역사·문화 답사여행을 권한다. 문(文)과 예(藝)의 향기 스민 문화재들지산동 고분군과 주산성, 장기리 암각화와 대가야 궁성지 외에도 고령에는 각종 문화재와 민속자료들이 산재해 있다. 이는 고령군이 문향(文鄕)인 동시에 예향(藝鄕)임을 말해주는 증거물이다.보물과 사적을 포함한 국가지정 문화재 10여 개, 민속자료와 기념물을 망라한 경북도지정 문화재 11개 등 고령에서는 모두 30개의 사적과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다. 산책하듯 걸으며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에 다름없다는 이야기. 그 중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둘러볼 만한 것들을 소개한다.지산리 당간지주·반룡사 다층석탑 등 30개의 사적과 문화재도 만날 수 있어▲보물:고령읍 지산리에 자리한 `지산리 당간지주(보물 54호)`는 옛 절터에 세워진 커다란 석조물이다. 서로 마주보는 2개의 기둥으로, 미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8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오운의 종가에서 보관해온 `죽유 오운 종손가 문적(보물 1203호)`은 7종 122점의 고문서로 이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보물 1725호로 지정된 `김종직 종가 고문서`와 `정종 적개공신 교서(보물 1835호)` 역시 대가야박물관에 보관돼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케 해준다. ▲유형문화재: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세를 떨친 암행어사 박문수의 선조 묘 아래 설치된 `만남재`, 고령 박씨의 재산분배와 노비 관련 문서를 모아놓은 `고령 박씨 소윤공파 문적`도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문화재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된 반룡사의 다층석탑과 동종(銅鍾), 목조 비로자나삼존불상 역시 고령의 자랑하는 문화재다.고령 개포동 석조 관음보살좌상도 빼놓을 수 없다.▲민속자료와 기념물:영남학파의 조사(祖師)로 불리는 김종직의 종택에서는 제자 양성에 힘썼던 선비의 향기와 만날 수 있다.인근 고을 학자들이 모여 학문적 토론을 벌이던 `벽송정`과 부드러운 표정의 둥글둥글한 형상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대평리 석조 여래입상` 등도 교육·문화적 의미가 있는 볼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대항한 김면 장군의 호국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적도 고령 방문자라면 반드시 들러야할 곳이다.그는 학자인 동시에 조선 제14대 왕 선조에 명에 의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전병휴·홍성식기자

2016-05-02

대구, 땅속 수도관 물흐름 앉아서 꿰뚫어 본다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정수장과 관로는 물론 검침까지 상수도 관련 전 분야에 IT기술 융합을 통한 스마트 관리로 시민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 공급은 물론 상수도 분야 재정건전성 확보와 경영 합리화가 크게 향상됐다. 지난 2002년부터 시업비 474억을 투입해 총 586개소에 IT기술을 융합해 유량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시 및 제어가 가능해졌으며 특히, 한눈에 알아볼 수있도록 했고 배수관망 구역화사업을 통해 지난 13년간 누수로 인한 수돗물 1억2천만t(연평균 926만t), 약 1천95억원(연평균 84억원)의 예산을 절약하는 효과를 거뒀다.47억 투입 지난해 완료정수장 등 상수도 관련 전분야IT기술 융합통한 스마트 관리누수예방 등 체계적 관리에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 공급상수도 재정건전성 확보까지2020년까지 유수율 94% 목표상수도본부, 배수관망 구역화사업 구축 완료장래 물 부족 전망에 적극 대처하고 수돗물의 안정적 공급과 유수율 향상을 통한 상수도 경영합리화를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수도관로의 관망 구역화사업(Block System)을 IT기술과 연계하여 2015년 구축 완료함에 따라 시민들에게 안정적 급수는 물론 정확한 배수량 분석, 누수예방 및 향상, 균등수압유지 등의 체계적인 수돗물 관리가 가능하게 됐다.배수관망 구역화사업(Block System)은 정수장, 배수지, 가압장 별로 급수구역을 바둑판 모양의 블록형태(대·중·소구역)로 구성해 구역별로 수량, 수질, 수압 등을 실시간 감시하고 유수율과 누수여부를 분석 관리하는 시스템이다.상수도사업본부는 2002년부터 대 구역 9개소, 중 구역 197개소, 소 구역 380개소 등 총 586개소의 구역으로 나눠 사업비 475억원 투입해 상수도 종합정보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유량정보시스템을 IT기술과 융합해 구역화 사업을 지난 2015년 구축 완료했다.이에 따라 경제적인 실시간 감시제어로 안정적이고 안전한 수돗물 공급과 돌발적인 누수사고 발생시 단수구역 예측 및 단수시간 최소화, 관망의 효율적인 운영, 신속한 사고대응방안 구축, 유수율 제고 및 누수방지를 통한 에너지 절감은 물론 합리적인 관망 운영관리 체제를 확보하게 됐다.상수도사업본부는 배수관망 구역화사업(Block System) 구축을 위해 선행작업으로 먼저 1단계 누수통제기법으로 낭비계량을 도입해 추진했으며, 2단계로 두류·매곡 배수지 축조를 통해 일정수압 조정, 정수장별 급수구역 재설정, 출수불량 및 과수압 지역 방지를 위한 배수지 가압장 급수구역 재설정 등을, 마지막 3단계로는 수도정비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배수관망 구역화사업(Block System) 구축을 실시했다.이와 함께 상수도 경영평가의 지표가 되는 유수율 향상을 위해 추가로 노후관개량사업, 소구역 누수탐사 용역 실시, 과수압 급수구역 특별관리 등을 적극 추진하며 2002년 79.6%인 유수율은 구역화사업 구축이 완료된 지난 2014년 92.8%로 약 13.2%의 유수율을 향상시며 13년간 누수로 인한 수돗물 1억2천만t(연평균 926만t)이 버려지는 것을 예방했고, 그 결과 1천95억원(연평균 84억원)의 예산을 절약했다.이와 같은 노력으로 상수도사업본부는 유수율 향상에 따른 정수장 생산량 감소로 인한 원수구입비, 정수장 가동비 등 수돗물 생산원가를 대폭 절감하며 상수도 재정건전성 확보와 경영합리화에 기여해 2015년 국민안전처 주관 `국가기반체계 재난관리 평가` 식용수 분야 A등급(우수)관리기관 선정으로 대통령 표창 수상과 함께 대구시 주관 `2015년 행정서비스헌장 운영실태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기관 선청 등 수돗물 관리 및 운영분야에서 최상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첨단 정수장 중앙감시시스템으로 교체해 운영 효율화상수도사업본부는 86억원을 투입해 고산·매곡·죽곡정수장의 중앙감시시스템을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으로 교체함으로써 효율적인 정수장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 사업은 노후화된 중앙감시제어시스템을 최신 기종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것으로 시스템 노후로 인한 장애 발생 요소를 제거하고 아날로그 방식의 통신체계를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해 신호 오차를 최소화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됐으며 각 정수장의 전체 정수처리 공정에 대한 통합감시제어 및 자동운전을 통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특히, 대구시민이 사용하는 수돗물 공급량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고산, 매곡정수장에는 첨단 사이버 보안시스템을 함께 구축해 시스템 장애 및 피해 발생 시 신속한 복구가 가능하게 되어 수돗물 수질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이와 함께 `수성의료지구`에는 수도계량기 무선원격검침, 실시간 수질감시 및 누수감시 등 첨단 시설을 시범 도입할 계획이다. 오는 4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상수도 관로시설물 공사가 내년 7월경 마무리되면 검침원이 방문하지 않아도 수돗물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는 수도계량기 무선원격검침시스템이 대구 최초로 시범 도입돼 시민불편 및 사생활 침해 우려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또 자동수질계측기를 통해 PC나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수질 확인이 가능한 모니터링 시스템과 24시간 내내 수돗물 누수를 감시할 수 있는 유량 정보 시스템도 설치되어 깨끗한 수질 확보는 물론 누수 발생 시 신속한 복구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공사에는 부식에 강하고 녹물 발생 걱정 없는 스폴파이프(5㎜)와 수도용경질폴리염화비닐관(80~300㎜) 등의 친환경 신제품 상수도 배관을 사용해 최상의 수질을 유지할 계획이다. 수성의료지구는 대구도시공사에서 지난 2014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의료·IT·SW 등의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을 위한 택지조성(현재 조성률 40% 정도)을 마무리할 예정이며, 이와 보조를 맞추어 상수도본부에서는 상수도 관로 시설물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설치할 계획이다.이번 사업은 지난 2014년 7월에 체결된 도시공사에서 공사비를 부담하고 상수도 본부가 위탁 시행하는 조건의 `상수도 관로시설 설치 협약`에 따라 진행되며 122만7천㎡에 입주하는 6천325명(2천258세대)에게 하루 3천700㎥의 수돗물을 공급하게 된다.대구시 김문수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유수율 향상을 위한 최우선 시책사업인 배수관망 구역화사업(Block System) 구축을 완료해 시민들에게 맑고 깨끗한 수돗물의 안정적 공급과 체계적인 배수관망 관리가 가능하다”며 “2020년 선진국 수준의 유수율 94%를 달성해 상수도 경영효율화를 한층 더 높여갈 방침”이라고 말했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6-04-29

상주, 대한민국 최첨단 농업 중심에 서다

상주는 삼한시대부터 낙동강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미 삼한시대 자연 저수지인 공검지에 제언(提堰)을 축조해 관개시설을 확보했고 선진농법도 구현했다.상주지역의 농사관행을 정리한 `위빈명농기`는 국가가 발행하는 종합농서격인 `농가집성`을 편술할 시 참고했을 만큼 선진농법을 담고 있다.특히 농사의 근본으로 가장 중요시한 종자관리에 있어 누에를 활용, 누에 삶은 물에 종자를 적셔 충해를 예방하는 등 상주지역 고유의 농법이 특징적으로 나타나 있다.이렇듯 상주는 비옥하고 넓은 농지와 우수한 물 관리기술, 선진농법까지 갖추고 있어 다양한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웅주거목이었다.이정백 상주시장은 “상주는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농작물 재배와 고품질 농산물 생산이 이뤄지는 농업 중심도시이며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뛰어난 접근성과 편의성을 갖추고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전문인재 양성과 친환경 기술농업 육성 등을 통해 FTA 및 국내 농업여건 변화와 기후변화 등에 발빠르게 대응을 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전문농업인·귀농인 교육·지원에 주력쌀 6차 산업화 통해 기능성·가공 추진상주배 등 친환경 농특산물 수출에 박차ICT활용 기술 보급으로 과학농업 실현□ 선진농업 구현을 위한 전문인재 양성상주시는 선진농업 그리고 미래 산업의 주역이 될 농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각종 지원과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특히 전문농업인 육성과 귀농인의 안정정착 교육 그리고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가공교육 등은 전국 1위의 귀농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새해 영농교육은 매년 1~2월께 추진하며 올해는 3천222명의 농업인을 대상으로 했다. 그 중 농업대학과 귀농귀촌교육은 농업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상주농업대학은 2007년 식량작물, 과수반(1기)를 시작으로 현재 9기까지 총 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지역사회에 많은 농업 인재를 양성했다. 주요 교육과정은 농식품 소비자 욕구 및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대한 이해, 농산물 마케팅 전략, 농산물 유통현장의 견학, 실습 및 토론 등 특성화된 교육으로 진행된다.농업대학이 농업인의 능력을 배양하고 경쟁력있는 상주농업에 기여하고 있다면 귀농귀촌 교육은 상주를 찾은 초보농업인의 현실 적응을 돕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지난 3월 43명의 입학식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총 21회에 걸쳐 기초농업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는 최근 농산물 가격하락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농업인을 위해 농산물가공지원실 운영과 함께 관련 교육을 실시해 농산물의 새로운 소비처 확보에 힘쓰고 있다.지난해 총 87회 39종의 시제품을 생산했으며 그 중 생딸기잼 등 우수한 제품 2종을 상품화했고 올해는 도비 공모사업으로 3억8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소규모 가공사업장 4호를 신규로 육성할 계획이다.□ 변화하는 농업환경에 대응상주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도시농업전문가 육성에 힘쓰고 있다. 도시농업은 농업이 농업인만의 산업이 아니라, 도시화 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는 것을 각인시키고 농촌과 도시의 상생 그리고 화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상주시 농업기술센터는 이러한 도시농업전문가 양성을 위해 매주 수요일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교육내용은 도시농업의 이해, 식물과 번식관리, 정원디자인 등이다. 또 도시민과의 상생 화합을 위해 상주시는 농촌사랑 소비자교육도 3년째 실시해 오고 있다. 상주시는 주요거점 지역 농기계임대사업장 건립 계획에 따라 2005년 본소를 시작으로 현재 서부분소까지 총 5개소의 임대사업장을 구축했다.농기계임대사업은 갈수록 인력이 줄고 있는 농촌현실에서 농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올해 동부분소가 완공되면 모두 6개의 임대사업장이 각 주요 거점지역에 자리잡게 되며 지역 주산작목 위주로 특화된 농기계를 배치해 효율성 있는 임대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 지역 대표 전략품목 육성생명근간산업인 벼농사의 안정적 소득화를 위해 1만2천322ha의 벼 재배면적을 확보해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함께 생산된 쌀은 6차산업화를 통해 양곡 공급 중심에서 기능성 및 가공수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명품 상주 포도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특화신품종 개발을 위한 시험포를 운영해 자옥, 진옥, 흑보석, 샤인머스켓 등 10개 품종을 시범 재배하면서 신품종 재배 매뉴얼을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또 경북도 농업기술원과 연계해 직무육성포도 신품종 `빅데라` 보급사업도 3개소에서 추진하고 있다.세계가 찾는 상주 명품배 생산기반 구축을 위해 맞춤형 시비처방과 기술상담, 병해충 방제를 위한 친환경 특허 미생물 보급 등에 주력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상품성 있는 중소과 생산기술을 연구개발 하는 한편 상주배 브랜드 `달리`를 개발 보급하면서 수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상주배는 2014년 탑프루트 대통령상 및 최고품질평가 대상을 수상하는 등 그 기술력과 품질의 우수성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대한민국 최고 명품오이 생산기반조성을 위해 시설오이 및 노지오이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병해충, 비료 및 토양관리 기술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시설오이 재배기술의 과학화를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시설의 환경제어기술 및 시설내 외부기상과 토양환경 측정은 물론 바이러스 진단키드를 활용해 현장에서 실시간 병해충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과학영농분석실에서는 선충밀도검사, 토양검정, 병원균 현미경 검경 등의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유용미생물제재의 적합한 투입을 유도하고 있다.□ 첨단 과학농업 실현△ 첨단 ICT 활용 기술 보급스마트폰 이용 원예시설 복합 환경 제어시스템, 과수원내 병해충 예찰 및 온습도 자동측정 관리기술, 가축질병 및 축산재해예방 시스템, 시설재배지 외기 및 토양환경측정 자동화 기술, 신속한 토양검정 시스템 운영, 맞춤형 시비처방 및 상담시스템 등 첨단 ICT활용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친환경농업관리실 운영농업의 기본인 토양검정 시비처방 등 분석을 실시하는 곳으로 연간 8천여점 이상의 토양검정을 통해 정확한 시비처방을 하고 있다. 주요 장비로는 검정발광분석기 등 34종을 보유하고 있다.△ 농업미생물 배양실2013년 문을 연 이 시설은 618㎡ 규모로 유용미생물을 생산해 희망하는 농업인에게 전량 보급하고 있는데 미생물 배양장비 20여종 36대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에는 배양시설 700L 5대를 확충해 연간 300t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되는 친환경 유용미생물은 고초균, 유산균, 효모, 광합성균 등 4종의 단일균과 고초균+유산균+효모를 혼합한 혼합균이 있으며 지역 농업인에게 무료로 분양하고 있다.△ 꽃가루은행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꽃가루 은행은 15년차 운영 중인데 배, 사과, 복숭아 정형과를 생산하는 요람이 되고 있다. 화분정선기, 개약기 외 다수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과수재배농업인이 꽃을 채취해 오면 화분을 생산해 준다.△ 소득작목RD센터 운영화남면에 있는 소득작목 RD교육센터는 면적 8천183㎡(대지 997, 포장 7,186㎡) 규모로 경쟁력 있는 신품종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시험포를 운영하고 있다. 소득작목 RD센터는 FTA 등 농업환경 변화에 대응한 신품종 지역적응 시험포와 교육장을 운영하면서 시험과 기술보급이 일원화된 거점센터로 거듭나고 있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6-04-29

삼국통일 주역이었던 君主 호국의지 품은 `문무대왕암`

얼굴을 간질이는 봄 햇살 쏟아지는 바닷가. 우려하던 적의 침입이 외형상으론 사라져서일까? 죽은 왕은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 침묵했다. 반면, 산 자들은 왕의 뼈가 묻혔다고 전해지는 바위를 바라보며 왁자지껄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고요한 바다와 시끌벅적한 해변. 대비되는 풍경이었다.경주 봉길리 해변서 200m 떨어진 수중릉왕릉 조성 대신 불교화장 유언은 선진적 결단죽어서도 나라 지키려는 호국대룡 기개 서려문무왕릉(사적 158호)을 찾아가던 날. 바다의 빛깔은 유난히 푸르렀다. 불 태워진 왕의 뼈가 안장된 곳으로 알려졌기에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바위는 모래톱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외로이 자리하고 있었다.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수중릉(水中陵). 신라 고분 연구자였던 이근직은 저서 `신라왕릉연구`에서 문무왕릉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능은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해변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은 681년 7월 1일에 죽으면서, 불교의 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신문왕이 10일 뒤 천자 오문 가운데 하나인 고문의 바깥뜰에서 화장한 뒤, 그 다음해 5월에 유해를 동해 입구에 있는 큰 바위에 장사지냈으므로 그 후 이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른다.”역사책 속에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군주`로 기록된 문무왕.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황산벌 전투의 지장(智將)으로 유명한 김유신의 외조카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명민한 머리로 두각을 드러낸 문무왕은 왕좌에 오르기 전부터 부친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각종 국가적 업무를 주도해 처리했다.권좌에 올라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켜 이른바 `삼국시대`를 `통일신라시대`로 전환시킨 왕으로 평가받는 문무왕. 이처럼 뚜렷한 역사적 족적을 남겼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행복한 지배자`였을까?이런 의문을 담아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한정호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왕이 거대한 봉분을 만들어 장례 지내라 하지 않고, 화장을 해 바다에 뼈를 묻으라는 유언을 했다는 게 생각 밖이다. 왜 그랬던 것일까?” 돌아온 답은 아래와 같았다. “문무왕이 화장을 선택한 이유는 불교적 신념과 관계가 깊다. 삼국통일의 영주로 추앙됐지만 한 인간으로서 문무왕의 삶은 불행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전쟁으로 누이와 매형을 잃었고 평생을 전장에서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현실을 자의와 상관없이 지켜봐야 했다. 장법(葬法)과 장지(葬地)의 선택은 그의 호국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추측된다.”여러 문헌의 기록과 역사학계의 연구에 의하면 문무왕 이전 시대 신라에서 화장은 보편적인 장례법이 아니었다. 불교도인 승려들도 화장이 아닌 매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화장한 내 뼈를 바다에 묻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은 1천300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는 선진적인 결단으로도 읽힌다.“문무왕의 화장 이후 신라에서는 화장문화가 급속히 확산됐고, 34대 효성왕과 37대 선덕왕도 화장을 해 동해에 그 뼈를 뿌렸다”는 게 이와 관련한 한 교수의 부연이다.살아생전 문무왕은 가까이는 백제와 고구려, 멀리는 당나라의 강력한 군사력에 맞서야했다. 그런 이유로 신라를 지켜내려는 그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힘과 지혜로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면 뇌물을 쓰고, 편법을 동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던 군주`로 문무왕을 평가한다.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호국`의 마음가짐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 교수에게 하나를 더 물었다.“문무왕은 죽은 후라도 용이 돼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신라시대에 동해를 통해 침입하는 외적들이 있었는가?” 이에 대한 상세한 대답이 돌아왔다.“동해구의 문무왕릉은 신라의 도읍 경주에서 동해에 이르는 최단거리에 위치했다. 임진왜란 때도 전투가 빈번했던 장소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멸망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유민과 결합한 왜(倭·일본 사람)였다. 실제로도 이들이 `백제부흥`을 외치며 금강 하구로 침략했던 기록이 있다. 문무왕은 이를 염두에 둔 듯하다. 대왕암 부근에 만들어진 감은사도 침입하는 왜병을 진압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역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실 문무왕릉은 많은 수의 신라 왕릉들처럼 “세간에 알려진 피장자(무덤에 묻힌 사람)와 실제 피장자가 다르다”는 논쟁 속에 있다. `삼국유사`에도 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 가운데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고 간단히 언급될 뿐이라 이 논란은 여전히 고고학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하지만, 이에 관한 한정호 교수의 견해는 칼로 자른 듯 명료하다.“문무왕릉에 묻힌 사람은 문무왕이다. 울산에 위치한 또 다른 대왕암을 문무왕릉이라 주장하는 일부 향토사학자들이 있지만, 이를 증명할 근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문무왕릉이 화장한 유해를 뿌린 산골처(散骨處)인지 그게 아니면 뼈를 묻은 장골처(藏骨處)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진짜 피장자는 누구인가`를 둘러싼 현대 역사학자들의 갑론을박 속에서도 문무왕은 중앙부에 물을 가두고 동서로 긴 수로를 만든 `영원한 잠의 안식처`에서 한마디 말이 없다.그저 바다만큼 푸른 4월의 하늘 아래서 재위 때처럼 백성(국민)들을 자애롭고 그윽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을 뿐. 왕의 무덤을 호위하듯 줄지어 늘어선 12개의 바위는 세월과 파도에 깎여가고.문무왕릉에 관해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왕암을 `댕바위`라고 불렀다. 이곳은 지금도 토속신앙과 용왕신앙을 받드는 이들이 모여드는 영험한 기도처로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문무왕이 동해의 용왕으로 몸을 바꾸었다고 믿고 있다.혼곤한 햇살 아래 앉아 옛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다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왕은 외부의 침입보다 더 무서운 인간 내부의 온갖 욕망들을 해소해달라며 밀려드는 부탁에 바다빛깔처럼 푸른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왕의 뜻 받들어 신문왕이 축조한 `감은사`용이 된 王, 바다 오가며 쉬던 곳나란히 마주 선 석탑만이 남아…병들어 누운 왕의 곁에 몰려든 고관대작과 승려들이 걱정스레 물었다. “왕이시여, 진정 귀하신 몸이 짐승인 용으로 다시 태어나도 괜찮겠습니까?” 희미하게 웃음 띤 왕이 사람들의 우려를 떨치며 답했다. “일생 부귀와 영화를 원하며 살지 않았다. 짐승이면 어떠하냐? 내 나라, 내 백성을 위한 것인데.”20년간 권좌에 머무르며 실질적인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신라의 문무왕은 죽음을 앞두고 신하들과 위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전해진다. 사후에도 자신의 통치 아래 있던 신라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왕의 호국의지를 알려주는 역사 속 에피소드다. 큰아들인 신문왕 역시 이 장면을 목격했다. 그날 이후, 신문왕에게 감은사(感恩寺·선왕의 큰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지은 절)를 완성하는 것은 지상목표가 됐다.문무왕 말기에 축조를 시작한 감은사는 신문왕이 즉위한 이듬해(682년) 마침내 창건을 맞았다. 문무왕의 수중릉이 지척인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위치한 감은사. 지금은 터와 삼층석탑 2기 등의 유물이 남아 사적 제31호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해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포함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찾는 경주의 보물 중 하나가 됐다. 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굴 조사에서는 감은사의 주춧돌이 놓였던 것으로 보이는 지하에 그 사용처를 추측하기 어려운 공간이 발견됐다. 몇몇 호사가들은 이곳을 두고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다를 오가며 쉬던 곳”이라며 놀라워했다. 아버지를 위한 신문왕의 효심이 만든 침실이라는 것. 실제로 이런 지하공간은 여타의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고고학계의 이어지는 설명이다.사천왕사(四天王寺), 황룡사(皇龍寺)와 더불어 신라의 호국의지를 드러내는 사찰로 이름 높았던 감은사가 언제 터만을 남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선시대 초기와 중기 사이에 폐사(廢寺)되었을 가능성만이 이야기되고 있을 뿐. 하지만, 감은사지에 남겨져 현대인들에게 그 자태를 드러낸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문무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와 사리함,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각종 기와와 토기 등은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했던 문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유산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4-28

영덕 천지원전, 합의·안전 바탕 미래성장 동력돼야

정부는 2012년 영덕을 1천500㎿급 신규원전 건설 예정지역으로 고시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이를 확정했다. 이에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돼 지난해 11월 천지원전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투표자의 91.7%가 반대했다. 총 유권자의 32.5%만 참여해 법적 효력을 잃었지만, 원전 반대 정서를 드러냈다. 하지만, 건설의 논란속에서도 원전은 군으로 볼 때 여전히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다. 부족한 세수확보를 할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공무원 월급을 주기도 버거운 군 사정상 주민복지 업무를 비롯해 덩치가 큰 사업들을 잇따라 벌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놓칠 수 없다.그러나 주민의 표를 먹고사는 자치단체장은 사정상 쉽사리 결정할 수도 없어 주민들을 비롯한 정부와 관련기관 등의 동향을 주시하며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덕의 천지원전 건설 추진상황과 원전가동시 기대효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짚어본다.한수원, `영덕발전 10대 제안` 중 4개 사업 용역발주… 복지·의료 등 사업발굴 TF도 가동영덕 천지원전은 정부가 지난해 7월 올해부터 2029년까지 전력수요전망과 발전선비계획을 담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 공고하며 사업이 결정됐다. 정부 계획은 2029년까지 신규원전 2기(총 300만KW규모)를 건설한다는 것.천지 1, 2호기 사업이 마무리되면 추가로 2기가 더 건설될 예정이어서 최대 4기의 신규원전이 들어설 전망이다. 한수원은 주민들 반대와 관련, 원전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신규원전이 들어서면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더불어 온실가스 감축, 고용창출 효과 등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지난 총선전부터 원전반대론자들의 강한 입김속에 군은 현재까지도 예정구역 내 현장 재조사를 위한 토지출입을 불허하고 있는 등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이 같은 배경에는 군의회와의 갈등과 지난해 주민투표에서 드러난 원전반대 여론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군의 입장에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군이 정부를 상대로 원전반대 분위기를 잠재울 만한 지원을 이끌어내겠다는 속내를 비치고 있다. 군은 지난해 정부와 한수원이 발표한 `영덕발전을 위한 10대 제안사업` 중 5개사업에 대해 좀 더 구체화된 계획을 요구했다.해당 사업은 △첨단 열복합단지 △친환경인증 지역농수산물 판로지원 △휴양·힐링·교육 복합형 원자력연수원 △전문화된 지역의료시설 △직원과 주민을 위한 체육·문화 멀티플렉스 및 종합복지관 조성사업 등이다. 이같은 군의 조치에 발맞춰, 한수원은 지역농수산물 판로지원 외 4개사업에 대한 설계용역을 최근 전문기관에 모두 발주시켰다. 지역농수산물 판로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방사선융합기술원·경북도 등과 협의해 추진 중이다. 군은 또 지난달부터 부군수를 단장으로 한 `지역발전 사업발굴 TF`를 가동해 각종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TF에는 복지·의료·행정 및 문화·관광·건축, 농·수·임업, SOC 및 지역개발 등 4개 분야 담당급 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현재 발굴된 사업은 약 100건에 사업비만 2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다. 군은 좀 더 현실성 있게 다듬어 간다는 복안이다. 또 올 하반기에 완료될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지역발전 계획을 짤 예정이다.하지만 이같은 군의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군과 군의회의 입장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 등 아직은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주민 박모씨(47·영덕읍)는 “원전이 가동 중인 경주와 울진에서 보듯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확실한 보장조치가 뒤따르는 등 주민을 위한 안전장치가 확보돼야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지역기업 우선계약권·거주주민에 고용우대 혜택원전이 들어서면 영덕은 지원금뿐만 아니라 고용혜택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호재다. 지역기업 우대제도에 따라 일정금액 이하의 공사, 용역, 구매계약시 주변 지역기업에 우선 계약권을 부여한다.신규원전건설의 경우 원전 반경 5km 이내의 읍면동 지역에 거주한 주민들에게 고용우대 혜택이 돌아간다. 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지정, 고시일을 포함해 5년 이상 거주한 경우 본인은 10%, 자녀는 5%의 채용가점을 받도록 해 주변지역민들의 고용창출 기회를 확대했다. 아울러 지역주민 고용을 위해 선발인원의 20% 수준의 채용할당제를 비롯해 원전건설업체의 공사계약서에 지역인 고용을 반영하고 있어, 지역민 채용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실제 신고리 2건설소의 경우 한수원 및 협력회사 직원 1천453명 중 지역주민 채용이 842명으로 58%에 해당했다. 한울원전에 따르면, 한울원전에 근무하는 지역출신 직원들은 총 779명이다.이 가운데 정규직원 298명, 한전KPS 등 협력사 481명 등으로 한울원전 전체직원의 15%, 협력사는 20%를 차지할 만큼 지역출신비율이 높다. 요즘들어 청년실업률이 최고조에 이르는 만큼, 청년들과 취업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전은 이곳이 아니더라도 국가적으로 어디에든지 들어서야 하므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주민들 중 상당수다.영덕군의 한 학부모는 “사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 힘든 요즘, 지역청년들에게 일자리가 생긴다 하니 반갑다. 하지만 여러 문제점들도 있는 만큼, 이 문제도 잘 짚어 국가와 군 모두 상생하는 선에서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兆단위 지원금… 재정수입·정부지원 등 영덕경제 활기신규원전 2기가 들어서면 건설시부터 운영기간 동안 총 1조5천여억원이 지원된다.법정지원금은 유치지원금(380억원)과 특별지원금(1천141억원), 기본 및 사업자지원금(각각 3천696억원), 지역자원시설세(6천720억원) 등이다.특히 올해부터 지역자원시설세율이 종전 kwh당 0.5원에서 1원으로 인상됨에 따라 영덕군 세수도움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군이 주민갈등 속에서도 원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재정수입과 정부지원사업의 매력 때문이다. 올해 군의 총 예산은 3천653억원이지만 순수 지방세수입은 111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순수 군비가 필요한 주민소득사업이나 지역개발사업 등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영덕경제는 지난 수년간 고속도로, 철도 등 국가SOC사업으로 어느 정도 생기를 띠고 있지만 향후 전망이 밝지 않은 게 사실이다.반면 울진의 경우 올해 예산이 영덕의 두 배 가까운 6천여억원으로 지난해 4천400여억원보다 무려 40% 가까이 증가했다. 예산증가의 직접적 이유는 신한울 원전건설 등으로 인한 세수증대다. 특히 원전건설로 인한 각종 정부지원금은 든든한 재정 곳간이 되고 있다. 또 신한울 원전건설에만 매일 수천명의 인력이 투입되는 등 울진의 경기는 영덕보다 확실히 비교우위를 보이고 있다.영덕군 관계자는 “원전이 들어올 경우 군의 재정수입은 상당히 증가되는 등 살림살이가 나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과 정부, 군민 등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안을 도출, 국가와 지역이 동시에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6-04-28

영호남 잇는 경북의 관문, 문화융성·경제발전 두 토끼 잡는다

번성했던 고대왕국 대가야. 경상북도 고령군은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한국사에 기록된 대가야의 후손들이 삶을 이어가는 고장이다. 본지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난날의 영광을 되살려 보다 나은 내일을 열어가고자 하는 고령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가야체험축제 등 관광·문화산업 정착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 선정 쾌거로산업단지 확대 등 신성장동력 창출 총력성공한 도농복합지역 `한발 앞으로`올해 여든넷의 이도원 옹과 여든여섯 황진호 옹이 기억하는 고령의 과거는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처럼 들렸다. 고령군 개진면 신안리에 거주하는 두 어르신은 입을 모아 “우리 고장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풍경으로 바뀌었다”며 “내가 어렸던 시절과 비교하면 몰라보게 편하고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이 옹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를 다녔다. 그가 기억하는 대가야읍은 초가집 천지였다. 갈대나 볏짚을 이어 지붕을 올린 초가집은 화재의 위험성을 상시적으로 안고 있었고, 위생과 생활의 편의성면에서 현대의 주택과 비교할 바가 못 됐다. 다들 하루 세끼를 챙겨먹기도 힘들었던 시대.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이 없었으니, 이 옹은 고령중학교까지 또래 친구들과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 비가 오면 진흙투성이가 되고, 자갈까지 튀는 비포장도로에 가끔씩 나타나던 목탄차. 이 차 짐칸에 운전수 몰래 올라타 본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당시 대구를 오가려면 금산재를 넘어야했다. 지금은 벚꽃 흐드러진 아름다운 고갯길로 변한 금산재. 하지만 예전엔 꼬불꼬불한 산길이라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로 인한 인명피해도 적지 않았다. 모두가 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뚫리기 전 이야기로 이젠 30분안팎의 시간이면 고령에서 대구로 갈 수 있다.이 옹은 이앙기가 보급되던 시절의 기억도 떠올렸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어색해하며 이앙기 사용을 주저했는데, 이제 모두가 기계에 올라타서 모를 심고 있으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며 이 옹과 황 옹이 웃었다.유년시절부터 변해가는 고령의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나이 들어온 두 어르신의 고향사랑은 남달랐다. 이들은 “대가야 체험축제 등으로 고령이 전국적인 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역사와 문화의 향기 가득한 우리 고장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 현재, 1읍 7면으로 나뉜 인구 3만6천여명의 도시여든을 넘긴 노인세대가 기억하는 고령의 과거가 위와 같았다면, 오늘날의 고령은 어떤 모습일까. 행정구역상 1읍 7면으로 나뉜 고령군의 전체 예산규모는 2천763억원, 인구는 3만6천여 명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남북을 가로지르고, 동서는 광주~대구고속도로가 이어준다. 50km 거리엔 대구국제공항도 위치해있다.곽용환 군수는 고령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배후에는 “21세기 들어 대가야 역사문화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낙동강과 가야산의 청정 환경이라는 자연적 입지를 활용해 근교농업을 발달시키려 한 군민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설명한다.가난한 농촌마을에서 도농복합지역으로 탈바꿈한 고령군. 초가집 사이로 매연 뿜어내는 목탄차가 다니고, 좁은 비포장도로 인해 불편을 겪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역사책 속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발전의 노력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대가야 문화누리 개관`과 `대가야교 건립`, `서울시와의 우호교류협약 체결`과 `도시가스 공급 시대 개막`이라는 크고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고령은 한때 찬란한 문화와 함께 번성했던 대가야의 도읍이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고서에 따르면 대가야는 이진아시왕부터 도설지왕까지 520년간 이어진 왕국으로 추정된다. 5세기 이후 고령과 합천 등 내륙 산간지역은 농업기술과 제철기술을 빠르게 발달시켜 문화중심지로 주목받았다. 대가야가 이처럼 번성했던 시절에는 백제, 신라와 힘을 규합해 고구려를 침입하기도 했고, 554년에는 백제와 연합군을 결성해 신라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이 싸움에 패해 국력이 급속히 쇠약해져갔다.정치제도 면에서는 인접국인 신라와 백제에 미치지 못했으나, 가야금을 제작하고,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어낸 대가야의 문화적 성취는 역사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대가야 시대 지배계급의 거대한 무덤이 조성돼 장관을 이루는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은 고령이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적이다.□ 문화융성과 함께 경제발전으로 다가올 미래 준비 이와같은 대가야의 문화전통을 이어받은 고령군은 이를 관광산업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가야 체험축제`는 ◆거리 퍼레이드 ◆금관 제작체험 ◆대가야 목공체험 ◆대가야 순장체험 ◆녹색테마 생태관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많은 수의 관광객을 고령으로 불러들였다.축제 기간 동안 연계행사로 준비한 `악성 우륵 추모제`와 `대가야 왕릉제`, 실경뮤지컬 `가야금` 공연, 인형극 `가야금을 사랑한 달깨비` 등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관광과 효과적으로 연계시킨 고령군의 노력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어냈다. `대한민국 문화관광 우수축제 선정`과 `2017 올해의 관광도시 선정`은 그 사례라 할 수 있다.고령군청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도 문화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고령이 지닌 문화자산으로 대가야 문화융성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군의 다짐은 대가야역사문화발전위원회 운영과 군립 가야금연주단의 연주회 개최, 뮤지컬 등 문화공연의 확대와 대가야체험축제 자립기반 마련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대가야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고령군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다. 이를 위해 2018년을 목표로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대가야 종묘 건립사업과 대가야 시조의 어머니 정견모주와 이진아시왕 표준영정 제작사업을 펼치고 있다.올 한해는 외국과의 문화교류도 활발히 진행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열리는 국제 현악기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예정”이라는 게 고령군청 관계자의 설명. 여기에 고령군 청소년들이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를 방문해 문화적 감수성을 나누는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문화융성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도 고령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다. 향후 100년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경제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고령군은 군민 4만 명, 군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을 위한 `4040 프로젝트`를 세우고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데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현재 가동 중인 동고령 일반산단, 열뫼 일반산단 등 기존의 5개 산업단지를 10개까지 늘려간다는 방침이다.`문화융성`과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분주하게 뛰는 고령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령이 이뤄낼 미래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우륵의 영정.`대가야의 예술가` 우륵가야금 만든 한국의 3대 악성궁중음악 개혁에 큰 역할을 맡았던 조선의 박연, 빼어난 거문고 연주자였던 고구려의 왕산악과 더불어 한국예술사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우륵(于勒)은 고령군이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역사 인물이다.출생과 사망연도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서기 551년 제자들과 함께 신라 진흥왕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유추해볼 때 6세기 초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중국 악기인 쟁(箏)에서 영감을 받은 우륵은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작곡해 대가야가 `문화강국`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행복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가야금을 다루는 우륵의 기예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는 대가야의 국운이 위태롭게 기울던 무렵이었고, 이에 절망한 우륵은 아끼는 제자 몇몇과 함께 신라로 망명한다. 정치적 망명이 아닌, `문화적 망명`에 가까웠다.우륵의 감각과 높은 예술적 성취를 아꼈던 진흥왕은 신라 악사들이 가야금과 노래를 배울 수 있도록 도우라고 우륵에게 명한다. 지척에서 사라져가는 자신의 고국을 바라보며 타국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수했던 우륵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를 상상해보면 그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어렵지 않게 전해져온다.우륵을 시기한 일부 신라 악사들은 “대가야의 음악은 음란하고 속되어 나라를 망쳤으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했지만, 진흥왕은 이런 목소리를 잠재우고 “사람의 심성을 곱게 하고, 세간의 바른 법도를 따르게 하는 것이 우륵의 연주”라며, 대가야의 음악을 신라의 궁중음악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진흥왕의 호방한 성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우륵이 태어난 곳은 `삼국사기`에 아주 짧게 언급된다. 이 때문에 출생지를 놓고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우륵은 우리 지역 사람”이라며 설전을 벌여왔다.이와 관련 조선의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고령읍 북쪽 금곡(琴曲)은 우륵이 여러 악공과 더불어 가야금을 연습한 곳`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간 고령군은 대가야읍에 우륵박물관(2006년 3월)을 건립하고 2014년에는 `악성 우륵의 꿈`이라는 체험축제를 열어 30여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으로 “우륵의 고향은 고령”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왔다. 또한, 군이 주최하거나 주관하는 `전국 우륵 가야금경연대회`와 `우륵, 금(琴)의 향연` 연주회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전병휴·홍성식기자

2016-04-25

맑은 눈망울의 이란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결혼을 하지 못한 기자는 아이가 없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아이가 귀엽고 예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기혼자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유럽과 동남아시아, 중동의 아이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히잡이 번거롭고 귀찮아요” 대담한 이란 소녀들수줍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이별을 슬퍼하는 아이들`위험한 나라 속 아이들` 천진한 눈망울 잊지못해맑은 빛으로 반짝이는 그네들의 눈동자 속에는 세상사 때 묻은 탁함이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그 눈망울이 혼탁한 세계에서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기자를 가르친다. 선인들의 말처럼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이란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한 카스피해는 지구 위에서 가장 큰 호수다.규모로 보자면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깝다. 바로 그 카스피해가 지척인 해변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명랑한 열여섯 이란 소녀 둘을 만났다. 가족들과 소풍을 왔다고 했다. 사촌지간이라는 두 소녀는 이슬람국가에 사는 아이들답지 않게 대담하게도 “우리는 히잡 쓰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요”라며 검은 스카프 밑 머리카락을 불어오는 바람 앞에 잠시잠깐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 장면을 본 소녀의 엄마는 눈앞에서 폭탄테러처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듯 놀라며 둘을 야단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시선을 피해 까불대며 히잡 벗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달라는 맹랑한 부탁까지 했다.대중이 이용하는 장소에서 히잡을 벗는 행위와 그걸 사진으로 찍는 건 `무슬림 근본주의 국가`에선 분명한 범죄임에도 소녀들은 거침이 없었다. 이란 바깥의 세상이 궁금해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그네들은 오랜 시간 이란을 `테러를 지원하는 불량국가`라고 단정하며, 각종 정치·경제제재를 가해온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자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레이디 가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열대여섯 살 아이라면 부모와 교사들 몰래 숨어서 본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예쁜 여가수의 춤과 화장법을 따라하고 싶은 일탈욕구가 왜 없겠는가.아름답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종교적 도그마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키도록 강요된 수천수만 가지의 이슬람식 규범 안에서도 이란 소녀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갑갑한 현실에서의 일탈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녀와 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이란 사람들의 현실 탈출 욕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엔 뾰족한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기자는 그저 이란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확장된 자유와 개성존중의 풍토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을 뿐이었다.적지 않은 사람들의 걱정 속에서 이런저런 문화충격을 받으며 시작한 이란 여행. 하지만, 그 우려를 불식하고 이란 사람들의 선량함과 매력적인 풍경에 익숙해져 즐거움을 느끼기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지금도 기억이란 소프트웨어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이란의 풍광들.황량한 바위산 아래 무더기로 피어 방랑자의 심란함을 위로해준 붉디붉은 양귀비꽃, 끝없이 펼쳐지던 광대한 사막, 해질녘 푸르스름한 빛을 반사하며 보석처럼 빛나던 모스크의 벽과 지붕, 페르시아 왕조 부침(浮沈)의 역사를 긴 설명 없이 한눈에 보여주는 거대한 무덤 낙쉐 로스탐, 카스피해를 바라보며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던 흰 수염 근사한 할아버지, 사막도시 야즈드를 뒤덮은 수백 채에 이르는 진흙집들,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숙소 `카라반 사라이(caravan sarai)` 옥상에 누워 바라보던 커다란 별들, 매혹적인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우르미예의 소금호수….이란에서 기자가 만났던 갖가지 세상 풍경은 “쓸쓸하고 외로운 것들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삶의 진실을 다시 한 번 고개 끄덕여 깨닫게 했다. 아름다운 풍광에 더해 이란에서 만난 아이들의 천진한 눈망울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소풍 나온 공원에서 자기 몫의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처음 보는 한국 아저씨(?)에게 나눠주던 여섯 살 알리, “함께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겠느냐”고 청하니 부끄러워하면서도 포즈를 취해주던 어린 남매, 같이 보낸 30분 남짓한 시간에 정이 들어 기자의 품에서 떨어지려하지 않던 모하메드, 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났음에도 표정에서 그늘이 느껴지지 않아 더욱 슬프게 보였던 또 다른 남매까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시시때때로 “이란의 주요 군사시설을 폭격하겠다”는 엄포를 놓곤 했다. “테러리스트를 감싸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관한 정치적 논평이나 견해를 내놓는 건 기자의 몫이 아닐 듯하다. 그러나,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지구 위 어느 민족보다 착하고 순진한 이란 사람들, 어떠한 죄도 읽어낼 수 없는 선량한 눈빛의 이란 아이들. 그들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건 신을 믿지 않는 기자가 해본 거의 유일한 진심어린 기도다. 다시 세월이 지나 이란을 찾았을 때도 알리, 후세인, 모하메드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과 청년들, 아저씨, 할아버지와 어깨를 걸고 애틋한 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교적 독단과 정치적 음모도 이란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과 단란한 가정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이란을 여행하며 기자가 만난 100여 명의 후세인과 알리 그리고, 모하메드 역시 이를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그 명백한 진리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건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건, 때로는 그렇지 않건 세상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살아간다는 것이 갑갑하고 서글퍼지는 날들이 있다. 복잡하게 짜인 사회관계망 속에서 환멸을 느낄 때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들.그럴 때면 기자는 이란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언젠가 우리도 그들처럼 `살아있음`을 축복으로 여기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오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추억 선물한 쿠르드족터키 동부와 이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3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와 자기들만의 언어를 지녔음에도 국가를 가지지 못한 슬픈 운명의 사람들이다.중세부터 시작된 쿠르드족 불행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불과 몇 십 년 전엔 이라크에서 벌어진 화학무기에 의한 대량학살의 피해자였고, 이란에서의 독립국가 건설운동도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터키를 상대로 진행 중인 무장저항운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터키 동북부와 이란을 여행했을 때 이들 쿠르드족과 자주 만났다.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호전적인 민족”이란 평가를 듣고 있는 쿠르드족. 그러나, 기자가 만난 그들은 `호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너무 순박하고 선량해서 동정심을 자극할 정도였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는 아라라트 산이 위치한 도우베야짓, 광대한 소금호수가 절경인 도시 반(Van), 이란과 아르메니아의 접경인 우르미예에서 만난 쿠르드족 노인과 청년, 그리고 아이들.터키 군대의 폭격에 12명의 쿠르드족이 목숨을 잃은 날. 도우베야짓에서 벌어진 항의시위 현장을 지켜봤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들과 자신들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던 젊은이들. 인종문제가 불러온 불행의 상처는 깊었다. 하지만, 그 상처가 쿠르드족의 성품까지 파괴하지는 못한 듯했다.그날, 여행자인 기자의 안전을 걱정해 택시를 태워 시내 외곽으로 데려다준 것은 터키 군인이 아닌 쿠르드족 청년들이었다. 반 호숫가에서 만난 쿠르드족 학생들 또한 그들의 소풍에 기꺼이 낯선 사람을 초대해 닭 가슴살 바비큐를 듬뿍 내놓으며 웃었다.우르미예의 한적한 공원에서 기자가 마신 홍차 값을 대신 치른 것도 쿠르드족 할아버지였다. 그는 먼 나라에서 온 동양인 사내가 자신의 시야에서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치 외지로 떠나는 친아들을 송별하듯. 독립된 자기들의 나라에서 싸움을 모르는 순한 양처럼 살아야 할 사람들이 겪는 슬픔.이란 여행을 끝낸 지 벌써 몇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쿠르드족을 떠올릴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게 서늘해진다. 아직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쿠르드족의 현실. 그들이 미래를 꿈꿀 희망만은 강탈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사진제공/류태규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2016-04-22

어려웃 이웃 위해 나눔 실천하는 사회적 기업

천에 자연의 색(色)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과 정성뿐이다. 감물에 내고 햇볕에 염색천을 널어 두고도 계속 물을 줘야 하는데,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한 달 이상 꼬박 정성을 쏟아야 한다. 시간과 정성으로 천에 자연의 色을 온전히 담아의류·가방·스카프·넥타이 등 다양한 제품 생산천연염색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자연스레(대표 전경춘)는 나눔에서 비롯된 `착한기업`이다. 포항나눔지역자활센터의 자활사업으로 출발해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이 모여 지난 2008년 북구 흥해읍 옥성리에 천연염색 공방을 꾸렸다. 지역 내 어려운 이웃들의 자활능력을 키우는데 버팀목이 돼 주는 사회적기업이다.전경춘 대표는 “자활사업단을 통해 천연염색 기술을 배워 `자연스레`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예비 사회적기업으로서 자립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라며 “나 역시 생활고를 겪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실제로 `포항 자연스레`를 검색하면 기업이나 제품 관련 홍보 대신 후원금, 장학금 전달 소식이 수두룩 나열된다. 취약계층 보호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판매 수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다. 전 대표는 이러한 나눔 활동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한다고.그는 “지난해 어버이날 기념으로 브로치 300~400개를 만들어 천연염색 체험을 운영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 또 요청이 들어왔다. 최근에는 매달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장학금 마련을 위해 바자회를 열고 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놀랍고 감사했다. 매번 느끼지만 나눔은 정말 좋은 일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것과는 달리 목적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자연스레의 대표상품으로는 의류와 가방, 지갑, 모자 등이 있다. 스카프와 넥타이는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그중에서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운 것은 의류제품이다. 옷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인데 특히 땀이 많이 나는 여름에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고 속옷도 덩달아 인기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기능성까지 지녀 주로 40~50대 연령층에서 즐겨 찾는다. 제품 구입 후 천연염색을 배워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스레 전경춘 대표.㈜자연스레는 최근 우현동에 판매 매장을 하나 마련했다. 기존의 흥해 사업장은 천연염색 체험장으로 운영한다. 전 대표는 “사람들 눈에 띄고자 읍에서 동으로 나왔다. 제품이 알려지고 잘 팔려야 일자리를 만들고, 또 수익이 나야 더 많은 사람들을 계속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목적 없이 시작한 사업이지만, 최근 전 대표는 바라는 점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아직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아 관심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다. 조바심은 내지 않는다. 상호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레 사회적기업의 나눔에 동참해 주길 바랄 뿐이다. 앞으로는 천연염색 체험장을 문화관광 상품과 연계해 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불리고 찾는 기업이 되길 꿈꾼다.전 대표는 “어떤 일이든 마음가짐에 따라 의미를 지닌다. 사회적기업의 물건을 구매하고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에 동참하는 셈이다. 우리 이웃이 만든 제품을 애용하는 것은 하나의 기부활동과도 같다”고 강조했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4-21

`듣기와 말하기` 동시 시작이 가장 이상적

본지는 말하기위주의 실용 영어 능력향상을 위해 박병태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융합교육지원팀장의 노하우를 지난 7일부터 격주 목요일마다 상·중·하 총 3회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중`에서는 영어 말하기를 할 때 사용되는 뇌 작동 영역 비교 등을 통해 영어정복 학습법을 소개한다.(표1)□ 영어정복은 뇌와 발성기관을 자극하는 학습법이 결정한다연구 결과에 의하면 영어의 정복은 표1에서와 같이 주로 뇌 속 4대 영역과 뇌 밖 4대 발성기관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서 공부하더라도 영어정복에 필요한 8대 영역을 얼마나 많이 작동하게 하는 학습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어정복 여부가 결정된다.소리 내지 않고 읽을 때는 눈, 보기 중추, 이해중추만 작동하지만 소리 내 읽을땐 눈, 보기중추, 이해중추뿐 아니라 구성중추, 발음중추, 4대 발성기관(후두·혀·턱·입술) 등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필요한 모든 영역이 작동한다. 이에 영어를 습득하는 단계에서는 소리내지 않고 읽는 학습법보다 소리내 읽는 학습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듣고 이해할 때는 귀, 듣기 중추, 이해 중추만 작동하지만 듣고 따라 말할 때는 구성 중추, 발음 중추, 4대 발성기관 등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필요한 모든 영역이 작동한다. 따라서 습득단계는 듣기 공부보다 듣고 따라 말하는 공부방식이 필요하다.(표2)□ 영어듣기만 한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듣고 이해하는 학습만으로는 영어 말하기를 정복하는 데 필요한 뇌 속 영역과 뇌 밖 영역을 제대로 자극할 수 없다. 듣기와 말하기 공부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특히 영어 듣기만 할 경우 듣기 능력은 향상될 수 있지만, 듣기와 말하기 공부를 동시에 하는 방식에 비해 듣기 능력의 향상이 오히려 느려진다. 또 영어 쓰기 능력이 우월하다 해서 말하기 능력이 꼭 뛰어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영어로 대화를 이어갈 정도의 말하기 실력은 필요한 뇌 속 영역과 뇌 밖 영역을 가장 잘 자극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이를 위해 영어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방법과 듣고 이해하면서 따라서 말하는 방법을 적절히 조화시켜 공부하는 것이 좋다. 표2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2가지 학습법이 학습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2016-04-21

누구의 기억속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을지 모를 노래

모든 시인들이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음치에 박치, 몸치인 시인도 적지 않다. `음치시인`에게 노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 들려오는 것.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시인을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또한 많은 수의 독자들은 시를 노래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생생한 과거와 마주한 듯한 사극드라마 촬영장길 곳곳 자리한 시비와 아리랑비도 만나왜군에 황망히 길 터준 신립장군 전설도 들으며외국인들에게도 사랑받는 걷기 좋은 새재길 만끽문경새재 입구에서 1관문까지 셔틀을 이용했다. 버스가 출발하며 운전수가 운영규칙이라도 되는 듯 작은 라디오의 버튼을 누르자, 반가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문경새재 아리랑`이다.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과, 발굴과 보존에 힘썼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까지의 일을 한마디로 압축해보라면 노래에는 기억이 담겼다는 것이다. 겪은 일에 관한 기억이 아니라, 가볼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 얽힌 기억이다.문경새재 1관문 뒤에 마련된 사극드라마 촬영장은 옛 조선을 상상하도록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촬영장의 한옥 건물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그간 책상 앞에서는 느끼지 못한 생생한 과거와 마주한 듯했다.소박한 양반가택의 모퉁이를 돌자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리기에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당 한켠에 둥글게 모여 앉은 할머니 한 무리가 보였다. 봄나들이 삼아 문경새재에 왔다는 점촌 할머니들이었다. 대문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것밖에는 없는데 집에서 싸온 찐 옥수수며 고구마, 파전에 삶은 계란까지 내주며 반갑게 맞아준다.아시는 아리랑 한 곡 청해 들을 수 있는지 여쭙자 옆에 앉은 푸른 스웨터 차림의 할머니께서 곧장 노래를 불러주셨다. 곡조야 달랐지만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가네” 하는 익숙한 노랫말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문경새재 와서 들은 노래를 흉내낸 거라고 한다.자식들은 모두 외지로 나가고 할머니는 집을 점촌으로 옮겼다. 김기현 교수에 따르면 점촌은 전래되어온 민요가 있으나 문경새재아리랑이라 우리가 부르는 민요가 전해지지는 않았다. 행정구역상 다른 곳이다가 문경시와 묶이게 되면서 문경새재아리랑 행사의 한 주체가 되었다. 없던 노래라도 우리가 부르면 그것이 곧 우리 노래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선처럼 이동이 적었던 곳의 노래는 옛 모양을 유지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노래가 변형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할머니가 잠깐 들려준 노래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 할머니에게 듣는 문경새재의 전설할머니께서 감주를 한 잔 따라주며 문경새재에 얽힌 전설을 아느냐고 하셨다.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립 장군은 아느냐고 하신다. 장군 이름은 안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어린 신립이 사냥 중에 처녀가 홀로 사는 새재의 한 촌가에 묵었는데, 처녀의 식구는 인근의 괴수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처녀 혼자 죽을 위험에 처했다. 객의 도움으로 무사히 밤을 넘긴 처녀는 목숨을 의탁하고 데려가주길 청하였으나 신립은 매정하게 곁을 떠난다. 처녀는 원망하며 집을 불사르고 스스로 불타 죽는다. 훗날 장군이 새재에 주둔해 있을 때, 하늘로부터 탄금대로 철수하라는 처녀의 말이 들렸다고 한다. 그것이 장군이 후퇴한 이유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의 주인공은 그 처녀의 원혼이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새재 넘기가 두려운 적군을 앞에 두고 신립 장군이 황망하게 길을 내준 사실은 미스터리로 유명하다. 문경새재에 얽힌 이 전설은, 한양을 버린 임금의 이야기와 닮았다. 왜군이 새재길을 넘고 탄금대에서 신립장군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금은 한양을 버린다. 문경새재를 넘은 것부터가 선조에게는 덜컥할 일이었다. 비극으로 따지면 조선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왕은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느끼고 백성을 버린다. 왜군은 쉽게 함락한 한양에서 배를 불리고 목을 축일 생각이었으나, 도성에는 약탈할 것이 별로 없었다. 개성으로 피난한 왕의 궁궐에 백성이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도성에서 득을 보지 못한 왜군은 한양 인근을 약탈한다. 왜군에 쫓겨 수백리 길을 걸어온 이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전쟁이 이들에게 고통인 것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적들이 처들어오면 약탈과 살육을 당하리라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마당에, 혈육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맡길 조정이 기별도 없이 사라졌다. 백성은 불을 지른다. 자기들처럼 힘이 없으면 약탈당하고 죽임당할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해도, 나라가 먼저 자기를 버렸다는 사실이란 이렇듯 용납하기 힘든 것이다.처녀의 전설을 생각하며 새재를 오를수록, 백성을 내친 영웅이 어떻게 저주받는지 상상한 옛사람들의 마음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전설을 입에 담았을까?2관문을 지나서 도적떼와 여행객이 번갈아 쉬어갔다는 마당바위를 지나치다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왜란 이후에도 이 길을 오가던 온갖 인생들이 있었다. 산적도, 산적을 만난 이들도 나무를 할 때는 같은 노래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불렀을 노래의 의미며 정서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신세가 험하기로 치면 따라잡을 수 없는 작부가 탄광촌으로 들어가 불렀을 법한 아리랑의 노랫말은 귀에 익겠지만 직접 듣는 기분이 어떨지도 짐작하기 어렵다.이리도 감히 엿듣기 힘든 노래의 역사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옛 사람의 삶에 밀착된 노래를 찾아듣겠다고 할 때,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대답을 해야 할 때이건만, 새재의 마지막 관문으로 향하면서도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바닥이 환히 보이는 도랑과 봄볕에 자꾸만 밝아지는 흙길은 곱기만 해서, 걸으며 상상한 피가 튀는 역사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 문경새재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 “판타스틱!”6.5㎞ 정도라는 길은 너무나 평평해서 산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 느낌은 당연한 것인가보다. 적어도 2관문과 3관문 사이에서 만난 미국인 가족을 만나 알게 된 바로는 그렇다. 갓난아이를 태운 유모차 두 대를 끌고 네 살, 여섯 살의 두 아이는 걸려서 3관문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아이들은 개구진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반갑게 인사했다. 문경새재를 걸어온 소감을 물었다. 그는 1초의 고민도 없이 “판타스틱!”이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러면서 산길을 이렇게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라 했다. 유모차를 끌고 3관문까지 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잘 다져진 넓은 흙길이다.교귀정에서 만난 서울 부부의 얘기도 같았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문경새재를 찾는다는 부부는 “걷기엔 문경새재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맨발로 걷기 대회`가 열릴만한 곳이다.길의 가장자리로 시비들이 갑자기 등장한다. 비석마다 멈춰서 시를 읽었다. 선비였을 이들의 마음 풍경이 다채롭다. 아우에게 바치는 이별의 노래부터 새재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경관에 사로잡힌 노래까지, 이들은 이들대로 무심한 길섶에 자기들의 이야기를 남겼다.3관문에 거의 다다라서는 트로트 한 자락이 들린다. “오빠가 간다/이 오빠가 간다. 내 나이를 묻지 마라/난 영원한 오빠야/사랑은 해도해도 나는 항상 뜨거워...” 등산복 차림에 건장한 남자가 부르는 노래다. 모자엔 선글라스를 얹은 채 아내인 듯 보이는 사람과 함께 이 기분 좋은 길을 걸으며 그는 송대관의 `오빠가 간다`를 부른다. 동네 산책길에서라면 빤한 취향으로 보였을 그 노래가 어쩐지 반갑다. 우리가 저마다 가장 익숙한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보여주고자, 중년의 남자는 저 앞에서 “오빠가 간다”며 노래하는 듯하다. 새삼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은 “뽀롱뽀롱 뽀로로” 합창을 하며, 젊은이들은 이어폰을 꽂은 채 각자의 취향을 저격한 노래를 듣는다.이 당연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변치 않는 노래를 찾고 또 남기고자 하는 마음의 정체를 밝히라고 한다면, 상실감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길의 관광객이지 호환과 약탈이 두려운 피란민이 아니다. 누군가 고통 속에서 걸었던 길을, 지금 우리는 관광중이다. 이 길을 춤추며 지났다던 왜군보다도 어쩌면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더 멀리 있다고 해도 되리라.드디어 3관문을 지나치기 전, 아리랑비 앞에 섰다. 눈은 아리랑비에 가 있건만, 마음은 얼마 전 SNS에서 본 농담이 차지한다.터키의 문화재 실레 칼리스를 보수한 사진이 농담거리로 인터넷에 떠돈 적이 있다. 숱한 세월 동안 거의 부서진 탑은 보름 동안 삭아버린 연탄재나 다름없는 모양이었다. 터키 정부는 그 탑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지나치게 매끈하게 보수된 새 건축물을 닮은 `스폰지밥` 캐릭터가 고 성터의 별명이 되었다. 이 결과를 사람들은 비판적으로 본다. 그런데 터키 문화재 사진 아래 누군가 남긴 댓글이 인상 깊다. “어차피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다 같아지는 것 아니에요?”먼 훗날 이 땅에 와서 길을 걸을 사람들이 우리의 후손일지 아닐지 모르겠다. 그들이 유전적으로는 우리와 가깝다고 해도, 문화적으로도 같은 종족이라 믿을 필요가 과연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옛 시대와는 다르다. 훗날의 사람들이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 사람들 모두에겐 저마다의 노래가 있다고작 반나절을 걸어 만난 아리랑비 앞에서 반세기 이후에 이 돌이 어떤 의미일지 상상하며 땀을 닦았다. 한 시대가 이 길의 아리랑을 기억한 방식을, 후세의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주기를 우선 바란다. 비석 옆에 놓인 앙증맞은 단추함도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 인형의 집처럼 생긴 단추함 안에는 꽃밭이 그려져 있다. 한복 차림의 여인이 그 안에서 한창 꽃놀이를 하는 중이다. 사람들이 인형의 집처럼 보이는 단추함으로 와서 한 번씩 단추를 눌러본다. 단추를 누르면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올라가는 사람이 재미삼아 빨간 버튼을 눌러보고, 내려오던 이가 궁금해서 파란 단추를 눌러본다. 각각의 단추를 누를 때마다 송옥자 씨와 송영철 옹의 노래가 번갈아 길에 퍼진다.이 장난으로 노래는 기억될 것이다. 완전히 다른 맥락이 되었지만, 또 다른 곳에 가서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다른 노래가 되어 불릴 것이다. 비록 노래를 할 줄 모르지만, 그래서 아리랑 한 소절도 어디 가서 제대로 부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문경새재를 거쳐 가다 들어본 이 노래에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 기억할 것이다. 우리들에겐 저마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2016-04-18

맥주 한 모금, 이스파한 청년의 소박한 일탈

이란 사람들은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Isfahan Nesf-e Jahan)”이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이는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도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낸 문장이다. 수도 테헤란을 이틀 여행한 후 200여 개에 가까운 모스크가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는 `이란 최고의 관광지` 이스파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여러 개의 근사한 교량과 그 옛날 영화를 짐작케 하는 공중목욕탕까지 즐비한 곳. 유럽 각국의 시인들조차 그 번영의 역사와 휘황한 이슬람 문화유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도시로.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한없이 수줍고 순진한 친구 `모하메드`술 대신 진한 홍차와 물담배로 밤 늦도록 국경없는 우정 나눠이스파한에 도착한 바로 그날 해질 무렵, 이맘광장 내부의 모스크 앞에서 덩치가 산만 한 청년을 만났다. 다소 험상궂다고 해도 좋을 외모와는 달리 한없이 부끄러움을 타는 그의 이름은 이란에선 흔하디흔한 모하메드. 독일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에서 일한다는 그가 기자에게 “친구가 돼달라”고 청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현지인과 친구가 된다는 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기에. 이란식 물담배 `갤리언`과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은 홍차를 파는 가게로 나를 안내한 모하메드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경험해본 외국이라곤 회사일 때문에 이틀 출장 다녀온 독일이 전부. 그렇기에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기자가 들려준 여행 경험담이 인상 깊고 고마웠던지 “내일 내 친구들과 만나 인사라도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 역시 고마운 제안이었다. 다음 날 만나 악수를 나눈 모하메드의 친구들 역시 순박했다. 또한, 처음 보는 외국인을 편견 없는 친절한 태도로 대해줬다.그 장소가 한국의 어느 도시였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새로 사귄 남자친구들끼리 술집으로 몰려가 부어라 마셔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이란. 어디에도 술을 파는 곳이 없으니, 아쉽지만 찻집에서 밤늦게까지 홍차와 물담배를 가운데 두고 `미남들(?)의 수다`를 떨어야 했다.익숙지 않은 영어와 보디랭귀지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느 한순간. 모하메드가 조심스럽게 고백 하나를 했다.“홍(여행을 할 당시 많은 외국인들이 기자를 이렇게 호칭했다), 이건 비밀인데, 나도 딱 한 번 술을 마셔본 적이 있어.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였는데 맥주란 걸 한 모금 먹었지.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게 있었다니. 정말 놀랐어.”서른 살이 넘도록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맥주 한 모금이 준 취기가 그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어진 모하메드의 말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내가 술을 마셨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돼. 이 사실은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으니까.”그랬다. 대다수 무슬림들은 종교적 신념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신념만큼이나 중요한 게 인간의 욕망 아닌가. 이란 사람들이라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꿈꾸는 `일탈의 욕구`가 왜 없을까. 인간은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들을 끝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인 것을.한국인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한 잔의 술`이 모하메드에겐 자신이 믿는 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일탈이 될 수도, 아내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비밀이 될 수도 있는 게 세상사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모하메드의 고백처럼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은 또 있다. 이란 중부의 모래바람 부는 사막도시 야즈드를 여행할 때 머물던 호텔에서였다. 그곳 매니저로 일하는 스물여섯 살 미남청년 알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은밀히 기자를 부른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뜸 이런 부탁을 해왔다.“어이, 홍. 어제 우리 숙소에 여행 중인 네덜란드 여대생이 두 명 왔어.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나보고 데이트를 하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큰일이야. 나는 어떻게 하면 여자가 기뻐하는지 알지를 못해. 네가 조언을 해줄 수 없을까?”대체 이런 질문에는 어떤 답변을 내놓아야 할까.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와 어투에 농담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껏 내놓은 해결방안은 이랬다.“그 네덜란드 여자애는 데이트를 해본 경험이 너보다는 훨씬 많을 거야. 그러니, 네가 뭘 해주려 하지 말고, 그 여자애가 리드하도록 데이트의 주도권을 넘겨봐. 그게 좋을 것 같네.” 이처럼 형편없는 어드바이스였음에도 알리의 얼굴은 대번에 환해졌다.너무나 닳고 닳은 세상을 살아온 우리. 그런 까닭에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처음 본 기자에게 물어보는 알리의 대책 없는 순진함이 감동적이기까지 한 순간이었다.이스파한을 여행할 때 만난 이란 여대생들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붉은 꽃 흐드러진 정원이 고풍스러움을 더하는 숙소. 그곳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지역의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20여 명이 묵고 있었다.친구들과 함께 온 수학여행의 즐거움에 들뜬 스물, 스물한 살 소녀들은 밤에는 밖에 나오지 말라는 지도교수의 엄포에도 늦은 시간까지 정원 나무의자에 모여 앉아 기자와 체코에서 온 전기기술자에게 서툰 영어로 수십 가지 질문을 던지며 까르르 댔다.“당신들은 왜 아내도 없이 혼자 여행을 하나요?”“종교가 없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한국과 체코 여자들은 남자가 보는 앞에서도 춤을 춘다고요?”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바깥 세상에 대한 의문들. 여대생들의 웃음 끝에 매달린 순진함과 순수함이 더없이 좋아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어떤 질문도 피해가는 법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이란 소녀들에게 들려줬다.기자와 전기기술자의 답변에 때로는 깜짝깜짝 놀라고, 때로는 자기들끼리 귀엣말을 속삭이며 웃는 그네들의 모습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한국의 스무 살 여대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머리에 히잡을 썼느냐 쓰지 않았냐만이 달랐을 뿐.이란 사내들이 즐기는 기호품은…끼니 외에 과자나 과일 따위를 먹는 걸 일컫는 `군것질`. 보통 군것질은 아이들이나 여학생들이 주로 즐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란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돼지고기와 함께 음주를 엄격하게 금하는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이란 남성들은 확실히 한국 사내들에 비해 군것질을 즐긴다. 공원이나 기차·버스 안, 심지어 거리를 걸으면서도 호두나 아이스크림, 과일주스를 먹고 마시는 콧수염 기른 건장한 남자들을 볼 수 있는 게 `신성 무슬림공화국` 이란이다.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기호품을 특히 좋아할까.▲설탕 듬뿍 넣은 홍차이란만이 아닌 중동의 많은 국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가 따뜻한 홍차다. 잘 단장된 찻집은 물론, 허름한 노점에서도 홍차가 담긴 잔을 든 남성들을 만날 수 있다. 더운 날씨로 인해 당분이 필요한 탓인지 한국보다 훨씬 달콤하게 마시는 게 특징이다. 조그만 찻잔에 설탕 3~4 티스푼을 넣는 건 기본. 좀 더 단맛을 원하는 이들은 아예 각설탕을 입술에 물고 홍차를 마시는 진풍경도 연출한다. 손님 접대에도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게 홍차와 집에서 만든 과자다.▲사과 향기 진한 물담배 터키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나르길레` 혹은, `시샤`라고 부르는 물담배도 이란 남성들이 사랑하는 기호품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갤리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흡연양식이 페르시아에서 최초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갤리언의 구조상 물을 통과한 연기를 흡입하게 되는데, 이때 말린 담뱃잎에 사과와 오렌지, 포도 등 각종 과일향을 첨가해 풍미를 더한다. 대부분의 이란 남성들은 사과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물담배를 선호한다.▲갖가지 견과류이란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놀랐던 건, 버스나 기차 안 승객의 70~80%가 땅콩과 해바라기씨, 피스타치오와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역이나 버스터미널 매점은 물론, 도로변 간이휴게소에도 견과류는 최고의 인기상품이다. 기자 역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해바라기씨나 아몬드를 씹으며 달랬음을 고백한다.사진제공/류태규홍성식 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2016-04-15

담백한 맛·영양 풍부한 자연친화 사찰식품

음식은 곧 생명의 근본이라고 했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회복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기간을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있다. 특히 불가(佛家)에서 음식은 약(藥)이나 의술로 통한다. 사찰음식이 스님들의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절밥`은 재료 특성을 최대한 살려 조리하고 저장 및 발효 등 고유의 조리법까지 지녔다. 자극적인 맛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에겐 도리어 몸과 마음을 일깨워주는 자극제이다.동호사서 숙성 된장+호미곶 보라성게 `찰떡 궁합`제철채소와 함께 먹으면 산후조리·갑상선에 좋아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의 동호성게된장(대표 김인태)은 사찰에서 정성스레 된장을 만든다. 연중 산바람과 햇살이 머무는 동호사(지주 혜연스님)에서 숙성시킨 된장에 호미곶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보라성게를 넣어 만든 성게된장이다. 최상의 자연조건 아래 두 번의 발효과정까지 거쳤다. 긴 기다림 끝에 완성된 동호성게된장은 맛과 영양 모두 사찰식품으로서 품격을 갖췄다.성게된장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자연의 힘이 컸다. 혜연스님은 해녀 신도들이 가져다준 성게알을 오래 두고 먹을 방법을 고민했다. 울릉도에서 성게알을 된장에 넣어 끓여 먹는다는 정보에 착안해 지난 2012년 성게된장을 개발했다. 자연이 준 식재료를 사용하고 자연숙성을 거쳐 완성된 자연친화식품이다.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성게된장은 한 번 담그는데 3년 이상 걸린다. 최소 2년반 발효시킨 된장에 성게알을 넣어 섞은 다음 또다시 6개월간 숙성시킨다. 인종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사찰음식만의 특별한 정성과 풍미만 더했다.청정바다 호미곶에서 채취한 성게알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단백질, 비타민, 철분 등 몸에 좋은 영양성분을 품었다. 해삼의 6.7배, 미역의 4.7배에 달하는 아연을 함유하고 있어 산모들의 산후조리 뿐만 아니라 갑상선 기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던 혜연스님 또한 성게된장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성게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담백한 맛이다. 효소를 넣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염분이 빠져나가 일반 된장과는 달리 강한 맛이 적다. 혜연스님은 성게된장을 제철채소에 곁들어 먹을 것을 추천했다. 항암성분이 높기 때문에 특별한 조리 없이 그대로 섭취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자연에서 얻은 맛과 영양이지만, 의외로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나뉜다. 성게알을 넣어 특유의 바다향이 나는데다 소금기가 적어 새콤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찌개보다는 일본식 미소된장국처럼 맑은 느낌으로 끓여 먹기 적합한데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좋아한다. 특히 건강 식단을 즐기는 젊은 여성소비자들이 많다.김 대표는 “일반 찌개처럼 얼큰하지 않아 `옛날 장맛이 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존에 먹던 제품이나 일반 된장에 익숙해진 탓이다. 반면 채소에 된장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하거나 건강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홍콩식품박람회 참가, 일본 대형마트에 입점하는 성과도 거뒀지만, 아직 어려움이 많다. 생업인 농사를 하느라 영업이나 마케팅에 신경 쓸만한 여력이 없어서다.김 대표는 “프리미엄 된장식품으로서 나름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췄지만, 식품업계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일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지자체 지원을 받아 가장 쉽게, 많이 뛰어드는 분야가 바로 된장이다. 콩값까지 싸져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그래도 목표는 있다. 올해 비전은 성게알 강된장을 만드는 것이다. 사찰식품이 소비자들에게 웰빙을 넘어 힐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그는 “강된장을 카레밥 등 레토르트 식품처럼 간편하게 밥에 비벼먹을 수 있도록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4-14

엊그제 새긴 듯 표정 하나하나가 生動(생동)

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여행하며 슈테판성당의 웅장함에 놀랐던 적이 있다. 높이가 137m에 달하는 첨탑의 위용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불리는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겨우 9년 간격으로 열린 역사적 장소라는 드라마틱한 사실은 비엔나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그 도시에 매력에 빠지게 한다.왕비 장화부인과 합장무덤으로 추정되는 흥덕왕릉 돌사자와 무인·문인석까지 신라 조각기술 정수 만끽삼국통일 주역 김유신 장군묘도 여느 왕릉 못잖아슈테판성당의 내·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 역시 사람들에게 인기다. 안톤 필그람 등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화려하고 매혹적인 부조(浮彫)는 동유럽 예술역사의 한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엔나는 해마다 수백 만 명의 여행자들을 끌어 모으는 관광의 도시다. 그 힘의 배후 중 하나가 바로 슈테판성당이고, 성당 안팎의 새겨진 빼어난 조각품들이다. 그렇다면 경주에는 이 정도의 매력을 가진 `관광 상품`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해보자. “있다.”흥덕왕은 신라의 42대 임금이다. 38대 원성왕의 손자로 태어난 그의 능은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한적한 소나무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용장 장보고에게 군사 1만 명을 주고 청해진 사수를 지시했던 흥덕왕은 중국에서 들여온 차(茶)를 우리 땅에 재배해 `차 문화`를 대중화시킨 문무를 동시에 갖춘 왕으로 평가받는다. 오래 이어진 가뭄과 흉작에 신라에 대기근이 찾아왔을 때는 국법으로 사치를 금한 어진 지도자이기도 했다.흥덕왕릉을 찾았던 초봄. 일대는 소나무재선충 방재활동이 한창이었다. 소설가 강석경은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을 통해 경주 외곽 인적 드문 곳에 자리잡은 흥덕왕릉 앞 소나무 숲을 이렇게 표현했다.“햇빛을 향한 경쟁 때문인지 용틀임하듯이 뻗어 올라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을 나서면 초록의 능원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묘사로 미루어볼 때 작가는 아마도 여름에 이 왕릉을 방문한 듯하다. 울울창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1천20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조용히 잠들어있는 왕. 하지만, `소리 없는 왕의 영면`과는 별개로 흥덕왕릉 일대는 살아 뛰는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각기 다른 기묘한 형상으로 수백 년 세월을 살아낸 소나무의 지칠 줄 모르는 푸른 에너지가 그렇고, 왕릉 주위를 호위하듯 서있는 무인석과 문인석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그렇고, 왕의 무덤을 호위하듯 둘러싼 십이지신의 돋을새김이 또한 그렇다.1963년 사적 제30호로 지정된 흥덕왕릉은 현존하는 신라의 왕릉 중 형식면에서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춘 능이라는 역사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과 합장한 무덤으로 추정되며 규모 역시 크다. 봉분 아래 판석(板石·널판같이 뜬 돌)을 세웠고, 능을 빙 둘러싼 호석(護石·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에는 십이지신상을 조각했다.봄 햇살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 십이지신상은 바로 엊그제 만든 것처럼 표정 하나하나가 생동한다. 그 정밀함과 섬세함이 슈테판성당의 부조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천년 세월을 훌쩍 넘어 신라미술의 미려함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십이신왕`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십이지신은 불교 신자들을 보호하는 신장(神將)으로, 사람의 몸에 호랑이·토끼·용·뱀·말·소·원숭이·닭·돼지·개·쥐·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나라를 지키는 신으로까지 숭배되던 십이지신. 바로 이 열 두 동물이 죽은 흥덕왕과 왕비를 지키고 선 것이다. 자그마치 1천200년 동안.십이지신상 외에도 흥덕왕릉 주변에는 돌사자와 무인석, 문인석, 그 위에 비석을 세웠던 커다란 거북 모양의 조형물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살아있는 학자의 품격을 그대로 담아낸 문인석과 이국(異國)의 장수를 모델로 깎은 듯한 무인석은 왕릉이 조성됐던 당시 신라가 얼마만한 조각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활발했던 서방세계와의 교류 역사까지를 짐작케 해준다.유럽의 역사·문화유적은 학계의 철저한 고증과 범국가적 지원을 통한 보존정책으로 인해 오늘날 화려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경주도 문화유산의 고증과 보존에 지금까지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흥덕왕릉과 그 주변 조형물을 직접 본 사람들은 말한다. “신라의 십이지신 돋을새김이 비엔나 슈테판성당의 부조만 못할 게 무엇인가?” 신화와 전설을 제 몸 안에 고스란히 담은 매혹적인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고분은 흥덕왕릉만이 아니다.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 金庾信墓)`라 쓰인 비석이 세워진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의 무덤(사적 제21호)을 호위하는 것도 십이지신이다. 삼국시대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 이름은 들어봤을 김유신(595~673)은 신라의 장수로 지금의 합참의장격인 대총관을 맡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인물. 삼국을 통일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그의 무덤은 규모와 화려함 면에서 어느 왕릉 못지않다. 봉분의 지름이 30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묘에도 세밀한 솜씨의 석공이 새겼으리라 짐작되는 십이지신이 꿈틀대고 있다.흥덕왕릉의 조각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은 열두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몸은 평상복을 입고 칼과 창 등의 무기를 든 사람 형상이다. `삼국유사`는 이 묘에 관해 “김유신이 죽자 흥덕왕은 그를 흥무대왕으로 높이 모시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경주 출신의 역사학자 이근직(1963~2011)은 그의 저서 `신라왕릉 연구`에서 김유신 묘에 관해 “왕릉과 같은 호석 구조를 하였으나, 석사자상과 석인상은 없다”고 썼다. 흥덕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 주변에서 발견된 사자상과 문인·무인석 등이 없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그것은 아마도 김유신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음에도 `감히 왕의 권위에는 미칠 수 없다`는 왕족들의 자존심이 석상 세우는 걸 거부해서가 아닐까?오스트리아 슈테판성당의 부조가 지닌 아름다움과 비견할 수 있는 흥덕왕릉과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시인 김광규의 `묘비명`이란 시가 떠올랐다. 불멸하는 석조 돋을새김을 보며 유한한 인간의 삶을 노래한 문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후략)`. 사진작가와 관광객 매료시킨 경주의 고분꽃과 소나무 속의 고분앵글에 담긴 경주의 봄`이색 풍경`으로 인기목련과 유채꽃,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하는 경주의 봄. 그 향기에 끌려 많은 사람들이 경주로 향하는 버스와 기차에 오른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역시 간단한 도시락을 만들어 가족소풍을 나오는 3~4월의 경주 풍경은 정겹다.난분분하던 벚꽃이 아쉽게 떨어질 무렵인 4월의 두 번째 주말. 대릉원의 고분과 월성 유적 발굴현장, 월지(안압지) 등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구창웅(47) 씨를 만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근 30년 만에 경주를 찾았다는 구 작가는 “죽은 왕들의 숨결이 봄꽃 속에서 살아나는 듯하다”는 말로 왕릉과 만난 감동을 전했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각종 유물에 관심을 보인 그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러 보다 많은 고대의 보물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걸음을 옮기는 곳 모두가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 사는 분들이 부럽다”는 말로 `고분의 도시` 경주의 매력에 흠뻑 빠졌음을 고백했다.경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대릉원과 첨성대를 거쳐, 월성 유적과 월지, 동궁까지 꽤 먼 길을 걸었음에도 곳곳마다 거대한 능()이 솟은 독특하고 생소한 풍경에 피곤한 줄 모르겠다던 구 작가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경주 왕릉의 비밀을 주제로 작업을 해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미래의 희망을 전하며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 주위 풍경을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첨성대 인근을 노랗게 물들이며 만개한 유채꽃. 동화 속 풍경 같은 그 유채꽃밭에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 아내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대구시민 김남석(39) 씨를 만났다.“TV와 책 속에서만 보던 거대한 무덤을 본 아이들이 신기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귀여웠다”는 김 씨는 신라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아이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지 “다음에 경주를 찾을 때는 미리 왕릉과 유적에 관한 공부를 좀 해와야겠다”며 웃었다.봄꽃과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경주의 고분들. 천년왕국 신라의 향수 어린 풍광은 비단 역사학자와 문화재 전문가들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웃음과 꿈을 선물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