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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자원봉사

등록일 2023-06-28 18:16 게재일 2023-06-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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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난 몹시 게으르다. 집안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집안일 중 밥하고 반찬하는 것-난 이 두가지 일을 창조적인 일이라고 한다.-이외에 빨래며, 설거지와 같은 소위 가사재생산적 일은 정말 하기 싫고, 해도 표시 안나니 더욱 하기를 미룬다. 생전 내 집에 다니러오신 친정엄마는 걸레를 들고 방바닥을 닦으며 혀를 끌끌 차신다. 넌 어려서도 따라 다니며 치워 줘야했어. 어찌 그렇게나 뒷손이 없는지, 시집가서도 그 버릇 못 고쳤으니 쯧쯧….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자아이 둘이 어지르는 건 더욱 만만찮았다. 미루다미루다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청소하는 생색을 내면서 툴툴거렸다. 남자 셋이 어지르고 여자인 나 혼자 치우다니 힘들다 힘들어. 곁에서 큰아들이 슬쩍슬쩍 장난감을 치우면서 한 마디 거든다. 엄마, 셋이 어지르는 게 아니라 넷이 어지르잖아요….

아이들이 학교 다니고, 내가 직장 다니고부터는 내내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다. 아들들이 커서 대학으로, 군대로 가면서 남편과 둘만 있게 되자 집안일이 간소해졌고, 도우미 없이 그럭저럭 꾸려 나왔다. 아침마다 쓸고 닦고, 매끼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는 바지런함이 늙어서야 돌아온 건 아니었다. 잔소리라곤 전혀 없는 남편 덕분에-그렇다고 도와주지도 않지만- 그저 대충 치워가면서 사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난 갑자기 부지런을 떨고 있다. 목요일 아침, 아니 수요일 저녁부터 집안일로 부산하다. 왜냐하면 목요일 오전 약 1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하러 가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한답시고 내 집꼴을 제대로 건사 안한다면 위선이라 싶어 깨끗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집은 모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은퇴 후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자원봉사였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능기부 정도는 했으나 시간이 생기면 반드시 하고자 결심했던 터였다. 자원봉사자 모집공고는 없나, 구청소식지를 살펴보고 길에 걸린 현수막을 살펴보던 중에 지산종합사회복지관 공고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 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뜻한 밑반찬을 전달해 줄 차량배달 봉사자 모집” 딱 이거다 싶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이후, 10가구 정도에 반찬 배달하는 일이었다.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매우 가벼운 일이었다. 곧바로 담당사회복지사에게 연락하고 목요일 만나 동행하며 길을 익혔고, 주소지를 쓴 종이도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7주째다. 첫 주엔 골목을 찾느라 헤매고, 네비게이션을 봐도 뱅글뱅글 도는 길을 진땀깨나 흘렸다. 시간대가 택배차량과 겹치는 골목엔 멀찌감치 차를 세워두고 뜀박질을 해서 배달하곤 했다. 대부분 남자어르신이 혼자 사시는 집이었다. 10집 중 한두 집은 어르신이 계시지 않아 문 앞에 반찬꾸러미를 걸어 두고 사진을 찍어 두어 착오가 없게 했다. 처음엔 겸연쩍은 듯 반찬 꾸러미를 그냥 받던 어르신들이 서너 주가 지나자 인사를 건네주신다. 더운데 수고가 많습니다. 길 찾기 힘드시죠? 길가 담벼락에 난 쪽문으로 만나는 한 어르신은 꾸러미를 건네 드리면 파란색 이온음료캔을 챙겨주신다. 점심 전에 꼭 따뜻한 국과 반찬으로 식사하시라 싶어 부지런히 배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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