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모두의 집에 풀과 꽃과 텃밭의 채소만 있는 건 아니다. 나무가 더 많다. 아니 더 많이 심었다.원래 제법 큰 대추나무가 마당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감나무, 가죽나무, 뽕나무, 사철나무도 있었다. 그러나 집과 터의 규모에 비해 전체적으로 휑뎅그렁했다. 고택엔 역시 소나무라며 남편이 제일 먼저 사다 심은 여섯 그루의 소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고,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들도 몇 그루 있어 볼 때마다 기껍다.남편이 손주와 함께 석류나무를 사왔다. 그리고는 손자에게 이 나무는 건이 나무야. 그러니까 물도 주고 잘 키워. 나무팻말에 제 이름을 쓰게 했다. “석류나무, 이 건, 2022년 6월 10일” 기념식수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었다. 작년 여름 사흘을 묵고 간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기념식수를 제안했다. 신박한 제안에 무조건 콜! 조경회사에 전화해서 여름에 심어도 잘 자랄 나무로 추천한 보리수를 심었다. 꽃삽 들고 사진도 찍고 팻말도 써서 박았다. “초등학교 친구들, 김정숙, 김현숙, 박창희, 최금순, 이정옥, 2022년 8월 10일” 한 친구는 저 닮은 홍매화 한 그루 더 심겠다며 우겨 우물가에 심었고, 거기에도 나무팻말을 박았다. 올봄 가장 이르게 붉은 매화를 피웠길래 사진으로 꽃소식을 전했다.위덕대 자율전공학부 24학번 성인학습자들의 모임이 있다. 매년 스승의 날에 나이가 더 어린 나를 스승이랍시고 꼭 청해서 식사를 함께하고 선물도 주신다. 작년 스승의 날에도 어김없이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인사 삼아 모두의 집에 초대했다. 용인, 청도, 대구에서 각기 바삐 사시는 분들임에도 귀한 걸음을 주셨다. 집들이선물을 걱정하시길래 기념식수 얘기를 했다. 좋은 방법이라며 배롱나무를 꼭 사 심어 달라시며 나무 팻말을 미리 써 두셨다. “아름다운 동행, 유복혜, 박영희, 오순옥, 2022년 8월 23일” 가을에 배롱나무를 사 심고 팻말을 박았다. 올여름 분홍색 꽃을 피웠길래 사진을 올려드리며 감사함을 전했다.5월엔 선덕여왕경모회원 14명이 1박2일의 워크숍을 했다. 뜻있고 값진 나무로 기념식수를 해야 한다기에 단아하되 멋스러운 수형의 향나무를 사서 미리 심어두었다. 다같이 기념식도 하고 팻말을 망치로 박는 퍼포먼스도 했다. “선덕여왕경모회 방문 기념. 2023년 5월 22일”44년 전 딱 한 해, 소선여중 교사로 만난 인연으로 아직도 연락을 이어 온 선생님들 모임이 있다. 만발한 백일홍꽃을 단톡방에 올려 꽃구경 오시라고 초대했다. 7월 어느 날, 서울, 부산, 함양, 대구에서 5분이 태풍을 뚫고 오셨다. 흰 꽃이 탐스러운 목수국으로 기념식수를 했다. “소선회 방문 기념, 박종선, 송경숙, 유진숙, 이숙화, 임신영, 2023년 7월 15일”지난주 울릉도에 일이 있어 갔다. 베리의 죽음 후 울적함을 달랠 겸 남편도 동행했다. 남편이 울릉도의 주황색 열매가 예쁜 마가목숲을 보고 난 후 그 나무에 꽂힌 듯했다. 기어이 세 포기 사서 배에 싣고 왔다. 오늘 마가목을 심었다. 셋 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나무를 정성스레 심더니 한마디 했다. “이 나무는 베리 나무야.” 남편은 베리를 위한 기념식수를 한 거였다.
202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