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독일 사는 사촌이 휴가로 귀국해 모처럼 우리집에 놀러왔다.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녀 린의 돌사진이었는데 우리 가족 외엔 아는 사람이 없어선지 누구냐고 물었다. 건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사촌에게 자기를 번쩍 들어올려달란다. 독일 할머니 내가 가르쳐줄게요. 이 사람은 큰아빠고요, 이 아이는 서울 동생 은이에요…. 근데 이 사람은 누구지? 아 작은할아버진가? 열심히 가족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내친김에 동생에게 두 아이들 결혼식 앨범을 꺼내 보여주었다. 건은 또 옆에 와서 참견한다. 큰아빠 큰엄마 결혼식에 엄마는 왜 없어? 그때 너희 엄마는 아직 결혼 안해서 여기 없지. 그럼 아빠는 왜 있어? 아빤 큰아빠 동생이니까 있지. 건의 물음은 끝이 없었고, 설명에 진이 질 지경이었다. 한복 입은 내 사진을 보더니 한참 들여다본다. 근데 이 사진에는 왜 줄무늬가 없어? 줄무늬? 우린 건을 바라보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해했다. 동시에 건에게 물었다. 줄무늬가 뭐야? 건이 대답했다. 할머니 얼굴에 줄무늬가 없잖아…. 아 주름…. 건이가 말하는 줄무늬란 얼굴의 주름을 말하는 거였다. 대답해 주었으나 궁색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이가 적었고, 화장도 했고, 또 속말로는 ‘아마 사진사가 포토샵도 했을걸’이라며 설명하면서 동생과 나는 다시 또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어쩌면 주름살이라는 단어를 몰라서였겠지만 주름살을 줄무늬라 표현한 건의 표현력과 어휘력에 새삼 찬탄했다.
지금 생각하니 주름보다는 줄무늬가 더 아름답고 적합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늬란 옷감이나 조각품 따위를 장식하기 위한 여러 가지 모양이라고 사전에 쓰여있다. 옷감에 수를 놓거나 조각에 새기거나 하여 예쁘게 장식하는 것이니 줄무늬란 줄로 장식을 한 무늬다. 얼굴의 주름은 장식을 위해 줄을 새겨넣은 무늬인 셈이다. 그에 반해 주름이란 피부가 쇠하여 생긴 잔줄, 또는 옷감이나 종이의 구김살이다. 일부러 새긴 무늬가 아닌 피부의 노화로 생긴 줄이요, 원래 팽팽하던 피부가 구겨져 생긴 줄이 주름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 절로 생기는 주름이라도 되도록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열심히 노화방지에 애쓰고 또 원치 않은 구김살이니 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 아닌가.
생각의 차이고 표현의 차이다. 나이들면서 저절로 생긴 주름을 무늬라고 치자. 눈가에 잘게 잡힌 눈주름은 실은 평생 열심히 보며 울며 웃으며 만든 웃음줄무늬이다. 또 나이들어 보이게하는 팔자 주름은 한평생 먹고 마시며 말하면서 입가 양옆에 새긴 무늬다. 그렇다면 두 눈썹 사이에 생긴 미간 주름은 걱정근심 고통을 이기며 참아서 만든, 미간에 새긴 세로 줄무늬이다. 돌아가신 엄마의 유난히 굵고 깊게 팬 이마 주름은 오직 자식을 위해 사셨던 극진한 모정의 삶이 새겨넣은 큰 가로줄무늬였던 셈이다. 이제부터라도 내 얼굴에 이런저런 자잘한 줄무늬를 새기려면 더 열심히 웃으며 말하며 살아야겠다 싶다. 아픔과 고난이 닥쳐도 지혜롭게 이기면서 미간과 이마엔 결고운 잔무늬를 새겨넣어야겠다. 손자의 재밌는 말 덕에 나의 남은 삶은 다시 더욱 여유로워질 터이다.